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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pha1.png   미국의 주에 대해서는 조지아 주 문서를, 그 밖의 동음이의어에 대해서는 조지아(동음이의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캅카스 산맥 이북의 일부 지역만이 동유럽에 속해있다.
2우랄 강 이서의 일부 지역만이 동유럽에 속해있다.
국기
국장
면적
69,700km²
인구
3,974,914명(2017)
민족구성
조지아인 83.8%,
아제르바이잔인 6.5%,
아르메니아인 5.7%
종교
수도
국가
자유 (조지아어: თავისუფლება)
공용어
정치체제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
(გიორგი მარგველაშვილი)
임기
기오르기 크비리카슈빌리
(გიორგი კვირიკაშვილი)
임기
1인당 GDP
명목 3,908$(2016), PPP 5,491$(2011)
통화
라리(ლ)
시간대
UTC +4, 한국 기준 -5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사카르트벨로)#
Қырҭтәыла (키르트트윌라)
오세트어
Гуырдзыстон (구이르지스톤)
Грузия (그루지야)
گرجستان (고르제스탄)
Gürcistan (귀르지스탄)
Վրաստան (브라스탄)
Gürcüstan (귀르쥐스탄)
Georgia
Гурҷистон
Гүрж
width=525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근대2.4. 현대
3. 경제4. 사회
4.1. 장수촌
5. 군사6. 문화
6.1. 언어6.2. 종교6.3. 스포츠6.4. 음식
7. 외교 관계8. 여행9. 상징물
9.1. 국호9.2. 국가
10. 조지아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서아시아, 동유럽캅카스에 위치하며, 흑해와 접하고 있는 국가. 산 때문에 바로 옆 나라인 러시아와 달리 아열대기후를 띠기도 한다.[1] 수도는 트빌리시. 인종, 역사[2], 종교[3], 문화적[4]으로 유럽에 속하기에 동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에 속한다. 하지만 지도상에서도 동유럽으로 분류될 때가 많다. 실제 조지아에 가보면 아시아보다는 유럽의 풍경과 흡사하다.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준점인 우랄 산맥의 서쪽에 있다. 사실 유럽아시아를 나눈다는 자체가 넌센스에 가깝지만.

2. 역사[편집]

2.1. 고대[편집]

대략 4만 년에서 2만 년 사이에 현생인류가 처음 거주한 것으로 추측되며 8,000여년전 농경이 시작되었고, 3,000여년전이 되면 본격적으로 역사에 조지아가 드러난다. 조지아 서부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이 아르고 호를 타고 황금양을 찾기 위해 갔던 콜키스 왕국이 융성했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조지아 동부에서는 이베리아 왕국[5]이 나타났다.

콜키스와 이베리아는 당시 중동에서 융성했던 메디아와 페르시아 등의 침략에도 살아남았으며, 마케도니아가 한참 흥할 때에도 건재했다. 그러나 이베리아는 아르메니아가 커지면서 많은 영토를 잃었고 콜키스는 폰투스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곧바로 로마 제국이 캅카스로 오면서 콜키스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이베리아도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 한편 4세기 조지아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2.2. 중세[편집]

이후 로마가 차츰 쇠퇴해가자 콜키스에 독립국이 세워지기도 하고 페르시아가 이베리아를 통제하는 등의 일이 이어지다가, 이어 아랍인들이 조지아를 차지했다. 9세기 초 바그라티온 왕조 아래 독립 왕국이 수립되었다. 11세기 셀주크의 침략 때는 험준한 캅카스의 지형 덕에, 몰락해버린 옆나라 아르메니아와는 달리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 '건설자'라 불리는 바그라티온 왕조의 다비트 4세(재위 : 1089 ~ 1125)가 조지아의 군소 왕국들을 통합해 강력한 통일 국가를 건설한 뒤 지금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장악하였고 다비트 4세의 증손녀 타마르 여왕(재위 : 1184 ~ 1213)의 치세 대에는 튀르크족을 격파해 지금의 터키 동부와 이란 북서부 일대를 속국으로 삼고 동로마 제국이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잠시 멸망당했을 때 세워진 폰토스의 트레비존드 제국을 보호령으로 삼으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1220년 몽골 제국의 대원정 때는 발빠르게 몽골의 종주권을 인정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때 형식적으로 일 칸국의 번국으로 복속되었으나 실상은 반 독립국이었다.

