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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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원3. 특징4. 스승의 중요성5. 귀의6. 마음 동기7. 삼사도(三士道)
7.1.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7.2. 보리심의 발심(發心)과 공덕
8. 샤마타와 위빠샤나9. 소(小) 보리도차제10. 관련 문헌

1. 개요[편집]

티베트 불교에는 날란다 사원 전통을 계승한 특유의 불교 교육 체계가 있는데 이를 장춥람림(Jangchub lamrim), 한역으로 보리도차제(菩提道次第)라고 한다. 이름을 풀이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매겨진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에는 완전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드러낸 요의법(了義法)과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법(不了義法)이 있다. 광대한 불법의 바다에서 대소승의 요의법만을 모아 간추린 요의법의 왕이 바로 《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람림》에 의지하면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헤매지 않고 수행이 가능하다. 밀교의 매우 깊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한 생에 깨달을 수 있는지 여부도 《람림》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람림》의 내용은 크게 삼사도(三士道)지관(止觀) 수행으로 구성된다.
초펠,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게쉬 소남 걀첸, 2020 명상웹컨퍼런스《람림》강연 영상 1부, 2부

2. 연원[편집]

제자들에게 설법 중인 아띠샤

흔히 《람림》을 '아띠샤'나 '쫑까빠'와 같은 티벳의 카담파(Kadampa) 스승들이 만들었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람림》의 가르침이 석가모니로부터 유래했다고 본다. 대승 불교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불로부터 유래한 두 갈래 법맥이 있다. 석가모니불-미륵보살-아상가(무착)으로 이어지는 도의 광대한 실천을 중시하는 법맥(갸첸쬐규)과, 석가모니불-문수보살-나가르주나(용수)로 이어지는 공성의 심오한 견해를 중시하는 법맥(상모따규)이다.

인도의 스승 아띠샤가 전자의 법맥은 스승 '쎌링빠'로부터, 후자의 법맥은 스승 '릭빼쿠주'로부터 이어 받아 두 법맥을 통합하여《람림》이라는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이에 관한 논서로 《보리도등론(Skt. bodhipathapradīpa; Tib. བྱང་ཆུབ་ལམ་སྒྲོན་, changchub lam drön, Wyl. byang chub lam sgron)》이 있다.

아띠샤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지만 이후 담고 있는 분량에 따라서 '경을 자세하고 넓게 공부한 후 경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자(까담슝빠)', '람림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자(까담람림빠)',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서 수행하는 자(까담담악빠)'라고 하는 세 갈래 법맥으로 다시 나뉘었다.

이를 다시 카담빠 전승의 후계자이자 겔룩빠의 창시자 쫑까빠가 통합하여 《보리도차제광론(Tib. ལམ་རིམ་ཆེནམོ་, Wyl. lam rim chen mo)》를 저술했다. 이 외에도 《람림》과 관련한 여러 논서가 있다.
베이징 옹화궁(雍和宮)의 쫑까빠 불상[1]

3. 특징[편집]

《람림》의 가르침에는 네 가지 큰 이익과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이하는 경론에 의거한 나란다불교학술원 게쉬 툽텐 소남스님의 설명이다.
《람림》의 네 가지 큰 이익은 다음과 같다.
1) 부처님의 일체 교설에 모순이 없음을 알게 함.
2)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요의법)으로 받아들이게 함.
3) 부처님의 견해를 속히 얻게 함.
4) 일체 죄업들이 저절로 소멸됨.[2]

또한 《람림》의 세 가지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현교와 밀교의 일체 내용을 모두 담고 있음
2) 마음을 다스리는 순서를 우선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쉬움.
3) 용수와 무착의 교의에 정통한 두 스승(릭빼쿠주와 쎌링빠)의 비전을 보충하였기에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특별함.

그 밖에 경론에서 말씀하신 도(道)에 어긋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말하며, 그것에 부족함과 과함이 없고 수행 자체에 그 어떤 오류도 없다. 또한 상근기 중생만이 아니라 하근기, 중근기 등 각 근기의 모든 중생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람림》은 일체 교설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4. 스승의 중요성[편집]

헌신적인 제자의 전범(典範)인
제쭌 밀라레빠(Jetsun Milarepa)

《람림》에서는 스승을 도(道)의 근원이라 하였다. 스승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제자 돔뙨빠가 인도에서 온 스승 아띠샤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티베트에서는 토굴 수행 등을 많이 하는데 공덕이 이루어지는 수행자가 많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자 아티샤는 "소승과 대승의 공덕들은 다 스승에 의지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너희 티베트 수행자들은 스승에 대해 평범한 인식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덕을 이루기 어렵다."라고 말하였다.

스승을 부처로 인식하면 부처의 가피를 받고 평범한 인간으로 인식하면 평범한 가피를 얻게 된다. 진제(眞諦)의 차원에서 모든 부처와 마찬가지로 구루 또한 동일한 불성(佛性)[3]을 갖고 있다. 속제(俗諦)의 차원에서 스승에 대한 믿음과 헌신은 외적 스승을 부처로 보는 청정한 인식을 갖게 하여 진제의 불성을 깨닫게 하는 방편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처럼, 깨달음을 바르게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스승에 의지해야 한다.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바른 스승을 찾고 바르게 의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쫑까빠가 말하였다.

빼뚤(Dza Patrul) 린뽀체의《위대한 스승의 가르침(Kun bzang bla ma'i zhal lung)》에서는 스승을 의지하기 전에 스승을 관찰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승은 세세생생 귀의해야 할 대상이고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는 지도자이다. 만일 신중하게 관찰하지 않고 삿된 악지식(惡知識)을 만나면 평생의 선한 자량(資糧)이 악지식에 의해 사라지고 어렵게 얻은 인간의 생(生)도 헛되이 보내게 된다.

따라서 만일 어떤 선지식을 만났다면 그를 처음에는 법우(法友)나 도반으로 여기고, 경론의 가르침에 따라 6년, 10년, 12년 이상 관찰하며 바른 선지식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 함부로 스승으로 섬겨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일 스승으로 섬기게 되면 스승을 범부(凡夫)로 여기거나 함부로 흠잡는 일 없이 스승에 대한 청정한 인식을 유지해야 한다.
미륵보살의 《대승장엄경론(Mahāyānasūtrālaṃkāra)》에서는 선지식의 요건을 10가지로 말하였다.

1) 계학: 자기 자신을 조복함
2) 정학: 지(止, 샤마타)
3) 혜학: 인무아(人無我)의 지혜
4) 제자보다 뛰어난 공덕
5) 이타(利他)를 좋아하는 정진력
6) 교학: 경율론 삼장에 밝음.
7) 진여의 증득: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8) 언변이 좋음
9) 중생에 대한 자애심: 사랑과 자비로 법을 설함
10) 반복되는 설법을 싫어하지 않는 것.

10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계정혜 삼학과 진여의 증득, 중생에 대한 자애심 등 5가지 조건을 갖춘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두어가지 조건이라도 충족하는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성천보살의 《사백론(Catuḥśataka)》에서는 제자의 조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치우치지 않는 마음(편견이 없음)
2) 지혜(지성)
3) 구도심(求道心)

제자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마음[4]과 같은 신심과 공경심으로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을 다해 스승을 섬겨야 한다. 선지식 스승을 모시는 법은 마명(馬鳴, Aśvaghoṣa)의《사사오십송(事師五十頌, Gurupañcaśika)》 등 여러 대승 경론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승을 의지하는 수행법이 제대로 되면, 수행의 큰 문을 연 것과 같다. 이 때부터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5. 귀의[편집]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를 나타낸
람림 전승의 촉싱(tshogs zhing)[5]

다음은 《보리도차제광론》에 의거한 광성사 게쉬 소남 걀첸 스님의 법문 <불법에 들어가는 최상의 문, 귀의>의 요약본이다.
1. 귀의의 원인
귀의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

첫째, 윤회의 두려움: 이 생에 우리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죽으며, 죽은 뒤에는 반드시 태어나고 이 태어나는 것은 업(業)에 달려있다. 선업의 힘이 적고 악업의 힘이 크면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로 간다고 생각하여 악취(惡趣)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둘째, 삼보에 대한 믿음: 삼악도에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은 오직 불법승 삼보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슴 깊이 일으켜야 한다. 타 종교처럼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구제하는 것과는 달리, 삼보에 의지하는 가운데 스스로 수행하여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두 가지 원인을 깊게 사유하여야 하며 말로만 귀의해서는 안된다.
2. 귀의의 대상
1) 귀의의 대상이 삼보임을 안다는 것은 불법승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불보: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일체 공덕을 갖춘 분을 이름.
법보: 멸성제와 도성제. 멸성제는 번뇌를 제거하는 가르침이고, 도성제는 공덕을 이루는 가르침이다.
승보: 견도(見道) 이상의 성인

상술한 정의는 진제에서의 삼보이며, 속제에서의 삼보는 불상(불보), 십이부경(법보), 구족계를 받은 4명 이상의 승려가 모인 승가(승보)이다.

