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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어원3. 상세4. 분류5. 역사
5.1. 발원지
5.1.1. 내몽골 가설5.1.2. 알타이 산맥설
5.2. 오구즈와 셀주크 제국5.3. 타타르 국가들5.4. 맘루크5.5. 아나톨리아의 튀르크5.6.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6. 사회·문화·언어
6.1. 신화6.2. 음악
7. 종교8. 튀르크 국가
8.1. 역사상 튀르크계 국가·집단
9. 튀르크족 캐릭터

1. 개요[편집]

튀르크 제족(Türk 諸族, Türk halkları) 혹은 튀르크는 튀르크어족의 언어들을 모어로 사용하는 투란 인종(Turanid race)의 민족 집단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2. 어원[편집]

고대 튀르크어로 '강한'이라는 의미의 '튀뤼크(𐱅𐰇𐰼𐰰 / Türük)'에서 유래하였다. 한국에서는 사료에 기록된 쾩튀뤼크(𐱅𐰇𐰼𐰰:𐰜𐰇𐰛 / Kök Türük)의 가차 표현에서 유래한 '돌궐(突厥)'이나 영어식 표기 Turk를 따른 '투르크'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현대 터키어 발음을 반영하여 '튀르크'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투르크만차이 조약, 투르크멘,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이 '투르크'라는 표현이 굳어진 경우도 많다.

3. 상세[편집]

중앙아시아캅카스 동부, 카스피 해 호수 연안, 아나톨리아, 볼가강 유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그밖에도 동북쪽으로 추코트카시베리아, 서쪽으로 발칸 반도 등에서 소수가 존재한다.

주요 국가로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터키, 아제르바이잔 등이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도 있다. 다게스탄 공화국에도 일부 튀르크계 민족들이 거주한다.

현재 튀르크족은 중앙아시아 국가들[2]서아시아계 국가들[3] 에 살고 있으며 이들은 투라니드 인종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수렵채집+유목민족돌궐에서 비롯되었으나 튀르크족이 인도, 이란서아시아와 남부 러시아 등지를 정복하였고 더 나아가 아나톨리아 반도, 인도유럽어족인도인, 페르시아인그리스인, 슬라브인, 헝가리인들의 지배자로 있었다.

그리고 튀르크어가 주요 교역 언어가 되면서 튀르크족의 지배를 받던 동유럽과 여러 튀르크계 국가들이 생겼는데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는 인종적으로는 투라니드 인종이라는 코카소이드로 분류된다. 튀르크 제국이 점점 영토를 확장하여 아나톨리아와 아랍, 그리스, 슬라브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튀르크인들은 이 여러 국가에 존재하였는데 오스만 튀르크가 약화되면서 해체되어 아나톨리아 지역만 터키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하지만 이 아나톨리아 지역은 옛부터 오랫동안 동로마 지역이였기 때문에 인종 자체가 매우 유럽적이지만 오랫동안 튀르크인들의 중심체가 아나톨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튀르크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여 터키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백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도인 등 여러 국가의 인도유럽계 코카소이드를 뜻하는 것이며 생김새가 다 다르다. 하지만 아나톨리아 지역 자체가 고대에는 인도이란어족의 히타이트같은 국가가 존재했지만 갈라티아 지역에 켈트족이 거주하기도 했고 로마가 아나톨리아를 점령하고 동로마 시대를 거쳐 서북부 유럽의 게르만계열 민족과 슬라브인이 아나톨리아에 유입되었고 아나톨리아 지역 자체가 동로마를 베이스로 한 곳에서 튀르크의 정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터키인들중에도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경우가 있다. 보통 우리가 떠오르는 백인은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등 서, 북유럽계 게르만족을 떠오르지만 인도유럽어족에는 인도이란인 발트계 민족 등 등 여러 인종이 포함된다. 또한 그리스인-터키인은 유전자 차이가 생각보다 적고 종교로 기독교면 그리스계, 이슬람이면 터키계라 했던 사례가 있다. 지금도 터키인 특히 서부 터키 지역 사람들의 피는 그리스인(이른바 동로마인들) 외모에 가깝고 반대로 그리스인중에서도 튀르크계 그리스인이 있다.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때 종교를 기준으로 교환했기 때문이다.[4]

강대하던 오스만 제국이 20세기 이후로 여러 국가로 나뉘었고 아나톨리아에서 독립한 터키가 튀르크족의 종주국을 자처하게 되었으나 터키인만이 튀르크족의 주축이 아니며 튀르크란 개념은 튀르크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큰 인종적 개념이다. 튀르크족의 인종에 관한 연구 또한 고대 유골 등이 발견되고 아파나시에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등 쿠르간 가설이 지지를 얻으면서 아시아 기원설이 힘을 잃고 유럽계 인종 기원설이 힘을 얻고 있다.

보통 투르크(Turk)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키 밖에 생각 안 나지만 튀르크 민족은 터키에서부터 중앙아시아[5] 그리고 북아시아[6]까지 쭉 퍼져있다.

오늘날 불가리아인의 성립에도 7세기에 볼가 강 유역에 살던 튀르크계 불가르족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현 불가리아인은 소수 지배 민족이던 튀르크족이 피지배 민족이던 슬라브족으로 동화되어 현재는 성명도 슬라브식이고 종교도 정교회를 믿으며 오히려 세르비아인과 비슷하다.

튀르크족은 아마도 인도유럽어족 다음으로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튀르크인을 얘기할 때는 튀르크인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튀르크 제족"'이란 표현을 쓰며 여기에서 알 수 있듯 같은 튀르크인이라도 민족에 따라 문화적, 심지어는 유전적 차이도 상당히 큰 편이다. 왜냐면 튀르크 제국 자체가 중앙아시아와 몽골 서부 지역에서 부터 영토를 계속 넓혀 왔고 이들이 튀르크족으로 불리는 이유는 문화적 언어적으로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워낙 넓은 영토를 가졌기 때문에 동아시아계와 비슷한 투바 공화국, 사하 공화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위구르 사람들과 코카소이드 계열과 비슷한 터키인아제르바이잔인, 가가우즈인 그리고 타타르인들인 타타르스탄크림 타타르 정통적인 투라니드 인종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이 서로 모습이 조금 상이하다.