2.3. 근대[편집]

그러나 시간이 흘러 15세기가 되면 조지아 주변은 모두 무슬림 세력으로 둘러싸이게 되었으며 조지아는 분열되었다. 그리고 조지아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 나라는 이 시기 오스만 제국캅카스 지역으로 아르메니아와 함께 편입되어 버린다.

이 때 북쪽에서 기독교 제국 러시아가 나타났고, 18세기 말 조지아의 가장 큰 왕국인 카르틀리-카헤티가 러시아 제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6] 1801년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서부의 이메레티 왕국도 1810년 저항 끝에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1000년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던 바그라티온 왕조는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 이후 서쪽의 다른 공국들도 차례로 합병되면서 19세기 말까지 지금의 조지아 지역은 완전히 러시아령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조지아 통치는 영 아니어서 반란이 일어나곤 했다. 조지아에서 19세기 중반 농노가 해방되는 등 몇몇 변화가 있었으나 이 결과는 농노에게나 귀족에게나 시원치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1918년 조지아는 이 틈을 타 조지아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잠깐 독립했으나 1921년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2.4. 현대[편집]

소련 치하에서 조지아는 일부 영토를 다른 국가나 연방 내 다른 국가에 이양했고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에 러시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숙청을 겪었다.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이 오랫동안 소련의 지도자였으나 스탈린이 특별히 자비롭지는 않아서 수만명이 죽거나 추방되고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럼에도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에 반발해 조지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80년대가 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시위가 빈발했고 1989년 소련군이 평화시위를 무력진압하자 이런 분위기는 더 심해졌으며, 1991년 조지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ზვიად გამსახურდია)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바로 축출되고 내전이 일어났으며, 여기에 압하스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까지 끼어들면서 혼란은 더해졌다.

내전 이후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ედუარდ შევარდნაძე)가 권력을 잡고 친서방정책을 표방해 서방의 지원을 얻어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의 치하에서 부정부패는 극심했으며 부정선거가 치러지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끝에 셰바르드나제는 사임하고 현재 망명해 우크라이나인이 된# 미헤일 사카슈빌리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사카슈빌리의 치하에서 반독립 상태이던 아자라 자치 공화국의 아바시제가 축출당했고, 이어서 2008년 서방세계, 특히 미국유럽연합의 힘을 믿고 베이징 올림픽 도중에 남오세티야 지방에 군대를 진주시켰다.

문제는 남오세티야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고, 남오세티야의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한 러시아군을 죽이는 미친 짓을 저지른 바람에 진노한 차르 푸틴러시아군을 출동시켜 조지아를 탈탈 털었다. 이후 조지아는 러시아와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스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다. 2011년 들어 개혁 지연과 부정부패 문제 등이 겹쳐 사카슈빌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다가, 경제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는 러시아가 수출입 1위인 나라라서 조지아로서는 러시아를 무작정 적대할 수도 없다.

2013년 10월 2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파 야당 후보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 제1부총리가 62%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는 좀 더 러시아에 다가가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정부 이래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을 조지아 국민들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번 대선 이후 조지아의 정치체제가 대통령 중심제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총리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대통령이 친러파로 바뀌었다고 조지아를 100% 친러국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7] 그러나 이전처럼 대놓고 반러 친서방 정책을 취하기는 어려워 보이며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출입 파트너인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듯하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유럽 연합과의 포괄적 경제협력협정을 맺었는데,[8]http://www.washingtonpost.com/world/europe/despite-past-quarrels-with-russia-georgians-are-returning-to-its-orbit/2015/07/01/40d64c24-1b49-11e5-bed8-1093ee58dad0_story.html 아무래도 이 나라가 러시아와 같이 가는 건 어려워 보인다. 특히 러시아가 최근 들어 국경 근체에 장거리 미사일들을 설치하고 군사 훈련을 자주 하자 불안해한 나머지 미국, 유럽 등과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조지아 내에서도 러시아가 침략해올지 모른다며 반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 경제[편집]

