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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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ནང་བསྟན
불|སངས་རྒྱས་
석가모니불과 날란다 17 논사(論師)[1]
법|ཆོས་
티베트식 불교 경전 뻬차(dpe cha)
승|དགེ་འདུན་
묀람(smon lam)[2]에 참가한 티베트 불교 승려들
규모
약 1,800만 ~ 2,000만 명[3]
분류
대승 불교 (Mahayana Buddhism)
금강승 불교 (Vajrayana Buddhism)
성립
A.D. 7세기 송첸감포 왕 재위 시
분포
주요 사상
중관(귀류논증), 후기 밀교
종파
닝마, 까규, 사캬, 겔룩 등
명칭
한국어
티베트 불교
영어
Tibetan Buddhism

1. 개요2. 명칭: 라마교?3. 역사: 인도 대승 불교의 도입4. 현교
4.1. 개요4.2. 교학과 수행의 일치4.3. 분석적ㆍ논리적 탐구4.4. 기(基), 도(道), 과(果)4.5. 견해, 명상, 행위4.6. 중관 사상4.7. 불교인식논리학4.8. 자비와 보리심의 강조
4.8.1. 자비와 보리심 일으키기4.8.2. 세속 보리심4.8.3. 승의 보리심4.8.4. 사무량심 수행4.8.5. 보리심 수행4.8.6. 관련 문헌
5. 밀교
5.1. 개요5.2. 밀교의 기원과 불교사 서술 방식
5.2.1. 전통적 관점5.2.2. 현대적 관점
5.3. 밀교와 현교의 비교5.4. 밀교의 분류5.5. 밀교의 수행 요건5.6. 밀교의 계율5.7. 밀교의 수행법
6. 수행 체계7. 강원의 교육과정
7.1. 개요7.2. 5대 경전의 학습방법과 핵심7.3. 문사수(聞思修)의 체계7.4. 기초 과정7.5. 5대 경전 과정7.6. 강원 과정 이후
8. 종파
8.1. 개요8.2. 닝마빠8.3. 까규빠8.4. 사캬빠8.5. 겔룩빠8.6. 조낭빠
9. 환생자 제도10. 한국 불교와의 교류
10.1. 인적 교류10.2. 문화 교류10.3. 현대 교류
11. 지역별 보급
11.1. 대한민국11.2. 중화권 및 티베트11.3. 몽골11.4. 부탄11.5. 인도11.6. 네팔11.7. 러시아11.8. 기타 전세계
12. 기타
12.1. 밀교와 성(性)?
12.1.1. 오해와 편견12.1.2. 사상적 배경12.1.3. 원리, 자격, 금기12.1.4. 논란
12.2. 승려의 결혼?12.3. 육식?12.4. 초야권?12.5. 복식

티베트 라싸(Lhasa)에 위치한 포탈라궁(Potala Palace)
허공계가 남아 있는 한, 중생이 머무는 한,
저 또한 여기 머물러 중생의 고통을 소멸하게 하소서.

《입보살행론》〈회향품〉
여래(如來, tathāgata)는 오온(五蘊)이 아니고
오온과 다른 것이 아니며
여래 속에 오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온 속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여래가 오온을 갖는 것도 아닌데
이런 가운데 어느 것이 여래이겠는가?

《중론》〈관여래품〉[4][5]

1. 개요[편집]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달한 불교의 한 종파. 주된 분포 지역은 중국(중국령 티베트 자치구 포함)[6], 부탄, 몽골(중국령 내몽골 자치구 포함), 러시아의 몇몇 공화국(칼미크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등이며, 믿는 지역이 가장 넓은 편인 불교 종파이다.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티베트 불교는 대승의 현교와 밀교를 모두 포괄하므로 대승 불교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현대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지도자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갸초(Tenzin Gyatso)

2. 명칭: 라마교?[편집]

과거 '라마교'라고 통칭되었고 현재에도 간간히 그렇게 불리나 엄밀히 말해 부정확한 표현이다. 라마교라는 것 자체가 라마를 섬긴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밀교의 영향이 강한 티베트 불교의 관습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주며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스승(라마)을 붓다와 하나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통칭되었던 것이다.

대승 현교(顯敎)에서도 스승을 붓다의 화신, 혹은 붓다 그 자체로 보는 견해가 있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공덕이 선지식에 의해 생긴다’’라고 하였으며 《대고경(大鼓經, Mahabheriharaka-sutra)》[7]에서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가까워졌을 때, 아난이 매우 슬퍼하자 석가모니가 그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아 슬퍼하지 말라. 아난아 울지 말라. 나(석가모니)는 미래에 선지식이 되어 너희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다."[8]

따라서 닝마빠의 고승 빼뚤(Dza Patrul) 린뽀체의 설명처럼 현교의 견해에서도 스승은 불보(佛寶)에 해당하며 붓다 그 자체인 스승의 가르침은 법보(法寶), 스승의 권속과 제자, 도반들은 승보(僧寶)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밀교(密敎)에서 스승의 몸(身)은 승(僧), 스승의 말씀(口)은 법(法), 스승의 마음(意)은 불(佛)로서 스승은 곧 삼보의 총합이다.

즉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티베트 불교에서 스승을 중시하는 경향은 현밀(顯密)이 발달한 인도 대승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며, 스승과 삼보께 귀의하는 인도 날란다 사원의 전통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지 티베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자칫 라마교라는 단어가 인도 불교와 티베트 불교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잘못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서양[9] 및 한국 학계에서도 라마교 혹은 라마 불교라는 용어 대신 티베트 불교로 용어를 고치고 있다. #

3. 역사: 인도 대승 불교의 도입[편집]

티베트 불교를 정착시킨 샨타락시타,
구루 빠드마삼바와, 티송 데첸 왕 (쌈예 사원 내 벽화)

일본 티베트 대표부 사무소의 게쉬 소남 겔젠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티베트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3세기경 28대 하토토리넨첸(lha tho tho ri gnyan btsan) 왕 때이다. 토착 전설에 따르면 왕은 도대시마똑 육자진언과 금으로 된 탑을 선물 받고 이를 신기하게 여겨 비밀스럽게 왕궁에 모셔 공양 올렸다고 한다. 불교에 관한 기록은 7세기 송첸감포 왕(Srong btsan sgam po, 605-650)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해진다. 이후 8세기 티송데첸 (Khri srong lde btsan) 왕 (755–794)이 인도 날란다 사원의 승원장 샨타락쉬타(Śāntarakṣita)와 티베트에서 '제2의 부처'라 여겨지는 밀교의 대성취자(mahasiddha)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인도로부터 초빙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티벳에 불교가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대승 불교가 번성하였던 북인도,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티벳에서는 인도로부터 유입된 정통 대승불교가 흥성할 수 있었다.
티베트 최초의 불교 사원인 쌈예(bsam yas) 사원

불교가 티벳에 도입되던 초기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티벳에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공존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티벳에는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양자의 수용 여부를 두고 여러 이견이 있었다. 티송데첸 왕의 중재로 중국 북종선(北宗禪) 계열[10]의 승려인 화상[11] 마하연(摩訶衍)과 인도불교를 대표하는 논사 까말라쉴라(Kamalaśīla) (740-795)가 티벳 최초의 불교 사원인 쌈예(bSam yas)사원에서 논쟁을 벌인 끝에 까말라쉴라가 승리하면서 인도불교가 티벳에서 주류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12]

티베트는 다른 불교권 국가에 비해 비교적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티베트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7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900년 간 지속적으로 역경작업이 이루어져 현재 티베트역 경전에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이나 한역본에는 남아 있지 않은 후기 불교 경전들이 존재한다. 또한 티벳 문자는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역경할 목적으로 인도 데바나가리 문자를 본따 창제되었고, 티베트어역 경전은 충실한 직역이라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왕가의 후원 하에 대대적으로 역경을 한 덕분에 티베트 불교는 설일체유부의 계율, 아비달마, 《현관장엄론》계열의 바라밀 전통, 중관과 유식의 제 논서, 불교논리학(인명학), 밀교 등 인도 대승불교의 거의 모든 전통들을 받아들여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현교, 대승밀교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교학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티베트 불교의 중흥조, 아티샤[13]

또한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티베트와 인도를 오가는 인적 교류가 활발했다. 예컨대 린첸상포(Rin chen bzang po) (958-1055)와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와 같이 구법을 위해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와 불교 문헌을 수집하고 인도인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인물들이 있었다. 또한 반대로 인도에서 힌두교의 부흥과 이슬람의 확장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으로 넘어온 아티샤(Atiśa Dīpaṃkara Śrījñāna) (982-1054) 같은 인도인 스승들도 있었다.

13세기에 무슬림 세력이 인도로 진출하자 큰 변화가 있었다. 무슬림은 이교도인 불교와 힌두교를 박해하였는데, 힌두교와 달리 출가 승단과 재가 신도의 구분이 명확했던 불교는 승원이 파괴되자 구심점을 상실하고 인도에서 쇠멸한다.[14] 인도 각지에 있던 불교 승가 공동체는 티베트, 네팔, 남인도로 흩어졌다. 이 때 승려 상당수가 경전을 가지고 티베트로 피신하면서 위끄라마쉴라 사원에 있던 교학, 조직, 전적이 그대로 티베트로 옮겨졌고, 당시 승려들이 갖고 온 전적(典籍)들은《티베트 대장경》의 기원이 된다. 때문에 티베트 불교는 인도 대승불교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티베트 불교도들 스스로도 인도 최대 불교대학인 날란다(Nālandā)사원과 위끄라마쉴라(Vikramaśilā) 사원의 학통(學統)과 법맥(法脈)을 계승하였다고 자부한다.
다큐 《Indian Roots of Tibetan Buddhism》

4. 현교[편집]

4.1. 개요[편집]

모든 불보살의 지혜의 총체(總體)인 문수보살[15]

현교(顯敎)는 '겉으로 드러난 가르침'이란 뜻으로 언어 문자상으로 설시된 가르침이며 일반적인 소승[16]과 대승 가르침을 뜻한다. 밀교(密敎)는 '은밀히 전수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다른 말로 금강승이라고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른 수행과 실천을 위해 먼저 바른 견해가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고, 성급하게 수행법만을 익히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넓은 의미에서 수행을 '마음을 바꾸는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교학 역시 수행에 포함된다. 따라서 교학과 수행을 하나로 보고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를 고루 강조하는 것이 날란다 대학의 전승을 이은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다. 박은정, 《티베트 불교 힘의 원천, 승가교육제도》

경전 못지 않게 논서를 중시하는 논장(論藏) 위주 불교라는 특징도 있다. 중국 불교가 특정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종파불교인데 비해, 티베트 불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논장을 주로 학습한다. 경전이 형성된 지 이미 수백 년 이상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경장 만으로는 본래 뜻을 알 수 없으며, 보살 선지식들이 경장을 해설한 논장에 의지하여야 경장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논장을 주로 학습하는 이유이다. 또한 '쌉쩨(sa bcad, 科目)'라고 하는 목차를 세세하게 달아 경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19세기 닝마빠의 교학 체계를 정립한
미팜 린뽀체 (Mipham rinpoche)

티베트 불교의 불법(佛法)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대승열반경》의 사의법(四依法)을 따른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대승열반경》 제6권 ‘사의법(四依法)’
권오민 교수의 《티베트에서의 불교 철학 입문》에서 설명하였듯이 여기서 요의경(nītārtha-sūtra) 이란 경에서 설한 그대로의 뜻(yathārutārtha:如說義)이 바로 경의 뜻인 경을, 불요의경(neyārtha-sūtra)이란 경에서 설한 바와는 다른 별도의 뜻(abhiprāya: 別意趣, 密意)을 갖는 경을 말한다. 요의경과 불요의경의 구분은 불교 학파마다 다르다. 티베트 불교에서 주류를 이루는 귀류논증중관학파는 《해심밀경》의 3시(時)법륜 중 첫번째 초전법륜과 제3법륜은 공성(空性)에 대해 설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불요의로 판정하고 제2 무상(無相)법륜을 요의경으로 삼는다.

사의법(四依法) 중에 가장 오해하기 쉬운 구절이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이다. 이 구절은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승가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경전에만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정법(正法)인지 아닌지 여부로 법을 판단해야 하며, 법을 전하는 사람의 외모, 화술, 학력, 명성, 지위 등 부차적인 요소를 법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 외 사의법에 관한 자세한 해석은 아래 19세기 닝마빠의 대학승 미팜(Mipham) 린포체가 지은《지혜의 검(The Sword of Wisdom)》에 잘 나와 있다.
【"미팜 린포체의 <사의법(四依法)> 주석" 펼치기ㆍ접기】
만약 다음의 견해를 얻지 못한다면 맹인이 지팡이에 기대는 것처럼 오직 명성과 말, 또는 이해하기 쉬운 것들에만 의지하여 마침내 사의법(四依法)의 이치에 어긋날 수 있다.

1.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그러므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해탈은 가르침(정법, 正法)에서 나오지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만일 가르침이 잘 설해졌다면 누가 설하였든지 상관없다. 심지어 선서(善逝, sugata) 역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백정으로도 화현한다. 만일 대승법(大乘法)과 같은 정법의 의미와 반대되는 말을 한다면 아무리 말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 마치 부처의 모습을 한 마라와 같이.

2.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법을 공부하거나 사유할 때 항상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만일 뜻을 이해했다면 어떤 식으로 설하여졌든지 모순이 없다. 만일 설하는 이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이해했다면 그 때 비로소 각각의 단어와 표현에 대해 사유하라. 마치 코끼리를 찾은 후에 비로소 코끼리의 발자국을 찾아 나서듯이. 만일 뜻을 잘못 이해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말들을 사유한다면, 생각이 다할 때까지 고민을 멈추지 못하겠지만, 그저 진정한 뜻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질 뿐이다.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기진맥진해진 채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 ‘그러나’ 같은 한 단어일지라도 맥락에서 벗어나면 끝없이 많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뜻을 이해했다면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어리석은 이들은 손가락만 쳐다보듯이, 바보들은 말에만 집착하여 자신들은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는 착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불요의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에 의지하라.
뜻을 파악할 때 무엇이 불요의(미요의)이고 무엇이 요의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불요의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진정한 요의에만 의지해야 한다. 일체지자(一切知者, sarvajña)께서는 배우는 이들의 근기와 성향에 맞게 가르치셨다. 그는 사다리의 가로대들처럼 여러 단계의 승(乘)을 소개하셨다. 여덟 종류의 암시와 간접적인 가르침[17]과 같이 그는 마음에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지혜롭게 설하셨다. 만일 불요의의 가르침을 (의도와 상관 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가르침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불요의의 가르침은 (방편으로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할 수 있다.

4.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라.
만일 요의의 가르침을 수행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세속의 이원적(二元的)인 마음에 의지하지 말라. 이원적인 마음은 언어와 개념들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지혜에 의지하라. 개념적인 생각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마음이다. 세속적인 마음은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대상을 포함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주객을 나누는 이원적인 모든 생각은 그릇된 것이며 절대 진정한 현상의 본성(本性)에 다다르지 못한다. 실재든지, 비실재이든지, 실재이면서 비실재이든지,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든지 그러한 개념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여전히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마음에 품는 어떤 생각이든지 그것들은 마라의 지배 아래 있다.이러한 가르침은 경전에 나와 있다. 어떤 부인(否認)이나 단언(斷言)에 의해서도 개념을 다 제거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부인하거나 단언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한다면, 바로 해탈이다. 비록 주체와 객체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없지만 스스로를 비추는 본연의 지혜가 있다. 그리고 존재와 비존재, 존재이면서 비존재,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은 최상의 본초(本初)적인 지혜(Yeshe, Primodial wisdom)라고 한다.

요의는 방편법문에 의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비개념적인 알아차림(awareness)의 지혜의 대상으로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부인과 단언, 존재와 비존재와 같은 개념적인 양 극단에 얽매여있는 한 세속적인 마음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초월적인 지혜를 경험하는데 도달하였다면 모든 이원적인 생각은 진정되고 현상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모든 부정(否定)과 성립(成立), 또는 부인과 단언에서 벗어나 진정한 법(Dharma)의 심오함에 이르게 된다.#

4.2. 교학과 수행의 일치[편집]

문을식 서울불교대학원대 교수의 《요가 상캬 철학의 이해》에 따르면 서양의 철학(philiosophy)은 주로 논리적, 사변적, 분석적 방법을 통해 지혜(sophia)를 얻지만 인도의 철학(darśana)은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지혜(jñāna, prajñā)를 얻는다.
  • 듣고 배워서 얻어진 지혜(śruta-prajñā): 오랜 시간의 테스트를 거쳐 검증되고 실험되어 온 옛 성현(ṛṣi)들의 경험과 탐구 결과를 듣고 배우는 방법(聞, śruta, śramaṇa) 이다. 이것은 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동적 노력이 포함되는 활동이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를 문혜(聞慧, śruta-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경전이나 논서들의 텍스트를 이해, 해석하고 현대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해주는 해석학적 방법인 정언량(正言量, śabda-pramāṇa)이 있다. 단, 디그나가(Dignaga)는 정언량 혹은 성언량(聖言量) 또한 비량(比量)의 한 종류인 신허비량(信許比量, āpta-anumāna)으로 보고, 인식의 근원은 비량과 현량(現量) 뿐이라는 이량설(二量說)을 주장하였으며 티베트 불교에서도 이를 따른다.
  •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anumāna-prajñā): 바깥으로부터 배우고 받아들인 것과 스스로의 경험을 자료로 하여 그것을 논리적, 합리적 기준(yukti, anumāna)에 맞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견해와 주장과 견주어 토론하고 논쟁하며, 더 나아가 그런 자료들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지적 공유물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체계화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를 사혜(思慧, anumāna-prajñā 또는 cintā-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수혜 그리고 스스로의 지적 경험을 자료로 하여 의심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논증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논리적 방법인 비량(比量, anumāna-pramāṇa)이다.
  •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bhāvana-prajñā, samādhi-prajñā): 마지막으로 문혜와 사혜로부터 얻어진 언어적, 개념적 관념적 지혜를 체험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 지혜로 변환시키는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를 수혜(修慧, bhāvana-prajñā) 또는 삼매의 지혜(三昧慧, samādhi-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사혜에 기초하여 요가행법을 실천하는 것(現量, yogī praktiasa, sākṣātkāra)이 있다. 이러한 인식방법은 직접적 지각(知覺)인 현량(現量) 중에서도 유가사의 선정(禪定)상태에서 대상을 지각하는 유가현량(瑜伽現量)에 해당한다.

안성두 서울대 교수는 《불교의 이해》에서 겔룩빠의 창시자인 쫑카빠의 견해에 의거하여,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고(聞) 사유(思)하는 교학과 수행(修)의 불가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직접적 가르침과 경전적 가르침을 상호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보다 우선적인 과정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는 데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 있어서 경전의 가르침은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에 의해 증득된 바로 그것이 수혜(修慧)에 의해 수습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쫑카빠는 경마의 비유를 들어 청문(聽聞)과 이에 대한 깊은 사유를 수반하는 직접적 수행은 "경주할 장소를 먼저 보여준 후에 경주하는 것과 같다." 라고 설명한다. 만일 경주할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고 경주한다면 실제 노력에 비해 소득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된 길로 빠질 위험이 크다. 

또한 쫑카빠는 "위대한 경전의 가르침을 수행의 요체를 결여한 단순한 설명으로만 간주하고, 수행의 요체는 오직 핵심적 의미를 설하는 스승과 제자 간의 은밀한 직접적 가르침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가르침의 단절이라는 업장을 쌓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해탈을 구하는 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교설은 위대한 경전일 뿐이다.
문: 진리(사성제와 무상無常 등 16행상行相)를 봄으로써 해탈하니
공성을 보는 것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답: 이 도道(공성을 깨달은 도)가 없이는 보리가 없다고 경에서 설하기 때문이다.

법의 뿌리가 비구이기에, (성문의 성자인 비구들이 공성을 깨닫지 못한다 하면) 비구 또한 머물기 어렵네.
마음이 대상을 가지는 한 열반 또한 머물기 어렵게 되네.
번뇌(세간도의 멸한 대상인 번뇌)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윤회에서] 벗어난다면
(현전現前한 번뇌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해탈하게 될 것이다.

《입보리행론》

화두일구(話頭一句)만을 참구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는 선불교나 아함경, 니까야 등 초기 경전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대승불교의 교학이 지나치게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수행과 동떨어진 가르침이라고 비판하거나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심법(心法)은 오직 화두나 공안을 참구해야만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사성제 팔정도 등 초기불교의 가르침만으로 충분히 해탈이 가능하며 대승 불교 사상도 초기 불교 교리 안에 모두 포섭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선불교는 대승불교의 맥락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불교인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며, 그러한 은유들의 본질적인 의미는 조사(祖師)의 심법 뿐 아니라《능가경》, 《금강경》 등 대승 경전들의 교의(敎義)와도 분명히 잇닿아 있다. 한편 초기불교는 만일 대승불교의 교학이 초기불교의 교리를 보다 분명하고 심도있게 해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법(法)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답습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부파불교에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자아는 무아이지만 구성 요소인 법은 실체가 있다'는 아공법유(我空法有)로 변질된 바 있으며, 현대 위빠사나 수행자들 가운데에서도 찰나생멸을 관하면서 '찰나 동안 지속되는 실체'를 인정하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 등을 찾을 수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유부의 견해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편적인 접근일 것이다. 법체에 대한 유부의 실재론적 해석은 현상과 인식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그 역시 무아론의 논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는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유부의 주장은 불설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불교 4대 학파의 학설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8세기 경 귀류논증 중관학파 논사인 샨티데바는《입보리행론》에서 사성제 등으로 충분하다는 소승 학파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사성제만으로 해탈에 이르지 못한 소승 수행자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샨티데바는 경전을 근거로 공성 또한 불설(佛說)에 포함됨을 강조하였고, 인무아를 자각하는 지혜만으로 해탈을 이루는데 충분하다고 여기는 후대 수행자들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그는 법무아를 증득하지 못하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될 수 없으므로 승의(勝義)의 승가를 세울 수 없다고 보았다. 마음이 대상을 갖는 한, 즉 법아집(法我執)이 있는 한 이로 인한 다른 번뇌가 생겨 열반을 얻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승 아비달마에 법아집 뿐 아니라 인아집(人我執)과 관련된 다른 번뇌들도 설해지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아비달마에서 설해진 번뇌만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유부ㆍ경량부 등 소승 학파에서 현전하는 번뇌를 제거하였음에도 즉시 열반에 이르지 못한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게쉬 텐진 남카,《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일부의 원인으로 일부의 결과만을 이루고
일체의 원인으로 일체의 결과를 모두 성취한다.[18]

《대비백련화경(大悲白連華經)》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 법성(法性)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비단 대승불교 뿐 아니라 불교사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른바 '초기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아함과 니까야 역시 붓다의 온전한 친설(親說), 원음(原音)이 아니며, 수 세기에 걸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각 부파에 의해 채택된 부파불교 시대의 산물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경전 내부에 수정ㆍ가감으로 인한 신ㆍ고층(新古層)이 존재하고, 경전 구성에 있어서 각 부파들의 판본마다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도 각 부파 고유의 관점이 반영된 논장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불교에도 새로운 방편과 해석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등장한 대승의 사상은 석가모니의 본의(本義)를 분명히 밝혀 수행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내도(內道)의 다른 학파들 및 외도(外道)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면서 불법(佛法)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켰다. 대승 논사들은 근본스승인 석가모니를 존숭하며 대승 경전 뿐 아니라 초기 경전 또한 자신들의 전거로 삼았고, 학자이자 동시에 수행자로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精緻)한 이론을 전개하며 궁극적으로 의식의 변화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자타의 이익을 추구하였다.[19] 이러한 대승의 사상적 기조는 수행과 무관한 지적 유희나 근원과 단절된 급진적인 변용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티베트 불교 강원에서 배우는 반야, 중관, 구사, 인명, 계율 등 오부대론은 인도 나란다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구성으로, 팔만사천법문 중에서 수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경율론만을 선정하여 압축한 교과 체계이다. 10여 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소요되는 티베트 불교 교학과정이 상당히 방대해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해탈 뿐 아니라 일체중생을 위한 성불을 목표로 소승, 대승, 금강승을 모두 아울러 배우는 인도-티베트 불교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20]

4.3. 분석적ㆍ논리적 탐구[편집]

티베트 불교는 비판적 분석과 판단을 중시한다. 권오민 경상대 교수가 《티베트에서의 불교 철학 입문》 등에서 언급하였듯이 불교의 믿음(信, śradha, 또는 勝解, adhimukti)확신이며, 이는 우선적으로 비판적 분석/판단에 의한 것이다. 문사수 중 사유의 과정에 해당하는 비판적 분석 혹은 탐구 고찰을 사택(tarka, 혹은 覺觀), 간택(pravicaya, 혹은 思惟觀察)이라고 한다. 부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金)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경전을 배우고 사유하고 수행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비판적 분석을 강조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맹신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기에 단순히 경전을 외우기보다 이치를 따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21]라고 말하였다. 또한 법회에서 다음과 같은 경전의 어구를 즐겨 인용하며 경전을 분석하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구들과 지혜로운 이들이여, 연금술사가 금을 태우고 자르고 문지르듯이 나의 말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존경한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22]

스승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스승에 대한 존경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 반야심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날란다 대학 같은 고대 인도의 사원 대학에서는 학승(學僧)이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스승을 존경하거나 공경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제자 아리야 위묵티세나(Arya Vimuktisena, 聖解脫軍)는 스승의 유식론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중관학파의 견해로 경전을 이해하였다. 티베트에서는 19세기 닝마빠 학자인 주 미팜(Ju Mipham)의 제자 알락 담최 창(Alak Damchö Tsang)이 스승이 쓴 논전의 일부 내용에 반론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알락 담최 창은 "스승이 훌륭하다고 해도 가르치는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티베트 속담에 "사람은 공경하고 존경하되 그가 쓴 논서는 철저하게 분석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승에 대한 건전한 마음가짐과 수행할 때 의지해야 할 사의법(四依法)[23]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소량분(三所量分) གཞལ་བྱའི་གནས་གསུམ། : 세 가지 존재 방식
མངོན་གྱུར། [ㅇ왼규르]  현전(現前) = 현전분(現前分)
ལྐོག་གྱུར། [꼭규르]  비현전(非現前) =  불현전분(不現前分) = 은폐분(隱蔽分)
ཤིན་ཏུ་ལྐོག་གྱུར། [씬뚜 꼭규르]  극비현전(極非現前) = 최극은폐분(最極隱蔽分)

앎의 대상에는 크게 현전(現前), 비현전(非現前), 극비현전(極非現前) 세 가지가 있다. 현전'지각 가능한 명백한 현상'으로 논리를 통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 현상들은 직접적인 감각적 지각인 현량(現量)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터득할 수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절의 변화 같은 거친 무상(無常)은 현전에 해당한다.

비현전'일부분만 지각할 수 있는 현상'이다. 비현전은 요가수행자[24]가 아닌 일반인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없으므로 논리적 추론인 비량(比量)을 적용하여 확립해야 한다. 이때의 분석 대상은 경험에 근거한 추론적 인식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찰나생멸하는 미세한 무상이나 무아, 공성 등이 비현전에 해당한다.

극비현전'전혀 지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극비현전은 일반인의 현량으로도 인식할 수 없고, 이해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비량을 이용해 검증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당한 경전적 권위, 즉 성교량(聖敎量) 내지 교증(敎証)에 의존해야한다.

교증에 의존하더라도 경전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가령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텍스트 비평을 통해 번역된 경전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도 검증해야 한다. 교증을 거친 후에는 경전 내용 자체가 삼지작법(삼단논법) 등의 논리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검증하는 이증(理証)을 거친다. 이는 믿음에 기반한 논리적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극비현전의 예로 경전에서는 선정(禪定)의 힘, 업(業)의 힘, 진언(眞言)의 힘, 물질의 힘 등 네 가지 불가사의한 대상을 언급한다. 여기서 업의 힘, 다시 말해 인과(因果)는 오직 일체지(一切智)를 이룬 부처만이 완벽히 알 수 있으며, 아라한도 인과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다만 개별적인 사태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업의 경과가 아닌, 업이 작용하는 일반적인 원리인 업설(業說)에 대해서는 구사론 등 여러 논서에서 상세히 밝혀놓았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달라이라마, 수행을 말하다》
티베트 승려들이 대론하는 모습

티베트 불교 교학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경향은 대론(對論, rtsod pa)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불교논리학에 기초한 대론은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부터 계승된 티베트 불교의 중요한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대론은 설법('chad), 저술(rtsom)과 더불어 학자(paṇḍita)의 3가지 주요 활동(mkhas pa'i bya ba gsum)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찍이 불교는 내도(內道)의 다른 학파 및 외도(外道) 간의 대론을 통해 바른 견해를 확립해왔다. 오늘날과 같은 티베트 불교의 대론 방식은 12세기 차빠 최끼 셍게(phywa pa chos kyi seng ge)에 의해 정립되었다.

범천스님은 《불교논리학의 향연》에서 티베트 불교의 대론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대론은 인명자(因明者; 딱셀와; rtags gsal ba)와 발서자(發誓者; 담짜와; dam bca'ba) 간의 문답으로 진행된다. 인명자는 일어선 채로 질문하고, 발서자는 앉은 채로 대답한다.

2) 발서자는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인명자는 발서자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통해 발서자를 모순으로 유도해간다.

3) 발서자가 자신이 전에 했던 주장을 뒤에 번복하면 인명자는 왼손바닥에 오른 손등을 내리치며 '차!'라고 외쳐 오류가 발견됐음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인명자의 착각일 경우 발서자는 '찰록' 또는 '차똥'이라고 말해 오류가 없음을 주장한다.

4) 궁극적으로 인명자는 발서자의 근본주장(짜외담짜; rtsa ba'i dam bca'), 즉 논쟁의 시초가 된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아가며, 근본주장이 번복될 경우 발서자의 근본적 패배로 간주된다.
티베트 불교 대론법 소개 영상

대론이나 분석 명상은 마음챙김 등 다른 명상에 비해 과학적으로 거의 연구된 바 없다. 마리에케 반 부흐트(Marieke K. van Vugt) 흐로닝언대 교수, 조슈아 폴록(Joshua Pollock) 켄트 주립대 교수, 데이비드 프레스코(David M. Fresco) 켄트 주립대 교수 등은 2020년 대론과 분석명상에 관한 첫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대론(monastic debate)은 양자(兩者)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분석 명상(analystic meditation)에 해당한다(역으로 개인의 분석 명상은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자가 대론(self-debate)'에 가깝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대론 역시 '분석 명상'으로 지칭하였다. 측정 수단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데 알맞은 뇌파의 하이퍼스캔(Hyperscan)을 활용하였다. 실험 대상은 겔룩빠에 속한 세라 제(Sera Jey) 강원의 승려들로 선정되었다.

