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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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공화국
República de Cuba
파일:쿠바 국기.svg
국기
국장
¡Patria o muerte, venceremos!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하리라!
[1]
국가
면적
109,884km²
수도
인구
11,317,468명(2021년)| 세계 83위
공용어
정치 체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40위(2020년)[권위주의]
공산당 1서기
대통령
부통령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총리
마누엘 마레로 크루스
전국인민권력회의
의장
에스테반 라조 에르난데스
명목 GDP
1,000억 $ (2018년) #
명목 1인당 GDP
8,821$ (2018년) #
$1,510억 / 세계 82위(2020년)
HDI
0.778 (2018년)
통화
시간대
CST (UTC-5)
국제 전화
+53
전원
120V 60Hz
도메인
.cu
민족구성
백인 64.1%, 메스티소 26.6%, 흑인 9.3%
종교분포
가톨릭 약 45~50%, 무종교, 무신론 20~45% 외[3]


1. 개요2. 국가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공용어4. 역사5. 문화
5.1. 영화5.2. 성문화
6. 스포츠
6.1. 야구6.2. 배구6.3. 축구6.4. 그 밖에
7. 정치8. 경제9. 사회
9.1. 의료9.2. 교육9.3. 치안
10. 군사11. 여행12. 관타나모 해군 기지13. 기타14. 외교15. 쿠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havana-012.jpg

카리브에 자리잡은 아메리카 대륙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 수도는 라 아바나(La Habana). 줄여서 아바나라고도 한다.[4]

인구는 약 1,131만 명(2021년), 국토 면적은 약 109,884㎢로 대한민국(남한)보다 조금 더 넓고 북한보다 조금 좁다. 북으로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서쪽에는 멕시코 본토, 동쪽에는 아이티, 남쪽으로는 자메이카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지도를 펼쳤을 때 플로리다 바로 남쪽에 보이는 동서로 길쭉한 나라가 바로 쿠바이다.

카리브 해 최대의 섬나라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섬이다. 카리브해 최대의 도서국가로 15세기 후반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방문했던 곳이다.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기 전에는 타이노인 같은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스페인인이나 아프리카 흑인들과 혼혈되면서 현재는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

2. 국가 상징[편집]

쿠바 국가 상징의 재밌는 점은 공산주의 나라 가운데 공산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말(사회주의, 인민 등)이 나라 이름으로 쓰이지 않고, 꼭 공산국가에 민주주의가 안 되는 나라가 나라이름에 민주주의를 붙이더라혁명 이전의 국호와 국기[5], 국가를 공산정권 수립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장에는 파스케스까지 있다. 이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주의 혁명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2.1. 국호[편집]

국호인 '쿠바'의 유래는 지금도 불명확하다. 콜럼버스 도래 이전의 원주민인 타이노인의 언어에서 오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다.

한편, 포르투갈에는 지금도 'Cuba'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데,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인이라고 주장하는 소수 재야사학자논자[6]들은 쿠바라는 이름이 이 동네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어권이나 일본에서는 나라 이름을 '큐바'라고 읽으나[7], 현지 스페인어 발음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쿠바와 가깝다.

2.2. 국기[편집]

빨간색 삼각형과 안쪽의 흰 별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파란색과 흰색의 줄이 합쳐서 5개 배치되어 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공산주의의 상징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라오스와 쿠바 외에는 없다.

세 개의 파란 줄은 스페인으로부터 쿠바가 독립할 때 세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것을 상징하고, 흰색 두 줄은 순결을 상징한다. 왼쪽의 붉은 삼각형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함과 동시에 용기와 붉은 피를 상징하기도 하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별은 독립을 상징한다.

이 깃발은 1850년에 쿠바의 독립운동가 나르시소 로페스(Narciso López)가 디자인한 것이다. 비록 그의 무장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디자인한 국기는 계속해서 쿠바 독립진영의 상징으로 남았고 정식 국기로 지정되었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에도 국기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오히려 쿠바 공산당 로고에 국기를 박아넣었다.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의 깃발과도 유사한데, 이는 19세기 말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들이 쿠바 독립운동가들을 본받아 독립운동을 하면서 깃발도 쿠바 국기에서 본떴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독립운동 진영의 에스텔라다(Estelada) 깃발 역시 쿠바 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카탈루냐 깃발 세녜라(Senyera)의 왼쪽에 독립을 상징하는 푸른 삼각형과 흰 별을 박았다.

2.3. 국가[편집]

국가1902년에 채택된 바야모 행진곡이다.

3. 공용어[편집]

공용어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쿠바 내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표현들이 쓰이고 있고, 중남미 쪽 스페인어(특히, 카리브 스페인어)와 관련이 깊은 편이다.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어도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 공용어에서 제외됐다가 2019년에 러시아어 프로그램이 다시 개설되는 등 쿠바에서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방문해보면 관광지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호텔에서도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나마 통하는 곳은 시가 박물관 정도. 쿠바 가이드북에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간단한 스페인어 몇 가지는 익혀서 방문하라고 나와 있다. 냉전 때는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가졌고 이후로는 주로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가 잦다. 학교에서도 영어 교육 과정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개혁개방이 되고 혁명 후 단절되었던 미국과의 재수교가 이뤄지면서 교육과정에 영어 과목이 포함되었고, 카사나 택시 등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은 영어 회화가 가능한 경우도 점차 느는 추세다. 특히 요즘 10-20대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세대여서 그런지 영어를 대강 알아듣는 편이다.

예전에 쿠바에서는 타이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타이노어도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소멸되었다.

4. 역사[편집]

5. 문화[편집]

5.1. 영화[편집]

5.2. 성문화[편집]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성이 개방되어 있으며 중고등학생들 간에도 미혼모가 흔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기를 낳은게 그다지 흠이 되진 않을 수준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미녀들이 유명한데다가 쿠바가 빈국이라서 매춘을 하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현지인들 기준에서 크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매춘업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사실 쿠바에서 매춘은 불법이지만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 봐주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가끔 가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단속을 강화하기 때문에 이때 간다거나 처신 잘못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 매춘부 중에는 미성년자도 꽤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이 멋모르고 이런 미성년 매춘부와 성관계를 했다가 귀국 후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8] 쿠바의 매춘은 워낙 악명이 자자해서 피델 카스트로가 생전에 기자회견에서 "쿠바의 어린 여성들이 매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돌직구 질의를 받는 일마저 있었다. 카스트로는 멋쩍어하면서 "불행하게도 우리의 어린 딸들이 그런 길에 접어들었지만 그녀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하면서 연소자 매춘 창궐을 암묵적으로 시인했을 정도.