튀르크 제족은 역사적, 언어학적으로 돌궐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민족을 총칭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돌궐의 전성기 시절 넓은 강역을 보면 알겠지만 다인종 국가가 아닐 턱이 없었다.

그럼 튀르크는 몽골민족과 상이한가? 그것은 아니다. 고대 튀르크어와 몽골어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난 문화들이 몽골 초원의 문화에 영향을 끼쳤는데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멘 문화 그리고 이후 파지릭 문화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몽골 지역으로 뻗어나간 문화로 튀르크-몽골족의 정체성을 보인다. 즉 고대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의 튀르크와 몽골이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도 언어적으로 비슷하다.

즉 튀르크계의 휘하에 있던 현대 몽골인을 실위로 보는 소수의 학자들도 있으나 이 증거에는 예전 실위 부족에 몽올실위가 몽골과 발음의 유사성이 있다는 증거밖에 없다. 즉 몽골족도 튀르크와 위구르의 휘하에서 몽골 초원 서부에서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현대에선 몽골족을 몽골 초원에 남았던 위구르의 일파로 보는 설이 점점 신뢰를 얻고 있다. 실위는 이때 동쪽에 있다가 몽골족에 흡수된 민족일 뿐이다. 이 때 내몽골만주 북부 일원의 동호계 부족들은 물론 외몽골의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 등 이들 중에 나중에 외몽골의 재패자가 된 오이라트가 나온다. 튀르크의 영향은 고대 퉁구스[7]에도 언어 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쳐 문화적으로 비슷하다.

또한 중국을 정복하고 북위, 북주, 북제 그리고 중국 전체를 통일시킨 선비족도 튀르크계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할시 튀르크계 흉노 지배층을 각 마을마다 10만씩 주둔시켰다. 그리고 흉노, 돌궐, 선비족 등의 튀르크의 피와 영향을 짙게 받은 퉁구스계인 여진족(중원 정복 후, 만주족으로 명칭을 바꿈) 또한 튀르크와 몽골에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애초 만주족 말고도 여진족의 피를 이어받은 퉁구스 부족은 많아서 현재 우데게족, 나나이족이라 불리는 야인 여진족도 있고 남부 시베리아에 사는 에벤키족도 있다. 서쪽으로 튀르크부터 시작하여 동쪽의 몽골인(거란 포함) 그리고 동쪽 끝의 만주족(여진족)들은 유사한 언어 그리고 같은 유목 문화, 칸과 가한이라는 황제의 호칭 그리고 탕그리(몽골명 탱그리)라는 종교를 공유한다. 그래서 튀르크제국이 몽골 지역에 진출하거나 몽골 제국에 튀르크 기병들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중국인 한족의 경우는 원나라는 확실히 다른데 언어와 문화가 너무 달라 몽골제국의 4등급 신분제에서 한족들은 최하위를 차지하게 된다. 튀르크인과 몽골인들의 말발굽에 숱하게 짓밟힌 중국인 한족들의 경우 선비족 탁발씨가 세운 북위에서부터 오랜 지배를 받아 선비족, 튀르크, 거란 등의 지배자들에 의해 한족들이 혼혈화가 진행되었지만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중국을 정복했을 때에 워낙 언어와 문화가 달라 중국인 한족들은 최하위 신분에 머물렀다. 이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도 물론이다. 누르하지가 원나라의 옥새를 발견한 것에 몽골, 튀르크 등 많은 유목 민족들이 군대에 편입되면서 만주족의 중국 정복을 도왔다. 물론 원나라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인 한족들을 채용하기도 하였으나 이 한족들은 원래부터 거란족 요나라와 여진족 금나라를 섬기던 화북 출신의 한족들이다.

즉 튀르크의 확장으로 튀르크의 문화와 언어가 몽골인 동호인에 영향을 주어 같은 알타이 제어를 형성하게 된다. 만주어-몽골어-터키어로 Tumen이 100 내진 백부장을 일컫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셋 다 변발을 했으며 특히 만주족들이 몽골, 튀르크계들과 함께 한족을 정복하여 세운 청나라가 이 쪽으로 유명하지만 투르크인들도 전통적으로 변발과 상투를 해서 모자가 발달했다. 현재도 터키 노인들은 대게 민머리에 모자를 쓸 정도이고 남자들이 반삭을 선호할 정도이다.

사실 민족(ethnic)이라 함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므로 인종(Race)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늘날 터키인의 일부는 동로마제국 시대 및 그 이전부터 아나톨리아에 살아왔던 백인종이지만, 터키어를 쓰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로 스스로의 민족 정체성을 규정했다. 가령 유대인의 경우도 기원은 셈계이지만, 유럽계 백인, 흑인, 중앙아시아-동아시아계, 동남아시아계 그리고 아랍계가 모두 존재한다. 중국의 카이펑에 사는 한족화된 유대인들도 태국에 사는 유대인들도 그리고 예멘이나 에티오피아에 남은 흑인 유대인들도 모두 엄연히 유대인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백인 유대인은 사실 유대인의 일부인 아리아계 아슈케나짐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터키인들에게 무슬림이란 이유로 아랍인이냐고 물으면 한국인에게 일본인이냐 묻는 것이나 프랑스인에게 게르만이나 켈트냐고 하는 것처럼 엄청 화낸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인 이란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란인들에게 아랍인이냐고 물으면 역시 화낸다. 웃기게 거꾸로 아랍인들에게 튀르크인이라든지 이란인이라고 하면 똑같이 화낸다. 그 이유는 아랍인들의 투르크나 이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이다. 현재 서아시아아랍어권 나라들에 튀르크 계열 월성기가 없는 걸 봐도 알 수 있다.[8]