측정 결과 대론 중에 집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전두 세타 진동(mid-frontal theta oscillations)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여, 분석 명상이 집중력을 훈련시킨다는 가설과 일치함을 보였다. 세타 진동의 증가 정도는 초보자 승려군(群)보다 숙련된 승려군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짝지어진 토론자들 간의 전두 알파 진동(frontal alpha oscillations) 동시성(synchrony)이 전제에 대한 의견이 서로 불일치할 때보다 동의할 때 더욱 증가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Marieke K. van Vugt et al.,, 《Inter-brain Synchronization in the Practice of Tibetan Monastic Debate》

세라 제 강원의 교수사들과 상급생 승려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토의 및 인터뷰와 예비실험들을 바탕으로, 반 부흐트 등은 성공적인 토론에 추론과 비판적 사고, 주의 집중, 작업 기억(working memory), 감정 조절, 추론 기술에 대한 자신감, 사회적 유대감 등이 필요하다는 초기 이론을 설정하였다. 또한 향후 대론과 분석 명상이 심리학적 웰빙과 교육적 성취에 심리학, 신경과학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추가로 연구해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Marieke K van Vugt et al., 《Tibetan Buddhist monastic debate: psychological and neuroscientific analysis of a reasoning-based analytical meditation practice》
2010년 스탠포드대 "자비와 이타주의의 과학적 탐구"
(“Scientific explorations of compassion and altruism.”)
회의에서 과학자들[25]과 손잡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의 분석적이고 지성적인 성향은 과학자들과의 적극적 교류에서도 드러난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 데이비드 봄(David Bohm)#,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J. Davidson)#,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 등 세계적인 뇌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인지과학자, 정신의학자, 물리학자들이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와 같은 티베트 불교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법문에서 양자역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등을 예시로 자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양자역학과 불교의 중관 사상 모두 '사물이 실제로는 관찰자에게 인식되는 것처럼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불교 경전에서 언급된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

달라이 라마는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우리 불자들이 21세기의 불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은 (21세기 불자들이) 현대 과학을 포함하여 현대와 현대 세계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의 기반을 갖춰야 하고 그에 덧보태어 부처님의 메시지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자들에게 현대 과학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또한 달라이 라마는 분석과 탐구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과 불교 논리학에 기반하여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가 가능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달라이 라마의 노력에 대해 불교계나 과학계 양측 모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달라이 라마가 2005년 신경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회인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 SfN)의 연례 학술회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의 참석에 관한 논란이 벌어져 (달라이 라마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중국 출신이 다수 포함된) 5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초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대 측은 "달라이 라마의 명상에 대한 견해는 주관적이며, 명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 시점에 신경과학이 무모하게 정신적 문제에 접근할 경우 학문의 신뢰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반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후 '명상을 통한 의식의 연구'를 주제로 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신경과학자들은 그의 참석이 매우 적절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학회의 여론은 그의 방문을 전적으로 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 # #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마음과 생명 연구재단(Mind & Life institute)의 강연, 대담, 저서 그리고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의 교류를 담은 다큐 영화 《The Dalai Lama: Scientist》등에서 티베트 불교와 과학자들 간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Science for Monks & Nuns 프로젝트를 통해 티베트 불교 승려들에게 과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재단 등에서 파견된 교육자와 과학자들의 지도 하에 현재 7개 과학 센터에서 300명 이상의 승려들이 3년 과정의 과학 리더쉽 프로그램을 수료하였다. # 이 외에도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이 함께 저술한 서적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
■ 《깔라마 경》에 대한 오해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는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 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智者)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깔라마 경(A3:65)》, 대림 譯

상좌부 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에 속한《깔라마 경》은 이른바 '부처의 자유 탐구 헌장(the Buddha's Charter of Free Inquiry)'으로 잘 알려진 경전이다. 모든 교조주의, 전통, 편협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는 본 경전은, 그러나 유명세만큼이나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인용을 바탕으로 종종《깔라마 경》은 급진적인 회의주의나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인 진리 창조를 옹호하는데 악용되곤 한다.# 이에 관하여 빅쿠 보디(Bhikkhu Bodhi)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맥에서 벗어난 단 한 구절의 인용을 근거로, 붓다는 '모든 교리와 신앙을 일축하는 실용적인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렸고, 그의 법은 단순히 자유사상가의 진리에 대한 도구가 되어 각자 자기 멋대로 수용하고 거부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깔라마 경》은 진리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깔라마 사람들을 위해 즉각적이고 도덕적이며, 유익하고 본질적인 가치인 '탐진치(貪瞋痴)의 소멸'을 우선 기준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깔라마 경》에서 석가모니는 논리와 추론, 사유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그러한 지적 작업들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해당 경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깔라마 사람들의 삼보에 대한 귀의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건전한 사유에 기초한 믿음에 대해서도 《깔라마 경》은 부정한 바 없다.
이것들이 이것들의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아는 지혜(明)로 모든 악견(惡見)의 그물을 찢어 버리면, 그 때문에 탐욕(貪)과 어리석음(癡) 그리고 성냄(瞋)이 끊어지므로(滅) 한 점 티끌도 없는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칠십공성론》, 신상환 譯

석가모니는 자신의 탁월한 지성을 적극적으로 중생 교화에 활용하였는데,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가 설한 연기법은 독립된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를 성립시키기 때문에 '추론의 왕(rigs pa'i rgyal po)'으로까지 일컬어진다. 용수보살이《칠십공성론》에서 밝혔듯이, 연기법에 기반한 논리적 추론은 악견(惡見)과 그로 인한 탐진치를 소멸시키는 지혜로 작용하기 때문에 《깔라마 경》에서 말하는 유익한 진리의 법에 완벽히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공성에 대한 지혜가 성장함에 따라 탐진치와 같은 번뇌도 점진적으로 소멸된다.[26] 대승의 수행과정에서 처음에는 논리적인 추론인 비량(比量)을 통해 공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여 견도(見道)에 이르러 직접적인 지각인 현량(現量)으로도 공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공성에 대한 지각이 더욱 명료해지고 해탈을 방해하는 번뇌장(煩惱障)과 일체법을 깨닫는데 장애가 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모든 번뇌가 소멸된 무학도(無學道)에 이르게 된다.

4.4. 기(基), 도(道), 과(果)[편집]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
불법(佛法)을 나무에 비유하면 존재론은 뿌리,
수행론은 줄기, 결과론은 열매에 해당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든 불교의 가르침을 크게 기(基, 혹은 근根, gzhi), 도(道, Skt. mārga; Tib. lam), 과(果, 'bras bu)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기는 존재론, 도는 수행론, 과는 결과론에 해당한다. 존재론에 기반하여 수행론이 성립하며, 존재론과 수행론을 기반으로 결과론이 성립한다.

수행론인 도(道)는 다시 견해, 명상(수습), 행위(Tib. ལྟ་སྒོམ་སྤྱོད་གསུམ་, ta gom chö sum, Wyl. lta sgom spyod gsum)로 구분한다. 여기에 결과론인 과(果)를 합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견해, 명상, 행위에 대한 설명은 다음 항목에서 후술하였다.

기, 도, 과의 구체적인 내용은 불교 종파와 전승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승에서 존재론은 사성제(四聖諦)의 16행상, 수행론은 팔정도(八正道) 등의 37조도품, 결과론은 해탈열반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금강승에서 존재론은 번뇌에 가려진 불성(佛性), 수행론은 지혜로써 번뇌를 제거함, 결과론은 번뇌가 사라져 온전히 현현하는 불성으로 설명한다.

불교 전반에 걸친 존재론, 수행론, 결과론에 관하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초심자의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선설善說(ལེགས་བཤད་བློ་གསར་མིག་འབྱེད་ཅེས་བྱ་བ་བཞུགས་སོ།, Opening the Eye of New Awareness)》 등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기(基) - 기본 바탕인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성제
  • 도(道) - 방편의 보리심과 반야의 지혜 두 가지 방법
  • 과(果) - 법신과 색신의 두 가지 과위(果位)

존재론은 이제(二諦), 즉 세속제(世俗諦)승의제(勝義諦)로 구성된다. 이제설은 외도(外道)와 불교의 다른 학파에서도 등장하지만, 특히 중관학파에서 존재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승의제(진제)는 법의 궁극적인 실상을 보는 지혜의 직접적인 대상이고, 세속제(속제)는 세속에서 표현하는 이름과 생각(名言)의 직접적인 대상이다.

승의제와 세속제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의식의 분별 상(이름, 생각 등)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가립(假立)된 법(法)인 체성일(體性一) 반체이(返體異)(ngo bogcig ldog patha dad)의 관계이다.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진제는 공성(空性), 속제는 공성을 제외한 모든 법으로 5온, 12처, 18계, 62계 등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이 있다.

수행론방편지혜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구체적으로 교법(敎法)인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익히고 증법(證法)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실천한다. 부처의 팔만사천법문은 모두 경율론 삼장으로 나눌 수 있다. 경장은 정학, 율장은 계학, 논장은 혜학을 주로 다룬다. 삼장은 소승장과 대승장으로 나눌 수도 있다.

소승의 계학은 삼악도와 윤회에서 해탈하려는 별해탈계, 정학은 색계의 사선정(四禪定)과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 혜학은 사성제의 이치를 아는 지혜이다. 한편 대승의 계학은 악행을 막는 보살계, 정학은 허공장선정(虛空藏禪定) 등 특별한 선정, 혜학은 공성을 깨닫는 지혜이다.

계학은 도거(掉擧)로 산란한 마음을 법과 원칙을 지켜 산란하지 않게 하고, 정학은 혼침(昏沈)으로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을 선정에 들게 하며, 혜학은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한다. 지(止)와 관(觀)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먼저 샤마타를 닦은 뒤 샤마타와 위빠샤나를 함께 하는 지관쌍수(止觀雙修)를 순서대로 닦아서 공성을 깨달아야 번뇌의 뿌리까지 끊을 수 있다.

계정혜 삼학에 의지하여 성문ㆍ연각승의 토대를 다지고, 보리심을 일으켜 대승의 바라밀승과 금강승에 입문하여 지혜와 방편을 획득한다. 육바라밀 중 공성을 깨닫는 지혜바라밀은 지혜, 나머지 바라밀들은 방편에 해당한다. 바라밀승은 성불하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금강승은 짧으면 한 생안에도 성불 가능한 특별한 법이 있다.

■ 대승(보살승)의 수행 체계: 5도 10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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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에 의하면 지혜가 원인이 되어 법신을 이루고, 방편이 원인이 되어 색신을 이뤄 최종적으로 부처의 과위를 얻게 된다. 법신과 색신은 다시 자성법신(自性法身), 지혜법신, 보신, 화신의 사신(四身)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자성법신은 진제에 해당하고, 나머지 지혜법신, 보신, 화신은 속제에 해당한다.

자성법신은 진제로서 '무자성(無自性)인 공성'을 의미한다. 자성법신을 다시 둘로 구분하면 '오염이 없는 본래청정'으로 '자성이 공(空)한 부처의 마음의 흐름(心相續)'인 자성청정신(自性淸淨身)과, '객진번뇌[27]가 없는 청정'으로 '번뇌장과 소지장이 없는 부처의 멸제(滅諦)'인 객진청정신(客塵淸淨身)으로 나눌 수 있다.[28] 둘은 자성신을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로 구분한 것일 뿐, 모두 똑같은 공성을 의미한다. 그 중 전자인 자성청정신은 곧 깨닫지 못한 중생도 누구나 부처의 종자(種子)를 갖고 있다는 여래장에 다름 아니다. 즉, 티베트 불교 주류의 관점에서 '여래장=객진번뇌를 제거하기 전 심상속의 공성'을 뜻한다.[29]

속제에 해당하는 지혜법신, 보신, 화신 중 지혜법신은 붓다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룬 마음(의식)의 흐름, 보신은 정토에 머물며 보살들에게 대승법만을 설하는 등 다섯 가지 고정된 법[30]을 갖춘 색신, 화신은 다섯 가지 고정된 법을 갖추지 않고 삼계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투는 색신을 의미한다.[31] [32]

부처의 공덕에는 신(身), 구(口), 의(意), 사업(事業)의 공덕이 있다. 몸의 공덕은 32상(相) 80종호(種好), 말의 공덕은 60가지 음성의 특징, 마음의 공덕은 지혜와 자비의 공덕으로, 지혜의 공덕이란 승의제와 세속제 등 모든 법을 정확히 아는 일체종지의 공덕이며, 자비의 공덕은 번뇌의 악습에 묶여 있는 중생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대자비심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공덕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의 공덕은 27가지 행업(行業)으로, 부처의 신, 구, 의, 사업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부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공덕으로 4무외(無畏), 4무애지(無礙智), 10력(力), 18불공법(不共法) 등이 있는데, 18불공법의 구체적인 정의는 부파불교, 대승불교 별로 차이가 있다. 4무외, 4무애지, 10력 등에 관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설명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대승불교의 18불공법은 그러한 능력이 중생들을 어떻게 도우는지에 대해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자성? 무자성?

중관학파는 법에 실체가 있다고 보는 소승 아비달마 교학에 대항하여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인 자성(自性, svabhāva)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동아시아 불교에 익숙한 이들은 이러한 중관학파의 주장에 혼란을 느끼기 쉽다. 불성(佛性) 사상과 유학, 노장의 심성론(心性論)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자성이란 곧 진여(眞如), 불성(佛性),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등과 동의어로서 진리의 대상, 법의 진실한 본성이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관을 요의로 삼은 티베트 불교는 일체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을 논하면서 자성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아시아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성신(svabhavakaya), 자성청정(rang bzhin gyis rnam par dag pa) 등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초학자가 혼동을 느끼기 쉽다.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관품>에서도 일체법이 무자성임을 논하면서 승의제(勝義諦), 법성(法性)으로서의 승의자성(勝義自性)은 긍정하는 일견 모순된 듯한 서술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티베트 불교에서 자성의 정확한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1) 자성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어떤 사람은 말하길, 부정대상은 자성이며, 또 그 자성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1) 그 자체는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2) 상태가 다른 것으로 변하는 일이 없으며 (3) 그 존재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중송》(제15장)에서 “(제1게) 자성이 연과 인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자성이 연과 인에 의해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 될 것이다. (제2게) 더욱이 어찌하여 자성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자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보리도차제광론》<관품>, 이태승 譯

쫑카빠는 용수보살의《근본중송(중론)》에 의거하여 부정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자성을 (1)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2)불변하고 (3)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일체법에 이러한 자성이 없는 것, 무자성이 곧 중관에서 말하는 공성(空性)이다.

2) 자성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그것(=자성)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고 하자. 만약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위해 제보살은 바라밀의 길을 수습(修習)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 법성을 증득하기 위해 제보살은 그와 같이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이고, 경으로서 증거를 보이고 입증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관파의 입장에서 해탈을 얻는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반을 얻는 것은 그 열반을 깨닫는 것으로, 그 열반도 그 경우 멸제(滅諦)로 간주되며, 멸제도 또 승의제로 설해지기 때문에, 승의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일체법에 있어 자성의 성립을 부정하지 않았는가(=부정했다) 라고 생각한다면, 내적(內的)인 지(知)에 의해 가설(假說)된 것이 아닌 제법에 있어서 그 자체로 성립하고 있는 자성인 것은 티끌 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들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그와 같은 자성으로서 다른 제법은 말할 것도 없고, 법성이라는 승의제도 또 (그와 같은 자성으로서) 성립하는 일은 조금도 없다

《보리도차제광론》<관품>, 이태승 譯

한편 쫑카빠는 해탈, 열반, 멸제, 승의제, 법성으로서의 승의자성(勝義自性)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의제, 법성 또한 상술한 부정의 대상인 자성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다만 세속의 언설(言說)로 표현될 뿐이다. 언설로 표현될 수 없는 궁극의 경계, 무명(無明)을 떠난 성자들의 인식을 "진실된 존재, 변치 않는 것, 항상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생겨나지 않고,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자성, 승의제, 법성 등의 이름을 붙여 가설(假說)하였지만, 다른 모든 법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생각(名言)으로만 존재할 뿐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태승 위덕대 교수는 쫑카빠가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배경에 쫑카빠가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인용한 짠드라끼르띠(월칭)의 영향이 있었으리라고 보았다. 용수보살 이래로 짠드라끼르띠 이전 중관 논사들 중에는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짠드라끼르띠는 《입중론주》, 《명구론》등에서 법성(dharmatā), 본체(svarūpa), 자성(svabhāva), 본성(prakŗti), 공성(śūnyatā), 무자성(naiḥsvabhāva), 진실(tathatā) 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물론 이 중에 '자성'의 자성과 '무자성'의 자성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짠드라끼르띠나 쫑카빠가 '언설로서의 세속'으로 법성 내지 자성을 인정한 까닭은 청정한 수행인 범행(梵行), 바라밀행을 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며, 승의적으로는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적정(寂靜) 그 자체이다.
이태승, 《『보리도차제대론』에 나타나는 승의자성의 의미》

정리하자면, 티베트 불교에서 자성은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 둘 다로 쓰인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 자성은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를 의미하며,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자성은 '자성-공'으로 공성(=무자성)과 의미가 같다. 이를테면 공성을 '자성이 없다(무자성)', '자성이 공하다', '자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식으로 전도(顚倒)된 개념을 척파하기 위해 부정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불도(佛道)를 이루는 수행의 근거, 목표, 결과로 삼기 위해 '(승의)자성', '자성청정', '자성법신', '법성', '불성', '여래장', '진여', '멸제', '승의제', '열반' 등의 긍정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33] 물론 긍정 형식으로 표현되더라도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언설로만 성립할 뿐이다.[34]

비단 티베트 불교 뿐만 아니라 자성은 대승 불교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다른 대상과 구별되는 고유한) 본질', '본성'이란 뜻의 자성이 중관에서는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로서 부정 대상이 되었고, 이후 유식, 여래장에서는 다시 '궁극적인 진실의 경계', '본질'이라는 긍정의 의미로 쓰이는 변천과정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가 개념적인 혼동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맥락에 따른 자성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태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성(自性))》

4.5. 견해, 명상, 행위[편집]

수행의 단계마다 각기 다른 견수행과(見修行果)가 존재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행론인 도(道, Skt. mārga; Tib. ལམ་, lam, Wyl. lam)를 다시 세분화하여 견해, 명상(수습), 행위(Tib. ལྟ་སྒོམ་སྤྱོད་གསུམ་, ta gom chö sum, Wyl. lta sgom spyod gsum)로 구분한다. 여기에 결과론인 과(果, འབྲས་བུ་, Tib. drebu; Wyl. 'bras bu)를 합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 견해, 명상(수습), 행위, 결과)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현밀(顯密)을 막론하고 모든 불교 수행은 견해, 명상, 행위 세 가지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목표한 결과를 얻는다.[35]

대만 중화불학연구소(中華佛學研究所)의 란지푸(藍吉富) 교수가 작성한 《佛教信仰的見修行果》를 참조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견해(Skt. dṛṣṭi; Tib. ལྟ་བ་, tawa; Wyl. lta ba, view)란 법문이나 종파의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믿음을 의미한다.
1) 법문의 기본 원리, 믿음의 근거, 이론 구조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염불 법문을 예로 든다면 법문의 근거가 되는 경론과 왜 염불이 필요한지, 염불의 정의는 무엇이고 염불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이 견해에 해당한다.

2) 어떤 전승이나 종파의 기본 교리 구조를 말함.

수행자 개인의 견해는 이론적인 지식, 이론의 실천을 통해 얻은 지혜, 궁극적인 깨달음 등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다. 또한 전승이나 종파 교리에 있어서도 단계 별로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명상(혹은 수습, meditation)은 내재적(內在的)이고 개인적인 수행을 의미한다. 불교 수행(修行)은 내재적인 수행인 '명상'과 다른 대상 간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외재적인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명상은 주로
  • 수습(修習), 수행계발(Skt.bhavana; Tib. སྒོམ་, gom, Wyl. sgom)
  • 삼매(Skt.samadhi.; Tib. ཏིང་ངེ་འཛིན་, ting nge dzin, W yl. ting nge 'dzin)
  • 선정(Skt.dhyana; Tib. བསམ་གཏན་, samten. Wyl. bsam gtan)

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명상은 경전 학습을 통해 얻는 문혜(聞慧, śruta-prajñā)와 논리적 사유를 통해 얻는 사혜(思慧, anumāna-prajñā 또는 cintā-prajñā)를 요가행법을 통해 직접적, 체험적, 직관적인 수혜(修慧, bhāvana-prajñā)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Tib. སྤྱོད་པ་, chöpa, Wyl. spyod pa, action)는 앞서 언급했듯이 외재적(外在的)이고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육바라밀을 예로 들자면 선정, 지혜바라밀은 명상에 해당하고 보시, 지계, 인욕 바라밀은 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진바라밀은 나머지 다섯 바라밀 모두에게 적용된다.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의 켄뽀 소다지(Sodargye) 스님은 대승 불교 보살의 행위란 오로지 조건 없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한편 닝마빠의 뒤좀(Dudjom) 린뽀체는 행위란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모두를 잘 관찰하여 그 생각들의 참된 본성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미래를 쫓아가지도,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고 기쁜 상황에 집착하거나 혹은 슬픈 상황에 압도되지도 않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기쁨과 슬픔, 평안과 고통의 자성(自性, svabhāva)이 없는 위대한 평정(equilibrium)에 머물게 된다.

결과(result)는 견해ㆍ명상ㆍ행위로 구성된 불교 수행을 배우고 실천하여 얻는 성과를 의미한다.

1) 각 전승과 종파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과위(果位). 성문승은 아라한, 대승의 현교(바라밀승)는 삼아승지겁 동안의 수행을 통한 성불, 밀교(금강승)은 즉신성불(卽身成佛), 선종은 견성성불(見性成佛), 정토종은 극락왕생 등등 전승과 종파마다 수행의 궁극적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2) 궁극적인 과위 외에 단계별로 얻는 성과. 예를 들어 성문승은 아라한 외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등 사향사과(四向四果)가 있으며 보살승은 초지(初地)부터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지(菩薩地)가 있다.

수행의 성과는 억지로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바른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조낭빠의 스승인 제쭌 타라나타(rje btsun ta ra na tha) 는 견해, 명상, 행위의 불가분성과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티베트 지혜의 서》참조.
견해, 명상, 행위를 하나로 묶고 실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마치 창(槍) 하나하나가 모여 한 묶음을 이루듯이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견해 없이는 행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실재가 있다고 믿게 되고 그래서 윤회가 계속된다. 행위 없는 견해로는 공덕 쌓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게다가 견해를 기르는 당사자를 허무주의의 심연까지 이끌어 갈 위험이 있다. 명상이 없는 견해와 행위는 땅 속에 묻힌 보물과 마찬가지로 무용하다. 오두막집 밑에 보물이 무진장 숨겨져 있어도 가난한 사람이 그것으로 배고픔을 면할 수 없듯이, 견해와 행위에 대한 가르침이 엄청나게 많아도 실제 명상 수행을 하지 않으면 수행자는 마음을 다르마(불법)에 계합시킬 수 없다. 즉 견해와 행위가 필요할 때 전혀 유용하지 못할 것이다.

제쭌 타라나타(rje btsun ta ra na tha)

4.6. 중관 사상[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중관 사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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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7. 불교인식논리학[편집]

대론(對論)으로 외도(外道)들을 제압하는 디그나가

중관학과 더불어 불교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해당하는 인명학(因明學, Hetu-vidyā)을 중시한다는 점도 티베트 불교 교학의 특징이다. 인명학은 현대식 용어로 불교인식논리학이라고 한다. 인명학에서 현량(現量, 직관)과 비량(比量, 추리)이라는 두 종류의 인식을 다루며, 이 중 비량에 관한 이론은 논리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명학은 수행 체계와 견해, 사상을 익히는 데 필요한 기초일 뿐 아니라, 사유와 수행을 통해 얻은 인식이 정합적(整合的)이고 올바른 인식인지 점검할 때도 필요하다.

특히 불교에서 지혜를 얻는 문사수(聞思修)의 과정에서 사(思)는 논리적 추론인 비량(比量)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논리학이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인명학에서는 사성제(四聖諦) 등의 불교 교리에 대해 반야, 중관보다 더욱 심오한 견해를 다루고 있다.

한국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차이는 인명(因明)과 밀교(密敎)에서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다. 인명과 밀교는 인도 후기 대승 불교 시대를 이끌었던 마차의 양 수레바퀴로 각각 진리 탐구를 위한 분석적, 철학적 도구인 이론과 대승불교 유가행의 완성이다.

인명학은 구(舊)인명과 신(新)인명으로 나뉘는데, 이 중 신인명은 디그나가(Dignāga, 480~540)와 다르마끼르띠(Dharmakīrti, 7세기)가 확립했다. 불교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모든 과정은 인명의 범주에 포함된다.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는 불교의 인명논리학을 집대성하여 종(宗), 인(因), 유(喩)로 이루는 삼지작법(三支作法)을 확립했고, 이후 오지작법의 논쟁 방식이 점차 정립되었다.

《인명칠론(因明七論)⟫ 혹은 《칠부량론(七部量論, Pramanavartikadisapta-grantha-samgraha)⟫은 다르마키르티가 디그나가의 《집량론(集量論, Pramāṇa-samuccaya)⟫를 주석한 (1) ⟪양평석(量評釋, Pramāṇavārttika)⟫, (2) ⟪정량론(定量論, Pramāṇaviniścaya)⟫, (3) ⟪이적론(理滴論, Nyāyabindu)⟫ (4) ⟪인적론(因滴論, Hetubindu)⟫, (5) ⟪관계론(關系論, Saṃbandhaparīkṣā)⟫, (6) ⟪쟁리론(諍理論,  Vādanyāya)⟫, (7) ⟪오타론(悟他論, Saṃtānāntarasiddhi)⟫ 등 일곱 가지 주석서를 총칭하는 말이다.
정성준, 《티베트대장경의 번역과 영향》
《인명칠론》의 저자 다르마키르티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디그나가의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과 디그나가의 제자로 추정되는 상카라스와민(Śaṇkarasvāmin)의 《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등이 한역되어 전래되었다. 반면 티베트 불교에서는 다르마키르티의 《석량론(양평석)》을 중시하였는데, 《석량론》과 같은《인명칠론》은 한역이 된 바 없다. 학술서와 논문 등에서《인명칠론》일부가 현대어로 번역되었지만 아직《석량론》의 완역본은 나오지 않았다. 근현대 티베트의 문제적 인물인 학승(學僧) 겐뒨 최펠(dge 'dun chos 'phel)이 《석량론》을 영어로 완역하였으나 실전(失傳)되었다고 전해진다.

티베트 불교의 인식논리학과 언어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스위스 로잔 대학의 파스칼 위공(Pascale Hugon)이 작성한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ibetan Epistemology and Philosophy of Language> 항목에 나와 있다.

참조할만한 국내 자료는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티베트 불교에 한정되지 않는) 여러 불교인식논리학 관련 저서들이 있다.

4.8. 자비와 보리심의 강조[편집]

4.8.1. 자비와 보리심 일으키기[편집]

모든 불보살의 자비의 총체인 관세음보살[36]
어머니가 편치 않은 사랑하는 외아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일체중생에게도 고통을 완전히 없애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때 연민심(憐愍心)이 제대로 생긴 것이다. 이때 대비심(大悲心)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수습차제ㆍ상편》, 게쉬 소남 걜첸 譯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에서
발심(발보리심)은 남을 위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깨달음(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구하는 마음이다.』
라고 자신의 뜻(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타인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의 추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보리도차제광론》, 게쉬 소남 걜첸 譯

티베트 불교는 대승 불교로서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을 강조한다. 보리심의 원인으로는 자비심(慈悲心)을 들 수 있다. 자비심이란 다른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심(慈心, metta)과 다른 중생이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는 비심(悲心, karuna)을 뜻한다. 특히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에서는 보리심의 원인으로 일체 중생이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는 대비심(大悲心, mahakaruna)을 강조하였다. 대비심을 원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부처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리심을 갖게 되며, 이러한 보리심(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유정(有情)을 보리살타, 즉 보살(bodhisattva)이라고 한다.
또 《수습차제 상편》의 서문에서,『이와 같이 대비심(大悲心)에 익숙해진 힘으로 모든 중생을 한 명도 빠짐없이 구제하겠다고 다짐하고, 위없고 바르게 구족한 깨달음을 원하는 그 자체가 보리심이며,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일어난다.』라고, 원(願)보리심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앞에서 말한 대비심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보리심 일으키는 정도도 또한 알아야 한다. 이것은 또 높은 경지의 보리심이 아닌, 처음 대승에 입문하는 이의 보리심을 말씀하셨다.

《섭대승론》에서도『선(보현의 행)과 발원의 힘과 견고한 의지의 힘의 세 가지 특징을 갖춘 보살이 삼아승지겁 동안 보리심으로 모두에게 정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삼아승지겁의 보살행을 시작하는 보살에게 이와 같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보리도차제광론》, 게쉬 소남 걜첸 譯
《수습차제》와 《보리도차제광론》에 따르면, 일체 중생을 자신의 외아들처럼 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한 명도 빠짐 없이 고통에서 구제하려는 대비심(大悲心)과, 대비심을 바탕으로 삼아승지겁 동안 위 없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견고한 보리심이 밤낮 없이 24시간 꾸밈없이 저절로 일어날 때 처음 대승에 입문하는 보리심이 생겼다고 본다.[37] 그 밖에도 《현관장엄론》에서는 보살의 수준에 따라 22 종류의 보리심이 있다고 설하였다. 이처럼 보리심은 대승의 입문인 동시에 기둥이자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말한 보리심의 체계(평등심~보리심)의 개념도 없이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 이루겠다. 이를 위해 나는 선업을 쌓아야 한다.’는 마음 일으키는 정도로는 아주 크게 혼란해져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심하게 착각하는 아만심(我慢心)이 견고해져서 보리심을 수행의 핵심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곳에서 핵심적 가르침을 찾고 또 그러한 수행으로 경지가 많이 높아진다고 착각하고 있기에 대승의 핵심(보리심)을 아는 사람이 보면 웃을 일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보살들은 많은 겁(劫) 동안 보리심을 수행의 핵심으로 여기고 닦는다고 많은 경(經)과 논(論)에서 전해져 오는데, 피상적인 이해 정도 밖에 못하는 이들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보리도차제광론》, 게쉬 소남 걜첸 譯
경론의 기준에서 보면, 대승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다른 중생에게 일시적으로 자비로운 마음을 내는 정도로는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일체 중생을 위해 성불하겠다. 그러기 위해 선업을 행하겠다."고 말로는 보리심을 낼 수 있어도 진정한 보리심을 얻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은 보살도에 입문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보리심이 없어도 보살계는 받을 수 있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아직 (저절로 생기는 보리심 같은) 경험이 없어도 육바라밀 같은 대승의 학처(學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대승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먼저 발심(發心)하여 보살계를 받고 그 다음 보리심을 배울 수는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살계 의식을 통해 잠시나마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계를 받아 지님으로써 많은 공덕을 쌓고 업장을 소멸시킬 수는 있지만 아직 진정한 보리심이 없으므로 '보리심의 그릇'이라 할 수 없다. 때문에 쫑카빠는 보살계를 받은 후에도 보리심의 이득을 생각하고 칠지기도, 귀의, 육바라밀 등을 배우고 실천하여 보리심을 계속 닦아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 보리심의 이득

보리심은 모든 불법(佛法)의 종자(種子)와 같다.

《화엄경》

성스러운 복전(福田)이 되는 것과 해침이 없는 복[38]을 완전히 지니는 것이다. 처음은 세간(世間)의 천신(天神)과 사람 등으로부터 공경의 대상이 된다

《보살지》

보리심으로 지은 복덕은 만약 형태가 있다면, 허공계(虛空界)가 가득 차서 그것은 그보다 더 남게 된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불국토를 보배들로 가득 채워서 세간의 구제주(救濟主)이신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어떤 이가 합장(合掌)하고 보리로 발심하면 그 공덕이 가장 수승(殊勝)하다. 일체 중생을 위한 발심은 끝이 없다.

《용수문경》

수 겁 동안 깊이 살피신 능인(能仁)들께서 이것(보리심)만이 이롭다고 보셨듯이 이것은 끝없는 중생에게 완전한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네.

《입보살행론》

"생각하는 것은 남을 돕고자 생각 하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 《보리도차제광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장애를 없애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모든 성취를 가져오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아름다운 용모, 무병장수, 많은 중생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중생의 가난함과 괴로움, 슬픔을 없애는 것은 보리심입니다.

수행을 한다면 보리심 수행의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보리심이 일어나게 되면 악업을 정화하고 모든 복덕자량을 쌓는 것입니다.

보리심의 관한 법을 여러분들이 듣고 접한 것은 굉장히 큰 기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최대로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체중생들을 성불의 지혜로 내가 이끌겠다"는 마음을 내고 그러한 생각으로 보리심을 발심하세요.

제14대 달라이 라마

제14대 달라이 라마도 "처음에는 일체 중생을 위한 보리심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보였지만, 60년 넘게 보리심에 대해 사유하고 수행한 끝에 최근에 와서야 진정으로 보리심을 발하게 되었다."고 법문 중에 종종 언급한다. 달라이 라마도 평생 동안 수행한 끝에 진정한 보리심을 낼 수 있었고, 올바른 보살들은 여러 겁에 걸쳐 보리심을 수행한다고 경전에서 언급하였는데 일반적인 수행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경론에 의거하여 보리심의 원인인 사무량심과 보리심, 보살도의 정확한 의미와 학처(學處) 등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 동기와 행위를 점검하며 사무량심과 보리심을 지속적으로 증장시켜야 한다.
보리심의 개발은 티베트 불교 수행 단계 중
상사도(上士道)에 해당한다.
작은 시냇물을 마실 힘도 없다면
큰 바다의 물을 어떻게 들이킬 수 있겠는가.
이승二乘(성문승과 연각승)도 능숙하지 못하다면
대승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지장십륜경》, 법장 譯
보리심의 동기와 보리심의 실천(현교의 육바라밀, 사섭법과 밀교의 수행 등)은 티베트 불교의 수행 체계인 보리도차제(람림)의 삼사도(三士道) 중 상사도(上士道)에 해당한다. 상사도 수행에 앞서 가르침을 듣고 설하는 법, 선지식을 섬기는 법 등의 예비수행과 이번 생의 집착을 여의고 다음 생의 행복을 위해 선업을 행하고 악업을 멀리하는 하사도(下士道),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하는 출리심(出離心)을 바탕으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수행하는 중사도(中士道)의 기반이 갖춰진 후 상사도에 입문하게 된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 단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참조.
제14대 달라이 라마, 《평화로운 마음, 선한 마음》

4.8.2. 세속 보리심[편집]

부처의 대비행(大悲行)과 중생 구제의 사업을
상징하는 따라(Tara) 보살[39]

진리를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의 두 차원으로 설명하는 이제설(二諦說)에 입각하여 보리심도 세속(世俗) 보리심(속제 보리심, saṁvṛiti cittotpāda)승의(勝義) 보리심(진제 보리심, paramārtha cittotpāda)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승의 보리심이란 곧 공성(空性)을 아는 무분별의 지혜를 말하며 견도(見道) 이상의 보살부터 갖게 된다. 세속 보리심이란 공성을 아직 완전히 증득하기 전, 보살이 처음 발심하여 자량도(資糧道)에 입문할 때 자비심을 원인으로 하여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보리심이다.

일반적으로 보리심이라면 주로 세속 보리심을 뜻한다. 로종(lojong) 수행도 주로 세속 보리심을 개발하는 수행이다.[40] 그러나 세속 보리심의 토대는 승의 보리심이며 궁극적으로 세속 보리심과 승의 보리심은 둘이 아니다.
샨타락시타의 제자이자 날란다 사원의 12대 학장
까말라쉴라(Kamalaśīla)

까말라쉴라는 《수습차제》에서 세속 보리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세속 보리심이란 연민심으로 모든 중생을 확실하게 고통에서 건져내기로 서원한 다음,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깨달음을 이루리라!'라고 생각하면서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보리를 염원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첫 마음을 일으키는 것(초발심初發心)이다.

세속 보리심은 또한 《보살지》의 〈계품〉에서 보여준 의궤에 따라 보살의 율의에 청정하게 머무는 스승에게서 보리심계를 받아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와 같이 세속 보리심을 일으킨 후에는 승의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수습차제》, 오기열 譯

《수습차제》의 설명과 같이 세속 보리심은 다시 원보리심(願菩提心)행보리심(行菩提心)으로 나눌 수 있다. 원보리심은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소망이다. 그리고 행보리심은 원보리심을 실제로 이루기 위해 보살계와 바라밀, 사섭법 등을 실천함을 의미한다. 원보리심과 행보리심을 각각 눈과 다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원보리심을 통해 가야할 곳을 보고, 행보리심을 통해 그곳에 이르는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원보리심을 일으킨 뒤 행보리심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살계(보리심계)를 받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불법승 삼보께 귀의하는 삼귀의계와 성문승의 별해탈계(別解脫戒)[41]를 수지한 상태에서 보살계맥을 여법히 수지하고 있는 청정한 스승에게 보살계를 받아야 한다.

