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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23
차우찬(車雨燦 / Woo-chan Cha)
생년월일
신체
185cm, 93kg
출신지
학력
군산초 - 군산남중 - 군산상고 -(대구사이버대학교[1])
포지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6 ~ 2016)
LG 트윈스 (2017~)
등장곡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5번
곽용섭(2003~2005)
차우찬(2006~2007)
곽용섭[2](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3번[3]
김상준(2007)
차우찬(2008~2016)
LG 트윈스 등번호 23번
최경철(2014~2016)
차우찬(2017~)

1. 소개2. 별명3. 프로 1기, 삼성 라이온즈 시절4. 프로 2기, LG 트윈스 시절5. 투구 스타일6. 연도별 성적7. 야구 외

1. 소개[편집]

LG 트윈스의 좌완 투수.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06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본래 삼성은 1라운드에서 차우찬이 아닌 경희대학교의 좌완투수 박정규[4]를 지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명 당일 선동열 감독 본인이 직접 스카우트 팀에 차우찬을 뽑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2차 1순위에서 차우찬을 지명하게 되었다.[5] 군산상고 3학년 시절 급작스럽게 체격이 자라면서 밸런스는 아직 맞지 않지만, 잠재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는 판단 하에 삼성은 차우찬을 2차 1순위에서 지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성환, 오승환처럼 2차 1순위에서 또 재미를 보게 된다.

큰 체격과 거친 폼에서 나오는 150km/h을 넘나드는 강속구가 장점으로 꼽히고, 2013년 5월 기준 그가 보여 준 가장 좋은 시즌인 2010년에는 이런 장점이 대폭발하여 장원삼과 함께 삼성의 좌완 원투펀치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2011 시즌 이후로 구속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6] 기어코 2012년에는 크게 부진하여 차르 봄바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불펜으로 전향 후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삼성 왕조에 큰 공을 세웠다. 2015 시즌 다시 선발로 복귀 후, 제구력과 구위는 기복을 많이 타지만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 면모를 보여주면서 확실한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해주었고, 2016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가 4년 총액 95억에 FA로 영입하게 된다.

2. 별명[편집]

  • 차크라이
  • 엘차우
  • 차차: 차우차우의 줄임말로 여성팬들이 애용하는 애칭. 파란망토 차차
  • 개씹차: 줄여서 씹차. 차우찬의 별명 중 가장 유명했던 별명. 현재도 심심하면 불리는 별명이다. 가끔 차우찬이 흔들리면 '지금 던지는건 차바시아가 아니라 개씹차다'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야갤과 삼갤은 한 이닝에도 개씹차와 차바시아가 뒤바뀐다. 잠깐 이거 누군가가 떠오르는데[7]
  • : 차우찬이 최악이다의 줄임말. 2010년 후반기 이후 봉인.
  • 겨울우찬: 2009시즌 전까지의 별명. 스토브 리그에서는 활약한다는 기사가 자주 나옴에도 막상 시즌 들어가면 감감무소식이었기에 이런 별명이 나왔다. 역시 2010년 후반기 이후 봉인.
  • 삽우찬: 2016년 7월 12일 경기에서 포항구장 직원들이 마운드 정비를 제대로 못하자 답답한 꼴을 보다 못해 본인이 삽을 들고 마운드 정비를 한데서 붙은 별명. 참고로 차우찬은 이날 선발투수 였다. 구장관리도 개판에 직원들까지 한심한 꼴을 보이는 바람에 선발투수가 공을 던지다 말고 삽질을 했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나오던 제 2구장 경기를 없애자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한동안 갑론을박이 오갔다. 여담으로 차우찬은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 차르 봄바#: 기원은 혜르노빌과 같다. 2012시즌에 붙은 별명. 여담으로 삼성에는 최형우라늄, 채르노빌, 배영수소폭탄, 권핵, 백린탄 등 유달리 핵과 관련된 별명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8] 그리고 핵무기들어느 재밌는 곳에 수출까지 했다 최근엔 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 류우찬: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3 WBC 국가대표로 발탁되자 붙은 별명. 참고로 류현진+차우찬이 아니라 류중일의 아들이다라는 뜻의 류우찬이다. 네덜란드전의 화려한 불지르기와 이 때 차우찬의 실점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1라운드 탈락의 주요 원인이 된 것 때문에 야갤에서는 본명보다 자주 불리는 이름이 됐다.
  • 기부우찬: 5천만 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해서. 참고 그런데 기부한 단체의 대표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 차르빗슈: 널리 알려진 별명은 아니고, 소수 삼성팬이나 삼갤러들이 잘할때 불러주는 별명. 그마저도 차쇼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묻혔다.
  • 차쇼: 2013 시즌 CC 사바시아가 폭망하면서 대체된 별명. 개씹차와 함께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다. 못 하면 개씹차, 잘 하면 차쇼.
  • 차암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 12.2이닝 202구 연투를 펼치고 난 뒤 차동원, 차종석이라고 부르다가 누군가가 최동원의 별명인 참치에서 착안해 부른 게 빵 터져서 별명으로 자리잡았다.

