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높아졌고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의 존재로 인해 주체사상이 뿌리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실 이 시기엔 단순히 정부에 쓴소리하는 수준도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때였는데 주체사상이 뿌리내릴 일이 있었던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다만 일부 학자들이나 소수의
운동권들 사이에서 존재 자체만 암암리에 전해지는 수준이었다.
남한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다시 말해 김일성과 그 일파를 추종하는 재야 운동권은 소수지만 언제나 존재했긴 했다. 이는 남한 운동권의 흐름상 사회주의가 유입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크게 확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1970년대까지의 운동권은 오로지 매판자본 비판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
[79] 1970년대가 다 지날 때까지 운동권들의 입장은
김일성의 항일 운동 경력이나 정통성을 인정하는 정도였지 김일성의 학문적인 성과라든가 노작들을 숭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한국의
스탈린 정도로 평가하는 수준.
하긴 주체사상 자체가 스탈린주의 표절에 가깝다 과거 20세기 국제주의 운동들이
소련을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주의 국가'라고 실드치던 모습과 비슷하다.
[80] 이 시기의 북한 관련 조직 사건은 통일혁명당 사건이 있다. 이 당시에는 북한의 남파
간첩과 연계가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가 강력한 반공 체제로 전환되면서
망했어요.
아무튼 이 시기의 운동권들은 주체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주체사상이 발명되기 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도 있으니 당연하지80년대 들어 주체사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생적 종북 세력이 등장한 것. 이들은 "미지의 세계"였던 북한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 반, 동경심 반으로 북한 방송을 들으며 북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생각보다 북한이 상당히 개발된 현대적인 국가
[81]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반공주의 교육에 대한 반동으로 주체사상으로 전환하게 된다.
까가 빠를 양산 이들은 대학 내 지하조직들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기존의
민족주의적 기풍과 결합한
NLPDR 이론이 80~90년대 운동권을 풍미하였으며 이들을
주사파라고 한다. 이들은 앞서 말한 대로 북한과의 연계가 없었고 북한과의 연계는 나중이 되어야 생겼다고 한다. 80년대 소위 '강철서신'으로 불리우는 일련의
불쏘시개 저작들로 주체사상 도입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김영환조차 91년이 되어서야 실제로 북한에 가봤다고 한다. 주사파와 북한의 연계가 얼마나 없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일화로 주사파에게 고정 간첩이 접근했는데 '
우리의 북한쨩이 이렇게 치졸하게 남파 간첩 같은 거 보낼 리 없다. 안기부의 간첩이다'라며 이 간첩을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에 신고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북한 관련 저작물이나 라디오 녹음 테잎을 돌려 들으면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것(…). 이들의 존재에 북한 당국도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건은
민혁당 사건 참조.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주체사상은 강력한 '사상 무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이는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고 소 뒷 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거나 다름 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일단 그 내용은 실존주의, 낭만주의 짝퉁이지만 다른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체사상의 존재는 국민을 억압하는 군사독재정권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에게 상당히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북에서 자기들 스스로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선전하면서 기존에 사회에 깔려 있던 '
민족주의 자주의식'과 쉽게 호응을 이룰 수 있었다. 즉, 대학생들이 "우리 민족만의 사상이 있었네?"라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 물론 실상은 정신승리적 낭만주의의 짝퉁에 불과하여 별다른 값어치가 없지만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과 어릴때부터 주입식으로 키워진 반일의식, 민족주의 정서가 어우러지면서 민족자주를 외치는 북한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 결과 학생운동이 결과 민족주의의
주화입마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승리적인 낭만주의가 가지는 보편적인 호소력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론은 시크릿 류의
자기개발서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성(?)은 확보하고 있다. 현대, 특히 여가가 많은 대학생은 공허함을 느끼기 쉽고 뭔가 그럴듯한 소리로 철학적 빈곤함을 채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서면서 민주노동당 당내 주사파들의 횡포를 분당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흠좀무.
주사파는 현재도 존재하는 걸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19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세력이 꺾이기 시작하여 97년 두 차례 구타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한총련에서 많은 단체
[82]가 떨어져 나가면서 현재는 세력이 미미한 상태긴 하다. 게다가 남한 경제가 발전하고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주사파가 전향을 했으며 남아있는 주사파들도
자주민보급이 아닌 이상 주체사상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위에 나온 주체사상 도입의 선구자 김영환도 북한을 다녀오곤 북한의 모습에 실망하곤 전향하여
뉴라이트[83] 활동을 하고 있다고.
참고로 앞서 언급했다시피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황장엽이 탈북한지라 북한으로선 그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듯. 실제로 2010년 4월 20일 간첩이 황장엽을 암살미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점은 황장엽의 주체사상도 남한 쪽에서 보기엔 그다지 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84] 그는 남쪽으로 내려온 후 "3권 분립을 넘어서 인민의 정치 향상을 돕는 부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발언이나 사회유기체설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여러 차례 하면서 자신의 주체사상도 결국 김일성이란 한 개인을 엘리트 층으로 바꾼 차이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비판을 샀다.
여담이지만 흔히 남쪽의 진보 세력들을 한데 묶어서
주사파라고 보는 경향이 주로 보수 세력 사이에 만연한데 물론 여전히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는 자기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엄청난 병크에 속한다. 그러니 아무나 붙잡고 주사파라고 말하는 병크는 저지르지 말자. 오히려 주체사상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정치,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주장하는 진보, 좌파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진보 진영에서 자초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총선에서만 해도 노회찬, 유시민, 심상정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보 인사들이 사상의 계열이 달라서 갈라져 나온 뒤에 또다시 진보 세 확장을 위해 NL계열이 득세했던 민주노동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 또한 통합진보당과 연대하여 총선을 치른 탓에 진보 세력이 주사파와 한 묶음으로 인식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뒤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은 결국 NL과 격렬히 갈등을 겪다가 폭력사태 이후 정의당으로 다시 갈라져나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