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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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의 송출 채널
라디오 방송
중파
초단파
제1라디오 · 제2라디오(Happy FM) · 제3라디오(사랑의 소리 방송)
제1FM(Classic/지역 FM) · 제2FM(Cool FM, U-KBS MUSIC) · 한민족방송
EBS FM
단파
텔레비전 방송
지상파
DMB
1TV(U-KBS STAR) · 2TV (U-KBS HEART)
EBS 1TV · EBS 2TV
인터넷
KBS 24
폐지된 방송
라디오서울 · KBS 3TV · 교육 FM
† 위탁송출



한국방송공사의 지역 방송국
수도권
KBS (본사)
강원권
충청권
대경권
동남권
호남권
제주권
KBS경인: 방송센터, : 방송총국
한국방송공사
韓國放送公社
Korean Broadcasting System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며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국가
설립
개국
본사 소재지
채널
국제방송
홈페이지
링크
실시간
노동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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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자
법인형태
국영방송 (1948~1973)
공영방송 (1973~)
업종명
지상파 방송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형태
직원 수
4,892명(2021년 기준)
자본금
2061억 9158만 4736원
매출액
1조 3622억 998만 688원
영업이익
1900억 1160만 1477원
순이익
326억 9005만 1360원
자산총액
1조 2726억 9873만 7841원
자회사
KBS 미디어, KBS N, KBS America, KBS Japan, KBS 비즈니스, KBS 아트비전, KBS 시큐리티, KBS미디어텍, e-KBS, 방송차량서비스, KGCS 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1. 개요2. 상징
2.1. 기업 정신2.2. 로고2.3. 마스코트2.4. 슬로건
2.4.1. TV
2.4.1.1. 1993년 ~ 2002년2.4.1.2. 2003년 ~ 현재
2.4.2. 라디오
2.4.2.1. 1970년대2.4.2.2. 1980년대2.4.2.3. 1993년 ~ 2002년2.4.2.4. 2003년 ~ 현재
3. 마케팅
3.1. 사가3.2. 로고송
3.2.1. KBS 1TV3.2.2. KBS 2TV3.2.3. KBS 라디오
3.3. 방송지표
4. 역사5. 사옥
5.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12.1(본관) / 1988.6(신관) ~ 현재)5.2. 여의도 별관 (1980.12.1 ~ 현재)5.3. 수원센터 (2000.11 ~ 현재)5.4. 상암 미디어센터 (2007.12 ~ 현재)
6. 특징
6.1. 법인현황6.2. 조직도
6.2.1. 조직
6.3. 편성정책
7. 지배구조8. 임직원
8.1. 임원
8.1.1. 공사화 이전 (1927~1973)8.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
8.2. 직원
8.2.1. 아나운서8.2.2. 프로듀서8.2.3. 기자, 임원 및 기타
9. 채널
9.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9.2. 지상파 라디오 방송9.3. PP(KBS N)9.4. 인터넷 방송9.5. 유튜브 채널9.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9.7. 팟캐스트
10. 방송현황
10.1. 프로그램10.2. 방송망10.3. 네트워크10.4. 계열사10.5. 공익재단
11. 정기간행물
11.1. 기록물11.2. 매거진
12. 평가13. 논란 및 사건사고14. 노동조합15. 교통편
15.1. 본관ㆍ신관15.2. 별관
16. 이모저모17. 둘러보기1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3]
대한민국 최대 방송사로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을 운영하며, 자회사를 통해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한다. 본사 주소는 ()0723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4]

2001년 3월 3일[5] 이후 약칭인 한국방송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방송공사.[6] 별명으로는 크브스, 케백수 등이 있다.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가맹사이며 2002년부터 이사국 지위를 지녔고, 2011~2018년까지 회장사를 맡을 정도로 일본 NHK, 중국 CCTV 등과 더불어 아시아 방송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간혹 영국BBC독일ARD, ZDF, 도이칠란트 라디오와 프랑스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그리고 미국PBS, NPR 등 해외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 역할이나 개념상으로 일본의 NHK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제작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7] 이처럼 일본 NHK와 닮은 방송성격 때문에 아직도 기성세대에서는 흔히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확한 법인격적 성질은 국영이 아닌 영조물법인체로서의 공사(공기업)이다.[8] 예산과 인사문제는 KBS이사회에서 심의, 의결하며, 결산에 있어서만 방통위 제출 후 감사원 검토 및 국회 의결절차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KBS이사 임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할 뿐, 민주화 이전처럼 재정과 인사에서 통제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공공기관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만, 전시방송 및 재난방송을 주관하는 방송사인 점, 대북방송을 송출한다는 점 등은 과거 내무부 산하 국영방송 흔적이 남아 있고, 여전히 정부와 밀접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다. 케이블의 지상파 관련 논쟁에서 KBS1이 EBS와 더불어 지상파 채널 중 의무재송신 대상 채널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도 이의 흔적 중 하나이다.

KBS를 공영방송이 아닌 '국영방송'으로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KBS측에서는 자사를 국영방송으로 칭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심지어 노무현 탄핵 시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장전영 대변인이 KBS보고 "국영방송이 어쩌구" 했다가 소송맞고 사과한 후에 취하한 적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정부 관계자 등 높으신 분들이 방송국을 방문해서 국영방송이라 했다가 갑분싸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 KBS에서 떨어져나온 EBS 역시 공영방송으로, '국영방송'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니까 주의. MBC는 KBS나 EBS처럼 칼같이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KBS를 깔 때 일부러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안티들도 있다.

공식적으로 규정된 업무는 아니지만 난시청과 공시청, 공시청 장비에 관한 업무도 본다. 케이블방송이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공시청 장비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을 복구하는 일이 많다. 이따금씩 광고도 하고. KBS 수신기술서비스[9]

KBS의 일베 관련 논란으로는 개그콘서트부엉이 코너 관련 논란이나[10] 렛잇비 베충이 사건[11], 일베 기자 채용 사건 이 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일베 합성 로고를 노출시킨 적이 있었다.

심지어 2015년 4월 1일자로 네이버 실검에 'KBS 일베 기자'가 올라왔는데,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 일베 활동 의혹을 받는 KBS 수습기자가 31일 정식 기자로 임용됐다는 내용의 진짜 기사다.링크(네이버뉴스)링크(소방방재신문) 이 경우 사규에 어긋나지 않고 외부 법률자문에도 문의결과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일단 해당 수습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일반직 4직급)으로 파견발령되었으며, 이 부서는 취재·제작 업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6년 3월에는 보도국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보기 2018년 2월에 춘천으로 발령했다는 소식이 나왔다.기사보기 당연히 춘천지역 기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2. 상징[편집]

2.1. 기업 정신[편집]

2015년 이전

  • 사훈: 2000년대 이후 잘 쓰이지 않는다.
품위있는 방송, 능률적인 경영, 조화 속의 단결

2015 ~ 2019

  • 비전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
  • 미션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Beyond TV! Rock the World!)
  • 핵심가치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 공정, 혁신, 열정, 소통

2019 ~

  • 중장기 목표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신뢰, 창의, 혁신
  • 5대 세부목표
독보적 신뢰, 압도적 영향력, 콘텐츠 도달률 강화, 글로벌 미디어로 변화, 창의적 조직으로 변화

2.2. 로고[편집]

파일:attachment/kbs1961.png
파일:KBS_1961년_제작[1].png
1세대 로고 (1961년 ~ 1973년)
2세대 로고 (1973년 ~ 1984년)
3세대 로고 (1984년 ~ 현재)
  • 3세대 로고 (1984년 10월 2일 ~ 현재): KBS의 최장수 CI. 디자인포커스 대표였던 정준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글씨체는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1984년 10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용.# 1999년 9월까지는 오른쪽 하단에 회색의 심볼이 있는 워터마크를 사용하였다가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1월 30일까지는 심볼마크가 황토색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2003년 12월 1일 이후로는 모든 방송에 심볼마크는 뗀 채로 글씨로고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심볼마크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건 아니고, 홈페이지와 사옥 건물, 촬영용 차량 등에는 여전히 파란색과 황토색으로 당당히 붙어있다.[13] TV에서는 간간히 파란색으로 간접적으로라도 나오지만 2000년대 초까지에 비해서는 등장빈도가 굉장히 적다. 이처럼 몇가지 색이 존재하지만 공식적인 색깔은 파란색. 선 개수도 미묘하게 다를때도 있다. 4선과 6선이 있는데, 4선은 방송 타이틀등에서 쓰였고 6선은 인쇄물 등에 사용되었지만, 2013년 8월에 리뉴얼하면서 6선으로 고정했다. 이때 색깔도 파란색으로 고정했다. # 문화방송체처럼 한글 글씨체도 있는데[14] 이 글씨체는 8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 로고 표기로만 사용하였으나[15] 2001년 KBS 한국방송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크레딧의 '제작'에 로고표기로 TV에 등장하였으며 이후 2012년부터 TV에서 NEXT 영상, ID영상, 홈페이지 등에서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방송국 CI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CI다.[16] 여담이지만 저 로고, 원래는 서울 올림픽 로고 경쟁작 중 하나였고, 낙선한 이후 한국방송공사가 써먹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회에 당선된 양승춘 디자이너는 이후 S본부의 초대(初代) 로고를 디자인했다(...). 근거 1, 근거 2 로고피디아에 따르면 1983년 버전이 있다고 하는데, 영상이 삭제돼서 상세 내용은 불명.

2.3. 마스코트[편집]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출처 voozclub에서 만들었다.(포트폴리오) 디자인의 호불호가 꽤 많은 편으로,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난장판이다. 이 때문인지 초창기에만 많이 쓰이고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에는 올림픽 기간이나 몇몇 ID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다.
  •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다들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방송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KBS 본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정식 이름은 K2다. 그런데 9년 전에 나온 KBS 스테이션 ID에 대한 홍보지에는 공이라고 쓰여있다. KBS2에서 2003년 즈음부터 사용되었는데 비슷한 마스코트가 아르헨티나 방송 telefe에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쓰였었다! 게다가 이쪽은 로고 특성상 한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 2015년부터는 방송 안내나 SNS 페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마스코트에서 팔다리를 없엔 모습의 노란 공 디자인은 간간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 마스코트가 , 새 마스코트인 케빗에게 대를 이어달라는 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루리웹에도 이 사실이 올라왔는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 '동글이 다시 데려와' 그럼에도 시청자상담실 홈페이지에 가면 계속해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인 깔깔티비에서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채널의 마스코트 노릇을 하고 있다.

2.4. 슬로건[편집]

2.4.1. TV[편집]

2.4.1.1.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세상[17]
2.4.1.2. 2003년 ~ 현재[편집]
  • 한국인의 중심채널[18]
  • 젋은 채널[19]
  • 사랑하기 때문에[20]
  • Beyond the TV! Rock the World![21]
  • 다함께 KBS2[22]
  • TV는 2TV가 재미있습니다[23]
  • TV는 2TV, 재밌다[24]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25]
  • 오늘을 담는 창[26]
  • 내일을 여는 빛[27]

2.4.2. 라디오[편집]

2.4.2.1. 1970년대[편집]
  • 밝은 방송, 알찬 내용, 희망의 소리[28]
  • 오늘을 보람있게 내일을 희망차게[29]
2.4.2.2. 1980년대[편집]
  • 슬기로운 생활의 벗[30]
2.4.2.3.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내일[31]
2.4.2.4. 2003년 ~ 현재[편집]
  • 대한민국 뉴스 채널[32]
  • 사랑하기 때문에[33]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34]

3. 마케팅[편집]

3.1. 사가[편집]


KBS 사가

김수철 작사ㆍ작곡

밝은 미래를 함께 여는 우리는 KBS
새 시대 새로움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의 진실한 열정은 세계를 밝혀주리라
우리는 KBS 사랑과 정의를 전해주리라
우리는 KBS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리라
KBS 한국방송

맑은 지혜가 샘 솟는다 우리는 KBS
사랑과 믿음이 모여 동서남북 하나가 된다
우리의 인류애로 온 누리엔 평화의 꽃 피어난다
우리는 KBS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리라
우리는 KBS 이 세상 환하게 비춰주리라
KBS 한국방송

자세한 내용은 KBS 사가참고

3.2. 로고송[편집]

KBS 노래 ( ~ 1990년대 초반)

90년대 이전 라디오 시그널로 쓰기 위해 노래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 쓴 곡이다. 일종의 로고송이다. 1970년대에 TV에도 중간중간에 나왔던것으로 보이며,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초반 KBS 9시뉴스 시작전 ID로고송으로 멜로디 일부가 나온적이 있었고, 90년대 초반때만 해도 방송시작고지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며 1992년과 1993년에 걸쳐서 2TV ID로고송으로도 쓰이기도 했다.[35] 2000년대 중반까지 KBS 사회교육 제1방송(972kHz. 현재 KBS 한민족방송)의 오후 1시 오프닝때도 이 음악이 나왔다. 그리고 1980년대에 KBS로 전화를 걸면 이 노래가 통화대기음으로 나왔다

1990년대에는 실로폰음이 나왔다. 꽤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로고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KBS 노래 공동위원회 작사 / 이희목 작곡

동이 튼다 랄라라
새 날이다 랄라라라
맑은소리 곱게 곱게 KBS
빠르고 올바르게 KBS
즐거운 우리들의 KBS KBS
라디오도 랄라라
텔레비젼도 랄라라라
밝은소리 굽이굽이 KBS
힘차고 슬기롭게 KBS
영원한 우리들의 KBS KBS

KBS 로고송 (1980년대 ~ )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로고송.

