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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타이론 윌리엄 우즈
(Tyrone William Woods)
생년월일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주 브룩스빌
포지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소속팀
응원가
~~~~즈[1]
수상 기록
2000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2001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1998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1998년, 2001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33번
김광현(1996~1997)
타이론 우즈(1998~2002)

1. 소개2. 선수 경력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2.2. 한국프로야구 시절2.3. 일본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기록4. 이모저모

1. 소개[편집]

흑곰
베어스 역사상 최강의 외인타자

KBO 리그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 외국인 선수. 본명은 타이론 윌리엄 우즈(Tyrone William Woods)로 '흑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애칭은 T

베어스 팬들에겐 잊지 못할 외국인 선수이며 펠릭스 호세, 제이 데이비스, 에릭 테임즈와 함께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인 타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98년도에 OB 베어스를 통해 드래프트에 뽑혀서 국내땅을 밟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편집]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된 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1995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다.
1996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다시 이적한 후 레드삭스 산하 더블A팀 트랜턴 선더에서 99경기 25홈런 OPS .982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트리블A팀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29경기 9홈런 OPS 1.064를 기록한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장타력 만큼은 인정을 받았으나, 문제는 수비와 주루 때문에 1루 외에는 볼 수 있는 포지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보스턴의 1루에는 1995년 아메리칸리그 MVP 모 본이 있었고, 지명타자 자리에는 레지 제퍼슨이 1996년에 타율 .347를 때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우즈는 콜업을 받지 못한다. 3루수나 외야수도 볼 수 있었지만 그 수준은 매우 막장스러웠다.[2] 게다가 1루 수비마저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선수 생활을 같이 했던 안경현 해설위원은 타격은 메이저리그급이지만 수비 때문에 일본이나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꽤 있는데 타이론 우즈도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고 한다.

2.2. 한국프로야구 시절[편집]


두산 베어스 V3의 주역
제가 (1998) 시즌 후에 목표를 잡았는데 팀 1위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홈런왕도 아니었습니다. 타점왕도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타이론 우즈를 이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이승엽출처

결국 20대 후반까지도 메이저에서 부름이 없자 야구를 그만 두고 소방관이 될 생각을 했으나 1998년 당시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면서 한국 무대를 노크.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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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시즌 42호 홈런으로 장종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모습. 이 기록은 1년 후인 1999년 이승엽에 의해 경신된다.

1998년 한국무대 데뷔 중반까지도 당시 한국야구의 좌우폭이 넓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고[3] 선풍기질만 하면서 퇴출까지 거론되었으나 김인식 감독이 주구장창 3번 타순에 고정시키고 인내심을 갖고 밀어주자 7월부터 포텐셜이 폭발. 한때 8개 차까지 벌어졌던 이승엽을 추월하고,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41홈런)마저 경신하며 홈런왕, 타점왕에 올랐고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4] 각주에 서술된 골든글러브 이야기 말고도 MVP 선정 과정 또한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기자들이 18승으로 다승왕을 따낸 LG 김용수[5]를 밀어주면서 2차 투표까지 간 접전 끝에 MVP 수상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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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2000년까지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를 이루어 두산 베어스의 강타선을 구축했으며[6] 심정수가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2001년에는 심재학의 가세로 우동학(우즈-김동주-심재학)트리오를 형성,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무너뜨리고 두산의 세 번째 우승에 공헌하면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98년의 페넌트레이스 MVP에 이어 2001년 올스타전 MVP[7]와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MVP 트리플크라운[8]을 기록한 선수.

2001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때려낸 홈런은 김동주 이후 두 번째로 기록된 잠실구장 장외 홈런.

1998~2001년까지 42-34-39-34홈런을 기록하면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나 2002년에는 25홈런 타율 .256으로 부진에 빠졌는데, 당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의식과 두산 프런트의 섭섭한 대우에 불만이 쌓여서 태업을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한국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이 좌우로 지나치게 넓은 것에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프로야구 영상을 보면 2010년대보다 좌우로 공 두 개 정도는 넓게 존을 잡아주는 것을 알 수 있다.[9] 심판들이 편파적이라서 우즈에게는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우즈존이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5년간의 두산 생활을 접고 2003년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한다.