다음은 보살계를 받을 때 보리심을 발한 제자가 스승 앞에서 서원하는 의식문 중 하나이다. "나와 남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는 원보리심에 해당하며, "최상의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 중생을 나의 귀한 손님으로 여기고 최고의 보살행을 하겠습니다."는 행보리심에 해당한다.
삼보께 제가 귀의합니다.
모든 악업을 참회하며
일체중생의 선업을 수희찬탄하고
마음에 부처의 깨달음을 지니겠습니다.

불법승 삼보에 완전한 깨달음 얻을 때까지 제가 귀의합니다.
나와 남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

최상의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 중생을 나의 귀한 손님으로 여기고
최고의 보살행을 하겠습니다.
모든 중생 돕기 위해 부처 이루게 하소서.

《원보리심과 행보리심 일으키기》

티베트 불교의 보살계는 18개의 근본 계율과 46개의 보조 계율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계율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여러 경우에 걸쳐 가르친 계율이며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산재해 있었다. 이를 아상가(Asaṅga), 샨티데바(Śāntideva), 짠드라고민(Candragomin) 등이 수집하여 구성한 보살계율이 지금의 티베트 불교에서 따르는 보살계이다. 양정연 한림대 교수의 《대승 보살계의 사상과 실천》에 따르면 티베트 불교의 보살계는 대체로 《유가사지론》 〈계품〉의 보살계와 《입보살행론》, 《대승집보살학론》 의 보살계를 통합하여 구성되었다고 한다. [42]
《18 근본타죄》
1) 자찬(自讚)과 타인 비방의 타죄: 이익과 공경 받는 것을 탐해서 자신을 칭찬하고, 공덕을 갖춘 남을 비방하는 것.
2) 법(法)과 재물을 베풀지 않은 타죄: 괴로운 이나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법과 재물을 줄 수 있으면서도 인색함으로 인해 주지 않는 것.
3) 참회해도 듣지 않고 꾸짖은 타죄: 다른 이가 자신에게 용서를 비는 등 법도에 맞게 사과하는데도 듣지 않고 성난 몸짓과 말로 대응하는 것.
4) 대승(大乘)을 버리고 유사법(類似法)을 설시(說示)한 타죄: 보살의 경장에 대해 ‘이것은 불설(佛說)이 아니다.’라는 등으로 배척하고 유사법을 좋아하고 남에게 설시하는 것.
5) 삼보(三寶)의 재물을 빼앗은 타죄: 삼보에 돌아갈 물건을 자신에게 권한이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훔치거나, 남을 시켜 훔치거나, 빼앗거나, 방편을 써서 얻는 것.
6) 정법(正法)을 배척한 타죄: 도(道)의 가르침을 완전히 설시(說示)한 삼승(三乘)의 경장(經藏)에 대해 ‘이것은 불설(佛說)이 아니다.’라고 비방하는 것.
7) 승복을 빼앗은 등과 퇴속시킨 타죄: 계율을 지니거나 지니지 않은 출가자에게 악의로써 승복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감옥에 집어넣거나 퇴속(退俗)시키는 등의 행위.
8) 무간죄(無間罪)의 타죄: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라한을 죽이거나 승단을 분열시키거나 여래(如來)의 몸에서 악의로 피를 내게 하는 등의 오무간죄.
9) 전도견(顚倒見)을 취(取)한 타죄: 인과(因果)나 윤회 등을 없다고 보는 것.
10) 마을 등을 파괴한 타죄: 마을이나 도시, 지역, 국가 등을 파괴하는 것.
11) 마음을 닦지 않은 이에게 공성(空性)을 설시(說示)한 타죄: 공성을 설시할 근기가 아닌 대승(大乘)의 발심자에게 공성을 설시하여, 두려움으로 인해 발심에서 물러나 소승(小乘)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
12) 완전한 보리(圓覺)로부터 물러나게 한 타죄: 완전한 보리에 발심한 이에게 ‘육바라밀행과 성불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성문, 독각의 발심을 하면 윤회로부터 벗어나기가 더 쉽습니다.’ 따위의 말을 해서 그 대상이 완전한 보리의 발심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것.
13)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배척한 타죄: 별해탈계에 법답게 머무는 이에게 ‘별해탈계가 청정하면 뭐합니까? 원만한 보리에 발심하고 대승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하면 삼문(三門)의 일체 악행이 소멸하게 됩니다.’ 따위의 말을 하여, 그 대상이 별해탈계를 버리게 하는 것.
14) 소승(小乘)을 통해서는 탐진치 번뇌를 끊을 수 없다고 본 타죄: 성문(聲聞), 독각(獨覺)의 승(乘)을 아무리 배워도 번뇌를 남김없이 끊을 수 없다고 비방하고, 성문, 독각의 깨달음으로써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
15) 전도설(顚倒說)의 타죄: 이익과 공경을 받기 위해 대승(大乘)을 드러내고, 독송하고, 설시(說示)하면서, 자신은 이익과 공경 받는 따위를 보지 않는 대승의 수행자이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하거나, 공성(空性)을 설시(說示)하면서 ‘이것을 명상하십시오. 그리하여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요해(了解)하면 저와 같이 될 것입니다.’라는 따위의 말을 해서 상대방이 그 의미를 알아듣는 것.
16) 삼보로부터의 압수물을 받아 취(取)한 타죄: 왕이나 대신(大臣) 등이 삼보에게서 압수한 재물이나, 승단이나 비구로부터 벌칙으로 압수한 물건 등을 자신에게 바칠 때 받아 취(取)하는 것.
17) 지(止)를 배척하여 선정(禪定)을 닦는 이의 물자를 송경자(誦經者)에게 주는 타죄: 지(止)에 집중하는 선정 수행자를 혐오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줄 물자를 가져다 송경자들에게 주는 것.
18) 보리심을 버린 타죄: 보리심을 잃어버리는 것.

보살계를 받은 수행자는 18개 근본 계율과 46개 보조 계율을 지키며 육바라밀과 사섭법을 배우고 실천한다. 제10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던 게쉬 체왕 쌈둡(Geshe Tsewang Samdrup)이 보살계율에 대해서 설명한 짧은 논서인 《보살계율보만》[43]을 범천스님이 번역하여 《보살의 길》, 《다 함께 잘 사는 길(대승불교 교학체계)》 등에 수록하였다.

4.8.3. 승의 보리심[편집]

앞서 설명하였듯이 승의(勝義) 보리심은 곧 공성(空性)을 바르게 아는 무분별의 지혜를 뜻한다. 승의 보리심은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아는 견도(見道) 이상의 보살부터 갖게 된다. 까말라쉴라는 《수습차제》에서 승의 보리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승의 보리심이란, 세간을 벗어난 것이며 모든 희론을 여읜 것이고, 극히 밝은 것이며, 수승한 의미의 영역이다. 오염이 없는 것이며, 흔들림이 없으며 바람 없는 곳의 버터불처럼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의 성취는 항상 공경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샤마타와 위빠샤나의 요가를 수습하여 익숙해짐으로써 이루어진다.

《수습차제》, 오기열 譯

공(空)은 허무주의, 단멸론(斷滅論)이나 절대주의, 상주론(常住論)과는 다르다. 반야 중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일체 만법(萬法)은 상호의존하여 발생(緣起, pratītya-samutpāda)하므로 고정불변한 실체인 자성(自性, svabhāva)이 없으며(無自性, niḥsvabhāva), 이를 공(空, śūnya)이라고 한다.
  • 상호의존하여 존재하므로(緣起有) 변하지 않는 독자적인 실체로서 존재(執有)한다는 상견(常見)을 여읜다.
  • 고정불변하는 실체인 자성이 결여된 자성공(自性空)으로서 끊임없이 상호의존하여 발생하므로 일체 현상, 혹은 작용마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作用空)하는 단견(斷見)을 여읜다.[44]
  • 그러므로 공은 곧 상견과 단견 양 극단을 여읜 중도(中道)이다. 달리 말하면 연기성공(緣起性空)이며 성공연기(性空緣起)라고 할 수 있다. 《중론》에서는 "연기인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된 가명(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중(madhyamā)의 실천(pratipad)이다."라고 말하였다.

공성에 대하여《잡아함》의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은 “업과 과보는 있지만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 이 존재가 사라지면 다른 존재가 계속한다(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已 異陰相續).”고 말했으며,[45]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법들의 경우, 화합 인연으로 발생한 법에는 자성이 없느니라. 만일 자성이 없다면 ‘법이 없다’는 말이 되느니라. 따라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법에 자성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하느니라. 왜 그런가? 일체의 법은 그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일체법에 자성이 없음을 알야야 하느니라(諸法和合因緣生法中無自性。若無自性,是名無法。以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當知一切法無性。何以故?一切法性空故。以是故,當知一切法無性)."고 말했다.

또한《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말했고, 쫑카빠는 이에 관해 《연기찬탄송》에서 "그러므로 '의존해서 성립하는 것’들은 본래부터 자성이 없지만 자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일체법이 환영과 같다고 설하셨다."라고 설명하였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말한 것 같이, 진제(眞諦)인 공성(空性)과 속제(俗諦)인 연기(緣起)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의식의 분별 상(이름, 생각 등)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가립(假立)된 법(法)인 체성일(體性一) 반체이(返體異)(ngo bogcig ldog patha dad)의 관계이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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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에서는 공성에 대한 지혜를 얻는 차제(次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①끊임없이 일어나는 아주 미세한 찰나생멸의 무상(無常) → ②몸과 마음(오온) 외에 따로 '나'란 없다는 거친 무아(無我)  → ③'나'라는 실체가 없어 이름과 생각(名言)뿐으로만 존재하는 미세한 무아(無我)  → ④공성(무자성無自性)을 깨닫는 바른 지혜
■ 무아(無我)에 대한 네 가지 핵심(གནད་བཞི་ 네 시)

① དགག་བྱ་ངེས་པའི་གནད་ 각쟈 ㅇ에빼 네
- དགག་བྱ་ [각쟈] : 부정해야 할 바, 부정의 대상, 무엇이 없다고 할 때 그 것.
- 범부중생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 아집(我執)이 있다(구생아집俱生我執). 이를 경전에서는 유경(有境, 주체)이라 한다.
- 이러한 유경의 대상(경境, 객체)을 분석해서 잘 알아야 한다. 유경의 인식 대상인 경(境)에는 오온(색수상행식)이 있다. 오온을 제외하고 별도로 '나'가 따로 없다. 오온 외에 '아트만', '참나'[47] 등 상호의존하여 발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아(我)는 없으며, 있다고 여기는 착각을 아상, 아집이라 한다.
- 아상, 아집을 소멸시키려면 '아트만', '참나' 등 부정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부정해야 한다. 만약 부정 대상을 부정하지 못하거나, 부정 대상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면 단견(斷見) 혹은 상견(常見)의 극단에 치우치게 된다. 예를 들어 무아에 대한 설명 중 '없다'고 할 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윤회, 인과, 업, 해탈 등을 모두 부정하는 단견(斷見)에 떨어지게 된다. 유(有)ㆍ무(無)의 두 가지 아(我) 문단 참조.

② ཁྱབ་པ་ངེས་པའི་གནད་ 캽빠 ㅇ에뻬 네
- ཁྱབ་པ་ [캽빠] :  충족함.
- 아상이 집착하고 있는 '나'라는 실체가 있다면, 오온과 하나(一)로 또는 따로(異) 있는 것 말고는 없음을 충족한다.
- 예를 들어 '노르부'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면, 노르부는 집 안 또는 집 밖 둘 중 하나에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오온 안에 있든지 오온 밖에 있든지 둘 중 하나를 충족함이 확실하다.

③ གཅིག་བྲལ་ངེས་པའི་གནད་ 찍델 ㅇ에빼 네
- 자성이 하나(一, གཅིག་)가 아님.
- '나'와 '나의 오온'이 완전히 하나라고 하면, '나',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행동'이라고 아(我)와 아소(我所)로 나눠서 따로 구분할 수 없다.
- 이렇게 '나'와 '나의 오온'을 하나라고 보게 되면, 내가 하나인 것처럼  다섯인 '오온'도 하나라고 해야 하거나, '오온'이 다섯이듯 '나'도 다섯이라고 해야 한다.

④ དུ་བྲལ་ངེས་པའི་གནད་ 두델 ㅇ에빼 네
- 자성이 다수(異, དུ་མ་)가 아님.
- '나'와 '나의 오온'이 완전히 다르다면, '나'와 '나의 오온'은 완벽히 무관한 서로 다른 독립된 실체여야 한다. 분리된 측면에서는 '나'와 '나의 오온'이 다르지만 실체로서는 다르지 않다면 이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성이 다수가 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 또한 '나'와 '나의 오온'이 서로 다르다면, 만약 질병, 노화, 죽음이 발생하여도 '나'는 그러한 것들을 겪지 않게 된다. 따라서 '나'는 생멸(生滅)등 오온의 특성을 갖지 않는 잘못이 있게 된다.
- 만일 '나'와 '나의 오온'이 다르다면, 오온을 제외하여야 '나'를 규정할 수 있게 된다.[48][49][50]

∴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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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五蘊)으로 대변되는 일체 현상의 무아(無我), 즉 법무아(法無我) 역시 위에서 설명한 인무아(人無我)와 유사하다.
그대가 [자성(自性)이 성립하지 않는] 자아를 보듯이
모든 법(法)에도 그렇게 적용해야 한다.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
자성이 전혀 없다.

《삼매왕경(samadhirajasutra)》

예를 들어 물병의 경우, 물병은 수많은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구성된다. 물병을 이루는 여러 작은 부분, 입자들은 근취인(近取因,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물병을 만드는 장인의 노력 등은 구유연(俱有緣, 부수적인 원인)이 되어 물병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원인과 조건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되는 물병은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법은 자성이 없으며,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부중생의 의식은 마치 법의 자성, 즉 법아(法我)가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므로, '나'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해서도 상술한 '무아에 대한 네 가지 핵심'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분석 끝에 전도(顚倒)된 인식의 대상은 해체되어 사라지고, 마음에 떠올렸던 인식 대상은 단지 이름과 생각(名言)으로만 존재하며 그저 연기(緣起)로 구성된 것임을 알게 되어 법무아(法無我)를 깨닫는다.

위에서 언급한 '무아에 대한 네 가지 핵심' 외에도 여러 다양한 논리적 추론들[51]을 통해 무아, 공성에 대해 그릇됨 없이 바르게 알 수 있다. 선정(禪定) 상태에서 깊게 추론하고 분석하는 것을 분석 명상(Skt. vicārabhāvanā, Tib. dpyad sgom)이라 하는데, 집중 명상(Skt. sthāpyabhāvanā; Tib. 'jog sgom)과 샤마타, 분석 명상과 위빠샤나는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52] 보살은 샤마타위빠샤나의 실천을 통해 공성에 대한 지혜, 곧 승의 보리심을 점차로 발현하게 된다. 샤마타와 위빠샤나를 통해 공성에 대한 지혜가 점차 강화될수록, 공성(空性)으로서의 연기(緣起), 연기로서의 공성이란 진여실상(眞如實相)을 더욱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볼 수 있다. 이는 석가모니불의 수승하고 바른 지견(智見)과 일치한다. 그 밖에 공성에 대한 설명은 티베트 불교/중관 사상 참조.
제14대 달라이 라마,《초심자의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선설善說(ལེགས་བཤད་བློ་གསར་མིག་འབྱེད་ཅེས་བྱ་བ་བཞུགས་སོ།, Opening the Eye of New Awareness)》

세간의 유정은 대부분 식온(識蘊)을 헤아려 ‘나[我]’라고 집착하고, 그 밖의 다른 온을 헤아려 ‘내 것[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까닭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이한정 譯
흔히 대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견문각지見聞覺知) 인식 작용을 하는 마음(의식)을 변치 않는 '나', '자아', '영혼' 등으로 여기기 쉽지만, 그러한 마음(의식) 또한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찰나생멸을 반복하는 연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 6식(六識)[53]의 각각은 원인들, 즉 각각의 6식 자체의 인식 기능, 대상, 즉각적인 조건 등에 의존하고 있다. (2) 식(識)의 경험이 하나로 단일하게 보일지라도, 그 경험은 깊은 정념 속에서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짧은 순간들의 식(識)으로 이루어져 있다. (3) 각 순간의 식(識)도 바로 전 순간의 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바로 다음 순간의 식(識)에게 영향을 준다. 이들 서로 다른 순간들의 식(識)은 단절된 사건들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연속을 형성한다.

석가모니는 ‘식(識)’이 자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사띠(Sati) 비구는 의식이 조건들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저절로 존재하며,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주하며, 업(業)을 만들면 그 과정에서 변화되는 일이 없이 그 업의 결과를 경험한다고 믿었다. 석가모니는 사띠 비구를 이렇게 질책했다.
“어리석은 사람아, 조건이 없으면 식(識)이 발생할 일도 없기 때문에, 식(識)은 연기(緣起)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내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갈애 멸진의 긴 경(MN 38:5)》

티베트 불교에서는 부처의 반열반(般涅槃, parinirvana) 이후에도 부처의 청정하고 자각(自覺)하는 특성을 가진 마음(의식)의 연속은 계속 이어지며 이를 단절할 원인은 없다고 본다.[54] 그러나 이러한 가장 미세하고 청정한 마음, 밀교에서 말하는 정광명(淨光明, ‘od gsal)조차 순간들로 구성된 연속으로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이며 독립된 실체가 아닌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승의(勝義)로 존재하지 않으며, 외도(外道)의 고정불변한 실체로서의 '영혼', '아트만', '참나' 등과 같지 않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

밀교에 해당하는 족첸과 마하무드라에서 위빠샤나는 마음의 본성이 갖는 특성인 '분별을 여읜 순수한 앎'을 가리킨다. '마음의 본성'이란 표현 때문에 마치 '아트만', '참나'처럼 자성(自性)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족첸의 '릭빠(rig pa)'나 무상요가 딴뜨라의 '정광명(淨光明, ‘od gsal)' 등으로 일컬어지는 마음의 본성 혹은 초(超)미세의식 역시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이 무자성(無自性)으로 공(空)하다.
일체 법[法, 현상]은 마음의 환영이지만
바로 이 마음은 '마음'이란 자성(自性)이 없는 것,
왜냐하면 마음의 본성은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공(空)하고 불생 불멸하기에 무엇으로든 나타나는 것[顯現]이니
이를 잘 분별하여 모든 의혹의 근원들을 끊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마하무드라 발원문》, 제3대 까르마빠 랑중 도제(rang byung rdo rje) 신상환 譯
족첸 가르침에 나와 있듯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 여러분은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순간 여러분은 마음을 직접 들여다보게 됩니다. 마음을 들여다볼 때 그 어디에서도 마음을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드디어 본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그 본성의 상태에 머무는 것을 발견합니다. 때때로 족첸 가르침에서 이것을 '분별 없는 명상 상태'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는 '마음이 없다'라고 합니다.


마음은 윤회와 열반 등 모든 인식하는 현상의 토대이지만, 만약 '마음'이라 부르는 것을 찾고자 한다면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마음의 본성을 안다는 것은 곧 '주체의 무자성=주체의 공성'을 온전히 깨닫는 것과 같다. 족첸, 마하무드라, 무상요가 딴뜨라 등 밀교(密敎)의 공성에 대한 견해와 현교(顯敎)인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공성에 대한 견해는 일치한다. 자세한 내용은 샤마타와 위빠샤나(지관) 문단 참조.
닝마빠의 제5대 쟈 낄룽(Dza Kilung) 린뽀체.
2019년 방한하여 김천 직지사에서 족첸 안거를 지도했다.

공성에 대한 바른 지혜가 있을 때 보살은 집착과 애씀 없이, 개념을 초월하여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진정한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이룰 수 있다. '나'라고 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성을 알수록 '나'에 집착하는 아집(我執)과 이로 인해 생기는 이기심이 줄어들고 남을 위하는 이타심과 자비심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성문 연각 등은 능인으로부터 태어나고
부처님은 보살로부터 태어나시니
자비심과 둘이 아닌 마음(공성)과
보리심은 보살들의 씨앗이다.

연민심이란 승리자의 원만한 결실로
이것의 씨앗이며 성장시키는 물과 같고
오랫동안 수용하는 대상을 성숙시키는 것이기에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자비를 찬탄하는 것이다.

먼저 나라고 자신을 애착하고
나의 것이라고 사물에 집착이 생겨나니
도르래처럼 자유가 없는 중생에게
자비를 일으키게 한 모든 것을 공경한다.

중생은 움직이는 수면 위의 달과 같이 흔들리고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본
이러한 보살의 마음은 모든 중생을
해탈시키기 위해 자비로 순응하고

보현(普賢)의 원력으로 잘 회향하여
환희에 머무는 그것을 초지(初地)라 부르며
그때부터 초지를 얻게 되었으므로
보살이라 불리는 호칭을 얻는다.

《입중론》, 양지애 譯

4.8.4. 사무량심 수행[편집]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에서 사무량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무량심이란 자애, 연민, 기쁨, 평등(慈悲喜捨)이란 네 가지 무량한 마음을 뜻한다. 이 네 가지 마음을 무량(無量)이라고 부르는 것은 먼저 편파성이 없으므로 무량한 중생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욕계심(欲界心)의 다섯 가지 장애[55]에 의해 제한되지 않은 선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초선(初禪)을 닦은 사람이 태어나는 범천(梵天)의 이름을 따서 사무량심을 사범주(四梵住)라고도 부르는데, 범천의 존재들의 마음은 온순하다.

사무량심은 《자애경(Metta-sutta)》과 《청정도론(Visuddhimagga)》 같은 빠알리 어 경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수행이다. 상좌부 전승에 따르면 사무량심 명상만을 할 경우 다음 생에 범천(梵天) 등의 색계(色界)에서 환생할 수 있지만, 이 명상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삼법인(三法印)의 통찰을 위한 유연하고 집중된 마음인 심해탈(心解脫)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무량심 수행은 먼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네 가지 무량심을 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상이 익숙해지면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적(원수), 일체 중생 순으로 대상을 확대한다.

대승 불교에서 사무량심은 《보살장경(Bodhisattva Piṭaka sutra)》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무량심은 보리심의 원인이 되는 마음이기 때문에, 보리심 수행에 앞서 먼저 사무량심을 수행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사무량심을 수행할 때 사용되는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중생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을 갖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이 고통 없는 행복(해탈)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이 가까움과 멂, 애착과 증오 없는 평등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와 ~의 원인들"이라는 구절은 특별히 자애와 연민을 일으킬 때 덧붙인다. 이는 중생들이 업(業)과 인과(因果)의 법칙을 이해하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을 이해해서, 행복을 가져오는 원인들을 만들고 고통을 가져오는 원인들을 더이상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표현이다.

또 다른 형태는 다음과 같다.
모든 중생이 평등 속에 머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그렇게 머물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을 그렇게 머물게 만들 것입니다. 부처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들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그것들을 갖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이 그것들을 갖게 만들 것입니다. 부처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들을 갖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이 그것들을 갖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부처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좋은 세계에 환생하고 해탈의 더 없는 행복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그것들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 그들이 그것들을 떠나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부처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십시오.

위의 형태는 평등을 강조하는 사무량심(捨無量心)이 처음에 언급된다. 이는 나머지 자무량심, 비무량심, 희무량심이 특정 대상에게 편파적으로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위의 형태는 (1) 소망 (2) 발원 (3) 결심 (4) 요청의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술할 보리심 수행 가운데 하나인 ‘칠종인과법’의 요약이기도 하다.

《현관장엄론》에서는 사무량심이 선정(禪定)을 수반하지 않는 이상 무량한 마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무량심에 대한 명상은 보리심을 증장하기 위해서 행해질 수도 있고, 선정을 개발하기 위해서 행해질 수도 있다.

상좌부 전승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사무량심만 수행하면 지혜가 발현되지 않아 범천에서 환생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사무량심을 일으키는 주체인 나 자신과, 사무량심의 대상인 일체 중생과, 사무량심을 일으키는 행위 세 가지 모두 상호의존적이므로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공성(空性)에 대한 지혜가 수반될 때[56]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4.8.5. 보리심 수행[편집]

티베트 불교는 보리심을 모든 수행의 동기로 삼을 것을 강조한다. 성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않게 한다. 또한 보리심을 단순히 강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리심을 키우는 구체적인 수행법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심을 훈련하는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의 전승으로는 로종(lojong)이 있다. '마음 다스리기'라는 뜻의 로종에는 보리심에 익숙해지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무착보살의 1) 인(因)과 과(果)에 대한 일곱 가지 가르침(칠종인과법)이고, 다른 하나는 용수보살의 2) 자신과 남들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교환하는 것(자타상환법)이다. 칠종인과법과 자타상환법을 반복적으로 사유하고 고찰함으로써 자신의 심성이 보리심에 가까워지도록 수행한다.
1. 칠종인과법(七種因果法)
(1) 모든 중생이 수많은 전생 가운데 우리의 부모 아니었던 적 없는 것을 인식함.
(2) 그들이 우리의 부모였을 때 베풀었던 친절에 대해서 고찰함.
(3)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고 싶어함.
(4) 부모였던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람.
(5) 부모였던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람.
(6)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위대한 결심.
(7) 그 결과 모든 중생을 위해 부처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보리심을 이룸
칠종인과법에 수승한(위대한) 결심이 들어간 이유는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인 무량한 자애심과 연민심(사무량심)은 성문과 독각에게도 있지만, 일체중생의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없애는 행(行)을 "내가 하겠다"는 것은 대승(大乘) 아니고는 없기에 용기 있는 더욱 수승(殊勝)한 결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생각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생각 정도로는 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이것을 행하는 짐을 짊어져야겠다는 마음의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
2. 자타상환법(自他相換法)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중생들 역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기심과 자기 집착으로 남들을 희생시키며 죄책감과 근심, 두려움을 얻게 된다. 반대로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행복을 원하면 행복한 타인들로 인해 자기 자신 역시 행복해진다. 따라서 자신과 남의 입장을 바꿔 자신의 행복에서 타인의 행복으로 목표를 전환하는 것을 자타상환법이라고 한다. 자타상환법을 장애없이 행하기 위해서는 나, 나의 것이 존재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는 무아(無我)와 나와 남이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연기성(緣起性)을 인지해야 한다.
자타상환법은 단순히 남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는 수행을 의미한다. 쫑카파는《보리도차제광론》에서 "이것(자타상환법)은 남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눈(眼) 등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수행이 아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남을 무관심하게 외면하는 이 두 마음의 태도를 바꿔서 남을 나처럼 귀하게 여기고 나를 남처럼 외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칠종인과법보다 자타상환법이 더욱 심오하고 상근기들에 적합한 수행이며 또한 궁극적으로 권장되는 수행법이다. 자타상환법과 관련된 티베트 불교 특유의 자비명상으로 똥렌(gtong len)이라는 것이 있다. 티베트어로 '똥와(gton ba)'는 '주다', '렌빠(len pa)'은 '받다'란 뜻으로 합쳐서 '주고 받기'란 뜻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눈 앞에 있다고 시각화한 다음 행복, 풍요 같은 나의 공덕의 결과를 날숨에 실어보내고 다른 사람의 모든 문제점, 고통, 번뇌들은 들숨을 통해 대신 흡수하는 명상법이다. 이를 통해 남과 나 사이의 분별을 없애고 보리심을 키운다. 자기가 지은 업의 과보는 자기 자신이 받는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원칙이기 때문에 실제로 타인의 업을 대신 받지는 않으며 보리심의 증장을 목표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실제로 행복과 고통을 주고 받는 것은 매우 매우 드문 일이며 두 대상이 전생부터 이어온 굉장히 가까운 업연(業緣)이 있을 때만 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세를 함양하도록 훈련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렌의 목적은 인격, 용기, 열의의 위대한 힘을 얻고 보리심을 함양하는데 있다"고 설명하였다.
Dalai Lama XIV, 《In My Own Words: An Introduction to My Teachings and Philosophy》

4.8.6. 관련 문헌[편집]

날란다 사원에서 《입보살행론》을 설한 샨티데바[57]

로종과 관련된 문헌으로는 《보행왕정론(보만론)(Ratnāvalī)》, 《보살지(Bodhisattvabhūmi)》, 《입보살행론(입보리행론)(Bodhicaryāvatāra)》, 《마음을 다스리는 8가지 게송(수심팔훈, 수심팔송)(Tib. བློ་སྦྱོང་ཚིགས་རྐང་བརྒྱད་མ་, lojong tsik kang gyéma; Wyl. blo sbyong tshigs rkang brgyad ma)》, 《수심칠요(Tib. བློ་སྦྱོངས་དོན་བདུན་མ་, lojong dön dünma, Wyl. blo sbyong don bdun ma)》, 《보살행37송(Tib. རྒྱལ་སྲས་ལག་ལེན་སོ་བདུན་མ་, gyalsé laklen so dün ma, Wyl. rgyal sras lag len so bdun ma)》 등이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모든 보석보다
더 소중한 모든 존재를 위하여
최상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니
언제나 제가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소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를 가장 낮은 사람으로 여기고
마음 깊이
다른 사람을 윗사람으로 받들게 하소서.

그 무엇을 행하건 내 마음을 잘 살피기를
그리고 나와 남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번뇌가 일어나면 바로
단호히 맞서 물리치게 하소서.

매우 부정적이며 고통에 억눌려
성품이 밝지 않은 사람을 보면
마치 귀한 보물을 찾은 듯이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소서.

남들이 나를 시기하여
부당하게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해도
좌절은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승리는 그들에게 바치게 하소서.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몹시 나를 고통스럽게 해도
변함없이 그를 존경하는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요약하면 이익과 기쁨은
직간접으로 내 어머니였던 모든 중생께 드리며
내 어머니의 모든 상처와 고통은
은밀히 내가 떠맡게 하소서.

이러한 모든 행이 세속 팔풍에 물들어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환영임을 깨달아
애착 없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수심팔훈》[58], 양지애 譯

국내에 번역된 관련 서적은 다음과 같다.
(일부 서적은 절판된 점 참고 바람)

#보행왕정론(보만론)

#친우서(권계왕송)

#보살지

#입보리행론(입보살행론)

#수심칠요

#보살행37송 #수심팔훈 #기타

5. 밀교[편집]

5.1. 개요[편집]

모든 불보살의 힘(力)의 총체이자
밀승의 가르침을 결집한 금강수보살(Vajrapani)[59]

인도불교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밀교는 티베트 뿐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다른 국가로 전래되었지만 지금까지 법맥이 끊기지 않고 독자적인 밀교 종단이 유지되고 있는 곳은 티베트와 일본뿐이다.[60] 일본에는 중기 밀교까지 전해진 반면 티베트에는 후기 밀교까지 전래되었다. 밀교부에 해당하는 방대한 경전들이 존재하며 또한 티베트 불교 종파별로도 각자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과 문헌을 갖고 있다.

