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春秋戰國時代

1. 중국 역사의 시대적 구분
1.1. 관련항목
2. 게임

1. 중국 역사의 시대적 구분[편집]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770년 경 주나라가 견융의 공격을 받아 천도한 뒤(동주시대)부터 기원전 221년 (秦)에 의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국하게 될 때까지의 시기. 참고로 은나라, 주나라의 경우 은과 주가 성읍 국가 수준에 머물렀고, 다른 국가들이 존속하면서 은/주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통일 국가라고 보는 시각은 약하다. 영역으로 보아도, 양쯔강 이남을 비롯한 넓은 지역이 아직 은/주 질서의 산하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1] 또한 황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진시황 대의 이름으로 '통일 제국'이라고 하면 짤없이 진나라 때부터를 지칭하는 말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을 형성했던 시대. 그러니까 남들은 천년 뒤에 나올까말까한 것들이 이 시기에 다 나와버리고 중국의 근간을 형성하였던 시대라는 소리다(...)키도 늦게 크는놈이 많이 큰다더니 서양 역사로 치면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사상 발전 정도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 발전 정도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역으로 뒤집어 보면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가장 뒤늦게 나타나 그만큼 후진적이었던 중화 문명이 급속도로 서쪽의 선진 문명들을 따라잡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크게 춘추시대전국시대로 나누는데, 대체로 진나라(晉)가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의 3국으로 나누어진 때나 제나라에서 역성혁명이 일어난 때, 혹은 월나라오나라를 멸한 때 등을 경계로 구분한다. 이러한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공화 원년으로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 까지를 동주시대로 칭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주 대의 천하 질서가 무너지고 각지의 소국들이 성장하며 중국을 분점했다가 다시 통합되는 시기이다.

춘추시대에는 형식적으로나마 동주 왕실에 충성을 바치는 제후들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서주 시대에서 시작된 왕-제후-대부-사-서민의 봉건제 질서도 유지되었다. 이 시기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존재가 패자로, 천자에 의해 주도되던 군사적 동맹인 회맹 등을 자신이 주도하며 중국의 세력가로 떠오른다. 기반 계층은 대부(大夫)였다. 그런데 고사성어를 배운 사람들은 알 수 있듯 사회윤리적으로 상당한 헬게이트였다. 당나라 시대 이후의 에피소드와 춘추전국시대의 에피소드를 아무거나 하나씩 찝어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엄청나다.

전국시대는 그딴 거 없고 배틀로얄의 향연이었다. 하극상이 난무하여 실력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였고, 이 때문에 전국시대는 '하극상의 시대'라고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나라의 봉건제는 철저히 파괴되었고, 대신 각지에서 변법을 통해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하면서 군현제적 질서 및 편호 제민지배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헬게이트를 극복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수많은 사상들이 대두된다.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에는 정치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한자 문화권의 학문의 발달 방향 자체를 라틴어 문화권과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은 시기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사상이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었다는 것은 각지에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다양한 인재들이 대두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사회의 유동성이 큰 시대였던 만큼 사(士) 계층이 정치 참여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전국 시대에는 군사적 차원에서도 귀족들만이 참여했던 전차 중심의 전쟁 양상을 탈피하기 시작하여, 백병전이 전쟁의 주요 양상이 되었으며, 청동기 시대로부터 철기 시대로 진입하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무기뿐만 아니라 농기구 차원에서도 철제 농기구가 미흡하나마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도전, 포전, 원전 등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한편으로 후에 중국으로 편입된 이민족 외에도 주변 이민족에 대한 관심이 등장했다. 고조선을 미흡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는 첫 시점이 전국시대이고, 고대 중국의 숙적 흉노 또한 이설이 많으나 전국시대 후기에는 그 세력이 완연히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이 문서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춘추전국시대는 윤리/사회/사상/정치 등 모든 면에서 역동적 변화를 거듭하던 헬게이트 시기였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중국의 역사 시대 중 가장 많은 고사성어를 배출한 시기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춘추 시대에는 쓰레기보다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전국 시대에는 수십만 명씩 떼죽음을 당하는 전쟁이 흔히 발생했기 때문에, 천재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세상이 바뀔까 고민하면서 다양한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 상주 시대에는 '중국'이 중심국가였던 즉 상, 주가 위치한 낙양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의미 그대로 가운데(中)에 있는 나라(國)라는 뜻. 실제로 당시의 지도를 살펴보면 상/주의 영역을 중심으로 하여 제후국이 그 주위를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러싼 이유는 당연히 이민족을 몰아내고 천자를 보호하는 것이며, 그래서 제후국을 번국(藩國)이나 번병(藩屛)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이후 한반도나 베트남등의 주변 국가들과의 조공/책봉에 전용된다. 중국 한족 왕조가 지고 들어갈 때도 몇번 있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의 범주가 하나의 세계(天下)로 전환되어 넓어졌다. 그 결과 본래는 황하 인근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던 이민족 국가 초나라, 오, 월, 진 등도 스스로를 '중국'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여 중원으로 활발히 진입했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되자 '중국 통일'에 대한 열망이 나타나기 시작해, 마침내 진의 통일로 발현되었다.

중국의 경우 통일관념 및 중국 신화의 역사화(역사공정과 연결) 등 무수히 많으며, 한국의 경우도 이 시기의 편호 제민지배체제는 현재 주민등록제도로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주나라의 수많은 제후국들 중, 춘추시대까지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살아남아 있던 나라들의 이름은 이후 중국사에 명멸하는 수많은 국명들의 기원이 되었으며, 혹은 그 나라들이 있던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산동성 일대를 노(魯), 산서성 일대를 진(晉), 섬서성 일대를 진(秦)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지의 국가가 성장하여 대두되고 일원적인 패권이 없어 치고 받는 싸움이 계속된 시기라는 의미에서, 어떤 분야에 수많은 사람 혹은 팀들이 나타나 무한히 경쟁하는 시기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걸그룹2007년 3.3 혁명 이후의 스타판. 3.3 혁명 이후 본좌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스타판을 지배한 프로게이머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후 2010년 들어 이영호, 이제동리쌍이 리그가 종료될 때까지 스타판을 양분하지만.

1.1. 관련항목[편집]

2. 게임[편집]

1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전략 웹게임. 제작은 QQ메신저로 유명한 텐센트사가 제작했다. 한국 서비스를 앞두고 한국 서비스 광고모델에 한국의 소설가 이외수와 자국의 레이싱 모델 미녀를 동원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 오픈베타 테스트.

[1] 이때는 양쯔강 이남에 오스트로네시아계나 오스트로아시아계, 묘족을 비롯한 한족에 동화되지 않은 수많은 종족들이 주거하고 있었다,[2] 인도판 춘추전국시대라 볼 수 있다. 또한 시기도 은근 비슷하다.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