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특수전전단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2021년 5월 24일부터 3일간 5특전대대가 중부해경특공대와 합동 대테러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2020년 서해해경특공대 합동 대테러 훈련 당시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

Naval Special Warfare Flotilla
파일:attachment/해군 특수전전단/수중파괴대.png
[ 부대마크 해설 ]
독수리
강인한 하늘의 포식자
공중침투를 하는 특수작전을 상징
앵커
바다를 무대삼아 활동하는 해군의 일원임을 상징
기뢰
기뢰, 폭발물 처리 임무 수행
칼·삼지창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전사들의 무기를 상징
희생, 명예, 단결
약칭
특전단
UDT/SEAL[1]
창설
1955년(수중파괴대 설치)
1981년(특수공작대 개편)
1983년(25특수전전대 개편)
1986년(56특수전전대 개편)
2000년(특수전여단 개편)
2007년(특수전전단 개편)
2009년(특수전여단 개편)
2012년(특수전전단 개편)
소속
상급부대
역할
직접타격, 인질구출, 대테러, 수중 파괴, 폭파
선견작전, 폭발물처리, 특수정찰, 경호
위치
웹사이트
부대가
[ UDT/SEAL 부대가 보기 ]
우리는 사나이다 강철의 사나이
나라와 겨레 위해 바친 이 목숨
믿음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
나가자 저 바다 우리의 고향
아아 사나이 뭉친 UDT
이름도 남아다운 수중파괴대

우리는 사나이다 의리의 사나이
겨례의 안녕위해 바친 이 목숨
사랑에 약해 정에 우는 사나이
나가자 저 바다 우리의 낙원
아아 사나이 뭉친 UDT
이름도 남아다운 수중파괴대
 
- 사나이 UDT[2]

내고향 처녀들은 나를 반겨 주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고싶은 내고향.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베르베르 치마저고리 사가지고 오세요.
강남갔던 제비는 다시돌아 오는데,
한번갔던 우리님은 아니돌아 오시네.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말썽많은 이세상을 누굴믿고 사나요.
앞집에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총각은 목을메러 간다.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호박같은 이세상을 둥글둥글 삽시다.

-UDT 1기가 내고향 처녀

어~머니 아~버지~ 날곱게 길~러~서
UDT에~ 보내려~고 이자식길렀~습니 까
악마같~은 훈련~에도 이몸은 살아왔건 만
보트~메고 훈련~하~는 올챙이 용~사~라~오

심 굴궂은 교관놈들 한테 기합도 많이 받았소
배곱프고 졸리워~서 난정말 못살~겠어 요
악마같~은 지옥~주도 이몸은 살아왔건 만
20~주만 지나고나~면 개구리용~사라~오

-UDT 지옥주가

수중 훈련 6개월의 UDT 용사
해마를 새겨 달고서 뽐내는 UDT
체조 수영에는 투덜대지만
영자 식사에는 용감한 UDT
고무보트 울러 메고서 파도를 헤쳐 나아가면
상어떼도 기뻐 날뛰고 산호초 춤춘다

TNT C-3를 가슴에 안고
부수고 파괴하는 용감한 UDT
헤이 브라보 UDT 후야!

- UDT/SEAL 13기가[3]

야! 불사의! (불사의!) 해마떼! (해마떼!) 수중! (수중!) 파괴대! (파괴대!)

사나이의 의리 속에 굳게 뭉친 용사들,
악마 같은 훈련에도 이겨 왔노라!
강철 같은 사나이가 모인 UDT.
젊음 바쳐 내 조국 위해 싸워 나가자. 가자!
가자! 파도뚫고, 가자! 적진으로 가자!
선봉부대 수중파괴대.

- UDT 28기가[4]

보아라 용맹스러운
불굴의 사나이다
투혼의 드높은 의지
통일을 이룩하리
성난파도 힘차게 헤쳐가는 헤마떼
바다의 쾌남 유디티
지옥의 사자 수중파괴대 차!
피끓는 젊음의 정열
비켜라 물러서라
유디티 스쳐가는 곳
오직 승리뿐

- UDT 30기가

사나이 불 같은 젊음을
푸른 바다에 바치고
장부의 웅지, 조국의 통일, 민족의 평화를 위해
보트메고 황혼을 등진 불사의 UDT
어둠을 뚫고! 파도를 넘어!
적진을 돌파하리
한번 품은 큰 뜻을 굳게 지키며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온 UDT

- UDT 38기가

드넓은 가슴! 새까만 얼굴!
내가 바로 사나이란다
자장가 대신! 지옥주를 부르는!
내가 바로 UDT란다

악에 받친 나의 목소리
고향 땅에 울려 퍼지리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
사랑하는 님은 기다려

드넓은 가슴! 새까만 얼굴!
내가 바로 사나이란다
자장가 대신! 지옥주를 부르는!
내가 바로 UDT란다

- UDT 65기가[5]

1. 개요
1.1. UDT/SEAL
2. 편성3. 역사4. 특징5. 교육과정과 배경역사
5.1. 신분별 교육 과정
5.1.1. 부사관 교육 과정의 변천5.1.2. 훈련 여담
5.2. 위탁교육5.3. 교육 문화5.4. 수료율
6. 실전경험 및 대내외활동
6.1. 북파공작 (창설~7.4 남북 공동성명)6.2. 베트남전 참전6.3. NLL에서의 대북작전6.4. 청해부대 검문검색대
6.4.1. 아덴만 해역 파병6.4.2. 호르무즈 해역 파병
6.5. UAE 파병6.6. 그 외
6.6.1. 연합 훈련
7. 장비
7.1. 복제7.2. 병기
8. 해군 특전부사관(UDT) 준비
8.1. 해군 특전부사관(UDT) 필기와 실기8.2. 해군 특전부사관(UDT) 후보생 합격점수대8.3. 해군 특전부사관(UDT) 체력 권장사항
9. 특전병10. 사진 및 영상11. 출신 인물12. 등장 매체13. 역대 지휘관
13.1. 여단장13.2. 전단장
14. 기타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8840c758f29d7983b89254f50e628271b6b475f39f17eaab02e15f41c1180879.jpg
특수전 흉장
불가능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
대한민국 해군특수전전단[6]해군작전사령부 직할 전단 중 하나로, 해군의 특수전부대다. 전단장은 해군 준장이 보임된다.[7][8]

모체인 해군 수중파괴대의 영문 약칭대로 통상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라 부르기도 하며, UDT/SEAL(SEa, Air, Land)이라고도 칭한다. 부대창설 과정과 SEAL 임무확장 과정에서[9] 나타나듯 미 해군의 네이비 씰을 모델로, 매년 시행되는 부대원들의 유학이나 연합훈련을 통해 영향 받으며 발전하고 있으며 국군 내에서 개방적이고 선진화 된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손에 꼽는 부대다.[10][11] 미군특수전부대에서 세계적으로 폴란드 GROM 등과 함께 당장 같이 작전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탑 티어급 부대임과 동시에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선박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부대이다.
조광현 예비역 대령 인터뷰

1.1. UDT/SEAL[편집]

UDT/SEAL이라는 이름은 미 해군 NAVY SEAL의 모체인 UDT를 벤치마킹하여 창설한 부대에, 훗날 미 해군의 UDT가 발전하며 부여된 SEAL 임무를 덧 붙여 UDT/SEAL이 된 것이다.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로 시작되어(전통적 UDT)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침투, 암살, 직접타격(DA), 대테러, 경호추가되었다.(SEAL)
피랍선박 대응훈련을 수행하기 위해 패스트로프 강하 후 진입하고 있는 UDT/SEAL 대원들

2. 편성[편집]

2019년 9월 10일 해군특수전전단 종합전술훈련장에서 훈련중인 해군 특수전전단 대원들
  • 특수전전단
    • 해군특전전대
      • 제1특전대대(진해)[12]
        • SEAL 특수작전대(SEAL: SEa, Air, and Land)[13]
      • 특수임무대대(CT: Counter Terror, 대테러)(진해)
      • 제3특전대대(동해 제1함대)
      • 제5특전대대(평택 제2함대)
      • 폭발물처리대대(EOD, 진해)[14]
      • 선견작전대대(위치: 진해)[15]
    • 교육훈련전대: 교육훈련을 담당
    • 작전지원대: 교육 훈련 또는 작전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 관리/운용

특수전전단의 본거지이자 각종 훈련시설을 갖추고 있는 진해에 주둔하며 훈련에 전념하는 1특전대대가 주력 부대이다. 그리고 동해 1함대의 3대대와 서해 2함대의 5대대는 함대기지 또는 각 함대가 관할하는 접적해역에서 벌어지는 긴급상황에 대비하는 부대이다. 이외에도 인천을 비롯하여 접적해역 모처 등에도 소수의 해군특전대원들이 파견근무하고 있다.

