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1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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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국
Empire Français[1]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png
국기
국장
1804년~1814년, 1815년
국가
출발의 노래(공식)
제국의 안녕을 보우하자
(Veillons au salut de l'Empire)[2](사실상)
위치
서유럽 대부분과 중유럽 상당 부분
(진한 초록 : 제국 본토, 연한 초록 : 속국 및 동맹국[3])
정치체제
국가원수
프랑스인을 비롯한 각종 유럽인
주요사건
1804년 5월 18일: 프랑스 상원의 나폴레옹 황제 추대, 헌법 채택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식
1806년 11월 21일: 대륙 봉쇄령 발표
1807년 7월 7일: 틸지트 조약 체결
1812년 6월 24일: 러시아 원정
1814년 4월 11일: 퐁텐블로 조약으로 1차 멸망
1815년 3월 19일: 백일천하
1815년 6월 22일: 나폴레옹의 퇴위 선언으로 2차 멸망
통화
성립 이전
멸망 이후

1. 개요2. 역사
2.1. 탄생2.2. 전성기2.3. 쇠퇴기2.4. 멸망
3. 영향4. 행정구역
4.1. 130개의 데파르트망 목록
4.1.1. 기존 프랑스 왕국 영토 내의 데파르트망4.1.2. 영토 확장을 통해 새로 설치한 데파르트망
4.2. 데파르트망 이외의 행정구역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건국한 제국. 서유럽 대부분과 중부유럽 상당부분을 집어삼켰던 프랑스 영토 역사상으론 프랑스 식민제국의 변화를 제외하고 보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시대. 프랑스가 당시 세계 패권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기도 하다.

프랑스 제국이라고 하지만 나폴레옹 한 사람이 활약해서 만든 제국이니만큼 통상 나폴레옹 제국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사실 제국이라곤 하나 기간은 짧은 편으로, 나폴레옹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스스로 황제관을 쓰고 즉위한 1804년에 시작되어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 1814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815년의 백일천하가 잠깐 있었지만 워털루 전투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다.

2. 역사[편집]

2.1. 탄생[편집]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세운 눈부신 공적을 바탕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킨 뒤 스스로 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마렝고 전투아미앵 조약을 통해 적대국과의 평화 협정 체결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1802년 자신의 종신 통령 즉위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투표 결과 찬성 3백만표 반대 8000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종신 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투표했을까 이후 1804년 4월 18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상원이 나폴레옹에게 황제 자리를 수여하는 안건을 비준하면서 12월 2일 나폴레옹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제1제국의 탄생이다.

2.2. 전성기[편집]

거칠 것 없는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위세에, 바이에른 왕국, 바덴 공국, 뷔르템베르크 공국과 같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주요 국가들조차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 라인 동맹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외교 상황은 프랑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재집권한 영국의 수상 윌리엄 피트오스트리아러시아에게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유럽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자'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

이에 나폴레옹은 군사적으로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통해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붕괴시키는 한편으로, 외교적으로는 네덜란드와 나폴리 등 유럽 곳곳에 자신들의 피붙이와 믿을 만한 부하 장수들을 낙하산 왕으로 부임시켜 이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또한 기존의 선제후가 대거 사라졌다는 이유로[6] 자기 입맛에 맛는 인물들을 선제후로 대거 임명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노렸다. 한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독일 내 투톱인 프로이센을 프랑스 편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한 반감은 독일 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갔고, 1806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7]을 맺고 라인 동맹에 가입한 바이에른을 침공하는데... 망했어요. 프로이센군은 개전 후 불과 1달도 안 돼서 수도 베를린까지 털려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틸지트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 및 군비 제한 조치를 당하고 만다.

또한 틸지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한다. 동맹의 조건은 프랑스가 러시아의 오스만 제국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러시아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륙 봉쇄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 이로써 유럽 대륙의 강자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모두 영향권에 넣어둔 프랑스의 국력은 절정인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탈리아에는 교황령 및 기타 군소 공국들을 싹 다 통합하여 괴뢰 국가이탈리아 왕국을 세운다.

2.3. 쇠퇴기[편집]

그렇지만 절정기라고 보이던 바로 그 순간에 몰락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이 정복욕은 끝이 없었고,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빌미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발발한다. 현지의 게릴라 저항 세력과 이들을 후원하는 영국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군은 고전을 계속하고, 이렇게 프랑스군의 주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목이 잡히자 겉으로는 나폴레옹에게 평정당한 듯 했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중/동부 유럽에서 다시 반 프랑스의 움직임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삽시간에 관광태우며 아직까지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한편, 후계자를 얻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마리 루이즈를 아내이자 인질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이미 프랑스의 인적 동원 능력[8][9]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이번엔 러시아가 영국, 스웨덴과 연합해서 나폴레옹에게 반항을 시작한다. 이에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패였다.

