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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파일:alpha1.png   법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소요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2. 원인3. 진압4. 종류5. 번역상의 문제6. 시민운동? 폭동?7. 사례
7.1. 실존 사건
7.1.1. 해외7.1.2. 국내
7.2. 폭동은 아니지만 당시에 잘못 서술된 경우7.3. 가상의 사건7.4. 관련 장비
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暴動, Riot, Revolt[1]

2. 원인[편집]

보통 시위, 시민운동이 과격화되거나 억눌렸던 어떤 사회 요소들이 어떤 사건을 기점 해서 폭발하여 일어난다. 이런 경우 진압을 잘못하면 국가 근반을 뒤흔드는 수준까지 간다. 많은 혁명이 폭동이 확대되어 일어났다. 물론 이를 노려 의도적인 폭동을 유도하여 상대 국가, 사회 체제를 해체시키는 전략도 있다. 또한 천재지변에 의해 사회적 안전장치, 통제장치가 사라졌을 때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질서의식이 희박한 특정 군중 집단이 경찰력이 없는 틈을 타 갖은 범죄를 저지르고, 이 행위가 연쇄로 작용하여 폭동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력이 빠른 시일 안에 회복되면 간단하게 진압되나, 가끔 자경 무장 단체가 나온다.

폭동은 일단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그 자체로는 시민 소요(Civil disorder)로 분류된다. 일정수준 이상 시민들의 불만이 쌓였을때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오는 폭력현상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런 분류에는 일 터지기전에 막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3. 진압[편집]

폭동은 분명 반국가적인 폭력행위다. 허나 사회 불만의 누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 만큼, 주체가 어디까지 민간인인 터라 그를 진압하는데 쓰는 무력은 제한된다. 경찰력이 사라져서 발생하는 몇몇 폭동을 빼면 군대를 투입하지 않는다. 진압 수단 역시 심각한 사상자를 내지 않게 제한선을 긋는다.

많은 나라의 경찰조직은 폭동 진압을 위해 전용 하부 조직을 둔다. 군사 병력 약간을 소속만 바꿔 폭동 대응 경찰 조직 으로 쓰는 나라도 있다. 대한민국의 (지금은 폐지된) 전경[2], 의무경찰[3], 미국은 각 시,카운티의 경찰 조직 내부[4]에 진압조를 나누어 그 속에 세부 조직을 다시 나누는 형식으로 만들어져있고, 중국에서는 공안 소속의 진압부대, 또는 인민무장경찰이, 러시아우크라이나내무군 등등.

4. 종류[편집]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면
  • 감옥 폭동
    Prison riot. 감옥에서 일어나는 폭동을 가리킨다. 단식 투쟁이나 기타 불복종 방식과는 대비되는 폭력행위로, 감옥 내 처우개선이나 부조리 시정을 항의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탈옥을 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브라질에선 감옥폭동이 자주 발생해 사상자들이 많이 나온다. 각종 흉악범죄자가 모이는 미국 교도소에서도 종종 폭동이 발생하는데, 재소자들이 교도소 일부를 점거하고 교도관들을 인질로 잡은 1993년 루카스빌 폭동이 유명하다.[5]
  • 인종 폭동
    Race riot.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인종간의 갈등이 누적되어 벌어지는 폭동이다. 미국에서 20세기 내내 자주 일어났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인종폭동이 흑인들의 전유물로 생각되기 마련이지만, 독일 나치시절 돌격대가 유태인 상점에 폭력과 파괴를 가했던 다이아몬드의 밤 사건이나, 20세기 초 미국의 남부 지역에서 백인들에 의해 간간히 행해졌던 흑인 린치 사건들도 인종폭동에 속한다.
  • 식량 폭동
    Food riot. 식량수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때 기아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면 종종 발생하는 폭동이다. 1918년 일본의 쌀 소동 등 역사적으로 많이 있었고 가장 흔한 형태의 폭동이다.
  • 스포츠 폭동
    Sports riot.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졌을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겨도 일어난다. 축구 훌리건들이 가장 대표적인 예.
  • 학생 폭동
    Students riot. 20세기 중후반, 학생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었을때 자주 일어났다.
  • 종교 폭동
    Religious riot. 하나의 종교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어서 자유를 요구하게 될때, 또는 두개의 종교가 한 지역 안에서 분쟁과 갈등이 지속될때 일어난다.
  • 도심 폭동
    Urban riot. 너무 빠른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집중된 상태에서, 도시의 쇠퇴(Urban decay)가 일어날때 발생할 수 있는 폭동이다. 쉽게 말해 시 당국이 손을 쓸 수 없어서 슬럼화가 진행되는 구역에서 일어나는 폭동. 실업율이 높아지고, 돈이 안 도니까 도심 건물들이 노후화 된 채 방치되고, 점점 시설이 노후되서 복지수준도 떨어지고, 도시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 바로 "도시의 쇠퇴"다. 한국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도시 쇠퇴는 빠르게 개선되는 상황이라 도심폭동의 요인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 개념의 폭동이 있는데 그건 바로
  • 폭동적 시위진압
    Police riot. 경찰 폭동이라는 일부 번역명 때문에 경찰이 무슨 폭동이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좀 잘못된 직역이다. police는 경찰・군대 등이 치안을 유지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가 치안 집단의 폭동행위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전두환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땐 폭동적 시위진압이라 불렀기에 여기선 대법원이 부른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Police brutality에 해당한다.