3. 프로 1기,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3.1. 2006~200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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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데뷔 초기의 모습. 오른쪽은 정현욱. 2007년 시즌 후 마무리 훈련 때.

2006년 4월 9일 롯데전을 통해 1군에 데뷔하였다. 패스트볼 구위 하나만큼은 장원준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 선발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선동열 특유의 불펜야구 때문에 중간계투로 썩다가 2009년 팀의 선발진이 무너지기 일보 진적인 상황이 닥쳐서야 안지만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안지만과 비슷하게 불펜에선 철벽이나 선발에선 조금 흔들리는 감을 보여줬는데, 팀에 좌완이 없다 보니 선동열 감독은 일단 차우찬을 선발로 낙점하기로 한 듯…했으나 조금 급하니까 바로 불펜으로 돌렸다.

2009년 6월 2일 히어로즈를 상대로 데뷔 4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뒀다.

이후 한동안 삼성의 선발 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선발로 나오기만 하면 털리더니 곧 중간계투로 강등당했다. 게다가 중간계투로 가서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못 집어넣으며 수많은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특히 윤성환이 차우찬 때문에 승수를 많이 날렸다. 이로 인해 촥, 차션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 전까지 삼성의 잉여 불펜 3인을 지칭하던 박성훈까지 다해지면서 조원수박차로 업그레이드되었다(…).[9] 박민규도 첫 승을 차우찬 때문에 날리고 만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부진. 데뷔 후 지금까지 쭉 중간계투로만 던진 선수를 팀 전력이 무너져갈 때가 되어서야 땜빵 선발로 집어넣고, 이후에도 급할 때마다 보직을 이동시킨 선동열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누구나 바로 류현진처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교선수 한 명을 믿을 만한 선발 투수로 키우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 된 김광현조차 데뷔 시즌 초반에는 기대에 비해 부진하다 말미에서야 각성을 했다. 차우찬의 실패는 구위 좋은 젊은 투수를 장기적으로 키우는 대신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불펜에 쑤셔박은 선동열식 야구의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통념이 있었으나, 사실 선동열 감독 아래에서 젊은 투수 중 차우찬만큼 선발 기회를 많이 받은 투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선발로 쓰기도, 불펜으로 쓰기도 갑갑했던 것은 사실.

선동열이 바뀌지 않는 이상 팀 메이트 백정현, 이우선은 물론 신인지명으로 입단한 젊은 투수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10]

3.2. 2010 시즌[편집]

그러나 2010년에 혁명이 일어났다.

2009년처럼 중간계투로 시작하다가 다시 선발로 들어왔는데, 6월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355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고 7월 6일에는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7월 18일 대구 LG전에서는 생애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승리 후 인터뷰에서 울먹거리기도. 6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KBO 투수 전체 1위! 이 완봉은 2005년 배영수의 완봉승 이후 삼성 투수로서는 무려 5년 만의 완봉승이다!!