진해의 제1특전대대는 위의 작전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제1대대 소속 대원은 이 작전대들 중 하나에 소속되어 해당 임무를 전문적으로 훈련한다. 장기복무자의 경우 몇 년이 지나면 순환 근무로 소속 작전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최소한 2개 이상의 제대를 섭렵하기도 한다. EOD와 CT는 별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며, 장기자 간부는 해당 제대에 속하지 않더라도 자원하여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 EOD 및 CT는 고도의 전문과정이라 제대에 속하는 특전병이라도 교육받지 못하고 간부만 받을 수 있으며 특전병이 배속된다 하더라도 이는 작전요원으로 배속된 것이 아니다.

폭발물처리임무(EOD)는 1968년 4월 22일 부여 되었다.[16] 임무 부여에 따른 사전작업으로 1966년 장교 1명, 부사관 2명이 미 해군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에 보내졌으며 최종적으로 1968년 5월 1일에 폭발물처리대가 창설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한국군 자체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은 백동일 예비역 대령이 UDU교육 수료 후 1976년 미 육군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에 지원하여[17] 이수한 뒤 귀국하여 1977년 UDT/SEAL로 발령 받았다. 이때 한국 해군 자체 폭발물처리 교육과정 개설에 기틀을 닦았다고 주장했으나 UDT 출신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8개월 가량 UDT에서 대기근무 했다고 한다. 1968년 창설된 것이 한국 해군 EOD이며 백동일 대령 이전에도 수많은 미국 EOD교육 이수자들이 있었는데 이근 대위처럼 미 해군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을 이수 한 것도 아니고 여러 인원들이 이미 다녀온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1977년, 8개월간 근무한 백동일 대령이 해군 폭발물처리학교의 기반을 닦았다는 주장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며 분명 당시 UDT 근무자들의 반론이 존재한다. 백동일 대령 본인도 예전에는 UDT 출신이라고 외부적으로 밝히다가 특임자 보상 이후 UDU라고 밝힌다. 내용에 대해 말 많은 정보 50년사 책자 집필 실무자이기도 하다. 백동일 예비역 대령 인터뷰

폭발물처리대[18]를 2017년에 확대개편하여 폭발물처리'대대'로 독립/승격시켜서 현재는 EOD는 대대급 부대이다.

2018년 9월 1일 5전단 55전대 예하의 SSU가 특수전전단의 해난구조전대로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해군 UDT/SEAL에서도 육군 특전사처럼 지역대라는 명칭을 썼지만 이후 작전대라는 명칭으로 바꿨다.

전쟁이 터지면 해군 특수전전단은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되고, 오키나와미국 본토에서 증원된 미국 특수부대들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된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 특수전사령부(육군 특전사 및 여기에 배속된 해군 특수전전단)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가 병합되어 연합 특수전사령부(Combined Unconventional Warfare Task Force: CUWTF)를 구성하여 한미 연합 특수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3. 역사[편집]

연도
연도
부대 명칭
해군 해변단 수중파괴대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여단
해군 특수공작대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해군 제2전단 제25특수전전대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여단
해군 제5전단 제56특수전전대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50년대 초창기 UDT 청사는 1부두
.일본해군이 쓰던 작은 목조건물에서 UDT태동이 시작된것이다. 취사장은 함대사령부에 있어서 먼거리를 매일 이동해야 하는 매우 불편함이 있었다.
.당시 일등병조(하사)월급(100원),
.이등병조(중사)월급(5400원)
.UDT는 별도 부식비가 나오는데 공군조종사와 동일한 특급대우를 받았다.
.그 시절 상사 월급보다 부식비를 더 많이 받았던 시절이라 윤택한 생활은
.물론 매끼 고기가 목욕한 기름기 있는 국을 먹을 수 있었는데,
.모든 것이 UDT(B-6)훈련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Going Gets Tough, UDT Men Get Going
아무리 힘들어도 UDT는 한다!
한국 UDT 생도 미국 유학을 보도한 미국 신문기사의 헤드라인. 미국에서 UDT 과정 B-6 훈련 때인 1955년의 신문기사다.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전달된 특수작전부대 편성과운영은 그대로 해군특전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52년 2월,미 정찰정보대(RIU·Reconnaissance Intelligence Unit)가 해체되면서 한국해군에 정찰정보대의 창설을 기획했다. 이에 한국 함대정보국(NID·Naval Intelligence District)은 1952년 11월, 미 해군특수전부대 UDT 양성과정인 B-6 과정에 김성권 중위를 유학시켰다. 당시 UDT 창설목적은 '요인암살 및 첩보수집' 이었다. 김중위에 이어 1953년과 1954년 미 해군 B-6과정에 유학한 11명으로 대한민국해군 UDT가 탄생됐다. 1955년 5월 25일 한국함대 B-6교육과정이 발족됐고 같은 해 11월 9일 제 1기 과정 26명을 수료시켜 대한민국해군 UDT가 창설됐다. [19]

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20]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해군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등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군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미 해군 UDT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들은 미 해군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UDT 창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STU)에서 UDT 모집을 공고하였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신체 건강한 해군 장병이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료 후 특별대우와 미국 유학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ㆍ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해군 내에서는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제시한 조건은 해군 내에 최대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집공고 후 300여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 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다.

1955년 8월 5일 UDT 1기생이 입교했다. 해군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각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단련과 수영위주로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항무)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미 해군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훈련),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Skin SCUBA)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 해군 UDT 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미 해군 UDT 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교육하였고, 1955년 11월 9일 마침내 병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대한민국 UDT 1기로 배출되었다.

1955년 11월 9일 UDT 1기 수료식과 더불어 장인표[21] 대위를 초대 지휘관으로, 교관 7명과 UDT 1기생 26명 등 총 33명으로 해군 함대해변단 예하에 수중파괴대(UDT)를 창설했다. 원래는 해군 현역 장병만을 대상으로 모집하였으나 1988년 이후부터는 민간 모병을 병행하였고, 현재는 민간 모병을 통한 입대자가 대부분이다.
1968년 UDT 14기 수료식
(해군, 육첩, 해병 등 120여명 입교, 7명 수료)
1971년도 UDT 제 17기 수료식 사진
1968년 폭발물처리대(EOD)를 창설했고, 1975년 UDT/SEAL로 명칭을 변경, 1976년 특수전(SEAL)임무가 추가되었다.[22]1993년 해상 대테러 임무를 육군 특전사 707특임대로부터 이관받았으며,[23]1998년 특수선박대를 창설했고, 1999년 육/해상 대테러와 모두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특수임무대를 창설했다.[24] 2007년 12월 21일 특전전대, 구조전대, 기뢰전대를 예하부대로 특수전전단을 창설했다. 2009년 1월1일 특수전전단이 특수전여단으로 개편되면서 기뢰전대는 제5성분전단 소속으로 예속, 구조전대는 SSU로 개편후 55군수지원전대 소속으로 예속되었다. 그러다가 2012년 특수전여단을 특수전전단으로 다시 개편했다.[25] 2007년의 특수전전단이 UDT, SSU, 기뢰전대 등 여러부대 통합의 전단이었다면 2012년 탄생된 특수전전단은 UDT 독자 확대개편의 특수전전단이다. 이후 2018년에 SSU와 구조함 등이 특수전전단에 추가로 예속되었다.
1대대 산하의 한 작전대로 있었던 폭발물처리대(EOD)를 독립대대로 확대개편시킨 폭발물처리대대가 2017년 2월 1일에 창설되었다. 초대 대대장 김태현 중령(해사54기). 폭발물 처리 부대로서는 전군 최대 규모다. #