2015년 미 국무부 자료에는 관광객에 대한 범죄 증가가 우려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2017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MEDIUM 등급이다.[9]

6. 스포츠[편집]

6.1. 야구[편집]

쿠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중남미에서 야구를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이기도 한데, 1864년, 네메시오 기제토가 미국 유학 도중 야구에 흥미를 느끼고 모국에 전파하기로 결심해서 야구 규칙을 쿠바에 전파했다. 또한 이 해 아바나에서 쿠바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렸고 10년후인 1874년 마탄사스주에서 첫 공식 야구 경기가 개최되었다. 1년 후인 1875년에 아바나에 쿠바 최초의 야구팀이 창설되었고 1878년에는 3개의 프로팀이 참가하는 중남미 첫 프로야구리그이자 1876년에 메이저리그가 문을 연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 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 해 야구 붐이 일어 쿠바 내 프로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890년에는 무려 75개에 달했다고. 물론 이 프로리그는 쿠바 혁명 이후로는 실업리그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업리그 답게 선수들의 봉급수준은 많아봐야 월 백 수십달러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기에[10] 주전급 선수의 경우에는 멕시코 등지로 밀입국해 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미국 야구계에 진출하려면 쿠바 국적을 포기해야 하므로 쿠바인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당연히 미국에 가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한다면 쿠바에서와의 삶과 크게 다를 것도 없기는 하지만...[11]

현재는 미국 망명을 포기하고 그 대신 쿠바인 국적으로 합법적으로 해외 진출이 가능한 일본이나 멕시코로 가는 선수들도 꽤 있다. 이 나라들은 미국과 달리 일단 쿠바와 적대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가능. 대표적인 선수로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리반 모이넬로, 로엘 산토스, 프레데릭 세페다 등이 있다.[12]

여하튼 이런 역사와 인프라 덕에 올림픽, 야구 월드컵 등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고, 이런 모습들 때문에 아마야구의 본좌[13]로 불린다. 하지만 아마추어 야구 시절과 달리 2010년대 들어서는 국제 대회에서 몰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아졌다. 자세한 것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메이저리그에서 쿠바 출신 유명인하면 단연 토니 페레즈가 아닐 수 없겠다. 빅 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14],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쿠바 출신 야구 선수라 쿠바에서는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한편 이 나라 출신인 투수 유네스키 마야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한 적 있고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적 있다.[15] 최근에는 2018년 LG 트윈스아도니스 가르시아가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먹튀짓만 하고 돌아갔다.
가장 최근엔 2019년 부터 뛰고 있는 두산의 호세 페르난데스단일시즌 외국인 최다안타[16]단일시즌 안타수 역대 2위[17], 3위[18]를 기록하였다.

2012년부터 쿠바의 10-20대 층에서 야구 인기가 급감하고 축구 인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쿠바 야구의 위기라는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었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년 후에 거듭 같은 내용을 보도한 걸 보니 야구 인기의 급감세가 상당히 뚜렷해보인다. 몇년 전 국내 야구기자인 박동희 기자, 정구현 기자도 쿠바를 취재하여 현지인들에게도 이런 반응이 많고 야구를 즐기는 아이들보다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고 칼럼을 썼을 정도이다. 당시 취재 시 인터뷰를 한 쿠바 야구인은 위에 사례대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가장 큰 이유가 야구 스타들이 매년 미국으로 망명하다보니 생긴 부작용 때문이며 경제난으로 인해 많은 유지비가 필요한 야구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8년 12월에 쿠바 당국과 메이저리그가 협정을 맺음에 따라 쿠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합법적으로 진출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쿠바 선수들 입장에서 미국에 가려고 감옥까지 다녀오며 배를 타거나 멕시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같은 제3국에 가서 망명 신청하려고 비행기 탈 돈을 꼬박꼬박 모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쿠바 야구협회 입장에서도 거액의 이적료로 운영비나 경기장 보수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이번 협정을 쿠바 야구 부활의 신호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고 무효를 선언했다. 한동안은 계속 메이저리그를 가려면 망명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아직은 야구를 많이 즐기긴 한다. 쿠바를 여행한 국내 여행자가 쓴 책을 봐도 실업리그라 경제적 대우가 어렵긴 해도 현지 야구리그를 보러가니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고 썼다. 뭐 이런 책자에서도 현지인과 친해지면 야구장에 아이들이 없어 미래에 어찌될지 모르겠다는 야빠들의 걱정이 나오긴 하지만...

한국 돈 천 원 정도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듯 하다.

6.2. 배구[편집]

배구도 남녀 모두 수준급이었으나, 현재는 많이 망가진 상태이다. 특히 여자배구는 90년대는 쿠바를 따라 올 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세계 최강이었다. 소련(현재의 러시아) 이나 중국, 브라질 등 기타 강국들은 쿠바의 기세에 눌려서 기도 못 폈다. 쿠바 여자배구는 올림픽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란타, 2000시드니 올림픽)가지고 있다. 또한 FIVB 배구월드컵 4연패(1989, 1991, 1995, 1999)라는 대기록도 가지고 있고, FIVB 세계선수권에서도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이 있다. 그야말로 90년 쿠바 여자배구는 전성기였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동메달을 기점으로 많이 내려앉아 현재는 여자배구 최약체로 분류된다.[19] 지금은 올림픽 본선에조차 못 오르는 형편이다.

남자배구 또한 여자배구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 강호이다. 쿠바 여자배구가 급격히 세계 배구계 정점에서 추락한 것과는 달리 꾸준히 세계 상위 클래스에 있었고, 최근 2010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도 없을 뿐더러 여자배구와는 달리 남자배구계에서는 완전한 강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2016년 FIVB 월드리그대회에서 쿠바 남자배구 국가대표선수들이 단체로 핀란드에서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선수 12명 중 3명이 체포되고, 나중에 5명이 추가로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20] 더군다나 해당 선수들 중에서는 2016-2017시즌 국내팀과 계약한 선수까지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배구연맹의 중징계가 불가피한 가운데, 어수선한 팀 분위기로 당장의 월드리그 경기 문제가 아니라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참가조차도 박탈될 우려가 있는등 불투명해지면서 쿠바 배구에 한층 더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한국 V-리그에서도 레오나르도 레이바, 오레올 까메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 등 쿠바 출신 용병들이 많이 뛰기도 했다.

6.3. 축구[편집]

중남미에서 최고의 스포츠 강국이라지만, 대신 중남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가 부진한 편이다. 쿠바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그래도 1938년 3회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를 3:3, 2:1로 이기고 2차 토너먼트인 8강까지 올라가서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 4강을 거둔 미국에 이어 북중미 나라로서 2번째 월드컵 1승을 거두고 2차전까지 올라간 팀이다. 비록 8강전에서 우승후보급인 스웨덴에게 0:8로 털렸고 이후로 80년 가까이 월드컵 본선에 못 오르고 있지만.(중미 나라로 다시 1승을 거둔 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가 52년만에 거두게 된다.)

이후 쿠바 축구는 한국에서는 소식이 없다가 2002년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골드컵에서 쿠바와 맞붙어 0:0으로 비기는 통에 당시 히딩크호가 많은 욕을 먹기도 했다. 히딩크호는 미국에게 1-2로 패하며 1무 1패 1득점 2실점으로 쿠바와 동률이 되었으나 골득실차로 1무 1패 0득점 1실점인 쿠바를 겨우 제치고 8강 토너먼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당시, 조중연 축구기술협회 전무는 약체 쿠바와 무승부도 고민할 사항이라며 언론 인터뷰로 이런 부진이 계속되면 히딩크 유임 여부가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그나마 8강전에서 4년전 멕시코를 승부차기로 이기고 4강까지 올라서 히딩크 감독은 그대로 유임되었지만. 이럴 정도로 당시에는 쿠바는 야구라면 모를까 축구는 별 볼일 없다라는 인식이 많았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쿠바에서 일을 했을 적에 체 게바라도 쿠바에서 럭비와 축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할 정도였다고 하며 가끔씩 축구를 하기는 했지만 당시 쿠바 내에서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야구광으로 알려진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의 영향 덕택인지 70년대 초부터 축구도 같이 즐겨봤다고 하며 후에 마라도나와 친하게 지내면서 축구 속성 과외(?)를 받기도 했고 2014년 월드컵때 마라도나를 칭찬하는 김에 메시가 훌륭한 선수라는 찬양글을 남겼다.

2021년 3월, 쿠바축구협회가 해외로 망명한 유망주 5명을 국가대표팀에 소집했다. 대표적 수혜자가 노리치 시티 FC오넬 에르난데스.

6.4. 그 밖에[편집]

올림픽 스포츠 강국으로,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67개를 땄다.참조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의 스포츠 강국으로 통하며,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어권 국가 중에서는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아시안게임 격인 팬아메리칸 게임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땄다.