로고송은 다음과 같다.

3.2.1. KBS 1TV[편집]

  •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 (1988년)
  • (반주) KBS KBS (1991년 ~ 1993년) #
  • KBS KBS 제1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36]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37]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현재)[38]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 (2018, 2019년, 국경일 한정)[39]

3.2.2. KBS 2TV[편집]

  • 즐겁고 유익한 KBS 제2텔레비전 (1984년 ~ 1987년)[40][41]
  •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제2텔레비전 (1987년 ~ 1991년)[42]
  • KBS KBS 제2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년 6월 27일)[43]
  • KBS KBS KBS 한국방송 (사랑해) (2003년 6월 28일 ~ 2009년 일자 미상)[44][45]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년)

3.2.3. KBS 라디오[편집]

  • 사랑하기 때문에 KBS(2007년 ~ 현재)[46]
  • (반주) KBS 1라디오(2013년 ~ 2018년)[47]
  • 대한민국 중심채널 KBS 1라디오(2018년 ~ 현재)[48]
  •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KBS 해피FM(2007년 ~ 현재)[49]

3.3. 방송지표[편집]

연도
문구
연도
문구
하나로 세계로 미래로 #
믿는 사회, 밝은 내일, 세계와 함께 #
인간화, 민주화, 세계화 - 21세기를 준비한다
환경을 지킵시다 #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살린다 #
새로운 출발 - 국민의 힘을 모읍시다 #
국민과 함께 세계로 #
광복 50주년 - 새 반세기의 출발
21세기 앞으로 5년, 국민과 함께 KBS가 열어갑니다 1TV 2TV
KBS 50년, 새로운 반세기 국민과 함께 1TV 2TV
경제위기 극복, 국민과 함께 KBS가 앞장섭니다
21세기가 눈앞에, 다시 일어서는 한국
벽을 넘어서 화합의 시대로 #
디지털 KBS, 희망을 함께 나눔을 함께 1TV 2TV
2002 코리아,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
새출발 대한민국 화합의 시대로
함께 가자, 대한민국! #
국민감동 KBS #
아시아의 창 KBS
한국인의 희망 KBS 1TV 2TV
하나되는 대한민국 함께하는 KBS
공정·공익 KBS #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 KBS
시청자와 함께! 디지털 KBS
하나되는 대한민국 글로벌 KBS
글로벌 KBS 행복한 대한민국
창의와 신뢰로 미래를 여는 KBS #
광복 70년, 미래 30년, 대한민국 100년의 드라마 #
청년 대한민국 1TV 2TV
희망 2017, KBS가 함께 합니다 1TV 2TV
희망과 감동, KBS가 함께 합니다 1TV 2TV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1TV 2TV
2020 새로운 시작 - 공정·창의·혁신 KBS 1TV 2TV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며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1TV 2TV

4. 역사[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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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 사옥[편집]

5.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12.1(본관) / 1988.6(신관) ~ 현재)[편집]

KBS 여의도 통합 사옥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
[ 본관 ]
층수
Information
7
감사실, 대외협력국
6
사장실, 임원실, 비서실, 인적자원실, 노사협력주간, 대회의실
5
라디오센터 (라디오편성기획, 1·2라디오, 1·2FM, 월드 라디오), RS-1~17, 라디오기술국, 성우실, 경영정보국, KBS 교향악단, KBS ON (미니박물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4
라디오센터 (기획, 편성, 디지털오디오, 3라디오, 한민족방송), 라디오생방센터 (1·3라디오, 1FM, 한민족방송, 월드 라디오), 총무시설국, 콘텐츠아카이브부, KBS ON (홍보관, 가상스튜디오, 미디어교육장, TV부조정실, 만화영화더빙, 9시 뉴스앵커)
3
TS-6·7, 제작편집실(1~9), TV기술국, 음향디자인실, 인터뷰룸, 전략기획국, 예산국, 아나운서실, 인사기획부, 제작기획2부, 콘텐츠프로모션부, 제1회의실
2
TS-1~5, 출연자 분장실/대기실, 라디오생방센터 (2라디오, 2FM, 교통정보센터), 성평등센터, 시청자센터, 경영관리국, t;time
1
안전관리실, 도서관, 의무실, 치과, KBS시큐리티, 방송차량서비스
B1
본관식당, 아나운서교육장, 사진스튜디오
[ 신관 ]
층수
Information
9
시사교양1국, 시사제작국, 제6회의실, NLE편집실
8
시사교양2국, 협력제작국, NLE편집실
7
멀티플랫폼전략국, 멀티플랫폼편성국, 일본방송협회, 중국 중앙 텔레비전, 제5회의실
6
예능센터,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 NLE편집실
5
이사회, 기술관리국, 미디어인프라국, 방송네트워크국, 국제회의실, NLE편집실
4
3
2
안내데스크, 홍보실, 방재센터, 신한은행, 대원서점, 캐릭터숍, t;time, 르뽀미에
1
영상제작국, 중계기술국
B1
TS-11~14, 제작편집-11~13, NET CG-1~4, DI-11, 음향마스터링실-11~13
B2
플랫폼개발사업부, 디지털품질관리부, KBS 미디어
파일:/100/400/96/100796.jpg
KBS홀과 신관 공개홀[50]
파일:m_pop_img1[1].jpg
KBS 미래방송센터 조감도.
  • 본관: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12,396.7m² 규모로 1976년 12월 1일 준공되었으며, 현재 전략기획실, 경영본부, 라디오센터, 아나운서실 등이 사용하고 있다. 또 견학관인 KBS ON도 4~5층에 자리잡고 있다.
  • 신관: 지하 2층, 지상 9층, 연면적 63,987m² 규모로 1988년 6월 준공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 용도로 지어졌으며 현재 편성본부, 보도본부, 제작1본부, 예능센터, 기술본부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54]
  • 공개홀
  • 연구동 : 지상 2~5층 규모의 건물 4동(3~5동, 관리동. 1, 2동은 결번, 연면적 15,487.63m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77년에 완공되었다. 본래 국회 의원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1990년에 양도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나 사택으로 생각하는 그 건물이다. 현재 미디어기술연구소, 심의실 및 본사 건물에 입주하지 못한 각종 부서들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개그콘서트 연습실도 있었으나, 종방이후 미사용.

사옥 개방은 다른 지상파 3사에 비해 개방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오전 6시 부터 ~ 밤 12시 까지 건물 개방이 된다. 출입가능 범위는 신관, 본관 1층 로비 등은 자유로이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나 라디오 스튜디오가 오픈스튜디오 방식이라서 매일밤 DJ 진행자의 팬들이 모여서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크게 문제없이 이용이 가능하긴 하나, 일부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잠긴다.

2016년 고대영 사장 시절 기존의 연구동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66,891.30㎡ 규모의 '미래방송센터'를 세우고 이후 기존 본관과 신관을 리모델링하여 여의도 별관과 수원센터의 기능을 죄다 흡수하려 했으나,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이듬해 고 사장 퇴진으로 표류 상태이다. 게다가 양승동 사장 체제 이후에도 재원조달 문제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해당 부서인 미래방송센터추진단이 아예 공중분해까지 되어 신사옥 건립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TV스튜디오는 본관에 7개(1~7), 신관에 4개(11~14), 별관에 3개(A, C, D)가 위치해 있다. 라디오스튜디오는 본관에만 있다.

5.2. 여의도 별관 (1980.12.1 ~ 현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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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여의도 별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59 (여의도동)

1980년 4월 준공되어 동양방송의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다가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사라지자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드라마센터, 공영미디어연구소, 콘텐츠사업 관련부서, KBS한국어진흥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5.3. 수원센터 (2000.11 ~ 현재)[편집]

파일:attachment/KBS경인방송센터/nisi20100912_0003400905_web_whdgml1239.jpg
KBS 수원센터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23 (인계동)

연면적 75,460.47㎡ 규모로 2000년 11월 준공되었다. 현재 드라마센터[56], KBS경인방송센터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교양 및 예능도 여기서 녹화한다. 인재개발원, 방송박물관, KBS수원아트홀도 같은 부지에 위치하고 있다. 인계동행정복지센터도 세들어서 위치하고 있다.

5.4. 상암 미디어센터 (2007.12 ~ 현재)[편집]

KBS 상암 미디어센터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45 (상암동)
[ 정보 펼치기 · 접기 ]
층수
Information
21
덕은도시개발 전시장
20
몬스터유니온, 미스틱스토리, OH!BROTHERS
19
클론미디어텍
18
MEDIACAN, 필콘미디어
17
KBS 미디어 HRD센터, 유한양행 서부지점
16
대우정보시스템 e호조교육장
15
Metabranding, 태광선식, 티제이물류
14
코반, 덕은도시개발
13
세이온미디어, SM C&C
12
Avnet Korea
11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프라임운송, Avnet Korea
10
KBS 미디어 노조사무실
9
KBS N (정책기획본부, 마케팅본부), 에이텍에이피
8
KBS 미디어 (감사, 감사팀, 인터넷서비스부, 전략기획프로젝트팀)
7
씨티이안, JINLIN CULTURE
6
KBS 미디어 (사장실, 부사장실, 스마트사업본부, 디지털미디어센터, 경영센터, 회의실)
5
KBS 미디어 (경영지원부, 미디어랑, 심석홀, 콘텐츠판매센터, 콘텐츠자료실, 복사실, 통신실, 체력단련실)
4
KBS 미디어 (지원사업부, 해외사업부, 국내사업부, 플랫폼사업부, 디지털제작부, 미디어커머스부, 문화교육부)
3
KBS N (사장실, 감사실, 편성제작본부, 경영관리실), KBS 방송아카데미 (강의실A~E, TV-Studio, R-Studio, 교무실, 교수실, 노조사무실)
2
KBS N (기술국, OAP실, 주조정실, 부조정실, 편집실, 녹음실, NLE실, 노조사무실, 감사팀, 스포츠국MD)
1
KBS N SPORTS, KBS N (스튜디오, 대기실, 분장실, 소품창고), 신한은행
B1
상암지앤미치과의원, 화수목먹거리, 드림마트, 드림디포, 테리온휘트니스, 한국미디어종합예술원
B2~B5
주차장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위치한 KBS미디어센터 사옥. KBS N, 몬스터유니온 등 자회사와 계열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6. 특징[편집]

6.1. 법인현황[편집]

  • 설립근거: 방송법 제43조 1항 외 관련 법령
  • 임무 및 기능: 동법 §43~§68 참조[57]
  • 조직현황: #KBS 홈페이지 조직도 참조.
  • 인력현황: 사장 포함 상임임원 10인[58], 비상임임원(이사) 11인[59], 정규직 총원(T/O) 5,548인 중 현원 4,726인.(2019년 말 기준)[60]
  • 직원평균보수: 기본급 5,011만 원 + 수당 등 4,688만 원 = 합계 9,699만 원[61]
  • 2020년 손익현황: 수입 1조 4,341억 6,200만 원[공적재원 6,922억 700만 원(수신료 6,790억 2,400만 원+정부보조금 131억 8,300만 원), 자체수입(광고+콘텐츠판매+협찬+자산매각 등) 7,419억 5,500만 원)] / 지출 1조 4,014억 7,200만 원, 당기순이익 326억 9,000만 원