아랍 세계는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칼리프를 잃었고, 몽골 제국은 투르크화되어 투르크 이슬람 국가들로 변모한 후 이번에는 칼리프 자리를 찬탈해갔으며 기어이 투르크멘 계열의 오스만 제국이 칼리프를 자칭하기에 이르러 아랍인 정통 칼리프 시대는 끝장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은 아예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북부 및 동북부 아프리카의 뿔 등 아랍인들이 사는 땅 여러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점령해 아랍인 입장에서 압제자에 불과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같은 이슬람 종교를 믿으면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것이 이어져서 이라크시리아에서는 터키를 불구대천지 원수 취급하며 터키가 쿠르디스탄 지역인 키르쿠크나 모술, 아르빌, 아인 알 아랍 등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짜증낸다. 시리아 내전 와중에 터키군의 시리아 공격도 꽤 많았고 전쟁 위기까지도 갔다.

물론 튀니지알제리, 리비아 같은 북아프리카 이슬람권 나라들의 국기에는 월성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이들도 후술하는 대로 튀르크 계열이 정착했다. 맘루크라 불리는 쿠만인들이 체르케스인들과 함께 세운 이집트에 세운 왕조가 맘루크 왕조이다.

4. 분류[편집]

파일:Lenguas_túrquicas.png
남동 튀르크
남서 튀르크
북동 튀르크
북서 튀르크
아르구(칼라지)
오구르 튀르크(추바시)
튀르크족은 언어와 민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볼드체로 표시된 것은 현재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고, † 표시가 있는 것은 현재 사멸한 종족이다.

5. 역사[편집]

5.1. 발원지[편집]

5.1.1. 내몽골 가설[편집]

벨기에 언어학자 Martine Robbeets의 가설에 의하면, 튀르크족은 중국 내몽골지역의 흥륭와문화에 기원을 둔다. 흥륭와 문화는 내몽골의 농경집단이있으며, 이후 홍산문화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기원전 2200년을 전후로 내몽골의 사막화가 심화되면서 고비사막을 건너 외몽골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이주와 기후변화에 맞추어 이들은 농경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목축적인 생활양식을 채택했다.[10]

단 튀르크인은 이미 몽골 고원으로 이주한 시기부터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의 혼성이었으며, 튀르크인의 확산은 주로 유전적, 종족적 이주 보다는 튀르크계 언어의 전파에 기인한것으로 보인다.[11] 대표적으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화는 소수 지배층인 튀르크인들이 인도-유럽계 종족들에 튀르크어를 전파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12]

5.1.2. 알타이 산맥설[편집]

이른바 미누신스크 가설이다. 원래 튀르크의 주 활동무대이자 가장 유력한 발원지는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오비 강의 지류인 토볼-이쉼-이르티쉬 유역과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 강 지역을 튀르크의 발원지로 본다. 또는 북부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 미누신스크 분지, 동부에는 몽골 고원 북서부 등이 각각 튀르크족의 발원지로 지목된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투란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고대 안드로노보 문화권 주민들은 아무다리야 강과 알타이 산맥을 걸쳐 유목과 농경 및 수렵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고대 튀르크어족몽골어족의 유사성은 언어동조대라는 것이 정설이나, 알타이 제어의 연장선에서 튀르크어족과 몽골어족은 기원전 10세기에 분화되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이후 튀르크인의 최초 통일제국은 돌궐외몽골내몽골자치구, 만주 지역, 트랜스아시아 일대[13]신장 위구르 자치구, 더 나가 흑해캅카스에 이르렀다.

8세기 이후 돌궐 제국(Göktürk)은 중국 북부와 서부를 정복하여 지배하면서 가한이 전쟁에 죽기도 하였지만 이동하는 유목 문화로 인해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다시 부흥하여 다시 도호부의 중국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이번엔 같은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또 다른 튀르크계 종족인 위구르로 계승됐으나 튀르크계의 키르기스[14]에 멸망하였다. 다시 요나라의 주요 세력에 가담했고 원나라 때 세력에 가담하여 위구르족은 몽골 제국(원나라) 중국 정복의 주요 지배 세력으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서돌궐은 계속 카자흐스탄흑해 연안에 남았다.

페르시아 사가들에 의하면 10세기에는 트란스옥시아나호라산 상당 부분이 튀르크화되었으며, 이들이 사용하던 중세 튀르크어에 많은 아랍어, 페르시아어 어휘가 유입되면서 분화가 이루어진다.

5.2. 오구즈와 셀주크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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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 서쪽에 있던 튀르크족인 오구즈족은 오구즈 야브구국을 세운다. 이들의 일부는 페르시아 지역으로 건너가 셀주크 제국을 건국한다. 셀주크 제국이 팽창하면서 오구즈족들은 페르시아를 가로질러 남아제르바이잔캅카스에 이주하여 토착민인 페르시아인들을 튀르크화시키기 시작한다. 셀주크 제국이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대승한 이후에는 아나톨리아에도 오구즈족이 유입되면서 토착 그리스인의 튀르크화가 진행된다.

5.3. 타타르 국가들[편집]

한편 몽골 고원에 남아있던 튀르크 부족들은 13세기 스텝의 새로운 패자인 몽골 제국의 주요 군사 세력으로 떠올랐다.

몽골인은 튀르크와 원래 같은 텡그리 신앙이라는 샤머니즘을 숭상했으며 언어/문화가 유사해 금방 튀르크화되었고 결국 몽골 제국중국 대륙만주원나라중앙아시아의 4개 칸국으로 나뉘자 중국화된 원나라와 달리 4칸국은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들로 변모하였고, 이들은 나중에 현 타타르스탄 공화국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물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중앙아시아 각 튀르크 국가들의 전신이 된다.

한편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원나라중국 대륙을 완전히 정복하여 통일시켰으며 윈난성의 대리국도 멸망시켰다. 이 때 한족들을 피지배 민족화한 후 지배하였다.

