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 히로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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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山ヒロノブ(かげやまー).[1]
프로필
이름
카게야마 히로노부
影山ヒロノブ(かげやまー)[2]
직업
출생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
생년월일
메이저 데뷔
1977년 7월 25일
LAZY의 싱글 앨범 'Hey! I Love You!'
별자리
혈액형
신장
164cm
취미
스키, 야구, 쇼핑, 기타 수집 등
가족
양친, 아내, 딸 2명.
(장녀 : 성우 카게야마 리사 차녀 : 카게야마 나나)
소속사
Highway Star 솔리드복스 사업부
(구 SOLID VOX)[5]
홈페이지 등

1. 개요2. 아버지로서의 카게야마3. 애니송계에서 카게야마가 차지하는 비중4. 한국과의 인연5. 소속 유닛6. 디스코그래피
6.1. 특촬 관련곡들6.2. 애니메이션 관련곡들6.3. 게임 관련곡들6.4. 솔로 앨범6.5. 베스트 앨범

1. 개요[편집]

일본 애니송계에 록 스타일을 접목시킨 애니송계의 슈퍼 보컬리스트.
애니송을 하나의 장르로 만드는 데 공헌한 가수.[6]

일본싱어송라이터. 1961년 2월 18일생. 본명은 쓰는 표기를 다르게 한 카게야마 히로노부(景山浩宣). 잼 프로젝트와 LAZY 활동시 주 앨범 발매처는 란티스. 별칭은 나니와의 애니송 싱어. 1970년대 후반에는 로커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는 애니송 싱어로, 지금은 애니송 싱어와 로커를 넘나드는 일본 애니송계의 왕자.

'아니키' 미즈키 이치로의 뒤를 잇는다고도 평가받는,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애니송 가수. 그가 부른 곡만 700곡 이상이라 한다. 별명은 '애니송계의 왕자', 이미 50세가 넘었고, 충분히 애니송의 왕이라 불릴 자격을 갖추었으나 그의 앞 세대를 대표하는 애니송 가수인 미즈키 이치로, 사사키 이사오 등의 존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자이다.[7]

현재 JAM Project 상근 멤버들 중 최연장자[8]이며 JAM Project의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함으로써 사실상 리더 포지션에 있다. JAM Project 내에서는 나이 때문인지 '장로'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실제로 그 이후에 등장한 애니송 가수들에게도 장로라 불리며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소속은 음악사무소이자 자신이 한 때 사장으로 재직하였던 SOLID VOX.[9] 란티스에서 앨범을 내는 가수들을 통틀어 볼 때 음악사무소의 사장이 가수인 경우로는 그를 제외하면 주식회사 S의 사토 히로미 정도로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10]

그의 후계자이자 몇 안 남은 '정통 애니송 싱어'[11]로 불리는 후배 가수 엔도 마사아키와는 '강철형제'라는 유닛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오사카 출신으로 집안은 이발관을 경영했고 시마네 현에서 건너온 것으로 판단되는 세대[12], 오사카시립 미나미타나베 소학교와 오사카시립 타나베 중학교를 졸업 후 오사카시립 야마토가와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도쿄 메이지 대학 부속 나카노 고등학교로 편입했다. 이 이유는 LAZY의 데뷔를 위한 상경 때문이다.[13]

70년대 중/후반,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LAZY[14]의 보컬이었으며 당시 LAZY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한 인물들은 타가사키 아키라(기타, 현재 LOUDNESS), 히구치 무네타카(드럼, LOUDNESS 활동 중 2008년 11월 30일 사망), 타나카 히로유키(베이스, 2006년 9월 1일 사망), 이노우에 슌지(키보드, 애니송 전문 레이블 Lantis 레코드 설립자).[15]

이러한 활동 경력 덕분에 일본의 록/메탈 씬에서도 발이 넓어 현재 JAM Project의 레코딩/라이브 세션들은 그야말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유명인사들이다. 현재 라이브와 레코딩에서의 세션 기타리스트는 '제트 핑거' 요코제키 아츠시이며, 현재 승승장구하는 그룹인 abingdon boys school의 베이시스트인 IKUO는 JAM Project의 3번째 라이브인 'Return to the Chaos'에서 베이스 세션을 맡았고 같이 내한도 한 적이 있으며 싱글인 Crest Of Z's의 편곡담당이기도 하다. 드러머는 이미 80년대부터 유명했던 Soul Toul.