2) 삼보가 귀의처인 이유
첫째, 삼보 자신부터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둘째, 남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편에 뛰어나고
셋째, 일체 중생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자비를 베풀고
넷째, 자신에게 이익이 되든지 안되든지 관계없이 모두의 뜻을 성취케 하기 때문이다.
3. 귀의하는 방법
1) 삼보의 공덕을 알고 귀의하는 것
① 부처의 공덕에는 신(身), 구(口), 의(意), 사업(事業)의 공덕이 있다.
- 몸의 공덕 : 32상(相) 80종호(種好)
- 말의 공덕 : 60가지 음성의 특징[6]
- 마음의 공덕 : 지혜와 자비의 공덕
  • 지혜의 공덕 : 승의제와 세속제 등 모든 법을 정확히 아는 공덕
  • 자비의 공덕 : 번뇌의 악습에 묶여 있는 중생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대자비심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공덕.
- 사업의 공덕 : 부처의 신, 구, 의, 사업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일체 중생에게 이익되게 하는 것.
② 법의 공덕은 멸성제와 도성제의 공덕이다.
③ 승가의 공덕은 견도(見道) 이상을 얻은 성인(聖人)들의 공덕이다.

2) 삼보의 차이를 알고 귀의하는 것
삼보 각각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귀의하는 것. 무착이 《집학론》에서 6가지 차이[7]에 대해 말한 것을 이해해야 함.

3) 삼보를 인정하고 귀의하는 것
불보는 구제할 수 있는 법을 보여주는 분, 법보는 실제로 구제해주는 법, 승보는 구제해주는 도반으로 인식해야 함. 예를 들어 환자가 병에서 낫고자 할 때 의사와 간호사와 약에 의지하는 것처럼, 중생이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벗어날 수 있는 법을 보여준 의사 같은 불보, 실제의 약에 해당하는 법보, 환자를 간호해주는 간호사 같은 도반인 승보에 의지해야 한다.

4) 외도(外道)와 불도의 귀의처의 차이를 알고 귀의하는 것
외도와 불도의 귀의처의 차이를 이해하고서 오직 삼보만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음을 알고서 귀의하는 것.
4. 귀의하고 나서 행해야 할 것
1) 행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① 불보에 귀의하고서 다른 귀의처를 구하지 않는 것.
② 법보에 귀의하고서 중생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③ 승보에 귀의하고서 나쁜 벗과 어울리지 않는 것.

2) 행해야 할 것 6가지
① 삼보의 차이와 공덕을 기억하고서 거듭거듭 귀의하는 것.
② 이익을 생각하고서 밤낮으로 귀의하는 것.
③ 은혜가 큰 것을 생각하고서 공양 올리는 것.
④ 남을 귀의하도록 이끄는 것.
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삼보에 의지하는 것.
⑥ 어떤 경우에라도 삼보에게 귀의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 것.
5. 귀의함으로써 생기는 이익
① 불자(佛子)가 되는 것.
② 모든 계율의 토대가 되는 것.
③ 과거에 쌓은 업장을 줄이고 없애는 것.
④ 큰 공덕을 쌓는 것.
⑤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
⑥ 사람과 귀신으로부터 해침을 당하지 않는 것.
⑦ 모든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것.
⑧ 속히 성불할 수 있게 되는 것.

6. 마음 동기[편집]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행을 하기에 앞서 출리심, 보리심 같은 마음 동기를 강조한다. 마음 동기, 즉 의도에 따라 수행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승법을 수행하더라도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세속적 행복을 위해 수행하면 세속법이 되고, 자기 자신만의 해탈을 위해 수행하면 소승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수행이 끝난 후 회향(廻向)[8]을 할 때도 회향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번 생만을 위해 회향하면 회향의 공덕도 이번 생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내생을 위해 회향하면 다음 생까지 공덕이 이어지고, 더 나아가 일체 중생의 무상정등각을 위해 회향하면 일체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공덕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늘어난다.

오명불학원(五明佛学院)의 켄뽀 출트림 로죠(Tsultrim lodro) 스님은 경전에 의거하여 마음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마음 동기에는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세 가지 동기란 선하지 않은 동기, 무기(無記)의 동기, 선한 동기를 말한다. 먼저 선하지 않은 동기란 이번 생만을 생각하고 이번 생만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동기이다. 다시 말해 이번 생의 부, 명예, 건강, 장수 등을 얻고 장애와 고통을 피하려는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기 자체는 죄악이 아니지만 번뇌를 제거하지 못한 유루(有漏)의 법이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 이번 생만을 위하는 선하지 않은 동기로 수행하면 대원만이나 마하무드라 같은 최상승법을 수행해도 세간법과 다를 바 없으며 수행의 과보도 이번 생이 끝나면 사라진다.

무기(無記)의 동기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동기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방생의 공덕과 이익을 알지 못하면서 타인을 따라 무심코 방생에 동참하는 경우가 무기의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무기의 동기를 선한 동기로 바꾸라고 권한다. 무기의 동기일지라도 선한 동기와 무기의 동기와의 차이는 선한 동기와 선하지 않은 동기와의 차이보다 훨씬 작다.

선한 동기는 삼사도(三士道), 즉 하사도(下士道), 중사도(中士道), 상사도(上士道) 세 가지로 나뉜다. 하사도는 다음 생에 인간과 천상의 삶을 누리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악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선하지 않은 동기와 하사도의 차이점은 같은 유루의 행복이라도 이번 생만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다음 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중사도는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리심으로 다시 말해 소승불교의 성문, 연각의 발심이다. 상사도는 나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의 해탈성불을 바라는 보리심으로 대승보살의 발심이다. 중사도와 상사도의 차이는 자비심의 대소(大小)라고 할 수 있다.

귀류논증 중관학파는 자립논증 중관학파와 달리, 대승과 소승은 지혜의 측면에서 차이가 없으며 둘은 자비심의 크기에 따라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소승의 아라한도 인무아(人無我)뿐만 아니라 법무아(法無我)까지 아는 지혜를 갖추었다고 본 것이다. 귀류논증파에 따르면 보살 10지 중 제 7지에 해당하는 원행지(遠行地)에 이르러 비로소 보살은 종성(種性) 뿐 아니라 지혜로도 성문, 연각을 압도한다.

7. 삼사도(三士道)[편집]

7.1.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편집]

《람림》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취합하여 불교수행의 순서에 맞추어 하사도(下士道), 중(中)사도, 상(上)사도의 삼사도(三士道)로 정리했다.
  • 첫 단계인 하사도에서는 윤회의 세계 속에서 향상하는 것, 즉 내생에 인간계나 하늘나라와 같이 좋은 세간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방법은 남에게 많이 베풀고 계율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속의 길이다. 구체적으로 제행무상(죽음과 무상 사유), 윤회개고(삼악취[9]의 고통), 인신난득(사람 몸 얻기 어려움)[10], 인과응보(인과에 대한 믿음), 귀의삼보(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함) 등을 익힌다.
  • 둘째 단계인 중사도에서는 윤회의 고통을 절감하고서 해탈, 열반을 추구한다. 계, 정, 혜 삼학의 수행을 통해서 번뇌의 뿌리를 뽑는다. 아라한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전문수행자의 길이다. 구체적으로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을 익힌다.
  • 셋째 단계인 상사도에서는 불교수행이 무르익어서 해탈과 열반이 멀지 않은 수행자가, 보리심을 발하여 열반을 유예하고서 윤회 속에 머물면서 성불의 그날까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삶을 살아간다. 대승보살의 길이다. 구체적으로 육바라밀, 사섭법[11] 등을 익힌다.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를 차례대로 세간도, 나한도, 보살도라고 부를 수 있다. 혹은 인천(人天)승, 성문연각승, 보살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절차에 따라 첫 단계인 하사도부터 수행하여야 한다. 하사도 수행이 완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인 중사도 수행에 들어갈 수 있고, 중사도 수행이 무르익어야 그 다음 단계인 상사도를 닦을 수 있다. 중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의 심성을 갖추고 있고 상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와 중사도에서 익혔던 심성과 통찰 모두 그대로 갖추고 있다. 이렇게 보리도차제의 수행은 누적적(累積的)이다.
김성철, 《불교, 정확하고 명쾌하고 자유롭게 - 보리도차제》
김성철, 《Systematic Buddhology와 『보리도차제론』》
김성철, 《티베트 불교의 수행 체계와 보살도》

파일:50075.jpg

삼사도를 다시 그림으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1) 하사도
: 초기 불전에서 석가모니는 전문적인 수행이 어려운 일반 대중을 위해 보시(布施)하고 지계(持戒)하면 생천(生天)한다는 차제법문을 여러 번 설했다. 이처럼 다음 생에 인간, 천상과 같은 선취에 태어나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악도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하사도 수행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십선법(十善法)을 행하고 십악업(十惡業)을 멀리 한다.
"악업은 그 어떤 것도 짓지 말고,  선업은 원만히 행하라. 자기 마음을 완전히 교화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칠불통게(七佛通偈)[12]의 가르침처럼,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하사도의 가르침은 모든 수행의 토대가 된다. 또한 그 과보로 이번 생의 안락한 삶과 다음 생에 증상생(增上生)[13]을 누릴 수 있고, 해탈성불의 결정승(決定勝)[14]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들은 이번 생과 다음 생에도 팔유가[15] 십구족[16](八有暇 十具足)같은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

2) 중사도
: 아라한이 되어 개인의 해탈열반을 얻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하사도의 십선법을 토대로 하여 교법(敎法)인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익히고 증법(證法)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수행하여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는다.