러시아에서의 참패로 다시 고무된 프로이센이 대 프랑스 동맹에 재가담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공주인 마리 루이즈의 안위를 걱정해서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이지 대놓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 한편 전쟁에 지친 프랑스 내부에서도 나폴레옹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 러시아 원정이 한창이던 1812년 12월에 파리에서 쿠데타 기도가 있었으며, 징집에 반항하는 움직임도 거세졌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먼치킨인 자신의 군사적 능력으로 어떻게 어떻게 군대를 재건하고 대프랑스 동맹군들을 몰아붙였지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참패로 망했어요. 1814년이 되자 이제 나폴레옹은 이전과는 정반대로 동맹군의 프랑스 침략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고, 결국 파리가 함락당하고 만다. 이후 나폴레옹은 1814년 4월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2.4. 멸망[편집]

그렇게 나폴레옹을 대체할 인물로 루이 16세의 동생이 루이 18세로 즉위했지만 나폴레옹과 현저히 차이나는 카리스마와 대혁명 이전으로의 완전 복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혁명과 제국으로 수립된 신질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정책으로 나폴레옹 몰락 시기에 얻은 지지층을 잃고 반대파를 양산했다. 대프랑스 동맹국 측도 나폴레옹이라는 타도할 대상이 사라지자 빈 회의에서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고 신나게 쌈박질만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이듬해인 1815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다시 정권을 장악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프로이센-네덜란드 동맹군에게 패하고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백일천하. 그리고 이로써 프랑스 제1제국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3. 영향[편집]

겨우 10여 년간 존재했던 국가지만, 세계사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름만 제국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을 복속시킨 유럽의 패자였고, 사상의 전파 등 전 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아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역사의 흐름으로 권력에 오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제국을 세운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그 덕에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잠재적으론 유지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쑤셔놓은 전 유럽에는 나폴레옹 법전이 퍼지고 이 법전은 현대 대륙법 체계의 기본적 밑받침이 되었고 이후 영미법 체계 국가들(영국과 그 식민지였던 국가들 대부분)을 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코르시카 출신의 군인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군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잔불꽃과 묘하게 얽혀 전 유럽에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더불어 프랑스에서 도입된 미터법이 유럽으로 퍼지고 더 나아가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도량형이 통일되는 계기가 되었다.
  •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개념이 확산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의 기초가 된 사상과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이 기반이 되어 프랑스라는 국민국가(Nation-State)가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10] 국가(nation)라는 이름 아래 국민들이 일치단결한 근대적 국민국가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낀 유럽인들은 자신들 역시 국민국가를 성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프랑스에게 점령당한 독일인들을 보며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작성한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통일, 이탈리아 통일은 모두 나폴레옹이 유럽에 뿌린 씨앗이 맺은 최종 결실이며 이 과정을 거쳐 유럽은 민족 아래 하나로 뭉친 국민국가들로 합산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오스만 튀르크 치하에 있던 발칸 반도 내의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등의 다양한 민족들이 내셔널리즘을 내세우며 독립운동을 펼쳤고 각각의 국민국가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 국가들이 서로 이익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니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퍼뜨린 사상이 엄청난 결과물이 된 셈이다.
  • 프로이센은 프랑스 제1제국에게 점령당한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되어 독일 통일의 발판을 간접적으로 다지고, 직접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수백 개의 독일 공국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주권을 행사하며 치고 박다가 수십 개로 통일되면서 독일 제국 통일을 이룩하게 된다.
  • 프랑스 국내에는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효과를 그대로 받은 나폴레옹의 조카가 황제가 된다. 그러나 능력[11] 그리고 결말도 삼촌에 비해 영 좋지 않았으므로 보나파르티즘의 종말을 담당한다.

4. 행정구역[편집]

제국이 최대 영토를 자랑하던 1812년경의 행정구역.
제국의 행정구역은 왕정 시절이나 제1공화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을 사용하였다. 혁명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제국은 영토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데파르트망이 설치되었다. 최종적으로 최대 영토를 자랑하던 1812년경 제국에는 총 130개의 데파르트망이 존재하였다.