쿠바가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무렵이다. 다른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처럼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을 실시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이러니 쿠바 스포츠 자체가 트레이닝법도 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 의외로 선진화되어있고 환경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니 쿠바의 선수들은 전업으로 뛰는 프로선수라도 공식적으로는 전원 아마추어(특히 복싱)라는 점이 국제대회에서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 야구나 권투나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리그나 프로 라이선스 관계로 대표팀에 나오는 선수들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쿠바만큼은 제약 없이 내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쿠바의 예산상(...) 문제로 선수들에게 봉급을 많이 주지는 못해서, 외국리그에서의 성공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외국으로 튀는 선수들도 많다.[21]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공식사이트에서 남자부 랭킹을 보면 10체급에서 1위 4명이 쿠바 선수다. 쿠바가 1위 선수가 가장 많다. https://www.aiba.org/rankings-2/

다행히 미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이런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다만 경제 제제는 여전히 유효해서 완전히 자유화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쿠바 정부는 드디어 자국 스포츠 선수의 프로진출을 허용하는 정책을 공표했다.[22] 이로써 쿠바의 우수한 야구·배구선수 자원이 세계 야구리그와 배구리그 곳곳에 전파되어 야구·배구 수준에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쿠바는 미국과는 아직도 껄끄러운 관계라 대다수의 선수들이 미국보다는 아시아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지로 많이 진출하길 원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한국프로배구는 사전에 쿠바 배구 선수들을 접촉하여 중국, 일본에 뒤쳐졌었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쿠바 출신 선수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2012-13 시즌에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23], 쿠바 국가대표 출신인 카메호 오레올 드루티(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등이 처음으로 V-리그에 진출했고, 이 중 레오는 대한민국 무대에 적응하면서 V-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다. 2013-14 시즌에는 역시 쿠바 국가대표팀 출신인 마이클 산체스 보줄레프(등록명 산체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가 레오와 함께 V-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2014-15 시즌에는 쿠바 국가대표팀의 간판 센터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서 뛰고 있다.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베이징 올림픽 야구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뛴 프레드릭 세페다와 율리에스키 구리엘과 계약했다고 한다. 일부 팬들은 우리나라는 알아보지 않았냐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위의 배구에서도 봤듯이 몇몇 구단이 조사는 했었다고 한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는 직접 사람을 보내기도. 물론 장점만 있다고 할 순 없다. 이 점들은 박동희칼럼을 참조.

육상 높이뛰기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는 2m 45cm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열대지방 국가라서 동계 스포츠 인프라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동계 올림픽에는 참가조차 한 적이 없다.[24] 쿠바는 동계 올림픽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나라 중에서는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이기도 하다.

7. 정치[편집]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회인 인민권력국가회의 대의원들을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하며 인민권력국가회의 대의원들이 행정부인 국가평의회 각료들을 선출한다. 물론 해당 의석은 쿠바 공산당 당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건 당연한 사실이고(...)

사실 197-80년대에는 그럭저럭 굴러간 편이기는 했지만 소련이 망한 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다. 현재는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 편이지만 이 당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월급 수준이 낮은 데다가 물자가 상당히 부족하고 제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2011년 4월 19일, 쿠바 공산당 제6차 당대회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제1서기직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면서 마침내 모든 공식 직책에서 은퇴, 사인(私人)으로 돌아갔다. 1959년 집권한 이래 무려 52년 만.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미국에선 대통령이 무려 10명이 바뀌었다. 공식 직책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 현 쿠바의 1인자가 그의 동생이라는 점을 볼 때 국가 최고 원로로서 가장 권위 있는 조언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은 300여 개의 경제개혁안을 통과시켜 쿠바 체제의 일신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쿠바인의 해외여행 제한 완화를 결정해 의사를 포함한 고급 기술자의 정부허가 없는 국외 여행도 자유화시켰다. 그동안은 이런 고급 기술자는 해외 망명과 두뇌 유출 등을 우려해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생각보다는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인 북한마냥 사상의 자유가 완전히 통제된 막장국가는 아니며, 루마니아를 제외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최소한 우리는 북한처럼 1인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면서 비웃을 정도로 북한은 괴이한 존재였다. 일단은 대놓고 기자 앞에서 나라 욕을 해도 안 잡아가는 것도 윗 동네에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뭐 이미 쿠바에 자본주의 음악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힙합 음악가들도 있고, 쿠바의 펑크 록밴드들의 존재가 확인되어서 서방 국가에 충공깽을 선사한 바 있다. # 내래 인민의 락을 보여주갔어 심지어 안티파(!) 쿠바지부도 있다.(...) 대체로 하는 일이 해외 출장 뛰는 것이긴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목표는 대략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를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이라 한다. 아무튼 이런 단체가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국가 그 자체와 공산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실제로 했다간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는 일당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이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성조기 비키니를 입은 처자를 해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서구 문물의 자유로운 수입은 보장되지 않지만 그래도 국영 TV 방송사에서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나 텔레노벨라, 유럽 애니메이션, 한국 드라마 등 다른 국가의 TV 프로그램들을 많이 수입해서 방영하고 있으며, 외국 음반도 대부분은 불법이기는 하지만 암시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또한 가정집으로 외부의 영상물이나 게임 등을 복사한 다음에 일정액의 돈을 받고 각 가정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상상이상으로 잘 발달되어있으며 지하 인터넷망을 통해서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 각종 스포츠 경기, 뮤직비디오, 심지어 비디오 게임까지도 다운받아서 복제한다. 이를 빠케테라고 하는데 쿠바법상으로든 쿠바 외의 저작권법상으로든 합법은 아니지만 빠케테 운영자들이 쿠바 체제에 위협적으로 보일 시사-뉴스프로그램이나 영화, 선정적인 포르노물은 중간에서 적절하게 검열하는 노력을 하기에, 당국에서도 특별한 단속은 하지 않는다. 가격도 1시간 인터넷 사용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으로 싼 편이라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먹고사는 수준의 집안이 아니라면 많이 애용한다.

정보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어차피 중남미에서 자주 교류하는 국가들도 선거로 정권을 창출하는 나라이고 국영 TV나 국영 매체를 통해서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는 선거에 대한 보도는 하기에 사실 알건 다 알기는 하다. 외국인 관광객들 가운데서도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통제는 유명무실한 상황, 거의 70~80년대에 남대문 시장에서 수입품 사던 것, 세운상가에서 빨간 거 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되는 수준이라 한다.[25]

사회 시스템은 사실 성공적인 국유화 정책 덕분에 의외로 공공재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편이다. 일단 시스템상으로는 그렇다. 일단 교육제도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문화 전반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서인도제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90년대 경제난의 후유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수준은 보장하지 못한다.

