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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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스파르 하우저
Kaspar Hauser
출생
사망
신장
불명
국적

1. 소개와 일생2. 출생의 비밀?3. 조작설4. 기타5. 관련 문서

1. 소개와 일생[편집]

1828년 5월 26일 바이에른 왕국에 등장했던 정체불명의 인물.

당시 독일은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던 바이에른 왕국뉘른베르크 시에서 저녁 무렵에 발견되었다. 처음 그를 발견한 사람은 구두 수선공인 베크와 바이크만이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날은 바이에른 왕국의 경축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즐겼고, 두 사람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가는데 갑툭튀한 아이가 "몰라요", "기병이 되고 싶어요" 라는 단 두 마디밖에 하지 못하면서도 두 사람을 계속 따라다녔다.[1] 베크와 바이크만은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하고 무시하고 가려고 했으나 이 아이가 쫓아오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자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이는 편지를 내밀었다. 이 편지는 군 제6 기병연대 4대대 소속 폰베스니히 대위에게 보내지는 편지라고 겉에 적혀 있었기에, 마침 군부대 근처에 사는 바이크만은 부대로 데려다주면 되겠네 라면서 군부대로 아이를 데려주고 가던 길을 갔다.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아이의 성은 하우저. 이름은 마음대로 지어주시길. 카스파르는 임시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리고 1812년 4월 30일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가난한 하녀라서 아이를 돌볼 수 없습니다. 대위님, 아버지는 평범한 기병대원인데 이미 죽고 없습니다. 이 아이를 애비처럼 기병으로 길러주셨으면 합니다. 받아줄 수 없다면 죽든지 말든지 놔두시길. 아무데나 버려도 됩니다.

그 외에 어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한 통의 편지가 더 있었는데, 조사 결과 이 둘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이었다.[2] 카스파르가 입은 옷은 근교의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서 입은 것이었다고 한다.

군부대의 초소에서 이 편지를 보고 바이에른 왕국군 제6기병연대 4대대 소속 폰베스니히 대위에게 연락했다. 대위가 연락을 받고 올 동안(4대대는 가까이 있었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는 초소의 면회 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보초병이 어떤 말을 건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말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몰라요' 라는 말 외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할 줄 몰랐으며, 모든 동물을 (馬)이라고만 불렀다. 성별도 구분할 줄 몰라서 남자건 여자건 '사나이'라고 칭했다. 병정들은 기묘한 녀석이라고 서로 신기해했는데 막상 연락을 받고 온 대위는 이 아이를 몰랐고 편지도 처음 보는 사람의 글씨라면서 짜증내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경찰서에서 조사한 결과 본인의 이름 정도는 쓸 줄 알았다고 한다.

괴상한 것은 아이의 감각이 지극히 예민했다는 점이었다. 커피나 맥주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했고 포도주는 냄새만 맡아도 취했으며, 물에 브랜디를 한 방울이라도 집어넣으면 기분 나빠했으며 어두컴컴한 방에서도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촛불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맨손으로 만졌다가 비명을 질렀고, 군인의 제복을 신기하게 바라봤으며 말을 타는 기병대원들을 보고 무서워하면서도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이 안 떠오르는지 혼자 답답해 했다고 한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경찰서의 감옥에 갇혀 지냈는데, 고기맥주를 거부했으며 빵과 물만 먹었고 시계를 보면 두려워 했다. 감옥에서 이것저것을 배우며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지식과 언어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는데, 말을 배운 이후에 카스파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3]

하우저의 말에 따르면, 약 10~12년 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2m x 1m x 1.5m 정도 되는 크기의 방에 갇혀 지냈으며, 식사는 만 먹었고 아주 가끔씩 주스와 같은 것을 주었다고 한다. 음식을 주던 사람은 항상 모자와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가끔은 음식에 약을 타서 자신의 의식을 잃게 했는데, 깨어나보면 머리카락이 이발되어 있거나 몸이 깨끗해져 있었다고 한다. 방에는 목마 2마리가 있어서 늘 그것만 타고 놀았고, 어떤 남자가 가끔 방에 들어와서 '아버지처럼 말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과 '카스파르 하우저' 라는 이름만을 가르쳐줬는데, 얼굴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상태로 지내다가 어느날 뉘른베르크 거리에 버려지고 발견된 것.

뉘른베르크 시장과 시의회는 그의 보호자를 자처했고, 시의 예산으로 옷과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짜 부모나 보호자를 찾는 전단도 뿌려졌다.

하우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외모를 관리하자 의외로 귀족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초상화를 보면 전성기 때의 네로 황제가 연상된다고도 한다.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당시 이웃나라 바덴 대공국 대공가문과 연관 짓기도 했다.

이후 1829년에 복면 괴한의 습격으로 머리에 도끼를 맞았지만 이마에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리고 1833년 12월 14일, 부모가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사람의 편지를 받고 외출했다가 칼에 찔리는 습격을 당한다. 하우저는 부상을 입은 채로 간신히 돌아왔고 그의 손에서 습격자가 남긴 것으로 추측되는 거꾸로 쓴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카스파르 하우저.
네 숨겨진 과거를 알고 싶은가?
그럼 저녁 9시에 호프가르텐 공원으로 혼자 와라.
반드시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와야 한다.

M.L.ö.

하우저는 '내 잘못이 아니다'는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사흘 후의 17일 밤 10시경에 사망했다.