3) 상사도
: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윤회의 끝없는 고통에서 구제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하사도의 십선법, 중사도의 계정혜 삼학을 토대로 보살승을 수행한다. 보살승에는 바라밀승과 금강승 두 가지가 있다. 바라밀승(현교)의 육바라밀(六婆羅蜜) 및 사섭법(四攝法)과 금강승(밀교)의 밀법(密法)을 수행하여 지혜와 방편을 갖춤으로써 부처의 과위(果位)에 이른다.

자신의 수행 동기가 진정 무엇인지 늘 자문(自問)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수행 동기에 따른 실천이 없다면 진정한 동기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자신이 말로는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신적 행복보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면, 일체 중생을 위한 수행은 커녕 이번 생을 위한 수행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생을 위한 공부는 엄밀히 말해 람림 기준에서는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다음 생을 준비하는 하사도(下士道)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불교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생을 위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더라도 이번 생의 이익이 있으며, 비록 마음 동기는 이번 생에 한정되어 있지만 수행의 공덕과 인연법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다음 생과 해탈성불을 이루는 것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삼보와 같은 복전(福田)에 의지하는 업(삼보에 예경, 헌공, 성지순례, 탑돌이 등)은 (1) 출리심, (2) 보리심, (3) 공성의 지혜에 의지한 업처럼 윤회로부터 멀어지는 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리도차제광론》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7.2. 보리심의 발심(發心)과 공덕[편집]

성불(成佛)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원만한 이타행(利他行)이 목적이다.
성불하지 않으면 흠결 없이 원만구족한 이타행을 이룰 수 없다.

티베트 불교는 대승 불교이기에 최종적으로 보살의 보리심(菩提心)[17]을 수행 동기로 삼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쫑까빠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측면에서 성문승ᆞ독각승이 갖는 한계를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사도(中士道)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윤회의 허물을 여러 방면에서 오랫동안 닦고 익혀서 육도 윤회가 불타는 구덩이와 같음을 보고서, 번뇌로 인해 생긴 고통을 완전히 멸하는 해탈 구하려는 마음으로 보배로운 삼학(계정혜)을 배워서 윤회에서 벗어난 해탈을 얻을 수 있고, 해탈을 얻으면 다시 또 윤회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허물 제거하는 것과 공덕 쌓은 것이 일부 만이기에(번뇌장만 제거되고 소지장[18]은 남아 있기에) 자신의 뜻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이타(利他)를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쫑까빠는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에 입문해야 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아라한(성문승‧독각승)의 경지를 이루어도 궁극에는 대승(구경일승究竟一乘)에 들어가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지혜로운 이들은 처음부터 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 대승(大乘)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마명보살의 《섭바라밀다론(攝波羅密多論)》에서『일체중생의 뜻을 이루는 데 힘없는 두 가지 승(성문승‧독각승)을 완전히 버리고 처음부터 대승의 대자비의 가르침에 따라서 몸과 말과 생각을 번뇌의 허물 하나도 없이 오직 이타를 위하는 한 맛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했고,『행복과 불행의 모든 법은 꿈과 같음을 보고(모든 법이 무자성이다. 실체가 없다), 무지(無知)의 허물로 떠돌고 있는 낮은(천한) 중생들을 볼 때 최상의 행인 이타의 기쁨 버리고 자신의 뜻을 위해 어떻게 정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한 것과 같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열반을 이룬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최종적으로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되어 번뇌장(煩惱障) 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까지 제거하고 부처를 이룬다고 본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 등의 경전에 의거한 이러한 견해를 구경일승(究竟一乘)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해심밀경》등의 경전에 의거하여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수행자들의 종성(種性)이 각각 다르고, 한 번 얻은 과위(果位)는 바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를 구경삼승(究竟三乘)이라고 한다.

보리심을 수행하면 일체 중생의 이익을 얻게 되는 한편 이번 생과 다음 생의 행복, 그리고 해탈까지 모두 자연히 이룰 수 있기에 그 이익이 크다. 다음은 보리심의 공덕에 관한 《입보살행론》〈보리심의 공덕품〉 일부와 달라이 라마의 법문이다.
너무나 얻기 어려운 가만(假滿)의 이 몸을 얻었으니
고귀한 인생을 의미 있게 할 수 있는데도
지금 이것을 이용하여 인간의 몸을 받는 이익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까.

캄캄하게 어두운 밤이라도 천둥이 치면
번개 빛이 잠시 대지를 밝히는 것처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중생들의 마음속에
선한 생각이 잠시 일어나나이다.

이와 같이 선의 힘은 언제나 미약하고
죄악의 힘은 매우 강대하고 무서우니,
수승하고 원만한 보리심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선으로도 그 악을 극복하기 어렵나이다.

오랜 세월 동안 깊이 사유하신 부처님들께서
보리심의 이익이 가징 광대함을 발견하셨으니
중생이 보리심에 의지해서 불법을 수행한다면
가장 수승하고 미묘한 지복을
반드시 얻게 되나이다.

존재의 무수한 고통을 극복하기 바라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기를 바라며
많은 행복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졌다면
결코 보리심을 버려서는 안 되나이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간
윤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불쌍한 중생이라도
선서(善逝)의 아들인 불자라 불려지고
신들과 사람들에게 예경의 대상이 되나이다.

보리심은 가장 수승한 연금액(鍊金液)과 같나니
오염되고 탁한 범부의 부정한 몸을
고귀한 부처님의 몸으로 변화시키는
이러한 보리심을 아주 견고히 지켜야 하나이다.

중생의 인도자이신 부처님께서 무한한 지혜로
깊이 사유하시고 [보리심을] 매우 존귀한
것이라고 하셨으니, 고통스러운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는 진귀한 보배와 같은
보리심을 굳게 지켜야 하나이다.

다른 선업은 모두 파초와 같아서
열매를 맺고 나면 시들어 버리지만
보리심의 나무는 열매를 맺고 난 뒤에도
시들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열매를 맺나이다.

큰 두려움이 있을 때 힘 있는 이에게 의지하듯
보리심에 의지하면, 극중한 악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한 순간에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보리심에 의지하지 않는가.

겁말(劫末)의 맹렬한 불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보리심은] 온갖 죄업을
일순간에 완전히 소멸시켜주므로

보리심의 공덕은
무량한 것이라서
자애로운 미륵보살은
선재동자께 말씀하셨나이다.

보리심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나니
발원하는 원(願)보리심과
발원한 것을 실행하는 행(行)보리심이나이다.

어디를 가고 싶어가는 것과
실제로 가는 것이 다르듯이,
현명한 이들은 이 두 가지 보리심의 차이를
순서대로 알아야 하나이다.

원보리심에 의해서도, 윤회 속에서
해매는 중생들에게 커다란 공덕이 생기지만
그러나 행보리심처럼
끝없는 복덕이 생기는 것은 아니나이다.

누구든지 보리심을 이르킨 뒤에
무수한 중생들을 해탈시키는 일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보리심을 바르게 지녀 실천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가, 잠을 자거나 방일에 빠져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더라도
[보리심을 가진] 공덕의 힘에 의해
허공같은 복덕이 끊임없이 생기나이다.

바르고 이치에 합당한 이 공덕들은
《선비청문경》에서
소승의 길로 향하는 이들을 위해
여래께서 말씀하셨나이다.

겨우 중생의 머리 아픈 고통을
없애주겠다는 생각만해도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좋은 의도 이기에 무량한 복덕을 얻게 된다면

모든 중생의 한량없는 고통을 없애주고
그들은 모두의 최고의 행복으로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그 한량없는 공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나이까.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에게, 중생을
요익케 하려는 이토록 큰 이타심이 있었던가.
신이나 성인이나, 혹은 범천(Brahman)이라 한들
누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겠나이까.

중생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꿈에서조차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 적이 없는데
하물며 다른 이를 위해 이런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겠나이까.

남들은 물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일으키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는 불자의 마음은
유례없는 경이로운 마음이나이다.

모든 중생들의 행복의 원천이고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치료하는 감로약인
이 보배로운 마음 보리심의 공덕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단지 남들을 도우려는 생각만 해도
보물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수승한 공덕을 얻는다는데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면
당연히 더 말할 수 없는 복덕을 얻게 되나이다.

중생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오히려 고통의 원인을 향해 달려가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행복의 원인들을 원수처럼 물리치나이다.

보리심은 , 행복을 잃어버리고
여러가지로 고통만 받는 이들에게
한량없는 기쁨을 주고
모든 고통을 없애주나이다.