중앙아시아시베리아, 그리고 유럽 러시아 일대로 진출한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등 4개 칸국은 문화의 동질성이 강한 튀르크 귀족들과 몽골 귀족들이 동화되었고 튀르크계 부족들이 거느리는 군대 또한 4칸국의 중요 세력으로 참가하였다. 그래서 같은 유목 기마민족으로서 좀 더 일찍부터 이슬람 제국의 영향을 받은 타타르 튀르크인들에게 동화되어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킵차크 칸국, 크림 칸국 등의 이슬람 튀르크-몽골 유목 국가들을 세웠고 사실상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로 변모한다.

킵차크 칸국의 킵차크 또한 그 지역에 살던 튀르크족 이름이 킵차크족였던 것을 보면 튀르크와 몽골이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으로 얼마나 빨리 같은 민족이 됐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원나라와는 다른데 원나라에서는 몽골인들은 한족들을 정복하면서 한족들에게 동화하지 않았다. 같은 기마민족인 선비족이 한족을 정복해 피지배민족으로 있던 한족들은 북조의 통일로 선비족의 피가 찐하게 들어갔지만 한자중국어를 쓰며 언어적으로 북방민족들과 전혀 다르게 되었고 문화도 달랐다. 선비족은 한족화된 것과 달리 타 기마민족은 그렇지 않아서 여진족 금나라거란 요나라는 남면관제와 북면관제 등을 쓰며 한족들과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했다.

원나라에서 몽골인들이 한족을 4등급 계급제에서 최하위로 둔 것은 그만큼 몽골족은 물론 여진족, 거란 등과 한족이 서로 언어적, 문화적으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혀 이질적이지만 다수 피지배 민족인 한족들을 철저히 북방 기마민족들과 구분하고자 일부러 낮은 계층으로 몰아놓은 데 가깝다.

물론 원나라의 가혹한 지배를 거치면서 피지배층 한족들 대부분에게 지배층인 몽골-튀르크인의 피가 강제적으로 유입되었지만 보르지긴 가문은 내몽골로 이주해서 차하르부가 되었기 때문에[15] 칭기스 칸의 후예들은 중원이 아닌 내몽골, 그리고 중국이 아닌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중앙아시아에 주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보르지긴의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은 중국을 정복하여 지배자가 되었고 유사한 언어 문화를 가진 거란이나 여진족 등을 병합해 나가며 결국 송나라를 멸망시켜 한족들을 완전히 정복하는 일을 달성하여 중국의 완전한 정복자로서 군림하게 된다.

5.4. 맘루크[편집]

9세기 이후 카스피해크림 반도 일대에 거주하던 튀르크계 민족들은 노예 무역에 의해 카이로와 당시 아바스 왕조이슬람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위치한 노예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들은 권력자들에 의해 중장기병, 맘루크로 훈련받았으며 13~14세기에 이르면 이집트인도에 왕조를 열기도 한다.

이집트에서는 맘루크 왕조가 열렸고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마멜룩이라고 불렀으며 맘루크 조의 영역은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 동부 지역에 이르렀다. 맘루크 조는 나중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했지만 맘루크들은 이집트 내 권력을 유지했다. 이들 대부분은 19세기 메흐메트 알리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끔살당한다.

인도에서는 델리 근처에 튀르크계 이슬람 왕조인 노예 왕조를 열기도 했다. 원래 맘루크는 노예였기에 출신 때문에 노예 왕조라고 불렸다. 이 노예 왕조 이후 북인도와 남인도 모두 무슬림 정권이 들어섰으며, 북인도는 델리 술탄 왕조들을 거쳐 무굴 제국[16] 등 튀르크계 이슬람 왕조들의 통치를 받았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오늘날 남아시아 무슬림 이름 중 흔한 칸(Khan)은 말 그대로 튀르크계 이름이고 힌두교도, 무슬림 가리지 않고 흔한 이름인 바하두르(Bahadur)는 몽골어로 힘쎄고 날랜 용사란 뜻이다.

5.5. 아나톨리아의 튀르크[편집]

현대 터키인은 남서 튀르크계에 속하는 오스만르, 즉 오스만 제국의 주류 민족들로 터키공화국이 건국된 이후로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사는 튀르크족이란 의미로 아나돌루 튀르퀴시(Anadolu türküsü)라고 칭한다. 오스만이나 아나톨리아를 강조하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와 구분한다.

아나톨리아에 뿌리를 내린 튀르크족은 원주민 쿠르드인과 토착민으로 아주 오래전 이주해 살아온 그리스인들을 튀르크화한 후 15세기에 이르면 터줏대감인 동로마 제국마저 싹싹 털고 유럽에까지 진출해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원래 아나톨리아의 원주민은 메디아 왕국이나 리디아 왕국 등 소아시아 왕국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쿠르드인이지만 튀르크화되면서 서서히 튀르크인으로 대체되게 된다. 그리고 동부 산악지대의 쿠르드만이 튀르크화를 거부하고 독자 민족으로 남아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오스만 제국동유럽부터 아라비아,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프리카의 뿔에 이르는 동서양을 통합한 대제국으로 이들은 한때 유럽 세계의 주요 강대국 오스트리아을 포위해 위협하기도 했지만 이후 서구열강에 비해 뒤쳐지게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제국은 해체되고 케말 파샤의 활약으로 지금의 민족국가 터키가 된다.

이후 아나톨리아의 튀르크는 혈통적으로는 그리스인쿠르드인과 별 차이 없지만, 언어가 튀르크계 언어 즉 터키어인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되며, 튀르크 혈통이 섞인 기독교도는 그리스인으로 간주되어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대부분 그리스로 향했고 쿠르드인들은 동부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만이 전통을 고수해 다른 민족처럼 갈리게 된다.