4. 사회[편집]

아르메니아와 함께 세계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인 만큼 조지아 정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며 사회적 영향력도 꽤 높은 편. 주변이 아랍, 터키이슬람 세력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슬람 세력의 끝없는 침략을 받아오면서도 1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신앙을 지켜 왔으니 당연할 법 하다.

2003년 장미 혁명 이후로 민주주의 원칙이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어 일반적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낮긴 하지만 주변 중동 국가들과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에 비해서는 민주화가 잘 되어 있는 편.

4.1. 장수촌[편집]

장수(長壽), 그러니까 긴 수명으로 유명한 캅카스 국가들답게 조지아에도 유명한 장수촌들이 존재한다. 캅카스 산맥 여기저기에 널리 퍼져 있는 장수촌들은 파키스탄의 훈자,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압하지야가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적당한 육체 노동, 조지아식 요구르트 등 몸에 좋은 음식들이 장수의 비결로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조지아는 요구르트 회사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데(...) 한국야쿠르트의 메치니코프는 아예 요구르트 병 바깥에 조지아 지도를 그려놓았다.

캅카스 산맥에 있는 여러 장수촌들의 이미지와 달리 조지아인의 평균 수명은 76.72세로 세계 중위권이다.

5. 군사[편집]

6. 문화[편집]

6.1. 언어[편집]

조지아어가 공용어이다. 조지아어조지아 문자라는 문자로 표기된다. 예전엔 러시아 제국소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도 쓰이지만, 소련 해체 뒤에는 사용자의 수가 줄어들었다.[9] 러시아어보다 영어의 사용 비중이 높지만, 55%의 주민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조지아 내에선 라즈어, 밍그렐리야어 등 다른 카르트벨리어족 언어들도 사용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어, 쿠르드어 사용자도 일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 종교[편집]

2002년 조지아의 국가 센서스에 따르면, 조지아의 인구는 4,371,535명이었다. 이 중에 기독교 인구는 88.6%인 3,872,099 명을 차지했다. 그 가운데서도 83.9%인 3,666,233명이 정교회 신자들이다. 가톨릭 신자는 0.8%인 34,727명, 유대교 신자는 0.1%인 3,541명이었다. 조지아 내에서 무슬림들은 9.9%인 433,784명으로 조사되었다. 기타 신앙은 0.8%인 33,468명이다. 인종적 조지아인의 94.7%가 정교회 신자이고 무슬림은 3.8%, 가톨릭 신자가 0.3%를 차지한다. 그리고 5% 정도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정교도는 주로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인 아자라 공화국에 분포한다.

조지아 사회 내에서 조지아 정교회는 국민 종교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지아 정교회의 확장이 조지아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압하스와 남오세티야 공화국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통치권 범위 내에서의 조지아 정교회 사제들의 사목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사목하고 있다. 이들의 사목 활동은 조지아 정교회의 승인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조지아 정교회 성당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면, 종종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즉 이 지역에서는 조지아 정교회와 다른 기독교 교파 내지는 다른 종교 간의 갈등보다는 동일한 정교회권에 속해 있는 조지아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의 갈등이 더 강하게 부각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은 러시아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이들 공화국에서 조지아 정교회의 재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동시에 조지아 정교회도 러시아 정교회의 활동을 승인하고 있지는 않는데, 이것은 두 나라의 국가적 관계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곳이 친서방이라 해도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특히 교황이 방문하였을 때는 환영식이 초라할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6.3. 스포츠[편집]