3.1. 영도유격대 해상대와의 관계[편집]

영도유격대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 영도에 본부와 훈련장을 두고 강원도 일대와 함경남북도까지 공중과 해상으로 침투하여 활동한 유격대이다. 대원들은 동해안 지역에서 활동했으므로 동해지구 반공 의병대 라고도 불렀다. 이 부대는 휴전 후에도 한 동안 당시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어느 기관 소속이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부대장이 국군 현역 대위였으므로 국군 통제부대로 파악되는 경우도 있었고, 초창기 부대 창설과정에서 미국측을 도왔던 윤치영은 물론, 부대장마저 극동군사령부 소속으로 알 정도로 전쟁 당시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인지 몰랐다. 그러나 이 부대는 미 CIA 산하 유격대였다.

영도유격대는 동해안 북부지역을 작전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함경남도와 북도, 강원도 등 동해 3도 출신을 주로 모집하였으나, 부산이나 거제도 등지로 피난 온 서울, 평안도 등 다른 지역 출신도 있었다. 월남 청년들 가운데, 대게 가족이 없는 경우를 대원으로 받아들였다. 가족이 있을 경우, 부양할 의무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해상대의 창설배경은 1951년중 대원을 대규모로 침투시켜 장기간 작전을 펼치도록 했으나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귀환율이 낮아, 작전방침을 바꾸어 해안선 근처에서 단기간의 소규모 침투작전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1951년 6월경 해상대가 창설되었다.
해상대는 오박을 대장으로 하고 대원 10인에 불과한 소부대로 출발하여 기존 게릴라 대원과 해상대 교육대에서 엄선한 대원들로 구성하여 58명까지 늘어났다.

해상대원의 훈련은 모든 유격훈련과정을 마친 대원들 가운데 수영에 능숙하고 배를 잘 탈 수 있는 대원들을 선발하여 미국 UDT 애치슨 대위(George Atcheson)와 팩넬라 상사(James C. "Joe" Pagnella)가 그들이 받았던 16주의 미국 UDT과정을 대원들에게 전수했다. 이는 정규 미국UDT과정에 입교한 사례는 아니지만 한국인이 받은 최초의 비공식 UDT교육이다. 현재 생존해 계신 영도유격대 해상대 한인섭회장은 후에 한국UDT 정식창설시 교관으로 영도유격대 해상대 출신들이 지원나가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영도유격대 해상대 한인섭회장이다. 그의 베레모엔 한국UDT 철제휘장이 붙어 있다. 해상대는 비공식 한국 최초의 UDT이자 공식 한국UDT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4. 특징[편집]

림팩 훈련에 참가한 UDT/SEAL 대원들

기본적인 팀의 편제는 밑과 같다. 팀은 7인 1개조로 구성된다.
  • PT(Point Man) : 척후
  • PL(Platoon Leader) : 팀장
  • RM(Radio Man) : 통신수 - 통신장비 휴대.
  • AW(Automatic Weapon) : 자동화기 사수 - 기관총 휴대.
  • GR(Grenadier) : 투척수 - 유탄발사기 휴대.
  • APL(Assistant Platoon Leader) : 부팀장.
  • RS(Rear Security) : 후방경계.

또한 그 유명한 개구리 뜀뛰기식 퇴출을 할 경우에도 위와 같은 작전 대열 순으로 한다. 미 해군 네이비 씰에서는 '필링' 퇴출 전술이라고 부른다. [26] 미 해군 SEAL은 미국의 지속적인 전쟁 속에서 피를 흘려가며 전술을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올드한 전술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미 해군 SEAL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한국 UDT/SEAL 또한 대외적 시범 및 팀전술 입문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또한 UDT/SEAL이라고 해서 꼭 네이비 씰의 전술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상황별 작전 절차에 따라선 영국 SAS의 전술도 도입하여 사용한다. UDT 대원에게 너희 SAS에서 파생된 전술도 사용한다며?라고 물어봐도 그 대원은 잘 모를 수 있다. 복무할 당시 도입된 전술이라면 유래까지 알 수 있지만, 수많은 전술을 익힐 때 어느 부대에서 파생된 전술인지까지 전부 교육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술이 지금까지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전술은 상황이나 운용장비와 같은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으며 특히 실전을 통해, 실전이 없다면 실전을 겪은 부대와 교류를 통해 계속 접목, 도태, 변형하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전술의 노출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동맹이나 우방국이라 할 지라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부분은 연합훈련을 하며 순간적으로 캐치하거나 부대원 간 개인적 인맥, 군 수뇌부의 정치외교적인 노력이 총동원된다. [27]심지어 이런 이유로 UDT/SEAL의 본진인 진해 소재 부대는 국군 및 경찰, 해경과 합동훈련을 꺼리고 합동훈련을 하더라도 전술 노출을 최소화한다. 이 때문에 UDT 출신 해경 특공대원이 훈련 협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UDT 대원들의 퇴출 시범
1. 적들을 향해 일렬횡대로 늘어서고, 한쪽은 팀장 다른 쪽은 부팀장이 지휘하며 팀장과 부팀장 팀이 서로 '엄호사격→퇴출'을 반복한다. 다른 팀원들은 퇴출하는 동안 화력을 유지해준다. 퇴출하면서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
2. 퇴출 중인 대원이 퇴출 지점에 다다르면 대열의 끝단에 위치한 팀원이 다른 6인의 엄호를 받으며 대열의 반대쪽 끝으로 움직여 대열을 유지하며 질서 정연하게 퇴출한다. 퇴출하면서 엄호사격 중인 바로 다음 팀원의 어깨를 쳐서 자신의 퇴출을 알린 후 빠지는 것이 포인트.

한국군 중에서 가장 선진화된 부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도 그럴것이 접적해역의 윗동네 아저씨들과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등을 상대하면서 어찌되었든 실제 임무 상황을 계속 겪는 부대이고 국내, 국외 파병, 파견해역에서 미 해군 SEAL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해군 특수부대들과 수시로 교류가 되기 때문에 장비, 전술등이 동급으로 상향 평준화 된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아덴만 파병 이전 UDT 장비를 보면 광학장비 없는 K-1소총으로 무장하고 동시기 특전사와 비슷하거나 살짝 열악한 장비들을 보유하였으나, 그 전후로 급격히 장비가 바뀌어 무장은 HK416계열로 바뀌고 군복도 멀티캠 계열로 바뀌었다. 특히 미 해군 SEAL처럼 SOP[28]를 팀 단위로 적용하고 거기 맞춰 장비를 착용한다는 개념이 이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 UDT/SEAL과 연합훈련을 해본 미 해군 SEAL 간부가 훈련 후 소감으로 "한국 UDT/SEAL 대원들은 훈련 중에도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등 위계질서에 너무 집착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게 아쉬웠다."라는 평을 내린 적이 있으나 위의 사례도 2007년의 것이고, 적어도 10여 년 전부터는 선배 쏘고 웃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현재에도 미 네이비 씰, 그린베레와 같은 미 특수부대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고, 심지어 데브그루와도 가끔식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해외 군사고문단 파병을 통해 다른나라의 특수부대들과 꾸준히 교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장비의 경우 국군 내에서 단연코 독보적인 수준이고[29], 대테러 분야의 전문성에서는 국가급 대테러특공대인 해상특임대가 707과 우열을 다투는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평가받는다.[30]

수병과 부사관은 선발 시부터 특전 계열로 뽑아서 특전 직별이란 게 있지만, 장교는 따로 특전 직별이 없어서 함정 병과를 가진 장교가 온다. 그래서 장교들은 UDT에서 근무하다가 순환보직으로 함정을 타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함정 병과를 보면 항해와 기관 장교만 있을 것 같지만 육상 근무자도 함정 병과로 분류된다. 다만 장교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해군 특수전전단(UDT)이 소규모 인원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장교 부족현상으로 각종 훈련외에도 행정업무까지 도맡아야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5. 교육과정과 배경역사[편집]

UDT 교육과정을 과거에는 'B-6 교육'이라고 불렀고, 현재는 '해군 특수전 기본 과정'이라고 부른다.

