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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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
1.1. 칼리프의 계승(수니파)
1.1.1. 정통 칼리프1.1.2. 우마이야 - 아바스 칼리프1.1.3. 카이로 아바스 칼리프1.1.4. 오스만 칼리프
1.2. 병행 칼리프1.3. 현대의 칼리프
1.3.1. 수피 칼리파1.3.2. 아마디야 칼리파1.3.3. 다에쉬 칼리파1.3.4. 보코하람 칼리파
1.4. 칼리프 국
2. 겁스 무한세계에 등장하는 평행계3. 원피스의 등장인물4. 영화 및 음악 제목5. 나이트런의 등장인물

1.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편집]

아랍어로 할리파(خليفة, Khalīfah), 터키어로는 할리페(Halife), 영어권에서는 칼리프(Caliph)로 통칭된다. 예전에는 회교황제, 회교교황, 회황(回皇), 교주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표현은 칼리프이다.

'ㅋ' 부분은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인 무성 구개수 마찰음으로 외래어 표기법의 기타언어 표기법을 따르면 'ㅎ'로 표기하기 때문에 '할리파'로 쓴 사례도 있다. 그러나 역사 용어로는 '칼리파'라는 표기가 굳어졌기 때문에 할리파라는 표기는 "부르즈 할리파"나 "셰이흐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카타르아미르)처럼 현대 이름에서나 쓰인다. 정식으로 공표되진 않았으나,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아랍어 한글 표기법 시안에서는 h와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kh도 그냥 ㅋ로 표기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 시안을 따를 경우 '칼리파'가 된다. 어디까지나 시안이긴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에서 이를 참조한다.

본래는 대리자 또는 계승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 풀어서 쓰면 할리파트 라술 알라(خليفة رسول الله), 신의 사도의 계승자를 말한다. 할리파트 알라(خليفة رسول, 신의 대리인), 아미르 알 무미닌(أمير المؤمنين, 신자들의 총사령관), 이맘 알 움마(إمام الامة‎, 이슬람 공동체의 인도자) 등등의 별칭도 자주 쓰였다.

물론 맘루크 왕조와 같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시절도 있었지만, 전근대 기독교교황과 마찬가지로 종교뿐 아니라 정치까지 맡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1]. 그런데 사실 세계사에서 제정일치의 군주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파라오, 일본덴노가 그러했고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단군, 궁예, 김일성[2]등 제정일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칼리파의 경우 동시대의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흔히 칼리파와 비교되는 가톨릭교황같은 경우, 교황령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통치자였고, 가톨릭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신성 로마 제국황제와 팽팽한 대결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교황의 경우 명목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모든 가톨릭 교권의 정치적 통치자는 아니었다. 설령 교황권의 전성기에 황제권에 대한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했을지언정, 속계(정치)의 제 1인자는 황제였고, 교황은 종교계의 1인자로 그 영역이 명확히 갈려있었던 것. 이에 비해 칼리파는 원칙적으로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였고,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에는 실질적으로도 이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중세 가톨릭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칼리파의 위치는 교황이 아니라 교황+황제 정도에 해당한다.(교황이 교황령을 통치하는 세속 군주로써의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가톨릭 세계의 일부분에 대한 세속 군주의 측면 가진 것을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명목상 이슬람권 전역의 최고 지배자로 여겨지던 칼리프의 권력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 비교할 경우, 사실 조직화된 종교에서 제정일치 체제 그것도 교리적으로 공인된 제정일치 체제가 나타나는 사례 자체가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다. 애초에 제정일치 체제가 제일 흔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성읍국가나 군장국가 수준의 초기 국가체제에서 사제제사장이 통치자를 겸하는 경우인데, 당시의 국가 단위(솔직히, 현대 기준으로는 그냥 동네 하나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경우가 많다.)에서 제일 존경받고 똑똑한 웃어른인 제사장이 재판이나 분쟁조정 등의 세속적 정치 영역까지 담당하는 것이라, 세속적 권력이든 종교적 권위든 이후 시대의 국가나 종교만큼 체계화된 것이 아니었다.(위에 제시된 사례 중에는 대략 단군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3]

결국, 이슬람의 칼리파는 고도로 체계화 된 종교 및 정치체계의 제정일치 지배자로써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예인 것은 사실이다. 굳이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다면 고대 일본의 텐노 정도가 아니면 비교하기 힘들다.