SK와의 페넌트레이스 최종전(겸 양준혁의 은퇴경기)에 선발 등판해 7.1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상대 선발 김광현이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는 바람에[11] 패전투수가 되어 승률왕에서 멀어지나 했는데, 9월 26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등판, 9이닝 1실점 11K의 절정투구를 펼치면서 완투승으로 10승을 기록, 역전 승률왕에 등극했다. ERA 역시 2.14로 류현진에 이어 이 부문 2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규정이닝에 6.2이닝 모자라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0 시즌 각성을 단순한 운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그 많던 피홈런이 이 해는 5개로 줄어들었고, 탈삼진 페이스는 꾸준히 가져가면서 볼넷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평균자책점은 2점대에다 WHIP은 1점대 초반.

차우찬 본인은 밸런스를 드디어 익힌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팬들은 제대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했는데,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선동열의 꾸준한 육성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이 대다수여서 차우찬과 선동열을 묶어 까던 안티들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LG 상대로는 3승(1완투/1완봉승) 무패 32.1이닝 4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0.28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는 9경기에 출장해 30.1이닝 동안 3승 1패, 평균자책점 1.19로 정규 시즌 1, 2위인 SK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며 차우찬의 대 SK전 호투는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포텐 폭발로 인해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지만,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4회 초 무사 1루에서 김동주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고, 스코어 2:2인 5회초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만루를 채운 상태에서 강판되어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정인욱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해서 차우찬은 이날 4이닝 78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5볼넷 4탈삼진 5실점 5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8회 말에 4점을 뽑아 스코어 5:6으로 재역전승하여 차우찬은 패전을 면했다. 승리투수는 해병대장.

10월 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7번째 투수인 정인욱이 11회말에 난타당하자 차우찬이 등판을 자청하며 몸을 풀었으나, 선동열 감독은 오늘만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를 등판시키지 않았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1회 초에 2점을 뽑고도 11회 말에 3점을 내줘 스코어 8:9로 재재재역전패당했다.

차우찬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6.2이닝 10피안타 1피홈런 7볼넷 7탈삼진 10실점 10자책점 평균 자책점 13.50으로 완전히 망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1이닝 86투구수 6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3탈삼진을 기록하며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최정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2피홈런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다. 이날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여 차우찬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차우찬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7.2이닝 8피안타 2피홈런 2볼넷 1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 자책점 3.52,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스윕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차우찬은 2010년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14⅓이닝 18피안타 3피홈런 9볼넷 1몸에 맞는 공 12탈삼진 13실점 13자책점 평균 자책점 8.16, 1패를 기록했다.

3.3. 2011 시즌[편집]

2011 시즌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으로부터 1선발로 낙점받았다. 2011년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2011 시즌 초반에 활약하다 중반에 이르른 지금 아무래도 풀 타임 선발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기가 팀의 에이스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6월 16일부터 부진하였다.

8월에는 팔꿈치 통증을 느껴 잠시 2군에 있었다.

9월 27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지만 피안타율 0.273로 작년의 0.232에 비해 증가한 데다, 피홈런도 22개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17개나 증가했다. 게다가 경기 내용도 갈 수록 안 좋아져 삼팬 사이에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롱 릴리프로 기용하거나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반전의 스토리를 쓰게 되는데….

3.3.1. 2011년 한국시리즈[편집]

2011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류중일 감독의 선발 1+1 전략에 따라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5회초에 선발 투수덕 매티스의 다음 투수로 등판해 3이닝 36투구수 5탈삼진 퍼펙트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신명철의 2타점으로 팀이 0:2로 승리하여 차우찬이 승리투수가 되었다. 한 달 여간 쉰 휴식이 효과가 있었던지 투구수의 2/3가 넘는 공이 속구였으며, 대부분의 공이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였다. 그리하여 1차전 MVP로 선정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이기던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104투구수 5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위기에서 상대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우며 무려 7삼진을 기록, 결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이 이 날 강봉규의 홈런으로 스코어 0:1로 승리하여 차우찬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었고, 삼성은 4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였다.

차우찬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0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2탈삼진 무실점 2승을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시리즈 MVP도 충분히 노릴만한 호성적이었으나 끝판왕의 위엄(4경기 3세이브)에 밀려서 아쉽게 MVP는 되지 못했다.