보리심은 무명까지도 없애주나니
그에 비할 선업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선지식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복덕이 어디에 있겠나이까.

《입보살행론》〈보리심의 공덕품〉 석혜능 譯
"생각하는 것은 남을 돕고자 생각 하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대보리도차제》 - 쫑까빠 대사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장애를 없애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모든 성취를 가져오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아름다운 용모, 무병장수, 많은 중생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보리심입니다.

중생의 가난함과 괴로움, 슬픔을 없애는 것은 보리심입니다.

수행을 한다면 보리심 수행의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보리심이 일어나게 되면 악업을 정화하고 모든 복덕자량을 쌓는 것입니다.

보리심의 관한 법을 여러분들이 듣고 접한 것은 굉장히 큰 기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최대로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체중생들을 성불의 지혜로 내가 이끌겠다"는 마음을 내고 그러한 생각으로 보리심을 발심하세요.

제14대 달라이 라마

처음에는 진정한 보리심을 내기 힘들지만 단계별 수행을 통해 세속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출리심(出離心)[19]자비심(慈悲心)을 증장하면서 점차 진정한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엔 윤회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리심과 일체중생을 위해 윤회계에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보리심이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진정으로 윤회의 고통을 인식하고 윤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 후 다른 이들을 돌아보면, 그들이 겪을 윤회의 고통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즉 보리심은 달리 표현하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자비심을 발하여 출리심을 확충(擴充)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유교 등 대부분의 종교와 사상에서 보편적으로 언급하는 황금률(Golden Rule), 즉 '나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행하라.'는 법칙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8. 샤마타와 위빠샤나[편집]

명상 중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에서 전승되는 기본적인 수행방법은 샤마타(shamatha)위빠샤나(vipashyana)[20], 즉 지관(止觀) 수행이다. 티베트어로 샤마타는 '평화롭게 머묾'이란 뜻의 시녜(zhi gnas), 위빠샤나는 '더 나아가서 봄', '더 뛰어나게 봄'이란 뜻의 학통(lhag mthong)이라고 한다. 지관수행은 초기불교에서부터 전승된 가장 보편적인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남방불교에는 위빠사나로 전승되고 있고, 대승불교에서도 유식(唯識)학파 등에서 지관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불교에서 지관수행은 천태(天台)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승지관의 전통은 티베트 불교 외에는 거의 단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불교에서도 강원에서 지관 수행을 강조한 《대승기신론》이나 《선종영가집》 등의 논서를 배우지만, 실제 수행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간화선 위주로 수행한다. 따라서 한문문화권에서 대승교학은 교학의 이해로만 그치고 실천으로 증험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유식(唯識)과 중관(中觀)과 같은 교학은 수습하여 증득하지 않으면 본질을 체득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대승지관의 전통을 다시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승의 정신에 입각한 지관수행은 남방의 위빠사나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승규, 《티벳의 지관 수행 체계 연구》

대승의 지관 수행의 목적은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포함한 공성(空性)을 증득하는 것이다. 만법은 조건에 따라 생멸하며 연기(緣起)하기에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는 무자성(無自性)이므로 공(空)하다는 것이 바로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실상이다. 대승의 수행자는 공성을 비량(比量)[21] 뿐 아니라 현량(現量)[22]으로도 바르게 인식하는 견도(見道)의 단계를 거쳐 지혜와 방편을 함께 닦아 일체 중생을 위해 불과(佛果)를 성취한다.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는 소승의 성문이나 연각들도 인무아(아공我空)와 법무아(법공法空) 모두를 증득했다고 본다. 이에 관하여 월칭(月稱)은 《입중론》에서 수레를 불에 태우는 비유를 든다. 수레를 태우면 수레의 부품들도 함께 타듯이 아공을 알면 법공은 자연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레는 자아를 상징하고 바퀴, 손잡이, 굴대 같은 수레의 부품들은 법을 상징한다. 이어서 월칭은 소승과 대승의 차이점은 '법공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의 대소(大小)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 겔룩빠 교리에 따르면, 비록 성문이나 연각, 7지 보살들이 삼계(三界)의 번뇌의 씨앗까지 완전히 제거하였지만 번뇌의 습기(習氣)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으며 보살 8지에 이르러 비로소 습기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보통 습기와 번뇌의 씨앗을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 소지장(所知障)[23]을 건립한 습기는 번뇌의 씨앗이 아니다. '번뇌의 씨앗'이 번뇌를 생기게 한 에너지이자 이전 흐름이라면, '소지장을 건립한 번뇌의 습기'는 번뇌가 남긴 결과이다.

번뇌의 습기는 잠복된 소지장[24]으로 작용하여 부처의 일체지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므로 8지의 무간도(無間道)로써 소지장에 대치하기 시작하여 마지막에 10지의 무간도로써 매우 미세한 소지장을 직접적으로 대치한다. 그것을 멸하면 일체법을 보는 일체지(一切智), 두 장애(번뇌장과 소지장)가 남김없이 제거된 멸제(滅諦),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무는 10지 보살로서의 보신, 다른 다양한 우주에 머무는 10지 보살로서의 화신이라는 사신(四身)을 동시에 증득한다.게셰 텐진 남카,《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따라서 티베트 불교의 견해에 따르면 소승의 성문이나 연각도 자리(自利)의 측면에서 소지장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 보살의 자량도에 입문하여야 한다.

지관 수행을 다루는 티베트 불교 논서로는 까말리쉴라의 《수습차제》, 쫑까빠의 《보리도차제광론》 등이 있다. 이들 논서의 지관 수행 부분은《해심밀경》과 같은 대승 경전과 중관, 유식의 논서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구체적인 샤마타와 위빠샤나 수행법은 티베트 불교 내 종파와 전승마다 다르며 굉장히 다양하다. 현대에는 상좌부 불교, 선불교 등 다른 수행 전통이나 현대 과학, 심리학과 결합한 명상법도 개발되었다.
명상이 뇌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 중인
욘게이 밍규르 린뽀체
(Yongey Myingyur Rinpoche)[25]
2020 명상웹컨퍼런스 강연 1부 《연민의 마음》
2부 《바르게 보기 위한 명상》

현교의 교학에 따른 지관수행 외에도 밀교의 생기차제나 원만차제 수행 역시 샤마타와 위빠샤나를 함께 닦는 지관쌍운(止觀雙運)의 원리를 따른다. 예를 들어 생기차제에서 밀교 본존의 상호(相好)나 만트라의 염송에 집중하는 것은 샤마타에 해당하며 본존을 관상(觀想)할 때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이 고정불변한 자성(自性)이 없는 공(空)으로 관(觀)하는 것은 위빠샤나에 해당한다.

밀교에는 족첸(dzog chen)이나 마하무드라(mahamudra), 대중관(mahamadhyamika)과 같이 마음을 조작하지 않고 바로 직지심체(直指心體)하여 본성에 안주하는 명상도 있다. 족첸이나 마하무드라에서 위빠샤나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 쓰이며, 특정한 대상을 관찰하지 않고 마음 그 자체가 마음의 본성과 하나되어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 족첸에서 말하는 릭빠(rig pa)나 무상요가 딴뜨라에서 말하는 정광명(‘od gsal) 등은 마음의 본성, 즉 대상에 대한 모든 분별을 여의고 오로지 순수한 앎 뿐인 의식의 명료함을 가리킨다.

'마음의 본성'이란 표현 때문에 마치 자상(自相)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마음의 본성' 혹은 '가장 미세하고 청정한 의식', '불성' 또한 본질은 공(空)이며, 따라서 릭빠나 정광명을 증득한다는 것은 '(인식)주체의 무자성(無自性)=주체의 공(空)함'을 온전히 깨닫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닝마빠의 견해에 따르면, 마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공하면서 현상적으로는 명료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공성과 명료함은 분리할 수 없다. 공성만을 강조하고 현상을 부정하는 것은 허무주의, 단멸론(斷滅論)에 해당하며, 반대로 현상의 본질을 '궁극적 실재'나, '영원한 자아', '영혼(Soul)', '푸드갈라(Pudgala)', '아트만(Ātman)', '브라만(Brahman)', '참나(眞我, True Self)'처럼 독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영원주의, 상주론(常住論)에 해당한다. 따라서 닝마빠에서는 극단을 배제한 공성과 현상의 불가분(不可分)이야말로 바른 견해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마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족첸과 귀류논증 중관은 현상과 공성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의 견해에서 일치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족첸과 귀류논증 중관 모두 상견과 단견의 양 극단을 여읜 중도로서 자성이 없는 공을 설하고 있다. 족첸의 공성과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은 완벽히 일치한다. 다음은 족첸과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에 대한 견해가 다르지 않음을 알려주는 닝마빠, 까규빠 스승들의 설명이다.
극단에서 벗어난 자유에 관한 족빠 첸뽀(Dzogpa Chenpo)의 견해는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와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주요한 차이점은 중관의 기본 견해가 허공과 같은 공한 측면에 관한 것이라면, 족빠 첸뽀의 기본 견해는 언설(言說)로 표현 불가능하고 간단(間斷)없으며, 본초(本初)적으로 청정하고 벌거벗은 본연의 앎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족빠 첸뽀에 따르면, 본연의 앎과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은 허공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모든 극단을 벗어나 있다.