1.1. 칼리프의 계승(수니파)[편집]

1.1.1. 정통 칼리프[편집]

처음에는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움마를 통치할 지도자를 지명하기 위해 '선출'되었으며, 세습제를 체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군주제의 형태를 띄었다. [4] (정통 칼리파 참조) 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가 암살되었다.

1.1.2. 우마이야 - 아바스 칼리프[편집]

무아위야 1세가 칼리파 자리를 차지한 뒤, 세운 우마이야 왕조부터는 직위가 세습되기 시작했지만 선출의 관례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어서 칼리프 세습제 전환을 완강히 반대하는 신도들이 후세인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에 의해 진압당하고 후세인도 비참하게 살해당함으로써 세습제가 정착되었다. 그리고 후세인은 후세에 와서는 키케로정몽주와 비슷한 인물임에도 현대에 들어와서는 어떤 독재자의 이름으로 쓰인덕택에 이름자체가 안습한 취급을 당한다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한 압바스 왕조 때부터 수니파는 무하마드의 일족 쿠라이쉬가에서 칼리프를 세습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었다. 시아파알리의 자손에게 칼리파의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했고 하와지리파는 사도의 혈통에 구애되지 않고 정통 칼리프 시대처럼 신앙의 독실함에 따라 선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다 중반부, 9세기 말 이후부터는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고 명목화된다. 술탄이나 , 아미르들이 땅 차지하고 나면 확인 도장 찍어주는 역할. 이 때부터는 일본막부 시절 덴노와 마찬가지로 꼭두각시 신세. 셀주크 왕조가 붕괴한 뒤 잠시나마 권력을 되찾는 듯 보였으나 곧 몽골의 침입으로 압바스 왕조는 일단 멸망했다.

1.1.3. 카이로 아바스 칼리프[편집]

이집트맘루크 왕조가 압바스조의 혈통 중에 어리버리한 놈 하나를 데려다가 칼리파랍시고 카이로에 모셔 놓는다.노예 왕조에서 정통성이 취약해 서로 죽고 죽이는 군벌간의 다툼이 많았던지라 정통성 강화 차원에서 얼굴마담이 하나 필요 했던것. 결국 그렇게 꼭두각시가 되서 조종 받고 살다가 오스만 제국셀림 1세가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후 오스만 술탄에게 칼리파 직위가 넘어갔다.

1.1.4. 오스만 칼리프[편집]

오스만 제국은 칼리파 칭호를 정식으로 얻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사실 정식으로 양도받기 전에도 이미 자칭하고 있었다.) 그저 술탄의 수많은 칭호 중 하나 정도로 취급되었다. 다만 18세기 말부터 러시아프랑스가 오스만 제국내 정교회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에 대항해 자국내 무슬림 밀레트의 대표자로써 칼리파라는 호칭을 재부각시켰고, 이를테면 러시아와 맺은 '퀴췩카이나르자(Küçük Kaynarca)조약'에서도 오스만측 국가원수를 '칼리파'로 칭하고있다. 이후 오스만 제국에서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고 있는 이슬람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의 칼리파를 그들의 대표자, 혹은 정신적 지주로 여기도록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에서 보낸 밀사들은 인도, 중국, 일본같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이슬람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5] 또한 칼리파를 오스만 제국이 계승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도 한동안은 무슬림들이 메카를 순례할때, 고향을 떠나서 제일 먼저 칼리파가 살고 있는 이스탄불을 순례한 다음에 메카로 떠나는 풍습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자 칼리파)이였던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이 1922년 케말 파샤에 의해 퇴위당하면서 술탄제는 폐지되었지만, 칼리파 직위만은 사촌 압뒬메지트 2세가 이어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 4개월 뒤인 1924년 봄 완전 폐지되어, 칼리파 직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한때 메카 태수 후세인 빈 알리[6]가 칼리파를 칭하기도 했다.