2. 출생의 비밀?[편집]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1924년, 독일의 소설가 클라라 호퍼(Klara Hofer)가 필자흐 성(Schloss Pilsach)이라는 뉘른베르크 근교의 낡은 대저택을 매입하고 이를 리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것이 발견됐다. 바로 90년 전 하우저가 증언했던 그 방, 목마 2마리가 있던 좁은 방의 묘사와 꼭 들어맞는 방이 발견된 것이다. 다만 필자흐 성의 방이 정말로 하우저가 갇혔던 방이라는 증거는 정황증거조차 전혀 없으며, 현재 이 설은 별다른 주목을 받고 있지 않다.

더욱 주목받은 루머는 하우저의 출생 당시 바덴 대공이었던 칼 프리드리히의 1812년에 죽은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19세기부터 돌던 소문으로 칼 프리드리히의 아들이 괴이한 병으로 죽어 어머니에게도 시체를 보여주지 않고 서둘러 화장했으나 인부들이 아기 시체가 없다고 수근거렸던 기록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우저는 바덴 대공의 아들이며 계승에 관한 문제로 죽었던 게 아닌가 하는 논란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명한 전설이라 1996년과 2002년에 유전자 감식까지 했으나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그의 정체는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다만 하우저의 성장 과정이 상식적으로 들어맞지 않으며 사망도 자작극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빙성이 높은 루머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3. 조작설[편집]

항간에는 카스파가 당한 2차례의 습격이 정체불명의 괴한이 아니라 자작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요약하면 카스파는 관심병 환자로 자신에게 쏠린 관심이 점점 식고 귀족 후원자들도 무관심해지자 더 자극적인 사건을 일으켜서 관심을 끌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실제로 모든 후원자가 카스파 하우저를 나중에는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는 그가 그렇게 좋은 성격이 아니었고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거짓말을 통해서 관심을 받아보려고 한 게 지나쳤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두 번의 습격 사건은 전부 카스파의 조작으로, 머리부상은 크게 번지지 않고 넘어갔지만 두번째는 자신이 메모를 조작하고 어설프게 상처를 내려다가 진짜로 칼에 찔린 것이라는 추측이다. 마지막에 카스파가 살해당한 장소에는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눈 위에 발자국이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다는 게 그 근거라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습격전에 나온 편지에 나오는 오타는 카스파가 자주 틀리는 오타이고 편지가 접힌 방식도 카스파가 흔히 종이를 접는 방법과 같다는 것.

조작설의 다른 시나리오는 카스파 하우저가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콜린 윌슨에 따르면 평민 계급의 처녀가 귀족집 아들과 바람이 나서 낳은 사생아라고 그를 본다면 평민 계급의 무지한 방식에 따른 그런 비인간적인 감금도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족의 사생아 내지는 바꿔진 아이라면 그냥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평민의 아이로 자라나는 것이 편한 일이었다. 굳이 힘들게 감금하고 그걸 풀어주는 건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시나리오도 습격 사건은 모두 카스파 하우저 자신이 조작해서 벌인 촌극이라는 결론이다.

프리드리히 대공에 관한 이야기도 사실인즉 대공비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남편, 시어머니, 10명의 의사와 다수의 하녀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고[4] 그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고 병이 들어 죽었는지에 대한 선대 대공비의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이 바꿔치기가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실지로 프리드리히 대공가의 먼 후손과 카스파가 남겼다는 옷과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DNA 조사가 2000년대 이후에 있었는데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5]

만일 정말로 어린시절에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실제 자료에 의하면 어른이라도 이런 류의 감금 생활을 하면 올바른 정신을 가지기 힘들고 장애인이 되거나 백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야생소녀 지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또한 지니의 경우는 카스파 하우저보다 훨씬 열악하여 의자에 묶여 움직일 수도 없었고 조금만 소리내도 두들켜 패는 등 폭력도 많이 당했으며, 발달장애가 올수도 있다는 의사의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카스파 하우저는 구조된 후에도 좋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본인이 사망하고,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도 나오지 않아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4. 기타[편집]

카스파 하우저의 묘비에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누군가가 여기 눕다(Hic occultus occulto occisus est) 라고 쓰였다.

훗날 베르너 헤어초크가 영화화했다.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지 않는다(Jeder für sich und Gott gegen alle)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는 카스파 하우저의 신비(The Enigma of Kaspar Hauser)로 수입되었다. 주연은 브루노 S.(2010년 사망) 스트로첵의 그 배우다.

역사적인 사실, 장소 등을 즐겨 가사로 삼았던 독일 그룹 징기스칸(칭기즈 칸)도 카스파 하우저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발표했다.

조선시대에도 김위의 아들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5. 관련 문서[편집]

[1] "기병이 되고 싶다", "몰라", "내 이름은 카스파르", "말(Pferd)" 이 네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고도 한다.[2] 재미있는 건 카스파르가 글을 알게 된 후 쓰던 필체와 이것이 대단히 비슷하다. 후술한 대로 자작극이거나, 카스파르의 말대로 자신의 필체를 흉내낸 자가 썼거나.[3] 결정적 시기 가설에 따르면 16세까지 언어적으로 고립된 아이가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하우저의 자작극설을 뒷받침해주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제2언어를 익히는데 어른이 아이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으나,# 언어를 습득해야 했을 시기에 습득하지 못하게 되어 언어 체계가 아예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차후에야 제1언어를 익히는 것과 정상적으로 모국어를 습득한 아이나 어른이 제2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므로 반박이 되지 않는다.[4]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귀족의 후계자가 태어나는 경우는 상속 문제나 아이 바꿔치기등의 여러 일을 방지하고자 공개적으로 출산하는게 일반적이었다.[5] 다만 이 부분은 샘플 문제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실지로 대공가의 후손들은 카스파의 아버지일지 모르는 사람의 유품 제출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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