기타 정보는 KBS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항목 참조.(#)[62]

6.2. 조직도[편집]

  • 양승동 사장
  • 임병걸 부사장 - 인적자원실, 심의실, 성평등센터, 시청자센터, 노사협력주간, 지역정책실
    • 전략기획실(국은주 실장) - 전략기획국, 예산국, 대외협력국, 공영미디어연구소
    • 편성본부(한창록 본부장) - 멀티플랫폼전략국, 멀티플랫폼편성국, 국제방송국, 아나운서실, 영상제작국
    • 보도본부(김종명 본부장)
      • 통합뉴스룸(임장원 국장) - 취재1·2, 방송뉴스, 디지털뉴스
      • 재난미디어센터, 시사제작국, 스포츠국, 보도영상국
    • 제작1본부(이상운 본부장) - 시사교양1·2국, 협력제작국
      • 라디오센터(최봉현 센터장) - 라디오편성기획국, 라디오제작국
    • 제작2본부(이훈희 본부장) - 예능센터, 콘텐츠사업국, 광고국
      • 드라마센터(이건준 센터장) - 드라마 CP 그룹
    • 기술본부(이창형 본부장) - 기술관리국, 미디어인프라국, 방송네트워크국, 미디어기술연구소
      • 제작기술센터(박종원 센터장) - TV기술국, 보도기술국, 중계기술국, 라디오기술국
    • 경영본부(조현국 본부장) - 총무시설국, 경영관리국, 수신료국, 경영정보국
  • 이사회(김상근 이사장) / 감사(김영헌 감사)

6.2.1. 조직[편집]

양승동 체제 인사
2021년 4월 10일 기준
임원
부사장 임병걸
전략기획실장 국은주
편성본부장 한창록
보도본부장 김종명
제작1본부장 이상운
제작2본부장 이훈희
기술본부장 이창형
경영본부장 조현국
센터장
성평등센터장 (공석)
시청자센터장 이도경
재난미디어센터장 김민철
라디오센터장 최봉현
예능센터장 김호상
드라마센터장 이건준
제작기술센터장 박종원
국장급
인적자원실장 조성용
심의실장 김태선
지역정책실장 정혜승
전략기획국장 김형준
예산국장 손재오
대외협력국장 이경호
공영미디어연구소장 유건식
멀티플랫폼전략국장 박현민
멀티플랫폼편성국장 윤진규
국제방송국장 권오훈
아나운서실장 이형걸
영상제작국장 이규하
통합뉴스룸 국장 임장원
시사제작국장 박태서
스포츠국장 정재용
보도영상국장 유석조
시사교양1국장 황대준
시사교양2국장 이제헌
협력제작국장 양홍선
라디오편성기획국장 신원섭
라디오제작국장 이연희
콘텐츠사업국장 김영삼
광고국장 권찬중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장 유웅식
기술관리국장 이종수
미디어인프라국장 조광민
방송네트워크국장 장호진
미디어기술연구소장 정병희
TV기술국장 김관후
보도기술국장 이형섭
중계기술국장 조용석
라디오기술국장 황보영근
총무시설국장 이봉섭
경영관리국장 차청문
수신료국장 차상열
경영정보국장 이순화

6.3. 편성정책[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편성정책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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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배구조[편집]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100%

8. 임직원[편집]

출처는 여기

8.1. 임원[편집]

8.1.1. 공사화 이전 (1927~1973)[편집]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

  • 윤백남 (1932~1933)
  • 김정진 (1933~1936)
  • 심우섭[63] (1936~1939)

경성방송국 제2방송부장

  • 이혜구 직무대행 (1942)
  • 노창성 (1942~1943)

조선방송협회장

  • 이정섭 (1945~1948)

서울중앙방송국장[64]

  • 이혜구 (1945~1947/1949)
  • 홍양명 (1947~1948)
  • 이관희 (1948~1949)
  • 노창성 (1949~1953)
  • 이운용 (1953~1960)
  • 조흔파 (1960~1961)
  • 윤길구 (1961~1963/1966)
  • 김재연 (1963/1966~1968/1969~1970)
  • 이홍수 (1963~1966)
  • 김임용 (1968~1969/1970~1971)
  • 민유동 국장대행 (1969)
  • 홍경모 (1969)
  • 최창봉[65] (1971~1973)

서울국제방송국장[66]

  • 황기오 (1961~1962)
  • 이용상 (1962)
  • 심득성 (1962)
  • 이재현 (1962~1963)
  • 노정팔 (1963~1966)
  • 이용상 (1966~1968)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장[67]

  • 황기오 (1962)
  • 이홍수 (1962~1963)
  • 김재연 (1963~1965)
  • 김진영 (1966~1968)

8.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편집]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됨.
  • 송지영 (1984~1988)
  • 노정팔[68] (1988~1993)
  • 김태길 (1993~1996)
  • 김채윤 (1996~1998)
  • 이세중 (1998~2000)
  • 지명관 (2000~2003)
  • 이종수 (2003~2006)
  • 김금수 (2006~2008)
  • 유재천 (2008~2009)
  • 손병두 (2009~2012)
  • 이길영 (2012~2014)
  • 이인호 (2014~2018)
  • 변석찬 이사장대행 (2018)
  • 전영일 이사장대행 (2018)
  • 김상근 (2018~)

사장

순서
이름
시기
비고
초대~2대
홍경모[69]
1973~1979
3대
1979~1980
4~5대
1980~1985
6대
1985~1986
7대
정구호
1986~1988
8대
1988~1990
9대
1990~1993
10~11대
1993~1998
최초의 방송인 출신 사장
12~13대
1998~2003
14대
2003
사퇴[70]
15~17대
2003~2008
해임
사장대행
이원군
2008
제명
18대
2008~2009
19대
2009~2012
20대
2012~2014
해임
21대
2014~2015
22대
2015~2018
해임
사장대행
조인석
2018
제명
23~24대
2018~
정연주 이후 연임하게 된 사장

사실상 한국 방송계를 선도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방송협회 회장 및 지상파UHD방송추진협회(UHD코리아) 회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1973년 이후 역대 사장 중 암묵적인 외압이나 내부 반발에 의한 사임 등은 제치고 공식적으로 사장에서 해임당한 사례는 정연주길환영, 고대영 사장 세명이다. 정연주 사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 길환영 사장과 고대영 사장은 각각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보도 통제 논란 등과 보도국장으로 재직시 금품수수 및 보도 누락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 등 여러 논란로 인한 공영성 훼손으로 이사회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배임은 훗날 무죄로 판명났고(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 실제 의도는 윗선에서의 언론통제라는 평가가 대다수.

그리고 이들 중 이원홍과 정연주 두 사장은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칭호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 제작 등에 있어 시시콜콜 개입했기 때문(...)[71] 그리고 사장들 대부분은 기자 출신이며,[72] 이병순 이후 내부 출신이 사장이 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부사장

  • 최창봉 (1973~1976)
  • 김재중 (1976~1980)
  • 윤혁기[73] (1989~1990)
  • 손영호[74] (1990~1994)
  • 최동호 (1994~1998)
  • 이형모 (1998~2000)
  • 강대영 / 김형준[75] (2000~2003)
  • 안동수[76] (2003~2005)
  • 김홍[77] (2005~2008)
  • 이원군[78] (2007~2008)
  • 김성묵[79] / 유광호 (2008~2009)
  • 조대현 / 김영해[80] (2009~2011)
  • 길환영 (2011~2012)
  • 전홍구[81] / 류현순[82] (2013~2014)
  • 금동수[83] (2014~2015)
  • 전진국 / 조문재[84] (2015~2017)
  • 조인석[85] / 이종옥 (2017~2018)
  • 정필모 (2018~2020)
  • 임병걸 (2020~)

감사

  • 노정팔 (1973~1977)
  • 이치순 (1977~1980)
  • 임진택 (1980~1982)
  • 김수득 (1982~1986)
  • 유태완 (1986~1990)
  • 차종호 (1990~1992)
  • 조봉균 (1992~1994)
  • 이철호 (1994~1998)
  • 방원혁 (1998~2000)
  • 전준모 (2000~2003)
  • 강동순 (2003~2006)[86]
  • 변원일 (2006~2009)
  • 이길영 (2009~2012)
  • 김승종 (2012~2015)
  • 전홍구 (2015~2018)
  • 김영헌 (2018~)

편성책임자

TV는 편성본부장, 라디오는 라디오센터장이 책임자 위치에 있다. 김인규~고대영 체제까지는 편성센터 → 편성본부 → 방송본부의 명칭을 거치며 TV와 라디오편성을 모두 담당하였다.
  • 손영호 (1986~1987)
  • 김도진 (1987~?)
  • 강병우 (1991~1992, 1994~1996)
  • 박성범 (1992~1994)
  • 안국정 (1996~1998)
  • 강대영 (1998~2000, TV) / 한신평 (1998~2000, 라디오)
  • 이흥주 (2000~2002)
  • 김승종 (2002~2004)
  • 이원군 (2004~2005)
  • 장윤택 (2005~2006)
  • 남성우 (2006~2008, TV) / 조원석 (2006~2008, 라디오)
  • 최종을 (2008~2009)
  • 이혁주 (2009~2010)
  • 서재석 (2010~2012)
  • 전진국 (2012~2014)
  • 권순우 (2014~2015)
  • 김성수 (2015~2017)
  • 김영국 (2017~2018)
  • 황용호 (2018~2020, TV / 2018~2019, 라디오)
  • 국은주 (2019~2020, 라디오)
  • 한창록 (2020~, TV) / 최봉현 (2020~, 라디오)

8.2. 직원[편집]

8.2.1. 아나운서[편집]