여기에다 기존 라이브 세션인 키보드의 스도 켄이치나 유명한 테크니컬 세션 기타리스트 마츠오 요이치에 오쿠이 마사미의 세션이었고 두 번 모두 같이 내한했던 기타리스트 MACARONI☆, 작곡을 담당하는 고참 밴드 그랑프리의 키보디스트 및 어레인저이자 야마다 노부오가 주축이었던 메이크업의 키보디스트 겸 어레인저였던 코노 요고 등등 대충 세션 라인업만 몇몇 정도 짚어봐도 매우 화려하다. 그 외에 과거부터 같이 활동해왔던 무라카미 키요시도 그와 함께 했고 2010년 잼 프로젝트의 라이브에 서포트 밴드로 활동하는 야마모토 나오야도 그와 연계되어 있다.

여기까지 나열한 네임밸류만 종합해 봐도 세션진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오쿠이 마사미[16](전 미스터빅의 리치 코젠, 빌리 시헌, 팻 토피 모두 세션으로 넣은 적이 있다.)나 미즈키 나나(메인스트림 락 씬에서는 유명한 고참 기타리스트 키타지마 켄지, 베이스의 사카모토 류타, 드럼의 이가라시 코타 등)도 부럽지 않은 초절정 라인업. 심지어 LAZY의 멤버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타카사키 아키라잼 프로젝트의 최신 앨범에 기타 세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은 고인이 된 히구치 무네타카도 초기 잼 프로젝트의 곡 세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사실상 애니송 내에 록 스타일을 더해 지금의 애니송 스타일을 확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젊은 아티스트를 많이 투입시키고 있어서 잼 프로젝트의 활동시에 테라다 시호가 키보디스트로, BABYMETAL의 드럼 세션으로도 활동하는 아오야마 히데키를 드러머로 돌리고 있다.
현재 그가 리더로 있는 JAM Project 소속의 오쿠이 마사미는 원래 LAZY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오쿠이 마사미 문서에도 있으나 오쿠이는 원래 LAZY와 한 무대에 서기 위해 아이돌을 꿈꿨다고 한다. 그러나 LAZY가 1981년에 해체한 후 1998년에 재결성했을 당시 그녀 역시 이미 솔로로 활동중이었다. 그리고 마침 2009년 란티스 창립 10주년 기념이던 란티스 마츠리에서 LAZY와 잼 프로젝트가 한 무대에 섰을 때 그녀가 감격하여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81년 LAZY 해체[17] 후 도쿠마 음악 공업[18]을 통해 첫 싱글 '오늘을 살아가(今日を生きよう)'[19]로 솔로활동을 시작하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1985년에 일본 콜롬비아로 이적, 우연한 기회에 부르게 된 전격전대 체인지맨의 오프닝곡이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특촬 주제가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의 카게야마 본인은 애니송을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전격전대 체인지맨의 오프닝은 'KAGE'라는 예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다만 40주년 공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때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자신이 이런 분야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가지는 것조차도 너무나 감사했다고 한다. 당시 프로듀서가 카게야마를 적극적으로 배려하여 사용을 권유했다고... 만약 이때 체인지맨이나 마스크맨의 주제가를 부를 기회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을 거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이후 그의 애니송계에서의 행보는 성공가도. 특히 1989년에 전파를 탄 드래곤볼 Z의 1기 오프닝 'CHA-LA HEAD CHA-LA'와 2기 오프닝인 'We Gotta Power!'은 밀리언셀러를 넘어서는 판매량으로 상업적으로 성공도 거두었다고. 덕분에 웬만한 드래곤볼Z 관련 음악, 특히 게임 삽입곡 대부분을 이 분이 불렀다.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CHA-LA HEAD CHA-LA'는 안다. 여기에 조인전대 제트맨으로 1991년 일본 골든디스크 본상[20]을 수상했다.