5.1. 신분별 교육 과정[편집]

신분별 과정
기초훈련 과정
특수전 기본 과정[31]
특수전 후반기 과정
공수교육
병 과정[32]
신병 기초 군사교육 6주
특수전 기본 과정 5주
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5주
기본 공수교육 3주
부사관 과정
부사관 기초 군사교육 4주[33]
특수전 기본 과정 5주[34]
특수전 부사관 초급반 과정 18주[35]
기본 공수교육 3주
장교 과정
특수전 기본 과정 5주[37]
특수전 장교 과정 18주[38]
기본 공수교육 3주
  • 2021년 UDT/SEAL 지원자는 1800여명이었다고 전해지며 장교, 부사관, 병사 모두 합한 지원자인지 주력 전투원신분인 부사관계급 지원자들만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매 기수당 장교, 부사관, 병사 모두 합하여 120여명이 입교한다고 가정하였을때 수료가 아닌 입교까지의 경쟁률이 대략 13.3%정도 된다.[39]
  • 해군 특수전 병 과정: 1997년까진 병도 부사관/장교와 동일하게 전 과정을 똑같이 교육을 받았으나, 1998년부터는 병은 12주까지만 같이 교육받고 먼저 수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12년까지는 12주였다가 2013년부터 10주로 더욱 단축되었다.
  • 해군 특수전 부사관 과정: 민간에서 지원하였거나 수병에서 특전부사관으로 신분전환한 인원들은 부사관 기초군사 교육을 받다가 특교단으로 입교하게 된다. 일반학으로 일컬어지는 특수전 기본 과정(지옥주 포함)을 부후생 신분으로 받게 된다. 이미 임관한 뒤에 지원한 부사관들은 기초군사 교육과정 없이 바로 특교단으로 입교한다. 임기제부사관이 연장복무, 단기전환을 위해 입교를 지원할 시에는 지옥주가 포함된 특수전 기본과정 전체가 아니라 후반기 과정인 초급반 과정만 수료하면 된다.
제일 초창기엔 교육기간이 3개월이었고 1960년대엔 4~5개월 정도였는데 1970년대에 6개월(24주)로 늘어났고 이게 쭉 유지돼서 2006년까지 계속 24주였다. 그 후론 2007년 ~ 2010년 20주, 2011년 26주, 2012년 20주, 2013년 24주로 해마다 교육기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 해군 특수전 장교 과정: 장교는 따로 특전 직별이 없기 때문에 실무에 있는 함정 병과 장교가 지원하여 특전단에 입교해야한다. 현역 부사관의 특전부사관 지원과 마찬가지로 일반학부터 시작하며 초급반 과정과 동일한 장교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5.1.1. 부사관 교육 과정의 변천[편집]


2017년에 모집하여 2018년 3월에 입영한 259기 해군부사관 부터 경우 잠시 동안 교육체계가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었다. 현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 해에만 실행했던 것으로 특전부사관에 지원하고자 하는 인원은 해당 내용을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1. 이제까진 해군교육사령부 예하의 기초군사교육단(구 해군 기초교)에서 임시입영 1주+부사관후보생 양성교육 8주를 받아서 하사로 임관한 뒤 특수전전단으로 와서 UDT 교육(특수전 초급반 과정) 24주를 받았었다. 그런데 2018년 교육부터는 특부후생 양성교육을 기존의 기초군사교육단이 아닌 특수전전단이 직접 맡아서 처음부터 특수전전단으로 입영을 하게 되었으며, 지옥주를 포함한 특수전 초급반 과정의 초반부 교육 상당 부분을 부사관후보생 양성교육 과정에다가 옮기고, 전체 교육 과정이 '임시입영 1주+부사관후보생 양성교육 12주 → 하사 임관 → 특수전 초급반 과정 16주'로 개편되었다.
2. 이 때, 임관 전 퇴소될 경우 귀가조치되며 임관 후 퇴소될 경우 특전단 내에서 잔류한다.
3. 실기 및 면접 등의 선발 일정은 비 특전계열 해군부사관과 다르게 진행한다.
4. 교육과정이 연 2회에서 연 3회로 늘어난다.

UDT/SEAL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연 3회 교육기수인 초급반 64-3기(해군 부사관 241기)는 41명이 입교하여 수료생 11명을 배출하였다. 연 3회 교육은 폐지되어 64-3기는 한 해에 세번째로 시행된 교육을 받은 기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64-3기 수료식

2019년부터 현재까지는 다음과 같이 교육이 이루어진다.
1. 연 3회 교육에서 다시 연 2회으로 줄인다.
2. 입영을 해군교육사령부 부사관교육대대로 입영을 하여 1~4주차까지 기초훈련을 받는다
3. 5~10주차까지 특수전전단 특수전교육훈련대대에 지옥주를 포함한 특수전 기본과정을 받는다.
4. 기본과정에서 살아남은 후보생은 11주차에 다시 부사관교육대대로 돌아와서 다른 직별 후보생들과 함께 임관식을 준비한다.
5. 하사 임관 후 18주간 특수전 초급반 교육을 받는다.

5.1.2. 훈련 여담[편집]

연골판이나 인대가 손상된 채로 제대로 재활도 하지 않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고, 연골이 없다시피한 사람도 지원해서 온 적도 있다. 또한, 훈련중 고관절이 부상당한 지원자가 수료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제대로 관리하면 부상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체로 지옥주가 지난 후에 나가떨어진 지원자들은 부상문제가 대부분이고, 이들중 절반 이상은 재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1955년 1기부터 1970년 16기까지 모두 395명이 UDT 교육을 수료했다. 이 중 해군이 아닌 타군[40]에서 온 위탁생들이 63명이었다. 나머지 해군 소속으로 UDT 교육을 마친 332명 중 126명은 훈련 후 바로 해군첩보부대로 전속됐다. 1971년 UDT 교관단이 해군 첩보부대에 발령받아 UDU 자체 교육대를 신설했는데, UDU 대원들을 별도로 선발하기 시작한 1971년 그 이전 기수인 UDT 1기에서 16기까지의 대원은 훈련 종료 뒤 즉시 북파공작에 투입되거나, 2~3년 간격을 두고 해군 첩보대 전속 명령을 받고 북파공작에 투입됐다. 반대로 UDU에서 교육수료 후 UDT에서 정년퇴직한 사례도 있다. 첩보부대에 자체적인 요원 양성교육이 생긴건 71년인데 71년에 수료한 UDU 기수를 UDU 1기라고 하지 않고 UDT 기수를 그대로 물려받아 UDU 17기라고 한다.
UDU에 UDT교관단이 전출되어 UDU에서 자체 특수요원 양성이 시작된 이래 UDU에서 자체 B-6교육을 받고 복무하다가 UDT로 전출을 가서 복무한 인물의 진술서이다.
1960년 UDT 6기 수료식 후 찍은 사진이다. UDT 6기는 해군 14명 육첩(HID) 19명이 수료했는데 해군 수료자들은 전원 해군 정보부대 해상정찰대(현 UDU)에 인사발령이 났으며 후에 2명이 UDT로 복귀하여 UDT에서 전역한다.
초대 UDU 동지회 회장 (UDT 4기 조OO) 증언에 의하면 UDT에서 복무 중 당시 UDU 부대장을 하고 있던 UDT 창설요원이자 UDT 부대장이었던 장OO이 직접 불러서 UDU로 갔다고 한다.