밀교는 다른 말로 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이라고 한다. '금강'이라는 것은 매우 견고하고 단단한 것을 뜻한다. 방편과 지혜를 분리시키지 않고 합일시켜 단단하게 하기 때문에 금강승이라고 한다. 금강승은 '방편승(方便乘, upayayana)'이라고도 한다. 바라밀다승보다 많은 선교 방편들을 구족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승을 '과승(果乘, phalayana)'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과(果)로써 도(道)를 삼기 때문이다. 수행의 결과인 불과(佛果)를 수행방편으로 이용하여 수행자 자신을 밀교의 본존으로 관상하는 청정인식을 갖게 한다. 금강승은 밀승(密乘, guhyayana)이라 칭하기도 한다. 반드시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비밀로 남아있어야 하며 밀교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관정이나 금강승 수행에 대해서 남에게 알리거나 자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자기중심주의, 오만에 빠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달라이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

불교학자이자 티베트 불교 수행자인 최로덴(최연철)은 《티벳 불교의 향기》에서 딴뜨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딴뜨라(Tantra, rGyud)라는 용어는 밀교 경전들에 근거한 수행 전통을 말한다. 딴뜨라(Tantra)라는 말의 본뜻 역시 연속(連續) 계속(繼續) 본속(本續) 밀주본속(密呪本續) 비밀본속(秘密本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티벳어로는 ‘규(rGyud, 續)'라고 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의미이다. 딴뜨라의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로 관상(觀想)의 과정들, 의례절차, 상징들의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깊은 철학적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들을 활용한 수행을 통하여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체계화되어 있다. 즉 ‘딴뜨라’는 모든 수행 양식과 관념들 그리고 다양한 상징물들과 함께 구전 전승되고 있는 의례 의식과 광범위한 경론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또한 밀교는 현교에서 미처 밝히지 못한 더욱 심오하고 자세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밀교 경전에서는 번뇌장, 소지장 같은 번뇌를 다룰 때 현교의 번뇌 개념보다 더욱 미세한 번뇌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부처의 사신(四身)[61]의 공덕에 대해서도 현교에서 다루지 않는 자세한 사항을 설명한다.
  • 수행의 3가지 체계
    이승
    삼승
    소의 경전
    수행
    소승
    성문승·독각승
    별해탈계
    아함경 등 초기 경전
    주로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수행
    대승
    바라밀승(보살승)
    보살계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
    일체중생을 위해 보리심과 육바라밀 수행
    금강승(밀승)
    금강승계
    밀집금강, 승락금강, 대성덕금강 등
    번뇌의 독을 약으로 삼는 수행

5.2. 밀교의 기원과 불교사 서술 방식[편집]

5.2.1. 전통적 관점[편집]

지금강불(Vajradhara)과
84명의 마하싯다(mahasiddha)[62]

겔룩빠의 승원에서 교재로 쓰이는 양짼 가외로되(Dbyans can dgah baḥi blo gros)의 밀교 관련 논서 《시이꾸숨기남샥랍쌜된메(因位三身行相明燈論, gzhi'i sku gsum gyi rnam gzhag rab gsal sgron me)》를 중암스님이 번역하고 증주(增註)한 《밀교의 성불 원리》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금강승은 석가모니불의 보신불(報身佛)[63]인 지금강불(持金剛佛, Vajradhara)에 의해 설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강불은 오종성불(五種性佛)의 덕성을 하나로 모은 대보신불(大報身佛)로 밀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부처이다. 금강승의 가르침은 무상유가의 법기(法器)로 알려진 업과지(業果地)[64]의 남섬부주 유정들을 위해서 단지 한 생애에서 성불할 수 있도록 최상의 근기를 대상으로 설한 비밀의 방편도(方便道)로 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상요가부 딴뜨라의 가르침은 대승 가운데 대승이며 최상승법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이 비밀 금강승의 가르침이 남섬부주에 출현한 것은 오로지 석가모니불의 시대이며, 과거의 연등불이나 미래의 미륵불 때는 금강승의 가르침이 설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인간 수명이 100세에 불과한 오탁악세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의 교화 대상인 현세의 남섬부주 중생들이 금강승의 큰 연분(緣分)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오직 과거의 현전왕불(現前王佛),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문수사리불[65]이란 세 분의 부처가 출현한 세 겁 때의 중생들만이 금강승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그만큼 금강승과의 인연은 매우 희유한 인연이며 숙세의 매우 큰 선근 공덕 없이는 접할 수 없다고 한다.
빠드마삼바와 "나처럼 여기고 보라" 불상(佛象)[66]

티베트에 최초로 밀교를 전한 밀교의 대성취자(mahasiddha)이자 아미타불(Amitabha)의 화신으로 알려진 구루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의 전기 《빼마 까탕》에서는 밀교와 만나는 희유한 법연(法緣)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귀담아 잘 들으십시오! 티베트의 선근자들이여!
비밀진언의 금강승이 출현하는 것은 희유한 일이니,
과거의 8억 4천만의 제불여래도 설하지 않았으며,
연등불께서 법륜을 굴리실 때도 설하지 않았으며,
미래에 오시는 제불여래들도 역시 설하지 않으니,
그 유정들이 밀교의 법 그릇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겁초에 겁명(劫名)을 일체장엄이라 부르는 때,
현전왕불의 가르침에 밀법이 출현하였으며,
현재불인 석가세존의 교법에 밀교가 출현하였습니다.
다시 천만 겁을 지나 겁명을 꽃 장엄이라 부르는 때,
문수사리불이 출현하여 현재와 같은 시절이 도래할 때,
그 부처님께서 지금처럼 진언밀교를 선양하게 됩니다.
이 세 겁의 유정들이 밀교의 법기가 되기 때문이며,
이 세 겁이 아닌 시절에는 금강승이 출현하지 않습니다."

《뻬마 까탕》

최로덴은 《티벳 불교의 향기》에서 딴뜨라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딴뜨라의 수행자들은 딴뜨라 수행의 전통이 대부분 석가모니(Sakyamuni) 부처가 직접 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개중에는 가끔씩 다른 세상(타방他方)의 부처가 설한 것도 있으며, 말이 아닌 의식 속에서 전해진 것(意傳)이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것(心傳)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 딴뜨라들이 있다. 티벳 불교 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일반적으로 역사학과 관련한 현대의 분과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석가모니의 입멸 이후, 최소한 천 년 동안, 불교 딴뜨라들이 출현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다. 

이렇게 석가모니 재세시와 인도에서 딴뜨라가 꽃 핀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 티벳 역사가들 중 17세기의 유명한 역사가인 따라나타(Taranatha) 같은 이들은, 석가모니가 재세시에 직접 딴뜨라의 가르침들을 전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사람들의 근기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단지 소수의 제자들에게만 전승되고 나머지는 때가 되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감추어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딴뜨라의 기원에 관한 이런 식의 설명은 현대의 학자들에게 큰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수많은 딴뜨라의 경전들이 언제 어디서 누가 편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딴뜨라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의 전통에서 보면, 딴뜨라는 한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확실한 법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 전통을 따라 성취를 이루었고, 지금도 그 법맥을 따라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많은 딴뜨라의 경전에는 법맥의 전수자들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딴뜨라의 법을 전해준 증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5.2.2. 현대적 관점[편집]

크리스천 웨더마이어(Christian K. Wedemeyer)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 《Making Sense of Tantric Buddhism: History, Semiology, and Transgression in the Indian Traditions》와 이용현 금강대 교수의 논문을 참조하여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학계의 주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딴뜨리즘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과연 현 시점에서 딴뜨리즘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회의를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을 통해 딴뜨리즘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였다는 ‘빌린 모델(borrowing model)’과 두 딴뜨라 이면에 공통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기층 모델(substratum model)’의 두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종교적 기층'이란 아리안족의 인도 아(亞)대륙 진출 이전부터 존재하던("pre-Aryan") 토착 부족의 종교와 문화를 의미한다. 비(非) 아리안계 토착 부족들은 아리안 족의 진출 이후에도 주변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존속하였다. 이들 부족들의 문화에 담긴 여신(女神) 숭배와 주술적 요소가 점차 아리안 족의 베다 전통(Vedic tradition)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힌두, 불교, 자이나교 등에 딴뜨리즘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대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에 의해 도전받았다. 샌더슨이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문을 품는 직접적인 이유는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었다. 

샌더슨은 우리가 딴뜨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딴뜨라거나 바이슈나바 딴뜨라거나 불교 딴뜨라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딴뜨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딴뜨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딴뜨라들은 불교의 딴뜨라로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샌더슨의 이론은 루에그, 스페라, 데이비드슨 등에 의해 비판받았다. 웨더마이어 역시 힌두 샤이비즘과 불교는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기에 불교 딴뜨리즘이 전적으로 힌두 샤이비즘(Śaivism)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어느 쪽이 옳든 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라뜨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나 아바야까라굽따(Abhayākaragupta) 등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위대한 학승들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을 문제 삼은 자료가 지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딴뜨라 불교가 적절한 불교적 의미를 주는 상징주의에 의존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을 흡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명확한 의미가 그러한 요소들에 주어지면, 그들의 불순함은 제거되고, 그들은 불교의 이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상징들로 탈바꿈하였다. 
이용현,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불교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은 불교 역사의 서술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19세기 근대 서구 학자들은 인도 불교의 쇠퇴와 불교 딴뜨리즘의 등장을 결부시켜 해석했다. 그들은 불교 딴뜨리즘이 힌두 샥티즘과 샤이비즘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규정하고, 힌두이즘적 요소의 도입이 불교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정체성 상실을 초래하여 인도 불교가 쇠멸하였다는 서사 구조를 고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한다. 서구 학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Abrahamic religions)의 개념으로 인도 종교를 해석하였다. 그 과정에서 샤이비즘, 샥티즘, 바이슈나비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도 내 종교와 사상, 관습들이 '힌두교'라는 단일 종교처럼 취급되었고, 종교 간의 관계도 대립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로 묘사되었으며 여성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었다.

또한 '생성-발전-번성-소멸'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역사관에 익숙했던 서구 학자들에게 딴뜨리즘의 성(性)적 요소는 서양 고전(古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쇠락 징조로 해석되었다. 딴뜨리즘은 일종의 성적 타락으로 치부되어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 불교 소멸의 원인으로 채택되었다.

불교 딴뜨리즘으로 인도 불교의 쇠락을 설명하는 서술 모델은 제국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20세기 초중반까지 서구 학계에 만연하였다.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물론이고, 초기에 서구와 일본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던 한국 학계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반면 인도 학자들, 특히 벵갈 출신 학자들은 딴뜨리즘을 불교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원시적인 문화적 저류(undercurrent)와 연관시키는 정반대의 모델을 내놓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토착 부족 문화는 아리안족의 진출 이후에도 '종교적 기층', 혹은 '저류'를 형성하여 유지되면서 주류 종교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기존 종교의 성격과 달리 민중 지향적, 모계 지향적, 신체 지향적인 딴뜨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서구의 낭만적인 성향을 가진 학자들도 이러한 인도 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한편 정성준 위덕대 연구교수에 따르면 당시 대승 불교의 중관, 유식 논사들은 학자이자 동시에 밀교 수행자들이었다. 《유가사지론》으로 대표되는 유가행 이론의 완성 이후 이들은 유가행의 실천을 목적으로 밀교 의궤를 창안하였다. 또한 《대일경》, 《금강정경》과 같은 밀교 경전에 주석을 달았고, 바라밀승의 수학 이후 진언승을 수학하는 대승 교단의 현밀겸수(顯密兼修)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밀교의 교리적, 실천적 정통성을 보여준다. 정성준, 《인도밀교의 성립에 나타난 후기중관파와 밀교의 교섭 고찰》

5.3. 밀교와 현교의 비교[편집]

티베트 전통 의학에서의 인체 맥륜(脈輪)도.
밀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밀(三密)의 수행으로
현생(現生)에서 지금의 몸으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 가능하다고 본다.

쫑카빠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의 존재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하는 의도(보리심),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현교와 밀교 양자는 차이가 없다." 하고 말하였다.

현교와 밀교는 공성(空性)이라는 견해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밀법에서 말하는 공성이라는 것도 결국 대승 현교에서 말하는 공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심오한 공성을 말한다거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67]

현교와 밀교의 공통된 수행도는 곧 보리심이다. 진정한 보리심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밀교의 수행승에 들어갈 수 있다. 보리심을 갖춰야 밀교에 박학다식하고 밀교의 수행을 겸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밀법의 가르침을 수행할 수 있다.

현교와 밀교 사이에 보리심과 행위인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또한 현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와 밀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에 있어서는 현교와 밀교가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과위, 불과(佛果)라는 것은 법신(法身)과 색신(色身) 두 가지로 양상을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법신과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에 있어서 현교와 밀교의 차이가 있다. 현교와 달리 밀교에는 지혜와 방편을 완벽히 합일하여 수행하는 법이 있다.[68] 그리고 현교와 밀교 모두 법신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색신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밀교에만 드러나 있다. 전반적으로 밀교는 현교에 비해 보다 지혜롭고 예리한 근기의 수행자만이 수행할 수 있고, 더욱 많고 다양한 방편으로 더욱 쉽고 빠르게 성불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바라밀승의 수행자가 공(空)에 대한 개념적 또는 추론적 인식을 얻게 되면 오직 공만이 나타나고 대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본존요가는 공성에 대한 명상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본존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본존의 거주지로(만다라), 자신의 도반들을 신성한 존재들로, 자신의 행동들이 본존의 신성한 행동으로 심상화(心象化)함으로써 금강승의 수행자가 공을 깨닫게 되면, 관(觀)하던 현상이 공하다는 지각이 일어남과 함께 그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성의 범주 내에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이 동시에 존재하고 공을 깨닫기 위해 사용된 미묘(微妙) 의식은 붓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금강승에는 본존의 관상 뿐 아니라 신체 구성요소인 기(氣, prāṇa), 기맥(氣脈, nāḍi), 맥륜(脈輪, cakra), 명점(明點, bindu) 등을 활용한 수행법이 있다. 금강승에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데 매개체가 되는 수행자의 신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무상요가 딴뜨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일상생활의 거친 수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수준으로도 존재한다. 다양한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일상적인 신체적 형태는 병과 쇠퇴와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금강신(金剛身)이라 불리는 미세한 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소멸되는 물질적인 거친 수행자의 몸이 일반적인 신체기관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금강신의 몸은 기(氣)와 명점(明點)이 흐르는 수천 개의 기맥(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맥들은 지복(至福)의 원천이며 무상요가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딴뜨라 수행의 목적은 미세신(微細身)의 구성요소를 정화하여 붓다의 세 가지 몸(法身, 報身, 化身)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다.
원명, 《탄트라 수행의 특징: 신체 구성요소의 활용》 #

5.4. 밀교의 분류[편집]

티베트의 학자이자 역사가인 부뙨(Buton)은 밀교를 소작부 혹은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 등 네 부파로 분류하였다. 밀교 네 부파는 수행의례나 방법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작부는 외적인 의례를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행부는 《대일경(大日經)》을 위주로 외적인 의례와 내적인 수행을 함께 중시하며, 유가부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중심으로 오직 내적인 수행만을 중시한다. 무상유가부의 가르침은 인도 후기 밀교에 해당하며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네 탄트라의 수행은 상응하는 근기를 가진 수행자에 근거하여 나눈 것이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나눈 것이 아니다.

무상요가 딴뜨라는 방편 부(父) 딴뜨라, 반야 모(母) 딴뜨라, 부ㆍ모 양 딴뜨라의 쌍입(雙入)을 설한 불이(不二) 딴뜨라로 나뉜다. 방편 부 딴뜨라에 속하는 경전은 《비밀집회 딴뜨라(Guhyasamaja tantra)》와 《야만따까 딴뜨라(Yamantaka tantra)》가 대표적이며, 반야 모 딴뜨라는 《헤바즈라 딴뜨라(Hevajra tantra)》, 《챠크라삼바라 딴뜨라(Chakrasamvara tantra)》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불이 딴뜨라는 《깔라챠크라 딴뜨라(Kalachakra tantra)》가 대표적인 경전에 속한다.
17세기 겔룩빠 계통의 칼라차크라 만다라

신상환 인도 비스바 바라띠 대학 교수는 4종 딴뜨라의 구분과 현교의 4종 교학 체계(유부, 경량, 유식, 중관)의 밀접한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4종 딴뜨라
개요
4종 교학
(1)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사원의 건물 안에서 치루는 제례의식. 본존의 이미지를 조성하는 것.
유부
(2) 행부(行部, charya tantra)
수행의식을 가르치는 것.
경량부
(3)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요가 수행을 하는 것.
유식부
(4)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
좀 더 고도의 신비주의를 다루는 것.
중관부

1. 끄리야 딴뜨라를 통해 유부의 인식의 외부(외경)에 시/공간적인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이해하고
2. 짜르야 딴뜨라를 통해 이것(시공간적 실체)이 다만 찰나적 존재라는 경량부의 견해를 받아들이며
3. 요가 딴뜨라를 통해 그것(찰나적 존재)이 다만 마음(인식)에 의한 상(相)에 불과하다는 유식학파의 견해를 받아들이며
4. 아눗따라요가 딴뜨라를 통해 마지막으로 중관학파의 견해인 '이 모든 것(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모두)은 공(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숙지하면
소승/대승을 아우르는 불교의 철학적 체계를 완벽히 숙지할 수 있게 된다는 식이다.

5.5. 밀교의 수행 요건[편집]

현교, 다시 말해 바라밀승은 부처의 과위를 이루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밀승을 수행하면 단기간 내에 자량(資糧)[69]을 쌓아 짧게는 한 생에도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티벳망명정부 총리를 역임한 삼동(Samdhong) 린포체는 2018년 방한법회에서 현교와 밀교를 도보와 고속철도에 비유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도보보다 고속철도가 훨씬 빠르지만 거쳐가는 경로는 같다. 마찬가지로 밀교도 현교보다 짧은 기간에 성불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을 생략함 없이 거쳐 가는 과정은 동일하다.

밀교는 단기간에 성불할 수 있는 수승한 가르침이지만 아무나 밀교를 수행할 수는 없다. 밀교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이미 현교의 수행차제를 두루 섭렵하여 근기가 성숙된 이라야 하며, 오직 불과(佛果)를 증득하고 싶다는 의욕을 앞세우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수승하다고 자만하여 밀교 수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염원하는 출리심, 다른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과 보리심이 투철하고 공성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오늘날 사람들이 금강승(밀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차제(次弟)에 따른 수행과 보리심의 획득, 공성에 대한 이해 없이 금강승 수행을 하는 것은 외도(外道)의 수행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수행의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라고 강조하였다.

출팀 껠상(Tsultrim Kelsang) 오오타니대 교수와 마사키 아키라(正木 晃)는 《티벳 밀교》에서 밀교 수행 이전에 현교 수행을 마치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겔룩빠의 경우 20여년 간의 현교 수행을 제대로 마친 사람만이 아무리 젊어도 30대에서 40대 정도에 밀교에 입문하게 된다. 현교가 결여된 밀교 만으로는 자칫 체험지상주의에 빠져 자신의 체험만을 절대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시작하였을 때도 각지의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모든 스승들이 저차원의 경지에만 도달해있었음에도 그것을 고차원의 경지라고 굳게 믿고 있어 석가모니를 낙담시켰다고 불전은 전하고 있다.
관정을 주는 제9대 캄뚤린뽀체(Khamtrul rinpoche)
셰둡 니마(Shedrub Nyima)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법맥스승으로부터 관정(灌頂, Skt. abhiṣeka, Tib. wang)구전(口傳, Skt. āgama, Tib. lung), 구결(口訣, Skt. upadeśa, Tib. tri)을 받아야 한다. 관정은 왕이 즉위할 때 왕의 머리에 사해(四海)의 물을 부어주는 의식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또한 스승의 구전(口傳)을 통해 수행법을 전수받고,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구결 역시 전수받는다. 밀교 수행을 성취하려면, 현교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신심(信心)이 필요하다. 관정을 주는 스승을 본존의 현현으로 믿어야 하며 만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관정(Abhiṣeka)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허가관정(許可灌頂, jenang)이고 다른 하나는 관정(灌頂, wang)이다. 허가관정은 말 그대로 본존에 대한 간략한 성취법이나 명상을 허가받는 관정이다. 일반적인 관정이 궁극적으로 본존의 과위를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허가관정은 본존의 공덕을 이어받아 단기간에 가피를 얻는 목적이 크다. 허가관정은 2~3일 간 열리는 관정에 비해 의식이 훨씬 간소하며 관정을 받고 지켜야 할 삼매야계와 수행 의무[70]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따라서 허가관정은 대중적으로 많이 전수되고, 한국에서 열리는 티베트 불교의 관정법회 대부분도 허가관정에 해당한다. 허가관정을 통해 밀법과 본존에 인연을 맺으며 보리심의 종자를 심고 단시간에 많은 죄업과 장애를 소멸할 수 있다. 또한 관정을 주는 아사리(阿闍梨, ācārya)[71]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는다. #

티베트에서는 라마들이 상대방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어 가피를 주곤 하는데 이를 '손으로 주는 관정' 이라는 뜻의 착왕(phyag dbang)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마정수기(摩頂授記)[72]로 오인하여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티벳 린뽀체 초청법회를 '마정수기 법회'라고 홍보하여 대중을 오도(誤導)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5.6. 밀교의 계율[편집]

밀교의 계율은 싸마야(samaya, 三昧耶)라고 부른다. 밀교의 수행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정은 먼저 계를 받고 이를 지킬 것을 맹세한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금강승의 밀교계는 매우 엄격하고 지키기 힘들다. 아띠샤(Atisha) 존자는 본인의 삶 중에 '비구계는 조금도 어김이 없이 지켰고 보살계는 간혹 지키지 못했지만, 밀교계를 어긴 것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이 많다.'고 하였다. 아띠샤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밀교 수행자는 소승의 별해탈계, 대승의 보살계와 금강승의 삼매야계까지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상요가 딴뜨라의 밀교계는 '14가지 근본 밀교계'와 '18가지 부차 밀교계'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밀교계를 어기는 것은 금강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부차 밀교계를 어기는 것조차 비구계를 지키지 못한 것보다 18배나 무거운 과보를 낳는다고 한다. 역으로 별다른 수행 없이 밀교계만 잘 지켜도 18생 안에 지금강불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전해진다. 그만큼 밀교계의 의의가 크기 때문에 밀교계를 받은 후에는 이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밀교계의 14 근본타죄(根本墮罪)에는 스승을 모욕함, 가르침을 경시함, 함께 금강승을 수행하는 도반과의 불화, 보리심과 공성의 포기 등이 있다.
《14 근본 삼매야계》
1. 금강상사(金剛上師)의 말씀을 위배해서는 안 되며, 상사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2. 붓다의 가르침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3. 금강사형제(金剛師兄弟)나 사자매(師姉妹)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4. 중생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5. 보살원행(원보리심, 행보리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6. 소승ㆍ대승ㆍ금강승을 비방하지 말며,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7. 밀법을 의심하는 중생에게는 금강승 밀법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 된다.
8.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모두 중생을 깨우치는데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9. 밀법에 대해 의혹의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10. 중생을 해쳐서는 안되며, 중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11. 밀법을 경시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12. 밀법을 받아들이는 데 적합하지 않은 중생에게는 밀법을 가르쳐주어서는 안 된다.
13. 금강승 밀법을 수지하는 데 있어서 규정에 따라 법기를 사용하고 공양을 실행하여야 한다.
14. 여성 혹은 지능이 낮은 중생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5.7. 밀교의 수행법[편집]

티베트 밀교 수행은 크게 생기차제(生起次第, utpattikrama)원만차제(圓滿次第, 혹은 구경차제究竟次第, sampannakrama)라는 두 단계를 구분한다. 두 차제는 모두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생기차제에서는 본존불 수행의 관상과 진언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인(因)을 심고 원만차제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자리에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케 해주는 법이다. 원만차제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둘인 상대적인 경계를 인정치 않는 지견(知見)으로 수행한다. 방편을 빌리지 않고 본연의 절대적 진리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 안에는 각 파마다 고유한 전승을 가진 수행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수행이 본존을 관하는 본존수행, 즉 본존요가(本尊瑜伽, devatabhisamaya)이다. 시방에 본래 존재하는 불보살은 본존불인 지혜존이 되며, 자신의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정한 불보살과 똑같은 모습으로 관상하는 것은 삼마야존, 혹은 계율존(계율의 대상인 부처)이라 부른다.

자신인 삼마야존을 선명히 관상하여 본존 만트라를 염송하고 자신이 진실로 본존불과 똑같은 부처라는 자부심(佛慢)과 신심(信心)이 확고해졌을 때, 지혜존인 본존불과 상응할 수 있고 가피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혜존과 삼마야존이 잘 상응하여 가피가 충만해졌을 때 자타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공성의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 단계를 원만차제의 단계라 한다. 이를테면 한 가지 수행 안에 생기차제, 원만차제가 다 포함된다. 다만 원만차제 수행만 할 때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광명의 상태로 생기차제를 대신한다.

원만차제 수행을 대표하는 법으로 까규빠의 착첸(마하무드라) 수행과 닝마빠의 족첸(마하상디) 수행을 들 수 있다. 두 수행 안에는 지관(止觀)의 두 수행을 다 포함하는데, 선종의 참선과 흡사한 면도 많이 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에서 이러한 원만차제 수행은 스승이 직접 제자에게 마음의 본성을 보게 해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자가 근기가 익지 않았을 때에는 스승이 많은 방편을 빌려서 제자에게 마음의 본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이끈다. 설오, 《티베트 불교를 만나다》

6. 수행 체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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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원의 교육과정[편집]

7.1. 개요[편집]

인도 다람살라의 IBD(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에서 강의를 듣는 승려들의 모습

티베트 불교의 최대종파인 겔룩빠는 다른 종파보다 교학을 강조하여 전체 강원 교육과정을 수학하는 데 20여 년 정도 걸린다. 현대교육제도의 초등과정부터 대학원과정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을 불교 교육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겔룩빠 외의 타 종파는 보통 9~10년 이상의 강원 과정을 거친다. 강원 과정 이후에도 승려 개인의 자율적인 교학연구는 계속 이어지며, 개중에는 겔룩빠처럼 20년 가까이 강원에서 학습한 후 켄뽀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타 종파 승려가 겔룩빠 승려보다 교학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종파 간의 교학적 견해는 대부분 일치하나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광성사 소남 걀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겔룩빠의 3대 사찰인 데뿡 사원의 로셀링 강원에는 1학년부터 19학년까지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주로 《인명학(因明學)》, 《반야학(般若學)》, 《중관학(中觀學)》, 《율(律)》, 《구사론(俱舍論)》 등 5대 경전을 배우는 교육방법을 체계적으로 잘 갖추었다고 한다. 5대 경전을 주로 배우는 점은 겔룩빠뿐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동일하다.[73]
소남 걀첸 스님, 《티베트의 큰 강원에서 5대경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방법》

강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먼저 예비과정에 들어간다. 맨 처음 출가 서원을 하며 삭발과 승복을 입고 승려로서 사원에 들어간다. 한국 불교의 행자나 원불교의 간사 과정과 비슷하며, 이때 승가의 규율과 의식, 글과 기도문 암송 등을 배우고, 사원 곳곳에서 운력(運力)을 하면서 사원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승려들이 강원의 전체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박사학위 격인 게쉬나 켄뽀 자격을 얻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외 승려들은 의식이나 행정 등 사원 운영에 필요한 각자의 업무에 종사한다.

7.2. 5대 경전의 학습방법과 핵심[편집]

5대경을 배울 때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무조건 경전을 외워야 한다.
둘째, 경을 보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셋째, 뜻을 알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넷째, 경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자주 보아야 한다.
다섯째, 여러 차례 토론을 통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겨야 한다.

5대경을 포함한 불교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基) - 기본 바탕인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성제
도(道) - 방편의 보리심과 반야의 지혜 두 가지 방법
과(果) - 법신과 색신의 두 가지 과위(果位)

다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기(基) 즉 기본이 되는 사성제, 진속이제 등 존재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道) 즉 수행은 앞서 존재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에 맞는 오도(五道)와 십지(十地) 등 방편과 지혜의 수행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果) 즉 결과는 존재론과 수행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과 맞는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과위(果位) 즉 법신(法身), 화신(化身), 보신(報身) 등 부처의 신구의(身口意)의 공덕을 말하고 있다.

7.3. 문사수(聞思修)의 체계[편집]

티베트 불교는 공부 따로 수행 따로 없이 배움 그 자체를 수행으로 생각하고, 문사수(聞思修, Skt. śruta cintā bhāvanā; Tib. ཐོས་བསམ་སྒོམ་གསུམ་, tö sam gom sum, Wyl.thos bsam sgom gsum)를 통해 경전을 공부한다.
문(聞), 즉 배움으로써 경전의 뜻을 타력(他力)으로 대충 이해하게 만든다.
사(思), 즉 깊게 생각함으로써 경전의 뜻을 자력(自力)으로 확실하게 확신이 생기게 한다.
수(修), 즉 닦음으로써 경전의 뜻을 깊게 마음에 익히게 한다.

문(聞), 즉 배움이 부족하면 문혜(聞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문혜(聞慧)가 부족하면 사(思), 즉 관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사(思)가 부족하면 사혜(思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聞), 문혜(聞慧), 사(思), 사혜(思慧)의 바탕이 없으면 수(修), 즉 도(道) 닦는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무엇보다 제일 먼저 경전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티베트 강원의 스승들이 늘 강조한다.

이와 같이 티베트 큰 강원에서는 문사수(聞思修)의 과정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하고난 뒤 밀교(密敎)의 깊은 수행법을 배우고 실천 수행한다.

7.4. 기초 과정[편집]

제일 먼저 《듀라(섭류학攝類學)》를 배운다. 《듀라》는 인명학(因明學)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논리 이론을 최초로 배우는 과목으로, 티벳의 스승이신 차빠 최끼 생게가 경량부의 이론 방식을 접목하여 량(量)의 전반적인 의미를 요약하여 ‘듀라’라고 정하였다. <듀라>는 소논리, 중논리, 대논리 세 가지로 나뉘며, 기(基), 도(道), 과(果) 세 가지 중 주로 존재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 《로릭(심류학心類學)》을 배운다. 구체적인 심리학이 아닌 일반적인 마음의 종류, 가령 현량(現量), 비량(比量), 분별심(分別心), 비분별심(非分別心), 육식(六識), 심왕(心王), 심소(心所) 등을 설명한다. 또는 7종심식(七種心識) 즉 현량식(現量識), 비량식(比量識), 재결식(再決識), 사찰식(伺察識), 현이미정식(顯而未定識), 의심(疑心), 전도식(顚倒識) 등을 가르친다.

세 번째, 《딱릭(인류학因類學)》을 배운다. 진인(眞因)은 과인(果因), 자성인(自性因), 불가득인(不可得因) 세 가지로 나뉘며, 사인(似因) 또한 상위인(相違因), 부정인(不定因), 불성인(不成因) 세 가지로 나뉜다.

네 번째, 《둡타(종의宗義)》를 배운다. 종의는 학파, 교파라고도 부른다. 외도나 불교도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철학적 바탕(基), 수행방식(道), 그 결과(果) 셋에 대한 교리적 설명 방식 등을 말한다. 간략하게 고대 인도의 외도 5개 파(派)인 논의오파(論議五派; 수론파數論派, 순세파順世派, 승론파勝論派, 폐타파吠陀派, 리계파離繫派)와 불교도의 4대 학파인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 중관학파(中觀學派)로 나눈다.

다섯 번째, 《살람(지도地道)》을 배운다. 보살의 십지(十地)[74]와 오도(五道)[75], 그리고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에 대해 배운다.

이상의 과정을 배우는 데 대략 4년 정도 걸린다.
《듀라(뒤다)》의 초급 부분과 《둡타》는 각각 《논리에 이르는 신비로운 열쇠》, 《불교 철학의 보물꾸러미》라는 제목으로 티벳대장경역경원에서 번역되었다.

7.5. 5대 경전 과정[편집]

여섯 번째, 《석량론(釋量論)》을 배운다. 석량품(釋量品) 또는 광본양학(廣本量學)이라고도 하며, 고대 인도의 법칭(法稱)보살이 지었다. 이 논서는 자리(自利), 양성립(量成立), 현전(現前)과 타리(他利) 등 4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명칠론(因明七論) 중에서 세 근본이 되는 논서이다. 《둡타(종의宗義)》를 배우고 난 뒤 대략 10년 이상 해마다 겨울철 한 달씩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집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일곱 번째, 《반야현관장엄론(般若現觀莊嚴論)》을 7년 동안 배운다. 미륵오론인 《현관장엄론》, 《대승장엄론》, 《중변분별론》, 《법법성분별론》, 《구경일승보성론》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일체종지, 도지, 일체지, 일체오등현관, 정현관, 차제현관, 찰나오등현관과 법신 등 8가지로 보살도의 모든 수행과 부처님의 경지인 과위(果位)에 대해 설명한 미륵보살이 지은 논서이다.

여덟 번째, 《입중론(入中論)》을 3년 동안 배운다. 용수보살이 지은 《중론(中論)》의 논서인 《입중론》은 월칭보살(짠드라끼르띠)이 저술하였고, 10품으로 나뉜다. 주로 중관사상 즉 공성(空性)과 연기(緣起)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홉 번째, 《율경근본율(律經根本律)》을 4년 동안 배운다. 인도의 율사 공덕광보살이 4부 율전의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주로 계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17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열 번째, 《구사론(俱舍論)》을 2년 동안 배운다. 《아비달마 구사론본송》이라고도 하며, 인도의 세친보살이 저술한 소승의 논서로 본문은 게송체이고 8품으로 나뉜다. 당나라 삼장 현장법사가 범어를 한문으로 역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교(顯敎)에 대해 기초과정 포함하여 거의 20년 정도 체계적으로 배운다.

7.6. 강원 과정 이후[편집]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 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한다.

강원의 전체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는 겔룩빠의 경우 불교철학박사에 해당되는 게쉬(ge she), 나머지 종파에서는 불교 강백(講伯)에 해당하는 켄뽀(khen po)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필기 시험(디규), 대론(對論) 시험(쬐규) 등을 거쳐 칭호를 받는데, 겔룩빠에서 남자 수행자는 게쉬(Geshe), 여자 수행자는 게쉬마(Geshema) 칭호를 받는다. 타 종파의 경우 남자 수행자는 켄뽀(Khenpo), 여자 수행자는 켄모(Khenmo)란 칭호를 받는다. 게쉬에도 시험 성적에 따라 아래서부터 도람빠(Dorampa,) 링세(Lingtse), 촉람빠(Tsorampa), 하람빠(Lharampa)의 네 단계가 있다. 게쉬 학위를 얻기 위해선 약 23년, 켄뽀 자격을 얻기 위해선 약 13년이 걸린다. 그 후 밀교의 깊은 수행법을 기간 없이 평생 배우고 실천한다.
게쉬 학위 취득을 위한 대론 시험 영상

겔룩빠에서는 게쉬 학위를 취득한 후 규뙤 사원이나 규메 사원으로 대표되는 밀교 사원에 들어가 밀교 교학을 배운다. 밀교 공부와 수행은 평생 배우고 닦는다는 개념이고, 밀교 수행은 스승의 허락과 자격을 얻어야만 행할 수 있으므로, 견고한 현교의 철학적 토대를 갖춘 준비된 사람만이 밀교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교학이 갖춰지지 않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을 '마치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바위산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수행자는 산의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정확한 지도가 있어야 하고, 산을 오르다가 맞닥트릴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철저한 교학의 토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교학을 철저하게 배우고 닦는 과정에서 이미 수행의 반은 완성된다.

8. 종파[편집]

8.1. 개요[편집]

1963년 전(全) 티베트 불교 전승 회의 당시 사진.[76]

티베트 불교는 크게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등 4개 종파로 나뉜다.[77]

티베트불교의 종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구파(舊派, nyingma)와 신파(新派, sarma)이다. 닝마빠(rNy-ing ma pa)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구파(舊派) 또는 고파(古派)로 번역되는데, 티베트의 모든 불교 종파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보다 후에 일어난 사캬, 까규, 겔룩, 조낭 등 모든 티베트의 종파들은 신파(新派)에 속한다.