정치 시스템은 일당제 인민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정치 없는 관료제의 특성이 크다. 그리고 중국보다 관료제의 폐해가 덜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제 우리도 슬슬 다당제 할 때 되지 않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일 잘 되어 있는 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제로서, 당과 사상에 관계 없이 지역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선거로 유명하다. 물론 입법부, 행정부 선거는 결과적으로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다.[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7]의 편집인이자 유엔 자문의원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를 출간하며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 쿠바의 정치 현실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올 것이다. 물론 걸러 들을 부분은 알아서 걸러 듣자.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카스트로 체제는 국내에서 필사적인 단합을 권장했다. 그래서 일당체제의 원칙을 유지했다. "포위된 성채에서 모든 이견은 배반이다."라고 외친 성인 로욜라 이냐시오(Loyola Ignacio)의 낡은 신조를 자기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엄한 제재를 가했다. 그래서 국제사면위원회의 연간 보고서는 자유분야(표현의 자유, 의견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서 쿠바 당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쿠바에는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수감됐다."라고 보고했다.
어떤 이유든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철폐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민주주의자도 견해 차이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으며, 최고형인 사형제도를 아직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이런 비판적 보고서는 쿠바에서 육체적 고문이나 정치범의 실종, 정치적 암살이나 공권력으로 진압된 시위가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또한 쿠바 체제에 반대한 그 어떤 민중 봉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근 국가들-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심지어 멕시코까지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반체제인사들, 기자들, 신부들, 시장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상 범죄는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국가들이나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수천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놀라운 사망률, 문맹률, 무주택자, 실직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들, 거리의 아이들, 빈민가, 범죄율, 온갖 종류의 범죄... 쿠바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는 특정 개인을 공식적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 비록 피델의 모습은 언론과 방송,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초상화나 동상은 없으며 동전도 없다. 피델 카스트로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 혹은 기념탑도 없다. 아직 살아 있는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헌정된 것도 없다.
외부의 압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주권을 고집하는 이 조그만 섬나라는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 추방,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일반적인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인간 차원의 진보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교육과 건강, 의료와 스포츠 연구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그룹에 속할 정도이다.
외교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능동적이고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카스트로 체제는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과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또한 쿠바 군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큰 규모의 전쟁, 특히 에티오피아와 앙골라 전쟁에 참가했다. 쿠바는 앙골라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리트 사단을 격퇴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체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쿠바 혁명 이후 미국과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교류를 위해 아바나와 워싱턴 D.C에 상대의 이익대표부를 두고 있었다. 아바나 주재 미국대표부 청사의 경우 쿠바 정부에서 묘한 꼼수(?)를 썼다고. 청사 건물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 줬다거나 대표부 직원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미국대표부 건물 주위에 미국 CIA에게 암살당한 쿠바 인사들의 사진을 걸어 놨다고.

지난 2013년 2월 24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이 아바나에서 열린 제8기 국회(정식명칭은 인민권력국회) 1일차 회의에서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24일에 퇴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 동지인 호세 라몬 마차도 평의회 수석부의장, 라미로 발데스 부의장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의 은퇴 공약인 만큼 형 피델과 다른 원로들과의 정치적 합의도 이미 끝난 것으로 판단되며, 동시에 차기 지도자로 라울 카스트로 본인보다 거의 30살이나 어린 미겔 디아스카넬 전 교육부장관을 지명했다. 이로써 공전의 3대 세습을 이뤄낸 북한과 달리 쿠바는 카스트로 형제의 60년에 걸친 치세가 끝남과 동시에 권력 이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한 셈이다.[28]

이 공약에 대해 일단 외국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 다만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퇴임한 뒤에도 형처럼 어느 정도 '섭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라울 카스트로 의장 자신도 "개혁은 계속하겠지만 나는 자본주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의장이 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카스트로 형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쿠바의 개혁은 체제 유지를 위한 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2014년 12월 17일 미국과 국교를 재개함에 따라 큰 변화는 예고되고 있으며,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

2013년 12월 10일,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추모식에서 만난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악수를 나눈 것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주로 미국에서 말이다.

2014년 들어 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와 유럽-미국의 동서 갈등이 고조되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4월 28~29일 러시아 외무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크림 문제와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데, 러시아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쿠바는 그 대가로 러시아의 행동을 지지해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년 만에 쿠바에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만나고 양국의 산업,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정을 맺고 쿠바가 소련에 진 부채 352억 달러의 90%를 탕감해주었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쿠바는 2001년 폐쇄된 아바나의 루르데스 감청기지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했다.관련기사

2015년 7월 1일, 마침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 이후 2016년 3월 11일, EU와 쿠바는 관계정상화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12월에 정치적 대화·협력 협정에 서명함에 따라 완전히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2018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될 예정이다. 국민투표 날짜는 2019년 2월 24일에 치뤄진다. 통과 시에는 2019년 8월 13일에 발효되며, 이 날은 피델 카스트로의 생일이다.

최종 개헌안은 공산당 일당 체재 유지를 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체질로 변화할 예정이며,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첫 인정,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과 인터넷의 역할 인정, 중임(총 10년)만 허용하는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의 임기 제한 및 연령 제한(60세 이하로 첫 임기 시작), 권력 분산과 정부 운영 감독을 위한 총리직 부활, 인민권력국가회의를 모델로 한 지방인민회의 폐지 등 지방 정부 개편, 성 정체성에 기반을 둔 차별금지 원칙 명문화, 무죄 추정 원칙 도입, 결혼은 남녀 간 결합 문구 삭제 등이 담겨있다.

최종적으로 투표율 84%, 찬성 90%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결과, #

2019년 10월 10일부로 새 헌법 발효에 따라 국가평의회 의원이 종전 31명에서 21명으로 줄어들면서 쿠바혁명 당시 사령관이던 라미로 발데스와 기예르모 가르시아 프리아스는 평의회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로써 쿠바혁명 세대들은 막 내리게 된다.

2021년 4월 18일에 쿠바 공산당 대표단은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선출했다.#

8. 경제[편집]

9. 사회[편집]

9.1. 의료[편집]

1959년 혁명 전 쿠바의 의료 및 체계는 매우 열악했다. 사실상 복지 대책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1959년 쿠바 혁명 후 집권한 쿠바 공산당은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펼쳐 쿠바의 의료복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올려놓기는 했지만[29] 1990년대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쿠바의 경제가 한 동안 어려움에 처하면서 의약품이 부족해지고 인재들도 외국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선호하는 데다가 쿠바가 2010년대 중반 이래로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보니 예산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어려워서 애로사항이 많다. 사실 아래의 나와있는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예산과 제재 문제로 제재가 걸려있다보니 최신 의료기구이나 상당수 의약품을 들여놓기 어려운 면이 있는 데다가 의료예산은 쿠바 경제규모에 비하면 많이 배정이 되어있지만 그 돈 가지고 병원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거나 해야 해서 돈이 많이 들다보니까 그런것이다.

쿠바 의료의 수준 자체는 높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인구 대비 많은 의사수와 국가 주도적 보건사업을 통한 보건 교육의 승리로 중남미에서는 가장 평균수명이 높고(79세) 남성 기대수명은 미국보다도 높다. 영아[영아]사망률도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영아사망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다음 단락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쿠바의 매우 낮은 경제수준에 비해서 이상하게 높은 기대수명을 분석한 자료가 있다참조. 이 자료에서는 정부의 주도하에 정말 필요한 것들을 희생하면서 의료시스템에 과하게 지원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또한 태아에 이상이 발견되면 낙태를 시키는 방법으로 영아사망률을 낮추고 기대수명을 올린 것도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그 밖에 자동차의 소유를 강하게 제한해서 교통사고가 적은 점, 자전거를 장려해서 운동량이 많은 점, 식량이 충분하지 않아[31] 비만율이 낮은 점도 기대수명을 높이는 데에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심각하게 낮은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수준의 의료시스템은 보건사업의 승리라고 볼 수가 있다.[32]