5. 번역상의 문제[편집]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가두행진이나 시민운동을 시위라고 부른다. 이것은 영어의 demonstration(데모)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영어에서 쓰이는 용법과 한국어로 쓰이는 용법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가두행진이나 연좌, 항의집회 등등의 모든 것을 뭉뚱그려 "시위"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영어에서 demonstration은 말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총칭하는 것이고, 여럿이 모여서 어떠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집회"이기 때문에 rally, 특정한 장소 앞에서 피켓을 앞세워 개인 혹은 다수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picketting, 행진은 marching, 연좌시위는 sit-in이라는 용어가 각각 따로 있다. 가끔 외국 뉴스에서 Anti-war rally라고 하는것은 반전집회라고 할 수 있다.

폭동을 영어로 직역하면 Riot이다. 그러나 Riot은 폭력이 수반된 폭력시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약탈이나 시설파괴가 수반된 폭력행동에도 쓰인다. 그러므로 LA 폭동도 Riot이라고 부르지만 2000년도 시애틀 WTO 반대시위도 영어로는 Seattle riot이다. 외국 입장에서 볼때 2008년 촛불시위도 대규모 군중이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했으므로 영어로 번역해 놓으면 Riot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로 시위,집회를 무조건 전부 폭동이라고 번역하면 안 되는것이, 앞서 말했지만 영어에서 폭력이 수반된 모든 시위는 ' Riot ' 이라고 표현 할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현재 ' 폭동' 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약탈이나 대민피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폭동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되지만, 약탈이나 대민피해가 굳이 아니더라도 일단 경찰과의 심각한 충돌 자체만으로도 영문적 의미로는 물리적 충돌, 즉 폭력이라 볼 수 있기에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폭동이란 단어의 사용도 아예 불가능한것은 아니다. 시민운동과 평화적 집회를 무분별하게 폭동이라 일컫는 일부 무분별한 사람들 때문에 이러한 표기의 문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20세기 중후반 이전에는 폭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치를 포함하지 않은 단어로 쓰였다. 폭력시위를 모두 폭동이라고 부르되, 반공폭동은 "좋은폭동", 공산당 폭동은 "나쁜폭동" 정도로 쓰였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는 아직도 폭동이라는 단어가 역사서에도 쓰이고 있다.이러한 경우에도 폭동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한편 법학에서는 폭동을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내란죄에 있어서의 폭동(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에서의 폭동)은 가장 넓은 의미의 폭행/협박, 즉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에 폭동의 요소가 있기는 했다. 물론 주체는 헷갈리지 말자. 이는 전두환 등의 신군부불법적으로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군부에 대한 재판 판결문에서도 이 사건을 전두환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했다. 계엄 확대, 광주 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해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정문란 등이 폭동으로 분류된 것. 절대로 시민군의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것이 아니다.그러니 제발 사태, 폭동 타령좀 하지 말자

6. 시민운동? 폭동?[편집]

위의 항목에서 이어지는 "한국 특유의" 용어사용에 있어서의 문제인데, 저 둘을 가를 기준은 꽤 명확하다. 시민의 저항권에 해당되는 집단 행동이면 시민운동. 약탈과 무분별한 폭력행위가 수반될 경우 폭동.