구파와 신파를 나누는 기준은 경전의 번역이다. 티베트에 인도불교가 도입되던 7~8세기에 티베트의 법왕들이 후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구역(舊譯), 10~11세기 지방 귀족 세력이 지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신역(新譯)이라 한다.[78]

전래 시기에 따른 분류 외에도 사캬, 디룽, 딱룽, 게덴 등 지역에 따른 분류, 깔마 까규, 불룩 등 스승에 따른 분류, 까담, 족첸, 착첸, 시제 등 수행 전승에 따른 분류 등으로도 종파를 구분할 수 있다.

종파 간에 정치적 대립이 빈번하였지만 각 종파의 고승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존경의 대상이었고, 다른 종파의 학승이 자기 종파의 교리를 배우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종파 간의 경쟁적 발전과 더불어 상호 이해와 존중이 이루어지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이종복, 《종파로 보는 티베트 불교》
종파
주요 수장
경전의 번역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전통적으로 없음
구파(舊派, Nyingma)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신파(新派, Sarma)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전승의')
까르마빠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8.2. 닝마빠[편집]

닝마빠의 개조(開祖) 빠드마삼바와[79]

닝마(Nyingma)는 '오래된'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티베트 불교 중 가장 먼저 생긴 종파이다. 8세기 티송데쩬 왕은 당시 네팔에 머물고 있던 인도 날란다 사원의 승원장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를 초청하면서 밀교 성취자인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대동했다. 빠드마삼바와는 밀교행을 통해 티베트의 토속 종교인 뵌교의 신도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토속신들을 제압하여 불교에 귀의하도록 이끌었다. 이에 샨따락쉬따는 왕실의 후원 하에 쌈예사(bSam yas dgon pa)를 건립하고 티베트의 첫 승단을 만들었다. 닝마빠는 이때 샨따락쉬따가 대동했던 밀교 성취자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가르침을 그 중심으로 삼는다.

닝마빠는 까규빠와 함께 실수행을 중시하는 종파로 알려져 있다. 실수행을 중시하는 점은 두 종파 모두 동일하지만, 닝마는 까규와 달리 명상보다 견해를 좀 더 강조한다. 본연의 지혜를 통해 얻는 가장 핵심적인 견해(Skt. upadeśa; Tib. མན་ངག་, mengak, Wyl. man ngag, pith instruction)를 먼저 알려준 후 그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명상하는 방식이다.

닝마빠의 전승으로는 석가모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인 까마(kama)와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제자들이 비장(秘藏)하고 시절인연에 따라 발견되는 전승인 뗄마(terma)[80]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닝마빠는 현교와 밀교를 9개 승으로 구분한 독자적인 9부승(九部乘) 체계를 갖추었다.

9부승은 크게 외(外), 내(內), 밀(密) 삼승으로 구분된다. 외승(外乘)은 곧 경승(經乘, sutrayana)에 해당하고 내승과 밀승은 속승(續乘, tantrayana)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외승(外乘)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가리킨다. 그리고 내승(內乘)혹은 외전(外傳) 딴뜨라는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로 구성된다. 내승의 가르침은 브라만의 베다(Veda) 전통처럼 의례와 외적 청정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밀승(密乘) 혹은 내전(內傳) 딴뜨라는 마하 요가(maha yoga), 아누 요가(anu yoga), 아띠 요가(ati yoga, 혹은 maha ati yoga)로 구성된다. 마하, 아누, 아띠 요가는 신역(新譯)의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에 해당한다. 마하 요가는 생기차제, 아누 요가는 기맥명점 수행, 아띠 요가는 원만차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9부승의 최상위에 위치한 아띠 요가는 바로 닝마빠 고유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인 족첸(rdzogs chen)이다. 밀승의 가르침은 모든 현상을 청정하고 평등한 진여(眞如)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방편들이다.

8.3. 까규빠[편집]

마르빠 까규의 개조(開祖) 마르빠[81]

까규란 '구전의 전통(口傳傳統)'이라는 뜻이다. 11세기 인도의 밀교 요기 띨로빠(Tilopa)를 시조로 삼는다. 띨로빠는 나로빠(Nāropā)를 가르쳤다. 티베트인 역경사 마르빠 로짜와[82](Marpa lotsawa)는 역경사 독미 로짜와 샤꺄예쉐(Drokmi Śākya Yeshé)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 나로빠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마르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mahāmudrā)는 이후 밀라레빠(Mi la ras pa)를 거쳐 까규빠로 성립되었다.

까규빠는 명상, 구루 요가, 나로 6법과 같은 금강승 수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규와 닝마는 모두 실수행을 중시하지만, 까규는 닝마와 달리 명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견해를 익히고 체험해나가는 방식을 따른다.

마르빠에게서 유래한 마르빠 까규빠는 4대 8소 종파로 나뉘어진다. 마르빠 까규의 초기 4대 종파는 깔마 까규(Karma bka' brgyud), 바롬 까규('Ba' rom bka' brgyud), 찰빠 까규(Tsalpa Kagyü), 팍두 까규(Pagdru Kagyü)이다.

이 중 팍두 까규는 다시 8개의 분파로 갈라져 둑빠 까규(‘Brug pa bka' brgyud), 디꿍 까규('Bri gung bka' brgyud), 딱룽 까규(sTag lung bka' brgyud), 마르창 까규(Martsang Kagyü), 슝셉 까규(Shugseb Kagyü), 트로푸 까규(Trophu Kagyü), 얌장 까규(Yamzang Kagyü), 옐빠 까규(Yelpa Kagyü)를 이룬다.

4대8소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종파는 깔마, 바롬, 둑빠, 디꿍, 딱룽 5개 종파들이다. 까루 린뽀체가 속한 상빠 까규(Shangs pa bka' brgyud)는 마르빠 까규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법맥이지만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르빠 까규의 창시자인 마르빠는 인도의 마이뜨리빠(mai tri pa)와 마이뜨리빠의 스승인 나로빠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샹빠까규의 창시자인 케둡 큥뽀 낼죨(Kedrub Kyungpo Naljor)은 마이뜨리빠와 니구마(ni gu ma) 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니구마는 나로빠의 여자 형제 또는 배우자라고 전해진다. 이렇듯 창시자들의 스승이 서로 겹치거나 연관이 있으며,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 법맥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제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제의 까규빠 법맥 소개

8.4. 사캬빠[편집]

사캬빠의 다섯 창시자들[83]

사캬빠는 까규빠와 마찬가지로 나로빠의 가르침에 그 기원을 두고 또한 독미 로짜와(Drokmi Lotsawa)라는 같은 스승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까규빠와 다른 특징들이 있다. 사캬빠는 쾬(Khon) 일족 자체가 종파가 된 독특한 경우이다. 회색 땅을 뜻하는 사캬(Sa skya) 지방의 일족인 쾬 일족의 쾬 꾄촉겔뽀(Khon dkon mtshog rgyal po)를 종조로 하는 사캬빠 역시 밀교 전통에 근거한다. 사첸 꾄촉겔뽀는 인도에서 요기 나로빠와 밀교승원인 비끄라마쉴라(Vikramaśīla)에서 공부했다고 하는 독미 로짜와로부터 헤바즈라 딴뜨라에 근거한 람데(lam ’bras) 전통을 배운다. 수행의 길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밀교에 바탕을 두고 논하는 람데 전통은 사캬빠의 핵을 이루는 중심 교리이다.

람데 전승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승(經乘, sutrayana)을 설명하는 부분은 삼현분(三現分, snang gsum)이라고 한다. 삼현분은 세 종류의 단계별 인식을 뜻한다. 첫 번째 단계의 인식은 청정하지 못한 인식으로 곧 세속 중생의 인식이다. 두 번째는 경험의 인식, 즉 실상(實相)을 통찰하는 수행자들이 경험하는 혼재된 인식이다. 마지막은 청정한 인식으로 일체지를 이룬 완전히 깨달은 스승이나 부처의 인식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속승(續乘, tantrayana)을 설명하는 부분은 헤바즈라 딴뜨라를 구성하는 삼속분(三續分, rgyud gsum)이라고 한다. 삼속분은 존재론인 기속(基續), 수행론인 도속(道續), 결과론인 과속(果續)으로 이루어져 있다.

람데 전승은 후에 뮈첸 쾬촉 걀첸(mus chen dkon mchog rgyal mtshan)에 의해 두 가지 주요한 전승으로 나뉜다. 그는 소수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더욱 심오하고 경험에 근거한 가르침을 전수하였고, 이를 람데 롭셰(lam 'bras slob bshad)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중들을 위한 보다 보편적인 가르침은 람데 촉셰(lam 'bras tshogs bshad)라고 한다.

사캬빠의 다른 특징으로는 불교 논리와 중관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설명할 겔룩빠와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사캬빠는 티베트 정치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몽골의 불교 전통을 만드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캬빠의 지도자였던 사캬 빤디따(sa skya pandita)는 티베트를 침공한 고단 칸과 회동을 갖고 시주(施主)-화주(化主) 관계인 최왼(mchod yon) 관계를 맺어 평화적으로 티베트의 자치를 보장받았다. 또한 사캬 빤디따의 조카인 도괸 최걀 팍빠(ʼgro mgon chos rgyal ʼphags pa) 역시 쿠빌라이 칸과 최왼 관계를 맺고 원나라 국사로서 원나라에 티베트 불교를 전파하며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사캬빠의 종정인 사캬 티진(Sakya Trizin) 직은
대대로 쾬(Khon)족 남자 혈통에게 계승되었다.
(가운데) 제41대 사캬 티진 (좌) 제42대 사캬 티진
(우) 갸나 바즈라 린뽀체 (Gyana Vajra Rinpoche)

8.5. 겔룩빠[편집]

겔룩빠의 개조(開祖) 쫑카빠[84]

겔룩빠의 종조 쫑카빠 롭상닥빠(Tshong kha pa bLo bzang grags pa)는 14세기 동북 티베트 암도의 쫑카 지방에서 태어나서 깔마빠 및 여러 종파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사캬빠의 렌다와 쇤누로도(Red mda' ba gzhon nu blo gros)를 주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까담빠의 전통을 따라 엄격한 계율의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단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띠샤의 《보리도등론》의 주석서인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을 비롯한 많은 주석서 및 저서들은 그 당시까지의 철학과 수행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내면서 티베트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로 까담빠의 전통은 점차로 겔룩빠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쫑카빠의 개혁을 통해 겔룩빠는 여러 승려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화주(化主)가 되고 몽골, 오이라트, 청(淸) 왕조 등이 시주(施主)가 되는 최왼(mchod yon) 관계를 맺어 통치계급과도 폭넓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5대 달라이 라마가 오이라트 중 코슈트부의 군사를 빌려 티베트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겔룩빠는 정교합일(政敎合一) 체제를 구축하고 티베트 불교 내의 최대 종파로 부상하여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초대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 제자 겐둔 둡빠(dGe 'dun grub pa)이다. 그러나 겐둔 둡빠는 생전에 달라이 라마라고 불리운 적이 없다. 제3대 달라이 라마 때 이르러 몽골의 알탄 칸에게 '일체를 성스럽게 아시는 바즈라다라 달라이 라마'라는 존칭을 부여받고, 전전대 전생인 겐둔 둡빠까지 소급하여 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제3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한 후 알탄 칸의 증손자 중 한 명이 환생자로 지목되어 제4대 달라이 라마에 등극하게 된다. 따라서 제4대 달라이 라마는 몽골인으로, 유일한 비(非)티베트인 출신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가 받은 존칭 중 '바즈라다라(Vajradhara)', 즉 집금강(執金剛)은 밀교의 이상적인 부처인 지금강불(持金剛佛)을 지칭하거나 혹은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스승을 가리키는 존칭으로 쓰인다. '달라이(Dalai)'는 몽골어로 '큰 바다(大洋)'라는 뜻이고 '라마(Lama)'는 티벳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초대 달라이 라마를 제외하고 달라이 라마로 선정되면 모두 '바다'라는 뜻의 '갸초(rgya mtsho)'가 들어간 법명(法名)을 얻게 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법명인 '뗀진 갸초(bstan ‘dzin rgya mtsho)'의 '뗀진'은 '가르침(佛法)의 소유자'란 뜻이다. 즉 '뗀진 갸초'란 법명은 '불법의 바다'를 뜻한다.

공식적인 겔룩빠의 종정은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겔룩빠의 본산인 간덴 (dGa' ldan)사원의 사원장 간덴 티빠(dGa' ldan khri pa)이다. 간덴 티빠는 간덴 사원 안의 싸르쩨(Shartse)와 장체(Jangtse) 두 학당의 방장(方丈)이 번갈아 가며 맡게 되는데 임기는 전통적으로 7년이다. 환생자 제도로 선정되지 않고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과 학식, 덕망, 승가 내 경력 등으로 선정되는 직위이다.

8.6. 조낭빠[편집]

조낭빠의 중흥조(重興祖) 될뽀빠

시가쩨 근처 조모낭 지역에서 번성한 조낭빠는 쿤팡 툭제 쇤두(Kunpang Thukje Tsondru)가 1294년 조낭 사원을 건립하면서 시작된다. 그 이전 11세기 깔라차끄라 딴뜨라 전문 수행가였던 유모 미꾜돌제(Yu mo mi bskyod rdo rje)는 조낭빠에 큰 영향을 준 조상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유모 미꾜돌제는 카쉬미르의 빤디따 찬드라나타(Candranātha)에게서 사사받았다. 후캄(Hookham)에 의하면 타공의 이해는 유모 미꾜돌제가 카일라쉬산에서 깔라짜끄라 딴뜨라를 수행하는 도중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사캬빠에서 계를 받았던 될뽀빠 쉐랍겔첸(Dol po pa shes rab rgyal mtshan) 대에 이르러 조낭빠는 융성했다.

조낭빠는 쉔똥(gzhan stong), 즉 타공(他空) 사상을 내세웠다. 타공이란 모든 속제를 비롯해 다른 것에 의존해 일어난 현상들, 자아와 같은 허상은 그 자성이 공(空)하지만, 그 모든 속제의 근간이 되는 법성, 일체지, 천연의 의식, 불성, 또는 청명한 빛의 마음은 공하지 않다는 사상이다. 이후 조낭빠는 제5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 정치적ㆍ사상적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중앙 티베트 지방에서 사라졌고 몽골과 암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한다.[85]

될뽀파는 삼전법륜(三轉法輪)에 해당하는 《보성론》의 여래장 사상을 요의(了義)로 보았다. 《보성론》에 따르면 속제의 현상들은 공(空)하지만 진제에서의 공성과 함께 나타나는 비이원적(非二元的)인 불지(佛智), 광명심(光明心), 부처의 공덕 등은 공하지 않다. 이러한 견해를 기존의 중관(Madhyamaka)에 대비하여 '대중관(大中觀, Mahamadhyamaka)'이라고 명명하였다.

유식학파의 삼성설(三性說)과 제팔식설(第八識說)에 영향을 받은 점 때문에 학계에서는 타공설의 등장을 티베트 불교에서의 유식학파의 흐름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대중관'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될뽀빠를 비롯한 타공론자(gzhan stong pa)들은 그들 스스로를 진정한 중관 논사라고 생각했고,[86] 타공설과 유식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한편 겔룩빠 위주의 종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19세기 리메(Rimé, 無山, 무종파) 운동에 참여했던 사캬, 닝마, 까규 등 비주류 종파의 스승들도 타공설의 영향을 받아 타공, 혹은 타공과 자공(自空, rang stong) 사이의 절충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각 파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은 현교의 교학적 견해가 분화되는 과정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안성두, 《티베트 불교에서의 여래장 해석 -자공설(自空說)과 타공설(他空說)의 차이를 중심으로-》
차상엽, 《연기와 공성 그리고 여래장에 대한 티벳 사상가들의 이해》
Karl Brunnhölzl, 《In Praise of Dharmadhatu》
Karl Brunnhölzl, 《Luminous Heart: The Third Karmapa on Consciousness, Wisdom, and Buddha Nature》

절충적인 견해 중에는 자공설(自空說)로 분류되는 견해도 있다. 가령 미팜(Mipham) 린뽀체의 경우, 겔룩빠의 자공설처럼 일체법의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인식'이나 '밝음' 등 진여(眞如)의 현상적인 측면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현상의 실체화, 개념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팜의 견해는 타공설과도 구분된다. 김성옥, 《『법법성분별론』에 대한 미팜(Mi Pham) 주석의 특징》

이렇듯 겔룩의 자공과 조낭의 타공을 양 축으로 하는 스펙트럼 안에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현교의 자공, 타공과 밀교의 족첸, 마하무드라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전승과 문헌에서 유래한 견해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실 겔룩과 조낭을 제외한 나머지 종파들은 시대별, 계파별, 인물별로 견해가 나뉘어지고 더 나아가 동일 인물(예컨대 미팜)의 저작들 중에서도 타공을 옹호하는 저작과 비판하는 저작들이 모두 전해지기도 하여 자공과 타공 중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조낭의 타공과 달리 깔마 까규, 닝마 등 다른 종파의 타공은 자공에 가까운 '완화된 타공'에 해당한다. 예컨대 조낭의 타공은 여래장을 삼세(三世)에 종속되지 않는 궁극적이고 불변하는 독립된 실체(rtag dngos)라고 주장하였지만, 깔마 까규에서는 부정(negation)의 토대인 '조건지어지지 않은 빛나는 마음'을 (외부의 원인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전 순간의 동류(同類)의 마음에 의존하여 발생하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규정하여 연기(緣起)와 분리하지 않았다. 다만 "물과 우유가 서로 섞이지 않는" 비유처럼, 불성 혹은 정광명은 객진번뇌에 오염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조낭의 타공과 견해를 같이 하였다.
빛나는 마음(prabhāsvaraṃ cittaṃ)은 조건지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빛나는 마음에서는] 아무 것도 원인과 조건이 합쳐져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순간의 빛나는 마음의 발생은 (마음의) 같은 종류(sajāti)에 의해 발생한 이전 순간의 마음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Sajjana,《Mahāyānottaratantraśāstropadeśa》
Klaus-Dieter Mathes, 《The Other Emptiness: Rethinking the Zhentong Buddhist Discourse in Tibet》〈Zhentong Views in the Karma Kagyu Order〉

20세기 전반 닝마빠의 학승 뵈뛸(Bötrül Dongak Tenpe Nyima)은 티베트의 중관사상을 크게 (1) 조낭빠의 타공, (2) 겔룩빠의 진공(眞空, 덴똥bden stong), (3) 닝마빠의 자공으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주요한 차이는 '부정 대상(dgag bya)'에서 드러난다. 조낭의 타공은 (1) 속제(俗諦)에 해당하는 현상의 자성(自性), 겔룩의 진공은 (2) 일체법이 진실로 존재함, 닝마의 자공은 (3) 일체의 개념적 언급을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이제(二諦)에 대한 설명도 조낭의 (1) '진제와 속제가 하나임을 부정함(gcig pa bkag pa)', 겔룩의 자립논증 중관의 관점에서 (2) “진제와 속제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의식의 분별 상(이름, 생각 등)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가립(假立)된 법(法)임(ngo bo gcig la ldog pa tha dad)', 닝마의 귀류논증 중관의 관점에서 (3) '진제와 속제가 하나도 아니고 다수도 아님(gcig du bral)'으로 달라진다.

요컨대 각 파의 견해는 이전법륜인 반야 사상과 삼전법륜인 유식, 여래장 사상 중 어느 사상을 우위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겔룩은 이전법륜, 조낭은 삼전법륜을 각각 요의(了義)로 보았고 닝마는 이전법륜과 삼전법륜의 합일(合一)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미팜은 중관에서 진제의 공성을 주로 강조하는 반면 속제의 현상은 경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관과 유식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공성과 현상 모두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Douglas Duckworth, 《A Companion to Buddhist Philosophy》〈Tibetan Mahāyāna and Vajrayāna〉

초교파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제14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서야 조낭빠는 티베트 불교의 정식 종파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빠와 조낭빠의 교학적 입장은 다르다. 달라이 라마는 반야경을 요의경(了義經)으로 보는 겔룩빠의 전통적 견해에 따라 조낭빠의 타공을 부정하고, 일체법이 승의적(勝義的)인 차원에서 독자적 실체가 없이 공(空)하다는 자공을 견지한다.

9. 환생자 제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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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 불교와의 교류[편집]

10.1. 인적 교류[편집]

허일범, 《한국 불교 속의 티베트불교》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류는 통일신라부터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티베트 불교를 숭앙하던 몽골의 침략 이후 고려 불교에 많은 영향을 준 바 있다.

신라승 김무상(金無相, 684-762)과 티베트 사신 바상시가 만난 일화는 삼예사(寺)의 사지(寺誌)에 해당하는 《바세》에 기록되었다. 김무상은 경덕왕 13년(754) 당나라 장안에서 티베트 사신들을 만나 인도 불교가 티베트에서 주류를 이룰 터인데, 훗날 티송데첸 왕이 등장하여 불교를 널리 홍포하리라 예언했다고 한다. 또한 김화상은 사신들에게 《십선경》, 《금강능단경》, 《도간경》을 전해주면서 왕의 즉위시에 사용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훗날 김무상의 예언은 적중하여 샨타락쉬타가 인도에서 들어와서 티베트에 불법을 홍포했고, 티송데첸 왕이 즉위할 때에는 사신들이 전수받은 세 종류 경전을 독송하여 신심을 일으켰다.

혜과(惠果) 화상의 제자인 신라의 오진(悟眞)은 인도로 구법순례를 떠났다가 귀로에 티베트에서 입적하였다.

통일신라시대 고승 원측(圓測)의 《해심밀경소》를 법성(法成, Chos grub)이 티벳어로 번역하여 티베트 대장경에 들어갔다. 이후 원측의 저서는 티베트 불교 내에서 경전 해석의 주요한 논거가 되는 대표적인 논장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7세기 유식학의 대가였던 원측(圓測)

고려 충렬왕 20년(1294) 티베트 승려 절사팔(折思八)이 티베트 경전과 법구류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오고, 충선왕 즉위년(1298)에는 충렬왕과 충선왕, 계국대장공주 등이 티베트 불교 승려에게 보살계를 받았다. 또한 고려인 출신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출가하여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충숙왕 1년(1314)에는 홍약이 티베트 경전 1만 8천여 권을 고려에 전해주었다.《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 7년(1320)에는 몽골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티베트로 들어가게 된 충선왕을 위하여 민천사(旻天寺)에서 기도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충선왕은 1320년 원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사망하자 환관 임백안과 틈이 생겨 그의 참소로 인해 불경을 공부하라는 명목으로 티베트에 3년 간 유배된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 티베트의 정치ㆍ종교적 중심지였던 사캬빠의 사캬 사원이었다. 지금까지 현지에선 충선왕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일화와 충선왕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탕카(탱화)가 전해진다. KBS HD 역사스페셜《고려 충선왕, 티베트로 유배된 까닭은》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 널리 퍼진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도 티베트의 자사태마(刺思駄麻)와 사팔자(思八刺) 라마가 전한 것이다.

이처럼 원 간섭기에 원나라 황실에서 신봉하던 티베트 불교가 고려에 유입되었으나, 티베트 불교의 신도층은 원나라 공주(=고려 왕비)의 수행원과 고려에 거주하는 몽골 관인들 위주로 한정되었다. 고려에서의 티베트 불교 수용은 황실에 대한 존중과 공주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강했으며 전체 고려 불교계나 일반 백성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원나라 황실을 축원하는 법회의식 등을 통하여 티베트 불교의 의례와 불상, 불구(佛具) 등이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연식, 《한국문화사 11.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이후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친원 세력이 축출되면서 티베트 불교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10.2. 문화 교류[편집]

허일범, 《한국 불교 속의 티베트불교》
고려시대 이후에 편찬된 의식집들에서 진언들을 실담문자나 티베트 문자로 표기하고, 관법차제(觀法次第)와 같은 수행법에서 범자로 된 종자자(種子字)를 명상에 채용한다.

또한 사원의 건축물이나 법구류 등에서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된 진언종자들을 활용한다. 사원건축에 단청을 하고, 거기에 범자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티베트를 제외한 어떤 국가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인도나 티베트로부터 몽골 지역을 거쳐서 전파된 나가리·실담·란차·티베트·팍파문자 등은 우리 나라의 불교관련 의식집의 찬술 및 문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육자진언(옴 마니 반메 훔) 관련 수행법은 티베트에서 저작된 《마니 깐붐(Tib. མ་ཎི་བཀའ་འབུམ་, Wyl. ma Ni bka' 'bum)》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육자진언을 활용한 명상법이라는 특징이 있다. 《마니 깐붐》은 몽골을 통하여 고려에 전래된 닝마빠의 밀교 경전인데, 육자진언과 관련된 여러 가르침들을 총망라했다.

밀교경궤의 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 운주사에 조성된 대석합체불(大釋合體佛)과 쌍와불은 티베트 불상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괘불탱화는 티베트 불교에서 널리 쓰이는 법구이다. 흔히 티베트에서는 이것을 ‘탕카(Thang-ka)'[87]라고 부르는데,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야외에 단을 설치하고, 괘불을 봉안한 다음 법회를 열었다.[88]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괘불탱화가 다수 존재하고 큰 법회에서 활용한다. 오래된 괘불탱화는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는다.
한국과 티벳의 괘불탱화(탕카) 법회 모습.
티벳에서는 쇄불절(晒佛节) 때 탕카 전용으로 지어진 거대한 벽이나 산자락에 탕카를 전시한다. 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 《티베트 불교 최대 명절 '몬람'》

고려시대 때부터 제작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은 현대 한국불교에서는 별로 안 쓰이지만, 밀교경전에 의거한 수행법에서는 널리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는 금강저는 티베트 계통과 당나라 계통 금강저를 응용한, 한국의 독자적인 형태인 것이 대부분이다.

고려 명종 20년(1190)에 조성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티베트인들의 신앙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마니륜통(摩尼輪筒)이다. 2000년대 넘어서 용문사의 윤장대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티베트의 것을 채용한 마니륜통을 제작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법구로 활용한다.
국보 제328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와
티베트의 마니 콜로(mani khrolo).[89]

10.3. 현대 교류[편집]

조계총림 송광사 제5ᆞ6대 방장 범일 보성(梵日 菩成) 스님은 달라이 라마와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 양 불교 전통의 발전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조계총림 송광사 제7대 방장 남은 현봉(南隱 玄鋒) 스님 또한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하며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4대 원력(願力)을 조명하는 행사에 전세계 저명 인사 130여 명과 함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여 인터뷰를 남겼다. #

불교 발전을 위한 현대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 간의 교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도사 주지, 군종교구장, 해외특별교구장을 역임한 구룡사 회주 정우스님이 티베트 불교 승가와 티베트 난민들을 지원하며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하였다. 정우스님은 특히 달라이 라마 왕사(王師)의 환생인 제7대 링(Ling) 린뽀체와 활발히 교류하며 린뽀체를 수차례 한국에 초청하였고 # # # 링 린뽀체 역시 자신의 게쉐(geshe) 학위 수여 기념식 등에 정우스님을 외빈으로 초청한 바 있다. # #

비구니계에서는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봉녕사 승가대학장을 역임한 봉녕사 회주 세주 묘엄(世主 妙嚴)스님 등이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한 대표적인 비구니 인사로 알려져 있다. 묘엄스님은 달라이 라마를 수 차례 친견하고 200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티베트 불교 내 비구니 계단 및 계맥 복원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달라이 라마와 의견을 나눈 바 있다. # 또한 묘엄스님이 회주로 있던 봉녕사에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할 당시 이운한 부처님 진신사리 9과를 안치한 진신사리 금탑이 조성되어 있다. #

2014년에는 금강스님, 진옥스님, 목종스님, 월호스님, 마가스님, 정목스님, 박광서 교수 등 불교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90] # 방한추진위는 한국 정부와 조계종 종단에 방한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시민들을 대상으로 달라이 라마 방한 지지 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고령의 나이와 건강상의 이유로 장시간 외국행이 어려워지면서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2019년 해산하게 된다. 단체 차원의 방한 운동은 중단되었지만 방한추진위는 개별적인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달라이 라마 역시 향후 기회가 되면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인도 다람살라에서는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회가 거의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03년 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現 티벳대장경역경원장)의 청으로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회가 처음으로 개최된 후 현재까지 해마다 수백명의 한국인 불자들이 참여하는 법회가 다람살라 남걀사원에서 열리고 있다. # 한국인 법회를 처음으로 요청한 진옥스님은 사회복지법인 보문복지회를 운영하며 전남 여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을 시행하는 한편,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인도의 티베트 불교 승가와 티베트 난민들을 지원하며 티벳대장경역경원 운영을 맡고 있다. 석천사 홈페이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티벳대장경역경원은 1967년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동국대 도서관에 기증한 라사판 티베트 대장경 한 질과 이후 2009년 달라이 라마가 기부한 2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토대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설립된, 티베트 대장경의 한국어 역경불사를 담당하는 학술기관이다. 초기 명칭은 '티벳장경연구소'였다. 소장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김성철 교수, 윤영해 교수 등이 취임하였고 제3대 소장으로 진옥스님이 취임하면서 '티벳대장경역경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티벳대장경역경원 홈페이지

2020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는 COVID-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된 명상 웹컨퍼런스에 달라이 라마의 축하 메세지가 전달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메세지에서 "한국 불자들은 기도와 명상 뿐만 아니라 불교 철학과 논리학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또한 욘게이 밍규르 린뽀체, 청전스님, 게쉬 소남 걀첸스님, 게쉬 텐진 남카 스님의 강연도 진행되었다. 명상웹컨퍼런스 강연 영상 목록
2020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명상 웹컨퍼런스
제14대 달라이 라마 축하 메세지 영상

티베트 망명정부가 202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 감사의 해"를 맞아 15개 언어, 전 세계 저명 인사 13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4대 원력(願力)인 "인류의 가치 증진, 종교 간 화합 증진, 티베트 문화와 환경 보호, 고대 인도 지혜의 부흥"을 조명한 행사에 한국을 대표하여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과 前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위 상임대표인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패널로 초청되었다. # 현봉스님 인터뷰 영상 금강스님 인터뷰 영상

한국불교 태고종 대전교구 종무원장을 역임한 안심정사 회주 법안스님은 티베트 불교가 계승한 날란다 법맥의 대승불교에 영향을 받아 람림, 로죵 관련 논서들을 보급하고 가르쳐왔다. 또한 한국 불교, 티베트 불교, 상좌부 불교 스님들을 초청하여 국제보살계 법회를 개최하였다. 티베트 불교를 전공한 이종복(신증) 스탁턴대 교수, 인도 다람살라 IBD에서 티베트 불교 전통 교학을 수학한 범천 법사 등이 소속된 안심승신불학원에서는 티베트 불교 강원에서 배우는 대승불교 교학 체계를 강의 중이다. 교재로 《다 함께 잘 사는 길(대승불교 교학체계)》이 출판되었다. 공식 홈페이지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달라이 라마의 첫 한국인 제자인 청전스님(右).
30여 년간 인도 현지에서 수행과 자선활동을 하며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2015년 만해대상(실천 분야)을 수상하였다.
《달라이라마와의 30년》 1부 영상 2부 3부
2020 명상웹컨퍼런스《입보리행론》강연 영상

전남 보성군의 대원사에서는 회주 현장스님이 '티벳 박물관'을 세우고, 티베트 불교 승려가 보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티베트 양식의 불탑(최댄Chorten)을 짓기도 하였다. 또한 티베트 환생자 스승들을 초청하여 수차례 법회를 개최하였고 최근에는 네팔에서 닝마빠 승려를 초빙하여 티베트 불교 기도 의식도 봉행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png

경북 성주군의 보리마을 자비선 명상원, 자비선사에서는 송광사 강주, 동화사 강주 및 율주, 한국 차명상협회 이사장, 한국명상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회주 지운스님이 달라이 라마를 여러 차례 친견하며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해왔고, 한국 불자를 대상으로 람림, 입보리행론 등 티베트 불교 관련 논서들을 강독하였다. 또한 대구 티벳불교센터 팬대링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법문을 설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 템플스테이 사이트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경기도 안성시의 법등사에서는 봉녕사 강원 및 율원, 대만 중국문화대학, 인도 따시종 등에서 수학하고 봉녕사 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한 주지 설오스님이 한국, 대만의 정토종과 티베트 불교 샹빠 까규(Shangpa Kagyu)의 밀교 수행을 겸하는 정밀쌍수(淨密雙修)를 표방하고 있다. 설오스님은 인도 따시종에서 7년 이상 까규, 닝마 법맥의 수행을 전수받고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 등의 한국어 통역을 맡은 바 있다. 이후 법등사를 창건하고 2010년, 2011년, 2012년, 2015년 네 차례에 걸쳐 샹빠 까규빠의 스승 까루 린뽀체(Kalu rinooche)의 방한 법회를 개최하였다.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통도사 울산포교원인 보리원 람림학당에서는 해인사 율원장, 직지사 승가대학장을 역임하고 일본 진언종 총본산 고야산 금강봉사 보성원, 인도 다람살라 규또 사원 등지에서 밀교를 수학한 주지 혜능스님이 한국 등 동아시아 불교와 더불어 상좌부 불교의 니까야, 티베트 불교의 보리도차제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혜능스님은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로부터 관정과 삼마야계를 받고 겔룩빠 전승에서 수행하였으며 이후 티벳 린뽀체 초청법회도 수차례 개최한 바 있다.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png

서울 미륵정사와 중국 남경 관음사에서는 화엄사 강주, 운암사 도감,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한 주지 지엄스님이 닝마빠 법맥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지엄스님은 화엄사 강원, 중국 남경대학, 사천성 오명불학원 등에서 수학하고, 진매남카랑빠(연용상사)와 다러라모 린뽀체 등을 근본 스승으로 모시고 전법제자로 위임받아 현재 티베트 불교 닝마빠의 법을 펼치며 수 권의 티베트 불교 서적을 번역하였다.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능행스님(現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은 국내 최초로 불교 호스피스 전문 병원을 창설하고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죽음과 재생(再生)의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티베트 불교에도 관심을 갖고 《티베트 사자의 서(개정 완역)》에 추천사를 남긴 바 있다. 또한 인도 라다크 등지에서 국제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수차례 티베트 불교 스승들의 초청 법회를 개최하였다. 교육기관인 마하보디교육원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는 티베트 게쉬 스님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티베트 불교 관련 강의를 진행 중이고, 그 외에도 각종 불교 및 호스피스, 명상심리 관련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홈페이지 마하보디교육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홈페이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역시 능행스님이 건립한 청주 정토마을의 주지를 맡고 있는 지덕스님은 상술한 설오스님과 함께 북인도 따시종에서 31세부터 캄뚤 린뽀체, 독덴 암틴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20년 이상 인도 현지에서 금강승 수행을 하였고, 51세에 둑빠 까규빠 법맥 한국 수행센터인 캄따시링을 창건하여 주지를 역임한 바 있다. 오랜 현지 수행으로 티베트어에 능통하여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여러 차례 티베트 스승들의 법문을 통역하였고, 캄따시링 개원 후 거의 매년 캄뚤 린뽀체와 독덴 아추, 켄뽀 스님들, 달라이 라마의 신탁승 네충 라마 등을 초청하여 법회를 개최하였다. 또한《따시종의 거룩한 성자 캄뚤린포체》(지엄스님 공역), 《둑빠까규 독송법본》,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 《사성제 팔정도》, 《바르도 성취법》 등을 번역 및 편찬하였다.