4.1. 130개의 데파르트망 목록[편집]

4.1.1. 기존 프랑스 왕국 영토 내의 데파르트망[편집]


Ain

Aisne
알리에
Allier
아르데슈
Ardèche
아르덴
Ardennes
아리에주
Ariège
오브
Aube
오드
Aude
아베롱
Aveyron
바랭
Bas-Rhin
바스알프
Basses-Alpes
바스피레네
Basse-Pyrènèes
부슈뒤론
Bouches-du-Rhône
칼바도스
Calvados
캉탈
Cantal
샤랑트
Charente
샤랑트앵페리외르
Charente-Inférieure
셰르
Cher
코레즈
Corrèze
코르스
Corse
코트도르
Côte-d'Or
코트뒤노르
Côtes-du-Nord
크뢰즈
Creuse
되세브르
Deux-Sèvres
도르도뉴
Dordogne
두브
Doubs
드롬
Drôme
외르
Eure
외르에루아르
Eure-et-Loire
피니스테르
Finistère
가르
Gard
제르
Gers
지롱드
Gironde
오랭
Haut-Rhin
오트가론
Haute-Garonne
오트루아르
Haute-Loire
오트마른
Haute-Marne
오트손
Haute-Saône
오트비엔
Haute-Vienne
오트알프
Haute-Alpes
오트피레네
Hautes-Pyrénées
에로
Hérault
일에빌렌
Ille-et-Vilaine
앵드르
Indre
앵드르에루아르
Indre-et-Loire
이제르
Isère
쥐라
Jura
랑드
Landes
루아르에셰르
Loir-et-Cher
루아르
Loire
루아르앵페리외르
Loire-Inférieure
루아레
Loiret

Lot
로에가론
Lot-et-Garonne
로제르
Lozère
멘에루아르
Maine-et-Loire
망슈
Manche
마른
Marne
마옌
Mayenne
뫼르트
Meurthe
뫼즈
Meuse
모르비앙
Morbihan
모젤
Moselle
니에브르
Nièvre
노르
Nord
우아즈
Oise
오른
Orne
파드칼레
Pas-de-Calais
퓌드돔
Puy-de-Dôme
피레네조리앙탈
Pyrénées-Orientales

Rhône
손에루아르
Saône-et-Loire
사르트
Sarthe
[12]
Seine
센에마른
Seine-et-Marne
센에우아즈
Seine-et-Oise
센앵페뤼에르
Seine-Inférieure

Somme
타른
Tarn
타른에가론
Tarn-et-Garonne
바르
Var
보클뤼즈
Vaucluse
방데
Vendée
비엔
Vienne
보주
Vosges

Yonne
총 86개

4.1.2. 영토 확장을 통해 새로 설치한 데파르트망[편집]

알프마리팀
Alpes-Maritimes
레망
Léman
몽블랑
Mont-Blanc
이상 3개의 데파르트망은 1792년과 1793년 사르데냐 왕국의 일부 영토를 편입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Dyle
에스코
Escaut
포레
Forêts
제마프
Jemmapes[13]

Lys
우르트
Ourthe
상브르에뫼즈
Sambre-et-Meuse
이상 7개의 데파르트망은 1795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 구성국[14]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되네트
Deux-Nèthes
뫼즈앵페리외르
Meuse-Inférieure
이상 2개의 데파르트망은 프랑스 혁명전쟁 와중인 1795년부터 1801년까지 점령한 라인 강 서안의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로 1801년 뤼네빌 조약으로 공식적인 영유를 인정받은 지역에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몽토네르
Mont-Tonnerre
랭에모젤
Rhin-et-Moselle
뢰르
Roer
자르
Sarre
이상 4개의 데파르트망은 1802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시스레니아 공화국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아펭냉
Apennins
두아르
Doire

Gênes
마렝고
Marengo
몽트노트
Montenotte

세시아
Sésia
스튀라
Stura
이상 8개의 데파르트망은 1802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수발피나 공화국과 1805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리구리아 공화국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아르노
Arno
메디테라네
Méditerranée
옹브론
Ombrone
타로
Taro
이상 4개의 데파르트망은 1807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에트루리아 왕국과 1808년 파르마 공국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Rome
트라시멘
Trasimène
이상 2개의 데파르트망은 1809년 교황령을 폐지하고 그 영토 중 일부를 편입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부슈드렐브
Bouches-de-l'Elbe
부슈뒤베제르
Bouches-du-Weser
엥쉬페리외르
Ems-Supérieur
리프
Lippe
이상 4개의 데파르트망은 1810년 라인 동맹의 구성국들 중 일부를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부슈드레스코
Bouches-de-l'Escaut
부슈드리젤
Bouches-de-l'Yssel
부슈드라뫼즈
Bouches-de-la-Meuse
부슈뒤랭
Bouches-du-Rhin
엥족시당탈
Ems-Occidental
엥조리앙탈
Ems-Oriental
프리즈
Frise
이젤쉬페리외르
Yssel-Supérieur
쥐데르제
Zuyderzée
이상 9개의 데파르트망은 1810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홀란트 왕국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생플롱
Simplon
이상 1개의 데파르트망은 1810년 프랑스의 위성국인 로단 공화국을 합병한 뒤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다.