특히 그의 슈퍼전대 시리즈 내에서의 활동은 상당해서 오프닝 주제가는 MoJo와 동일한 3곡, 엔딩은 4곡을 담당해 이 부분 톱에 들어가 있다. 카게야마가 담당한 주제가는 전격전대 체인지맨 , 광전대 마스크맨 , 조인전대 제트맨이며, 엔딩은 저 3곡에 인풍전대 허리케인저가 추가된다.

물론 LAZY에 대한 애정도 대단하다. 솔로일 당시 그는 거의 비어있는 공연장, 약 5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는데 그 5명이 전부 LAZY의 팬이었다고... 최근에는 LAZY 관련 활동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성우 및 방송 진행 등에도 나서면서 활동 범위를 넓혔다. 대표적인 일은 다음과 같다.

여담으로 호리에 미츠코, 미즈키 이치로와 함께 태고의 달인 애니메이션 스페셜의 주제곡을 부른 적이 있다. 제목은 울려라! 태고의 달인(響け!太鼓の達人)으로 태고의 달인 12 증량판에는 하즈레 보면으로 풀버전이 수록되어있다. 이 노래는 2005년 8월, 태고의 달인 음반에 수록되었다. 그 외에도 드릴 파이터 고고 DigDug(ドリルファイターゴーゴーDigDug)라는 태고의 달인 수록곡도 불렀다. 역시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한국에도 몇 차례 왔으며 2008년과 2009년, 2010년에는 잼 프로젝트 멤버 전원이 참가했다.

1998년 LAZY의 부활 및 2000년 잼 프로젝트 활동을 병행,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도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노가와 사쿠라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것.

2006년에 후계 양성 및 아티스트 관리를 목표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음악사무소 SOLID VOX를 설립, 2007년에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았고 50대에 접어든 지금도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지만 나이는 이기지 못하는 듯. 최근들어 라이브가 간간히 힘겨운 듯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별 수 없는 것이 멤버들이 거의 다 불혹을 넘긴 중년인 문제로 인한 것이다. 당장 카게야마를 제외해도 후쿠야마도 63년생이니...

2009년 란티스 창립 10주년 축제인 란티스 마츠리에 양일 동시 출격, 9월 26일에는 잼프의 리더로서, 27일은 솔로 및 LAZY의 보컬(이때 잼 프로젝트의 멤버들을 모두 끌어서 ULTIMATE LAZY for MAZINGER로 感じてKnight를 열창했다.)로 출격, 이후 12월 19일에 열린 후야제에서도 엔도, 키타다니, 미사토 아키 등 SOLID VOX의 소속 가수들을 데리고 참가하기도 했다.

카네다 토모코가 부른 아즈망가 대왕 극장판의 엔딩곡 〈サラバイ〉에 대해 이건 노래라는 장르를 초월했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현재까지 싱글 70장, 베스트 앨범 6장, 솔로 앨범 8장 등을 냈으며 슈퍼로봇 스피리츠(처음에는 ROBONATION LIVE), Animelo Summer Live의 초대 멤버이자 현재도 활동 중인 멤버이다.

2009년 같은 LAZY의 멤버이자 LOUDNESS의 드러머였던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공연 당시 이노우에 슌지, Janne da arc의 shuji, 히노 켄지, 타카사키 아키라와 함께 LAZY의 곡을 열창하기도 했다. 당시 공연이 LOUDNESS의 공연이었지만 히구치 무네타카가 Londness 뿐 아니라 LAZY의 원년 멤버이기도 했기에 특별 게스트로 참가해 열창했을 정도. 탈아시아적 보컬로 일컬어지는 니이하라 미노루와 같이 불렀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동년배.[21] 무서운 사람들이다. 기회가 되면 두 사람이 함께 부른 곡을 들어보라.