《최잉 쬐(Chöying Dzöd)》와 다른 족빠 첸뽀 문헌들은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찬탄한다. 그래서 부정대상 제한(dgag bay's mtshams 'dzin)의 정의에 관하여 족빠 첸뽀와 귀류논증 중관은 서로 일치한다.

족첸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나가르주나(Nagarjuna)의 추론에 의지해야 하며, 마하무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티벳의 셰드라(티베트 불교 강원)에서는 《중론》과 월칭의 《입중론》 그리고 다른 비슷한 문헌들을 여러 해 동안 공부한다. 

그러나 마하무드라와 족첸은 따로 배우지 않는데, 왜냐하면 중관 텍스트들이야말로 서로 다른 주장들과 논리적 추론들의 광대한 집합체로써, 그것들을 미묘하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하무드라 전승에서도 역시 까르마빠 랑중 도제(Karmapa Rangjung Dorje)의《마하무드라 발원문》과 같은 다음의 문장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음에 관해 말하자면, 마음이란 것은 없다! 마음의 자성은 공하다."

만약 4구부정 등의 추론을 통해 분석한 결과 마음의 자성이 공함을 확신하게 된다면, 마하무드라에 대한 이해는 심오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구절을 암송할 수야 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일종의 의견이나 추측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만일 《중론》의 추론들을 익힌다면, 마하무드라와 족첸의 공성과 무자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때 이미 익숙한 것들이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팜 린뽀체는 《결정보등(決定寶燈, nges shes sgron me)》이란 간략한 문헌을 지었는데, 그는 거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닥(ka dag, 本初淸淨)[26] 에 대한 완벽한 확신을 얻으려면 반드시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카닥 혹은 본연의 본초청정은 족첸의 견해로써, 그 견해를 완벽하게 얻기 위해선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완벽히 얻어야 한다. 이는 족첸의 카닥 견해와 월칭의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닝마빠는 자공(自空, Rangtong)도 타공(他空, Shentong)도 아닌 숭죽(Sung Zug), 즉 불가분(不可分)의 견해를 따른다. 불가분의 견해란 현상과 공성의 불가분성(현공불이顯空不二), 명료함과 공성의 불가분성(명공불이明空不二), 지복(至福)과 공성의 불가분성(낙공불이樂空不二), 지혜와 공성의 불가분성(지공불이智空不二) 등을 의미한다. (중략) 중관논사들은 귀류논증을 완벽한 자공(自空)의 견해라고 여긴다. 족첸 텍최(trekcho)[27]의 카닥에 관한 견해와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는 같다. 두 견해에서 모두 공성은 같은 개념이며 차이가 없다. 본초청정(카닥)은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을 가리키는 족첸의 용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롱첸빠(Longchenpa), 직메 링빠(Jigme Lingpa), 미팜(Mipham) 등 과거 닝마빠 스승들은 귀류논증 중관논사들이었다. 미팜 린뽀체에 따르면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과 족첸의 공성은 완벽히 일치한다. 차이란 없다. 100% 같다.

켄첸 릭진 도제(Khenchen Rigdzin Dorje) #
중관은 "개념들을 초월하는 것" 4가지로 설명한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도, 비존재하는 것도, 존재하면서 동시에 비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도 않고 비존재하지도 않는 것도 아닌 무언가이다. 이러한 4가지 가능성 외에 무엇이 있는가? 없다. 비록 지적인 방식으로만 접근해보았지만, 이는 중관의 궁극적인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분석적인 방법으로써, 이러한 결론은 족첸에서도 옳은 결론이다. 나가르주나의 추론은 수승하다.

최걀 남카이 노르부(Chögyal Namkhai Norbu)
Chögyal Namkhai Norbu, 《Dzogchen Teachings》

9. 소(小) 보리도차제[편집]

쫑까빠는 람림과 관련하여 《소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 오도송)(lam rim bsdus don)》, 《중보리도차제(lam rim ‘bring po)》, 《대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 《삼종요도(도의 세 가지 핵심)(lam gtso rnam gsum)》, 《공덕의 근원(yon tan gzhir gyur ma)》등의 논서를 저술하였다. 그 중 람림의 핵심을 요약한 《소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 오도송)》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광성사 주지 게쉬 소남 걀첸 스님이 번역하고 목차를 달았다.
1. 문수보살님께 귀의하기
스승이신 문수사리께 귀의합니다.[28]

2. 최고의 능인(能仁)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경 올리기
한량없는 원만한 선행으로 이루어진 몸[身]
무량한 중생의 희구(希求)를 채워주는 말씀[口]
모든 존재를 여실히 보는 마음[意]
석가족의 수장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경합니다.

3. 미륵보살님과 문수보살님께 예경 올리기
비할 바 없는 설법자의 수승한 제자
승리자의 중생제도의 행 모두 짊어지고
무수한 중생계에 화신으로 나투신
미륵보살과 문수보살께 예경합니다.

4. 용수보살님과 무착보살님께 예경 올리기
매우 알기 어려운 반야경의 뜻을
바르게 설해주신 세상의 장엄이자
삼계에 완전히 널리 알려지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발 아래 제가 예경합니다.

5. 아띠샤 스승님께 예경 올리기
두 분의 큰 스승으로부터 바르게 전승된
심오한 견해와 광대한 수행의 법맥
틀리지 않고 완전한 가르침의 보배 지니신
스승 아띠샤께 예경합니다.

6. 선지식들께 예경 올리기
광대무변한 가르침을 보게 하는 눈이자
행운아를 해탈로 가게 하는 최상의 문을
대자비와 뛰어난 방편으로 바르게 설해주신
선지식들께 예경합니다.

7. 보리도차제 전승의 특징과 비유
세상 모든 지자(智者) 가운데 최고이자
중생계에 널리 알려지신
나가르주나와 아상가 두 분으로부터
바르게 전승된 《보리도차제》는
해탈을 구하는 이들의 모든 원 이루어주기에
여의주와 같은 수승한 가르침이며
훌륭한 모든 경론(經論)의 핵심 모았기에
바다와 같은 큰 가르침이나이다.

8. 보리도차제의 네 가지 위대함
모든 가르침을 어긋남 없이 깨닫게 하고
모든 경론을 요의법으로 알게 하며
부처님의 뜻을 쉽게 깨닫게 하여
큰 허물의 절벽에서도 보호하나이다.

9. 보리도차제를 문사수행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
그러므로 인도와 중국, 티베트의 행운아들이
실천하는 최상의 요의법인 삼사도의 차제를
기뻐하지 않을 현자가 어디 있겠는가!

10. 팔만사천대장경의 핵심인 보리도차제를 설하거나 듣는 공덕
모든 경전의 핵심을 모으고 모은 《보리도차제》를
단 한번 설하거나 듣기만 하여도
정법을 설하고 듣는 공덕 크게 쌓을 수 있기에
그 뜻을 새겨야 하네.

11. 예비 수행 - 도의 뿌리인 스승을 의지하는 방법
현생과 내생의 모든 선한 인연의 뿌리는
바른 길 보여주신 선지식임을 알아
부지런히 생각과 행으로 이치대로 의지해야 함을 알고
목숨을 다해 말씀대로 실천하는 공양으로
스승을 기쁘게 해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29]