5.2. 위탁교육[편집]

해군 교육생 외에도 타군 위탁교육생도 참가하는데, 육군 특전사, 해병수색대 간부, 공군 SARTCCT 대원들이 그들이다. 또한 대통령경호처, 국가정보원도 7급 공채 신입 연수 기간 중 한 달간 이곳에 위탁교육을 맡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경까지는 육군 첩보부대[41]공군 첩보부대에서도 위탁교육을 왔고, 현재는 방글라데시 해군 특전대원들도 위탁교육을 오고 있다.[42] 방글라데시 위탁교육생들은 B-몇번이라는명칭으로 불리우며 위탁교육생 특성상 웬만하면 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쓰나 (개인의 명예, 본국 복귀시 인사고과 등등) UDT특유의 혹독한 교육, 추위에 대한 부적응으로 수료율이 그리 높지않다. 고 한주호 준위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방글라데시 해군장교가 저체온증 쇼크에 빠져 입수를 거부하고 퇴교 일보직전까지 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전사, 해병수색대, 공군특수부대, 방글라데시 해군장교, 한국 해군장교 및 부사관, 병사들이 함께 섞여져 교육을 받게되고 수료완료시 udt/seal휘장을 부착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간혹 특전사 인원중 HALO,HAHO 휘장과 함께 가슴상단에 SCUBA/COMBAT DIVER 휘장 대신 udt휘장을 부착한 인원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udt교육을 수료완료한 특전사 위탁교육생이다.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모두 기수인정을 받는다. 말 그대로 특전사이지만 udt이고 방글라데시 해군이지만 udt인 것이다.
1963년 UDT 9기 교육입교자는 해군 외 중앙정보부 1명, 공군 첩보부대 3명이 입교하였다. 조OO대위(UDT창설요원)교육대장, 신OO교관등으로 UDT(B-6)교육은 혹독하게 실시되었으며 공군첩보부대 1명은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퇴교되었다.
나머지, 공군 첩보부대(안OO,김OO) 2명도 지옥주를 마치고 퇴교조치되었으나, 공군 첩보부대 본부 협조아래 UDT교관단과 함께 UDT 9기 훈련종료시까지 참관만 하게 된것이다. 공군 첩보부대(김OO 중사)는 실미도 교관단으로 이동하였으며, 2015년 기준 생존해 계신다. 중앙정보부 1명은 UDT교육중 11주교육만 이수하고 바로 중앙정보부로 복귀하게 된다. UDT 9기 수료사진에는 공군 첩보부대 2명도 포함되어 있다.
우측 어르신이 육군 첩보부대 소속으로 UDT 6기 교육과정에 위탁되어 교육을 수료하였다. UDT 6기 해군 수료자들은 수료와 동시에 전원 해군 첩보부대로 발령 받아 임무를 수행 하였다.
공군 684부대 간부들 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UDT 11기 과정을 수료한 도OO 소대장.
UDT 5기 김치준의 경우, 해군 UDT에서 복무 중 해병장교로 신분전환하였고 월남전 파병도 다녀왔다. 해병수색대에 발령받아서 가보니까 당시 해병수색대에는 아직 제대로 된 교육훈련이 없는 것을 알고는 해군 UDT교육을 본따서 단축시킨 해병수색교육을 만들어서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969년부터 해병수색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UDT5기 김치준은 노환으로 2021년 4월 7일 별세.
1973년 육군특전사, 해병수색대원을 대상으로한 UDT주관 스쿠버교육 사진이다.

여담으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의 체력과 독한 정신력을 강화시키고자 5일간 잠 안 자고 굴리는 UDT의 지옥주 과정에 선수들을 참여시킨 적이 있었다.[43] 여자선수들은 끝까지 훈련을 받았으나 남자 선수들은 코치진들이 자기들의 동의도 없이 이 무지막지한 코스에 강제로 집어넣어버렸다고 반발하며 모두 도중에 퇴교해버렸다고 한다. 항명한 남자 선수들은 내부 징계를 받았다는 후기가 전해진다.[44]

5.3. 교육 문화[편집]

해군 특수전 기본 과정은 쉽게 말해 미 해군의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 Air, and Land : 기초수중파괴/전천후 특수타격)의 한국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45] 초창기 한국 UDT 간부들이 미국에서 위탁교육을 받아온 뒤에 미군의 오리지날 훈련과정에 각종 혹독한 얼차려 및 인간을 원초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사항들을 더 추가해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식사전에 턱걸이를 실시하여 정해진 개수를 못채우면 철봉 위에 매달려서 식사해야 된다든가, 훈련생도는 "예!" 대신 "악!"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든가, 밤에 묘지를 가거나 심지어 시체와 관련된 엽기적인 극한체험을신원불명 부랑자 등의 시체의 살점 일부를 먹거나 입에 물게 하는 등 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물론 시체 관련 체험은 나중에 없어졌는데, 사실 당연히 진짜 시체의 살점은 아니고 교육생들의 깡다구 상승 목적으로 동물 고기를 가지고 속인 것일 뿐이었다고 한다. 이런 특유의 가혹한 훈련문화 중 일부는 위탁교육을 들어온 타군 교육생들에 의해 타 부대들에 도입되기도 했다. BUD/S과정을 수료한 이근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교육과정과 한국교육과정의 강도는 육체적으로 비슷하나 한국교육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하였다.
교관들은 교육생을 수료시키기위한 인원이 아니며 퇴교시킬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혹독하다.이는 살상을 목적으로하는 부대특성상 현재의 교관과 교육생이 추후 같은 팀으로 작전에 임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준 미달자는 가차없이 퇴교시키는 분위기이다.
UDT20기 출신 어르신의 영상수기이다. 돼지라 지칭하는 부분이나 인분으로 양치를 하는등 당시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영상 말미에 해군31명, 해병4명이 수료했다는 글이 나온다. MIU가 해체되어 1명이 해병수색대로 전속되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료한 해병4명중 3명이 수색, 1명이 MIU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매 기수마다 만들어지는 싸가인 UDT 기수가(期數歌)들 중 일부는 타군 부대에도 전파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불리는 '해병수색대가'와 '특전사 해척조 사가'의 원조는 해군 UDT 13기 기수가이다. '고무보트 울러 메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상어떼도 기뻐 날뛰고 산호초 춤춘다…' 이런 유명한 가사가 들어있다. 당시 히트했던 봉봉 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이라는 노래를 개사하여 UDT 13기 기수가로 만들었던 것인데, UDT 기수가들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아 위탁교육생들에 의해 타군 부대로 전파된 것이다.

이 교육과정 중에는 132시간(5.5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밤낮없이 훈련을 강행하는 지옥주(Hell Week)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지옥주 과정은 미 해군 SEAL의 전신인 미 해군 UDT 부대의 선발교육중에 있던 지옥주 과정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 해군 UDT 교육에도 그대로 도입되었고, 한국 UDT 교육에 위탁온 타군 교육생들에 의해 각군 특수부대의 수중침투 교육과정(해병수색교육, 특전사 해척조 교육)에도 전파되었다. UDU B-6과정의 경우 UDT교관단이 통째로 UDU로 전출을 가서 UDU교육대 창설을 했으니 앞서 열거된 타군과는 좀 다르다.
UDU 자체교육 1기(UDU 17기) UDT교관진

교육과정이 언론매체에 다큐멘터리 등으로 여러차례 공개된 적이 있는데, 특히 2002년 UDT/SEAL 48기 교육생들의 훈련과정이 KBS 수요기획에서 2부작('020807 E68 지옥에서 살아오라', '021030 E79 불사조로 거듭나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천안함 인양작전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가 교육훈련대 교육훈련반장으로 훈련시키는 장면이 등장했다. 순직후 KTV에서 2010년 4월 3일, '한주호 준위! 당신은 진정한 군인입니다'라는 특집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었다.