창법은 반백 살 나이임에도 여전히 파워풀한데 이는 그가 록 밴드의 보컬로 있으면서 축적된 경험으로 그를 애니송계의 왕자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박력은 특히 슈퍼전대 시리즈나 현재의 잼 프로젝트 라이브에서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가 라이브 하는 날마다 비가 왔다고 해서 '를 부르는 남자(雨男)'라는 말을 듣고 있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확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미 SICAF 라이브 당시에도 공연날 비가 왔었고 2010년 잼 프로젝트 한국 투어에서도 그가 입국하기 전날에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중부지방 일대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당시 입국 당일날 오전에 중부지방에 한차례 비가 내렸고, 공연 당일날에도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떴으나 공연 당일날은 무사했다. 그런데 본인은 엣찌 때문에 비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비를 부르는 남자란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듯 결국 란티스 마츠리 한국투어로 참여한 2015년 4월 4일과 4월 5일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역시나 비를 부르는 남자 아메야마...

2002년 JAM Project의 작곡과 편곡을 담당하는 멤버들을 모아 음악 유닛 TRY FORCE를 조직했다.

나무파일:external/pbs.twimg.com/C_wLmxDUwAEj1qt.jpg
2016년들어 로드바이크에 빠져서 자전거계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AREA Z는 자전거 실업선수단을 위한 헌정곡이며,자전거 애니 롱 라이더스의 엔딩곡을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도 이 인연으로 수제 프레임 공방이자 롱 라이더스 스폰서인 MAKINO와 연결되면서 본인 몸에 맞춘 프레임을 선물받았고 이걸 타고 GSR컵이라는 코스프레 레이싱이나 나가노일대를 달리는 장거리 레이싱에도 미즈키 이치로와 함께 참여하는 등 굉장히 왕성하게 얼굴을 내밀고있다.

2. 아버지로서의 카게야마[편집]

2014년 6월 성우 카야마 리사[22]가 그의 장녀라는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또한 한국에 유학왔던 딸이 바로 그녀였다는 사실까지 공개된 상황. 실제로 한 루리웹 회원이 일본 유학 시절에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둘째 딸이 있다는 사실까지 연타석으로 공개돼 모든 팬들이 카게야마가 기혼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의외로 일본에서도 카게야마가 미혼인걸로 아는 사람들이 꽤 됐다고.

장녀인 카게야마 리사에 의하면 자녀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 자신이 오사카를 떠나 도쿄로 상경할 당시 들었던 말인 "고생은 사서라도 해라(苦労は買ってでもしろ!)"라는 말을 이제야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이젠 자신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언급했다.

또한 자녀들에 대해서는 딱히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해주고 있단다. 딸인 카게야마 리사가 한국에 유학할 때, 성우가 되고 싶다고 할 때에도 오히려 격려해줬다고.#

3. 애니송계에서 카게야마가 차지하는 비중[편집]

우연히 당시 소속사였던 토쿠마의 제안으로 초시공기단 서던크로스의 삽입곡을 부르면서 애니송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 콜롬비아의 전속가수가 되면서 애니송 가수가 되었지만, 당시에 불던 밴드붐을 타고 록밴드 가수 출신이던 그의 인기는 말 그대로 수직상승했다. 그의 뒤를 이어 여러 록커 및 솔로 가수들이 애니송계에 뛰어드는 원동력 그 자체라고 할 정도.

실제로 HUMMING BIRD의 경우 데뷔당시부터 애니송을 부를 것이 계약 조건에 들어가 있었고[23] 이후 마크로스7의 보컬을 맡았던 후쿠야마 요시키나, ANTHEM의 보컬이었던 사카모토 에이조도 Anthem에서 나온 이후 애니메탈이란 팀으로 활동하면서 애니송의 록 커버를 맡았다. 심지어 엔도 마사아키키타다니 히로시, 오쿠이 마사미 등 90년대 이후에 데뷔한 애니송 가수들 중 카게야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가수는 웬만해선 찾기 힘들 정도.[24]

198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위치가 어느정도인가 잠시 검토해보면...
  • 드래곤볼 Z의 오프닝곡 CHA-LA HEAD-CHA-LA가 17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25][26]
  • 1993년 발매된 好き好き好의 경우 오리지널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40만장 이상의 판매고 기록