유럽이 다 그러하듯이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AC 밀란의 수비수로 뛰었다가 2010년부터는 제노아에서 활약 중인 카하 칼라제(კახა კალაძე)는 조지아의 축구 영웅이다. 2015년에는 선수 은퇴 뒤 모국에서 정치에 뛰어들어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딱 박지성 위치의 선수.[10] 여담으로 조지아의 축구 실력은 그저 유럽의 동네북 수준이다. 지못미. 하지만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을 1-0으로 꺾는 대이변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09년 이탈리아와의 지역 예선 도중 2골의 자책골을 넣는 흠좀무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칼라제에게 가정적으로도 불우했던 일이 있는데 2000년 초반, 친동생인 레반 칼라제가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당하는 사건을 당했다. 범인들은 결국 체포되었지만 동생은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실 이런 일은 유명 축구선수들도 많이 겪는 안타까운 일이다. #[11] 그 외 많은 선수들이 러시아 리그나 잉글랜드 챔피언쉽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관한 자세한 건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조지아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국가대표였던 노다르 쿠마리타슈빌리(ნოდარ ქუმარიტაშვილი)는 루지 연습도중에 사망하였다.

농구도 꽤 인기가 있는 편인데 NBA 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뛰고있는 자자 파출리아가 있다. (조지아 국민들의 몰표로 올스타 선발이 유력하다)

야구도 한다. 조지아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역도 스내치, 클린앤저크 총합 세계신기록이 이 나라 선수한테 생겼다. 2016 리우 올림픽 Lasha Talakhadze 역도 올림픽 기록

6.4. 음식[편집]

커피
아르메니아브랜디의 국가라면 조지아는 고급 와인 생산지이다. 조지아 와인은 종류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조지아 동부 카헤티 지역의 우수한 포도종 사페라비(Saperavi)로 만들어지는 조지아 와인의 대표 브랜드 사페라비와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무쿠자니(Mukuzani)가 있고, 또 르카치텔리(Rkatsiteli)와 므츠바네(Mtsvane) 포도종으로 만들어지는 치난달리(Tsinandali), 스탈린이 즐겨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흐반치카라(Khvanchkara)도 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와인이 나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지아가 와인의 최초 발생지라는 점은 흑해 연안에서 족히 8천년 전의 포도씨가 발견되어 입증이 됐다고 한다. 8천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던 셈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칠레 등 와인 강국들의 등쌀에 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12] 그래도 러시아가 잠시 동안 조지아 와인 수입을 금지했을 때 러시아에서 난리가 났다니 러시아 쪽에서는 많이 찾는 듯 하다. 조지아가 친서방 정책을 펼치며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와인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미녀들의 수다의 조지아 출신 출연자 타티아 마나가제가 미녀들의 수다에서 자국 와인을 홍보하는 등 수출노선의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질 좋은 와인 한 병도 현지 가격으로 오천원(!)이니 가게되면 많이 마셔주자.

나무파일:낀깔리.jpg

낀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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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츠바디.

빵이 주식이고, 대표적인 전통 요리는 고기만두 '낀깔리(ხინკალი)'와 치즈파이 '하차푸리(ხაჭაპური)', 고기 꼬치 구이 '므츠바디(მწვადი)', 콩과 허브, 감자등을 주재료로 만든 채소수프 '로비오(ლობიო)', 토마토와 가지, 감자, 양고기를 주재료로 조리한 '양고기 스튜 차나히(ჩანახი)', 송아지고기와 붉은고추, 양파를 넣어 끓여만든 쇠고기 수프 '차슈슐리(ჩაშუშული)' 등이 있다. 맛은 있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주로 짠 편이다. 전반적으로 동유럽 요리와 중동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에서 꽤 인기가 높고 대중화된 요리가 조지아 요리이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조지아 음식들은 하나 하나가 시와 같다."라고 극찬했으며 러시아 제국 시절과 소련 시절을 거치며 조지아 인들이 러시아로 유입되면서 요리도 함께 들어왔다.

한국에서 쉽게 맛볼수 없는 요리이지만 러시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 조지아 음식점이라고 한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모 조지아 요리 레스토랑이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으로 인정 받는 모양이다.

