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탈라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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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라싸의 포탈라 궁의 역사 유적군
영어
Historic Ensemble of the Potala Palace, Lhasa
중국어
拉萨布达拉宫历史建筑群
프랑스어
Ensemble historique du Palais du Potala, Lhasa
국가·위치
등재유형
등재연도
등재기준
(i)[2], (iv)[3], (vi)[4]
지정번호
པོ་ཏ་ལ
중국어 간체
布达拉宫
중국어 정체
布達拉宮
중국어 병음
Bùdálāgōng

1. 개요2. 규모3. 역사4. 건축5. 파괴 위기6. 티베트 독립운동과 관련7. 달라이 라마 14세와 관련8. 창작물에서9.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중국 인민폐 5차 시리즈(1999~ ) 현행권인 50위안 지폐 뒷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중국 티베트 자치구 라싸에 있는 궁전으로, 달라이 라마의 거주지였으며, 티베트의 중심 종교인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었다. 1994년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국가공인 중국5A급여유경구에 등록되어있다. 엄청난 고지대에 있는 것이 특징으로 '포탈라[5]'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산인 포탈라카 산[6]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라는 표기는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음차표기로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포달랍이 된다.

2. 규모[편집]

전통적인 단일 건축물로서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며, 동아시아에 있는 어떠한 단일 전통 건축물보다 크다. 포탈라궁의 총 건축면적은 13만m2으로, 전체 부지는 36만m2이며, 동서의 길이는 360m에 이르고 남북[7]은 270m, 높이는 13층으로 117m에 달한다. 독립 국가로서의 티베트가 경제적인 능력에서는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단일 건축물을 지어올린 것이다.

3. 역사[편집]

641년에 토번(吐蕃) 왕국의 송첸캄포 왕이 당나라에서 시집온 아내 문성공주와 살기 위해 지었다고 보는 경우도 많지만 그 이전에 이미 지어져 있었으며, 문성공주가 지은 곳은 네팔의 공주와 같이 기거한 별채 겸 사찰 2개뿐이다.[8] 홍산궁전은 토번 왕조가 멸망하면서 파괴되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7세기에 달라이 라마 5세가 지었으며 1645년까지 수차례의 증축을 통해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4. 건축[편집]

포탈라 궁의 주된 재료는 흙과 나무로서 종(건축물)의 건축양식을 띄어 중국이나 서양의 화려한 궁전과 달리 외관도 뭔가 궁전보다는 요새에 가까우며, 티베트에서 성스러운 색으로 여겨지는 붉은 빛으로 칠해져 있는데다 궁전 뒤로 펼쳐지는 만년설이 덮힌 거대한 산맥의 풍광 등등, 궁전이라기보다는 뭔가 성스러운 성지의 사원같은 모습을 띄고있다. 궁은 바깥에서 보이다시피 붉은색 홍궁(紅宮)과 흰색의 백궁(白宮)으로 나뉘며, 백궁 부분이 생활공간이고 홍궁은 부처를 위한 공간이다.

포탈라궁 안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다. 다만, 달라이 라마 5세 때 지었기 때문에 모든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는 건 아니고 달라이 라마 1세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 달라이 라마 2세, 3세, 4세는 드레풍 사원(라싸)에 안장되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덤은 흙으로 봉분을 쌓아 올린 형태는 아니고, 역대 달라이 라마판첸 라마의 시신은 미이라 처리되어 황금으로 도배된 화려한 탑에 안장된다.

성이기 때문에 원래는 성 주위로 해자가 파이고 물이 고여 있었으나, 앞쪽은 메워져서 광장처럼 되어 버렸고 뒤쪽은 유원지가 되어 버렸다.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돌리는 오리배도 있다.

옛 사람들은 포탈라궁을 인상적인 건축물로 여겼는 지, 레(도시)의 라다크 궁이나 청더의 피서산장처럼 포탈라궁과 비슷한 건물들이 여러 개 있다.

5. 파괴 위기[편집]

문화대혁명 때 광기에 찬 홍위병에 의해서 파괴될 뻔 했으나, 저우언라이가 사병을 이끌고 그곳을 지키게 해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9]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홍위병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겠지만, 이놈들은 트럭에 나눠타고 진짜로 왔다.

6. 티베트 독립운동과 관련[편집]

현대에는 티베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매년 수많은 방문객이 찾아드는 곳이지만, 티베트 독립운동으로 인해 정치적 풍파에 민감한 곳. 관람시 지정된 코스로만 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잦은 소요로 인해 아예 방문이 금지되는 일이 다반사.

7. 달라이 라마 14세와 관련[편집]

현 14대 달라이 라마(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는 어린 시절 이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했다고 회고했다. 티베트 왕국이 존속하던 시절 포탈라궁은 달라이 라마가 겨울철에 기거하는 '겨울궁전' 역할을 하였다. 달라이 라마 14세의 자서전에 따르면 티베트의 엄혹한 겨울 날씨에다 무거운 분위기의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건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다고 하며, 그래서 빨리 여름이 되어서 꽃이 많고 햇볕도 잘 들어서 온화한 분위기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에 가기를 원했다고 기록했다.

8. 창작물에서[편집]

  • 무협지에서는 '포달랍궁'이라는 이름으로 새외(塞外)세력 중 하나로 주로 등장한다. 왠지 사파 무술의 본거지거나 마교의 중심지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들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배타심이나 멸시감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편 티베트의 경우 당나라 시절부터 중국 왕조와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었고, 원나라 시절 티베트 불교가 몽골 제국의 힘을 입어 온갖 패악을 저질렀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묘사되는 것에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게 클리셰화 되어서 한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편.
  • 대항해시대 3에서는 발견물로 등장. 담비만큼은 아니지만 육지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 거기다가 발견하려면 먼저 힌트를 얻어야 하고 힌트를 얻기 위해선 위구르어까지 배워야 한다는 고난이도. 퍼즐을 풀고 나면 홍수 설화와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 문명 6에서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등장. 외교 정책 카드 슬롯을 하나 늘려주는 괜찮은 성능이지만 같은 시기에 더 싸게 나오는데다 와일드카드 정책 카드 슬롯을 주는 자금성에 밀린다(...).

9. 같이보기[편집]

[1] 2000년, 2001년 등록확장[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원어로는 '뽀딸라'에 가깝다.[6] 한역하면 보타락가, 寶陀洛迦[7] 물론 긴 통로를 포함한 길이다.[8] 여담으로 처음 지은 궁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곳이다.[9] 비슷하게 홍위병이 파괴하려 했는데 저우언라이가 막은 곳으로 베이징자금성이 있다.[10] 티베트 불교힌두교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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