2011년 시즌을 보내면서 1선발로는 다소 아쉬운 활약을 보이긴 했어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본인의 활약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2011 시즌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2010년 포스트시즌의 부진도 단숨에 만회하는데 성공했고, 2012년의 활약도 기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3.4. 2012 시즌[편집]

Nuclear launch detected

방사능에 피폭되기라도 한 건지 볼넷이나 피홈런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며 심하게 부진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져 류중일의 양아들 소리를 들었다. 이 해 6승 7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 해 부진했던건 다 이유가 있었다.

차우찬/2012년 항목 참조.

3.4.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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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고, 정우람이 예비 엔트리에도 들지 못해 상근으로 입대하면서[12]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뜬금없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미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전례가 있기에 감독은 물론이고 구단마저 반대했으나 양상치양상문한용덕 코치의 추천으로 강영식, 박정진, 강윤구, 박성훈, 이명우 등의 경쟁자[13]를 제치고 결국 차우찬은 대표팀에 승선했다.[14]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에 공개된 대한민국의 핵무기.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1차전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7회초, 손승락이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2루 위기에 몰리자, 차우찬은 좌타자 로저 베르나디나[15]를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다. 하지만 올라오자마자 핵실험베르나디나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며 2루주자를 불러들였고, 곧바로 정대현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호주전과 대만전에는 등판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면서 결국 네덜란드전 1피안타가 차우찬의 유일한 WBC 투구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2012 시즌 성적도 안 좋았고 부상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뽑았지만, 차우찬 역시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던 것만큼 애초 선발자체가 무리수였다.

3.5. 2013 시즌[편집]

시즌 초반까지는 여전히 2012시즌의 모습을 보여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5월 중순 이후부터 구속이 오르고 공에 힘이 붙으며 6월까지 롱릴리프로써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7월 말부터는 모 외국인 투수관광객, 사기꾼 때문에 선발로 전환하여 괜찮게 활약, 2011시즌 이후 2년만에 1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정말로 미친 투구를 보여주었다. 1984년의 최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2006년의 배영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역투를 펼쳐 삼성의 통합 3연패와 V7의 큰 주역이 되었다.

차우찬/2013년 항목 참조.

3.6. 2014 시즌[편집]

충격과 공포의 혹사에 완전히 망가져버린 시즌
류중일의 삼성감독 커리어에서 범한 최악의 오판
순수 불펜으로만 82이닝을 소화한 대표적 노예[16]

차우찬/2014년 항목 참조.

3.6.1. 인천 아시안 게임[편집]

24일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4이닝을 소화한 선발 양현종에 이어 5회에 등판해 2이닝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워낙 박빙이어서 등판하지 않았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결국 1경기만 등판하고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3.7. 2015 시즌[편집]

개인 시즌 최다승 달성
2015년 탈삼진

1년 만에 다시 선발투수로 복귀한 시즌. 시즌 탈삼진왕, 개인 최다승 등 얻은 것이 많은 시즌. 나아가 한국시리즈, 프리미어 12에서도 맹활약하며 여러모로 좋은 시즌을 보냈다. 피홈런왕 타이틀은 차지하지 못했다.

차우찬/2015년 항목 참조.

3.8. 2016 시즌[편집]

윤성환하고 더불어 이들밖에 못믿어 콤비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

시즌 후 FA로 풀렸고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의 삼성을 떠나버린 4번타자의 지역드립 언플로 삼성의 금지어 목록에 오르고 말았다.[17] 하지만 후에 삼성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었고, 삼성에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날부로 금지어 목록에서 사라졌다.

차우찬/2016년 항목 참고.

3.9. FA[편집]

김한수 신임 감독이 취임식에서 최형우랑 차우찬을 잡겠다고 했으며 뒤이어 구단에서도 잡겠다고 공언했었다.

일본의 3개 팀과 협상한다는 기사가 떴다.

해외진출 희망 차우찬, 국내 잔류하면 LG 간다

12월 6일, LG 트윈스와의 계약에 잠정적으로 합의 했다는 기사가 떴다. 거기다 삼성이 차우찬에게 세 자리를 제시했다고 시인했는데 협상 내용은 보통 비공개로 하는 걸 생각해보면 롯데가 장원준을 놓치자 대놓고 88억 불렀다고 공표해서 우린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선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우규민의 삼성행이 발표되었는데,[18] 삼성은 얼마 전 이원석 영입을 발표함으로써 최형우와의 협상이 파토났다는걸 간접적으로 알린 적이 있고, 최형우는 진짜 KIA로 갔다. 사실상 차우찬이 떠난다는 데에 쐐기를 박은 셈.