  •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기수(공사화 이후 기준) 및 성별(동일 기수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 순, 지역권은 지역권 순 우선)로 나열합니다.
  • 단, 지역권 아나운서는 계속 지역방송(총)국에서 머물게 됩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타 부서로 전향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하거나 서울로 복귀한 아나운서입니다.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아나운서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CBS(기독교방송)를 표기합니다.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아나운서입니다.
기수
입사년도
남성
여성
지역권
1951년
1954년
전영우, 최계환[89], 최세훈[90]
강영숙[91]
1955년
김영호
1956년
박종세[92], 이광재
1961년
배덕환, 이규항
임국희[93]
1963년
김동건(DBS)[94], 김승한,
변웅전[95], 우제근(DBS),
원창호(DBS)
1964년
박병학(TBC), 서기원(TBC),
원예종(DBS)
1965년
최평웅
1966년
1967년
김양일(TBC), 맹관영(TBC),
이세진, 조춘제
1968년
김규홍, 김영소, 박영웅,
원창묵(TBC), 이정부, 이창호,
임건재
1969년
박기만, 박용호[98],
유수호(TBC)[99], 홍승택
강미란(부산), 김병래(부산), 이주복(춘천)
1970년
낭우평, 전우벽(CBS)
이선미(DBS)[100]
이종태(대구)
1971년
김윤한, 정도영
1
1973년
범효춘, 변순복(CBS)[102]
2
1974년
이명용, 황량
강성희
3
1975년
김상준, 윤성원
1976년
김상근[103], 손석기(DBS)[104],
최윤락(DBS), 허주(TBC)
현옥(DBS)
4
1977년
박경희[105], 박성희(TBC),
박초아(TBC), 이영혜(TBC)[106],
이정애(TBC)[107], 이희옥(TBC)
5
1978년
김영임, 안희재, 이미선(DBS)[112],
이병혜
배유선(대전)
6
1979년
김미회, 박월선, 오미영,
이숙영(DBS)[114], 지영서(TBC)[115],
최희선(TBC), 황인우[116]
고광수(충주), 최명순(순천)
7
1980년
배명자, 서동숙, 성명혜
강은이(광주)
8
1981년
김성수, 이천규
김국향[117], 신은경[118], 유애리[119],
전진영, 정혜실
권순우(포항), 김영숙(대구), 김충진(대구)
9
1982년
김희성, 송경희, 윤영미[120],
임화숙, 정미홍[121]
노병무(창원), 박대식(광주), 박서정(춘천),
위영미(광주), 조동건(제주),
조원숙(울산), 진두연(충주)
1983년
11
1985년
박영주, 이영미
서찬석(부산), 장현순(부산), 차경애(부산)
김흥수[124]
최영미[125]
김미균(진주), 김승일(창원)[126], 김혜정(원주),
문의순(제주), 박윤도(대전), 박재효(광주),
성연미(춘천)[127], 송현주(대구), 신석진(창원),
엄태진(청주), 유연배(원주), 윤만오(춘천),
임진숙(광주), 정윤심(목포), 허보혜(강릉)
13
1986년
김명숙, 윤금자
문경자(대구), 서상기(광주)
14
1987년
김관동[131], 김동우, 전인석[132]
구영희[133], 김자영[134], 이규원,
전은진[135], 진성희
15
박원철, 서기철, 이재윤[137]
노지숙, 오영실[138], 최윤희,
홍지수[139]
김동환--(부산), 김호성(청주), 정현조(대구),
한국현(울산), 황진(대구)
16
1989년
17
1990년
곽은주[147], 김희영, 이한숙[148],
정은아[149]
김경미(강릉), 김이숙(대전)
18
1991년
류재복, 박현우
19
1993년
정용조(울산)
20
1994년
김수진(전주), 김윤혜(청주), 김태은(전주),
문지숙(창원), 문희정(제주), 백명지(대구),
선우경(부산)[158], 이미아(부산), 이지향(울산),
정우영(춘천), 정혜정(춘천)
1995년
김태규, 원석현, 유지철
김연선(대전), 김평래(부산), 박경추(제주)[164],
양민오(대전)[165], 한태호(원주)
1996년
박성준(대전)[169], 윤석황(춘천), 이영재(제주),
이영진(청주)
24
1997년
25
1998년
이재홍
황유선[175]
김도휘(원주)[176], 김여진(대전)[177], 박은정(대구),
박찬민(청주)[178], 이정헌(대전)[179]
26
2000년
27
2001년
김숙경(대전)[185], 박하늬(춘천), 주혜연(대전),
현송희(제주)
28
2002년
김희수, 이상협, 이영호
2003년
2004년
이의선(춘천), 임정섭(광주)[197], 정은숙(춘천),
정은아(광주)[198], 최연수(대전)
31
2005년
2006년
33
2007년
박명원(대전), 최인희(청주)
34
2008년
35
2009년
양가희(진주), 정소희(강릉)[218], 조승학(순천),
조인철(안동)
2010년
37
이윤지(진주) 임지윤(충주)
2011년
박상연(진주)
39
2012년
박주인(원주), 신재연(진주), 양수진(강릉),
정준희(진주)
2013년
강아랑(강릉)[231], 서명균(울산), 윤상아(강릉),
정다운(안동)
41
2014년
고새롬(제주), 고혜윤(진주), 김지현(목포),
김형철(전주),백선일(청주), 봉효정(전주),
신유진(창원), 안주연(원주), 오보람(울산),
이지현(부산)[233], 진유현(대구), 최현호(부산)
42
2015년
43
2016년
김애진(포항), 김현지(진주), 변정연(순천),
유슬혜 (포항), 이은주(강릉), 이지인(창원),
임지수(청주), 정지성(충주), 편소정(울산)
2017년
강지연(춘천), 봉주선(순천), 윤소희(강릉),
이주희(순천), 정혜경(울산), 조민경(충주)
45
2018년
박철규(안동), 손보련(제주), 안유리(진주),
오은지(강릉), 이승휘(청주), 이은주(춘천),
장예진(창원), 최명순[236](순천)
46
2019년
김진웅, 이광엽
강유미(강릉), 김다은(대전), 김수연(춘천),
김세희(포항), 김호영(울산), 박민정(강릉),
박종화(청주), 박찬송(충주), 배소빈(청주),
송지원(창원), 유도희(광주), 최용수(포항)

지상파 3사 중에서 아나운서 기본기가 가장 뛰어난 곳이다. 인원도 가장 많으며, 웬만한 아나운서들의 발음이 좋고 기본기가 가장 잘 되어 있다. 즉, KBS의 아나운서들, 특히 여자 아나운서들도 뉴스, 시사 등 무거운 목소리에 최적화가 되어 있을 정도로 KBS 아나운서들의 기본기 및 수준은 가장 뛰어나다. 참고로 가장 떨어지는 곳은 SBS이다.

위 평가는 각 사의 아나운서 선발기준과 깊은 연관이 있다. KBS는 방송사 중 가장 나이를 안 보는 곳으로 유명하고, 외면적 요소만큼이나 아나운서로서의 개인기(리딩, MC 진행능력)와 한국어 실력(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을 필수로 기재해야 한다)을 겸한 인재를 요구한다. 여성의 경우 외모적으로는 '전통적 한국형 미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참고로 아나운서 학원에서는 '참한 맏며느리상' 지원자를 두고 'KBS상'으로 평가한다. 가애란이나 정세진 아나운서 같은 외모를 떠올리면 될 듯.[237][238]

8.2.2. 프로듀서[편집]

볼드체로 표시된 인물은 임원에 속한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라디오, 편성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제작

8.2.3. 기자, 임원 및 기타[편집]

  • 권순우: 2008년부터 2014년 8월까지 편성국장이었고, 이후 편성본부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에 KBS 1TV에서 한참 잘 방영하고 있었던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를 술자리 잡담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혹평하면서 프로그램 종영을 지시했다. 이후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 제작진이 문제사항을 보완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종영을 결정했다. 결국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의 코너 중 하나였던 스포츠 대작전이 종영되었으며, 다음 해인 2016년에는 프로그램 자체도 종영되었다. 그 뒤 2017년부터 2018년 3월까지는 KBS 미디어 사장으로 활동했다.
  • 김종명: 런던특파원, 뉴스제작2부장, 국제부장, 순천방송국장, 대외협력국장을 거쳐 2019년 보도본부장으로 승진되었다.
  • 박승규: 2006년에 노동조합(1노조) 위원장이 되었고, 이후 정연주가 해고될 때까지 해임 시위을 계속했으며 정연주 해임 이후 언론노조에서 바로 제명됐고 이후 보도국 사회부장, 문화부장, 취재주간, 스포츠국장 등을 걸쳐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때는 고대영를 엄호하기도 했다. 결국 고대영이 해임된 이후 양승동 사장 취임 후에 스포츠국장 직에서 파면됐다.
  • 박영문: 스포츠 기자 출신. 이후 KBS 대구방송총국 총국장, KBS N 감사, KBS 미디어 사장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퇴사하여 현재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 이석인: 1985년 입사. <달려라 하니>, <명탐정 번개> 등 여러 TV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함. 본사 보도그래픽부 제작위원, 영상그래픽부 차장,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 지평캘리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함.
  • 이선재: 김인규 사장 임기 때 보도본부장이었던 고대영과 함께 보도국장을 맡아 정권 비호와 불공정 보도를 하여 현재 금지어 취급하고 있지만, 정작 기자들 사이에선 불공정 보도 문제가 불거질 때 유감 의사를 표명하는 등 최소한 소통하고자 하는 면모를 보였다.출처 이후 고대영 임기 때 보도본부장이 되었고 7개월 후에 전략기획실장으로 변경되었으나 2018년에 양승동 사장 취임 후에 전략기획실장 직에서 파면됐다.
  • 이일구: 용의 눈물, 개그콘서트, 인간극장, 아침마당 등 자사 프로그램 타이틀로고 디자인 담당. KBS 아트비전 상임이사 역임. (블로그)

9. 채널[편집]

참조 사항: 2002년 5월 이전까지는 뉴스,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KBS 로고(워터마크) 표시가 없었다. 이후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가[353], 2003년 12월 1일 ~ 2010년 12월 31일까지 로고(워터마크) 위치가 왼쪽,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오른쪽에 표출중이다. 2018년 9월 3일부터 1TV와 2TV의 로고(워터마크)가 바뀌었다. 2020년 10월 20일부터 로고가 좀 더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지역국 폰트는 KBS 내부에서 사용하는 폰트로 변경하였다. 예전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 엔딩 크레딧에 '제작' 폰트로 사용된 바 있었고 90년대 중반 이후에 TV에서 사용하지 않고 내부용 폰트로 썼다가 30년 만에 TV에서 다시 쓰이게 된 셈이다.
방송국명
주파수ㆍ채널
U-KBS STAR
Ch.15(관악산), 22(남산)
U-KBS HEART
Ch.17(관악산), 45(남산)
AM 711㎑/FM 97.3㎒
Happy FM
AM 603㎑/FM 106.1㎒
사랑의 소리 방송
AM 1134㎑/FM 104.9㎒
Classic FM
FM 93.1㎒
Cool FM[DMB]
FM 89.1㎒
제1방송 AM 972㎑, 단파(SW) 6015㎑, 제2방송 AM 1170㎑

9.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편집]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당시 화재로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던 DBC 대한방송의 TV 장비와 인력을 인수하였고, DBC가 원래는 KORCAD-TV HLKZ라는 RCA 제휴 민간방송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후덜덜한 방송장비를 갖고 있었다.[355] 하지만 엔지니어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고장이 참 잘 났다고 한다(...). DBC는 미국인 엔지니어가 있었음

현재 지상파 TV채널로서는 KBS 1TVKBS 2TV를 운영하고 있으며, 1980년대 당시에는 교육방송으로서 KBS 3TV도 있었지만[356] 1990년에 독립해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되었다.[357]

참고로 KBS1에는 한국의 지상파 TV채널 중 유일하게 상업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1994년 10월 1일 이전에는 상업광고를 했었다. KBS1에서 대놓고 9시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XX약품 광고가...)[358][359] 다만 아무 시간대나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주로 스포츠 중계방송이나 특집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편성하거나 특정시간대를 정해서 광고를 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10월 8일 05:00부터 KBS 1TV의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상파로서는 최초.[360]

KBS2의 경우 1980년에 내려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명시된 신문-방송 겸영 금지로 과거 민영방송이었던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로 이관되며 추가된 채널이다.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은 기존의 KBS 채널이었던 KBS1에서 담당하고 있었기에,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KBS2에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적었으며, 심지어 각종 대형사건 및 중요 행사와 관련하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뉴스속보나 생중계를 내보내는데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규방송을 당당하게 방송해 주던 단 둘 뿐이였던(EBS 포함) 지상파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KBS2는 전쟁이 나도 드라마나 쇼프로를 방송해 줄 거라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 TV 도쿄?

2003년부터 KBS1은 푸른색(한색) 계열 '큐브' 디자인을, KBS2는 비슷한 시기부터 노란색(난색) 계열 '서클' 다자인을 BI로 쓰고 있다. 2015년 이 CI를 중심으로 방송 디자인이 개편된 적이 있었는데, KBS 9시 뉴스의 2015년 오프닝이나 KBS2 NEXT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이후에는 대놓고 채널 로고에 적용되어 있는 상황.

지상파 채널 외의 계열 방송사로는 KBS N이 있으며, 케이블 채널로 KBS drama, KBS joy, KBS N SPORTS, KBS W, KBS Kids, KBS N LIFE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시청할 수 있는 KBS 월드라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제작이 아니라 그냥 방송콘텐츠에다가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온 영문 자막을 그대로 덧씌워서 내보내는 형식이다.[361] 시청 국가 및 지역에 따라 편성표는 각각 운영된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에겐 꽤 인기있는 모양.[362]

KBS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음을 돌려쓴다.

9.2. 지상파 라디오 방송[편집]


과거에는 '사회교육방송'이란 것도 존재했으며 (2007년에 KBS 한민족방송으로 바뀌었다.), 섬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전 9시 45분부터 방송되는 일기예보를 듣고 실제로 일기도를 그렸다. 물론 대략 80년대 얘기이며, 이제는 매시 58분마다 KBS 제1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다.[368][369]

하지만 국가기반 공영방송국 주제에 KBS 2FM은 광고방송을 이유로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370] 그래서 지방에서는 U-KBS MUSIC이라는 T-DMB V-Radio방송을 들어야하는데 한 프로그램만 릴레이를 하지 않고 자체방송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든 프로를 청취할 수 있다가 면허문제로 새 자체프로그램이 송출되고있다.

9.3. PP(KBS N)[편집]

  • KBS W(현 KBS Story): '삶을 리드하는 여성'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2013년 1월 1일 개국. 케이블TV 각 SO에서 기존 KBS Prime을 송출하던 번호를 배정받았다.
  • KBS LIFE: 2015년 3월 8일자로 KBS Prime에서 변경.
  • KBS N PLUS: 2017년 6월 개국한 OTT 전용 채널.