1.2. 병행 칼리프[편집]

1.2.1. 파티마 칼리프[편집]

909~1171

시아파 이스마일 파에 속한다.

1.2.2. 코르도바 칼리프[편집]


후우마이야 왕조는 당초 안달루스 지방의 에미르를 자칭했으나, 서기 900년대 초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가 나타나서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해오자 이에 대항하여 자신들도 칼리프를 자칭하게 된다.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다음으로 번영한 코르도바를 다스리고 초기 칼리프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인 자신들이, 갑툭튀한 파티마 왕조 따위도 칼리프 하는데 칼리프 못할게 뭐냐는 생각이었을지도. 아무튼 칼리프 칭호는 우마이야 왕조의 권위를 크게 높여주었다.

1.2.3. 무와히드 왕조[편집]

1147–1269

얘들도 칼리프 칭호를 자칭했다.

1.3. 현대의 칼리프[편집]

터키의 칼리파 폐지 이후로는 실권과 영토를 가진 정통파 칼리파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군소 교파나 이슬람계 이단 교파에서 칼리파를 자칭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 이슬람주의자들의 목표 중 하나는 칼리파를 새로이 뽑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칼리프가 다스리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도 서구 기독교 국가들에 의한 정신 오염이나 전통 파괴, 종교의 권위에 대한 도전 등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주 목표는 이슬람 세계의 단결이기 때문에 단결의 상징으로써 칼리파를 세우고 그 아래 단결하자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강고한 국민국가, 민족주의 체제 하에서는 거의 가망이 없는 소리다.

'모든 이슬람 세계를 아우르는 지도자인' 칼리파를 다시 세우자는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정말 거의 가망이 없겠는 공론이지만, 이슬람의 발원지이자 중심지인 중동-아랍 영역(대충 이집트,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에 한정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문제이다. 복잡한 정치상황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아랍 지역의 민족주의는 통일된 아랍국가를 지향하는 범 아랍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전성기였던 19세기 이후부터 통일 아랍국가 운동은 아랍 민족주의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20세기 중반까지는 이런 아랍 민족주의 운동이 근대국가(세속국가)를 지향했다는 점 때문에 이슬람주의 운동과 서로 충돌했지만, 반 서구라는 공감대가 있는 이상,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가 결부된 (칼리프를 구심점으로 한) 통합된 아랍국가를 지향하는 운동이 나타나는 것 자체는 (성공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가능한 일인 것. 그러나 아랍 역시 세속적인 범 아랍주의랑 종교적 이슬람주의가 대립하기 때문에 영 한량없는 줄거리다.

수니파와 시아파 양대 교파가 칼리파를 자칭하려면 아무래도 이슬람의 성지 세 곳(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의 수호자라는 실질적 지위가 붙어있어야겠으나,[7] 현재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실효 점유하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 국가의 점유하에 있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정통파 칼리파가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서방 국가들의 개입 능력 감소. 경제난과 독재의 결합으로 인해 폭발한 민심에 따른 중동 지역의 국가 막장 테크 진입. 여기에 본질적으로 세속주의보다는 종교주의에 가까운 이슬람 사회 특성상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결국 사이비 테러리스트 집단 다에시가 이슬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칼리파를 자칭했다.