5.6.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편집]

한편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터전인 중앙아시아에 남았던 튀르크족들은 차가타이어파 우즈베크인과 오늘날의 위구르인, 쿠만 족을 계승한 카자흐인, 호라산에 정착한 오구즈 튀르크의 후예 튀르크멘인, 시베리아 남부에서 이주한 키르기스인으로 분화하였으며 16세기부터 17세기 말 오이라트준가르족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았고, 무굴 제국의 약화로 중앙아시아 무역이 쇠퇴하면서 이후 투르키스탄 내 칸국들은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이 된다. 당시 서양 열강들의 중국 침략 일본 제국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하는 등 서영 열강이 떠오르고 있었다.

만주족이 중국 한족들을 정복하여 건국한 청나라는 18세기 최후의 유목 제국 준가르 칸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동튀르키스탄을 점령했다. 만주족들은 한족들이 위구르 무슬림 거주지로 이주하는 것을 막았지만 1864년 봉기와 야쿱 벡의 에미르국 건설 시도 이후 쇠퇴기 청나라에서는 동튀르키스탄을 한족의 제국주의 식민지로 만들려 시도했다. 소련의 영향을 받던 동튀르키스탄 지역은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한 이후 신장성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른다. 신장은 위구르라는 이름이 들어가지만 사실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등 다른 튀르크계 부족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한 편 캅카스 남동부와 카스피해 남서부 인근, 아제르바이잔 지역에는 오구즈족들이 이주하여 아제르바이잔인이 된다.

6. 사회·문화·언어[편집]

튀르크 제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튀르크어족에 속해있다.

튀르크족의 상징은 보즈쿠르트(Bozkurt)라고 불리는 회색늑대이다.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 최초로 발행된 지폐에 보즈쿠르트가 들어가기도 했는데, 보즈쿠르트는 터키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범튀르크주의(Pan turanism - türkçülük)이라는 민족주의적 움직임이 있다. 튀르크족은 여러 나라에 퍼져 있고 주류를 차지하는 국가도 한둘이 아니라서 범튀르크주의가 퍼질 수 있는 토양이 실존한다.

그리고 실제로 터키가 이 점을 널리 선전해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 사이에서는 터키의 음악과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일부 우즈베크계, 키르기스계 한정)[17], 아프가니스탄(제일 북부 한정) 같은 국가들끼리의 문화적, 정책적 연대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튀르크 국가들이 키릴 문자가 아닌 라틴 문자를 재도입할 때 터키의 라틴 문자를 일부 받아들인 것이 그 예다.[18]

또 터키에서 매년 개최하는 터키어 올림피아드(Türkçe Olimpiyatları)에서 이들 국가의 참여율은 정말 눈부시다.[19]

게다가 터키는 경제력이 높은 편이며 나름대로 힘있는 강력한 군사강국이고[20], 유럽과 가까우며 일찍 튀르크 고유 문화를 지도한 만큼 문화 분야에서도 앞서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다른 나라들은 여러 분야에서 뒤쳐져 있지만 그 대신 지하자원이 넘쳐나는 자원강국. 그래서 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의 시너지는 매우 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튀르크계 국가들의 발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서구 뉴스에서는 이들을 묶어서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광에 빗대 신오스만주의(Neo-Ottomanism)라고 부를 정도. 결정적으로 터키는 러시아-중동라인이라는 매우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지원까지 받고 있다! 이 영역을 다 합치면 말 그대로 유럽에서 중국까지 정복한 중앙아시아 제국이 부활하는 격이다. 하지만 사실 터키가 튀르크의 대표라고 자부하는 것에 다른 튀르크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또한 경제력이 높다고 그 민족의 대표나 종주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 게르만족 국가들 중 독일이 가장 경제력이 높다고 프랑스, 영국 놔두고 대표가 되는 건 아닌 것과 똑같은 이론이다. 물론 터키 음악과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튀르크 국가들이 터키가 대표이며 구심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국가들은 같은 수니파로 이란에 대항한다.[21]

그러나 이렇게 폄하할 만한 건 또 아닌게 터키는 그래도 튀르크 벨트에서 경제력이 가장 높고, 그렇게 못 사는 나라도 아니라서 준선진국이나 선진 개도국 레벨은 되며 생각보다 이슬람권에서 영향력이 큰 편이다.

아나톨리아 반도 최초의 거대 문명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은 세계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터키인 또한 이 히타이트 제국이나 오스만 영토에 있던 아시리아 제국, 바빌로니아와 칼데아, 아카드 등 메소포타니아 문화가 있던 곳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높고 세계 문화 유산 또한 이란 다다음으로 많다. [22] 하지만 찬란했던 고대 역사는 사라진지 너무 오래돼서 아나톨리아 사람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못 했다. 사실상 문헌이나 땅파서 고대 문명이 나타나니 "대단한 고대 역사가 있었구나" 안 것이지 예전에는 이런 고대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문헌 기록에서 얼핏 아는 것 뿐이었다. 물론 터키인들이 이런 고대 역사에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대 역사는 종교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고대 국가가 있었구나 이 정도다. 오히려 아나톨리아인들은 룸 술탄국이라는 사례에서 보듯 동로마 제국 출신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만큼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 부럽지 않게 오스만 제국도 역사가 길었고 민족적 개념은 근대에 더 확실해졌기 때문에 터키인으로서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11세기 후반부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튀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 내륙을 정복했고. 이를 기점으로 아나톨리아 반도는 급속히 이슬람화되었다.

터키인들은 최근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인 히타이트 인들에 대한 역사를 거의 알지 못했다. 최근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위대했던 히타이트 문명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터키 지식인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크게 쏠리고 있다.

처음에는 초기 유럽 역사로서 주목받은 아카드,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국가는 독일, 프랑스유럽 고고학자들의 관심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터키가 히타이트 고고학 연구에 주도적으로 나서기 시작하고 있다.

스탄 자 들어가는 중앙아시아 각 국가들의 맹주를 자처하며 문화적으로 활발히 교류 중이다. 한 예로 터키 드라마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세르타브 에레네르, 세젠 악수 같은 터키의 인기 가수들도 중앙아시아 각 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 항공 역시 중앙아시아 노선이 동유럽 노선과 함께 가장 붐비는 노선이다. 이 항공사의 최대 수요는 사실 중동이 아닌 바로 중앙아시아다.