일단 양상문의 인터뷰에서도 차우찬 영입을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걸 보면 LG가 영입을 시도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8일에는 삼성을 떠나 메이저 진출 또는 KBO리그 타 구단 입단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송구홍 단장은 “삼성에서 차우찬에게 제안한 내용을 공개해 당혹스럽다. 원소속팀에서 100억 원 이상 불렀으니 우리는 150억 원을 배팅해야 한다는 뜻인가” 라고 한 것으로 봐서, 이것이 차우찬의 잔류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영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형우의 KIA행 소문이 진짜가 된 것 처럼 차우찬 역시 12월 14일 LG와 4년 95억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또다시 소문이 현실화돼 버렸다. 결국 우규민과 차우찬이 서로 트레이드된 것이나 다름 없어졌다.

차우찬이 삼성을 떠나 LG로 이적한 이유에 대해 차우찬 측은, 11월 27일 만났을 때만 해도 삼성의 조건이 LG보다 좋았지만 이날 이후 삼성은 단 한번도 차우찬과 재미팅을 가지려는 모습을 전혀 안 보여 차우찬의 에이전트는 메이저리그 쪽을 알아보려 윈터미팅이 열리는 12월 미국에 출국했고, 이후 삼성이 우규민을 영입한 것을 보자 서로 작별할 것 같다고 예감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삼성 구단으로부터 100억[email protected]를 준비했다는 뉴스에 정말 협상 지속 의사가 있다면 저런 기사가 나오겠냐며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19]

송구홍 단장은 축소발표 아니냐는 의혹에 펄쩍 뛰면서 하늘이 두쪽나도 95억에서 한푼도 추가되지 않았다. 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인터뷰에서 옵션 15억이 별도로 있음을 제 입으로 불면서 역으로 110억 설이 팩트임을 인증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12월 28일 올라온 인터뷰에서 본인 입장을 밝혔다. 대략 삼성과 항상 좋은 관계였고 대우도 더 좋았지만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서 일부로 대우낮은 해외계약 (메이저 스플릿계약)등을 추진했으나 앞서간 의 충고와 계약조건(WBC 출전포기 등등)으로 새로운 팀에서의 국내잔류를 택했다고.

4. 프로 2기, LG 트윈스 시절[편집]

4.1. 2017 시즌[편집]

LG의 새로운 에이스 차우찬
팀의 새로운 닥터 K[20]
차크라이
이맛에 현질합니다
그리고 팀 타격에 고통받는 시즌 우찬아 걱정마 울어도 돼 사실 타선은 식물이거든 삼성에 남을걸 그랬나봐요
7경기째 무승 실화냐

삼성을 떠나 LG로 이적한 첫 시즌.

차우찬/2017년 항목 참고.

5. 투구 스타일[편집]

어찌보면 최고의 금강불괴

간단하게 정리하면 삼진 많이 잡고 볼넷 많이 주고 100개 넘어가면 공이 좋아지는 투수. 2015년엔 여기에 홈런 많이 맞는 투수까지 추가되며 괴이하기 짝이 없어졌다. 2015년 기록을 보면 탈삼진은 194개로 1위를 차지했는데 피홈런은 28개로 2위를 차지했으며 볼넷도 74개로 4위를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그 많은 탈삼진에도 불구하고 FIP은 4.82를 기록했다.

