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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문화

1. 개요[편집]

추바시인은 추바시야 공화국의 원주민으로 다른 튀르크계 민족들과 다르게 정교회 기독교를 믿고 있다.[1] 추바시인의 오래된 관습과 가정 의례에서는 토속 신앙과 수피즘의 잔재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에 140만명 이상이 있으며, 대부분은 추바시야 공화국에 거주한다. 이외에도 카자흐스탄에 2만여명, 우크라이나에 1만여명, 우즈베키스탄에 1만여명이 거주한다. 러시아에서 여섯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다.

2. 역사[편집]

고대 불가르 종족의 일파이던 수바르 족이 이들의 조상이다. 수바르 족은 수바즈 족이라고도 불렸으며 추바시 라는 민족명은 수바즈라는 이름에서 기원하여 변형된 것이다. 중세 불가르어와 오늘날 추바시어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한다. 불가르어를 쓰는 불가르족들은 오늘날 불가리아 일대에 정착한 후 슬라브화되었고, 추바시어는 오구르어파 언어 중 유일하게 남은 언어가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종종 추바시인들을 타타르인이나 마리예츠인들과 혼동하였다. 추바시 민족과 추바시어의 기원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 중에는 핀 우골어족에 속하는 마리인들이 튀르크어를 구사하는 볼가 불가르족에 동화하면서 추바시인의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주로 자급자족적 농업을 했기 때문에, 다른 볼가 불가르인들이 교역과 유목 생활을 하면서 문화와 언어가 변화하는 동안 고유 언어를 보존했다는 것이 논지이다.

1236년 볼가 불가르가 킵차크 칸국에 의해 정복당하는 와중에 이슬람 대신 전통적인 샤머니즘을 믿던 이들은 타타르인에 동화되지 않고 분리되었다. 이후 킵차크 칸국이 붕괴되면서 카잔 칸국의 지배를 받던 이들은 이반 4세 시절 루스 차르국의 군대가 카잔 칸국을 병합하면서 러시아의 속민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볼가강 유역 정복 이후 농노가 된 추바시인들은 농노제의 압제를 참지 못하고 1670~1671년 스텐카 라진카자크 봉기에 합류했다가 진압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이들을 불순분자로 보고 선교사들을 보내 정교회로 개종시키기 시작한다. 1774년에는 푸가초프의 난에 합류했다가 진압당했다. 이들은 볼가 타타르인이나 바시키르인들과 다르게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과 적극 교역한 것도 아니고 러시아 제국에서 경기병으로 활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농노로 착취당했기 때문에 반란도 많이 일으키고 결국에는 정교회로 개종하게 된 것.

파일:tumblr_n158967WB61r0ri7zo1_400.jpg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해방을 선포한 이후 농노가 대부분이었던 추바시인도 해방되고, 이후 시베리아 각지로 이주 정착하였다. 스톨리핀이 시베리아 동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파격적인 혜택을 주며 개척을 장려하자 많은 추바시인들의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추바시야를 떠난 추바시인 후손들은 추바시어를 잊어버리고 러시아인들과 대부분 혼혈되어 현재는 러시아인과 거의 동화되었으며 오늘날의 추바시인들은 추바시야에 남은 추바시족들의 직계 후손이다.

파일:1C55D140-02E7-4CDC-B11E-871C3D117C4B.jpg

3. 문화[편집]

대부분의 추바시인들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지만, 이들의 풍습과 전통신앙에는 조로아스터교 문화나 마니교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추바시인의 세계관에는 양분법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예를 들면 추바시인들은 선한 신 투라와 악한 신 슈이탄이 있다고 믿었다. 선한 신 투라는 하늘 위에 살고, 악한 신 슈이탄은 지하세계에 산다는게 이들의 믿음이었다.

[1] 추바시인외에도 가가우즈인, 돌간인, 야쿠트인, 크랴셴인들도 정교회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