그리고 위구르 독립 문제에도 국제사회에서 터키와 바로 옆 인접국인 키르기스, 카자흐스탄이 관심을 가지며 다른 나라들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와 알제리, 이란, 인도네시아, 이라크, 이집트, 모로코 같은 이슬람권의 주요 다른 나라들이 관심이 없을 때 터키만이 중국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 때도 오직 터키만이 중국의 무력진압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6.1. 신화[편집]

쾨로을루(Köroğlu 혹은 Göroğlu, '장님의 아들') 신화는 튀르크 민족이 공유하는 구전문학작품으로, 투르크 민족이 거주했던 방대한 지역을 무대로 삼고 있으며, 투르크 제족 혹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필사본이 있다. 쾨로을루는 다양한 구전문학 장르에 등장하는 영웅적 인물이다.

투르크 문학세계에서 쾨로을루라는 이름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의로운)능력, 힘을 의미함과 동시에 탄압, 부정, 억압과 횡포에 대항하는 힘과 이러한 인물들을 총칭하기 때문에 투르크 구전문학과 기록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쾨로을루 신화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투르크 문화권에서 음유시인이자 이야기꾼인 오잔 혹은 아쉭들에 의해 읊어지고 있으며,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야기이다. 문학작품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쾨로을루 신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투르크 민족 가운데 서진(西進)한 투르크 제족의 전승본과 중앙아시아 지역 전승본이 그것이다.

쾨로을루 전승본 중 서편에는 아제르바이잔, 아나톨리아 반도, 발칸반도, 아르메니아, 조지아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가 속하고, 동쪽의 투르크 제족 전승본 즉, 중앙아시아 지역 전승본에는 투르크멘, 카라칼팍, 우즈벡, 카작, 키르기스, 타타르, 위구르 투르크족 가운데 전승되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타지키스탄 및 중동지역에서 전승되던 쾨로을루 이야기가 이에 속한다.

중앙아시아 투르크 제족의 쾨로을루 전승본은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 투르크 민족의 전통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영웅 신화적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의 영웅 대서사시인 마나스와 함께 투르크 민족의 기념비적 서사작품으로 평가된다. 보통 쾨로을루 신화 전승본은 중앙아시아지역 전승 이야기가 근간이 되어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쾨로을루 신화는 쾨로을루라는 이름의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투르크 제족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의 등장인물, 지역적 환경, 활동 등이 반영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서사내용이 보고된다. 투르크멘과 칼라팍 투르크족 사이에 전승되는 쾨로을루 이야기의 종류는 41편, 우즈벡 투르크족 14편, 카작 투르크족 62편, 타직 투르크족 50편이 보고되고 있으며, 타타르, 위구르, 키르기스, 시베리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 족과 부하라 지역 아랍인들 사이에 전승되는 쾨로을루 신화 종류를 모두 더한다면 매우 다양한 종류의 갈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쾨로을루 서편 전승본과 중아아시아 지역 전승본 사이에는 쾨로을루의 탄생과 성장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 내용적인 측면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에는 쾨로을루의 탄생에서부터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며 영웅의 범상함을 나타내고 있다. 투르크멘, 카작, 우즈벡, 위구르 투르크족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쾨로을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무덤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특히 우즈벡 전승 이야기에는 '뤼스템의 암말 가운데 한 마리가 새끼를 잃고 슬픔에 잠겨 이곳 저곳을 떠돌다 무덤에 이른다. 때 마침 무덤 밖으로 나온 아이를 보게 되고 이 아이에게 젖을 물려 키웠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투르크멘 전승이야기에서는 쾨로을루의 삼촌 게짐이 키우는 가축 무리 중 한마리가 무덤가로 가서 울자 쾨로을루가 무덤에서 나와 이 염소의 젖을 물었다고 한다.

이처럼 쾨로을루 신화에는 주인공이 동물(말)의 젖을 먹고 자랐거나, 갓 태어난 주인공이 고기를 먹으며 자랐다는 등의 신화적인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는 투르크 문화권에서 말이 지닌 신성함이 반영된 것이며, 영웅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 투르크족의 전승 이야기에서는 쾨로을루의 탄생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 않으며, 주인공은 10-15세의 남자아이(청년)로 설정되어 있다.

쾨로을루 신화의 가장 오래된 전승본으로 알려진 투르크멘 쾨로을루 신화는 아흐멧 예쎄비 대학교의 지원으로 아나굴루 누르멤멧에 의해 현대 터키어로 옮겨진 바 있다. 총 8권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는 쾨로을루 신화를 31개의 전래본으로 나누고 있다. 투르크멘 투르크족은 쾨로을루를 가장 중요한 신화로 여기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르닥르 참드빌이란 곳에는 즈알르 벡이라는 술탄이 살았다. 그는 원래 마부였는데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술탄이 죽자 지역민의 추대를 받아 술탄이 되었다. 그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아드 벡 이라는 이름의 용감하고 똑똑한 막내아들이 연로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술탄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아드 벡의 부인은 임신 중에 죽게 되는데, 무덤에 묻힌 뒤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드 벡 또한 세상을 떠난다. 아드 벡의 아들은 무덤에서 나와 염소의 젖을 먹고 자란다. 부모를 잃은 아이는 할아버지 즈알르 벡의 손에 의해 키워진다.
그 당시 인근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휜카르 술탄은 늘 투르크멘 지역을 갈취하고 지역민들을 괴롭히기로 악명 높았다.
그는 투르크멘 지역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즈알르 벡을 포로로 삼아 데려가 마부를 삼는다. 시간이 흘러 휜카르 술탄은 즈알르 벡의 능력을 인정하고 고위 관리로 삼는다. 휘나르 술탄은 츠알르 벡에게 종마를 구해오라고 명령하지만, 그가 데려온 말이 마음에 안 들자 그의 눈을 멀게 하여 장님으로 만든다.
세월이 지나 청년으로 자란 주인공 뢰브셴은 지역민들에 의해 괴로울루(쾨로을루) 즉, ‘장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진다.
즈알르 벡은 손자를 데리고 자신들의 투르크멘 땅으로 도망쳐 위츠귐메스 산에서 살기 시작한다.
괴로울르는 꿈에서 이슬람 성인에게 소원을 빌고, 복수를 위해 찬드빌로 돌아가 지역민들에 의해 부족장으로 추대된다. 괴로울르는 40명의 부족영웅(전사)들을 데리고 가서 휜카르 술탄을 굴복시키고 복수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부족민들에 의해 시로, 노래로, 신화로 불리며 영웅으로 기억된다.
투르크멘의 쾨로을루 신화는 201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음유시인인 오잔은 투르크 전통 발현 악기 중 하나인 사즈를 연주하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한다. 이들은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신화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하여 일반인들에게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쾨로을루 신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오른 데에는 투르크 구전문학의 전통과 유구한 역사를 미래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쾨로을루는 터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에 이르기까지 현재 투르크 민족이 살고 있는 방대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노래되고 있는 살아있는 신화이다.