그리고 우즈가 떠난 이후 두산은 2014년 호르헤 칸투[10]가 성공하기 전까지 외국인타자 잔혹사가 이어진다. 마이크 쿨바-이지 알칸트라-맷 왓슨의 실패로 한동안 두산은 외국인 타자 영입을 꺼렸다. 그렇지만 닉 에반스는 제대로 터졌다![11]

2.3. 일본프로야구 시절[편집]

주니치 드래곤즈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2003~2004년 약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는데, 애초 싼 맛에 데려왔을 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12] 요코하마 구단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파워스윙을 선보이면서 2003년 40홈런으로 알렉스 라미레스, 2004년 45홈런으로 터피 로즈와 함께 세리그 공동 홈런왕이 된다. 우즈는 이로서 요코하마 구단 역사상 최초로 40홈런을 친 타자로 기록에 남았다.[13]

2005년 중심타선 보강을 위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뒤 투수친화적인 나고야 돔에서도 38홈런을 때려냈고, 2006년에는 요미우리의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홈런 47개로 홈런왕, 144타점으로 타점 1위를 차지한다. 2007년에는 무라타 슈이치에게 1개 차로 뒤진 35개로 홈런 공동 2위였지만, 위압감은 대단해서 121개의 볼넷과 19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낸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8년에도 홈런 35개를 쳤으나, OPS .904로 일본리그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 그해 말 연봉협상에 난항을 겪어서 재계약에 실패. 사실 연봉을 높게 부르고 깎지 않았던 우즈의 태도도 있었지만,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센트럴리그에서 나이 많고 수비가 불안한[14] 우즈를 그렇게까지 비싼 돈에 가지고 있을만한 이유가 없었던 주니치는 그냥 깔끔하게 우즈를 포기하게 된다. 거기에 대신해서 데려온 용병인 토니 블랑코가 생각보다 우즈의 공백을 잘 메꾸어주어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홈런왕에 오른 선수는 우즈가 유일하며 이는 이대호, 이승엽, 김태균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15] 우즈의 성공을 계기로 일본프로야구 팀들은 KBO의 특급 용병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이후 세스 그레이싱어, 릭 밴덴헐크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는 엄청 잘 나갔지만[16] 성격이 아예 망나니가 되어있었다. 대표적 예시로 2005년 5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경기 중 5회말 타석 때 후지이 슈고의 몸쪽 위협구에 분노, 그의 오른쪽 뺨을 구타하여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만 엔의 중징계를 받았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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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시절 우즈의 참교육(...) 움짤. 헤이, 슈고! 돈 두댓! 만약 투수가 손혁이었다면?

다만 이것에는 우즈도 할말이 있는데, 후지이 슈고는 등판중에 혀를 낼름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필이면 우즈에게 몸쪽 공을 던지고 난뒤 자신을 노려보는 우즈를 향해 버릇대로 혀를 내밀었고 이걸 자신을 조롱하는걸로 받아들인 우즈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후지이 슈고는 멘탈이나 소행면이 썩 좋지 않은 투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우즈를 옹호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무난한 인성으로 인기가 좋아서 이미지가 좋았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일본에서의 별명은 "우데스".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에는 이승엽과 강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7년 10월 20일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2차전에서 주니치 투수였던 나카타 겐이치가 이승엽에게 의도적인 몸쪽 공을 던지면서 이승엽이 조심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1루 수비를 보던 우즈가 뜬금없이 이승엽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이승엽이 맞서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일본팬들은 우즈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였는데, 우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일어날만한 충돌이기도 했다.