쿠바는 국가에서 정한 기준치를 달성하지 못한 의사들이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수치를 조작하도록 종용이 된다. 영아사망률에서 이것이 두드러지는데 다른 나라와 다르게 쿠바의 태아 사망율은 임신 21주 이내에 사망한 경우 일부 통계에서 제외하여 낮추고 있다. 또한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경우 역시 신생아[신생아] 사망이 아닌 사산[사산]으로 포함시켜 신생아 사망율을 낮추는 것이 지적된 바 있다. 같은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쿠바의 신생아 사망율 지표는 우수한것으로 나타나지만 사산아 대비 초기 신생아 사망을 비교할 경우 쿠바의 경우 초기 신생아 사망에 비해 사산아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아 그 수치가 6배까지 치솟는다. 이는 주변국 평균 1~3배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조작의 증거로 제시된다. 이것이 조작이 아닐경우 산전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성보호가 극단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건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의미가 된다. 참조. 신생아 사망을 사산아로 둔갑시켜 조작하는 경우 평균수명 계산시 0점짜리 수치들이 통계에서 사라지므로, 전체 통계에서 신생아 사망이 줄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착시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통계적 부풀림만 사라지더라도 실제 쿠바의 신생아 사망율을 7.45 ~ 11.16 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쿠바는 기형적으로 높은 평균 40%대의 낙태율[35]을 합법화가 이루어진 1965년부터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0년 15.8%, 2017년 4.8%로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참조. 미국 역시 2010~2015년 사이 낙태율은 15% ~ 11%로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여준다. 미국과 쿠바 두 나라는 모두 임신시기를 따지지 않고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지만 낙태율은 쿠바가 압도적인 것이다. 이는 열악한 의료환경과 피임지원이 부족한 경제적 이유도 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나 생존가능성이 낮은 미숙아 및 기형아의 낙태가 권장된 것도 기여했다. 미국 통계로 분석한 1980년대 논문에서도 낙태의 합법화 및 낙태율이 높은 해에서 신생아 사망율과 신생아중환자실 입실 비율이 낮아진 것을 보인 적이 있다.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36]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도 문제는 있다. 물론 캐나다와 미국도 완전히 제외될 수는 없지만 멕시코에선 부자들이 다니는 병원은 의료수준이 매우 높지만, 돈이 없는 일반인들이 다니는 병원은 예산문제때문에 질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쿠바는 그나마 의료인력이라도 넘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중남미에서는 그나마 쿠바가 가장 나은 축이기라도 한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를 바탕으로 쿠바의료가 매우 뛰어나고 이상향 같이 받아들여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쿠바는 주요 병원들 가운데에서도 수술장을 가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료 자원 및 시설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애초에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평균수명 및 영아사망률의 차이는 감염병과 개인위생의 개선만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음이 수없이 증명된 바 있다. 쿠바는 다른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위생에 대한 관념과 보건교육, 예방사업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러한 지표들에서 상당한 개선을 보이는 것이다. 중병에 걸리면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돈이라도 많이 주면 기회라도 얻지만 쿠바에서는 그런거 없다.

국내에서는 무상치료만이 부각되고 있으나, 쿠바의 인구대비 의사의 수는 165명당 1명으로 세계 최다를 자랑하며 패밀리 닥터제에 의한 기초 건강 보장(Primary Health Care) 수준은 높은 편이다. 쿠바의 경제에 비한다면 의료체계는 인적자원의 양적인 면에 있어선 선진국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엄청난 막장 생활을 계속하는 바람에[37] 버티다 못한 몸이 결국에 말썽을 일으켜서 삼도천에서 한쪽발 담그고 있을 때, 그를 다시 지상세계로 끌어다 올린 것도 쿠바의 의료진이었다.

이렇게 1차의료가 발달해 있지만 전반적인 사정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90년대 소련이 붕괴하여 지원이 끊어진 이후로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된 경제난으로 인하여 유능한 의료자원들의 해외로 가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거기에 더해서 아예 쿠바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반적인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이며, 대다수 의약품을 자급자족한다. 약품을 만드는 재료의 완전 자급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원재료를 수입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제재제 때문에 제3국에서 수입하므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상황이 90년대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약품이 굉장히 부족하다. 특히 의사는 많지만 오래 숙련된 의사는 드물고 병상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패밀리 닥터제와 한의학 체계를 적극 도입한 것도 약품과 병상 부족을 메꾸기 위한 차선책이다. 병아리 의사라도 의사는 의사로 기본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뿐더러 1차 의료에 집중하여 환자를 돌보지 않으면 2차 의료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가 되었을 때는 가급적 병원에 들르지 않는 것을 한 교민은 추천했다.

실제로도 간단한 질병들만 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중한 질병을 스크리닝할려고 하거나 혹은 어느정도 입원해서 치료받아야하는 경우, 쿠바의 의료시스템은 지옥에 가깝다. 대기시간도 길 뿐더러 숙련된 의사들도 적어 제대로 된 처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 연유로 생각보다 쿠바에도 암거래 의료시장이 형성되어있는데 X-ray 한장을 찍고 빠르게 판독받기 위해서는 무려 한장에 6~7만원을 지불해야한다.[38]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쿠바와 비교하여 미국 의료보험체계를 깠으나 사실 쿠바의 의료 체계는 한국에 알려진 만큼 '이상향'만은 결코 아니다.참조. 요약: 귀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병원에 갔는데, 처음 간 병원에서는 그냥 집가서 귀에 식용유 부으라는(...) 처방을 해줬고, 두번째 간 병원에선 의사보는데 2시간 넘게 기다렸다. 그것도 외국인이! 쿠바같은 공산주의 국가는 특성상 자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공공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하는데, 외국인이 이 정도면 자국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 역시 질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통계상에 나오는 수치에 비해서 결코 이상향이라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상당히 열악한 편이라고 보는게 맞다. 애초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경우, 개인 위생 관념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왔고 제때 제때 위험지역에 가면 예방접종을 맞아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알아도 당신은 이미 전세계인중에서 보건지식에 관하여 상위 10%에 해당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쿠바인들은 국가는 국민들의 의료혜택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외국의 돈 많은 손님들을 치료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는거 같다고 냉소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경제재제를 받는 상황에서 의료의 질까지 충족하기에는 쿠바 정부의 예산이 빠득하기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말하자면 모두가 평등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이 쿠바의 현실이다. "평등"이란 단어에 천착하는 사람이라면 이상향으로 꼽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콩 한 쪽을 100토막 내서 다 같이 나눠 먹는 수준의 무의미한 평등일 뿐이고...[39] 이럼에도 큰 불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주변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는' 낫다는 점이 크다.

더불어 베네수엘라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그 대신 의료진이 베네수엘라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한다. 좌익 성향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가 서로 협력하여 이루어진 성과이다. 다만 2015년 유가폭락 이후로는 베네수엘라가 재정적인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브라질 등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막혔다. 참고로 쿠바의 주요 외화벌이가 해외에 거주한 의사들의 송금이라고 한다. 2015년 기준 8만5000명의 쿠바 의사 중 2만 5000명이 해외 50개국에서 일하고 있고 한해 100억 달러(11조 5800억 원)을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참고로 쿠바 의사들 입장에서 국내에서 일하는것보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데 해외에서 일하면 쿠바에서 버는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꼬박꼬박 저축하기만 한다면 쿠바로 귀국한 뒤에는 나름대로 부유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바에서 의사가 그리 큰 돈을 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쿠바 국내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말하고, 의사들 가운데서도 부유한 사람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다수가 해외로 가서 돈 좀 벌다온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대진학률은 생각 외로 높다고 한다. 어쨌든 그 때문에 미국에서 쿠바의 해외의사 파견을 막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데 실제로 2018년 보우소나루를 시작으로 볼리비아, 엘살바도르등 중남미 여러나라에서 쿠바 의사를 철수시키면서 의료관광 수입에 큰 타격을 입는 듯했지만, 2020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면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쿠바의사들을 다시 받아들이며 다시금 물거품이 될듯하다. 사실 중남미에서 쿠바만큼 의료인력 물량공세가 가능한 나라가 없는데다가 그 미국도 의료진 고갈 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단순히 부유하게 먹고사는것에만 만족하지 않을 경우에는 해외로 탈주하는 경우도 꽤나 빈번히 발생하곤 하기때문에 의사들의 해외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자유화 조치 가운데 하나로 의사들의 해외 여행 규제 조치를 철회하였다. 하지만 3년 만에 의사들이 다시 해외로 대거 이주함에 따라 '해외 여행 허가제'를 부활시켰다. 미국은 쿠바의 의료외교가 ‘의무공(醫務工)’ 형태의 인신매매인데다가 악성 외화벌이 수단이어서 이를 강력히 제재하고 있으나, 쿠바는 건강권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쿠바의 의료 인력 수출은 의사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에서 저렴한 비용에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에나 이용될 수 있을 뿐 정상적인 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다. 의사들의 교육수준이 낮아서 2년간 추가교육을 해야 직무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쿠바의 의무공(醫務工)과 사회주의 선전용 의료외교. 또한 쿠바에서 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대단한 성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의료수준 자체는 괜찮지 않아도 일단 시스템 자체는 잘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의약품과 인프라 부족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표로 본다면 양호한 수준이며,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과 비교해서도 나은 수준이다.