투르크 문화권에서 쾨로을루는 영웅이자 시인이며, 이야기꾼이자 전사이다. 또한, 존경과 추앙을 받는 역사-신화적 인물로 횡포와 수탈 앞에서는 칼을 휘두르고, 민중 앞에서는 사즈를 연주하며 전통을 가르치는 인물이다. 투르크 민족들을 이러한 쾨로을루를 통해 압제와 횡포, 수탈과 부정에 대항하는 용기와 의지를 불태우고 정의와 이상을 추구하는 영웅적인 삶을 꿈꿨을 것이다.[23]

6.2. 음악[편집]

튀르크족이 워낙 넓은 데에 분포해있다보니 음악은 기본적으로 악기와 멜로디는 비슷하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중앙아시아같은 원시 투르크는 몽골음악, 페르시아 음악과 비슷하며 한국인에게 상대적으로 더 친숙해 보인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워낙 페르시아어를 차용하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페르시아 느낌도 나며 터키의 전통음악은 원래 쿠르드인들의 음악인 아라베스크에서 왔고 그리스 음악의 영향도 진하게 받았다.

가령 남부 시베리아투바, 알타이, 하카스인들은 인접한 몽골음악과 비슷한 민속음악을 가지고 있는데, 몽골음악에서 발견되는 흐미(Хөөмий)[24]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몽골악기인 마두금도 사용한다. 애초 시베리아 쪽은 몽골 고원과 붙어 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음악의 내용도 매우 풍성해서 샤만(Şaman)[25], 혹은 박스(Baksı)[26]라고 부르는 무당들의 무악(巫樂)이 있는가하면 기쁘고 슬픈 감정을 노래하는 장르도 많이 발달해 있다. 원래 투르크인은 무속신앙을 믿어서 한국인들처럼 무당들이 지금도 있으며 중앙아시아 각 국가에서는 이슬람과 무속이 섞인 각종 주술을 행하고 점을 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튀르크인의 회메이(Хөөмей), 카르그라(Каргыраа), 스긋(Сыгыт) 창법.[27]


위구르인의 민요 '검은 까마귀들'(Kara Kargalar), 위에 위구르어, 터키어 자막이 붙어있다.


알타이인의 노래 '검은 물'(Кара суу), 여기서도 회메이가 등장하며 무린후르같은 몽골풍 악기들이 대량등장한다.


중국 서부에 거주하는 살라르족의 노래.

7. 종교[편집]

원래는 샤머니즘(텡그리 신앙)을 신봉하고 있었으며 하늘 신의 이름은 모두 같은 탕그리[28]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튀르크족은 무슬림이다. 대게 수니파를 믿지만 10-20%의 상당수는 알레비파라는 시아파 계열의 소수종파를 믿으며 알레비는 불교와 무속신앙 영향을 진하게 받아 정통 이슬람과는 전혀 다르다. 알레비 성인인 하즈 벡타쉬부터 터키 출신이며 터키에서는 알레비파가 암암리에 인구 과반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투르크인 사이에서 교세가 크다.

투르크인과 몽골인들은 모든 종교에 관대했으며 이슬람을 믿게 된 후에도 술을 끊지 않았고 음악을 즐겼다. 추운 스텝에서 술 없이 돌아다닐 수 없어서 중동과는 형편이 달랐다. 그리고 현재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나 터키 동부 시골마을 등에서는 여전히 하늘과 자연 신들을 믿는 무당들이 활동한다. 이슬람과 무속이 섞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비주의 종파 수피즘에서 추는 춤인 메블라나로 터키의 콘야는 이 메블라나의 본고장으로 메블라나 박물관도 있다. 메블라나 자체가 신들린 상태에서 추는 무아지경에서의 춤이다.

하지만, 추바시인, 야쿠트인, 가가우즈인, 크랴셴, 나가이바크(정교회), 투바인(불교), 돌간인, 카라임 유대인 등 예외가 있다. 물론 이들은 비교적 소수이다

8. 튀르크 국가[편집]

현대 튀르크족의 정식 독립 국가는 6군데이고, 미승인국은 하나 있다. 인구순으로 나열하면,

8.1. 역사상 튀르크계 국가·집단[편집]

6차 교육과정 이전 세계사 교과서의 영향 때문인지 튀르크계 국가를 대라면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딱 대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동유럽과 중세 서아시아사에서 튀르크와 관련 없는 애들 찾기가 더 힘들다. 예를 들어 프랑크 왕국을 위협했던 사브르 칸국,아바르 칸국, 하자르 칸국은 완전 동유럽 자체를 몇 백년이나 접수하고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같은 표현도 거의 "오스만 제국" 같은 식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일단 여기서는 지배층이 튀르크계인 경우만 다뤘다.[29]

일부 터키 사학자들 중에는 아직 그 기원이 불분명한 한국인까지 튀르크의 일원으로 여기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것은 범튀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위키백과에 문의가 올라왔을 정도. 참고로 터키의 흔한 성씨로는 칭기즈 칸(칭기즈), 티무르(테무르), 쿠빌라이 칸(쿠빌라이), 툴루이(툴루이 칸), 아틸라(훈족의 지도자) 등이 있다.