이 밖에도 1802년 수발피나 공화국을 합병할 당시 타나로(Tanaro) 데파르트망을 설치하였으나 1805년 이를 폐지하고 마렝고, 몽트노트, 스튀라 데파르트망에 분할, 편입시켰다.

4.2. 데파르트망 이외의 행정구역[편집]

130개나 되는 데파르트망을 설치한 프랑스 제1제국이었지만 하지만 데파르트망이 제국 전 지역에 설치된 것은 아니었는데 일부 지역의 경우 다른 형태의 행정구역을 운영했다. 또한 데파르트망을 설치하긴 하였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지역도 있었다.
카랭티
Carinthie
카르니올
Carniole
크로아티 시빌
Croatie civile
크로아티 밀리테르
Croatie Militaire
달마티
Dalmatie
이스트리
Istrie
라귀스
Raguse
이상은 1809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편입한 일리리아 주에 설치한 7개의 앵탕당스(intendances)이다. 원래는 11개의 데파르트망으로 나누어 관리하였으나 1811년 데파르트망을 폐지하고 7개의 앵탕당스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하지만 앵탕당스 역시 데파르트망이랑 기능은 유사하였다.
부슈드레브르
Bouches-de-l'Èbre
몽세라
Montserrat
세그르
Sègre
테르
Ter
이상 4개의 데파르트망은 1812년 스페인으로부터 편입한 카탈루냐 지역에 설치한 데파르트망이나 1814년 스페인에서 물러날 때까지 법적 지위가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지역이다.

5. 둘러보기[편집]

일리리아
일리리아 전쟁
로마 제국
S
Z
P
A
D
8C
9C
10C
P
S
Z
A
D
L
18C
19C
P
S
Z
A
D
L
※ S는 동부 슬라보니아 평야 일대, P는 풀라/이스트리아 반도, D는 달마티아 해안 지방
[1] 프랑스 제국이라고 이름을 단 국가가 한 둘이 아니다보니 이를 구분하기 위해 나중에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을 "Premier Empire frança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라틴어로는 Imperium Francicum이라고 한다.[2] 들어보기[3] 자신의 심복이 다스리던 나폴리 왕국과 형이 다스리던 스페인 왕국, 자신이 의장이던 라인 동맹, 그리고 라인 동맹 구성국이던 작센 왕국의 동군연합국 바르샤바 공국까지 다양했다.[4] 이 2개 언어가 공식 언어였다. 이외 제국 내에서 게르만어, 슬라브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됐다.[5]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 남은 영토는 독일연방, 스페인 왕국,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올덴부르크 대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모나코, 중립 모레스네, 교황령으로 갈라졌다.[6] 18세기 말 팔츠 선제후의 영지가 바이에른 선제후 영지에 통합되면서 팔츠 선제후가 사라졌고 쾰른, 트리어, 마인츠의 세 주교선제후는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그들의 영지를 프랑스가 합병하면서 사라졌다. 또한 하노버 선제후는 프랑스와의 밀약으로 프로이센이 하노버를 합병하면서 사라져 버렸다.[7] 이것이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다.[8] 1805~1814년 동안 무려 150만 명 이상의 프랑스 청년들이 징병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9] 사회를 구성하는 건장한 청년들을 군사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가 생산력이 감소한다. 그걸 막기 위해 나이대가 안 맞는 인원을 동원할 경우 병력의 질의 저하를 가져오고... 평화가 최고야[10] Nationalism을 흔히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 데, 민족을 흔히 혈통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주로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개념이며, 유럽 정치사학계에서의 민족은 언어, 문화, 풍습 등을 공유하는 상상의 공동체이자 정치사회적 근대화의 결과물로 보는 경우가 많다.[11] 내치에선 꽤나 좋은 군주였으나 외치에서 무능했다.[12] 수도 파리가 여기 있었다.[13] 현재 에노. 이 지명의 현재 명칭은 Jemappes(주마프)이며, 에노의 하위 구역으로 존재한다.[14] 리에주 주교령, 스타브로말메디 제국수도원령, 토른 제국수도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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