유럽 48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Thrillist의 평가에서 조지아는 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 4위에 올랐다.

음식에 전반적으로 고수를 많이 쓰는 편이다.

7. 외교 관계[편집]

역사적으로 외세 지배가 길어서 화약고나 다름 없다. 현재 조지아 내에는 압하스 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남오세티야 지역도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 남오세티야나 압하스 자치 공화국을 주권 국가로 인정한 나라하고는 외교 관계를 단절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이다. 게다가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다만 이 두 곳 모두 큰형님 격인 러시아가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조지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2010년 3월 15일에는 자국의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 공격을 가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뻥을 고의적으로 쳐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특히 전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고리 시 시민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 혼란은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직접 나선 뒤에야 수습되었다. 사고를 친 방송사는 "정국 혼란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의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PD가 잠깐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할 짓이 아니다.

이렇게 러시아에게 시달리기에,[13] 반대로 러시아에게 많이 의존하는 이웃 아르메니아와는 또 다른 갈등이 있다. 같은 정교회 나라이면서도 이웃 터키아제르바이잔의 BTK 철도선과 BTC 자원 파이프 라인 공사를 벌이는 것도 러시아를 견제하며 더불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셈이다. 이 두 공사가 이뤄지면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더불어 유럽에 대한 입지가 넓어질 전망이다.

참고로 터키와 국경이 닿아있는 남동부 지역은 아자라(აჭარა, Achara) 자치 공화국, 또는 러시아어식인 아자리야(Аджария)라고 부르는 곳이다. 인종적, 언어적으로는 조지아인과 흡사하지만 16~17세기 오스만 제국 통치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이 아자라인이다. 그러나 오랜 사회주의 통치와 독립 이후의 기독교화 정책 때문에 아자라인 중 무슬림은 이제 30%밖에 안 된다. 1990년대 이후 아슬란 아바시제(ასლან აბაშიძე, Aslan Abashidze)의 통치 아래 반(半)독립 상태에 있었지만, 아바시제는 2004년에 축출당하고 아자라 자치 공화국은 조지아의 영향력 아래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압하스와 남오세티아의 분리 독립 문제로 골치를 겪는지라 조지아 중앙 정부와 아자라 자치 공화국는 우호적으로 지내고자 노력하고 있다.[14]

러시아라면 이를 갈면서도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종교가 다른 이웃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또한 러시아 다음으로 수출입 2, 3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이기에 영향력이 크다. 게다가 조지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이웃 나라인데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사이가 나빠지면 경제적 타격이 크다. 아르메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라시아에 가득한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나르는 나부코 파이프라인이나 역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BTK 철도선도 조지아를 거쳐가거나 가게 될 전망인데 이는 조지아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주기에 조지아로선 이 공사 계획에 큰 몫을 차지하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와 사이 좋게 지내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별개로, 국민감정 상으로도 같은 기독교 국가라서 종교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비슷하게 터키와 러시아에게 서러움을 겪은 아르메니아와는 그럭저럭 지내는 편이다. 특별히 나쁘게 지내지 않고 그냥 적당히 사이좋은 정도. 아제르바이잔과 터키 눈치를 보기 때문인데 이 두 나라는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나쁘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유럽연합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연합 평균에 못미치는 경제 수준과[15] 지나치게 러시아와 가까운 위치 때문에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들 사이에서 조지아의 가입을 놓고 격론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구 소련권으로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마냥 반대하지는 못하는 상황. 2014년, 유럽 연합은 조지아와 연합 가입 첫 단계인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과는 1992년 수교하였다.[16]