저 두가지만 봐도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즉 사사키 이사오, 미즈키 이치로 이후 일본 애니송계를 대표하는 남성 가수의 등장을 알린 셈. 지금도 남성 애니송 가수가 이 정도의 레코드 기록을 내는 게 흔치 않은지라 카게야마의 입지는 말 그대로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애니송계에서 앨범이 잘 팔리는 가수이자 성우인 미즈키 나나Animelo Summer Live 관련 건으로 그와 대담했을 때 상당히 긴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업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높다. 같은 잼 프로젝트 멤버인 오쿠이 마사미, 미즈키 나나, 쿠리바야시 미나미와 함께 Animelo Summer Live의 한 축이며[27] 2006년 지금의 소속 사무소인 SOLID VOX를 세우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는데 현재 소속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중견급인지라 신인 가수가 사실상 없을 정도다.[28][29]

라이브 참가 비중을 보면 카게야마는 장난이 아닌데 개인 솔로 라이브 뿐 아니라 미즈키 이치로, 호리에 미츠코 같은 업계 대선배들이 참가하는 라이브 뿐 아니라 현재의 애니멜로까지 웬만한 스케쥴[30]은 거의 몇년치가 미리 잡힐 정도니 말 다한 셈...[31] Animelo Summer Live 같은 굵직굵직한 행사에서는 후배 양성을 위해 뒤로 물러나겠다고 말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행사에 본인 명의나 잼프 명의로 꾸준히 라이브에 참가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의 라이브 뿐 아니라 애니송 가수의 해외공연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애니송으로 세계를 잇는다.'는 그의 신조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리더로 있는 JAM Project는 애니송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해외 지향적인 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해외 공연 빈도가 높은데, 단독 공연 뿐 아니라 매년 브라질, 홍콩, 미국 등지에서 개최되는 서브컬쳐 관련 행사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주식회사 란티스에서 발매한 첫 앨범은 그의 앨범이다. 즉 데뷔 23년차 이후 그의 커리어는 란티스의 역사와 함께하는 셈이다.

2016년 현재 데뷔 39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엄청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당장 JAM Project의 멤버인 후쿠야마 요시키가 63년생으로 2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데뷔 25주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2017년이면 데뷔 40주년이다!!![32]

4. 한국과의 인연[편집]

부인과 딸 카게야마 리사가 예전부터 한국 드라마의 팬이었으며, 한국어에도 상당히 능통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국에도 가끔씩 놀러오는 듯. 가장인 카게야마 역시 한국 영화를 좋아하여 자주 본다고 한다.

강철형제 소속으로 엔도 마사아키와 함께 2번, JAM Project 소속으로 6번 내한 공연을 했었다.

2014년 10월경, 국내 최고의 드래곤볼 매니아인 테일러[33]의 가이드를 받아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 결혼 축가로 이 노래불렀다.

2015년 2월엔 카케야마 장로가 작년에 도움을 받은데 대한 보답으로 일본으로 직접 테일러를 초정했다고 한다. 당시 장로의 생일기념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던터라 주최자 자격으로 앞자리에서 라이브를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으며, 다음날엔 몸소 여행가이드를 자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국어 연습을 많이 하였는지 2016년 AREA Z의 한국 투어 때도 멤버 중 가장 능숙할 뿐 아니라 "너희들의 열정에 감동했어"[34] 등의 문장을 직접 말할 정도의 실력을 보였다. 장녀인 성우 카게야마 리사가 한국에 많은 관심이 있고 실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데다가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2017년 2월 4일, 홍대에서 열리는 애니사운드 페스티벌의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한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요!! 장로님께서 오신다고요?? 소속사 공지, 티저 영상 덤으로 남도형과 카게야마 리사가 함께 하는 남카방송도 다시 방송될 예정.[35] 주최측인 에이사운드에서 공연 10주년 기념으로 일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을 추진한다는게 이 분 인지라 충격과 공포의 발표가 된 셈.

5. 소속 유닛[편집]

6. 디스코그래피[편집]

JAM ProjectLAZY를 제외한 솔로만을 정리했음에도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이 노래들이 전부는 아니다.