애초에 기초 학문 자체가 약하니 토양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듯. 대한민국의 경우는 기초 학문은 약하지만 임상 의사들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에 임상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많이 거두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이 유명한데, 모든 교육 비용이 공짜이다. 대신 학교를 졸업한 후 수년간 의료 봉사를 의무적으로 행해야 한다고. 외국인 또한 다닐 수 있고 미국인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단순히 선의 때문만은 아니고 경제·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제3세계로 의료 봉사를 보내면서 해당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외화를 받아내거나 혹은 국제 정치적으로 이들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아내며 정치적으로도 이득을 취함으로써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 이를 쿠바의 의료 외교 활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조차 있다.실제로 이런 의료 서비스를 통해 얻어들이는 소득은 2006년의 경우 총 수출의 30% 가까운 금액으로 쿠바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은 부분이지만,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원정 부터 시작하여 나미비아 독립 전쟁, 로디지아 전쟁에 직접 파병 하는 등 쿠바는 혁명 이후 예전 부터 나름 좌파 국제주의의 원칙에 충실했다. 미국이란 거대한 엉덩이가 눈 앞에 깔려 있다 보니 저런 먼 곳들이라도 친구들을 잘 사귀어 놔야 UN 같은 국제 무대에서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9.2. 교육[편집]

한편 쿠바는 인종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서 교육 개혁을 실시해 왔다. 초등 무상교육은 그 이전부터 시행되어왔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때문에 빈곤층 아이들이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 실질문맹률이 상당했고, 특히 농촌지역의 문맹률은 40%대에 달했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부유층이나 일부 공부잘하는 학생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1950년대 쿠바의 문맹률은 20%대를 기록했기 때문에 교육수준이 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축이라고 볼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교육 자체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했던 것이다.

쿠바 혁명 직후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맹퇴치에 공을 많이 들였으며 이후로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도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고, 성인문맹을 퇴치하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예산을 부여했다. 이렇게 교육에 대해 신경을 쓴데다가 경제가 어렵던 1990년대에도 교육에 대해서 기본적인 투자는 유지하면서 무상교육 제도는 끝끝내 지켜왔기 때문에, 문맹률은 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으로 0.2%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학진학률도 70%~80%대에 달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즉, 교육여건 하나는 타 중남미 국가들에 비해서 독보적으로 좋은것이다.[40] 거기에 베네수엘라로 교사들과 교재를 대거 수출하기까지했고, 볼리비아나 니카라과,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41]에 교육인력을 많이 보냈으며, 많은 분야에서 인종차별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백인의 흑인 멸시는 여전하여 아직도 사회 일부분에서는 흑인이나 혼혈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경멸이 남아있다.[42] 그래도 브라질에서 흑인 문맹률 20% 대 백인 문맹률 3%로 벌어진 것에 비하면 여기는 양반이다.

그렇지만 높은 교육수준에도 고학력자들이 취직할만한 질 좋은 일자리가 별로 없고 공장이나 농장에 취직하기에는 보상에 비해서 페이가 짠지라[43]인재들이 서비스업 등 일부 직종으로 몰려들어가는 문제점이 심각하며 미국이나 여타 중남미 국가들로 인재유출도 이루워지고 있다는것이 쿠바의 고민거리이다. 농촌이나 공장에서는 젊은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고학력자들이 만족할 직장이 부족하고 그나마 취직한다해도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졸업만 하면 일단 직장이 배정되기는 하기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한국 등에서 문제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평균봉급이 풍족한 소비생활을 누리기에는 부족하기때문에 자영업이나 외국인 대상 직종에 종사하거나 할 경우가 아니라면 돈을 거하게 벌려면 별 수 없이 투잡을 뛰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대상 가게에서 일하거나 연줄이 있다면 아예 가게를 차리는 것을 선호하거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것을 선호하며 미국으로 목숨걸고 쪽배타고 가기도 한다.

9.3. 치안[편집]

2015년 미국 국무부에서 발표한 쿠바의 치안 상황은 MEDIUM 등급(중간). 세계적인 수준으로 치안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전반적인 치안이 막장을 달리는 중남미 기준으로 친다면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페루,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등과 더불어서 치안은 그런대로 좋은 국가이고,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도 쿠바의 치안이 좋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하지만 살인이나 폭행같은 강력사건은 별로 없어도 소매치기, 절도(주로 물품 빼돌리기)[44]같은 비폭력범죄는 빈번하다고 한다. 그리고 국교 정상화를 통해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관광객 대상 강력사건의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주민통제에 주력하는 공산주의 국가 답게 경찰과 군인이 매우 많고, 거리에 깔린 제복, 사복 경찰도 많아서 과연 그 우려대로 강력사건이 증가할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거리의 순찰 경관은 관광객이 뭘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는 하는데,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사복 경찰은 조심해야 된다. 쿠바도 현 정권에 반발하는 재야정치운동가들이 있는데[45] 이들을 돕는 외국인을 감시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감시대상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싶으면 불심검문에 들어간다.

문제는 쿠바 경찰은 대부분 신분증을 잘 안 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사실 쿠바에서 경찰을 사칭하는 간 큰놈(...)[46]이 거의 없기도 하고, 신분증을 분실하면 크게 문책받기 때문에 잘 안 갖고 다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니가 경찰인지 어케 아냐 신분증도 없는데?" 라며 검문을 거부하면 바로 제복 경찰들을 불러서 연행해간다. 게다가 쿠바 경찰서에 일단 연행되면 외부와 연락도 못하고 유치장에 갇혀서 며칠씩 살 수도 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이런 외국인들한테는 가혹행위는 하지 않지만, 외부와 연락도 못하므로 갇힌 사람은 미칠 노릇이다. 그러니까 쿠바를 여행하다가 사복 입은 현지인이 " 경찰인데 여권 좀 보여주세요 " 라고 요구하면 일단 얌전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 다른 국가(심지어 프랑스에서도)에서는 범죄자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검문하는 척 여권과 금품을 훔쳐가는 일이 있지만 공권력이 막강한 쿠바에서는 자기가 경찰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분명히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10. 군사[편집]

11. 여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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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타나모 해군 기지[편집]

관타나모 만 문서 참고.

13. 기타[편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태어난 곳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춤과 음악 등을 즐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열대 기후를 보인다.

2016년 3월, 유명한 DIPLO가 속한 Major Lazer가 아바나 말레꼰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운집 인파는 40만이라고 한다. 쿠바 거리를 돌아다니면 실제로도 저스틴 비버, 미국 힙합 가수들의 노래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후 롤링스톤즈도 아바나를 찾아 무료 공연을 했는데 이번엔 60만이 모였다고 한다(...).