지금은 유라시아에만 튀르크계 국가들이 있으나 옛날에는 북아프리카에도 튀르크 세력과 겹쳐있었다. 물론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 북아프리카의 투르크 세력은 물러났으나, 여전히 북아프리카에도 터키인이나 북아프리카계 투르크인이 아직 있는 편. 간접통치라 한들 어쨋든 300~400년 넘게 마그레브 지방도 명목상이나마 오스만 제국의 봉신들이었으니 적지 않은 튀르크인들이 주로 행정, 군사 방면에서 종사하며 꾸준히 이주를 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튀니지에 많이 정착했다.

9. 튀르크족 캐릭터[편집]

[1] 터키, 북키프로스,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사하 공화국, 타타르스탄, 동투르키스탄, 크림 타타르족, 남아제르바이잔. 다게스탄도 보이는데, 다게스탄은 북동카프카스어족 민족들과 투르크족 모두가 거주하는 지역이며, 노가이, 쿠미크인이 다게스탄의 주요 투르크족이다. 다만 다게스탄은 약 67% 정도가 북동카프카스어족이고, 투르크는 19%이며, 러시아인은 9%, 그 외에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동네이다.[2]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3] 터키,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4] 터키 내 그리스인들이 만든 기독교 유적지에는 그리스 문자로 터키어가 표기되어 있고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고등학교도 실은 기독교계 터키인들이 다닌다. 정교회의 콘스탄티노플 추기경 역시 기독교계 터키인이다. 반대로 그리스 남부에는 터키어그리스어를 병용하는 이슬람화된 그리스인들이 산다.[5] 중국신장 위구르 자치구부터 소위 스탄 자 나라들, 그리고 남부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 등. 간혹 중앙아시아에 포함되기도 하는 캅카스, 카스피 해의 경우 아제르바이잔이 해당된다.[6] 시베리아 북쪽의 사하 공화국이 북아시아다.[7] 동호와 같은 뜻이라는 학설이 존재[8] 다만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같은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어권 나라들은 달과 초승달이 그려진 월성기를 국기로 사용한다.[9] 오구르 튀르크 계통인지 아니면 몽골선비 계통인지 논란이 있다.[10] Robbeets 2017, pp. 216-218. Robbeets 2020.[11] ee, Joo-Yup; Kuang, Shuntu (October 18, 2017). "A Comparative Analysis of Chinese Historical Sources and Y-DNA Studies with Regard to the Early and Medieval Turkic Peoples". Inner Asia. Brill.[12] Damgaard, P. B.; et al. (May 9, 2018). "137 ancient human genomes from across the Eurasian steppes". Nature. Nature Research.[13] 현재의 스탄 자 돌림 나라들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다.[14] 현지에서는 크르크스라고 부른다[15] 물론 이들은 칭기즈 칸의 동생 케사르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외몽골로 이주한 보르지긴 가문도 있다.[16] 황족이 차가타이 칸국티무르 제국에서 기원했다.[17] 타지크족 또한 스키타이 유목 문화를 가졌다. 그리고 후잔트, 이스파라 등 서북부 지역에는 우즈베크족, 키르기스족들도 거주한다.[18] 원래 소련에서 1920년대에는 회유책으로 중앙아시아 타타르 및 튀르크계 소수민족에게 민족어로 터키와 마찬가지로 라틴 문자를 사용하도록 지정하였으나, 스탈린 시대 1930년대가 되면서 강제로 키릴 문자를 사용하도록 정책이 변경되었다.[19] 사족으로 한국 대표도 참가해 우승한 적이 있다![20] 물론 이거 다 이스라엘처럼 미국의 군사지원 덕택이지만.[21] 이란은 시아파이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사실상 동아시아 국가와 다르게 이슬람권은 민족의 역사적 다툼보다는 종교적으로 파가 달라 서로 경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22] 현재 세계 문화 유산이 가장 많이 등재된 곳이 페르시아 제국이 있던 이란이다.[23] 출처 - http://central-asia.or.kr/new/uploads/issuepaper/f8869cb3aca58091e77ed0dbff6836de48b57c026f3a2104f5a418d68fe62768/07_%EB%AC%B8%ED%99%94%EC%A0%95%EB%B3%B4_-_%EC%BE%A8%EB%A5%B4%EC%98%A4%EC%98%AC%EB%A3%A8_%EC%8B%A0%ED%99%94_compressed.pdf[24] 튀르크 쪽에신 회메이(Хөөмей)라고 한다.[25] 여기서 영어로 무당을 뜻하는 샤만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26] 한국어로 남자 무당을 일컫는 박수와 같은 말이다.[27] 스긋이 맑은 소리, 카르그라가 저음.[28] 몽골은 탱그리[29] 예컨대 군사력의 주축이 튀르크족이었지만 왕족이 쿠르드족이었던 아이유브 왕조 같은 경우는 해당 없다.[30] 쓰촨 성 북부와 칭하이성 산지 일대에 살던 튀르크계 집단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강족과 티베트인 등 수많은 티베트계 제족들과도 같이 살게되어 혼혈되면서 언어적으로 티베트화되거나 강족에 동화되었다.[31] 불가리아의 전신. 하지만 현재의 불가리아인들은 슬라브족 등 인도유럽어족에 완전히 동화되어 현재는 튀르크 계열이 아니다.[32] 작중에서 돌궐에서 조선으로 온 인물인데 문제는 작중 시간대에서 돌궐이란 나라는 이미 망한 지 몇백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