12. 하사도 - 유가구족의 몸을 의미 있게 보낼 것을 권함
여의주보다 더 소중하고 단 한번 얻은 유가구족의 이 좋은 몸은
얻기는 어렵고 번개처럼 사라지기 쉬우니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세속의 모든 일
겨가 바람에 날려가듯 부질없음을 알고
밤낮으로 삼사도의 핵심을 지녀야만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3. 삼보에 흔들림 없이 귀의하고 귀의의 학처를 배울 것을 권함
죽은 뒤 삼악도에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없고
오직 삼보만이 이 두려움에서 구제해 주시니
항상 삼보에 흔들림 없이 귀의하고
귀의의 학처(學處)[30] 에서 물러남 없이 정진해야 하네.
그 또한 선업과 악업의 인과를 바르게 알아
취하고 버리는 것을 이치대로 실천하는 것에 달려있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4. 성불의 길로 가는 자의 자격을 갖출 것을 권하심
최상의 경지 일체종지 이루기 위해서는
유가구족(有暇具足)의 몸 없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으니
이 좋은 몸 받을 수 있는 부족함 없는 선업을 쌓아
죄와 훼범의 허물에 물든 삼문[身口意]을 정화하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니
항상 사대치력(四對治力)으로
간절히 참회수행을 해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5. 중사도 - 고제와 집제의 허물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윤회의 허물[苦諦]을 힘껏 사유하지 않으면
해탈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 생기지 않고
어떻게 윤회하는지[集諦] 사유하지 않으면
윤회의 뿌리를 끊는 방법 모르기에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출리심을 일으키고
윤회에 묶이는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6. 상사도 - 육바라밀의 바탕인 보리심의 공덕
보리심(菩提心)은 대승의 입문이고
위대한 육바라밀행의 바탕과 의지처이며
두 자량 모두 보리도로 바꾸는 연금액과 같이
광대무변한 선근을 모으는 복덕의 원천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용감한 보살들께서는
보배와 같은 보리심을 수행의 핵심으로 여기시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7. 보시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보시행 하는 방법
보시(報施)는 중생의 원을 들어주는 여의주와 같고
인색함의 끈을 잘라내는 최상의 무기라네.
두려움 없는 용기를 일으키는 보살행이며
시방에 명성을 널리 알리는 바탕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몸과 재물, 선근 모두 베푸는 뛰어난 행을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8. 지계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지계행 하는 방법
지계(持戒)는 악행의 때를 씻어내는 물이며
번뇌의 열을 식혀주는 달빛이라네.
대중 가운데 수미산처럼 웅장하고
힘으로 누르지 않아도 모두가 공경하게 되네.
이와 같이 알고서 현자들은 수지(受持)한 계율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청정하게 지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9. 인욕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인욕행 하는 방법
인욕(忍辱)은 용감한 보살들에게 최고의 장엄이며
번뇌의 불길을 잡는 최고의 고행이라네.
분노의 뱀을 잡아먹는 가루라와 같으며
거친 말의 무기를 막아내는 견고한 갑옷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욕행을 닦아 익혀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0. 정진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정진하는 방법
물러서지 않는 견고한 정진(精進)의 갑옷을 입으면
교학과 수행이 상현달(上弦月)처럼 차오르고
말과 행동 모두 의미 있게 되며
시작한 모든 일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네.
이와 같이 알고서 보살들께서는
게으름 모두 없애는 위대한 정진행을 하시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1. 선정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선정 닦는 방법
선정(禪定)은 마음을 다스리는 왕처럼
입선(入禪)하면 흔들리지 않는 수미산 같고
방선(放禪)해도 선(善)의 모든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아
몸과 마음을 큰 경안(輕安)에 이르게 하네.
이와 같이 알고서 최고의 선(禪) 수행자들은
산란함의 적을 물리쳐 늘 선정을 닦는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2. 지혜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지혜 닦는 방법
지혜(智慧)는 심오한 공성을 보는 눈이며
윤회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길이라네.
모든 경론에서 공덕의 원천이라 찬탄하며
무지의 어둠 밝히는 최고의 등불로 알려졌다네.
이와 같이 알고서 해탈을 원하는 지자는
이 반야의 지혜를 수많은 정진으로 닦는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3.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 함께 닦아야 하는 이유
선정만으로는 윤회의 뿌리 자를 수 없고
선정 없이 지혜만으로도 번뇌를 제거할 수 없기에
공성을 확실히 깨닫는 지혜
흔들림 없는 사마타(止)의 말에 오르게 하고
예리한 무기 같은 양극단 여읜 중관의 논리로
변집견(邊執見)의 모든 대상 제거하여
이치대로 분석하는 힘으로 공성을 깨닫는 지혜 증장시켜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4. 사마타와 위빠사나 함께 닦는 방법
집중명상을 익힘으로 선정을 얻는 것은 물론
분석명상으로도 공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선정 얻을 수 있기에
부지런히 지관 함께 닦는 것[止觀雙修]은 경이롭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5. 지혜와 방편 함께 닦는 행운아들의 수행 자세
등지(等至)에서 본 하늘 같은 공성과
후득지(後得智)로 본 신기루 같은 공성 이 둘을 수습해
방편과 지혜 함께 닦는 보살의 바라밀행을 찬탄하시네.
이와 같이 삼사도와 지관 함께 닦는 도를 알아
지혜와 방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행운아들이 수행하는 방식이라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6. 밀교 수행
원인승(原因乘) 현교와 결과승(結果乘) 밀교의 두 가지 대승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공통도를 바르게 일으켜
선장 같은 훌륭한 밀교의 스승에 의지해
바다 같은 밀경(密經)에 들어가 요의법을 행함은
이 유가구족의 몸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라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7. 회향
자신의 《보리도차제》 수행을 더 익히고
다른 행운아들 이롭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기뻐하신 원만 구족한 이 가르침을
알기 쉬운 말로 설한 이 인연 공덕으로
모든 중생 이 청정한 가르침과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까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회향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회향하나이다.

게쉬 소남 걜챈 스님의 《보리도차제 오도송》해설 중 참회와 지관수행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수행의 길로 나아갈 때 최선을 다해 악업을 버리고 선없을 쌓는 수행을 부지런히 행하기는 하지만, 순간순간 방일(放逸), 즉 게으름과 번뇌가 치성한 탓으로 저절로 악업을 쌓기가 더 쉬워서, 우리들의 신구의 삼문은 항상 죄와 훼범의 허물에 물들어 있다. 그리고 업의 장애와 번뇌의 장애 둘 중 특히 업의 장애를 소멸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항상 의지처에 의지하는 힘, 후회하는 힘, 결심하는 힘, 대치(對治)를 실천하는 힘인 네 가지 대치의 힘으로 업장을 소멸하는 참회수행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대치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지처에 의지하는 힘이다. 우리가 짓는 죄에는 위로는 불보살을 대상으로 지은 죄와 아래로는 중생을 대상으로 지은 죄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죄를 참회하기 위해 귀의와 보리심에 의지해야 한다. 귀의해서 불보살께 지은 죄를, 보리심에 의지해서 중생에게 지은 죄를 없앨 수 있다. 상구보라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의미이기도 하다.

둘째, 마음 속 깊이 후회하는 힘이다. 실수로 독약을 먹었을 때 후회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잘못한 죄에 대해 절절하게 후회해야 한다.

셋째, 목숨 다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힘이다.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기는 쉽지 않지만 한 두 가지라도 버릴 수 있다면 미련 없이 버리고, 그럴 수 없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계를 받아 지은 죄를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결심하는 힘을 말한다.

넷째, 대치(對治)를 실천하는 힘이다. 죄를 참회하기 위해 신구의로 하는 모든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그 중 대표적으로 여섯 가지 실천행이 있다. (1)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 (2) 진언을 외우는 것, (3) 경전을 독송하는 것, (4) 공성을 깊이 사유하는 것, (5) 공양 올리는 것, (6) 부처님의 몸에 의지하는 것이다.

과거에 지은 악업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이 별로 나지 않는다면 목숨 다해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마음 역시 진심으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대치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은 죄를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악업의 과보를 깊이 생각해서 확신을 얻어야 하며, 이 또한 인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 확신을 얻음에 달려 있다.
보리도차제(람림) 수행자들의 수호존[31]

"등지(等至)[32]에서 본 하늘 같은 공성과 후득지(後得智)[33]로 본 신기루 같은 공성 이 둘을 수습해 방편과 지혜 함께 닦는 보살의 바라밀행을 찬탄하시네"라는 게송의 의미에 대해 소남 걀첸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성 하나에 집중하는 등지로써 공성을 보는 방식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우리가 허공을 보는 방식과 같다.

일반적인 세속의 텅 비어 있는 '공간'은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이 아니다. 공간은 유위법(有爲法)이고, 허공은 무위법(無爲法)이다. 우리가 보는 공간을 토대로 만지거나 부딪힘이 없는 그 자체가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이다. 허공은 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가진 여러 특징들 중 하나이다.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허공은 눈으로 볼 수 없다.

허공은 하늘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세속에서 허공을 본다, 하늘을 본다고 할 때는 유위법의 허공과 유위법의 하늘로 바로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과 하늘은 무위법의 허공과 무위법의 하늘을 말한다. 즉 공간을 토대로 부딪힘이나 만질 수 없는 그 자체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생각만으로 인식해야 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공간과 허공은 체성일(體性一) 반체이(返體異)(ngo bogcig ldog patha dad)로 물과 얼음처럼 하나이다. 염주는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염주의 무상(無常)과 염주의 공성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등지로 공성을 보는 방식은 위에서 말한 허공을 보는 방식과 같다. 등지로 본 허공과 같은 공성은 공성에 대해서 집중명상으로 보는 방식, 즉 삼매에서 보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후득지로 본 신기루와 같은 공성은 등지에서 후득지로 나올 때, 또는 입선에서 방선으로 나올 때, 즉 삼매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 모든 대상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가 없는 환상이나 신기루와 같이 무자성(無自性)으로 보기 때문에 후득지로 본 신기루와 같은 공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등지와 후득지의 관점에서 허공과 신기루와 같은 공성을 보는 두 가지 수행방식을 닦고 또 닦아 익숙해지는 수습을 통해 보시 등 다섯 가지 방편바라밀과 공성을 깨닫는 지혜바라밀, 즉 방편과 지혜를 함께해 보살도를 닦고 저 언덕인 부처의 경지로 가는 것이 모든 불보살이 칭찬하는 바이다.