5.4. 수료율[편집]

UDT/SEAL의 수료율은 통상 평균40% 미만으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며, 특이 케이스인 UDT 14기(120여명 입교 하여 7명 수료)를 제외하고 기사에 따라선 20%, 30%라는 내용의 기사와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의 수기를 다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수기로 해병수색대 김00소령의 수기를 들 수가 있다. 김00소령이 본인의 블로그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00소령은 해병대 수색대에 부임한 후 수색교육 7기를 수료하고 이듬해 해군 UDT 18기 과정에 입교하여 위탁교육을 수료하였는데 UDT 18기 당시 해군, 해병대를 비롯하여 육군, 공군 첩보부대에서 입교하여 총148명 입교하였고 수료자는 31명이라고 밝혔다.[46]
해병 김00 예비역 소령의 수기에 등장하는 UDT18기의 교육중 사진이며 앞에 걷고 있는 인물은 당시 교육대장이었던 조광현 예비역 대령이다. UDT18기는 강원도 양양 기사문일대에서 진행되었으며 해군 하사관 60명을 포함하여 총 81명, 해병은 전 해에 이미 수색교육을 수료하고 온 장교 2명을 제외한 하사관 전원(6명), 공군첩보대 전원(15명), 육군첩보대는 장교 1명을 제외한 하사관 전원(15명) 등이 퇴교한 끝에 최종 31명만이 수료하였다.

2010년 5월 25일. 수료율이 20%안팎이라는 조광현 대령의 신동아 기사.
2018년 5월 28일. 초급반 수료율은 평균 30~40%에 불과할 정도로 ‘바늘구멍’이다. 탈락자 중 50%가 3주 이내에 고배를 마시며, 나머지 50%는 ‘지옥주’ 기간에 짐을 싼다. 지옥주를 통과하는 인원은 최초 지원자 중 25%에 불과하다. 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다만 2010년~ 2012년 수료율의 경우 78.4%라는 상당히 충격적인 통계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자진퇴교 의사를 밝힌 교육생들을 교관들이 융통성있게? 어떻게든 끌고 가려 노력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긴 하지만 다른 기수들에 비해 높은 수료율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기사에 나오는 국군내 다른 특수부대와 비교하였을때 그렇게 충격적인 통계자료는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UDT는 40%미만의 수료율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아닐 수 없다.
UDT부대 출신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해군본부 측에서 UDT의 규모를 늘리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천안함 폭침과 한주호 준위 사고를 계기로 상부에서 UDT부대 규모 확충의 필요성을 더 통감하게 되어 폭발적인 부대규모 확충계획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덴만 여명 작전이라는 메가톤급 폭발적 요인이 추가로 터짐으로써 아예 여단에서 전단으로 편제를 승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전단 승격의 준비작업으로 단기간내 급격한 인력확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수료율 급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는 해당 부대 출신자의 전언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SBS의 기획취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해당기사에서 동종업계 타 조직(경찰, 해경)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며 그에 따른 인력유출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인력확충에 급급하여 신규요원의 자질논란이 내부적으로 있다는 대목이 있다. 기사와 해당부대 출신자의 진술을 같이 참고해보면, 열악한 처우에 따른 인력유출과 단기간내 급격한 부대규모 확장에 따른 수요증가가 맞물려 내부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야기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기사와 유튜브 등 자료를 찾아보면 UDT/SEAL의 수료율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낮아진듯 하다. 아무래도 전단승격 작업이 완료되어 조직이 어느정도 안정화 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2014년 7월 15일. 60-2기 교육생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초 94명으로 시작했지만 15일 현재 생존자는 58명이다. 극기주 종료 후 몇명이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극기주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짐을 싸기 때문이다. 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2018년 5월 29일. 최초 입교한 95명의 특전 부사관후보생 중 특수전 기본과정을 통과한 인원은 단 19명이다. 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2019년 3월 28일 체력학원을 운영하는 특전사 출신의 이스톤이라는 유튜버가 올린 영상에 따르면 해군 특수전 64-3기 교육생 41명이 입교하여 11명이 수료 했다고 한다.

이런 자료들을 통합하여 판단해 볼 때 수료율 평균40%미만은 사실로 판단되나 극악의 수료율을 보인 UDT 14기나 수료율이 폭증했던 2010~2012년 기간의 기수들도 또한 사실로 판단된다.
UDT교육은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 공군, 해병대, 외국군등 다양한 군인들이 위탁교육으로 입교하여 같이 교육이 이뤄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하여 수료율과 같은 사실들은 바로바로 전군으로 소문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구조적 특성상 UDT교육이 매우 혹독하지 않고 수월한 교육과정이라면 아마 국군내 다른 부대에서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UDT교육을 수료한 육군, 공군, 해병대의 군인들 또한 UDT교육 수료에 대해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UDT교육이 매우 혹독한 교육과정임에는 논란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여담으로 2021년 UDT/SEAL 지원자는 1800여명이었다고 전해지며 장교, 부사관, 병사 모두 합한 지원자인지 주력 전투원신분인 부사관계급 지원자들만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매 기수당 장교, 부사관, 병사 모두 합하여 120여명이 입교한다고 가정하였을때 수료가 아닌 입교까지의 경쟁률이 대략 13.3%정도 된다.[47]

6. 실전경험 및 대내외활동[편집]

부대창설 이후로 UDT/SEAL 요원들은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실전에 투입 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투입되고 있다.
정전이후 실전경험은 국군내 어느부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우방국 특수부대들과의 교류는 국군내 독보적인 위치이다.
파일:udt공작활동.jpg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가장많은 공작원들을 주고 받던 1960년대 중후반, 해군 북파공작의 주무부대 NIU의 작전요원은 전원 UDT였다.

6.1. 북파공작 (창설~7.4 남북 공동성명)[편집]

UDT는 과거 7.4 남북공동성명 이전까지 북파되어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는데 북파공작은 UDT에서 직접 수행하거나 NIU(해군 정보부대)로 전출되어 해군 정보부대의 지휘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였다. UDT 1기의 경우, 훈련의 마지막 관문이 실전 임무였다. [48]
훈련의 최종관문이 북파공작이었던 UDT 1기의 강OO
- UDT 1기 강OO -
193X년 경남 OO출생
6.25사변 당시, 학도경찰신분으로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 참전
1952년 경찰임용
1954년 해군 입대(해군 42기)
1955년 UDT 1기 수료
1958년 하사전역
- 전역 후 경찰 수사과, 정보과 등에서 20년 근무함
- 월남전 당시 중앙정보부 지휘로 3년 6개월간 월남에서 근무
- 경정 퇴직 후, 참전경우회장, 참전유공자기념사업회장 등 역임
- UDT 1기 훈련당시, 모든 과정이 혹독하고 힘들었지만 특히 지옥주 기간중 야간에 똥구덩이 속에 집어 넣고 손을 들고 있게 하였는데 구더기가 꾸물꾸물 얼굴로 기어올라와도 털어내지 못하도록 한 것이 너무 힘들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함
- 수료를 남겨두고 욕지도에서 시작하여 남해안, 서해안을 따라 백령도까지 해안정찰을 실시하였고 마지막으로 야간에 북한 황해도 용연군 해안에 침투하여 해안정찰을 실시하였다고 함
- 모든 훈련이 종료되고 진해로 복귀하기 전,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정긍모 중장이 인천으로 초대하여 직접 교관들과 교육생들을 치하 하였다고 함
본래 UDU라는 명칭은 NIU 해상정찰대에 배속된 UDT요원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1971년, 해군 첩보부대의 개편과(1971.5.5. 국방부령 제216호) 자체적인 특수요원양성을 시작하게 됨에따라 이때부터 해군 첩보부대를 UDU라고 통칭하게 된 것이다. 기원전 존재하던 조선과 1392년 건국된 조선이 이름만 같을뿐 다른 국가이듯 1971년까지 해군 정보부대로의 전출 이후 북파공작임무를 수행하던 UDU라 자칭하던 UDT들과 1971년부터 해군 정보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양성된 UDU는 해군 정보부대라는 상급부대만 같을뿐 다른 곳에서 양성된 인원들이다. 전자가 UDT에서 양성된 직후 또는 UDT에서 근무중 해군 정보부대로 인사발령난 인원들인 반면 후자는 1971년부터 해군 정보부대에서 UDT교관들을 전입 받아 자체적으로 훈련을 시켜 양성된 인원들이다.