11. 지역별 보급[편집]

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밀교 · 티베트 불교

11.1. 대한민국[편집]

티베트 풍으로 지은 한국의 첫 티베트 불교 사원
광성사 (부산 서구 아미동)

현재 한국 내에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곳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 티베트 불교 승단에 소속된 스님들이 한국 내에 상주하며 지도하고 있는 단체들이다.
단체명
링크
주소
세첸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종로구
캄따시링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성북구
랍숨섀둡링(삼학사원)[91]
서울 은평구
따시최링(서울티벳불교문화센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강북구
광성사
부산 서구
팬대링(대구티벳불교센터)
대구 달서구

이 외에 정기/비정기적인 법회와 수행모임을 개최하는 수행단체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 서구에서 활동 중인 티베트 불교 수행단체의 한국 지부 격에 해당하는 단체들이다.
단체명
링크
마이트리야 상가
낄라야 넷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텔가 코리아
다르마타 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싯다르타즈 인텐트 코리아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티베트 불교 관련 국내 학술기관은 다음과 같다.
학술기관명
링크
티벳대장경역경원
나란다불교학술원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제17대 까르마빠의 공식 한국어 페이스북은 다음과 같다. 페이스북에서 동정, 법회 일정, 메세지, 동영상, 번역 자료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 켄뽀 소달지(མཁན་པོ བསོད་དར་རྒྱས, Khenpo Sodargye, 索达吉堪布)[92] 등 티베트 불 스승들 법문의 한국어 통역본도 들을 수 있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네팔, 몽골 이주민들을 위한 사찰도 있다. 이 중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경우 한국인 불자들도 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 서울 네팔법당 텍첸사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 동두천 네팔법당 용수사 (경기도 동두천시)
  • 몽골 간단사 서울 포교당 (서울시 중구 광희동)

11.2. 중화권 및 티베트[편집]

한반도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몽골 제국의 행성으로서 직접 지배를 받아서 티베트 불교가 매우 성행했다. 그리고 청나라대에서는 유교보다 티베트 불교를 밀어주었다. 중국령이 된 상태인 티베트 자치구칭하이성, 쓰촨성 일부 지역을 포괄한다. 내몽골 자치구몽골인들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주로 북부 중가리아 지역) 몽골 자치현의 오이라트인들 그리고 동북 3성만주족도 많이 믿는다. 상술한 지역에 거주하는 한족들 중에도 티베트 불교도들이 다수 있다.

티베트는 이름대로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였으나, 중국의 병합과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까지 중국 내 티베트인들 650만 여명 대부분은 독실하게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사실상 티베트 지역의 국교. 그러나 10% 정도는 티베트 고유 종교인 뵌교를 믿는다. 다만 현재의 뵌교는 불교를 신봉하는 지배층의 탄압을 피하고자 불교의 교리와 의식 등을 거의 그대로 습합하여 외부인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불교와 유사하게 변모하였다.
라룽가르(bla rung sgar, 오명불학원)의 수장인
여성 환생자 스승 제쭌마 문초 린뽀체
(Jetsünma Muntso Rinpoche)

대만에는 티베트 불교도가 상당히 많다. 대만에 티베트 불교를 널리 포교한 스루스(釋如石) 스님은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전파 과정을 두 단계로 구분하였다. 1950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른바 '전홍기(前弘期)'로, 이 기간 동안은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소수의 겔룩, 사캬빠 승려들 외에 대부분 한족 재가 불자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를 신앙하였다. 밀법의 전수는 적었고, 전파 지역은 대만 북부에 한정되었다. 그 후 1982년부터 인도, 네팔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포교를 위해 대거 대만에 입국하고, 또한 미국에서 밀법을 수행했던 천젠민(陳健民)의 저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만 전역에 티베트 불교 전(全) 종파의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다. 鄭志明, 《藏傳佛教在台發展的現況與省思》 양정연, 《한 권으로 보는 세계불교사》<타이완 불교사>

현재 닝마, 까규, 사캬, 겔룩 등 티베트 불교 주요 4대 종파가 모두 대만에 진출한 상태이다. 사라 프레이저(Sarah E. Fraser)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2018년 연구에서 인용한 가장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신자 수는 현재 약 50만~60만여 명에 달한다.[94] Sarah E. Fraser, 《Tibetan Buddhist Temples in Taiwan: An Exploration of Transnational Religious Architecture》 달라이 라마는 1997년, 2001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11.3. 몽골[편집]

몽골 제국시절에 몽골의 종교였으나 제국이 쇠퇴하면서 몽골 내 티베트 불교도 쇠퇴하였다. 알탄 칸 대부터 다시 몽골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티베트어로 된 경전을 학습하고 티베트 승려와 동일한 복식을 착용할 정도로 몽골과 티베트의 불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몽골 승려들의 수준은 예전부터 우수하였는데,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한 후 그 곳 학승들의 능숙한 논쟁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일이 지금과 같은 길고 철저한 게쉬 학위 제도를 정립하게 된 계기가 될 정도였다. 안병남, 《티베트 불교의 사원 교육제도》

공산주의 시대에는 독재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주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95] 탈공산화 후 완화되었다. 비록 공산 정권의 탄압을 받았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불교 관련 유산이 철저히 파괴되고 약탈 당한 티베트와는 달리 많은 경전과 유물이 따로 보관되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현재 몽골 인구의 약 60%가 불교도로 대부분 티베트 불교(주로 겔룩빠)를 믿으며, 간단 사원이 몽골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사원이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몽골과 칼미키아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투바 공화국의 승려들이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 내 소재한 데뿡 사원의 고망 강원(Drepung Gomang Monastic University)[96]으로 유학을 오기 시작하여 현재는 2000여 명의 몽골, 러시아 연방 출신 승려들이 고망 강원에서 정진 중이다. 개중에 게쉬 학위를 취득한 승려나 사원의 방장(方丈) 등 고위직에 오른 승려도 상당 수 배출될 정도로 몽골 승려들의 자질은 우수하다. #

11.4. 부탄[편집]

사실상 부탄국교이다. 16세기에 둑빠 까규빠 중 샵둥 나왕 남걜(Zhabdrung Ngawang Namgyel)이 이끄는 티벳 남부의 일파가 겔룩빠의 탄압을 피해 부탄에 자리잡아 국교가 되었다. 부탄 헌법에 따르면 5명의 고승인 롭뾘(slob dpon)들의 추천을 받아 부탄 국왕이 임명한 제 켄뽀(Je Khenpo)가 국사(國師)로서 부탄의 전체 불교 사원들을 이끌게 된다.

11.5. 인도[편집]

인도 북부의 라다크, 시킴, 아루나찰프라데시 등 티베트계 지역 주민들과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10만 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주로 믿는다.

인도 사회에서 오랜 세월 천대를 받아온 불가촉천민 계층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불가촉천민이라면 티베트인 거주지에 사는 경우가 아닌 이상 티베트 불교보다는 신흥 종파인 나바야나(Navayana)를 믿는다.[97] 나바야나는 인도 독립 이후 불가촉 천민들의 지도자였던 암베드카르 박사가 수십만명의 불가촉천민, 평민과 함께 한 불교 운동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11.6. 네팔[편집]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가 네팔에 있지만, 힌두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80%로 우위를 차지하며 불교 인구는 9~10% 정도에 불과하다. 네팔의 불교는 크게 티베트 불교, 네와르 불교, 테라와다(상좌부) 불교로 구성된다.

네팔은 티베트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고 한 때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던 적도 있다. 그 영향으로 셰르파(Sherpa)족 등 카트만두 계곡 근처 북부 고지대의 소수 민족들은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는다. 중앙의 네와르(Newar)족은 힌두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네와르 불교를 믿는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네와르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카스트 제도가 있다. 테라와다 불교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 인근은 성역화되어 전세계 불교 종파들이 세운 사원들이 밀집해있다.

11.7. 러시아[편집]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부랴트인투바인, 칼미크인 등이 주로 믿는다. 이들 중 티베트 불교 신도 인구는 약 70만~150만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 불교도의 비율은 투바 공화국 52.2%, 칼미키아 공화국 53.4%, 부랴티아 공화국 19.8%, 자바이칼 변경주 14.6%, 러시아 연방 0.6%이다. #

무신론을 강요하던 소련 시절, 칼미크인 불교 지도자들은 티베트 불교가 무신론이라고 주장했으나, 소련 정부는 티베트 불교는 무신론이 아니라면서 이슬람이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박해를 가했다.[98] 당시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 사원[99]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100]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화교[101] 또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동북 3성 한족의 후손이다.

달라이 라마1976년1991년 러시아를 방문했다. 2004년에도 칼미키야 공화국 대통령 키르산 일륨지노프의 초청으로 방러하고자 하였으나, 중국 측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11.8. 기타 전세계[편집]

상좌부 불교, 선불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불교로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절이 있다.[102] 아프리카 불교도들의 따라보살 기도 영상[103] 유럽[104]이나 미국[105], 일본[106], 중남미[107], 동남아[108], 오세아니아 등지에도 상당한 신자들이 있다. 특히 서구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서구 학계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인도의 마지막 대승 불교의 정통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109] 중국 불교, 상좌부 불교와 함께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종파이다.
남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 위치한
티베트 불교 사원 레랍 링(Lerab Ling)

달라이 라마(Dalai Lama), 까루 린포체(Kalu Rinpoche), 딜고 켄체 린포체(Dilgo Kyentse Rinpoche)[110], 소걀 린포체(Sogyal Rinpoche)[111] 까르마빠(Karmapa), 꺕제 송 린포체(Kyabje Zong Rinpoche) 등이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벌이며 티베트 불교를 서방에 알렸다.
초창기 서구 포교를 이끈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 스승
샹빠 까규빠의 까루(Kalu) 린뽀체
(上) 초대 (1905-1989) (下) 제2대 (b.1990)

12. 기타[편집]

12.1. 밀교와 성(性)?[편집]

12.1.1. 오해와 편견[편집]

얍윰(yab yum)[112] 형상을 한 지금강불. 존재 내면의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의 통합을 상징한다.
대락(大樂)을 상징하는 남성 에너지와 불이(不二)의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 에너지의 결합을 통해 참된 본성을 자각할 수 있다.

후기 밀교 수행법 중에는 성에너지를 이용한 수행도 있으나 이를 '저급하다', '좌도 밀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딴뜨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거 서구의 기독교적 편견(혹은 동양의 유교적 편견)에 해당한다. 밀교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현대에는 이미 불교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상징적,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밀교의 부모불(혹은 쌍신불, 얍윰Yab-yum)은 지혜와 방편, 혹은 현상과 공성의 합일을 상징한다. 수행에 있어서도 실제 딴뜨릭 수행자 간의 직접적인 육체적 결합 대신 관상(觀想)[113]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학자 정성준은 딴뜨리즘의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근대학자들은 힌두교의 샤끄띠파의 성을 매개로 한 성력(性力)적인 수행을 좌도밀교(左道密敎, the Left-hand path)라 지칭하여 비판하고, 이에 비해 윤리적이고 사회적 도덕성을 강조한 쉬바나 비슈뉴파 등은 우도밀교(右道密敎, the Right-hand path)라고 말하여 구분하였는데, 이는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속성이 다른 용어를 강제로 결합시킨 말이 되며,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한국불교에도 해명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좌도밀교는 원래 ‘힌두딴뜨리즘의 샤끄띠파의 성력(性力)사상이나 그 실천체계’라고 불러야 정확한 말이 된다.

인도 후기밀교의 경우 전법스승인 아사리(阿梨)와 수행을 전수받기 위한 제자의 자격은 오계를 비롯해 보살계 뿐만 아니라 삼매야계와 같이 행위가 아닌 내면적 의식을 문제삼는 등 엄격한 계율에 의해 자격을 심사받으며, 밀교수행의 자격도 현교(顯敎)의 경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시험을 거쳐야만 비로소 관정(灌頂)의식을 통해 밀교수행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 인도의 밀교수행의 전통을 계승한 티벳사원의 현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의해 수행이 이루어지며, 밀교의 관정의식과 입문의식에 동원되는 성과 관련된 도구들도 남존의 보리심을 상징하기 위한 술이나, 여존을 상징하는 염색된 물을 이용하는 등 인간의 실상을 불성으로 관조하고 자각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후기밀교의 한 시대에는 관상(觀想)에 의지하더라도 성적(性的) 관상을 실천하는 수행이 전통적인 비구계의 율의를 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이와 관련한 대목이 《비밀집회딴뜨라》의 관정의식을 다룬 《제4관정의궤, Sakiptbhiekavidhi》에 전해진다. 저자는 위끄라마실라(Vikramala)사의 육현문(六賢門)의 한 사람인 와기슈와라(Vgvara)로 그는《비밀집회딴뜨라》의 유파인 즈냐나빠다류에 속하며, 현밀(顯密)과 계학(戒學)에 능통한 당시 인도에서 가장 번영한 사원의 학두(學頭)였다.

그가 다룬 제4관정은 인도후기밀교에서 중요시되는 것으로 ①병(甁)관정, ②비밀(秘密)관정, ③반야지(般若智)관정, ④제사(第四)관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병관정은 물, 보관, 금강저, 금강령, 명명식(命名式)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기물들은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는 오불(五佛)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사리는 제자에게 기물을 부여함으로써 오지(五智)를 성취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인 비밀관정과 세 번째 반야지관정은 성적인 요가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먼저 제자는 관상(觀想)을 통해 스승에게 반야모(般若母)를 바치는데 《비밀집회딴뜨라》에는 “푸른 연꽃의 눈을 가졌고, 16세의 나이로 아름다우며 도살자(屠殺者)의 딸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문헌에는 즈냐나빠다류의 전통에 입각해 문수금강(文殊金剛)의 화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비밀관정은 아사리에 의해 공성(空性)을 상징하는 반야모와 육신의 현상세계로 현현한 방편(方便)의 합일을 통해 반야와 방편의 합일이라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며, 반야지관정은 제자로 하여금 합일을 상징화한 매개물을 통해 반야(般若)의 대락(大樂)을 체험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의 제4관정은 ‘언어에 의한 관정’으로 아사리는 구두(口頭)로 제자에게 비의(秘義)를 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제4관정의궤》에는 대론자가 “(반야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 이근교회(二根交會)의 의식이 어찌 비구의 율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와기슈와라는 “삼계에 태어난 인간과 제천(諸天) 등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루(有漏)의 애착을 향수하는 것으로 탐욕을 향수하는 것은 비나야 등에서 금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삼계(三界)를 초월한 신체를 지니고, 유식(唯識)을 자성으로 하는 문수금강(文殊金剛) 등이 현현한 여성들은 그런 류가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론자는 다시 “비나야 등에서 금지되고 있는 외적인 갈마인모(羯磨印母)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정(適正)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론하고 있다. 여기서 갈마인모란 현실세계의 육체를 가진 반야모를 가정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와기슈와라는 “진언이취에 있어서 실재하지 않는 색 등의 일체의 사물을 자심의 현현(顯現)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문수금강을 본성으로 전변한 갈마인모들도 환(幻)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성적유가를 포함한 관정을 실수(實修)한다 하더라도 청정하며, 과실이 없기 때문에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반면 와기슈와라 후대에 생존했던 인물로 같은 사원의 대학승(大學僧)이었던 아티샤(Atiśa)는 그의 명저인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에서 “범행자(梵行者)는 비밀과 반야의 관정을 실수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계를 범할 시 악취에 떨어지는 죄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있어 와기슈와라와 반대의 입장에 있다.

같은 시대의 아브야까라굽타(Abhaykaragupta)는 《금강의 화환(Vajrāvalī)》에서 “일체가 공성이기 때문에 갈마인모도 또한 공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그녀와의 유가도 율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반면에 " ‘결고한 진실을 신해하지 않는 비구’인 경우 갈마인모(磨印母)가 아니라 지인(智印)을 사용한다" 하여 와기슈와라와 아티샤와의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사(靑史)》에는 아브야까라굽타 자신은 위끄라마실라사의 학두로 있으면서 평생 비구의 불범계(不犯戒)를 지키며 결정코 성적 유가를 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성준,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지혜의 다끼니(dakini, 空行母) 본존인
바즈라요기니(Vajrayogini)

여성을 단순히 성력의 심볼로만 취급한다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밀교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남녀 모두 동등한 수행자로 취급되며, 때로는 여성이 스승이 되어 남성 수행자를 지도하는 등 밀교 수행자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계율인 사마야(samaya)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미란다 쇼(Miranda Shaw) 리치몬드대 교수는 《열정적 깨달음: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에서 딴뜨릭 불교는 대승 불교의 윤리적, 철학적 원칙을 함께하지만, 상징과 의식 분야에서 친밀감과 성(性), 젠더와 체현을 해탈의 길에 포함시키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하였다. 남녀가 나란히 등장하는 패턴은 남성과 여성이 착취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서로 일깨워주는 관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과 숭고한 이상을 나타낸다.

여성과 여성의 가르침이 등장하고 여성의 에너지와 영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딴뜨릭 종교성의 특징이다.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은 격렬한 지혜의 화염 속에서 즐겁게 춤추며 태연히 번뇌의 시체를 밟는 거침없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열정적이고 자유로우며 깨달은 여성들이었다.

리타 그로스(Rita Gross) 위스콘신대 교수 또한 그녀의 저서 《불교 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에서 금강승 불교만큼 여성의 정신적 발달과 성숙에 유리한 종교를 찾기 힘들다고 강조하였다. 그로스는 불교 전반에 걸친 남성 중심적 관행과 가부장성, 그리고 비구니 승단 없이 사미니 승단만 존재하는 티베트 불교 교단 내의 열악한 여성수행자의 지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비판하였다.[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타 그로스는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다른 어떤 불교 분파보다 여성성을 중시하고, 뛰어난 여성 스승들이 많이 존재하며, 수행에 필수적인 여성 상징들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불교의 가부장성을 극복하고 불교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를 한 가지 불만상태에서 또다른 불만상태로 몰아대는 것과 동일한 욕망 에너지가 딴뜨라의 연금술을 통해서 초월적인 희열과 지혜를 체험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중략)

욕망의 에너지가 우리의 불만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만의 원인, 즉 실제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무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이용된다.

티베트의 딴뜨라불교에서는 이렇게 욕망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나무에서  생겨난다는 어떤 벌레들이 있다. 그들의 생애는 나무줄기 속 깊은 곳에서  부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바로 그 나무를 먹으면서 자란다. 그와 마찬가지로 딴뜨라의 변화 수행을 통해서 욕망은 통찰적 지혜를 낳고 그  다음에 그 지혜는 그 자신을 태어나게 한 욕망을 포함해 우리 마음을 가리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적인 욕망의 작용과 깨달은 이의 작용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딴뜨라에서는 욕망에서 일어나는 희열의 체험이 마음을 확장시켜서 우리가 모든 제한을 극복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욕망의 대상과 접촉하는데서 오는 쾌락은 우리의 주의를 제한하고 더 강하고 더 좋은 쾌락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어떤 때에는 잡신들이 잘생기고 피부 좋고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매력적인 청년으로 변신하여 나타나기도 했다. (중략) 음욕을 일으키는 여러가지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중략) 색정을 일으키는 여러가지 행위를 했지만 그 자체를 환상으로 보는 삼매에 드니 대부분 실체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 보살의 대치법을 수행하니 몇몇은 검은 시체로, 몇몇은 늙고 추한 모습으로, 몇몇은 문둥병 환자로, 몇몇은 귀머거리, 장애자, 바보와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여 모두 사라져버렸다.


현교, 특히 성문승에서는 대체로 욕망을 억제하는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깨달음을 추구한다. 반면 대승의 바라밀승에 이르게 되면《유마경》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보살은 때로 욕망을 회피하지 않고 불이(不二)의 견지(見地)에서 욕망을 중생 제도의 방편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밀승에 이르러서는 독초(毒草)를 이용해 효능 좋은 약을 만들듯이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을 활용하여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의 결과를 얻는 혁신적인 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밀교에서도 현교와 마찬가지로 번뇌는 고통의 원인이기에 극복의 대상이며, 최종적으로 "나무에서 생겨난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번뇌에서 얻는 에너지는 수행을 통해 번뇌 그 자체를 제거하는데 이용된다.

밀교의 성적 요가는 범속한 성행위와는 다르다. 성적 요가를 수행하려면 현교보다도 더욱 크고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거친 번뇌를 제거하고 미세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대표적인 여성 수행자 예세 초겔(ye shes mtsho rgyal)은 성적 요가를 행한 밀교 수행자였지만, 여러 잡신(雜神)들이 매혹적인 남성의 몸으로 유혹하여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번뇌만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또한 예세 초겔은 기(prāṇa), 맥(nāḍī), 명점(bindu) 수행으로 신체의 미세한 에너지를 조절하여 자재(自在)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라마 툽텐 예셰(Lama Thupten Yeshe)의 설명처럼 성적 요가시 가장 미세한 의식을 활용해 공성을 깨닫게 되면, 번뇌와 지혜라는 두 상반된 마음은 함께 공존할 수 없어 공성을 깨닫는 즉시 성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통상적인 성적 행위는 끝없는 갈망과 불만, 흐릿하고 둔한 의식 상태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밀교에서는 단순한 성적 희열만을 깨달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욕망에 의해 일어난 지복(至福)이 불이(不二)의 지혜와 결합하여 도(道)로 전환되는 과정은 밀교계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갖춘 소수의 이례적인 사람만이 수행 가능하다.

출가한 비구, 비구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이 수행에 참가하지 않는다. 일체 음행을 금하는 구족계를 수지하였기 때문이다. 아티샤가 《보리도등론》에서 밝혔듯 무상요가를 통해 얻는 공덕보다 출가의 공덕이 더욱 크고, 또한 만일 구족계를 수지한 승려가 성적 요가를 수행할 경우 바라이죄[115]를 범하여 매우 엄중한 과보를 받게 되므로 수행을 성취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을 얻게 된다. 대신 비구, 비구니 같은 범행자(梵行者)는 성적 요가를 제외한 다른 밀법을 수행할 수 있다.[116]

12.1.2. 사상적 배경[편집]

불교학자 정성준은 밀교의 성, 육체, 번뇌 개념에 관한 사상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밀교를 통해 성과 육체, 번뇌를 다룬 내용은 기존의 대승불교(顯敎)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를 최초로 체계화한 《대일경》은 대승불교사상이 다양한 측면에서 결합된 것으로, 중관, 유식, 여래장사상이 경전에 반영되어 있다. 경전의 비로자나여래는 절대법신인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을 계승한 것이지만 보살과 같이 공성에 머물면서 중생구호를 위해 다양한 신변을 나투는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밀교의 붓다들은 열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수용신과 육신을 통해 중생을 직접적으로 구호하는 존재들이다.

현교의 경우 중생의 세계에 드나드는 존재는 중생구제를 위해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인 대보살들로서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 문수보살 등이 그 예이다. 열반을 성취한 현교의 붓다는 열반이라는 절대세계에 도달한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지혜의 광명인 수용신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중생의 현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대보살의 몫이다. 그러나 유식계의 논서를 통한 불신론(佛身論)의 전개는 붓다의 몸은 법신, 수용신, 화신의 세 가지가 있으며, 열반의 절대신이라도 삼계의 범주를 다양한 불신을 통해 넘나드는 것으로 이론화하였다.

《대일경》 이후 성립된 《금강정경》에는 중생의 의식과 우주법계의 현상세계가 오불의 속성(屬性)을 지니고, 이에 입각해 현화한다고 보는 부족사상(部族思想)을 체계적으로 설하였다. 오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촉불, 보생불, 무량수불, 불공성취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도 후기 밀교경전에는 경전마다 다르지만 오불의 범주에 번뇌를 포함시켜, 탐진치(貪瞋癡)와 아만(我慢), 질투(嫉妬)의 다섯 번뇌도 불성의 부족으로서 성불한 붓다에게 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의지와 갈망의 대번뇌로 전변한다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경》에 설해진 부족사상과 번뇌의 긍정은 인도 후기밀교의 성과 번뇌의 긍정이라는 대전제를 이끌어내는 핵심사상이 된다. 그러나 밀교의 긍정은 중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의 지혜에 입각한 불지(佛智)에 의해 조명되었을 때 비로소 대번뇌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정경》에서 설해진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의 수행은 일체의성취(一切義成就)보살이 육신을 사바세계에 둔 채 수용신(受用身)의 몸으로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일체여래의 가르침에 의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지고 있는데, 오상성신의 증금강신(證金剛身)의 수행은 중생의 삼업(三業)의 현실을 신금강, 어금강, 의금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이론적 배경은 마음의 자성을 깨닫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이념이 경전을 통해 형식화된 것이다.

한편 대반야경에 소속된 《반야이취분(般若理趣分)》은 공성의 지혜를 통해 정(淨)과 부정(不淨)의 분별을 초월한 보살에게 번뇌와 육체적 현실은 청정한 진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극적인 표현을 볼 수 있는데, 같은 품은 독립적인 밀교경전으로 조직화되어 《이취경(理趣經)》으로 출현하고, 여기에는 인간의 감촉과 애욕의 수용과정을 17가지로 분류한 ‘17청정구(淸淨句)’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한 인도후기밀교의 주석은 17청정구를 포옹과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애락(愛樂)을 향수하는 남녀의 성교(性交)로 해석한 주석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외교적 요소를 단기간에 수용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반야와 중관, 유식사상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점진적으로 반영시켜 경전화된 과정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밀교화가 외교의 수행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인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성장과정에 의해 경전화되고 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밀교에 있어서 육체뿐만 아니라, 번뇌와 성마저도 불지(佛智)에 의해 관조할 때 현실은 실제(實際)로서 법계의 현현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연원은 연기법의 무아사상으로부터 반야, 공, 유식 등 불교사상의 전개에 따른 것으로 밀교는 딴뜨리즘에 의해 문제시 되었던 성과 번뇌를 전통적인 불교사상의 영역에서 해석한 것이다.
정성준,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탐욕의 경계를 여읨’이다. 그들의 욕망을 따라 몸을 나타내는데, 하늘이 나를 볼 적에는 나는 천녀의 형상이 되어 광명이 훌륭하여 비길 데 없게 된다. 그와 같이 사람이나 사람 아닌 이가 볼 적에는 나도 사람과 사람 아닌 이의 여인이 되어 그들의 욕망대로 나를 보게 한다.

또한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여 나에게 오는 경우에, 내가 그에게 법을 말하면 그가 법을 듣고는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집착 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게 된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를 보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환희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와 말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걸림없는 음성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내 손목을 잡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에 두루 가는 삼매를 얻는다. (중략) 어떤 중생이 나를 끌어안으면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고 항상 떠나지 않는 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나와 입술을 한 번만 맞추면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이 모든 중생의 복덕을 늘게 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와 같이 나에게 가까이 하는 중생들은 모두 탐욕을 여의는 경계에 머물러 보살의 온갖 지혜가 앞에 나타나는 걸림없는 해탈에 들어간다.”

《대방광불화엄경》〈입법계품〉

《화엄경》에서는 바수밀다(Vasumitra, 婆須蜜多/伐蘇蜜多)를 53선지식 중 하나로 소개하며 탐욕이 지혜로 바뀌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을 보여준다. 금강승의 사부ㆍ행부ㆍ요가부ㆍ무상요가부는 수행자가 욕망의 에너지를 정신적인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각각 관락(觀樂), 소락(笑樂), 집수락(執手樂), 옹포락(擁抱樂)의 〈사락(四樂)〉으로 비유되는데, 그 출처가 바로 《화엄경》〈입법계품〉의 바수밀다 일화이다. 금강승에서는 욕망을 지혜로 전환할 근기가 되지 않은 이에게는 금강승의 가르침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 관락(觀樂)에 비유되는 소작 딴뜨라(Kry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생긴 탐심의 즐거움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보다 외적인 의례에 중점을 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소락(笑樂)에 비유되는 행 딴뜨라(Cary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생긴 탐심의 즐거움과 서로의 눈을 보며 교감하는 탐심의 즐거움까지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과 외적인 의례를 동등하게 중시하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집수락(執手樂)에 비유되는 요가 딴뜨라(Yog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서로의 눈을 보며 교감하면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서로 손을 잡아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까지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에 중점을 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옹포락(擁抱樂)에 비유되는 무상요가 딴뜨라(Anuttarayog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서로 눈을 보며 교감하고, 손잡아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서로 껴안아 합일해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까지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을 위주로 한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12.1.3. 원리, 자격, 금기[편집]

금강승의 성적 요가는 중관, 유식, 여래장 등 대승 불교 철학과 금강승 고유의 인체 생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금강승의 입문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무상 요가 딴뜨라의 성적 요가는 극소수의 자격을 갖춘 최상근기의 수행자-"생각 만으로 땅에 떨어진 열매를 다시 가지에 붙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에게만 허용된다. 구족계를 수지(受持)한 출가 수행자는 성적 요가를 행할 수 없다. 또한 성적 요가 중에는 복잡하고 때로 위험할 수 있는 수행 절차를 거치며, 반드시 정해진 금기를 준수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1981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초청법회에서 딴뜨라와 성교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달라이 라마 하버드대 강의》 참조.
: 현재 미국에는 성교(性交)와 딴뜨라를 연결시켜서 성교를 수행이라 하고, 성교를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는 책이나 단체들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딴뜨라의 가르침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성교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독신생활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사실 딴뜨라에 대해서 오해할 위험이 큽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단계의 의식이 있고, 가장 미세한 의식을 수행에 이용할 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경험하는 것은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미세한 의식의 힘을 실제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행자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을 고의적으로 제어하고 정지시킬 수 있다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이 작용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미세한 의식이 작용할 뿐 아니라, 그 의식은 방심하지 않고, 예민하고, 명석합니다. 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은 공성과 무아를 이해하는 지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수행자는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을 중단시키려고 노력해야 되고, 그러려면 백보리(白菩提)와 적보리(赤菩提)[117] 같은 근본적인 요소들을 이동시켜서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딴뜨라 수행에는 성교가 그런 식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결합은 통상적인 의미의 성교가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여섯 가지 근본 요소로 구성됩니다. 어떤 설명에 의하면, 그 중 세 요소는 어머니에게서 받고, 세 요소는 아버지에게서 받는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서 받는 세 요소는 뼈와 골수와 정액이고, 어머니에게서 받는 세 요소는 살과 피부와 피라고 합니다. 또 다른 설명에 의하면 여섯 가지 요소는 지, 수, 화, 풍, 맥, 명점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의 물리적 육체라는 특별한 조건으로 인해서, 육체 안의 요소들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의 안에 변화가 옵니다. 예를 들어 재채기를 하거나 하품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성교를 하는 동안에도 그런 의식의 변화가 잠시 일어납니다.

(붓다슈리즈냐나(Buddhaśrījñāna)에 따르면 평상시 노력을 하지 않고도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가령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성적인 희열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기절했을 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그런 경우들이다. 딴뜨라 수행자는 이러한 네 가지 상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을 때 특별한 명상을 수행하여 미세하고 청명한 빛의 마음(정광명, 淨光明)을 일으킬 수 있다. 정광명은 죽음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렬하며 그 다음 깊이 잠들었을 때, 그 다음으로 성적인 희열을 느끼는 순간의 순으로 약해진다.)

의식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본성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의식의 변화는 성교를 하는 동안에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그것을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딴뜨라 수행에서는 성교를 방편으로 이용합니다. (이 때 수행자는 성적인 희열의 에너지를 참고 그 에너지를 방출, 즉 사정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만일 그 에너지를 붙들고 있지 못하고 흘려버리면 이는 아주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욕계에 살면서 아직 욕망을 버리지 못한 어느 딴뜨라 수행자가 수행의 일부로서 고의적으로 마음에 욕망을 일으킨 다음에, 근본 요소들이 변화하고, 포착하기 쉬운 단계들의 마음 대신에 미세한 마음들이 작용하는 동안, 딴뜨라 수행자는 가장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이용해서 공성을 깨닫습니다. 하나의 의식이 두 가지의 상반된 유형(번뇌와 지혜)의 이해를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미세한 의식이 공성(空性)을 깨달을 때 욕망을 일으킨 마음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맥과 기와 명점에 변화를 유발하는 집착과 욕망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돕는 것은 본래적 존재가 있다는 생각(아집我執과 법집法執)입니다. 하지만 그런 욕망으로 인해 나타나게 된 미세한 마음이 공성을 깨달으면, 그 미세한 마음은 욕망을 일으키도록 도왔던 '본래적 존재를 생각하는 의식'을 없애는 치료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나무에서 생겨난 벌레가 결국은 그 나무까지 갉아먹는다는 예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수행들을 하는 사람은 공성과 무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거나 경험을 해야 하고, 둘째로 그런 수행의 목표는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므로 수행자는 다른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이타적인 의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공성을 이해하고 이타적인 의도를 갖지 않으면, 그런 딴뜨라 수행의 기법들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무상 요가 딴뜨라의 몇몇 수행들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몸 안의 기가 중맥(中脈)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가 말한 육체적 변화는 주로 기가 중앙 기맥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결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방법은 목의 맥도(脉道)들을 죄는 것인데, 그 방법을 올바르게 아는 사람을 성공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방법들이 딴뜨라 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실행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딴뜨라 수행을 밀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수행한 숙련된 스승을 만나지 못했거나 수행자가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거나 딴뜨라 수행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쌓지 않았다면 딴뜨라 수행은 불가능합니다.