쿠바 요리는 마늘을 꽤 많이 쓴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때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서 가족끼리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다만 길거리 가판대나 대중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소스를 적게 쓰는 경우가 많아 다소 밋밋하거나 단출한 편으로 딱 싼맛에 먹을만한 수준이라는 평이 많은 편. 다만 그와 별개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는 설탕이 듬뿍 들어간다. 사실 쿠바가 90년대에 설탕산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탕수수가 꽤 재배되기는 하고 국민들 입맛도 거기에 맞추어져있기에 간식에 설탕이 듬뽁 들어가는게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기는 하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것 이외에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정찬으로 먹는 음식과 비슷하며 꽤나 훌륭한 음식들을 맛볼수 있다. 물론 가격대는 쿠바 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꽤나 비싸지만 말이다. 물론 코펠리아[47]같이 가성비가 최강인 음식점도 있다.

쿠바 정부와 구글은 2016년 12월 12일에 서버 설치를 통해 구글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합의했고 구글 서비스도 10배나 빨라질 예정이다.#

수영배우 출신 배우 조니 와이즈뮬러는 1958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 쿠바에 골프 여행을 갔다가 카스트로의 군사들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50대였고, 쿠바 혁명군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타잔 시리즈에서 타잔의 "아아아아아아아~"하는 그 특유의 고함소리를 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자 보너스로 "Me, Tarzan! King of Jungle!"이라는 대사도 쳐주었다고 한다. 그를 알아본 병사들이 '"Es Tarzan! Es Tarzan de la Jungla!"이라고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를 호텔까지 배웅해 주었다고 한다.[48][49]

북한과 수교 중이어서 그런지 대한민국도 의외로 아는 사람이 많으며, 처음 보고 "chino?"라고 물어올 때도 있지만, 중국인없는 차이나 타운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Coreano?"라고 묻는 경우가 더 많다. 또 아바나 내의 대학에선 한국어 강의가 있어 대학내 박물관을 관람하러 들어가게 된다면 한국어 수강하는 쿠바 학생들이 먼저 한국어로 말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가움보단 풀숲사이 보이는 T50탱크에 놀라게 되지만... 쿠바에서도 한국산 전자제품이 인기있는데다가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한국드라마나 한국가요가 큰 인기를 끌고있기 때문에 더더욱 아는 사람이 많은것이다.

14.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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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쿠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편집]

※ 해당국의 작품은 제외한다.
  • 노인과 바다
    주 무대가 쿠바의 한 어촌마을이며, 주인공인 노인을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쿠바인이다.
  • 대부2
    쿠바혁명기가 그 배경이며, 실제 미국 마피아가 혁명이전 쿠바 부패의 한 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쿠바혁명에 대해 호의적이다.
  • 007 어나더데이
    제임스 본드본드걸이 만나는 장소이자 자오가 인종변경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던 곳이다.
  • 세계대전Z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피난민을 받아들이고 좀비를 물리쳐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
  • 타나토스
    무라카미 류의 소설
    쿠바를 무대로 한 여주인공의 인생 고백이 주 내용이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첫 미션인 'Operation 40'의 배경이다.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이 동료 요원들과 함께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내용의 미션이기 때문에 쿠바에서 상당히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멀티플레이 맵인 Crisis, Havana, Villa도 쿠바를 배경으로 한 맵이다.
  • 영화 어 퓨 굿 맨
    관타나모 기지의 미 해병 경비 부대를 무대로 한다.
  • 영화 후안 오브 디 데드 (고어 주의!)
    쿠바와 스페인 합작 좀비 영화. 쿠바에서 좀비 창궐 사태가 벌어지지만 정부는 반혁명/미제국주의자의 소행이라며 사실을 감추기 급급한 와중, 동네 건달 후안은 가족과 친구들을 규합하여 좀비 처리 대행업이라는 돈벌이를 구상하는데...
  • 어쌔신 크리드 4
    작중 주 무대중 하나가 아바나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
    네이키드 스네이크애국자들 산하의 수감시설인 "캠프 오메가" 에 잠입한다. 수감시설 형태(바깥에 노출된 철창 안에 감금)가 관타나모 기지와 많이 비슷하다.
  • 스플린터 셀: 블랙리스트
    샘 피셔가 흑막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무기상 겸 브로커인 "레자 노우리"가 수감되어 있는 관타나모 기지에 죄수로 위장해 들어간다. 물론 들어갈땐 마음대로였겠지만 정보를 얻고 나서는 기지를 지키는 미군 보초병들을 피해 몰래 빠져나와야 하며, 죄수복을 착용중이라 발각당하면 미군 병사들이 탈옥수를 잡기위해 달려오는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샘 피셔의 포스 에셜론도 엄연히 미국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니 이미 관타나모 기지에 샘 피셔를 들여보내며 나중에 CIA가 매우 화낼 일을 저질렀는데[50] 같은 미국 병사들을 죽이는 건 미친 폭거나 다름없으니 미군 사살 금지라는 제약이 걸려있고, 플레이어는 장비 회수 전까지는 테이저건 하나 달랑 들고 기지를 들키지 않고 (장비 회수 전에 들키면 미션 실패) 몰래 빠져나와야 한다.
  • 스카 페이스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쿠바계 미국인으로 나온다.
  • 엑스파일 코믹스 만화 시즌 10기
    #10에서 1960년대 피그만 사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 마야
    진달래꽃 뮤직비디오에서 쿠바가 배경으로 나온다.
  • 아이유의 노래 Havana
  • 오버워치
    화물운송 전장인 하바나가 있다.
  • 남자친구(드라마)
    두 주인공들의 첫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등장한다.
  • 트래블러(JTBC)
    이제훈류준열이 쿠바에서 함께 배낭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 트로피코 시리즈
    가상의 국가지만 카리브해의 섬나라이고 스페인어가 쓰이는 등 쿠바의 모티브가 섞여 있다. 그리고 트로피코 6 DLC로 구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 중 ‘Cuba’, ‘Little Havana’, ‘Cuban cigar’이라는 이름의 노래들이 있다. 국기도 쿠바의 국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 미친여름