6.1. 특촬 관련곡들[편집]

6.2. 애니메이션 관련곡들[편집]

6.3. 게임 관련곡들[편집]

6.4. 솔로 앨범[편집]

  • Broken Heart(1981년 12월 1일, 도쿠마 음악공업)
  • It's LIVE Runnin(1982년 4월 1일, 도쿠마 음악공업)
  • Born Again(1985년, 일본 콜롬비아)
  • I'm in You(2000년 4월 26일, 란티스)[37]
  • Cold Rain(2005년 12월 7일, 란티스)[38]
  • 30years 3ounce(2007년 7월 25일, 란티스)[39]
  • Rock Japan(2012년 2월 8일, 란티스)[40]
  • A.O.R(2017년 7월 25일, 란티스)[41]

6.5. 베스트 앨범[편집]

  • Eternity(1997년 8월 21일, 일본 콜롬비아)[42]
  • GOLDEN☆BEST(2004년 12월 22일, 도쿠마 Japan Communications)

[1] 현재 팬들이 아는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예명이다. 다만 활동 초기에는 본명으로 활동했다.[2] 본명은 동일한 발음의 景山浩宣.[3] 자르바게이머 드라이버 문서 참조.[4] 황도12궁이든 13성좌든 죄다 물병자리에 해당된다.[5] 후술하겠지만, 본인이 대표이사였다.[6] 실제로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애니송 싱어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는것은 불가능했다.[7]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즈키가 2011년에 발표한 앨범 The Hero~Mr. 애니송~의 타이틀곡인 Hero를 들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 가창력이 어디 2012년 현재 64세인 사람의 보컬이겠는가?[8] 카게야마가 61년생. 비상근인 히카르두 크루스가 1982년생이고, 키타다니와 오쿠이가 68년생이다. 미즈키 이치로도 있지만 비상근 멤버라......[9] 현 주식회사 하이웨이스타 탤런트 매니지먼트 사업부.[10] 그나마 그 사토 히로미도 2016년 12월을 끝으로 은퇴했다.[11] 최근의 성우 아티스트들과 대비되는 개념. 다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애니송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가수들을 가리킨다.[12]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흔히 카게야마를 한자로 쓰고 우리나라에서 쓰는 음 읽기 방식으로 읽을 경우에는 영산(影山)으로 적지만 그의 본명은 경산(景山)으로 적히는 바람에 당혹해 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그의 부친에게 물어본 결과 부친은 '시마네 현에 루트가 있지 않는가?'라고 했다지만 이 부분은 불명확하고 실제로 시마네 현에서 라이브를 할 때 본인의 본명과 동일한 성을 가진 이가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13] 당시 16살이었으며 그 당시 많은 '어른'들들 보았고 그들이 굉장히 커다란 존재처럼 느껴졌지만 자신이 막상 그 위치가 되니 자신은 그 정도로 큰 사람은 아니라고...2015년 요코하마 공연에서 회상한 바 있다.[14] 사실 LAZY는 기획사의 강압에 의해 아이돌 밴드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으나, 일본의 초기 하드록의 틀을 잡은 것 자체만으로도 록밴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실제로 그들의 라이브에서는 기존 하드록 곡들의 커버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LAZY에서 빌보드 차트에까지 랭크되는 신기원을 달성하게 되는 록밴드 LOUDNESS가 탄생하게 되니 전설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참고로 LAZY는 1998년 부활했으나 타나카 히로유키 및 히구치 무네타카의 사망으로 인해 사실상 현재 할 수 없이 눈물나게도 개점 휴업 중인 상태다.[15] 이 덕에 란티스의 제 1호 앨범은 카게야마의 앨범이 된다.[16] 현 잼 프로젝트 멤버. 세션진 명단은 그녀가 솔로로 활동할 당시의 이야기다.[17] 1998년 에어즈를 소속사로 해 재결성. 이후 2000년부터 란티스로 이적함.[18] 현 도쿠마 Japan Communications[19] I'm in you가 솔로 데뷔곡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 앨범은 란티스로 이동한 후 나온 앨범으로 란티스 제 1호 앨범이다.