9.4. 인터넷 방송[편집]

KBS의 인터넷 전용 뉴스채널로 인터넷 방송 페이지/어플 KBS my K를 통해 로그인 없이 시청가능, KBS 1,2TV에서 하는 모든 TV뉴스를 동시에 중계해주며 자체뉴스도 한다. 24시간 뉴스 채널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주요 뉴스 시간 외에는 VTR을 몇번이고 재탕만 한다. 그걸로도 부족해 뉴스만으로는 방송 시간을 메우기 어려웠는지 다큐멘터리나 교양프로그램도 섞어 방송한다. 심지어 새벽에는 전날 방송한 9시뉴스의 재방송도 한다. YTN이나 BBC뉴스채널 수준의 방송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 2021년에 'KBS뉴스 24 LIVE'로 리뉴얼해 자체 컨텐츠를 순차적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3월까지 시험방송을 거친 뒤 4월에 재런칭한다.
KBS N 전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성하는 OTT 전용 채널, 2017년 6월 개국했다. myK, wavve 등에서 볼 수 있다.

9.4.1. esports KBS[편집]

e-스포츠 전문 유튜브 채널.

9.5. 유튜브 채널[편집]

9.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편집]

1994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7년 뉴스클립 다시보기 서비스, 1998년 본격적인 VOD 서비스 시작 때부터 2001년 초반까지는 주로 리얼 플레이어를 통해 회원가입/로그인 없이 무료로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371] 이후 회원제로 전환되었고, 2000년대 중후반에 라디오 전용 프로그램인 Kong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다. 2012년경에 마이 K가 출시되어 이제는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를 막아놓은 MBC3분마다 광고를 봐야 하는(...) SBS와도 차별화되는 부분. 한국교육방송공사도 EBS Play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BBC의 iPlayer(플래시 기반)와 다르게 K플레이어는 그놈의 ActiveX 설치를 요구하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에서만 사용가능(...). 다만 일반적인 AOD, VOD는 2012년경 방영분부터는 WMA/WMV기반이 아닌 AAC/MP4 기반이기에 크롬 등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도 이용 가능.

KBS의 VOD 서비스가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저화질에 한해 무료라는 점. EBS마저도 일부 VOD가 유료이다. 그러나 KBS만큼은 무료 VOD 서비스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고화질 다시보기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POOQ 라는 별도 사이트로 연결되며 타 방송사처럼 유료이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된 이후에는 드라마(일일 드라마를 제외한 , 주말 드라마들)와 해피선데이, 해피투게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3주 정도 유료 서비스를 하다가 기간이 지나면 저화질에 한해 무료로 전환된다.[372] 수신료를 받는 마당에 이거라도 무료로 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타 방송사도 무료 VOD/AOD 서비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문화방송과 SBS는 라디오 AOD 서비스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시행 중이고, 지역방송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TV 프로그램일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방송도 있는데요? 케이블방송에서도 온게임넷 등은 무료로 제공되기는 하지만 온게임넷의 모회사가 온미디어였던 시절의 VOD는 서비스를 중단하고 유튜브로 옮겼다. 그 밖에 TVING에서 종영 후 일정기간 지난 프로그램들의 VOD도 마찬가지로 저화질에 한하여 무료로 풀린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대부분 프로그램의 VOD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서비스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전 방송분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이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373] 이로 인해 옛날 프로그램 매니아들은 당연히 불만을 품고 있다. 위기탈출 넘버원처럼 일부 프로그램은 비싸지만 DVD를 구매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떤 프로그램은 DVD로 구매할 수 없다.

이곳에서 독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중계해준다.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서울특별시청 등지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영상이다.[374]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 D-50 특별 생방송도 방송 이후 다음날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9.7. 팟캐스트[편집]

2013년까지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한 후 별도의 프로그램(ActiveX)을 설치하여 로그인후 다운로드해야 하는 등 BBC, MBC와 비교해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으나 2014년부터는 아이튠즈 체제로 전환하여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 방송현황[편집]

10.1. 프로그램[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S/프로그램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2. 방송망[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전국 방송망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3. 네트워크[편집]

서울 외에도 지방에 9개 방송총국, 9개 방송국, 1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3개 해외지국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또한 각 지역방송국은 MBC, SBS-지역민방처럼 네트워크 협력관계가 아닌, KBS라는 단일조직 내에 있다. 따라서 순환발령을 통해서 본사 직원이 지역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지역방송국 직원이 본사로 올라올 수도 있다.(다만, 신입사원 선발시에 전국권 TO와 지역권 TO를 분리해서 뽑는데, 전국권 TO만 서울본사로 바로 발령이 가능하고, 지역국 TO로 입사한 경우 최소 5년간 서울 본사로 전출이 불가능하다.[375][376])
한국방송공사의 지역 방송국
수도권
KBS (본사)
강원권
충청권
대경권
동남권
호남권
제주권
KBS경인: 방송센터, : 방송총국
2004년 지역국 통폐합으로 없어진 KBS 방송국
강원권
영월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84-3
태백국
강원도 태백시 문화로 36 (황지동)
속초국
강원도 속초시 장안로3길 22 (동명동)
충청권
공주국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로 19 (신관동)
호남권
여수국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6길 10 (관문동)
남원국
전라북도 남원시 만인로 92 (향교동)
군산국
전라북도 군산시 대학로 330 (나운동)

2004년 감사원 지적사항으로 지방 방송국 통폐합이 이루어 지면서 군산시, 남원시 (이상 전주), 속초시,태백시 (이상 강릉), 영월군(원주)[377], 공주시(대전), 여수시(순천) 7개 방송국이 인근 방송(총)국으로 합쳐졌다. 그런데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라디오 주파수 목록에는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이 7개 방송국이 독립된 방송국으로 적혀있다(...).[378] 당시 각 지역에서 반발이 많았으며, 여러 사연도 많았다. 여수방송국은 전라남도 동부권에서 순천방송국보다 훨씬 먼저 생겼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여수국은 철거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태백국 역시 철거되어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며, 전라북도에서는 2개의 지역국이 문을 닫으며 전주총국만 남게 되었으며, 충청남도에서도 공주국이 문을 닫으며 대전총국이 대전·충남 전역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군에 있던 영월국이 없어졌다. 참고로 폐국된 영월국이 이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로 쓰인 바 있다.

라디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본사에서 지역국으로 시보나 방송시작멘트를 넘길 때 나는 효과음(띠리리리~ 띠리리리~)이 난 적이 있었다. 2016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2019년 8월 들어 KBS 본사 측에서 적자 경영개선 대책 중 하나로 지역방송국 기능축소를 제시해 구성원들의 반발이 크다. 2020년부터 지역방송국(경인, 강릉, 울산 제외)의 뉴스를 비롯한 TV 로컬방송을 폐지시키고 모두 상부 총국으로 이관하는 이른바 거점센터 기능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국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송출과 수신 개선 서비스, 수신료 징수 등의 반쪽 기능만 가능하게 된 셈이다. 당장 이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지역 언론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몇몇 구성원들은 삭발시위까지 했다. 심지어 여수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옆동네 KBS순천방송국의 기능 축소 문제를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KBS는 2020년 2월 3일부로 지역총국 중심 뉴스 통합 정책을 밀어붙여 시작했다. 매주 월-목 KBS 뉴스 7은 본사 뉴스를 받지 않고 40분 통으로 지역뉴스를 진행하며[379] 다만 을지역국의 경우 KBS 뉴스 9 로컬방송은 살려 놨다. 그러나 애초에 을지역국의 취재인력이 취재기자 2명, 영상기자 1명(...)으로 확 줄었기 때문에 을지역국에서 만들 수 있는 리포트기사는 꼴랑 1~2꼭지에 불과해 이거 말고는 그냥 총국에서 만든 기사를 중계하는 셈이 되었다. 게다가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KBS가 재난방송 체제로 접어들자, 여기에 총국중심으로 전 취재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뉴스9 로컬도 총국에서 모두 때우고 있다.

10.4. 계열사[편집]

  • 해산/매각
    • KBS 문화사업단: 구 한국방송사업단. 1999년 KBS 영상사업단으로 합병.
    • KBS 인터넷: 구 크레지오닷컴. 2011년 KBS 미디어로 합병.
    • KBS LA: 구 미주한국방송(KTE). 기존의 SBC(중앙일보 계열)와 KTB(한국일보 계열), TV 코리아 3개 방송사를 합병한 방송사로 2008년 KBS 아메리카에 합병.
    • 한국방송출판: 구 KBS미디어 출판사업부. 《TV 유치원》 및 《굿모닝 팝스》등의 발행처다.

10.5. 공익재단[편집]

  • KBS 강태원복지재단

11. 정기간행물[편집]

11.1. 기록물[편집]

  • KBS 연감(1961~1973/1995~)[381]
  • KBS 연지(1975~1995)

11.2. 매거진[편집]

12. 평가[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평가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3.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4. 노동조합[편집]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교섭대표노조): 민주노총 소속. KBS 1노조의 우경화에 반발한 젊은 조합원들이 1노조를 탈퇴한 뒤 만들었으며, 2018년부터 1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로 승격되었다. 특히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투쟁에 앞장섰던 노조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해 공영방송이 아닌 노영방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2018년에는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방송차량서비스 노조)를 통합해 '방송차량지부'로 개편시켰다.
  • KBS 노동조합[387], KBS 공영노동조합[388]: 미가맹

15. 교통편[편집]

15.1. 본관ㆍ신관[편집]

15.2. 별관[편집]

16. 이모저모[편집]

소속 사원들의 메일 주소를 괴랄하게 짓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화제의 박대기 기자는 이른바 [email protected] 이라는, 진짜 대기(waiting)라는 이름으로 지어놓았고, 이 외에도 최선중(best-ing), 신선민(freshmin), 김빛이라(glory), 정새배(newboat), 안양봉(beebee), 노태영(lotte0), 김진화(evolution), 이효용(utility) 등 자신의 이름을 단순 번역하는 놀라울정도로 넌센스적인 메일 주소들이 많다. 향간에는 선배들이 지어줘서 그렇다는 설이 퍼져있지만, 박대기 기자에 의하면 당사자가 짓는 것이라고 한다.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각인이 쉽게 되도록 고심해서 짓는 것이라고 한다.

17. 둘러보기[편집]