6.1.1. 북파공작원[편집]

자세한 것은 북파공작원 문서 참조.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 중인 1952년부터 휴전 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다. 국군정보사령부에 따르면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뒤 남북이 공동으로 공작원 파견을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북파는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북파공작원들은 최초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있는 지리산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다.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임무였다.

이들은 인민군 복장을 위장 착용하고 육해공군의 보급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했고 미숫가루, 생식, 칡뿌리, 소나무껍질을 주식으로 했다. 임무수행 중 부상을 당했을 때는 자결이나 자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전에 투입돼 살아 돌아온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6.1.2. 해군첩보부대 해상정찰대(NIU UDU)[편집]

UDT가 부대창설 이후로 북파공작이 실행 되었던 시기인 정전 이후 ~ 7.4남북 공동성명까지의 기간동안[49] 해군 및 해상침투 북파공작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청해부대의 특수작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청해부대에 검문검색대라는 이름으로 UDT/SEAL 인원들을 보내듯 당시 해군측 북파공작을 담당하던 해군 첩보부대(NIU)내 특수작전을 실행 예하 부대인 해상정찰대에 소속된 UDT요원을 UDU라 불리웠는데 그들은 UDT 교육대에서 B-6(UDT요원 양성교육) 수료 직후 또는 UDT부대에서 실무생활 중 NIU로 인사발령이 나면 NIU소속 해상정찰대 UDU가 되는 형태였다.[50] UDT에서 해상정찰대로 넘어가게 되면 군번이 없어진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51] 군번이 없어지려면 '전역'이라는 행정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으며 해상정찰대 근무 후 UDT로 복귀 하는 인원이 민간인이었다면 다시 '재입대'라는 행정절차가 있어야 해상정찰대(UDU) 군번없다설, 민간인설이 사실 이겠지만 '전역'과 '재입대'라는 행정절차가 전혀 없었다. 단지 '인사발령'에 따라 근무지를 옮겼을 뿐이다.
문00상사는 수료와 동시에 해상정찰대에 인사이동되어 근무하였으며 후에 수중파괴대로 원대 복귀하여 작전요원, 교관 임무를 수행하였고 수중파괴대에서 상사로 예편하였다.
심지어 1970년 6월 5일 해상정찰대 소속으로 NLL에서 작전중 전사 및 납북된 인원들의 경우 추후 포로, 행불, 전사라는 행정절차를 거쳤으며 이는 공개된 사실이다.[52] 이러한 명백한 기록들을 볼 때 UDT들이 해상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파공작을 실행했던 이유는 해군측 북파공작 주무부서인 해군 첩보부대(NIU) 작전계통의 일원화와 인터넷과 같은 정보망이 없던 시절의 보안유지 차원이지, 해상정찰대가 비정규군이여서 제네바협약에 해당안되기 때문에 해상정찰대로 배속된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에 반하는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혀 보려던 시도의 일환으로 나온 엉뚱한 주장일 뿐이다.[53] NIU내 해상정찰대의 인원은 12~20명[54] 선이었는데 전역, 전사, 부상, 기타 등의 이유로 이 밑으로 떨어질때마다 UDT에서 해상정찰대(UDU)로 보충하는 형식이었다.[55] UDT 1기부터 16기까지 해군 수료생 332명중 126명이 해상정찰대로 인사발령이 났다.[56] UDU라는 명칭[57]의 유래 및 UDT대원들의 북파공작활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다.
UDT, UDU 부대장의 진술서
"첩보부대에서 북파공작시 희생된 전사자들 모두 UDT출신들 입니다" "1960년 UDU 전력강화를 위하여 UDT 6기는 수료자 전원이 첩보부대로 소속변경되었고 그후 70년대 초까지 UDT 작전요원들이 UDU의 훈련강화를 위한 교관요원 및 공작요원으로 전속된 인원도 000명 이나 됩니다"
수료와 동시에 수료생 전원이 해상정찰대로 발령이 났던 UDT 6기의 故 민O식 중사
UDT 10기 故 김O남 중사, UDT 8기 김O춘 중사
71년 UDT교관진이 통째로 해군 첩보부대로 발령이나 해군 첩보부대원들을 별도로 교육시키기 전까지 해군 내 북파를 위한 특수요원 양성교육은 UDT의 B-6가 유일했으며 또한 육군 첩보부대, 공군 첩보부대 등이 북파공작을 위한 해상침투의 전문성을 향상 시키기위해 UDT B-6를 위탁교육 받았다. 김신조 부대의 1.21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응징보복 목적으로 각 군마다 만든 부대들 중 하나인 해병대의 마니산까치부대(MIU) 역시 해군 UDT B-6 위탁교육을 받은 이들 위주로 창설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법이 통과 될 당시나 2010년 예비역단체의 보상요구 시위때 까지만해도 정치계, 상급기관들의 눈치를 보느라 UDT부대 내에서는 북파관련하여 현역들에게 입에도 담지 말 것을 명령할 정도로 의도적인 무시로 일관하였으나 몇년 전 부터는 부대내 역사관을 개설하고 북파공작중 전사한 인원들의 이름을 새기는등 스스로 그리고 타부대에 의해 왜곡되어진 자신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조금씩 전향적으로 나서는듯 하다.[58]

북파공작활동과 관련하여 2010년을 전후로 시작된 UDT/SEAL측의 움직임은 초요과시[59]하며 자신들에 대해 교묘히 조작하여 대중들에게 과대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분적이나마 공개되고 있는 기밀해제된 사료의 발굴을 통한 객관적 자료제시,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무너진 명예를 찾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를 위해, 사나이 답게 라는 미명하에 세월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인식하고 그리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자신들이 피를 흘려가며 세운 정전 후 시행된 해상 북파공작의 중추적인 공적을 자신들의 것이라 말을 하여도 아무도 믿지 않는 현실과 왜곡된 역사로인해 UDT가 누군가의 하위부류로 조롱까지 당하기에 이르렀고[60]이러한 심각성으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한다.[61][62]
UDT/SEAL 역사기록
1968년 6월23일 북한 서해 부O항에 정박중인 상류수송선 L.C.U. 납치 및 군관 납치 공작임무를 수행하였으나, 공작자선 노출로 쌍방교전이
발생하여 납치공작자선 1척이 피격되었고 납치조
UDT 6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9명만이
연평도로 귀환함.