12.1.4. 논란[편집]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여성성을 중시하고 다수의 뛰어난 여성 수행자들을 배출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스트 여성 학자들 사이에서는 금강승의 성적 요가가 여성에게 능력을 부여하는지 반대로 여성을 착취하는지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 특히 티베트 불교가 현대에 이르러 북미, 유럽 등 서구 사회에 널리 전파되면서 문화적 차이와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해 많은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었다.

성적 요가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성적 요가의 실천을 엄격히 제한했던 겔룩빠와는 달리 닝마, 까규 등 밀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종파들은 성적 요가 수행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티베트 불교가 서구에 도입되던 초창기에 히피(Hippie) 문화의 열풍에 힘입어 서구 사회에 널리 알려진 티베트 불교 종파도 밀교 수행을 강조하는 닝마, 까규였다.

서구 사회 포교에 나섰던 재가수행자 스승들 중에는 자신의 서양인 제자에게 성적 요가를 함께 수행할 '영적 배우자' 혹은 '비밀 배우자'인 쌍윰(gsang yum)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중에는 스승과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맺는 제자도 있었지만,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며 후회하고 스승을 비난하거나, 수행 공동체 내에서 배척당하고 가쉽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제자들도 종종 있었다.

홀리 게일리(Holly Gayley) 콜로라도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서구인들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과 문화적 차이,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보 부족이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밀교 관련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밀교 서적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항목에 오르는 등 밀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밀교 경전 일부는 번역이 금지될 정도로 밀교 교의(敎義)의 공개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밀교의 계율인 싸마야에서 밀교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교의 가르침을 공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Holly Gayley, 《Revisiting the Secret Consort (gsang yum) in Tibetan Buddhism》

2000년대 미투 운동의 발흥과 북미, 유럽, 인도 등에서 발생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의 잇단 성추문으로 인해 금강승의 교리도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일련의 성 스캔들은 종파를 불문하고 발생하였으며, 성적 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구루 요가, 싸마야(Samaya)계, 청정 인식같은 여타의 금강승 교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사태가 악화된 측면이 있다.

금강승에는 스승을 비롯한 일체 대상을 청정하고 원만한 본성으로 인식하는 청정 인식(dag snang)이란 가르침이 있다. 진정한 청정 인식은 참된 진리의 세계,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청정 인식이 맹목적인 도그마로 변질되면서 스승의 부적절한 언행까지도 일종의 '방편'(Skt: upaya) 혹은 파격적인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미친 지혜(Tib: ye shes ’chol ba)"로 정당화되었고, 계율, 자비와 같은 불교의 다른 주요한 가치들이 실종되면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스 대학의 안네 이리스 미리암 안더스(Anne Iris Miriam Anders)는 불교 단체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청정 인식이나 업의 정화(karma purification)와 같은 금강승의 개념이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착취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고, 스승의 가피를 구하는 금강승의 구루 요가(Guru Yoga)는 자기 책임을 방기(放棄)하고 스승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강화시켰다고 분석하였다.
Anne Iris Miriam Anders, 《Silencing and Oblivion of Psychological Trauma, Its Unconscious Aspects, and Their Impact on the Inflation of Vajrayāna. An Analysis of Cross-Group Dynamics and Recent Developments in Buddhist Groups Based on Qualitative Data》

스캔들에 연루된 지도자들 중 일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단체의 직위에서 사임하거나 스승 자격을 영구히 박탈당했다. # #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논란에 휩쌓여 있다. 가령 소걀(Sogyal) 린뽀체의 경우 논란이 일자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행 단체 릭빠(Rigpa)의 지도자 직위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과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어 안타깝다는 발언을 하였다. 2018년 릭빠에서는 외부 변호사의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심각한 수준의 학대 행위가 있었음을 밝힌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 그러나 소걀 린뽀체는 생전에 한 번도 법적으로 기소되거나 처벌을 받은 바 없다. # 논란 이후에도 여러 유력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은 소걀 린뽀체를 진정한 스승으로 여겼고 2019년 그가 태국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하자 일제히 조의를 표하였다. #

티베트 불교 교단 내 성적 남용이 이슈화되면서 티베트 불교계 지도자들도 이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불교 교단 내부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그는 201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성학대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고 "불교 지도자들의 성학대를 25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학대에 연루된 지도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외부의 잣대로 티베트 불교 전통이 훼손당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스승의 모든 지시를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금강승의 스승-제자 관계가 갖는 의미를 면밀히 파악하고 스승을 모시기 전에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 여성 환생자 스승인 칸드로 린뽀체는 상식과 계율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의문스런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조사할 것을 권장했다. # 밍규르 린뽀체는 신체적ㆍ성적ㆍ심리적 학대는 가르침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수행 공동체 내부의 심각한 윤리적 위반은 공개되어야 하고 만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으면 외부에 알릴 것을 권고했다. #

일련의 사태로 인해 금강승의 가르침이 잘못 이해되는 것을 우려하는 스승들도 있었다.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 피해자들의 입장에 공감을 표하는 한편, SNS와 공개 대담을 통해 현대 서구인들의 금강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했다. 아래는 2018년 프랑스 몽펠리에 레랍 링(Lerab ling)에서 열린 대담의 요약문이다(※ 공식적인 요약문이 아닌, 작성자의 주관적이고 거친 요약문임을 고려할 것).
금강승이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이유는 기괴하고 이상해서가 아닌, 반대로 너무나 심오하고 소중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금강승은 스승과 제자 간 일대일로 은밀히 전수되는 가르침이었지만 티벳으로 전해지며 공개적인 의례로 변형된 부분이 있다. 금강승의 상징, 의례, 기물 등으로 인해 컬트(cult)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성제, 사법인, 공성, 보리심 같은 가르침이 안타깝게도 뒷전으로 밀려날 때도 있었다.

금강승은 불교의 팔만사천가르침 중 하나이며 굳이 금강승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일 금강승에 입문한다면 먼저 금강승에서의 스승의 의미와 스승-제자 관계가 여타 가르침과 다름을 알아야 한다. 금강승의 스승을 선택할 때는 먼저 반드시 스승의 자격을 살피는 과정을 거친다. 스승이 될 인물을 관찰하는 기간은 정해진 기한이 없다. 스승의 자격을 검증할 때는 분석과 회의, 의구심을 총동원하여 매우 신중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만일 다른 요인으로 인해 스승의 자격을 검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검증 대상인 인물과 자신 간에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없거나 아직 인연이 무르익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스승을 찾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일단 금강승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서약한 후에는 스승에게 헌신하고 그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로 여겨야 한다. 이는 마치 위험한 절벽을 처음 오를 때 숙련된 가이드의 지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만일 스승에 대한 헌신과 청정 인식이 없다면, 제자의 이분법적인 마음은 끊임없이 스승에게서 결점과 결점 아닌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정하려 할 것이다. 또한 스승에게 헌신하고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에고(ego)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만일 에고를 제거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라면 그것은 또 하나의 영적 물질주의(spritual materialism)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승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로 본다고 하여 곧 스승이 아무 행위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금강승에서는 스승에 대한 헌신 뿐 아니라 제자에 대한 헌신도 중요하다. 진정한 금강승의 스승에게 제자란 친자녀 이상의 존재이고, 제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승에게도 엄청난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또한 아무리 높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이라도 그의 행위는 업과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승은 지혜로써 모든 행위를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고, 바로 그러한 다양한 방편이 금강승의 강점이기도 하다.

금강승의 방편 중 하나인 구루 요가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스스로를 의지하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스승에는 외(外), 내(內), 밀(密)의 스승이 있는데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은 외적 스승에 해당한다. 구루 요가에서는 최종 단계에 외적 스승이 제자에게 흡수되어 스승과 제자가 불가분(不可分)으로 하나되는 관상(觀想)을 한다. 이는 내적, 밀적 스승이자 진정한 의미의 스승인 제자의 참된 본성을 깨닫는 과정이며 이 때 외적 스승은 본성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미친 지혜(ye shes ’chol ba)"는 남을 때리고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다. 미친 지혜 역시 에고에 반(反)하는 수행의 방식 중 하나이다. '미쳤다'라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남, 초월함을 의미한다. 마치 아늑한 러그(rug)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러그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불교"를 믿는 정상적인 영역에 머물지만, 그러나 불교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영적인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스승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나 방편으로 보는 것은 맹목적일 수 있고, 만일 그렇게 보지 않으면 싸마야를 어기는 것이 되어 딜레마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일종의 축복이다. "미친 지혜"와 마찬가지로 정상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전위적인(avant-garde) 방식이다. 싸마야계는 다른 계에 비해 복구하기도 훨씬 쉽다. 우리 본성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제자에게 스승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방편으로 쓰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금강승의 싸마야계를 받으려고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 먼저 성문승(소승), 대승의 가르침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

구루(Guru)를 투표와 같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해야 된다는 둥 금강승의 전통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은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지 자비로운 방식이 아니다. 프랑스 출신 작곡가 비제(Bizet)의 곡에 자기 취향대로 폭포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천둥 소리들을 추가하다보면 점점 원래 비제의 곡은 잊혀지고 나중에는 캘리포니아에서 폭포소리로 뒤덮힌 프랑스인 비제의 곡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1년 종사르 켄체 린포체는 2010년대 금강승 구루 관련 스캔들로 야기된 금강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Poison is Medicine:Clarifying the Vajrayana》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상기한 레랍 링에서의 대담을 포함하여 2018년 초 베를린, 파리, 런던, 레랍 링에 위치한 릭빠 센터에서의 대담들을 기반으로 저술되었다. 저자가 이끄는 수행 단체 '싯다르타즈 인텐트(Siddharta's Intent)'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ePUB, PDF 파일 양식의 전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관련 질문을 보낼 수 있는 메일 주소도 함께 공개되어 있다.

12.2. 승려의 결혼?[편집]

재가 수행자 응악빠
출가 비구

티베트 불교를 대처승을 허용하는 불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빠를 비롯하여 닝마, 까규, 사캬 등 모든 종파의 구족계를 받은 승려는 독신을 지키는 청정 비구이다.

출가 승려와는 별개로 닝마빠 등 일부 종파에는 대승불교의 재가 수행자 전통을 계승한 응악빠(sngags pa, 남성)/응악마(sngags ma, 여성)라는 재가 수행자들이 존재한다. 대승 불교는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동등한 수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대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등은 종종 재가자 출신의 보살로 묘사되며, 티베트 불교의 빠드마삼바와, 예세 초겔, 돔뙨빠, 밀라레빠 등도 불보살의 과위를 성취한 재가자 출신의 성현으로 여겨진다. 특히 불교 딴뜨리즘의 경우 요기니 딴뜨라(yogini tantra)의 등장 이후 승원 외부의 재가자 요기(yogi), 요기니(yogini)들 중심으로 딴뜨릭 수행이 성행했으며, 출재가자 여부와 신분 계급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을 통해 밀교의 성취자인 싯다(siddha)가 될 수 있었다. 최경아, 《인도초기대승의 수행문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기원과 전개》

재가 수행자인 응악빠/응악마는 밀교 수행자로서 우바새/우바이계, 보살계와 밀교계를 받고 각종 의식을 집전하며 수행에 전념하므로 일반적인 세속의 재가 불자와는 구별된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질 수 있다. 응악빠에는 혈통을 통해 대(代)를 거쳐 이어지는 전승과 법맥의 전수를 통해 이어지는 전승 두 종류가 있다. 사캬빠의 수장인 사캬 티진(sa skya khri 'dzin)의 직위도 쾬(Khon)족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응악빠의 일종이다.

닝마, 까규 등 소수 종파의 환생자들 중에는 출가 비구인 환생자도 있지만 결혼을 하는 환생자도 있다. 출가 수행자가 되기를 원치 않거나, 성적 요가의 성취를 위해 재가 수행자로 남기를 원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환생자가 수승한 법연(法緣)을 갖춘 환경에서 다시 환생할 수 있도록 태(胎)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또한 환생자들 중에는 뗄된(gter ston)이기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뗄된이란 뗄마(gter ma)라는 빠드마삼바와와 예세 초겔의 보장(寶藏)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컬으며, 주로 닝마빠 수행자 중에 많다. 만약 뗄된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단명(短命)하거나 보장을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뗄된이 뗄마를 발견하는 과정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보적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한 환생자들은 구족계를 받지 않거나, 환계 후 환속한 재가 수행자이며 출가 수행자가 아니다.
닝마빠에는 일찍이 출가 수행자와 재가 수행자
두 전통이 공존했다.

출가 수행자, 즉 구족계를 받은 비구, 비구니인 겔롱빠(dge slong pa, 남성)/겔롱마(dge slong ma, 여성)는 일체 음행을 금하는 구족계에 의거하여 결혼을 할 수 없고 성관계도 당연히 가질 수 없다. 구족계를 받은 승려는 무상요가 딴뜨라 수행 가운데 하나인 성적 요가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에는 구족계를 받았음에도 결혼한 이른바 '대처승'은 없다. 만일 승려가 결혼을 원한다면 다른 불교 교단과 마찬가지로 구족계를 환계(還戒)하고 환속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빠에는 비구계나 사미(니)계를 받은 승려, 즉 출가 수행자만 존재하며 재가 수행자는 환속한 몇몇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에서는 용수보살부터 아티샤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요한 대승불교 논사들이 음행(淫行)을 범하지 않는 청정 비구의 신분으로 밀교를 수행했다고 본다. 다만 학계에서는 용수(나가르주나)나 성천(아르야데바) 등 용수와 그의 제자들이 저술하였다는 용수류(龍樹流) 혹은 성자부자류(聖者父子流) 밀교 관련 논서들을 9~10세기에 지어진 후대의 저작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용수 같은 초기 중관 논사들이 밀교수행자였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아티샤 등 후기 대승 논사들이 밀교수행자였으며 동시에 범행자(梵行者)의 성적 요가를 엄격히 금지하여 범계(犯戒)에 유의했음은 문헌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승려의 계율을 중시했던 겔룩빠의 창시자 쫑카빠도 평생 독신의 비구 신분이었고 대신 중음(中陰)에서 밀교 수행법을 통해 불과(佛果)를 성취했다고 알려졌다.
《초불(初佛)대(大)딴뜨라》에서
애써 금하기 때문에
비밀(秘密)과 지혜(智慧)의 관정을
범행자(梵行者)는 받아서는 안된다.

만약 관정을 받는다면
범행의 고행에 머물면서
금한 것을 행한 것이 되기 때문에
고행의 율의를 잃게 된다.

금계(禁戒)를 가진 이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게 되고
그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아티샤, 《보리도등론》 양승규 譯

티베트 불교에는 많은 재가 수행자 요기, 요기니들이 있지만, 티베트 불교의 기반은 다른 불교 종파와 마찬가지로 승원(僧院, monastery) 중심의 출가불교라고 할 수 있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경론에 의거하여 재가자의 허물과 출가자의 공덕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쫑카빠는 세속에서 수행하기 어렵고 출가의 공덕이 크기 때문에 재가자는 출가자가 되기를 발원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바라밀승은 물론 금강승을 수행하여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는데도 출가자가 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또한 쫑카빠는 별해탈계, 보살계, 금강승계 등 삼종율의(三種律儀)에 있어서 별해탈계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므로 별해탈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전 譯 《보리도차제광론》 관련 내용" 펼치기ㆍ접기】
지금 여기서 재가자는 법을 닦음에 장애가 많으며, 많은 허물에 잘못 집착하는데, 출가자는 이와는 반대로 생사윤회를 끊어버리는 몸으로서, 최고의 출가인이 되었기에 지혜로운 자는 출가를 진실로 기뻐해야 한다.

재가의 허물과 출가의 공덕을 거듭 생각한다면, 이미 출가한 사람으로서는 뜻을 견고히 하고,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착한 습관을 수립하고 각성해야 하므로 이 도리를 약간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재가자는 부유하다면 그것을 지키는데 고통이 있고, 가난하다면 부를 구하고 고통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있다. 이로써 안락이 없음에도 어리석음으로 안락을 삼는데, 이것은 악업의 과보임을 알아야 한다.

《본생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감옥과도 같은 가정을
조금도 안락이라고 생각지 말라.
부자이건 가난하건 간에
가정에 머무름은 큰 병이어라.

첫째는 지키려는 데에 번뇌하고
둘째는 구하려는 데에 피로하구나.
부자이건 가난하건 간에
어디에도 안락은 없다네.

이에 즐거워하여 어리석다면
죄악의 과보만 익어간다네."

그러므로 많은 물건을 갖추고 만족할 줄 모르고 구함은 출가인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재가자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가정에 머무름은 법과 어긋남으로써 집에서는 법을 닦기가 어렵다.

또 이 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이런 등등의 재가의 허물을 거듭 생각하고, 출가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만일 재가의 업을 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타인에 죄를 짓는 자에게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네.
만일 법을 행하려 가업을 버리고서도 가정을 돌아본다면
어찌 법을 얻을 수 있으랴.

법의 일은 지극히 평화롭네.
집안의 일이란 완력으로 얻어야 하나니
그것은 법과 어긋나는 허물이 있으므로
자기에게 이로움을 원하는 자라면 누가 집에 머무랴.

(가정은) 자만과 교만과 어리석음과 같은 뱀의 굴.
그것은 적정의 기쁨을 부숴버리네.
참을 수 없는 많은 고통이 있는 곳이니
그 누가 뱀굴과 같은 집에 머무랴."

그리고 또한 조악한 법의(法衣)와 초라한 바리때와 걸식으로써 만족하고 적정처에서 자기의 번뇌를 청정히 하여 타인의 복전이 되기를 발원해야 한다.

《칠동녀인연론 七童女因緣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컨대, 머리를 깎은 자가 되어서
분소의를 걸치고
절(도량)에 머물기를 원하나니
언제나 그렇게 되어 볼까.

앞을 바라보는 것은 멍에의 길일 뿐
손에 든 것은 흙바리때라네.
차별 없이 집에서 집으로
언제나 걸식을 해볼까나.

이양(利養)과 공경(恭敬)을 탐하지 않고
번뇌가시의 수렁을 맑히고
번뇌를 맑게 닦아
언제 마을의 보시 공양처가 되어 볼까나."

(출가자들은) 풀로써 깔개를 하고 지붕 없이 잠을 자며, 이슬과 서리가 옷을 적시고, 조악한 음식으로써 만족해하며 나무 밑에서 잠을 자고, 풀자리에 자고 눕는 법락(法樂)으로써 살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칠동녀인연론에서》)

"어느 때 풀섭에서 일어나랴.
서리와 이슬이 옷을 무겁게 적시고
조악한 음식 정도로써
이 내 몸을 탐함이 없는 때이라

나무 곁의 앵무새처럼
푸른색의 보드란 풀이 내 옷이 되어
법이 드러남을 보는 즐거움의 기쁨이 생길 때라야
그때 나는 누워 잘 수 있으리."

선지식 뽀또와는 지붕 위에 눈이 쌓인 후, “어제 밤에 칠동녀 인연을 말한 것과 똑같이 되어서 마음이 기쁘다. 그런 식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것 이외는 다른 것이 없노라”라고 하였다.

약초밭과 강기슭에 머물러, 물결의 생김과 무너짐이 자기 몸과 목숨 같음을 생각하고, 삼유의 근본이 모두 나쁜 견해를 생기게 하는 아집을 관찰혜(觀察慧)로써 멸제하고, 윤회의 환락과 염오하고 세간이 환화(幻化)와 같음을 거듭 거듭 사유하고 기원함이란, 다음과 같이 소망해야 하나니, 이 모든 것은 출가한 몫으로서, 이 일을 하는 데에 서원을 세워야 한다.

"어느 때 강기슭 약초밭에 앉아.
물결의 무상함을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의 세간과 똑같을 것이니
거듭거듭 관찰해 보라.

모두가 악견이 되어버리는
신견을 부숴버려라.
윤회의 수용을 즐기지 않음에
내 언제 그리 되어 보랴.

꿈 · 신기루 · 환영 · 구름
심향성(尋香城)과 같은
동(動) 부동(不動)의 모든 세간
내 언제 깨닫게 되랴."

선지식 체까와는, “고행의 산간에 신선의 행동으로서 안주할 수 있다면, 이제야 아버지가 자식을 기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고, 샤라와도 “재가자가 일이 많아 바쁠 때엔 좋은 옷을 잘 차려 입고 그에게 찾아가서 출가가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하게 하여 미래에 출가의 습기를 심어 놓으라” 라고 하였다.

《용맹장자청문경 勇猛長者請問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 또한 고통의 본거지인 가정에서 떠나려 하지만 언제 이렇게 행할 수 있으랴. 나 또한 언제 승가의 일, 포살의 일, 해제의 일, 예경의 일에 머무를 수 있을까. 생각하여 이와 같이 출가의 마음을 즐겨야 하리라."

이는 보살이 가정에 머물기에 그렇게 서원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바, 이것은 주로 비구계를 바라야 함을 말함이다.

《장엄경론》에서, “출가 자체가 무량의 공덕을 갖추고 있나니, 이 때문에 서원을 지키는 이는 재가자보다 월등하여라”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수행하는 데에 삶[生]이 출가한 것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방식으로 일체 종지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또한 출가를 최상의 삶[生]이라고 말한다. 출가의 율의는 삼률의(三律儀) 안에서 바로 별해탈이므로, 거룩한 가르침의 근본인 별해탈을 존경해야 한다.

계율, 의식, 예법, 복식 등에 있어서도 출가 수행자와 재가 수행자의 구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티벳불교의 재가 수행자는 머리를 기르고 백색 의복을 입지만, 출가 수행자는 삭발하고 사프란(saffron)색 가사를 입는다.[118] 하지만 때로 복식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혼동을 주는 경우도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12.3. 육식?[편집]

티베트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농경보다는 목축이 주를 이루었다. 식생활도 밀과 보리같은 곡물과 육류, 유제품 위주이며 여기에 차(茶)를 더하여 부족한 비타민 등을 보충한다. 농작물을 구하기 힘든 티베트 민족에게 육식은 불가피한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티베트 민족의 식습관을 두고 육식을 기피하는 동아시아 불교권의 불자들은 혹 육식이 불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할 때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육식이 계율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따르는 설일체유부 계통의 《율경근본율(Vinayasūtra) 》이나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에서 따르는 법장부 계통의 《사분율(四分律)》, 남방 상좌부 불교의 율장인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등은 모두 '삼정육(三淨肉)'과 같은 예외 사항을 만들어 육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육식을 금하는 것은 《범망경(梵網經)》의 대승계 때문이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범망경》의 대승계가 아닌 《입보살행론(Bodhisattvacaryāvatāra)》, 《대승집보살학론(Śikṣāsamuccaya)》의 대승계와 《유가사지론(Yogācārabhūmi-Śāstra)》 〈계품〉의 대승계를 따르는데, 여기에는 육식을 직접적으로 금하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도가 삼정육을 섭취하는 것은 별해탈계나 보살계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계율 문제와는 별개로 티베트 불교에도 자발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있다. 과거 까담빠의 아티샤(Atisha)나 닝마빠의 샵카르(Shabkar) 같은 고승들은 평생 채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는 닝마빠의 차트랄 상게(Chatral Sangye) 린뽀체, 뻬마 왕걀(Pema Wangyal) 린뽀체나 깔마 까규빠의 17대 까르마빠(Karmapa) 오걘 틴래 도제(Orgyen Trinley Dorje), 밍규르(Mingyur) 린뽀체, 그리고 겔룩빠의 삼동(Samdhong) 린뽀체, 라마 소빠(Lama Zopa) 린뽀체 등이 티베트 불교 내의 대표적인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도 인도 망명 이후 1964년부터 스무 달 가량 완전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급격한 식습관의 변화로 인해 심한 황달이 발생하고 담낭에 결석이 생겨[119] 담낭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 끝에 채식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불가피한 경우에만 육류를 섭취하며, 공장식 축산업을 지양하고 불살생과 채식을 권장하는 법문을 여러 차례 설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을 맞아 "생명 존중과 환경 보호를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동물 착취를 줄이고 채식을 하는 것이 보다 자비롭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가령 티벳 북부나 몽골처럼 추운 기후 때문에 대대로 가축에 생계를 의지하던 사람들까지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반면 인도는 농작물이 풍부하고 채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메세지를 전했다. 달라이 라마의 메세지처럼 인도 내 티베트 불교 대학이나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는 최근 채소와 과일 식단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채식 공양만을 하는 사원들도 있다.
  • 2012년 세계 자비의 날(World Compassion Day) 제정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동물복지 진흥 및 채식 장려 메세지 # #
  •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채식 장려 메세지 # #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달라이 라마의 메세지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우리들의 집》

외적인 의례를 중시하는 소작(所作) 딴뜨라, 행(行) 딴뜨라는 관정(灌頂) 등의 의식을 치를 때 육류, 어패류, 계란, 오신채 등의 섭취를 엄격히 금한다. 또한 무상요가 딴뜨라에 속하는 칼라차크라 딴뜨라(Kālacakratantra)에서도 육식을 엄격히 금하며, 닝마빠 족첸 수행자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무상요가 딴뜨라의 회공(會供, gaṇacakra) 때 청정과 비청정의 집착을 벗어난 '이원성의 초월(不二性, advaya)'을 목적으로 고기, 대소변, 혈액, 정액 등의 부정물(不淨物)을 오종육(五種肉, Sha lnga, sha chen sna lnga)과 오감로(五甘露, bdud rtsi lnga)라 하여 공양물로 쓰는 경우가 있으나 후대에는 요거트, 과일즙 등의 온건한 물질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의궤는 무상 요가 수행의 자격과 근기를 갖춘 극소수 수행자들이 세간에서 더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이용하여 고도의 선정력(禪定力)을 바탕으로 미세한 분별심을 정화시키기 위해 행하는 것이지 절대 일반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이 아니다.

12.4. 초야권?[편집]

원나라 때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인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청말민국초기 일부 한족 역사학자들과 신력건(信力建)이라는 현대 중국의 언론인 등이 민담과 전설, 민간풍습을 재구성하여 추측한 주장에 불과하다. 정사(正史)인 《원사(元史)》, 《원조비사(元朝秘史)》, 《신원사(新元史)》 등에는 초야권과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청말(淸末)에 이르면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면서 반청(反淸) 선전의 일환으로 원말(元末) 농민 봉기 시절과 관련한 여러 뜬소문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초야권도 그 중 하나이다.

또한 인터넷상에는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베트 불교권 지역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승려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syphilis) 감염의 주요 경로가 되었다는 출처 불분명한 주장이 있다. 과거 몽골 승려들 중 일부는 성적 금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상의 주장처럼 몽골 승려에게 초야권이라는 명시적인 권리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캠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의 바산자브 테르비쉬(Baasanjav Terbish)는 딴뜨리즘의 성력(性力) 수행만으로는 몽골 승려들의 성생활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보았다. 딴뜨리즘의 성력 수행은 범속한 성행위와는 달리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근기를 갖춘 극소수 수행자에게만 허용된 고도의 수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테르비쉬는 딴뜨리즘 뿐만 아니라 세속 사회와의 근접성과 사원의 경제활동에도 주목하였다. 몽골의 승려들은 출산을 돕고 불임 부부의 임신을 축원하며, 결혼할 길일(吉日)을 택해주고 이혼을 허가하는 등 유목민 사회의 신체적, 성(性)적 문제에 관여하였고 일부는 성력 수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속인화(俗人化) 되었다.

또한 불교 사원들이 상업, 운송, 숙박 등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사원의 부가 증대함에 따라 승려들의 사유 재산 소유가 허용되었고, 사원의 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승려가 자신의 적자(嫡子)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테르비쉬의 주장과 몽골의 매독 전염사(史)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몽골 승려와 유목민 사회 간의 밀접한 관계와 사원의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인해 승속(僧俗)의 구분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풍조 속에서 근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매독이 몽골 승려들과 그 친족들에게도 전파되었다고 여겨진다.
Baasanjav Terbish, 《Mongolian Sexuality: A Short History of the Flirtation of Power with Sex》

12.5. 복식[편집]