1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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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화질만 제공되며, 고화질 이상은 MY K에서 사용하거나(일반 고화질만 제공) wavve 등에서 이용권을 구입하여 시청이 가능하다. 이는 2TV도 마찬가지.[2] 해당 주소에서도 온에어 서비스가 되고 있다. 하지만 PC에서만 시청할 수 있으며 화질은 720p로 좋은 편이다. [3] 공식 홈페이지 슬로건.[4]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8.[5] 이 날은 위에도 적혀 있듯이 한국방송공사의 공영방송으로서 창립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로건 변경도 3월 3일에 이뤄지며 자체 공식 휴일이기도 하다.[6] 지금 KBS 한국방송이라 호칭하는 부분을 2001년 3월 2일 이전에는 전부 한국방송공사 KBS라고 했다.[7] 일례로 NHK가 1994년 제작한 'NHK스페셜 - 생명~40억년에의 여행~'은 KBS가 제작비를 대고 디스커버리와 이탈리아 방송과 협력해서 만들어졌다. 국내 방영제목은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또한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보도에서도 KBS는 국내 타 방송국과 달리 대지진 당일 9시뉴스에 NHK가 송출한 HD 소스를 사용했다. 참고로 NHK 서울지국은 KBS 신관 7층에, KBS 도쿄지국은 NHK 동관 7층에 있다.건물층수도 같다[8] 다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서 이뤄진 조치이며, 따라서 재정과 인사 모두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9] 진짜 훼손했다면 공시청 장비 문서에서 작성된 수신민원 전화번호로 연락하자.[10]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며 고인드립 논란이 일었다. 일단 사측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이와는 별개로 코너 자체가 노잼이라고 혹평을 받아서 금방 종영됐다.[11] 베충이는 일베의 비공식 마스코트 캐릭터인데, 이게 방송에 등장한 것이다.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개콘의 흑역사 중 하나.[12] 다만 예시 3의 KBS부산의 경우, 사옥 이전 직전까지 옛 로고를 혼용했다.#[13] 다만, 2004년까지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게 아닌지 가끔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14] KBS TV에서 크레딧으로 나오는 '한국방송'이라는 글씨체[15] KBS 전용 차량과 신문광고에서 활용되었다.[16] SBS2000년, MBC2005년, EBS2001년 ~ 2004년[17] 94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 KBS 2TV 한정.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18] 1라디오,1TV 전용 슬로건.[19]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사용한 2TV용 슬로건.[20] 2007~2008년에 TV 자체 SPOT에 나왔던 슬로건으로 현재에는 쓰이지 않지만 KBS 2FM 무광고 시보와 1FM 자체 광고뒤 멜로디로만 나온다.[21] KBS의 인터넷 전용 슬로건. 유튜브 등에 올라온 각종 K팝 영상 등에서 KBS 공식계정으로 올린 클립 뒤쪽에 삽입되어 있다.[22] 2015년 2TV 한정 슬로건.[23] 2TV에서만 사용됐다.1TV 팀킬? 2018년 이후 슬로건이 바뀌었다. 대구방송총국 ID에는 여전히 사용 중이다.[24] NEXT/ID 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슬로건. 유튜브에 이 슬로건만 검색해도 ID 영상들이 나온다.[25]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나온 슬로건이며 동시에 KBS의 2019년 방송지표였다.[26] 2021년 5월 31일부터 사용 중인 1TV 전용 슬로건.[27] 2021년 5월 31일부터 사용 중인 2TV 전용 슬로건.[28] 70년대 ~ 80년대에 사용했던 슬로건. 이쪽도 라디오 시보멘트에서 나왔다.[29] 70년대 ~ 80년대에 사용했던 슬로건. 이쪽도 라디오 시보멘트에서 나왔다.[30]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사용한 슬로건. 라디오 시보와 방송 시작, 종료 멘트에 쓰였던 슬로건이었다.[31] 1993년 가을개편부터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2001년 광고방송 시작 전까지 KBS 2FM, 2008년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시보멘트로 쓰였다. 그 후 2014년까지 KBS 1FM에서 시보할 때 나왔지만 2015년 개편으로 시보멘트가 개정되었고, 현재는 KBS 지역국 FM방송에서만 나온다. 다만, '한국인의 중심채널'을 밀고 있는 1라디오를 제외한 어느 KBS 라디오 채널이든 오전 5시 시보에 아직도 나오긴 한다. 예외로 춘천FM은 2015년 본사처럼 '클래식을 더 가까이'라는 멘트를 하고 있다. [32]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사용한 1라디오 전용 슬로건.[33] 2007~2008년에 TV 자체 SPOT에 나왔던 슬로건으로 현재에는 쓰이지 않지만 KBS 2FM 무광고 시보와 1FM 자체 광고뒤 멜로디로만 나온다.[34] KBS 1TV, KBS 1라디오, KBS 3라디오에서 사용하는 슬로건. KBS 뉴스 9 시작 전에 이 로고송이 나온 다음 시보음이 울리고 뉴스를 시작한다.[35] 1TV와 멜로디를 공유하기도 했다. 1992년 당시에는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2텔레비전을 전자음악 버전으로 어레인지 한 버전과 같이 썼던것으로 보인다.[36] 다만, 음질이 좋지 못하다.[37] 95년에서 2001년까지 쓰인 KBS2 로고송이랑 같은 혼성 합창단이 불렀고 비슷했다.[38] 장혜진이 불렀으며, 현재는 KBS 1TV 한정. '국민의 방송' 부분을 생략한 짧은 버전도 있었다. #[39] 오연준군이 불렀다.[40] KBS 합창단이 불렀다.[41] 자세히 들어보면 텔'리'비전이라고 발음한다.[42] 1992년에는 이 음악을 전자음악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썼으며, 가사는 뒷부분 "KBS 제2텔레비전"만 송출된다. #[43] 자세히 들어보면 현재 KBS1 로고송을 부른 같은 합창단이 불렀다는 걸 알 수 있다.[44] 가 불렀다. 윤도현장나라가 부른 버전도 잠깐 나온 적이 있다. 2013~4년 즈음부터 KBS 2TV 한정으로 보컬이 빠진 피아노 버전으로 나오고 있었으며, 피아노 버전은 대구방송총국 ID에서 사용 중이다.[45] 지역 방송국(특히 KBS울산방송국)에서는 아직도 가끔 항상 쓰인다.[46] 2007-2008년 TV SPOT 로고송으로 나왔으며 현재 KBS 2FM에서 시보할 때 나온다. 2015년 개편으로 시보멘트는 개정됐지만 로고송은 그대로 쓰이고 있다.[47] 옥상달빛이 불렀다.[48] 각각 2개의 멜로디가 있으며 앞의 '대한민국 중심채널' 부분을 생략한 버전과(음원 길이는 같다) 아예 짧은 버전 총 3가지가 있다.[49] 해피FM 무광고 시보할 때 나온다.[50] 1991년 개관하였다. 본관 왼쪽에 있다. 왼쪽 전경에서는 본관과 신관 중간에 있는 동그란 건물 나만 서울역으로 보여?[51] 개그콘서트를 제작하는 개그맨들이 이곳에서 연구한다고 했다. 공개홀 뒤쪽에 있다. 2018년 미래방송센터 착공 전에 상반기부터 연구동을 철거할 예정이었다.[52] 원래는 아파트로 설계됐다. 참고[53] 개그맨 박대승이 연구동 5층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였다가 1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54] 이 신관 건물의 설계자는 바로 김중업이다.[55]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는 TS-15와 TS-D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56] 주 사무실, 편집실 등은 서울에 있는 별관에 위치, 수원센터는 스튜디오 위주로 사용중[57] 죄다 한국방송공사의 임무 및 기능을 정의해놓은 항목이다. 한국방송공사법과 방송법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설립근거가 전부 방송법에 포함되었다.[58] 정원은 12인이나, 부사장 1명, 본부장 1명 공석[59] 여당추천 7명, 야당추천 4명[60] 단, 해당수치에는 KBS 인력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작가, 프리랜서, 무기/한시계약직, 파견근로자, 자회사(KBS미디어, KBS시큐리티, KBS비즈니스 등)파견인원, 단기 아르바이트, 전속단체원(관현악단, 국악관현악단, 성우 등)은 빠진 순수 정규직만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인원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대략 6,000~7,000명 정도가 KBS 내에서 근무하고 있다.[61] 2011년 대졸초임 삭감사태 이후 인상분이 반영되어 기존 8,373만원보다는 올랐다. 다만 이는 전체 평균이라 이렇게 나오는 것이고 실제 대졸초임은 약 4,500~5,000만원선으로 메이저 방송국 중 가장 짜다! 역시 공공기관 방송국 특유의 살인적인 업무강도 + 방송의 정시성을 생각하면...[62] 홈페이지 하단 왼쪽의 'KBS소개' 메뉴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63] 시인 심훈의 큰형.[64] 1945년부터 조선방송협회 산하였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청 공보처에 소속됨. 그리고 그해 3~10월에는 잠시 중앙방송과장임.[65] 공사화 이후 본사 부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본사 사우회장, MBC 사장,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함. 2016년 작고.[66]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67]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68] '한국 프로듀서 1호'로 추앙받는 방송인. 2002년 작고.[69] 제7대 문화공보부 차관 역임. 이후 (주)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현 한국경제신문) 사장으로 영전됨. 1985년 작고.[70] 선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면서 반발이 심해지자 자진사퇴하였다. 해당 문서 참고.[71] 다만 정연주를 이원홍에 빗댄 것이 정연주 입장에서는 크게 억울한 것이 정연주는 KBS 뉴스9 아이템 선정에 개입을 하지 않은 현재까지의 KBS 사장 가운데서 거의 유일무이하다싶은 유일한 인물이었고 현장 PD나 기자들의 아이템 선정제안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었던 인물이었기 때문.. 하지만 영월이나 군산 KBS를 폐지시키는 등 구조조정 드립을 쳤기에 PD나 기자는 몰라도 지방방송사 직원이나 간부들 사이에서 왕PD라고 욕먹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2010년대 와서는 구관이 명관이지 하며 재평가된다지만[72] 가장 대표적으로 홍두표(동양방송 도쿄특파원),박권상(동아일보),정연주(동아일보),이병순(4기 기자),김인규(1기 기자),고대영(11기 기자)이 있다.[73] 해임 뒤 한국방송개발원장, SBS 2대 사장 역임. 2016년 3월 10일 작고.[74] 1977년 부터 1979년까지 KBS대구방송총국장. 퇴직 후 (주)우방 사장을 역임함.[75] 본사 최초 부사장 2인 체제 운영.[76] 1990년 본사 파업때 노조위원장.[77]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본사 보도본부장.[78] 1996년 부터 1998년까지 KBS공주방송국장, 2004년 편성본부장, 2005년 TV제작본부장. 부사장 선임 동시에 4년만에 KBS의 부사장 2인 체체 부활. 2010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 선고 받아 제명.[79]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 2020년 작고.[80] 2006년부터 2008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81] 현 KBS 감사. 2017년 5월에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82] 본사 유일 여성 부사장, 이후 한국정책방송원장 역임.[83] 2008년 부터 2010년까지 KBS 미디어 사장, 2012년 부터 2014년까지 KBS창원방송총국장. 2017년 5월에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84] 역대 부사장 중 유일하게 임기 1년만에 사망.[85] 본사 PD협회에서 영구제명.[86] 2006년에 <KBS와 권력>이란 책을 내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권력과 방송의 기생 자체를 비판한 바 있으나, 방송위원회(現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과 윤명식 KBS 심의위원, 전직 방송사 대표와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가 정권을 되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한다."라며 방송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출처 다만 그는 2016년 한겨레 기사에서 그때의 발언에 대해 "방송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쓰지 말고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것"이라 밝혔다. 정연주의 해임 이후에도 18 ~ 22대 사장 후보로 매번 출마했다.[87]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아버지이다. 1998년 작고.[88] 1964년 MBC 이직, 2020년 작고.[89] 1961년 MBC 이직, 1964년 TBC 이직, 2019년 작고.[90] 1964년 MBC 이직, 1984년 작고.[91] 1964년 MBC 이직, 현재 예지원 원장.[92] 1964년 TBC 이직.[93] 1964년 MBC 이직.[94] 1964년 TBC 입사. 1973년 공사화와 함께 KBS 근무, 1993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가요무대 MC.[95] 1969년 MBC 이직[96] 1967년 퇴사 및 군복무 후 1969년 MBC로 이적[97] 198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98] 1999년 정년퇴임.[99] 2006년 정년퇴임.[100] 1990년 불교방송 이직.[101] 199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02] 1991년 SBS 이직.[103] 1983년 교양PD 전직, 2006년 정년퇴임, 개그맨 김준현의 아버지.[104] 1991년 SBS 이직.[105] 2012년 정년퇴임.[106] 1991년 SBS 이직.[107] 현재 아나레슨 대표.[108] 2008년 정년퇴임.[109] 1987년 퇴사, 같은 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가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91년 귀국하여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방송활동 복귀,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10] 원래는 TBC 부산방송국에 입사하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라 KBS 부산방송총국으로 이직했다. 1994년 본사로 발령받아서 아나운서 차장, 한국아나운서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199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11] 199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12] 2014년 정년퇴임.[113] 속초국, 춘천총국을 거쳐서 1993년부터 서울본국에서 근무를 하고 2012년 정년퇴임.[114] 1993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15] 2014년 정년퇴임.[116] 1993년 퇴사.[117] 2021년 작고[118] 1993년 퇴사.[119] 2018년 정년퇴임.[120] 1959년생 KBS 아나운서, 2019년 정년퇴임.[121] 1993년 퇴사.