[1] 체 게바라가 편지의 끝에 늘 붙이던 말이었다.[권위주의] 2.84점[3] 쿠바의 종교분포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없다.[4]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로망스어군 언어에선 H가 묵음이어서 그렇다. 영어식 철자는 Havana. B가 아니라 V이다.[5] 다만 혁명 이전의 국기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국기의 파란색 줄의 색이 진해졌다는 점이다.[6]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장은 아니다.[7] キューバ[8] 미 국무부 자료에는 처벌 받을 위험이 있다고 명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처벌 받은 사례가 있는 지는 불명.[9] 그런데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인의 쿠바여행 규제를 선언하자 발끈한 쿠바 정부도 아바나 이외 지역의 미국 관료는 전부 나가달라고 요청해서 미국인이 여행하기는 뜨악한 상황.[10] 이 사정은 도미니카 등 타 중남미 리그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쿠바 선수들의 연봉은 미국 기사에 의하면 대충 2500달러 정도 되고,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2500달러 정도 보너스를 더 준다. 메달을 따면 보너스를 더 주고. 사실 이게 자영업자나 해외송금을 받는 사람을 제외한 평범한 쿠바 서민들과 비교하면 몇 배나 더 받는거긴 한다. 쿠바 서민들의 보통 연봉은 미화 700달러도 안 되는 수준.[11] 유네스키 마야는 쿠바에서 이미 에이스로 이름값을 높여놔서인지 메이저리그에서 1승 5패 해놓고 미국 생활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거로 보내놓고 한화로 80억원 수준의 돈을 받아갔다. 유네스키 마야 말고도 쿠바에서 큰 주목을 받는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에서만 뛰면서도 미국 입국 당시 대박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돈 자체는 많이 벌기도 한다.[12] 이들 다 평범한 쿠바인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데스파이네가 번 돈은 2000만 달러에 가깝고, 세페다가 번 돈이 220만 달러 수준이며그래놓고 1할쳤다, 리반 모이넬로도 100만 달러 이상 벌었고 싸게 왔고 반년 뛰다 돌아가서 얼마 돈을 못 번 로엘 산토스도 25만 달러를 받았다. 세금이랑 쿠바 정부의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손에 쥐는 돈은 절반이나 될까 싶지만 그걸 감안해도 돈을 적게 받는 선수들조차도 쿠바에서 몇십년 동안 벌 돈을 1년만에 거머쥐게 된 셈. 그 외에 육성선수로 3년 뛰고 망명한 오스카 코라스도 30만 달러 이상, 일본에서 딱 1년, 그나마도 거의 2군에서 뛰었던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동생 호세 아돌리스 가르시아도 9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13] 하지만 메이저리거들을 비롯한 프로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WBC에서도 쿠바의 위력은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초대 대회 준우승을 기점으로 이후 3번의 대회 모두 쿠바는 2라운드를 진출한 야구 강국이다.[14] 자니 벤치, 피트 로즈, 조 모건, 데이브 콘셉시온, 켄 그리피 시니어 등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15] 쿠바 야구가 점점 타고투저가 강해지면서 투수 유망주가 적다고 한다. 현재는 일반적인 쿠바 리그의 투수 에이스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에 가면 4~5선발 정도 가면 터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실제로 유네스키 마야는 쿠바 리그의 에이스 투수를 꼽으라면 아롤디스 채프먼 바로 다음으로 꼽혔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4선발 정도를 맡아줄 것을 감안했는데 그마저도 못하면서 땜방선발과 패전처리, AAA를 왔다갔다했으니...[16] 199안타(2020시즌)[17] 199안타(2020시즌)[18] 197안타(2019시즌)[19] 그랑프리 최약체 그룹인 3그룹에 포함되고 있다.[20]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한다.[21] 특히 탈냉전 이후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야구 쪽을 중심으로 선수들의 망명 사례가 늘어나기도 했다.[22] 해외 진출을 전면 불허한다고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프로 진출만 불허했고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소련 해체 이 후 국가대표를 은퇴한 30세 이상의 선수에게 진출을 허용했다.[23] 단, 레오는 청소년대표까지는 했으나 청소년대표 이후 망명을 했다.[24] 쿠바와 이웃한 섬나라인 자메이카가 봅슬레이 종목으로 동계 올림픽 대회에 출전했던 것과는 대조적.[25] 이러한 사실을 보면 남한 대중들 입장에서는 놀라기 쉬울 텐데, 그것은 남한 대중들에게 '공산주의 국가'의 스테레오타입이 하필이면 여러 퇴보한/기형적 노동자 국가들 가운데 독보적으로 막장인 북조선이나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으로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은 체제 유지만 잘 된다면 개인적인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사실 북조선도 8월 종파 사건과 도서정리 사업을 통해 김일성 1인 독재 체제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북조선이 이상한 것이다.[26]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는데 이는 공산국가를 표방하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중국은 8개, 북한은 2~3개의 위성정당이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의석을 차지하며 베트남과 라오스는 위성정당 없는 순수 1당제지만 무소속 의원도 엄연히 원내에 존재한다. 전 의석을 공산당에서 싹쓸이하는 사례는 쿠바가 유일하다. 소련조차도 초기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에는 다당제였으며 이후에도 한동안 무소속 의원이 있었다![27] 르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신문. 국제적으로도 정론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디플로마티크는 월간 국제뉴스 잡지로 르몽드가 28개 드언어로 75개국에서 발행하고 있다. 한국판도 발행 중.[28] 애초에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형제 사이의 권력이양이라 해서 북한의 권력세습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힘들다. 따라서 북한 김씨보다는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정도전 등과 비교해야 맞다.[29] 쿠바 건국 주역인 체 게바라의 영향도 있었을 것.[영아] 출생 12개월 이내 아기[31] 단, 이 식량이 충분치 않아서 비만율이 낮다는 것이 어폐인것이, 미국에 비하면 식료품 수급이 쉽지 않기는 하지만 쿠바인들도 피자나 핫도그, 볶음밥, 치킨같은 고칼로리 음식을 즐겨먹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는 비만율이 꽤 높은 편이다. 1990년대에는 진짜로 식료품 보급상황이 열악해져서 도심지에서도 농사지어서 식량사정을 해결했을때면 모를까 21세기 들어와서는 영 맞지 않는 말이다. [32] 이 주장은 공산독재 국가들의 전형적인 통계조작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한다.[신생아] 출생 후 첫 4주까지 아기[사산] 자궁 내에서 사망한 아이를 출산한 유산의 한 종류[35] 2017년 기준 낙태율은 42%, 1996년의 경유 59%로 낙태시킨 아이가 출생보다 많았다. 참조.[36] 물론 캐나다나 미국도 문제는 많다. 두 나라 모두 의료의 수준 자체는 높지만 미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캐나다는 무상의료를 무기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37] 코카인을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38] 한국의 의료체계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나 x-ray만 3만장 넘게 판독해본 경험있는 의사에게 찍고 판독까지 받는 비용이 5천원도 안됨을 생각해보면 쿠바보다 오히려 의료 천국이라 부를만 하다.[39] 실제로 쿠바 본국 정부나 쿠바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흔히 우익의 선전으로 인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사회주의는 어떠한 노선이든 결과의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충분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완전한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며, 그걸 위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40]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브라질과 멕시코는 공립학교의 질이 떨어지기때문에 기초학력수준이 부실하다고 평가받고있으며, 칠레의 경우에는 교육비가 많이들고,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교사들이 박봉에 시달리다보니 매년 파업이 일상화되어있다. 여타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도 이들나라와 크게 다를바 없다.[41] 물론 콜롬비아로 교육과 의료인력을 대거 내보낸것은 전쟁을 멈춘 반군들에게 마약은 이제 그말 팔라는 의미에서 교육시켜주는것이기는 하다 [42] 쿠바 인구 중 절반 이상인 65%가 자신이 백인이라고 응답했지만, 이는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혼혈인들이 거의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에 발표된 하플로그룹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쿠바인의 모계 유전자(mtDNA)의 45%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3%는 원주민, 22%는 유럽계로 나왔다.[43] 사실 쿠바 평균적으로 볼때 봉급수준이 그리 짠것은 아니지만 (사실 의사나 변호사나 육체노동자나 임금수준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관광업쪽에서 일하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입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 메리트를 느낄수가 없는것.[44] 여기서 가장 흔한건 물품 빼돌리기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 씌우기다. 왜냐하면 돈벌기 쉬우면서도 위험부담은 적기 때문이다.[45] 물론 쿠바에서도 야당은 있기는 하고, 무소속 후보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국정선거에서 후보자들을 철저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재야운동가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지라 별 의미는 없고, 쿠바에서 야당이라고 해봐야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깝다.[46]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무원 사칭은 엄청난 중범죄이기 때문이다.[47] 쿠바에서 배스킨라빈스 31급의 아이스크림 전문점으로 통한다.[48] 이 내용은 와이즈뮬러의 아들이 쓴 "나의 아버지 타잔"에 나오는 내용이다.[49] 일설에 따르면 타잔의 이야기가 상당히 반제국주의적인 서사로 읽힌 것도 작용을 했다고 한다.[50] 피셔를 관타나모로 들여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CIA측 파견요원 브릭스는 이 일을 포함한 여러가지 활동 내역들로 포스 에셜론으로의 파견 명령은 영원할 줄 알라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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