계를 수지한 티베트 승려는 하의로 모두 샴탑이라고 하는 붉은색 통짜 천을 두른다. 전통적인 상의를 보면 종파를 대강 구분할 수 있다. 닝마빠 울렌이라고 하는 차이나 컬러에 소매가 없는 조끼만 입으며 싸꺄빠와 까규파는 울렌 위에 뙨까라고 하는 붉은색 조끼를 덧대입는다. 그리고 겔룩빠는 울렌 대신 뙨까만 입는다. 또한 의식에 쓰는 모자가 겔룩빠는 노란색이어서 황모파(黃帽派), 나머지 닝마빠, 쌰까빠, 까규빠는 붉은 색 모자를 쓰기 때문에 홍모파(紅帽派)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황모파, 홍모파 등 복식에 의한 종파 분류는 중국인들이 편의상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한 분류이며 티베트 불교 내부에서 쓰이는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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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용수(150~250 / 龍樹 / དཔའ་མགོན་ཀླུ་སྒུབ་ / Nagarjuna)
2. 성천(170~270 / 聖天, 提婆, 聖提婆 / འཕགས་པ་ལྷ་ / Aryadeva)
3. 덕광(394-468 / 德光, 功徳賢 / ཡོན་ཏན་འོད་ / Gunaprabha)
4. 진나(480~540 / 陣那, 域龍, 大域龍 / ཕྱོགས་ཀྱི་གླང་པོ་ / Dinnaga)
5. 청변(490, 500~570 / 淸弁 / ལེགས་ལྡན་འབྱེད་ / Bhavaviveka)
6. 불호(470-540 / 佛護, / སངས་རྒྱས་སྐྱངས་ / Buddhapalita)
7. 월칭(600~650 / 月稱 / ཟླ་བ་གྲགས་ / Chandrakirti)
8. 적천(685~763 / 寂天 / རྒྱལ་སྲས་ཞི་བ་ལྷ་ / Shantideva)
9. 무착(395~470 / 無着 / ཐོགས་མེད་ / Asaga)
10. 세친(400-480 / 世親 / དབྱིག་གཉེན་ / Vasubandhu)
11. 석가광(8세기 초 / 釋迦光 / ཤཱ་ཀྱ་འོད་ / Shakyaprabha)
12. 법칭(6-7세기 / 法稱 / ཆོས་གྲགས་ / Dharmakirt)
13. 사자현(8세기 중엽 / 師子賢 / རྒྱལ་སྲས་སེང་གེ་བཟང་པོ་ / Haribhadra)
14. 성해탈군(6세기경? / འཕགས་པ་རྣམ་གྲེལ་སྡེ་ / Araya Vimuktisena)
15. 적호(725~790, 728~788/ 寂護 / ཁན་ཆེན་ཞི་བ་འཚོ་ / Shantarakshita)
16. 연화계(740~795 / 蓮華戒 / པད་མའི་ངང་ཚུལ་ / Kamalashila)
17. 아티샤(982-1054 / 燃燈吉祥智 / ཇོ་བོ་རྗེ་ / Atisha Dipankara Shrijnana)
[2] 각 종파 별로 열리는 대(大)기원 법회. 사부대중이 모여 수 일간 기도, 공양, 토론, 명상 등을 하며 불법(佛法)의 지속과 흥왕을 기원한다. #[3]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 테라와다 불교(Theravada buddhism)에 이어 불교 종파 중 규모 3위에 해당한다.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4] 《입보살행론》과 《중론》의 게송은 각각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리심과 공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오온(五蘊)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란 다섯 가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가리킨다. 달라이 라마는 아침마다 《입보살행론》의 게송을 사유하며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와 보리심을 일으키고, 《중론》 게송의 '여래'를 '나'로 바꾸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늘 사유한다고 한다.[5] 김성철, 《중론 개정본 - 산스끄리뜨 게송의 문법 해설을 겸한》 번역 참조.[6] 티베트인은 티베트 자치구 바깥쪽 쓰촨성, 윈난성, 칭하이성, 간쑤성 등지에도 많이 살고 있고, 혹은 티베트인이 아닌 중국의 다른 민족 중에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7] 용수보살의 탄생을 예언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성(佛性)에 관한 10대 경전 중 하나이다.[8] 대승 불교 전통에서는 석가모니가 반열반 이후에도 용수보살을 비롯한 미래의 선지식들로 화현하여 계속 중생 제도를 이어갈 것임을 예언한 구절이라고 해석한다.[9] 초창기 서구의 학계에서도 라마이즘(Lamaism)이라는 단어를 썼다.[10] 기존에 마하연은 북종선 계열의 선승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남종선 계열 혹은 양자 모두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수경(성제), 《티벳 불교의 쌈예 논쟁에 대한 재검토》[11] 화상(和尙)이란 승려를 높여 부르는 한자어이다.[12] 티벳 측 문헌인 《바세(sBa bshed)》와 중국 측 문헌인 《돈오대승정리결(頓悟大乘正理決)》은 쌈예 논쟁의 결과를 서로 엇갈리게 기록했다. 양측의 기록이 상반되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티송데첸 왕을 비롯한 당시 티베트의 권력층이 인도불교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쌈예논쟁 이후 인도불교는 티벳 지역에 확고히 자리잡게 되고 불사불관(不思不觀)의 돈법(頓法)을 주장하는 마하연 화상(和尙)의 선종은 '화샹(hwa shang)'의 가르침이라 불리우며 배척의 대상이 된다. 선종과 유사한 점이 있는 닝마빠의 족첸이나 까규빠의 마하무드라 전승도 '화샹'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타 종파의 비판을 듣곤 하였다.차상엽, 《싸꺄빤디따(Sa skya paṇḍita)의 마하무드라(Mahāmudrā) 비판》 Roger R. Jackson, 《Sa skya paṇḍita's Account of the bSam yas Debate: History as Polemic》 David Jackson, 《Enlightenment by a single means : Tibetan controversies on the "self-sufficient white remedy"(dkar Po Chig Thub)》[13] 윗 열 : 티베트 불교의 장수삼존(長壽三尊)인 백색 따라(Tara), 무량수불(Amitayus), 불정존승모(Namgyalma). 아랫 열 : (左) 아티샤의 수제자인 돔뙨빠 걀웨 중네('brom ston pa rgyal ba'i 'byung gnas), 잠발라(Jambhala), 돔뙨빠의 수제자 뽀또와 린첸 쌀(po to ba rin chen gsal)[14] 무슬림의 종교 박해는 인도 불교 쇠멸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 외에 주로 신흥 상인계급과 왕족의 지지를 받아 민중계급에는 불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점, 불교의 힌두이즘화(Hinduism 化) 등 여러 가지 원인설(說)이 제기되었다.[15] 모든 번뇌를 자르는 반야이검(般若利劍)과 모든 경전 중에 가장 중요하다는 《반야경》을 지물(持物)로 갖고 있다. 지혜의 화염에 휩싸인 반야이검은 각각 무지(無知)의 어둠을 밝히는 불, 무지의 뿌리를 끊는 검으로 해석한다.[16] 본 문서에서 '소승'은 티베트 불교에서 정의한 불교 4대 종파에 속하는 설일체유부, 경량부를 주로 지칭한다. 대승불교 전통에서 '소승'이라 일컫는 부파는 주로 유부, 경량부 등 북방 상좌부 계열에 해당하며, 현존하는 남방 상좌부 계열과는 무관하다. 소승 대신 성문승(聲聞乘, Śrāvakayāna) 등의 대체어를 사용할 때도 있으나, '대승과 대비되는 대상으로서 역사상 존재했던 불교 부파들'이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소승이란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신 현존하는 남방 상좌부 불교의 경우 '상좌부 불교', '테라와다 불교' 등의 명칭으로 최대한 지칭하였다.[17] 4종의 암시적인 가르침과 4종의 간접적인 가르침.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18] ཉི་ཚེ་བའི་ཐེག་པ་(니체와 텍빠):  일부승. 단편적인 부분의 승인 소승(小乘) མཐའ་དག་པའི་ཐེག་པ་(타닥빼 텍빠) = ཐེག་པ་ཐམས་ཅད་པ་(텍빠 탐쩨빠):  전체승. 대승(大乘)[19] 인도불교에서는 논서가 간행되기 전, 논서가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지 여부를 여러 고승들이 심의한 후 비로소 대중에 공개하는 관행이 있었다.[20] 물론 티베트 불교 승려 모두가 강원과정 전체를 이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수준과 여건에 맞는 공부와 수행을 하며 기도, 의식, 행정 등의 직무를 담당하는 승려들도 많다. 또한 바쁘고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재가 불자들을 위해 람림, 로죵 위주로 축약된 교학과정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21] 2016년 9월 2일 동아일보 A28면[22]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의 논서인 《진실강요(Tattvasaṃgraha)》에서 인용한 경전 어구이다. 현존하는 경전(經, sūtra)에서는 1차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Śrīmahābālatantrarāja》라는 밀교 속전(續, tantra)에서는 거의 동일한 어구를 찾을 수 있다.[23] 《대승열반경》의 〈사의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현교 설명 도입부에 상술하였다.[24] 요가(Yoga)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수행을 통칭하는 말로 궁극적인 요가의 목적은 마음, 의식의 변화에 있다. 요가는 비단 요가학파 뿐만 아니라 인도 종교와 사상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용어이다.[25] 제임스 도티(James Doty), 폴 에크만(Paul Ekman), 에밀리아나 사이먼-토마스(Emiliana Simon-Thomas), 아서 자욘스(Arthur Zajonc) 등[26] 인도 불교 전통에서는 단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급작스런 깨달음, 즉 돈오(頓悟)를 인정하지 않는다. 설사 돈오를 이루더라도 이는 전생부터 이어져 온 점진적인 수행, 즉 점수(漸修)의 결과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과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본다. 닝마, 까규 등 소수 종파의 밀교 전승에서는 돈오가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들 종파 역시 차제(次第)에 따른 수행을 강조하는 인도 불교 전통에 포함되어 사실상 현교와 밀교로 구성된 점수(漸修) 체계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선불교를 비롯한 중국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돈수'나 '돈오점수' 등의 돈오와는 차이를 보인다.[27] 객진(客塵, གློ་བུར།)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미세하고 수가 많으므로 진(塵)이라 함.[28] 혹은 전자를 자성열반(自性涅槃), 후자를 택멸열반(擇滅涅槃)이라 한다.[29] 여래장을 '유위(有爲)의 여래장'과 '무위(無爲)의 여래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유위의 여래장은 부처가 되기 전 마음(의식)의 흐름(심상속心相續)을 뜻하며, 무위의 여래장은 그러한 마음의 흐름의 공성을 뜻한다. 객진번뇌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마음 자체는 본래 청정하며,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로서 마음이 작용하여 해탈에 도달할 수 있기에 '불성', '여래장'이라 한다. 마음이 본래 청정하며(심성본정心性本淨), 번뇌는 우발적인 현상이기에(객진번뇌客塵煩惱) 누구나 번뇌를 제거하여 해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본래청정한 의식에 관하여 아함경, 니까야 등의 초기경전에서는 광명심(光明心, Skt: prabhāsvara-citta or ābhāsvara-citta, Pali: pabhassara citta)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Bhikkhu Anālayo,《The Luminous Mind in Theravāda and Dharmaguptaka Discourses》 Wikipedia, 《Luminous mind》[30] 원만보신의 5가지 특징(ལོངས་སྐུའི་ངེས་པ་ལྔ།)은 다음과 같다. ①장소: 18구경천의 윤회하지 않는 정토(구경천밀엄찰토)에서 ②시간: 윤회계가 다할 때까지 영원히 머무심 ③몸: 32상 80종호를 갖춤 ④권속: 대승의 제자로 초지부터 십지의 대보살 ⑤설법: 대승의 법만 설함[31] 3가지 종류의 화신(སྤྲུལ་སྐུ་གསུམ།) ① 최승화신(最勝化身):  보신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 남섬부주에 사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32상80종호를 장엄하여 출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 ② 사업화신(事業化身):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능공 등으로 나타난 화신. ③ 수생화신(受生化身): 중생구제를 위해 제석천, 사슴, 새, 물, 다리, 나무 등으로 다양하게 태어난 화신.[32] 상좌부 불교를 비롯한 부파불교에서는 부처나 아라한이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후 반열반(般涅槃, parinirvana)에 이르게 되면 물질과 의식 등 온(蘊)들의 연속 또한 완전히 소멸된다고 본다. 반면 티베트 불교를 비롯한 대승불교 일부에서는 윤회를 지속시키는 업과 번뇌 등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되면 오염된 온(蘊) 또한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청정하고 자각하는 본성을 가진 마음의 연속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러한 연속을 단절시킬 다른 원인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부처의 출생부터 반열반까지의 일생인 12상(相) 혹은 8상(相)은 중생을 교화하여 수행으로 이끌기 위해 보인 방편에 해당하며, 반열반 이후에도 부처의 청정한 마음의 연속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부처는 오염된 오취온(五取蘊)이 아닌 정화된 오무루온(五無漏蘊)으로 이루어진 부처의 사신(四身)을 통해 일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제도행을 끊임없이 행하고 있다.[33] 특히 겔룩빠는 중관의 견지에서 여래장을 공성, 무자성과 동일하다고 해석한다.[34] 이와 관련하여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 교수는 연기, 공 같은 불교의 가르침이 형용사, 동사 등 술어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술어들의 명사화(nominalization)가 자칫 실체화, 실재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홍창성, 《홍창성의 철학하는 삶》<34. 허깨비 찾기>[35] 견수행과와 유사하게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에서는 수행론과 결과론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는 네 단계로 구분한다.[36] 본 탱화의 관세음보살은 팔이 4개인 사비(四臂)관음이다. 4개의 팔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상징하고 흰 색 몸은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상징한다. 정수리에는 근본 스승(本師)인 아미타불을 정대(頂戴)하고 있으며 가운데 양 손에는 여의주, 오른손에는 수정 염주, 왼손에는 백련(白蓮)을 들고 있다.[37] 대승(상사도)의 보리심 뿐 아니라 소승(중사도)의 출리심도 마찬가지로 밤낮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육십송여리론》의 주석처럼 "불타는 집에 갇혀 있던 이들이 그 곳을 벗어나고, 감옥에서 갇혀 있는 죄수들이 감옥을 탈출하려는 듯"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밤낮 없이 일어날 때 비로소 출리심이 생겼다고 본다.[38] ①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지키는 호법신(1,000명)의 두 배가 되는 호법신이 항상 지켜주므로 잠에 들거나 술에 취하거나 방일(放逸)하더라도 항상 주변에 머물고 있는 야차 또는 비인(非人, 사람 아닌 존재) 등이 해치지 못한다. ② 밀법(密法)을 쉽게 성취하게 된다. 밀교 또는 진언(眞言)들도 중생의 손에서는 전염병과 해침 등을 소멸되게 하지 못하지만 보살의 손에 오면 모두 이루게 된다면, 다른 성취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적업(寂業, 해침이나 질병 등이 평화롭게 해결되는 것) 등의 네 가지 업(적업, 장업, 력업, 폭업)을 빠르고 쉽게 이룰 수 있다. ③ 여덟 가지 공통의 성취(순간 이동의 신통, 투명인간의 신통, 땅 속으로 들어가는 신통 등)도 보리심이 있으면 더 빨리 이룰 수 있다. ④ 보살이 머무는 곳에는 공포와 두려워하게 되는 것과 굶주림과 비인(非人)들의 해침이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해침들은 바로 소멸된다.⑤ 죽은 뒤(바르도의 상태)에도 해침이 적고, 자체로서의 병(病)이 없으며, 해침이 일어나도 심하거나 오래가지 않는다. ⑥ 법(法)을 가르치는 등으로 중생을 이롭게 할 때 몸이 피로하지 않고 기억이 없어지거나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 ⑦ 보리심에 머물고 있으면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이 적어진다. ⑧ 화와 질투가 적어진다. 인내심이 많고 부드러움을 갖추었기에 남이 나를 해쳐도 참을 수 있고, 남을 내가 해치지 않기에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볼 때에도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고, 분노·질투·기만·은폐 등이 이따금 일어나고, 이러한 마음이 일어나도 그 힘이 약하고 오래가지 않아 빨리 벗어나게 된다. ⑨ 삼악도에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더라도 빨리 벗어나고, 삼악도에 있어도 고통이 적고 그 고통으로 인해서 염리심(厭離心)과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일어난다.[39] 관세음보살이 대비(大悲)의 본체인 대비심(大悲心)을 상징한다면, 따라보살은 대비의 작용인 대비행을 상징한다.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화현한 화신(化身) 혹은 여성 수행자의 몸으로 성불한 부처로 알려졌다. 오방불(五方佛) 중의 하나인 북방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 Amogasiddhi)의 불모(佛母)로서 불공성취불과 같은 녹색을 띈다.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는 불모(佛母)'라는 뜻의 도모(度母)로 한역되며, 관련 경전도 한역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다.[40] 보리심을 개발하는 로종 수행은 티베트 불교의 수행 체계인 보리도차제(람림)의 상사도(上士道)에 해당한다. 때문에 로종 수행을 하기에 앞서 이전 단계인 하사도(下士道)와 중사도(中士道)의 토대를 갖출 필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참조.[41] 성문승의 계율로서 개인의 해탈을 위해 따르는 계율인지라 '별해탈계'라고 한다. 재가자가 따르는 우바새ㆍ우바이계, 출가자가 따르는 사미ㆍ사미니계, 식차마나니계, 비구ㆍ비구니계를 일컫는다.[42] 참고로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의 보살계는 크게 범망계와 유가계 두 계열로 나뉜다. 법상종 계열에서는 《유가사지론》〈계품〉의 유가계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현재 조계종을 비롯한 대한민국 주요 불교 종단은《범망경》의 10개 근본 계율과 48개 보조 계율로 이루어진 범망계를 따른다.[43] 별해탈계, 보살계, 금강승계에 대한 논서인 《So thar byang sems gsang sngag gsum gyi sdom pa'i bslab bya nor bu'i 'od 'phreng(The String of Brilliant Jewels: Instructions on the Individual Liberation, the Bodhisattva and the Tantric Vows)》의 일부이다.[44] 자성이 공하다는 것으로 상견을 제거하고, 연기이므로 전혀 없는 것이 아닌 상호의존하여 발생하므로 단견을 제거한다는 방식으로 중도를 설명하기도 한다.[45] 상좌부 경전인《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산 개울물의 비유로써 설명했다. “산 개울물은 한 순간도 흐름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계속 흘러 내려간다. 바라문아, 이처럼 사람의 삶도 이 산 개울물과 같은 것이다." 산 개울물은 쉴 새 없이 흘러가므로 한 순간도 동일한 적이 없지만 흘러가는 현상은 지속되며 관찰 가능하다.[46] 주로 겔룩빠에서 진제와 속제의 관계를 이러한 인명학(불교논리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47] 불성ㆍ여래장 계열이나 선종(禪宗)에서 방편교설로 제시하는 '진아(眞我)', '참나'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부정대상인 '참나'는 방편설이 아닌, 외도(外道)의 아트만과 같은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아(我)를 의미한다. 참고로 선종에서는 유무(有無)의 양변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를 얻기 위해 갖가지 언어적 방편을 사용하는데, 가령 무변(無邊)에 치우친 경우 '한 물건(一物)'을, 반대로 유변(有邊)에 치우친 경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등을 설하여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선종의 '참나' 역시 '한 물건'과 유사한 의도를 지닌 언어적 방편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참나'라는 방편설이 취지와는 달리 대중에게 많은 혼동을 야기하여 불교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 한국 불교에서도 '참나'라는 표현을 점차 사용하지 않는 추세이다.[48] 이러한 논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외도(外道)는 오온 외에 별도로 '아트만', '참나' 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외도들은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근거로 들지만, 주관적 체험은 증명이나 반증이 불가능하며 믿음, 신념의 영역에 해당한다. 설사 주관적 체험을 인정하더라도 이들의 '아트만', '참나'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오온의 일부인 의식의 특정한 상태, 경계(境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는 불교적 관점에서 사무색정(四無色定) 중 하나인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에서 경험하는 의식의 일시적인 상태, 경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나마 식무변처정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선정에 속하지만, 대부분은 깊은 잠에 빠지거나 기절한 것 같은 무기(無記), 혼침(昏沈)의 상태를 경험한 후 이를 "분별망상이 끊어진 자리", "참나" 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를 요한다. 선정, 명상 중의 각종 체험이나 삼매(三昧, samadhi)는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이를 통해 번뇌로부터 일시적으로 멀어질 수는 있지만, 무아ㆍ공성에 대한 바른 지혜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번뇌의 근원인 아집을 제거할 수 없으며, 이러한 현상에 집착하고 진정한 '나'라고까지 여긴다면 도리어 아집이 더욱 공고해지는 폐단을 초래하게 된다.[49] 소승, 대승을 막론하고 모든 불교 종파는 공통적으로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인정한다. 제법무아란 오온 등 일체법이 무아, 무자성이란 뜻으로, 특정 대상은 무아의 집합에서 배제한다는 함의를 내포하지 않는다. 오온은 무아(無我)이며 무자성(無自性)이지만, '아트만', '참나' 등 오온을 제외한 나머지 무언가는 아(我)이며, 자성(自性)이 있다는 식의 비아설(非我說) 혹은 진아설(眞我說)은 제법무아의 본의를 곡해한 주장이며 브라흐마니즘의 아류일 뿐이다. 이는 '오온 외에 별도로 존재하는 '나'가 있다', '자성이 다수이다'란 주장과 별 반 다를 바 없는 진부한 가설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는 이미 본문에 서술하였고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승 논사들에 의해 논파당한 바 있다. 또한 비아설은 결과적으로 무아설이 지향하는 불교의 해탈 담론을 위배하는 모순을 초래하는데, 불교에서 해탈이란 바로 그러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아상(我相)ㆍ아집(我執)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번뇌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는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나'로서의 인아(人我), 법아(法我)는 언설(言說)로도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 부정하는 한편, 윤회와 업, 해탈 등의 주체로서 언설로 존재하는 '나'는 인정하여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양 극단을 배제하고자 하였다.[50] 제법무아를 비롯한 삼법인三法印(혹은 사법인四法印)은 불교와 비(非)불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예컨대 부파불교의 한 갈래였던 독자부(犢子部)는 윤회의 주체로서 오온과는 다르지만 오온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 뿌드갈라(Pudgala, 보특가라補特伽羅)의 존재를 주장하였으나, 불교의 근본 교리인 무아설에 위배되어 '불법에 붙은 외도(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로 비판받은 바 있다.[51] 다른 추론들에 관하여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 7, 8장을 참조할 것.[52] 정확히는 샤마타, 위빠샤나가 집중 명상, 분석 명상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집중 명상을 통해 샤마타, 분석명상을 통해 위빠샤나를 얻게 된다. 분석 명상에 관한 국내 서적으로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우리가 명상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53] 전오식(前五識)인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식과 제6식(第六識)인 의(意)식을 가리킨다. 티베트 불교는 중관학파의 견해를 따르기 때문에 유식학파에서 주장하는 제7식 마나식, 제8식 아뢰야식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아뢰야식 또한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전변(轉變)하는 존재이다. 세친보살(世親, Vasubandhu)은《유식삼십송》에서 "아뢰야식은 항상 폭류(暴流)처럼 변하고, 아라한의 지위에서 소멸된다."고 말하였다.[54] 티베트 불교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는 윤회를 지속시키는 업과 번뇌 등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되면 오염된 온(蘊) 또한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청정하고 자각하는 본성을 가진 마음의 연속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러한 연속을 단절시킬 다른 원인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부처의 출생부터 반열반까지의 일생인 12상(相) 혹은 8상(相)은 중생을 교화하여 수행으로 이끌기 위해 보인 방편에 해당하며, 반열반 이후에도 부처의 청정한 마음의 연속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부처는 오염된 오취온(五取蘊)이 아닌 정화된 오무루온(五無漏蘊)으로 이루어진 부처의 사신(四身)을 통해 일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제도행을 끊임없이 행하고 있다.[55] ➀ 감각적 욕망(kāmāchanda), ➁ 악의(vyāpāda), ➂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 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⑤ 회의적 의심(vicikichā)[56] 이를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 한다.[57] 자신의 수행을 위해 지은 《입보살행론》을 날란다 사원의 전교생 앞에서 암송하던 중 제9장의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공하다)”는 구절에 이르자, 점점 높이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모습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아 암송을 끝까지 계속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58] 달라이 라마의 《수심팔훈》 법문 링크[59] 상부: (左) 석가모니불 (右) 금강살타보살. 금강수보살은 모든 번뇌와 마라를 항복시키는 분노존(忿怒尊, krodhakaya)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금강저, 왼손에는 갈고리를 들고 있다. 금강수보살은 대세지보살 혹은 금강살타보살의 분노존으로 알려져있다. 분노존의 분노는 번뇌로서의 분노가 공성(空性)의 지혜에 의하여 중생을 위한 대자비로 전환된 형태이다. 이 경우 분노는 오염을 여읜 청정하고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한다.[60] 한국의 밀교는 대부분 조선조 불교 탄압으로 인해 독자적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현재 한국에 진각종, 총지종 등 밀교 종단이 있으나 모두 근현대에 새로 창종된 종단들이다.[61] 자성신(自性身), 법신, 보신, 화신[62] 지금강불의 짙은 푸른색은 허공같이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의미하고, 금강저와 금강령의 교차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의미한다. 84명의 마하싯다는 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밀교 대성취자들이다.[63] 대승 불교의 불신론(佛身論)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교화 대상인 중생의 근기를 따라 화현한 화신불(化身佛)이다.[64] 업을 짓고 쌓는 힘이 왕성하고 쉽게 성숙해서, 생의 전반에 쌓은 업이 생의 후반에 익는 땅을 말한다.[65] 문수보살이 성불하여 이룬 부처[66] 구루 빠드마삼바와가 생전에 자신과 닮았다며 가피를 내리고 "이제 이 불상은 나 자신과 다름없다"고 한 불상이다. 쌈예 사원에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고, 인도 시킴(Sikkim) 국왕의 모후가 찍은 사진만 전해진다.[67] 특히 겔룩, 사캬의 경우가 그렇다.[68] 바라밀승의 지관쌍수(止觀雙修) 역시 지혜(반야바라밀)와 방편(선정바라밀)의 합일에 해당하지만 이는 주로 자리(自利)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타(利他)와 관련된 방편(보시, 지계, 인욕바라밀)은 포함되지 않는다. 바라밀승은 또한 지혜와 방편을 합일하는 법에 대해 "지혜는 보시 등 이전에 행했던 힘의 영향을 받고, 방편은 공(空)에 대한 명상을 했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마음이 공성과 계합한 연후에 ‘모든 법이 공하다’는 관조력을 잃지 않고 보시, 지계, 인욕을 닦아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보리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성을 관(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이다. 그러나 금강승의 관점에서 볼 때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은 완벽한 합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독립된 두 의식에 해당한다.원명, 《탄트라 수행의 특징: 신체 구성요소의 활용》[69] 보리(菩提)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선근공덕 (善根功德)[70] 예를 들어 "진언이나 사다나(sadhana, 본존 성취의궤)를 하루에 몇 번 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관정을 준 아사리가 제자에게 수행 의무를 줄 때가 있다. 만일 이때 수행을 하기로 발원하고 약속했다면 꼭 준수해야 한다.[71] 불교 교단의 스승의 총칭[72] 부처가 제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미래에 제자가 성불할 것을 예언하는 행위[73] 5부대론을 배우는 커리큘럼 역시 나란다 사원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장(玄奘), 의정(義淨) 등 당나라 구법승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이 나란다 사원에서 유식, 중관, 인명, 구사 등을 배웠다는 내용이 나온다.[74]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75]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76] 앞줄 좌(左)부터 닝마빠의 뒤좀(Dudjom) 린뽀체, 깔마 까규빠의 16대 까르마빠(Karmapa), 사캬빠의 41대 사캬 티진(Sakya Trizin), 겔룩빠의 14대 달라이 라마(Dalai lama), 링(Ling) 린뽀체, 티장(Trizang) 린뽀체, 바쿨라(Bakula) 린뽀체.[77] 티베트어에서 빠(Pa)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닝마빠를 번역하면 '오래된(닝마) 사람(빠)'으로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임을 의미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Pa'는 '파'로 표기해야 하지만 초창기 이러한 표기 때문에 '파(Pa)'가 우리말 '파(派)'로 오해되는 일이 잦자 최근에는 표기법을 무시하고 원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티베트어는 엄연히 자음의 기식 유무를 구분하는 언어라서 베트남어처럼 된소리 표기가 허용되어야 하는데도 제대로 된 표기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티베트어를 위한 표기법이 따로 만들어진다면 된소리가 허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황이 비슷한 처지의 언어로는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고전 그리스어 등이 있다. 아무튼 논문이나 리포트는 전부 현행 표기법에 따라 거센소리로 쓰는 게 원칙이다.[78] 특히 현교보다는 밀교 전승의 전래에 따라 구파와 신파로 구분된다.[79] 좌(左)로 부터 1열: 보신불 금강살타(Vajrasattva), 법신불 보현왕여래(Samantabhadra), 화신불 가랍 도제(Garab dorje). 2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3열: 예세 초겔(Yeshe tsogyal), 빠드마삼바와의 적정존(寂靜尊) 구루 촉게 도제(Guru Tsokyé Dorje), 만다라와(Mandarava). 4열: 빠드마삼바와의 분노존 구루 닥뽀(Guru Dragpo), 호법존 싱하무카(Simhamukha) 5열: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 티송 데첸(Trisong detsen)[80] 《티베트 사자의 서》로 알려진 《바르도 퇴돌 첸모》도 까마가 아닌 뗄마 전승에 속한다. '바르도 퇴돌 첸모'란 '중음(中陰, 죽음과 환생 사이의 시간)에서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해탈'이란 뜻이다.[81] 좌(左)로부터 1열: 틸로빠(Tilopa), 지금강불(Vajradhara). 나로빠(Naropa). 2열: 성취자(siddha) 마이뜨리빠(Maitripa), 샹빠 까규(Shangpa Kagyu)의 창시자 케둡 큥뽀 낼죨(Kedrub Kyungpo Naljor). 3열: 밀라레빠(Milarepa), 감뽀빠(Gampopa). 4열: 깔마 까규(Karma Kagyu)의 창시자 두숨 켄빠(Dusum Kyenpa), 팍두 까규(Pagdru Kagyu)의 창시자 팍모 둡빠(Pagmo drupa).[82] 로짜와(lotsawa)는 '역경사'라는 뜻의 티벳어이다.[83] 사캬빠의 실질적인 성립은 꾄촉 겔뽀의 손자인 사첸 꿍가 닝뽀부터 시작된다. 지금강불 아래에 꿍가 닝뽀를 위시한 다섯 명의 사캬빠 창시자가 있다. 1. (가운데) 사첸 꿍가 닝뽀(Sachen Kunga Nyingpo) (1092–1158) 2. (왼쪽 위) 소남 체모(Sonam Tsemo) (1142–1182) 3. (오른쪽 위) 제쭌 닥빠 갤첸(Jetsun Dragpa Gyaltsen) (1147–1216) 4. (왼쪽 아래) 사캬 빤디따(Sakya Pandita) (1182–1251) 5. (오른쪽 아래) 도괸 최걀 팍빠(Drogön Chögyal Phagpa) (1235–1280)[84] 1열: 석가모니불 2열: (左) 쫑카빠의 두 수제자 초대 판첸 라마 겔찹 제(Gyaltsab Je), 케둡 제(Kedrup Je) 3열: (左) 문수보살, 문수보살의 분노존 야만따까(Yamantaka), 백색 따라.[85] 정치적 이유가 주(主)이고 사상적 문제는 부수적이다. 17세기 중반 제5대 달라이 라마와 그를 지원하는 몽골 세력이 중앙 티베트인 짱(Tsang) 지역 지배권을 두고 조낭빠와 충돌하면서 조낭은 겔룩 세력권인 짱 지역에서 축출된다.[86] 될뽀빠는 《보성론》등 《미륵오론》과 《승만경》등 여래장 계열 경전 외에도 용수보살의 《중론》,《찬법계송》을 자신들의 논거로 삼았다. 그들은《찬법계송》의 "화완포(火浣布:타지 않은 직물)가 불 속에 들어가면 더럽혀지지 않고 때를 제거하면 베는 본래같이 더욱 빛나는" 비유처럼 '지혜의 불이 객진번뇌를 태워도 광명심 혹은 법계는 불변하다'는 해석으로 타공설을 뒷받침하였다.[87] 탱화의 어원이 탕카라는 설이 있다. 국내에는 화정박물관에 티베트 탕카 컬렉션이 있다.[88] 큰 행사 때 하는 법회 방식이니만큼 이때 절은 법회 참가자로 엄청 소란스러워지곤 했는데, 이 야외 법회마냥 시끄러운 모습을 야단법석이라 한다.[89] 윤장대 내부에는 불경이 들어있고 마니 콜로 내부에는 진언이 들어있다. 글을 몰라 경전이나 진언을 외울 수 없어도 돌리는 것만으로 똑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법구(法具)이다. 붓다가 법륜을 굴리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90] 2014년 대대적인 출범 이전에도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가 있었다고 한다.[91] 티벳망명정부의 주한 대표부 역할을 하는 티벳하우스 코리아(Tibet House Korea)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92] 티베트족 자치주 내 최대 사원인 닝마빠 오명불학원의 지도자 중 한 명. 중국 본토 등 중화권에서는 달라이 라마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티베트 불교 스승이다.[93] 한국어 전용 채널은 아니지만 2021년 '춘계 아니 찌최' 법문부터 한국어 동시 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한국어 통역의 상시 제공 여부는 고지된 바 없다.[94] 이 중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신자 수는 10만~20만여 명 정도이다.[95] 아이러니하게도 처이발상도 어린 시절 티베트 불교의 승려였고, 그가 죽을 때까지 쓴 이름 '처이발상'도 승려 시절에 받은 법명이었다.[96] 데뿡 사원에는 로셀링(Loseling), 고망 두 강원이 있다. 로셀링에 2,500여 명, 고망에 2,000여 명의 승려가 소속되어 있다.[97] 상좌부 불교 문화권인 미얀마와의 접경지대에 사는 경우에는 상좌부 불교를 믿기도 한다.[98] 자세한 내용은 종교적 소수자, 타타르의 멍에 문서 참조[99]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Aginskoe datsan)[100]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101] 서구권 화교들과 달리 기독교 중에서는 정교회 세가 강하고 불교 중에서는 티베트 불교 세가 강하다.[102] 케냐, 남아공, 짐바브웨[103] 잘 들어보면 티벳어임을 알 수 있다. 흠좀무[104]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폴란드 등 다수의 유럽국가에 티벳불교 사원과 수행센터가 있다.[105] 유명 헐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 우마 서먼 등이 대표적인 미국의 티베트 불교 신자다.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고 한 때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로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이다. 우마 서먼은 부친이 미국의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학자인 컬럼비아대 교수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이다. 우마 서먼의 이름 중에 '우마(Uma)'란 퍼스트네임은 대승불교 사상인 '중관'을 뜻하는 티베트어이고 미들네임인 카루나(Karuna)는 '대비심'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106] 달라이 라마는 2018년까지 25차례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도쿄에 티벳망명정부의 대표사무소를 두고 있다.[107]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티베트 불교 센터가 있다.[108] 대승불교권 국가인 베트남인들과 동남아의 화교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도들이 존재한다.[109] 실제로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기 직전과 직후 인도의 승려들과 불경들이 전부 티벳으로 넘어갔기에 마지막 계승자로 보고, 티베트 불교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110]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111] 티베트 고위 승려중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이 있다.[112] 티베트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얍'과 어머니를 뜻하는 '윰'이 합쳐진 단어로 남녀합신상(男女合身象)을 가리킴.[113] 본존, 만다라 등의 이미지를 심상화(心象化)하는 것[114]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가 전해질 때부터 비구니 계맥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 승단에는 초기부터 비구니 없이 사미니만 존재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일부 티베트 불교 여승들(특히 외국인 출신의 여승들)이 한국, 대만, 홍콩 등에서 비구니계를 받았고, 티베트 불교 종단에서도 이들을 비구니로 인정하였지만 티베트 불교 종단 자체적으로 비구니계를 수계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 여승들의 권리 확대에 관심을 갖고 티베트 불교 내부에 비구니계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달라이 라마는 여자 승려도 남자 승려와 동등한 승가교육을 받고 게쉬(dge bshes)에 상응하는 불교 박사 학위인 게쉬마(dge bshes ma)를 수여받을 수 있게 허용하였다. 또한 1987년부터 티베트 불교계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주도 하에 붓다 재세 시에는 존재했던 비구니 승단이 왜 티베트에는 없는지, 티베트에서는 왜 비구니 구족계를 주지 않는지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만일 비구니 계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비구니 승단에게서 비구니계를 수계할 경우 첫째 티베트 불교가 자체적으로 원로 비구니 12명을 배출할 때까지 이부승(二部僧) 수계식은 외국인 비구니들이 집전할 것이라는 점, 둘째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는 법장부의 《사분율》을 따르는 반면 티베트 불교는 설일체유부의 《율경근본율》을 따르므로 기준이 되는 계목이 다르다는 점 등의 이유로 티베트 불교 종단 내부의 반대 여론이 강하여 달라이 라마 역시 비구니계 도입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향순, 《여성불교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생각》
[115] 비구나 비구니가 승단을 떠나야하는 무거운 죄. 살인, 음행, 절도, 대망어(아직 깨닫지 못한 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깨달은 성자인 척 대중을 속이는 거짓말)가 이에 해당한다.[116] 단, 상속(相續)이 성숙한 특수한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 계율을 어겨가며 성적 요가를 수행한 승려들은 대부분 발각 시 승단에서 축출되었으나, 예외적으로 스승과 종단의 인정을 받은 매우 특수한 몇몇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파계 또는 환속하여 더 이상 승단에 머물지 못하고 재가수행자로 살아가게 된다.[117]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혈(精血)을 의미한다. 미세한 몸과 의식의 차원에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을 산출하는 질료가 되므로 '보리심'이라고 한다.[118] 둑빠 까규빠의 무문관 수행자인 독덴(rtogs ldan, 남성) / 독덴마(rtogs ldan ma, 여성)는 응악빠처럼 머리를 기르고 흰색 의복을 입은 재가 수행자 복식을 취하지만 비구계를 받은 출가 수행자이다. 밀라레빠의 수행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 독덴은 안으로는 비구계를 지키고 겉으로는 재가 수행자의 외형을 갖추었다. 이는 비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되 비구의 특권은 포기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12년 간의 무문관 수행을 포함하여 일생을 수행에 헌신한다.[119] 의료진은 당시 인도인 측근의 권유에 따른 지나친 견과류 섭취가 담낭 결석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추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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