[122]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123] 이번 기수는 전국권 1명만 뽑고, 나머지는 지역권만 뽑았다.[124] 원래는 대구총국에 입사해 근무하였으나 2000년부터 본사에서 근무를 하고 2014년 정년퇴임.[125] 2002년 퇴사.[126] 현재 창원KBS PD[127]BBS 불교방송 아나운서, 현재 봄온아카데미 대표.[128] 2017년 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별세.[129] 2019년 정년퇴임.[130] 1991년 SBS 이직[131] 2019년 정년퇴임.[132] 2019년부터 KBS제주총국에서 근무하고있다.[133]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34] 1997년 퇴사.[135] 1991년 SBS 이직[136] 현재 부산KBS 라디오 PD.[137] 1991년 SBS 이직, 이후 1995년 YTN 이직.[138]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39] 1993년 퇴사, 현재 작가로 활동 중이다.[140] CBS 출신, 1991년 SBS 이직, 탤런트 김자옥 동생. 2021년 작고.[141] 1997년 퇴사, 현재 한국IPTV방송협회 회장이다.[142] 200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43] 2002년 퇴사, 前 이롬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144] 200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45]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배우자는 前 KBS 아나운서 진양혜이다.[146] 입사 당시에는 아나운서였다가 1992년 기자로 전직, SBS 아나운서 김성경의 前 남편이다. 2004년 4월 16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별세.[147] 남편은 같은 KBS 아나운서 서기철이다.[148] 2002년 퇴사.[149]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0] 2004년 퇴사.[151]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남편은 前 KBS 아나운서 손범수이다.[152]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3] 2002년 퇴사.[154] KBS 아나운서실 실장.[155]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6] 2001년 퇴사,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있다.[157] 미스코리아 출신.[158]iTV 경인방송 아나운서,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9] 1995년 2월 1일 입사.[160] 개명 전 이름은 김재민이었다.[161] 200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아나운서.[162] 1995년 10월 1일 입사.[163] 아나운서2부장.[164]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제주총국 소속이었으나 현재 MBC 아나운서 소속이다.[165] 대전총국 기자로 전직.[166]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167] 속초국, 원주국을 거쳐서 2004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168] 원래는 대전총국에 입사해 근무하였으나 2003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169] 2012년 JTBC 이직,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서울 중구·성동구 을).[170] 200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71] KBS 아나운서협회장.[172] 남편은 KBS기자 조성원이며 KBS 아나운서-KBS 기자 부부다.[173] 2007년 퇴사, 현재 여행작가 겸 프리랜서 방송인이다.[174] 1999년 퇴사, 현재 책 읽어 주는 작가 프리랜서 방송인이다.[175] 1999년 퇴사, 현재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이다.[176] 현재 TBC 대구방송 아나운서.[177] 현재 YTN 앵커.[178] 현재 SBS 아나운서.[179] 현재 JTBC 기자.[180]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1] 37기 이지연 아나운서와는 동명이인으로 1975년 11월 30일생.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방송인 이상벽의 딸이다.[182] 2008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3] 배우자는 KBS 기자 최영철 이며 KBS 아나운서- KBS 기자 부부이다.[184]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5] 강릉방송국, 원주방송국에서 대전방송총국에서 이직하였으며, 아침마당 지역방송을 진행하고 있다.[186] 2006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7] 29기 공채 아나운서는 2003년 4월 7일 아침마당의 명랑발언대에 출연하였다.[188] 201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9] 배우자는 축구선수 김남일이다.[190] 2006년 퇴사.[191] 2012년 퇴사.[192] 30기 아나운서들의 신입 시절 모습은 인간극장 <마이크의 전사들>편에 출연하였다.[193] 호남제주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제주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194] 배우자는 前 KBS 아나운서 박지윤이다.[195] 2017년 1월 17일 퇴사, 현재 문재인(現 대통령) 캠프에 합류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역임하여 활동함.[196] 2008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남편은 같은 KBS 아나운서 최동석이다.[197] 광주총국에서 발령 후 입사하였다[198] 1979년생 아나운서.[199] 2016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배우자는 KBS 아나운서 정다은이다.[200]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1] 부산총국에서 발령하여 2005년 입사 후 결혼하여 퇴사하여 스튜디오뮤지컬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202] 2006년 퇴사 후 SBS로 이직.[203] 32기 아나운서들의 첫등장은 2006년 2월 14일 상상플러스 녹화장에 소개하면서 등장하였다.[204] YTN 출신,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5] 201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6]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배우자는 MBC 아나운서 김정근이다.[207] 2008년 퇴사,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있다.[208] CBS 출신.[209]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10] 과거 MBC생방송 오늘 아침 리포터를 맡은 적이 있었다.[211]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나운서이며, 영남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부산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서울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212] 가씨를 가진 아나운서 1호다.[213] 남편은 前 KBS 아나운서 조우종이다.[214] 현재 TV CHOSUN 기자.[215] 202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16] 과거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인 <KBS 15기 어린이 합창단 단원> 이었다.[217] 2015년 퇴사, 2017년 현재 <유튜브>에서 차차튜브로 활동하고 있다.[218] 현재 KTV 아나운서.[219]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20] 과거 도전 골든벨에서 <성남 서현고> 편에 재학시절로 참가한 적이 있다.[221]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대구총국 소속으로 근무하여 2016년부터 청주에서 이직하였다.[222] 전주총국에서 발령 후 입사하여 제주총국으로 이직하였다.[223]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는 창원방송총국에서 근무하여 2014년 7월부터 KBS부산방송총국에서 발령하여 이직하였다.[224] 38기 공채 아나운서는 <여유만만>에 출연한 적이 있다.[225]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배우자는 같은 KBS 아나운서인 김민정이다.[226]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남편은 같은 KBS 아나운서 조충현이다.[227] 멘사 출신의 KBS 아나운서이다.[228] 충청강원권으로 원주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서울본국에서 근무를 하고 2021년 퇴사.[229] 과거 취업준비생인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한 적도 있다.[230]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31] 현재 KBS 기상캐스터.[232] 2020년 퇴사.[233] 과거 도전 골든벨의 <창원문성고> 편에 재학시절로 참가한 적이 있으며,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나운서이다.[234]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35]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36] 프리랜서 신분으로 재입사, 2019년 계약 만료[237] 이전 버전에 적혀있던 엄지인 아나운서는 사실 학원가에서 KBS상으로 분류되진 않는다.[238] 반면 SBS는 어리고 화려한 외모의 지원자를 대놓고 선호하는 편. 그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장예원 아나운서다. 대학교 3학년 때 무수한 언니들을 제치고 SBS 공채에 합격해 'SBS는 어차피 어린애들만 뽑겠지' 하는 비관적 전망을 만든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는 장예원 아나운서의 뉴스 진행이나 MC 실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실력도 없으면서 나이랑 얼굴로 뽑혔네' 같은 성급한 판단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MBC는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미인상을 선호한다. 1980년대 백지연 아나운서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과거에는 정혜정, 최현정, 문지애, 이정민 등이 포함되고 최근에는 차예린 아나운서 정도가 전형적인 MBC상.
[239] 여로의 PD, 탤런트 김난영의 남편, 1985년 작고.[240] 서울뚝배기의 PD, 1998년 정년퇴임.[241] 탤런트 박혜숙의 남편, 2014년 작고.[242] 예능PD로 입사해 시청자센터장, 편성본부장, 감사, Arirang TV TV방송본부장,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243] 1991년 SBS 이직.[244] 2003년 편성본부장#,2005년 TV제작본부장#,2007년 부사장#,2008년에 정연주 사장이 해임 되면서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이후 부사장 사임후 금품수수 혐의로 2년 법정소송 끝에 결국 집행유예 선고 받고 제명 되었다.#[245] 2000년 초반에는 예능국장#, 2000년 중반 편성팀장#로 일하다가 이후 제작본부장로 근무했으나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며 # 이후로는 처벌 받는것과 KBS 내 활동 내용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KBS에서 제명된 것으로 보인다.[246] 1991년 SBS 이직.[247] 1995년 SBS 이직.[248] 1991년 SBS 이직.[249]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250] 교양국 PD 출신으로 편성팀장, PD협회장, 비서팀장, KBS 재팬 사장을 지냈으며,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KBS 스페셜 등을 연출했다. 이후 KBS에 퇴사하여 2017년 9월 부터 2018년 12월까지 EBS 사장이었다.[251] 전 예능국장. 연예가중계 진행 경력. 2019년 MBN으로 이직.[252] 태조 왕건 연출 PD. 장사의 신 - 객주 2015 끝으로 정년퇴직 하였다.[253] 前 KBS N 대표이사[254] 이병순 임기 때 편성기획팀장이었고 미디어 포커스와 시사투나잇를 폐지를 주도했다. 이후 김인규 임기 때 편성센터장, 조대현 임기 때 정책기획본부장이 되었고 고대영 임기 때는 자회사 아트비전 사장이었다. 현재 KBS 이사이다.[255] 겨울연가의 PD. 2001년에 퇴사했다.[256] 차마고도의 CP. 세명대학교 교수 재직.[257] 2005년에 퇴사한 이후 꽃보다 남자,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연출를 맡았으며 2018년 1월 17일에 교통사고로 작고했다.[258] 전 예능국장, 편성센터/편성본부장, 부사장. 현 경기대 특임교수.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259] 1995년 SBS 이직.[260] PD협회에서 탈퇴.출처.[261] 미안하다 사랑한다, 열아홉 순정의 연출.[262] 前 6시 내고향 담당PD, 2018년 정년퇴직.[263] 제주총국 편성제작국장, 시사교양1국장을 거쳐 2020년 제작1본부장으로 승진되었다.[264] 영심이,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검정고무신등 국내 에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2010년에 별세했다.#[265] 現 KBS N 대표이사[266] 서세원쇼일요일은 101% 같은 문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PD이며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선고 받으면서 제명되었다.#[267] 前 방송본부장/편성본부장.[268] 1라디오 선임팀원, 라디오센터장을 거쳐 2020년 전략기획실장으로 승진되었다.[269]KBS 미디어 사장.[270] 1991년 SBS 이직.[271] 前 제작본부장/제작1본부장, 前 KBS PD협회장.[272] 현재 TBS 교통방송 사장.[273] 前 드라마센터장. 현재 KBS 미디어 사장.[274] 예능PD로 입사하였으나 지역순환근무를 거치면서 시사교양PD로 전직했고 이후 시사투나잇, 추적 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등의 CP, KBS 심의위원을 맡았다. 2020년 편성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배우자는 정용실 아나운서.[275] 2002년에 퇴사한 이후 풀하우스,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의 연출를 맡았다.[276] 현재 시너지웍스 대표.[277] 2007년 퇴사 후 훈미디어, 코엔미디어, SM C&C 등을 전전하다 2019년 KBS로 돌아와 제작2본부장으로 선임되었다.[278] 구미호 여우누이뎐부탁해요, 엄마의 PD,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저스티스, 동백꽃 필 무렵의 CP.[279] 거상 김만덕, 성균관 스캔들, 드림하이 2, 학교 2013의 프로듀서.[280] 前 한국PD연합회장.[281] 소문난 칠공주의 연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아버지가 이상해, 황금빛 내 인생,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의 CP.[282] 제빵왕 김탁구의 PD.[283] 대왕세종, 다함께 차차차,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PD.[284] 2005년에 퇴사한 이후 눈의 여왕, 나쁜남자, 욱씨남정기의 연출를 맡았다.[285] 뮤직뱅크 前 CP.[286] 골든 크로스, 완벽한 아내, 란제리 소녀시대, 하나뿐인 내편의 PD.