10. 관련 문헌[편집]

아띠샤 이전에 《람림》전승에 영향을 준 문헌으로는 샨티데바의 《입보살행론(입보리행론)(Skt. Bodhicaryāvatāra) 》,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Skt. Bhāvanākrama; Tib. སྒོམ་རིམ་, Gomrim, Wyl. sgom rim) 》등이 있다.

겔룩빠의 《람림》관련 8대 논서인 《ལམ་རིམ་ཁྲིད་ཆེན་བཅོ་བརྒྱད་ནི། , 람림 티첸 걔》는 다음과 같다.
  • 쫑까빠 대사의 대·중·소 『람림』 3가지
    『བྱང་ཆུབ་ལམ་རིམ་ཆེན་མོ། 람림 첸모』
    『ལམ་རིམ་འབྲིང་པོ། 람림 딩뽀』
    『ལམ་རིམ་ཉམས་འགུར། 람림 냠구르』
  • 제3대 달라이라마 쏘남갸초의 『ལམ་རིམ་གསེར་ཞུན་མ། 람림 세르슌마』
  • 제5대 달라이라마 롭상갸초의 『ལམ་རིམ་འཇམ་དཔལ་ཞལ་ལུང། 람림 잠뻴섈룽』
  • 빤첸 롭상최겐의 『ལམ་རིམ་བདེ་ལམ། 람림 데람』
  • 제쭌 롭상예셰의 『ལམ་རིམ་མྱུར་ལམ། 람림 뉴르람』
  • 닥뽀 나왕닥빠의 『ལམ་རིམ་ལེགས་གསུང་ཉིང་ཁུ། 람림 렉쑹닝쿠』

아티샤의 까담빠 전승은 겔룩빠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종파에 영향을 끼쳤다. 겔룩빠 외에 다른 종파들의 관련 문헌으로는 닝마빠의 《공덕보장론(Yönten Dzö, Tib. ཡོན་ཏན་མཛོད་, Wyl. yon tan mdzod)》,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Tib. ཀུན་བཟང་བླ་མའི་ཞལ་ལུང་, Kunzang Lamé Shyalung; Wyl. kun bzang bla ma'i zhal lung)》, 까규빠의 《감뽀빠의 네 가지 법(Tib. དྭགས་པོ་་ཆོས་བཞི་, Wyl. dwags po chos bzhi)》, 《해탈장엄론(Tib. དྭགས་པོ་ཐར་རྒྱན་, Dakpo Targyen; or Tib. དམ་ཆོས་ཡིད་བཞིན་གྱི་ནོར་བུ་ཐར་པ་རིན་པོ་ཆེའི་རྒྱན་, Wyl. dwags po thar rgyan, or dam chos yid bzhin nor bu rin po che'i rgyan) 》, 사캬빠의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Tib. ཞེན་པ་བཞི་བྲལ་, shyenpa shyidral, Wyl.zhen pa bzhi bral) 》, 《삼현분장엄보론 (三現分莊嚴寶論, snang gsum mdzes rgyan) 》등이 있다.
2015년 방한한 제41대 사캬 티진(Sakya Trizin)
꺕곤 공마 티첸 린뽀체
(Kyabgon Gongma Trichen Rinpoche)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ཞེན་པ་བཞི་བྲལ་)》[34]
- 문수보살이 사첸 꿍가 닝뽀(sa chen kun dga' snying po) 에게 전해준 짧은 게송

이 생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종교적인 사람(佛弟子)이 아니다.
존재의 세계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출리심(出離心)을 얻은 게 아니다.
자신의 목적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보리심(菩提心)을 얻은게 아니다.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대는 아직 지견(知見)를 얻은 게 아니다.

국내에 번역된 관련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상당 수 서적은 절판된 점 참고 바람)

#아티샤

#까말라쉴라

#겔룩
  • 《깨달음에 이르는 길》 : 《보리도차제광론》의 최초 한글 완역본이다. 한국인들이 읽기 쉽게 잘 윤문(潤文)되어 있지만 상당 부분 오역이 있다. 번역이 잘 되었다고 평가받는 영역본 《The Great Treatise on the Stages of the Path to Enlightenment》를 함께 참조할 것을 추천한다.
  • 《보리도에 이르는 차제 넓게 설한 것이 여기에 있다》 : 《보리도차제광론》중에 마지막 <관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책이다. 광성사 게쉬 소남스님이 이 책을 교재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보리도차제광론 1권》 : 비교적 정확한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현재까지 전체의 약 1/5에 해당하는 예비수습 부분만 번역되었다. 앞으로 번역이 마무리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 보리도차제에 관한 파봉카(Pabongka) 린뽀체의 논서 《손 안에 있는 해탈》을 초펠스님이 한국어로 편역한 책이다. 보리도차제의 핵심이 읽기 쉽게 잘 편역되어 있어 초심자에게 좋다.
  • 《손 안에 있는 해탈과 중관의 열쇠》 : 파봉카 린뽀체의 《손 안에 있는 해탈》과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중관의 열쇠》를 번역한 책이다.
  • 《도해 쫑카빠 대사 람림, 깨달음의 길을 말하다》 : 쫑까빠 대사의 일생과 그의 가르침을 그림과 표 등으로 알기 쉽게 요약한 책이다. 또한 겔룩빠와 관련된 티베트 불교의 사상과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어 티베트 불교 입문서로도 추천할 만하다.
  • 《보리도차제약론》 : 보리도차제의 가르침을 요약한 쫑까빠의 논서이다.
  • 《보리도차제의 마르티 일체지로 나아가는 지름길》 : 보리도차제에 관한 8대 논서 중 하나로 제5대 빤첸 라마 롭상 예쎼가 저술하였다. 반야, 중관, 인명, 구사, 계율 등 오부대론을 배우지 않으면 《보리도차제광론》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5대 빤첸 라마의 논서는 보리도차제의 핵심을 잘 설명하면서도 실제 수행에 적용하기 쉬워 초심자가 읽기에 좋다.[35]
  • 《깨달음의 길》 : 1976년 달라이 라마가 다람살라 법회에서 보리도차제(람림)에 대해 법문한 내용이 담겨있다.
  • 《쫑카빠의 도의 세 가지 핵심》 : 도(道)의 세 가지 핵심인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견해에 관한 쫑까빠의 논서이다.
  • 《티베트불교 수행의 설계도》 : 겔룩빠의 입장에서 티베트불교의 수행 순서와 단계별 가르침을 소개한 책이다.
  • 《티베트 불교문화》 : 게쉬 룬둡 소빠가 쓴 책으로 인도 다람살라 티벳도서관에서 티베트 불교 소개 및 티베트어 학습용 교재로 쓰이는 책이다. 전반부는 티베트 불교 문화를 소개하였고 후반부는 보리도차제 가르침을 요약하였다.

#까규
  • 《해탈장엄론》 : 밀라레빠의 수제자인 감뽀빠가 까담빠의 보리도차제(람림) 전승과 틸로빠의 마하무드라 전승의 관점에서 저술한 까규빠의 주요 논서이다.
  • 《마하무드라 예비수행》 : 마하무드라 전승의 예비수행인 사공가행(四共加行)과 사불공가행(四不共加行)에 관한 잠곤 꽁뚤 린뽀체의 논서이다. 예비수행은 단순히 본수행을 위해 거쳐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수행과 다를 바 없으며, 제대로 수행하면 예비수행만으로도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 《까르마빠 존자님께 배우는 사가행수행》 : 마하무드라 예비수행에 관한 제17대 까르마빠와 밍규르 린뽀체의 해설이 담긴 책이다.
  • 《번뇌를 지혜로 바꾸는 수행》 : 역시 마하무드라 예비수행에 관한 밍규르 린뽀체의 해설서이다.