1.3.1. 수피 칼리파[편집]

1.3.2. 아마디야 칼리파[편집]

나무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61px-Khal%C4%ABfatul_mas%C4%ABh_al-kh%C4%81mis.jpg

아마디야 칼리파직은 1908년 5월 창립되었다. Mirza Masroor Ahmad(1950~)는 아마디야의 5대째 칼리파로, 2003년에 계승하였다. 칼리프좌는 파키스탄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이슬람 주류는 아마디야를 이단 취급하는지라 지아울하크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의 탄압 때문에 1984년에 런던으로 망명했다.

1.3.3. 다에쉬 칼리파[편집]

반면 2014년 다에쉬(ISIL)에서 90여 년 만에 마침내 결국 칼리파를 부활시켰다. 다만 이슬람 국가의 칼리파는 여러곳에서 제대로 공인된 칼리파가 아니다. 즉, 사칭 칼리프.

1.3.4. 보코하람 칼리파[편집]

보코하람 역시 칼리파를 자칭하였으나 다에시에게 충성맹서를 하여 취소하였다.

1.4. 칼리프 국[편집]

칼리파를 지도자로 삼았던 이슬람 국가(Caliphate, الخلفاء)들은 다음과 같다.
왕조 명칭
연대
비고
632~660
최초의 칼리파이자 선출 칼리파
660~750
최초의 세습 칼리파
750~1258
동서 이슬람 분열
756~1031
스페인에 위치. 929년부터 칼리파를 칭함
909~1171
이스마일파 왕조
1261~1517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선양.
1517~1924
최후의 칼리프국가 터키 공화국 종교부로 역할이 넘어감. 칼리파제 폐지.

2. 겁스 무한세계에 등장하는 평행계[편집]

3. 원피스의 등장인물[편집]

칼리파(원피스) 문서 참고.

4. 영화 및 음악 제목[편집]

La Califfa. 1970년 이탈리아 영화.

과부가 된 젊은 미망인 이슬람의 교주 칼리파가 죽은 남편이 일하던 공장에 일하면서 거기 사장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보다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은 음악이 더 유명하며 세라 브라이트먼노래로 불러서 국내 TV 광고배경음악으로도 나와 알려지기도 했다.

5. 나이트런의 등장인물[편집]

[1] 교황도 근현대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황령 내에서는 국가원수였다. 게다가 잘 나갔을 무렵의 교황령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 대부분을 영유하는 대국이었다.[2] 취소선을 치긴 했지만 사실 주체사상은 그 자체로 종교다.[3] 그리고, 궁예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솔직히 불교 교리 어디에도 궁예를 미륵불로 인정하는 부분은 없다. 이건 말하자면 궁예가 일방적으로 미륵불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종교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통하여 권력을 강화한 사례이지, 공식적인 교리로 보장되는 제정일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이슬람 세계에서야 '난 너 칼리파로 인정 안 해!' 라고 생깔지언정 칼리프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었던 데 비해,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한다고 태봉 사람 말고 누가 그걸 인정해 줬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4] 이때는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다르게 임기제의 개념이 없었고 신도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해서 뽑는 방식이 아니라 각 부족장들과 이맘들이 협의를 거쳐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과두제적인 성격이 있었다. 애초에 이때는 민주주의 공화정 자체가 역사책에서나 볼수 있던 제도였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여하튼 칼리프가 원래 선출제였던 덕택에 칼리프 세습제가 도입되자 현대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시대를 앞서나가던 종파도 생겨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다 사멸당해버렸다. 안습 [5] 이때 밀사로 파견된 사람중에서 크림 출신의 압뒤르레시드 이브라힘(Abdürreşid İbrahim)은 중국에 거주하는 위구르를 비롯한 무슬림들에게 파견되는 와중에 조선일본을 들러 이 지역의 상황을 터키에 보고하기도 했다.[6] 하심 가의 당주로, 요르단의 압둘라 1세와 시리아-이라크의 파이살 1세의 아버지[7] 이 때문에 메카와 메디나를 점유하여 사실상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패권국가로 군림중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자신들을 두 성지의 수호자로만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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