좌완으로써는 드문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갖추었고[21] 체력이 좋아 연투와 긴 이닝 소화가 가능하여 선발은 물론 롱릴리프, 계투 등 활용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다. 다만 강속구 투수가 대개 그러하듯 제구력에서 약점을 보인다. 그러나 각성한 2010년 이후 자신감이 붙었는지 타자와 과감하게 승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경기 운영 능력이 좋아졌고, 제구력은 높은 탈삼진률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변화구는 좌완 윤고자 수준급의 슬라이더와 평범한 수준의 커브, 체인지업을 던진다. 분명 속구와 슬라이더의 구위는 수준급이지만 커브의 경우에는 오프스피드 피치의 의미가 강한 듯. 결국 아리랑볼이란 이야기 하지만 2013 시즌부터는 커브도 꽤 쓸 만한 수준으로 올라와 커브로 타자의 허를 찌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속구-슬라이더-커브의 3-피치를 벗어나기 위해 체인지업을 장착했다. 2011 시즌 들어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증가한 것은 아직 익숙치 않은 체인지업의 무리한 사용으로 보였다. 본인도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호투 후의 인터뷰에서 “시즌 초부터 체인지업을 던지다가 직구 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체인지업은 구사하지 않는다”라고 언급. 대신 2015년부터 스플리터를 장착했고, 후반기에 스플리터가 제대로 구사되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이 스플리터로 인해 탈삼진왕 타이틀을 차지했다고 볼수 있을만큼 위력적인 구종이다.

하지만 2013년 들어 피칭 스타일보다 더 주목받는게 어마어마한 체력. 2014년 6월 기준 혹사지수 1위인데 중간계투로써 무난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특히 2013년 한국시리즈 2,3차전에 계투로 등판, 4차전에 배영수의 강판이후 선발이나 다름없는 6과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것도 모자라, 이틀 쉬고 6, 7차전에 연이어 등판하였다. 2014년 6월13일 두산전 계투 등판 이후 그 다음날 장원삼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등판하고 3이닝동안 던지는걸 보면.... 한때 류중일 감독도 볼질만 아니라면 완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도 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의 기질을 보이는데, 경기 중 초반에는 제구 불안을 보이더라도 만약 어찌저찌 무난하게 넘긴다면 점점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경기 초반에 4~5실점을 했어도 7~8이닝을 던지는 신비한 경험을 자주 한다.[22] 또한 시즌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시즌 초반보다 후반에 더 잘 던진다. 2010년과 2013년이 대표적인 케이스. 게다가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능력도 있기 때문에 선발이 더 적합한 투수이나, 시즌 초의 부진 + 팀에 좌완 불펜의 부재로 인해 보통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슬로우 스타터 기질을 활용하기 위해 오랜 이닝을 던지거나 혹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등판하거나 한다.

또한 리그 최고의 견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견제구만큼은 KBO 역대급 견제구라고 해도 좋다. 1루 견제에 유리한 좌투수일 뿐만 아니라 1루수가 잡고 태그하기 좋은 위치에 빠르고 정교한 견제구를 던지는데, 그 좋은 견제구만으로 한 이닝에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기도 했을 정도. 그 덕에 주자를 1루에 묶는 능력이 굉장히 우수하다.

여담으로 나성범을 상대로 매우 강해서, 2016년 끝난 기점으로는 25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차우찬의 발목을 잡는 데뷔때부터 2017년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약점은 리그 대표적인 낮상바 라는 점이다. 낮경기에 굉장히 약한데 이게 삼성 라이온즈 시절부터 2017년 LG 트윈스에서 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박명환처럼 갑상선항진증을 앓거나 혹은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한다면 충분히 감안할수 있지만 차우찬은 거기에 전혀 해당이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장면. 삼성 시절 룸메이트를 했었던 윤성환의 말에 의하면 10시간서 12시간씩 잘 정도로 잠이 많다고 하며링크, 고질적인 낮경기 부진은 특유의 생활패턴이 이른 기상과 경기 준비로 인해 어그러지면서 컨디션이 덜 올라온 채로 경기를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으로 보인다.

6.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세이브
홀드
승률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6
9
7
3.86
0
0
0
0
0.000
10
0
5
9
2.00
2007
23
28
6.11
0
0
0
0
0.000
27
7
7
17
1.21
2008
25
36⅔
4.17
0
0
1
2
0.000
35
3
24
28
1.58
2009
42
109⅓
6.09
6
9
0
1
0.400
129
17
82
97
1.88
2010
37
126⅓
2.14
10
2
0
2
0.833
(1위)
106
5
56
112
1.24
2011
24
148⅔
3.69
10
6
0
0
0.625
156
22
(1위)
65
114
1.47
2012
26
83⅔
6.02
6
7
0
2
0.462
83
11
49
52
1.57
2013
43
121⅓
3.26
10
7
0
3
0.588
100
6
73
111
1.38
2014
69
(3위)
82
5.60
3
4
0
21
(4위)
0.429
86
9
44
79
1.56
2015
31
173
4.79
13
7
0
1
0.650
160
28
79
194
(1위)
1.35
2016
24
152⅓
4.73
12
6
0
0
0.667
168
16
73
120
1.53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세이브
홀드
승률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17
1
6⅓
0.00
1
0
0
0
1.000
6
0
2
8
1.11
KBO 통산
12시즌
354
1074⅔
4.41
71
48
1
32
0.597
1066
124
559
941
1.48