IRI에 의하여 2016년 초에 실시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조지아인들은 대체로 친서방적인 성향이 강한 걸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조지아의 외교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52%는 '친서방적이되 러시아와의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라고 응답했고, 22%는 '오직 서방과의 관계만 유지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반면 '친러적이되 서방과의 관계도 유지한다'는 11%, '러시아와의 관계만 유지한다'는 4%에 그쳤다. 또한 응답자의 79%는 조지아의 NATO 가입을 지지하고, 응답자의 85%는 유럽 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조지아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을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서는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36%), 미국(34%), 유럽 연합(31%), 우크라이나(27%)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반대로 '조지아의 가장 중대한 위협국'을 묻는 질문에서는 러시아(71%)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6 조지아 총선에서 친서방 집권당 조지아의 꿈이 48%를 득표하여 승리하였다. # 더 강한 반(反)러 성향의 국민운동연합이 27%를 득표하였고, 친러파인 조지아 애국자 연합은 5%를 득표하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굉장히 좋다! 비자 없이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 체류가 가능한 국가들중 하나다. 그 중 체류기간이 굉장히 긴데 최장 360일동안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웬만큼 한국과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나라들이라도 대부분 90일이나 60일, 30일등에 그친다는걸 감안하면 굉장한 조치이다. 근 1년동안 비자 없이 체류가 가능한 외국 국가는 사실상 조지아 한 나라 밖에 없는 셈이다.

8. 여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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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이었기 때문에 특히 자유진영의 일원이었던 대한민국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지만 소련의 일부였던 시절부터 흑해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캅카스 산맥의 빼어난 경치와 깨끗한 자연, 적당한 날씨와 다양한 먹거리로 휴양지로서 유명했으며 소련 고위층의 별장이 다수 남아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하나로서 문화유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한 수도 트빌리시의 구시가지도 고풍스럽다. 그래서 동유럽이나 러시아에서는 꽤 인기있는 여행지다

우쉬굴리(უშგულ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곳[17]에 위치한 거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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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지정 여행경보제도에 따르면 압하지야남오세티야라는 미승인국이 통치하는 지역은 여행자제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남오세티야 전쟁이 벌어지는 등 불안정한 치안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의외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순위에서 싱가포르 등을 제치고 8위에 랭크되는 등 세계의 화약고 취급받는 캅카스 지역에서는 치안이 가장 안정된 편이다. (한국은 4위이다.)[18] 재미있는게 이 괴리감은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 대한민국 역시 치안이 최상위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존재 때문에 불안정한 국가라는 선입견을 가진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앞서 설명됐듯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360일 무비자라는 관대함을 자랑한다. 물가도 저렴하고 곳곳에 눈돌아가는 자연경관들도 있으니 독특한 여행지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9. 상징물[편집]

9.1. 국호[편집]

조지아의 자국어 국명은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sa(სა)+kartvel(ქართველ)+o(ო), 즉 '카르트벨리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카르트벨리'란 조지아에 거주하는 민족(조지아인)을 뜻한다.[19] 영어식으로 쓰면 Kartvelia가 되는 셈. 만약 이 나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한번쯤 사카르트벨로라고 불러주자. 꽤 많이 좋아할 것이다.

조지아(Georgia)라는 영어 국명은 기독교 성인인 성 조지(Saint George)의 이름을 딴 것이다.[20] 한때 , [21], [22] 등지에 러시아어 표기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 나라가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나라는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루지야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고, 차라리 영어식인 조지아를 선호한다.[23] 한국에서는 원래 러시아어식 음차를 따라서 '그루지야(Грузия)'라고 표기하였으나, 이 나라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러시아어식 대신 영어식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외교통상부는 외래어 심의[24]를 거쳐 외교통상부 공고 제2011-26호(2011. 3. 22.)에서 국명 ‘그루지야’를 ‘조지아’로 변경했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할 것. 러시아와의 감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 현지 르포에서도 대학생이 국호를 러시아어가 아닌 사카르트벨로나 차라리 영어식인 조지아로 해 주면 좋겠다고 한다.

조지아의 대외적 국명인 Georgia는 미국조지아 주와 철자가 같기 때문에 영어권(특히 미국..)에서는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특히 2008년 러시아군이 조지아에 진주했다고 기사가 났을 때, "난 조지아 주에 사는데 뉴스에서 러시아군이 쳐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탱크나 전투기나 군인은 단 한 명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냐?"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이며, 이는 정말로 미국 야후의 지식인에 올라온 것이다(...). 영어명이 비슷한 탓에 이런 만화도 있다.(...)