#닝마
  •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 : 닝마빠의 예비수행에 관한 빼뚤 린뽀체의 논서 《꾼장 라매 섈룽》을 번역한 책이다. 종파를 불문하고 널리 읽히는 유명한 논서이다.
  • 《대원만 수행 요결》 : 켄뽀 소다지 스님이 번역한《꾼장 라매 섈룽》의 한역본을 중역(重譯)한 책이다.
  • 《마지막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 빼뚤 린뽀체가 현밀(顯密)의 수행 단계별 견해, 명상, 행위를 정리한 논서이다. 현대 닝마빠의 주요 지도자이자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던 딜고 켄체 린뽀체가 해설을 덧붙였다.
  • 《궁극의 행복》 : 역시 현대 닝마빠의 주요 스승인 종사르 켄체 린뽀체가 예비수행에 관해 해설한 책이다.
  • 《티베트 지혜의 서》 : 닝마빠의 과학자 출신 승려로 명성 높은 마티유 리카르가 종파를 불문하고 여러 티베트 불교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은 후 수행 단계에 따라 편집한 책이다.
[1] 옹화궁은 청(淸)대 티베트 불교를 신봉했던 옹정제, 건륭제 등에 의해 세워진 황실 전용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본래 강희제 때 환관의 수장인 대내총관(大內摠管)의 자택, 넷째 황자인 윤진(옹정제)의 옹정왕부 등으로 쓰이던 건물을 사원으로 개조하였다.[2] 《람림》을 의지하면 스승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그 죄를 사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죄업이 소멸된다. 또한 무상에 대하여 배움으로써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이기심으로 생긴 죄업이 없어지고 무아를 생각함으로써 자아까지도 없애는 등 지은 죄가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3] 《보성론》에서는 불성을 불신(佛身)들 중 어느 것으로도 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보면, 불성은 번뇌를 아직 없애지 않은 마음의 공성을 주로 가리킨다.[4] 효자와 같은 마음, 금강석과 같은 마음, 대지와 같은 마음, 산과 같은 마음, 종과 같은 마음, 청소부와 같은 마음, 버팀목과 같은 마음, 충견과 같은 마음, 배(船)와 같은 마음[5] 복전(福田)이란 뜻의 티베트어. 중생이 예배와 공양 등을 하여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대상이므로 복전이라 한다. 역으로 중생은 수행자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수행자의 복전이다. 《입보살행론》〈인욕품〉에서는 수행자에게 있어 부처 뿐만 아니라 중생 또한 동등한 복전이기에 중생을 부처와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법맥과 전승마다 촉싱의 구성은 다르다.[6] 예를 들어 세간의 모든 중생이 각각 질문을 하더라도 각각의 음성으로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것 등[7] 불법승 삼보 각각의 정의를 정확하 알고 귀의하는 것의 차이, 복덕이 늘어나는 것의 차이, 부처를 잊지 않고 늘 억념(憶念)하는 것의 차이, 믿음의 차이[8] 수행, 보시와 같은 선업을 행하여 얻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자신이나 다른 중생을 위해 함께 하는 일을 말한다.[9] 불교의 세계관인 육도 중에 악업으로 인해 환생하는 지옥, 아귀, 축생을 지칭함[10]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무수히 많은 악업을 짓고 선업은 적게 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 매우 어렵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쉽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난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11] 사섭법(四攝法)은 다른 중생을 섭수(攝受)하는 네 가지 법을 말한다. 섭수란 자비로 거두어 보살피고 그 마음을 성숙시킴을 뜻한다. 네 가지 법이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일컫는다. 보시섭은 육바라밀의 보시바라밀과 같은 의미이다. 애어섭은 바라밀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행섭은 대중들이 바라밀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돕는 것이다. 동사섭은 본인 또한 대중들과 함께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12] 티베트어 칠불통게로 한역(漢譯) 칠불통게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 참고로 한역 칠불통게는 제목 그대로 과거칠불이 공통적으로 설한 게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티베트에는 과거칠불들이 각각 설한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게송들이 전해지며, 그 중 한 게송이 한역 칠불통게 내용에 해당하는 게송이다.[13] 일시적인 행복으로서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를 벗어나 인간, 천신의 몸을 받음.[14]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영원한 행복=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완전한 행복=중생구제를 위해 일체종지를 이루는 성불'을 의미함.[15]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16]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 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을 갖춘 것. (6)부처님께서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17] 보리심이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준말로, 자비심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나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모두 무상정등정각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18] 소지장(所知障): 부처의 일체종지(一切種智)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 미세한 번뇌.[19] 고성제(苦聖諦), 즉 고고(苦苦) · 괴고(壞苦) · 행고(行苦)를 절감하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단순한 염세주의와는 구분하여야 한다. 진정한 출리심은 윤회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깊게 사유하고 세속적 욕망보다 해탈을 추구하는 마음이다.[20] 산스크리트어이다. 빨리어로는 사마타(samatha), 위빠사나(vipassana).[21] 추리를 통한 간접적 인식[22] 감각을 통한 직접적 지각[23] 번뇌에는 크게 번뇌장과 소지장 두 가지가 있다. 번뇌장이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있다는 아집(我執)에서 유래한 탐욕, 분노 등의 정서적 장애라면, 소지장은 대상을 고정불변한 실체로 보는 법집(法執)에서 유래하여 바른 인식을 저해하는 인지적 장애이다. 번뇌장은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방해하고, 소지장은 바르고 위없고 원만한 부처의 깨달음(보리)을 방해한다.[24] 소지장에는 현전(現前)인 소지장과 잠복된 소지장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세속제의 행상을 가지는 식(識)에 실제의 현현으로 착란된 부분, 후자는 실재의 현현을 생기게하는 원인인 번뇌로써 남긴 습기같은 경우이다.[25] 2002년 미국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자들이 자비명상(compassion meditation) 중인 밍규르 린뽀체의 EEG와 fMRI의 변화를 측정한 결과 감마파의 증대와 뇌세포 간 감마파의 동기화 증대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밍규르 린뽀체는 이 실험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명을 얻었다.[26] 족첸의 존재론(gzhi, 基)에서 마음의 본성은 본질(ngo bo)인 카닥(ka dag, 本初淸淨), 특성(rang bzhin)인 훈둡(lhun sgrub, 任運自成), 그리고 발현인 툭제(thugs rje, 大悲周遍)로 구성된다. 카닥은 공성, 훈둡은 현상(연기)을 가리키며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툭제는 마음의 본성이 대자비로 발현되어 윤회와 열반 등 무수히 많은 특정한 현상들로 나타나는 에너지를 뜻한다. 족첸에서는 마음의 본성을 거울에 비유한다. 거울의 비유에서 카닥은 '자기 자신'이라고 지칭할만한 실체가 없이 비어 있어 어떤 상(象)이든 비출 수 있는 거울의 본질, 훈둡은 저절로 끊임없이 상들을 비추는 거울의 특성, 툭제는 거울에 비춰진 무수히 많은 특정한 상들에 해당한다.[27] 족첸 수행 중 카닥과 관련된 수행을 '잘라 내기'라는 뜻의 텍최(khregs chod), 훈둡과 관련된 수행을 '직접적인 접근'이란 뜻의 퇴갈(thod rgal)이라 한다.[28] 참고로 티베트의 역경사들이 인도의 경, 율, 론 중 논장(論藏)을 번역하면서 도입부에 삽입하는 일종의 정형구도 '스승이신 문수사리께 귀의합니다'이다. 논장은 주로 계정혜 삼학 중 혜학(慧學)을 다루기 때문에 지혜의 본존인 문수보살께 귀의하는 문장을 삽입한 것이다. 그러나 《소보리도차제》는 쫑까빠가 직접 지은 저작이므로 이러한 역경 시 관례와는 무관하다. 쫑까빠는 실제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다.[29]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이란 후렴구 원문은 "수행자 나(쫑까빠) 또한 이와 같이 실천하였으니 해탈을 구하는 그대도 그렇게 행해야 하리라."이다.[30] 귀의할 때 배우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을 의미한다. 귀의의 학처는 수행 체계의 귀의 설명에서 이미 간략히 상술하였으며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등의 경론을 참고바람.[31] 상부: 쫑까빠 대사와 두 수제자. 가운데: 관세음보살의 분노존 마하깔라(mahakala, 大黑天) 하부: (左) 야마(yama, 閻魔) (右) 쿠베라(kubera, 毘沙門天). 분노존이란 중생의 거친 업과 장애를 없애고, 수행에 방해가 되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불보살이 분노한 모습으로 화현한 본존을 의미한다. 마하깔라, 쿠베라, 야마는 각각 상사도, 중사도, 하사도를 수호한다.[32] samāpatti. 도달. 성취. 입정(入定). 명상을 즐기는 상태. 명상의 단계. 명상의 성취. 등지(等至). 정수(正受). 입정(入定). 삼마발저(三摩跋底).[33] 근본지(根本智)의 반대로, 여량지(如量智), 권지(權智), 또는 속지(俗智)라고도 말함. 근본지에 의하여 깨달은 후, 다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의해 깨달아 아는 지혜.[34] 2015년 사캬빠 법왕인 사캬티진 존자가 방한하여 직접 법문을 설하였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상)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하)[35] 파봉카 린뽀체의 《손 안의 해탈》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에는 ‘룽균(구전口傳, ལུང་རྒྱུན་)’만 있었으나 후대 사람들이 구전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티균(광해廣解, ཁྲིད་རྒྱུན་)’이 나타났고, 티균은 다시 ‘쎼티’, ‘마르티’, ‘냠티’, ‘뇽티’로 나뉘어진다. ‘쎼티(བཤད་ཁྲིད་)’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깊게 설명하여 가르치는 것이고, ‘마르티(དམར་ཁྲིད་)’는 이렇게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보다는 의술이 뛰어난 의사가 시체를 해부하여 제자에게 오장육부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듯 문장의 핵심을 직접 일러주는 것이다. ‘냠티(ཉམས་ཁྲིད་)’는 스승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제자의 근기에 알맞게 가르치는 것이며, ‘뇽티(མྱོང་ཁྲིད་)’는 스승이 제자와 같이 살거나 가까이 있으면서 제자가 하나를 완벽하게 깨우칠 때까지 다음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티균’의 방법으로 배우는 것은 업을 녹이는 특별한 비법이며, 불보살들의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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