7. 야구 외[편집]

  • 이름의 '우'자가 비 우(雨)자다.
  • 기사에 의하면 안지만과 쌍벽을 이를 정도로 코골이가 심하다고 한다. # 이것만으로도 안지만의 룸메이트인 투석인은 잠을 설친다는데 여기다 이까지 갈아대는 환경에서 심지어 차우찬보다 더 늦게 잠든다는 윤성환의 멘탈이 대단하다.
  • 심성이 굉장히 고운 편이다. 너무 모질지 못해서 탈이라는 소리를 팬들로 부터 들을 정도. 부진에도 차우찬을 감싸는 팬들은 사고도 안 치고 성실하며 야구밖에 모르는 너무나 착한 선수라서 까기가 뭐하다고들 한다. 2013년 부진을 하는 와중에서도 독거노인지원센터에 5,000만 원을 기부하여 삼성팬들을 놀라게 했다.#. 선행에 대해 복을 받은 것인지 우연인지 기부 이후부터 점점 폼이 오르며 2013시즌을 규정이닝이 모자르긴 하지만 평균자책점 5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며 포스트시즌에는 거의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통합 3연패를 이끌었다. 이 후로 15년 칩성사건이 터지면서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은 도박에 쓰는 돈을 장원삼과 차우찬은 기부에 쓰고 있다면서 선행왕으로 칭송받는중.
  • 평소 말수가 적고 말할때도 상당히 조심스레 조용히 말하는 편. 그런데 가끔씩 한두마디 툭 내뱉는게 정곡을 제대로 찌르거나 빵 터지곤 한다.87클럽 토크쇼
  • 최훈의 만화 클로저 이상용에서 한정규의 모델인 듯한 느낌이 있다. 좌완 파이어볼러지만 심성이 독하지 못하고, 제구가 잘 안되는 거친 폼.[23]
  • 프로야구매니저에선 이상하게 홀대받는 선수 중 하나. 윤성환의 임펙트가 커서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차우찬 역시 윤성환 급의 코레기다.[24] 그나마 윤성환은 12년도에서 버프라도 받았지만 차우찬은 그런거 없다. 최근 한 유저가 고속슬라이더 구질을 요구해서 추가 된 모양이지만 고인탈출에는 실패한듯. 그러나 2차 구종패치 후 진리구질 중 하나인 서클체인지업을 받긴 했는데 문제는 6구질인데다 그나마도 10년은 빼먹고 안줬다.. 13년도 카드는 체력이 낮은게 흠이긴 하지만 4점대 다승왕이나 60억 좌완보단 훨씬 쓸만한 스텟이다.
  • 낮경기에는 대체적으로 부진한데, 원래 오후 1~2시나 돼야 일어날 정도로 잠이 많아 낮경기에는 컨디션 조절이 힘들다고 한다.
  • 2010년에 박석민하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내기내용은 봉황대기 결승전에 진출한 두 학교 우승 맞추기.[25] 결과는 박석민의 승리였지만, 내기에 건 돈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 불암콩콩코믹스에서 한국 최고의 홈런투수 차르봄바로 소개된 적이 있다.
  • FA로 LG에 입단한 이후 신년 하례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 친한 선수는 많지 않지만 오지환과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친하다고 하고, 임찬규와는 5년 전에 사석에서 만난 이후 계속 같은 팀인 것처럼 연락을 했다고 한다. 임찬규가 자신의 번호를 받더니 계속해서 자신에게 전화하던 재밌는 선수라고 했다.
  • 2017년 5월 24일 모델 한혜진과 열애중인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1] 바비킴이 CM송을 부른 학교로 유명하다.[2] 청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왼손 거포 유망주. 이승엽의 후계자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김승관의 뒤를 잇는 2군 본즈. 결국 어깨 부상으로 2008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LG, 두산에 이적해 선수 생활을 이어 갔지만 결국 오래 못 가 은퇴했다.[3] 송일수가 선수 시절 달았던 번호다.[4]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지명했으나, 2012년에 방출당했다.