9.2. 국가[편집]

10. 조지아 출신 인물[편집]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향(고리 시) [25]. 많은 사람들에게 까이지만 조지아 내에서의 평판은 좋은 듯 하다. 의외로 스탈린은 골수 러시아인이 아니다.[26] 하지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러번 고향을 털어먹은(…) 전력이 있는지라[27]고향 평판은 거의 50:50. Gori 시에 스탈린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Gori에서 스탈린과 관련된 것을 빼면 볼 것이 없다.

또한 전 대통령인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도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외무장관까지 했던 사람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주장한 소련의 중앙유럽 위성 국가에 대한 불간섭 원칙도 사실 이 사람이 주도한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과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에 크게 기여를 한 사람이다. 소련 붕괴 후 조지아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정, 부패로 민심을 잃어 2003년, 장미 혁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28]

한국에서는 셰바르드나제가 한국과 소련 수교 서명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셰바르드나제는 한소 수교가 북한을 자극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 북한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를 김일성이 푸대접 하게 되고 이에 열받은 셰바르드나제가 한소 수교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되면서 수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라브렌티 베리야도 조지아 출신이다.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도 조지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을 지금은 '마야콥스키 마을'이라고 불린다.

조지아인들의 성씨엔 -슈빌리(შვილი), -(드)제(ძე)같은 접사가 많이 붙는다. 의미는 둘다 '~의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위의 축구 선수 칼라제가 Kala'dze'이며, 이오시프 스탈린의 조지아식 이름도 이오세브 주가슈빌리(იოსებ ჯუღაშვილი)이다. 만화 사키 -Saki-넬리 비르살라제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다. 이 캐릭터의 스펠링은 Nelly Virsaladze(ნელი ვირსალაძე). -dze가 붙으면 조지아 혈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맹약의 리바이어던의 등장 히로인 아나스타샤 르바시빌리도 조지아 출신이다.