우즈는 한국에서 뛰면서 많은 설움을 겪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볼 패널티를 받기도 했고, 뛰어난 성적을 올렸음에도 개인수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매년 홈런왕 경쟁을 했기 때문에 우즈에게는 큰 자부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이승엽에게 돌아갔다. 이승엽이 NPB에 진출하면서 동등한 외국인 조건이 되었지만 이승엽은 일본 최고 명문팀 요미우리의 4번타자 였고, 일본에서 한국과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우즈는 결국 여러사건들로 이승엽에게 피해의식이 생겼고, 두산에서 뛸 때도 종종 이승엽을 돌려까기도 하였다. 2006년 이승엽이 센트럴리그 최고 홈런타자라고 연일 매스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자 "이승엽은 도쿄돔 빨이다" 라고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 우즈의 계속된 견제에 이승엽도 슬슬 심기가 불편해졌고... 어쩌면 두사람의 충돌은 결국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일본에서 재적 당시 뛰었던 팀들의 팬들, 특히 주니치 팬들은 우즈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주니치의 역대 타자용병들 중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찍어줬던 것도 있고 특히 숙명의 라이벌인 요미우리를 상대로 상당히 강해서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펼쳤기 때문이다. 이는 요미우리 팬들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일본 웹에서는 간간히 우즈가 너무 무서웠다고 추억하는 글들을 올리는 요미우리 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은퇴이후 고향인 플로리다주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 입으로 말하길 모 퍼시픽 리그 구단 중 한 곳에서 영입 요청이 들어왔지만 센트럴리그에서만 뛰고 싶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원래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햄버거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17]

3. 연도별 기록[편집]

한국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998
126
138
42
103
0.305
0.393
0.619
1.013
1999
124
135
34
101
0.297
0.406
0.556
0.972
2000
127
151
39
111
0.315
0.414
0.605
1.020
2001
118
127
34
113
0.291
0.402
0.571
0.973
2002
119
104
25
82
0.256
0.339
0.499
0.838
통산
614
655
174
510
0.294
0.393
0.574
0.967

홈런왕 1회, 타점왕 2회, 골든글러브 1회, MVP 1회 수상. 태업이 의심되는 2002년을 제외한다면 리그 최고의 우타자이자 잠실을 지배했던 거포라고 할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136
131
40
87
0.273
0.361
0.559
0.921
2004
130
142
45
103
0.298
0.394
0.613
1.007
2005
135
155
38
103
0.306
0.392
0.571
0.963
2006
144
162
47
144
0.310
0.402
0.635
1.037
2007
139
126
35
102
0.270
0.418
0.530
0.948
2008
140
135
35
77
0.276
0.377
0.527
0.904
통산
824
851
240
616
0.289
0.391
0.573
0.964

홈런왕 3회, 타점왕 1회, 베스트나인 3회 수상. 6년 중 4년을 홈구장으로 나고야돔을 쓰면서도 연평균 홈런 40개를 쳐냈으며, 통산 OPS 0.964는 3000타석을 기준으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6위다.

4. 이모저모[편집]

  • 밀어치는 우월홈런이 상당히 많았는데, 밀어쳐서 도쿄돔 상단 광고판을 때릴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 국내에서 강렬한 포스를 남겼지만 아무래도 2002년까지만 뛰었기 때문에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늘어난 야구를 처음 접한 팬들은 타이론 우즈를 몰라 이에 대한 일화가 생기기도 하였는데,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한 두산팬이 2010년 포수 양의지의 스윙폼을 보고 우즈 닮았네라고 하자 어느 유동이 댓글로 "저 선수 불륜 안했거든요?!"라고 언급한 것이 캡쳐되어 떠돌아 다녔고, 타이론 우즈도 모른다며 야갤에서 까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를만도 한 게, 2회 WBC 이전에 아예 은퇴를 해버린 데다가 '우즈'하면 과거부터 야구를 봐왔거나 일본 프로야구를 어느 정도 아는 팬들을 제외하고는 대개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기 때문. 이름도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세대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 자신의 완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이용해서 언론을 통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거나 경기 중 상대팀의 견제가 들어올 경우 먼저 나서서 시비를 트는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 이승엽이 야구 내적으로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일본 시절에 자주 이승엽을 도발했으며 실제로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는 전혀 관계도 없는데 이승엽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 일본에서의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호구그럭저럭 무난한 인성으로 평가받은 이유도, 당시 한국야구계에 남아있던 빡센 군기[18]때문이라는 말이 있으며, 근데 일본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잖아? 그 외에도 2002년에 이태원에서 손혁에게 시비걸었다가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순해졌다는창피해서 야구팬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온 카더라가 있다. 넥센 투수들은 절대로 코치님께 대들지 마라....
  • 당시 두산 베어스 팬들은 우즈가 타석 등장곡인 경기병 서곡이 울려퍼질때 타석에 들어서면 전부 일어나 북소리에 맞춰 흰 막대풍선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서 우~ ~ ~즈!! 우~ ~ ~즈!!를 반복해서 외치곤 했다. 뭔가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이 단순한 응원가는 상대팀 투수는 물론이고 상대팀 팬들조차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압감을 풍겼다. 주니치 시절에는 메인 응원가 전에 에미넴의 'Without Me'의 코러스 반주에 맞춰 "T!"를 외치는 응원이 있었다.T?