[287] 한국PD연합회장.[288] 2007년에 퇴사한 이후 아이리스를 연출했고 이외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등의 SBS 드라마 연출를 맡았다.[289] 6시 내고향, 연예가중계, 전국노래자랑,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꽃길만 걸어요의 PD.[290]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으나 현재 퇴사했다.[291] 대조영, 남자 이야기, 각시탈, 최고다 이순신, 왕의 얼굴의 PD, 미워도 사랑해의 CP. 2019년 TV조선으로 이적했다.[292]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293]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연출 PD로 현재 JTBC로 이적했다.[294] 해피투게더 3유희열의 스케치북의 PD. 2018년 7월 11일에 TV 조선으로 이적했다.#[295] 드라마 작가 정현민 작가와 함께 정도전어셈블리를 제작한 PD. 동명이인의 라디오PD도 있다.[296] 추노, 보좌관의 PD, 현재 스튜디오앤뉴 소속[297] 비켜라 운명아의 PD.[298]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현 CP.[299] 오작교 형제들굿 닥터 연출 PD.[300] 해피투게더 시즌 3의 PD, 뮤직뱅크의 CP.[301] 징비록, 퍼퓸의 PD.[302]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03] 아이 엠 샘의 PD.[304] 해피투게더 시즌 1~2의 PD이며 현재 JTBC로 이적했다.[305] 현재 JTBC로 이적했다.[306]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전 CP이자 트릭&트루의 PD.[307] 대왕 세종의 조연출. 천상의 약속, 당신의 하우스헬퍼의 PD.[308] 현재 JTBC로 이적했다.[309] 태양의 후예, 눈길의 CP. 2016년 JTBC로 이적했다.[310] 도쿄 PD특파원[311] 백상 예술대상 수상자만 무려 4명을 배출한 KBS 최고의 황금기수[312] 구르미 그린 달빛, 이태원 클라쓰의 PD. 현재 JTBC 소속[313] 성균관 스캔들, 시그널, 미생, 아스달 연대기의 PD. 현재 카카오M 소속[314] 1박 2일, 꽃보다 시리즈, 신서유기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15] 남자의 자격,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16] 뷰티풀 마인드, 미스티, 부부의 세계의 PD. 현재 JTBC 소속[317] 공주의 남자, 비밀의 숲 시즌 2의 PD. 현재 스튜디오 드래곤이나 CJ E&M 소속일것으로 추정[318] 미녀들의 수다 2의 PD. 2014년 2월에 CJ E&M으로 이적했다.[319] 2011년 JTBC로 이적했다.[320] 또 오해영, 뷰티인사이드의 PD. 현재 스튜디오앤뉴 소속[321]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PD. 현재 스튜디오 드래곤 소속.[322] 김승우의 승승장구, 더 유닛의 PD.[323] 다큐 인사이트 모던코리아의 공동연출 및 CP.[324] 위기탈출 넘버원의 PD.[325] 추리의 여왕의 PD. 2017년 8월에 퇴사했다.[326] 시사 직격의 PD. 2013년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전말 편 연출.[327] 베이징 PD특파원[328] 우리동네 예체능의 PD. 2015년에 퇴사하여 SM C&C로 이적했다.[329]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PD.[330] 파리 PD특파원[331] 추적60분, 파워인터뷰의 PD.[33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쌈, 마이웨이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33] 각시탈, 동백꽃 필 무렵의 PD.[334] 학교 2017의 PD.[335]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위원장.[336] 구라철의 PD. 2020년 SM C&C로 이적했다.[337]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다가 퇴사후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38] 2018년 퇴사 후 현재 CJ ENM으로 이적했다.[339] 2019년 퇴사후 현재 MBN으로 이적했다.[340] PD협회에서 탈퇴.출처.[341]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PD이며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나 # 처벌를 안 받았는지 2011년까지 KBS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JTBC로 이적했다.[342] 前 방송본부장. PD협회에서 제명.출처.[343] 前 제작본부장. PD협회에서 제명.출처.[344] 용의 눈물의 PD. 1996년에 정년퇴임했고, 이후 1999년에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되면서 KBS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나게 되었고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SBS 드라마 여인천하,왕의 여자,왕과 나를 연출했다.[345] 인간의 조건 1~2기우리동네 예체능의 CP이며 2008년 같은 동료 PD들과 함께 기소되었으나# 김시규 PD 처럼 처벌를 안 받았는지 이후에도 KBS 예능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으며 지금 현재 한류기획단장로 근무하고 있다.[346] 1박 2일 자유여행 1탄(소설가 이외수 자택 편(2007년 12월 23일 방영)에 잠깐 나온 예능 CP였고 개막장 가학성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가 방영하던 당시 예능팀장으로 근무하였고 2008년에 이용우 PD와 함께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 받고 제명되었으며 # 이후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의 교수로 임용 되어 1년동안 일했으며 # 현재 박스미디어를 설립하여 대표로 있다.[347] 텔레토비, 은하공주 디지캐럿,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PD.[348] 오펀 블랙 시즌 1과 플루팔루 대모험의 연출 PD다.[349] 외화시리즈 투명인간,탐정 몽크,일본 애니메이션 리리카 SOS,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PD.[350] 영화 레옹,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성룡의 미라클, 홀랜드 오퍼스의 PD.[351] 영화 백 투 더 퓨처(1편 구더빙판 한정.),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의 PD.[352] 셜록 시즌 1, 콜드케이스, 007 네버다이의 연출 PD다. 초창기(90년대초)에는 '비밀의 화원'(애니판)의 더빙연출을 맡기도.[353] 매우 흐릿하게 보였다. HD방송의 경우에는 초창기에 불투명한 로고가 나왔다.[DMB] U-KBS MUSIC[355] 다만 그 와는 별개로 당시 방송자료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유는 생방송 프로그램이 많았던데다가 그나마 녹화된 프로그램도 테이프와 필름 가격(...) 때문에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혹시나마 당시(90년대까지) 프로그램이 있다면 여기에 기증하자.[356] 그래서 'KBS 가정중학', 'KBS 가정고교'라는 월간 학습지도 있었다. 대략 1994년까지 존속.[357] EBS든 KBS3이든 그 시초는 '정부 제공 과외방송'이었다. 교육방송 자체는 195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있었고 교육방송채널의 개국 방안 자체는 1970년대부터 존재해있었지만 재정편성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서 과외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서 처음에는 평일 밤 시간대와 아침시간대에 가정고교방송을 편성하도록 해놓았고, 이것이 꽤 좋은 호응을 얻자 따로 채널을 만들어서 개국해놓았다. 또한 기존에 평일 밤시간대 편성했던 가정고교방송을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과 일부 교양프로그램들을 해당채널로 이동시켜놓았는데 이것이 KBS 3TV였다. 그래서 EBS도 초기에는 한국교육개발원 산하에 있었던 것. 지금은 한국교육방송공사로 독립했고 미국 PBS처럼 공영 서비스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KBS에서 일부 인적 물적 자원이 푸시되는 중 1998년 비슷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이제는 무궁화 위성채널을 이용해 EBS위성1, 2채널을 런칭하고 과외방송을 했다. 이것이 현재의 EBS플러스 1, 2채널의 전신. 참고로 이 때 EBS 위성 1 강의멤버로는 이만기 현 유웨이에듀 대표, 이원희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 등 별들이 은하수처럼 떴네효 쟁쟁한 강사들이 많았다.[358] 정확하게는 1963년 1월 1일부터 1969년 4월 30일(특집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방송은 1971년 12월 31일까지), 1981년 3월 7일부터 1994년 9월 30일까지 광고방송을 했었다.(HLKZ(DBC)-TV 시절은 제외)[359] EBS-TV(구 KBS 3TV)도 상업광고을 안했으나, 재정문제로 인해 1997년 9월 1일부터 상업광고방송을 하게 되었다.[360] 케이블의 경우 개국 당시부터 24시간 방송을 했지만, 지상파는 전파낭비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종일방송을 허가해 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낮 방송이 허가된 2005년 12월 이후로는 사실상 사장된 정책이었고 최종적으로 2012년에 해금된 것.[361] 그러나 영문 자막에 병맛이 가득하다. 사극 드라마 대조영 방영 시 거란군이 고구려군을 기습하는 장면에서 고구려군 병사가 '기습이다!'라고 외친 것을 "Sudden Attack!"이라고 자막을 띄우는 얼빠진 상황을 연출해 내었으며, 모 드라마의 등장인물 '장미'의 이름을 'Rose'라고 내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도 로즈는 외국에서도 쓰이는 이름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안녕하세요 하느님' 방영 당시에는 주인공 하루(유건 분)의 이름을 'Day'로 출력하는 이뭐병 스러운 짓을 행하기도 했다. 하루야, 오늘 기분 어때? / Day, How are you today? 무료 번역기와 동급, 혹은 그 이하의 퀄리티를 보여준 자막은 고국 청취를 느껴보고자 한 해외 동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였다는 후문. 본격 역 왈도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한인들이 많이 모인지역들에는 한인 방송시스템이 따로 있기 때문에, KBS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해서 자막을 다시 만들어 방송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362] http://www.youtube.com/watch?v=VWz1YOp4s70 이런 클립까지 올라왔다.[수도권] 363.1 363.2 FM채널 수도권 한정 송출[365] 언론통폐합 당시 동양방송 라디오의 이름이 바뀐 것.[366] 언론통폐합 당시 동아방송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SBS 개국 후 그 주파수는 SBS 러브FM으로 사용됨.[367] 독립하여 EBS FM이 됨.[368] 마림바-실로폰 듀엣 연주곡 시그널은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369] 그래도 일기도를 실제로 그려보면 의외로 꽤 재밌다. 물론 일기도에 대한 기본지식은 알아야 한다.[370] 2FM이 지역송출을 하기 위해선, 주파수 하나를 추가로 할당받거나, 기존 1FM 혹은 2라디오를 포기해야하는데, 주파수 추가할당은 지역MBC지역민방에서의 견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다. (KBS라디오 중에 가장 경쟁력이 있는 채널이 2FM이다 보니 신규진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1FM/2라디오 주파수를 돌려쓰는 대안은 광고불가 문제(1FM), 뉴스편성문제(2라디오), 기존청취자(두 채널 모두)의 반발 등으로 인해 추진이 쉽지 않다. 그나마 뉴스편성문제는 2020년 8월 31일 2라디오 뉴스가 전면 폐지되면서 사라졌다.[371] 이때 자회사 크레지오닷컴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용의 눈물이나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같은 역전 프로그램들도 올려놓았지만 2002년을 즈음해서 사이트가 개편되면서 사라졌다.[372] 장애인 서비스에 들어가면 3주를 기다릴 필요 없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지만 로그인(KBS 아이디가 없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을 해야 한다.[373] 라디오 프로그램은 장애인 서비스로 들어가면 2012년 방영분부터 듣을 수 있으며 TV 프로그램들과 달리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듣을 수 있다.[374] 다만, 카메라에 조명이 달려있지 않아서 밤에는 영상을 볼 수 없다.[375] 과거의 경우 KBS 본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은 지역 순환근무를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었으나, 직군에 따라서 이런 경향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애초에 서울에서 대부분 제작을 하는 드라마, 예능 PD야 말할 것도 없고, 본사 인력 부족에 따라 시사교양 PD, 방송경영, 방송기술 등의 직군도 신입사원 지역근무는 거의 없어진 상황. 2019년 시점에서 확실하게 신입사원 지역근무가 남아있는 직군은 아나운서 정도가 전부다.[376] 지역권 입사자의 경우 방송경영, 방송기술직군은 그나마 5년을 채우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비해(건강이나, 결혼 등의 사유로 전국권으로 입사하고도 지역국으로 가려는 수요가 제법 있다.), 아나운서, 기자의 경우 본업을 하면서 본사로 올라오는건 불가능하다. 과거 각종 문제가 생겨서 아예 자체적으로 막아버렸다. 지역권 아나운서나 기자가 본사에서 일하려면, 공통직군부서에서 자신의 직군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장벽 때문에 배성재KBS광주방송총국으로 입사해서 다시 SBS 시험을 응시한 것.) 지역권 시사교양 PD는 수상실적이 좋으면 그나마 기회가 생긴다.[377] 이 때 영월방송국 관할이던 정선중계소와 사북중계소 등 정선군의 방송권역은 강릉방송국으로 통합되었다.[378] 방송국 자체는 동일하나, 지형적인 이유로 라디오 주파수를 지역마다 달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태백권의 경우 태백산맥으로 강원 영동지방과 가로막혀 있으니 강릉 인근에서 송출하면 들릴 리 없다.[379] 경인방송센터와 울산국은 참여하지 않고, 후반부 뉴스를 그대로 한다. 사실 울산국도 2019년 11월 뉴스7 목요 시험방송 당시 부산총국에서 하는 '7시 오늘 부산울산'에 참여했지만, 울산의 소식은 잠깐 나오고 부산 얘기만 나온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을 감안해, 두달만에 방송을 접었다.[380] 2016년에 설립한 드라마/예능 제작 자회사.[381] 2004년부터 DVD로 바뀌었다.[월간] 382.1 382.2 382.3 382.4 [격월간] [387] 원래 메인노조이자 언노련의 핵심이었으나, IMF 시대에 지역방송국 통폐합 과정에서 기술직들이 대거 갈려나가면서 기술직 출신 조합원들과 아나운서, PD 출신 조합원들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결국 기술직들의 지지를 받아 2006년 당선된 박승규 노조위원장(전 스포츠국장)이 이명박 정부정연주 사장 축출 시도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면서 언론노조에서 제명되었다.[388] 2011년 복수노조 허용 후 무보직 1직급 직원들이 결성한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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