[20] 학예부분에서 받았다.[21] 공식적으로는 카게야마가 한 살 적은데 사실 니이하라는 이노우에 슌지 와 같은 나이이다.[22] 2016년 12월 현재 본명인 카게야마 리사로 활동 중[23] 녹색전차 해모수의 일본어판 오프닝을 부른 것도 허밍버드다.[24] 엔도 같은 경우 아예 카게야마의 라이브 코러스를 맡기도 했으며 오쿠이 마사미는 LAZY의 팬이었다.[25] 이 당시에는 애니송들의 매상기록을 잘 체크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이 기록이 맞다면 어마어마한 기록이다.[26] 이 인기 덕분에 애니송에 거의 관심이 없는 일본인도 "드래곤볼 부른 사람" 하면 대부분 알아듣는다.[27] 보통 애니서머에서 3축을 꼽자면 카게야마 히로노부, 오쿠이 마사미, 미즈키 나나가 들어가며 1명을 더 꼽으라면 쿠리바야시 미나미가 들어간다.[28]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시다 요코, 요네쿠라 치히로, 엔도 마사아키, 키타다니 히로시, 와다 코지가 전부 이곳 소속이다. 여기서 경력이 제일 떨어지는 사람이 키타 슈헤이와 사사키 사야카니 말 다했다.[29] 사실 이시다 요코와 키타다니 히로시는 2015년 현재 각각 데뷔 23년과 21년차이고, 엔도 마사아키도 2015년이 메이저 데뷔 20년이다.(엔도는 실제 활동한 시기가 1993년부터니, 이시다 요코와 데뷔시기가 얼추 비슷하다.) 게다가 그 뒤로 2016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는 요네쿠라 치히로(1996년 데뷔), 데뷔 16년차인 와다 코지(1999년 데뷔)인데다 하시모토 미유키, 미사토 아키도 이미 데뷔 10년은 넘겼다. 즉 소속 아티스트 중 데뷔한지 10년이 안 된 사람은 키타 슈헤이와 사사키 사야카 뿐.[30] 특히 호리에 미츠코, 미즈키 이치로와 함께 하는 빅3 콘서트의 경우 몇년 뒤의 것까지 잡힌다고 한다.[31] 그런데 이건 카게야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잼 프로젝트 멤버 모두의 문제라고 한다.[32] 참고로 카게야마의 가수 경력은 LAZY 활동으로 시작한다.[33] 드래곤볼 관련 지식은 국내를 넘어 세계최고로 평가해도 지니치지 않을만큼 대단한걸로 유명하다. 이때문에 드래곤볼 Z : 신들의 전쟁의 국내 정식개봉때 배급사측에서 자막 수정 어시스트 및 감수 부탁한 경력도 있다!!![34] 관련 예시일 뿐 이 외에도 여러 번 한국 팬들의 열정에 대한 감사를 직접 한국어로 말하였다.[35] 대놓고 2017년 2월 Return이라고 공지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이 MC를 맡는다!!![36] 엔도 마사아키와 결성한 유닛으로 실제 활동은 1997년~1998년, 다만 둘 다 현재 JAM Project 소속이다.[37] 란티스의 기념비적인 창립 제 1호 앨범.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부른 곡들을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거나 언플러그드 스타일로 어레인지 해 발매했다.[38] 이 앨범 발매 직후에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것을 인증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가 레귤러로 뛰는 모 프로그램에서도 모두들 역시 했을 정도라고.[39]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이다.[40]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41] LAZY이후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으로 타이틀곡 Beginning은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우상인 데이비드 포스터와 곡 작업을 같이 했다. 우연한 일이겠지만 10년전 7월 25일은 카게야마 본인의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인 30years 3ounce가 발매된 날이었으며 40년 전 이날이 바로 LAZY의 데뷔 싱글인 'Hey! I Love You!'가 발매된 날이다.[42] 당시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일본 콜롬비아에서 활동하면서 그가 불렀던 곡들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