  • 일본프로야구시절 임창용이 우즈 킬러로 유명했는데 특히 인터뷰에서 우즈를 까내리던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얻어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 카더라.
  • 2015 시즌 중반 잭 루츠가 방출당한 후 스카우터는 우즈를 잊지 못한 두산 팬들의 향수를 위해 이 선수를 데려왔으나, 시즌을 마감하고 나니 흑인이라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 2010년에는 한 TV프로 녹화방송과 관련하여 주니치에서 퇴단한지 약 1년 5개월만에 일본을 방문해 옛 동료들을 격려했고, 시즌 개막 직전 나고야돔을 전격 방문해 자신의 후임 4번타자인 토니 블랑코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1] 응원가는 아니고 응원구호이다[2] 한국에서도 3루수나 외야수 알바를 가끔 뛴 적이 있었는데 다 수비범위 한발자국이라는 극악의...[3] 이때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정말 심해서 스트라이크존을 공하나 정도 더 넓게 잡아주곤 했다.[4] 그런데 정작 골든글러브는 MVP인 우즈를 제치고 이승엽이 차지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우즈가 이후 이승엽에 대해 눈에 띄게 라이벌의식을 드러낸 것도 이때 생긴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5] 당시 김용수도 38세의 최고령 다승왕으로서 나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LG가 그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었다는 이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당시 MVP 투표는 포스트시즌 이전인 10월 초에 했으므로 해당사항 없는 얘기다.[6]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무려 99홈런 308타점을 합작했다.[7] 2000년 9개로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최다 홈런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2010년 홈런레이스에서 김현수가 10개를 기록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8] 국내선수 중에는 이종범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록.[9] 당시 1999~2001시즌까지 타고투저가 지속되어 KBO에서는 2002시즌 스트라익존을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많은 타자들이 볼넷-삼진 비율에서 손해를 봤으며 타고투저 시즌에 비해 득점력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10] 근데 이 호르헤 칸투 역시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결국 두산을 떠났다[11] 닉 에반스는 대신 잔부상 등으로 지명타자만 주로 담당하긴 했지만.[12] 오히려 요코하마가 계약금 100만 달러, 연봉 275만 달러(약 3억엔),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들여온 좌타자 스티브 콕스는 스프링캠프부터 드러누워버린데다가 15경기만에 또 부상을 당해 1년만에 방출되었다.(...) 참고로 그 해 콕스의 먹튀짓을 만회한 우즈의 연봉은 5000만엔에 불과했다.[13] 2016년 현재까지 요코하마에서 40홈런을 친 선수는 우즈 이외에는 타무라 히토시, 무라타 슈이치, 토니 블랑코, 츠츠고 요시토모뿐이며, 이 중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한 것은 우즈밖에 없다.[14] 오치아이 히로미츠 당시 감독은 수비력과 기동력을 중시하는, 투수 친화적인 나고야돔에 특화된 지키는 야구를 중시했다.[15] 다만 이대호는 일본 시절 타이틀을 따보지도 못한 이승엽, 김태균과는 달리 2012년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오른 바 있다.[16] LG의 차명석 코치에 의하면 전지훈련 도중에 우즈를 만났는데 우즈가 아예 귀족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17] 우즈가 주니치에서 번 연봉만 22억엔이니 한국 올 때 예상했던것보다 크게 성공한건 사실이다. 햄버거가게 주인과 부동산부자의 차이만큼...다만 이건 우즈가 한 말은 아니고, KBL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조니 맥도웰이 한 말이 와전된 것. 조니 맥도웰도 현재는 물류회사 직원으로 저 꿈은 못 이뤘다고...[18] 당시 코치였던 양승호가 우즈를 순한 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즈가 신경질을 내자 질세라 냅다 의자를 집어던졌다고(!). 또한 당시 주장인 김태형도 우즈를 커튼 뒤에서 혼냈다는 카더라가 떠돈다. 뿐만 아니라 한 성깔로 유명한 장원진과 말싸움에서 밀렸다는 둥 이상하게 호구 이미지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