정말 애매한 문제가 구성 인원들의 무장 여부다.[6] 사실 국민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폭도들이 흉기를 들고 달려들면 그 어떤 나라가 용납할까 싶다마는, 저러한 기준을 이용하여 관련 규정을 애매하게 만들어놓고 플랜카드 깃봉등을 무기로 취급하여 진압병력을 호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극단적인 정치성향을 가진단체가 죽창, 가스통 들고 쇼를 하는 주제에 진압경찰이 마지막 수단 중 하나로 물대포 몰고 오거나 방패로 진압을 시도하면 독재시절의 재림이라며 입에 거품을 무는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나 대한민국은 피로 얼룩졌던 군사독재의 무분별한 진압과 법 조항때문에, 평화시위가 멀쩡히 존재할래야 할 수가 없어서 대부분 과거의 시위나 시민운동이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 폭력적인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았다.[7] 한침 시민운동이 활발할 떄의 시위라고 하는것이 가두행진을 수반하면서 사람들에게 ' 지금 주장하는것을 알린다 ' 라는 것인데, 과거 독재정원 시절에는 가두시위 자체가 당연히 허가가 날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이에 대항하여 기습 시위를 하는일이 다반사였는데, 경찰은 이에 대항하여 대학교 정문 밖으로 아예 나오지 못하게 막거나, 또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 진입해서 무차별적인 과잉진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들이 자체적으로 사수대라 불리는 무장조직을 만들어 폭력으로 대항하고, 이 사수대를 진압하기 위해 더 강도높은 강경진압이 실시됬다.

시민운동은 분명 존중받아야 한다. 시민운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폭력을 지양해야 하고, 타협에 실패해 폭력을 행사해야 할 상황이 오더라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 공권력은 시민운동, 평화시위에 대한 무분별한 진압을 자제해야 나라가 올바른 길로 발전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측 서로 폭력으로 대항하던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만 몇몇의 폭동은 합법적인 요구 방법이 막혀 사회불만이 높아진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고려하여, 강경진압을 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합법적인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는지 또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8]

참고로 한국어를 쓰는 나라들 중에당연히 우리 아니면 한 나라밖에 없다 폭동을 부정적이지 않은 의미로 쓰는 나라가 딱 하나 있다. 이들은 폭력적 대중운동은 모두 폭동이다라고 말한다. 바로 북한. 위 항목처럼, 북한은 1945년 이후 이러한 방식의 언어사용이 남아있는 탓인지, 아직도 폭동이라는 단어가 역사서에도 쓰이고 있다. 북한의 공식 역사책인 조선전사나 조선단대사에서는 임오군란임오군인폭동으로 부르며 '애국적 군인들과 도시빈민들이 일본침략자들과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며 일으킨 대중적 폭동'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1979년 10월 중순 로동신문을 찾아보면 "부산 마산지역에서 폭동 발생'이라고 쓰여있다(...). 심지어 북한에서 나온 근현대 역사서에는 1930년대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 시위같은 경우도 김일성이 일으킨 만주폭동이라며 미화되어 있다.

7. 사례[편집]

7.1. 실존 사건[편집]

7.1.1. 해외[편집]

7.1.2. 국내[편집]

7.2. 폭동은 아니지만 당시에 잘못 서술된 경우[편집]

추가바람

7.3. 가상의 사건[편집]

7.4. 관련 장비[편집]

8. 기타[편집]

  • 혹시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심리가 (학술적으로) 궁금한 위키러들이 있다면 영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크고 작은 집회, 시위, 소요, 폭동에 걸쳐서 관련 전문가들이 발로 뛰면서 현장을 살피고 시위대와 인터뷰도 하면서 이들의 심리를 이론화해 놓았다. 특히 이들은 점잖은 집회에서부터 개막장 폭동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관찰 가능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분야의 권위자로서 존 드루리(J.Drury) 및 스티븐 라이처(S.Reicher) 등이 꼽히고 있으니, 영어가 된다는 전제 하에, 폭동이나 시위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이들의 저작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 흔히 구스타프 르 봉의 유명한 책 《군중심리》 의 영향으로 인해서 가뜩이나 안 좋던 폭동의 이미지가 더욱 안 좋아지게 되었는데, 앞서 소개된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현대의 학자들은 이 책이 한계가 매우 명확한 옛날 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군중 속의 개인은 정체성이나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지도 않고,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맹종과 부화뇌동 역시 일어나지 않으며, 무질서와 혼돈이 아닌 규범적이고 사리분별력이 있는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답이 없어 보이는 최악의 폭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무작정 간단하게 치부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폭동에 대해서 더 복잡하고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9. 관련 문서[편집]