[5] 당시 군산상고 감독을 맡고 있었던 해태 출신 김성한선동열에게 연락했다고 한다.[6] 체중조절, 변화구 습득 등에서 온 부작용이라고 한다.[7] 여담으로 2013년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조금이라도 못 하는 투수는 씹차라는 접미사를 붙인다. 예를 들면 술씹차, 옆씹차 등이다. 물론 이 분야 최강의 접미사는 이다. 윤션! 이우션! 그런데 2013시즌에는 차우찬이 제법 살아난 덕에 리대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8] 물론 백린탄은 핵과는 무관계하지만 어쨌든 의미는 통하니까.[9] 후반에는 정현욱도 맛이 가는 등, 누구라 할 것 없이 별로이기는 했다. 그래서 삼성은 PS 진출에 실패.[10] 선동열 감독은 2009년 신인지명에 앞서 고졸을 뽑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 고졸은 2명만 뽑았고, 나머지를 대졸 투수로 뽑았다. 누가 봐도 혹사로 무너져가는 현 투수진 대신 젊고 고졸보다 튼튼한 대졸 투수들 데리고 불펜야구를 하겠다는 포석이었다.[11] 7⅔이닝 8K 무실점. 직구 최고구속은 151 Km/h, 슬라이더도 140 km/h 가까이 나왔다.[12] 정우람은 봉중근이 엔트리에서 빠진 후 엔트리에 발탁된다면 군입대를 미룰 수도 있다고 했지만 쿨~하게 씹혔다. 참고로 이 해 SK의 마무리를 맡은 정우람의 2012 시즌 성적은 평균자책점 2.20 53경기 소화.[13] 이들 외에 2012시즌 차우찬보다 좋은 활약을 펼친 좌완투수는 8명 가까이 됐다. 심지어 후보군에도 없었던 유창식이 차우찬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14] 반대로, 다른 기사에선 류중일 감독의 의중도 차우찬을 강하게 원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강하게 반대했다면 아무리 강한 추천이 있었다고 해도 뽑히진 못했을 것이다. 결정권은 결국 감독 몫이다.[15] 공교롭게도 4년 후 KBO 리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저 천적관계는 그대로 이어졌다..[16] 이와 비슷한 기록은 마무리 투수 좌완 정우람이 세운 16시즌의 144경기 체제 하의 81이닝 소화가 있다.[17] 여담으로 둘은 팬서비스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사적으로 크게 친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게다가 차우찬은 막상 팀을 떠나면서 구단을 까는 등 별 다른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 억울하게 되었다.[18] LG가 우규민과의 협상이 순탄치 않자 우규민보다 협상우선순위가 높은 투수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해당되는 선수는 몇 없다.[19]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 FA행보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삼성 프런트가 협상 실패+가계약 썰에 분노해 자신들은 할만큼 했다는 것을 피력하려는 입장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다.[20] 7월 16일 현재 메릴 켈리에 이은 탈삼진 2위이다.[21] 선발 등판 시 평균 구속이 143km/h이다.[22] 이런 경우는 실점을 많이 하고 경기를 내준다고 해도, 불펜을 아꼈기 때문에 팀에 도움이 많이 된다.[23] 또다른 모티브로는 싸융짱문오리더이신 융구가 있는데, 공을 던지다 보면 멍해지는 모습. 거친 폼은 차우찬, 멍때리는 모습은 융구에서 따온 것 같다. 물론 착한 심성과 구위하나는 끝내주는 좌완 제구레기는 둘 다 따왔다.[24] 나무파일:attachment/coregi_battle.jpg[25] 대구고군산상고의 경기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박석민 모교와 차우찬 모교의 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