NBA의 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활약은 아니고 그냥 뛰고 있는하고 있는 자자 파출리아도 조지아 출신이다.조지아 국민들의 대단한 지지를 얻고 있다
[1] 사실 러시아도 추운 나라라는 일반적 편견과 달리 조지아와 흑해/카스피해에 면한 남부는 따뜻하다. 조지아와 가깝고 최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소치의 경우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시보다도 연평균 기온이 높은 곳이다.[2]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스스로의 정체성도 서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 찾는다. 조지아 왕국은 자신들 스스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유럽의 방파제'라고 불렀다.[3] 국민 대부분이 정교회 신앙을 가지고 있다.[4] 조지아 문자 자체가 그리스 문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정도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인과 혈통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생활양식이나 풍습도 서아시아 보다는 유럽과 유사.[5] 당연히 이베리아 반도와는 다른 지역이다! 그래도 같은 이베리아라고 조지아 쪽에선 나름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고 실제로도 라틴그리스 종족은 여기서 온 걸로 추정된다.# 또한 이베리아 반도와 구별하기 위해 이 지역을 카프카스 이베리아 혹은 동(East)이베리아라고도 한다.[6] 문화,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중동 이슬람 세력에게 복속되느니 문화, 종교적인 공통 분모가 좀 더 큰 러시아에 접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데... 점점 러시아에 예속되어져 갔고 러시아의 지배도 그다지 자비롭지는 않았다.[7]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하여 국방권과 외교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에, 대통령 중심제에 의원내각제를 가미했다고 보면 된다.[8] 러시아는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다.[9]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배제 정책이 이어졌고 2008년에 있었던 남오세티야 전쟁의 영향으로 러시아어 방송국들이 1곳을 제외하고 폐쇄당하는 등 강력한 정책이 실시되었다.[10] 우선 한 팀에서 오래 뛰었을 뿐더러 나이대도 대충 비슷하고 각자의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으로 뛰고 있다.[11] 에릭 라멜라의 경우도 이런 일을 당했는데 황당하게도 에릭 라멜라의 동생인 엑셀 라멜라를 납치한 납치범들이 요구한 몸값 12만원(...)을 지불하자 풀려났다.[12] 이는 조지아가 과거 소련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지아 와인이 공산권 국가들 이외의 국가들에 많이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시절, 자유진영에서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쳐줬다면 공산진영에서는 조지아 와인을 최고로 쳐줬다.[13] 스탈린의 유일한 동상이 고향 조지아에 남아 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많은 러시아인을 죽인 공을 기려[14] 남오세티아와 압하스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러시아의 지원으로 미승인국가로나마 분리독립하여 조지아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자라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오세티아, 압하스등과 달리 조지아-러시아 국경 지역과 멀리 떨어진 조지아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조지아 최대 항구도시인 바투미가 아자라 영내에 속해 있었기에 압하스가 독립하면서 흑해 해안 지대 절반을 사실상 상실한 조지아로서는 흑해로 통할 수 있는 나머지 해안 영토들이라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자 아자라의 이탈 시도를 저지해야 했고, 결국 조지아와의 싸움에서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15] 그리스 경제위기 이후 유럽 연합은 연합 평균에 못 미치는 경제력을 지닌 국가들의 신규 가입에 극도로 자제하는 상황이다. 조지아는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경제가 상당히 낙후된 편에 속한다.[16] 북한과는 1994년.[17] 해발 2100m[18] 10위부터 싱가포르, 바레인, 조지아, 룩셈부르크, 몰타, 아랍 에미리트, 대한민국, 홍콩, 대만, 일본 순이다.[19] 비슷한 예로 '밍그렐리아인의 땅'을 의미하는 '사메그렐로(სამეგრელო, samegrelo)'라는 지명이 있다. 다만 조지아어로 모든 지명을 'sa-민족명-o' 같은 식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현대 조지아어로는 -et’i(ეთი)나 -ia(ია) 돌림으로 쓰기도 한다. 이를테면 에스파냐는 에스파네티(ესპანეთი), 포르투갈은 포르투갈리아(პორტუგალია).[20] 성 조지(게오르기우스)는 조지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래서 조지아의 국기를 보면 잉글랜드의 국기와 비슷하게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조지아의 국장에는 용을 잡는 성 조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21] 대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러시아어의 음차인 格魯吉亞(Gélǔjíyà, 거루지야), 중화민국홍콩에서는 영어 음차인 喬治亞(Qiáozhìyà, 차오즈야)로 표기한다. 홍콩광동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중국과 별개 체제여서 중국보다는 대만의 표기를 따르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홍콩의 표기가 대만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다.[22] 2014년까지 일본에서는 러시아어의 음차인 グルジア(구루지아)를 사용해 왔지만 2015년부터는 영어 음차인 ジョージア(조지아)를 사용하고 있다.[23] 소련의 주도권을 잡은 게 러시아이고 독소전쟁 당시의 소련 소수민족들의 나치에 대한 협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인과 다른 소수민족 간의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에 때문에 조지아가 아니라도 구 소련권 국가 국민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24] 정부ㆍ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실무소위원회 심의에서 "그루지야 공화국의 새로운 국명을 수용할 경우 영어 'Georgia'의 바른 한글 표기는 ‘조지아’임을 결정"했다. (심의 확정안(2010. 6. 21.) 참고)[25] 아돌프 히틀러는 스탈린을 늘 '조지아의 백정놈' 이라고 욕했다고 전한다.[26] 스탈린의 말은 약간 불완전하여 항상 후음성의 조지아어 억양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27] 처음에는 조지아 민족주의 세력에 동조한적이 있었기는 했지만 집권 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간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조지아 민족주의 세력을 몇 차례에 걸쳐 갈아엎은 전적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조지아인들이 희생당했다.[28]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외무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조지아 공산당 서기였을 때 부정부패 척결로 소련의 신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