[1] 현대에는 Riot보다 적게 쓰이는 말로, 고어(古語)적인 느낌이다. 어감상 봉기에 가깝다.[2] 다만 이 쪽은 육군훈련소 입소 인원을 일부 행안부에 빌려주는 식이라 '형식상'으로는 민간경찰이다. 근데 '군사훈련을 받은 민간경찰'이라 사실상 양두구육이지.[3] 이쪽은 작전전경과는 다르게 육군으로 입대한 인원을 행안부에 빌려준 게 아니라, 애초에 경찰청으로 입대한 인원을 경찰에서 기초군사훈련만 국방부에 위임한 것.[4] 즉 이들은 평상시에는 일반 경관이다. 시위 진압 상황에 대하여 호출받았을 때, 진압장비를 걸치고 진압에 투입된다. [5] 재소자 전원을 대상으로 폐 결핵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슬람 신자들이 이에 반발해서 계획적으로 폭동을 일으켰고, 아리안 브라더후드 등 다른 집단도 가세해 교도관 8명이 인질로 잡혔다. 폭동 발생 시 지원병력이 도착해서 폭동을 진압할 때까지 지정된 피난처로 대피한 후 대기하라는 메뉴얼이 짜여져 있었고 교도관들은 대피하기 전에 잡힌 2명을 제외하곤 전원이 피난장소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궜다. 그러나 얼마 후 재소자들이 벽을 뚫고 들어왔고 교도관들은 제압당했다. 메뉴얼에는 피난처 벽 안에 강철봉을 설치하도록 되있었는데 실제로는 강철봉이 없었다.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무장병력이 교도소를 포위하자 재소자들은 사로잡은 교도관들을 이용해 진입을 막고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도관 한 명이 살해되어 시신이 밖에 유기되었고 이를 본 미 국민들은 당장 무력진압을 해야 한다며 치안당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7명의 교도관들이 잡혀있어서 진압은 힘들었고 결국 재소자들의 요구에 따라 교도소 외부에서 협상을 한다. 협상은 라디오로 생중계 되었고 협상을 할 때마다 교도관이 한 명씩 풀려났는데 한 흑인 교도관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협상장에서 교정당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교도관은 풀려났으나 배신자로 낙인찍혔는데 며칠 뒤에 TV인터뷰에 출연해서 위협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개종하는 척을 했으며 해당 발언은 진심이 아니라고 말을 뒤집었다. 재소자들은 변호사를 요구했고 이 변호사가 재소자와 교정당국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재소자들이 항복하고 남은 교도관들을 풀어주는 대신에 미국 정부가 재소자들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양쪽이 서명했고 폭동은 끝났다. 하지만 죄값을 치뤄야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재소자측 협상가 5명이 사형선고를 받는다. 왜 폭동 주모자가 아닌 협상가를 처벌하냐는 비판 여론이 발생했고 정부 측에서 이를 의식해서 그런지 협상가 5명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다.[6] 사실 이 사실에 관하여 논란이 많은 이유가, 구한말 의병이 일어난 것이나 동학농민운동도 사실상 무장봉기에 해당되지만, 어느 누구도 폭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당연히 당시의 시대상과 여러 요건들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내릴 문제들이다.굳이 의병이나 동학농민운동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당시 시대상과 여러 요건을 보고 평가하는것이 일반적이다. [7] 그리고 이때부터 폭동이란 단어는 점점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현재 이러한 용법이 현재 굳어진 것이다.[8] 당연히 사전에 타협하는것이 제일 좋기야 하지만. 폭동 자체는 사회에 폭력과 피해자를 만든다는 점에서 퇴출되어야 할 것이고, 모든 폭동이 이러한 이유로 일어나진 않으니까.[9] 서중석 교수는 이 사건이 혁명에 영향이 없으며 그보다는 어머니들의 움직임이 더 영향을 줬다며 어머니의 시위를 6월 항쟁과 비교했다.[10] 2000년대 이전까지는 애초에 보수 학계는 언급조차 안했고이를 연구하는 진보 학계에서도 폭동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대 부터는 5.18과 하필 같은 발음의 지명이다보니 혼동을 피하는 목적도 있고 해서 용어를 광주대단지사건이라고 바꾸어 표기한다. 다만 여전히 폭동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11] 참고로 이 사건은 경기도 광주시(지금의 성남시) 에서 일어났다. "전라도"의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