-전사: UDT 6기 강명복,UDT6기 이만석,
UDT10기 김기남,UDT10기 정종화,
UDT11기 이 성,UDT13기 최종석
-----
-귀환: UDT9기 김선수,UDT4기 조기운,
UDT8기 김영춘,UDT10기 박진호
UDT13기 최형수,UDT13기 권오근
UDU1차 박정열,UDT6기 채철석,
해군 지원요원: 조용두

6.1.3. UDU가 UDT의 정예집단인가?[편집]

항간에는 UDU가 UDT의 정예집단이라는 낭설이 있다. 그 낭설의 근거에 대해 확인을 확인해보자.
1.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이고 Unit은 한 개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Team으로 움직이는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보다 정예이다. 라는 주장.
이야 말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모든 특수부대는 기본적으로 팀으로 움직이며 그렇게 편제되어 있으며 UDU 또한 예외 없다. 또한 Unit에 대해 사전을 찾아보면 Unit의 군사적 의미는 특정 임무를 위한 부대라 되어 있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처럼 어떤 한 개인이나 병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UDU를 제외하고 부대명에 Unit를 사용하는 부대는 SSU(해난구조대)와 SOU(경찰특공대) 등이 있다.

2. UDT에서 UDU로 인사발령이 나기 때문에 UDU가 UDT보다 정예집단이다. 라는 주장.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1년 부터 UDU라 공식적으로 명명된 지금의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에 UDT대원이 선발되어 인사발령 나지 않는다. UDU대원들이 자체적으로 양성되기 전, UDT대원들 일부가(대략 3분의 1)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의 전신 해군첩보부대 해상정찰대에 인사발령 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게 뭐가 달라? 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이는 엄연히 다르다.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UDU)의 전신 해상정찰대는 자체적인 특수요원 양성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래서 해군은 UDT에서 막 수료한 인원이나[63] UDT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원중 일부(약 1/3) 해상정찰대로 배속 시켰고[64] 그 배속된 인원들이 해군 첩보부대(NIU)와 구별되고자 스스로 UDU라 칭했다.[65] 17기부터는 교육과정이 분리되면서 인사교류 또한 현격하게 줄었다. 분리된 교육과정을 받고 UDT, UDU에서 생활 중 UDU로 가거나 UDT로 간 사례가 있으나 극히 적다. 70년대 들어서 남북화해 분위기로 인하여 상호간 무장공작원 파견이 급격히 줄었고 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으로 인하여 북파공작이 중단되었다.

즉, 북파공작이 수행되던 시절의 해상정찰대(UDU) 작전요원은 해군 첩보부대라는 북파공작 주무부대에 배속된 UDT교육을 받은 인원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해군 첩보부대에 자체적인 특수요원 양성프로그램이 존재 했고 자체양성된 해상정찰대 대원들과 선발과정[66]을 통해 선발된 UDT 인원들이 같이 해상정찰대 생활을 했다거나 혹은 현재 예전처럼 UDT 한 곳에서 UDT, UDU같이 교육 시키고 20명이 수료하면 1등에서 10등 까지는 정보사 해상특임부대(UDU) 11등에서 20등까지는 UDT로 배속되는 구조라면 부대 계보상 해상정찰대의 명맥을 잇는 지금의 UDU(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가 UDT보다 정예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상정찰대 작전요원들은 해군 첩보부대(NIU)소속의 UDT교육을 받은 인원들[67]이었을 뿐이고 교육성적이 좋거나 수료를 한 인원들만 해상정찰대에 간 것이 아니다.

NIU에 배속되어 NIU 소속이지만 NIU와 다른 정체성과 자부심이 있었던 그들이 NIU와 UDT를 합쳐 UDU라 스스로 명명한 것이라는 해상정찰대에 근무했던 UDT(해상정찰대 UDU)의 진술이 있다. 당시 해상정찰대로 간 인원들과 안가고 본대에 남은 인원들간 엘리트 시시비비 문제는 어디까지나 당시 UDT 교육을 이수한 자들간의 내부 사정이지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1971년부터 UDT 교관들을 통해 자체 양성된 지금의 정보사 해상특임부대(UDU)가 UDT의 정예집단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68] 또한 UDT에서 해상정찰대로 갔던 인원들이 UDT 교육 성적이 좋았던 인원들이였거나 UDT내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는 인원들만 간 것이 아니라는 당시 복무자들의 진술 또한 존재한다.

6.2. 베트남전 참전[편집]

1965년 한국 해군수송전대인 '백구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함정의 안전을 위해 수중암초 및 수중장애물 제거, 수색 등 해군 수송 지원임무를 수행했다.
해상 수송작전과 더불어 함정마다 승조한 특수부대(UDT) 대원들은 안전항해에 필수적인 장애물의 제거 작전을 수행하였고 주월미군사령부의 특수부대(SEAL Team)와 연합으로 전개한 민족해방전선의 벙커에 대한 파괴작전을 비롯하여 폭발물처리반(EOD)의 수중탐색 작전과 부비트랩 제거 작전을 수행하였다.[69] 또한 백구부대 소속의 UDT인원들은 메콩 델타 수색작전에도 참여하였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UDT 9기 어르신에 따르면 미국 SEAL팀, 월남 UDT와 연합 매복작전 등을 수행했다고 한다.

6.3. NLL에서의 대북작전[편집]

그간 전방 함대에 파견되어있는 UDT/SEAL 부대들은 단순히 함대의 작전을 보조하거나 단순히 함정전력을 제외한 함대의 육상전투력 및 경비 차원의 파견으로만 알려져 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근래들어 언론의 취재와 국방부의 공개로 그들의 파견목적이 무엇인지 공개되었다. 전방 파견부대들의 작전은 정부가 공개를 하지 않으며[70] 피치못하게 상대방측(윗동네)에서 공개하는 바람에 공개되는 경우, 언론사에 우연히 포착되어 공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언론에 일일히 공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NLL을 월선하는 북한의 군, 민간 선박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71] 이에 대한 1차적 대응은 아측 해군 함정이 경고방송, 경고사격 등을 실시하여 NLL 이북으로 퇴거조치하며 이에 불응하거나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UDT요원들이 직접 VBSS작전[72]을 한다고 한다. 접적해역에서 UDT요원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신원미상의 사람을 참교육했다는 카더라는 해군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 봤을 수도 있는데 이는 카더라가 아니라 실제다.[73][74]전방함대 장병들과 함께 접적해역에서 대한민국 안보를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작전하고 있다. 통계 참고.
사건과 무관하게 국회 예결위에 참석한 청와대 관계자가 JSA 장교로 부터 받은 문자를 보던중 언론사 기자에게 딱 포착되어 사건의 내막이 공개 되었다.
육상에 DMZ가 있다면 해상에는 NLL이 있다. 동영상 초반부에 나오는 상황은 충돌상황이 아닌 귀순의도를 가지고 남하한 경우이며 당시 상황을 북한 보위부 출신인 귀순자의 입장에서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6.4. 청해부대 검문검색대[편집]

2020년 02월 16일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이 청해부대를 방문하였으며 2020년 02월 01일 있었던 이란선박구조에 관해 격려했다고 한다.
청해부대 30진 검문검색대 대원들이 이탈리아, 스페인 해군과 연합훈련 후 찍은 사진이다.
2018년 리비아에서 한국인이 억류되는 리비아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아덴만에서 대기하고 있던 청해부대 소속의 문무대왕함이 그리스크레타 섬 인근으로 급파되었다. 허나 다행히 인질들이 무사히 석방되며 투입되지는 않았다.

6.4.1. 아덴만 해역 파병[편집]

2009년 3월 3일 국회에서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병 동의안'의 가결로 창설된 청해부대에 소속되어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하고 있다. 청해부대 UDT/SEAL의 공식명칭은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검문검색대'이다.[75] 소말리아에 파병된 청해부대 소속 UDT 대원들은 이번까지 15차례에 걸쳐 선원을 구조하며 해적퇴치 임무를 완수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대테러 작전중 가장 어렵다는 선상작전이나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세계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해군특수전전단에 대해 관심을 갖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해부대 일원으로 파병임무를 수행해본 해군이라면 알텐데 청해부대 내에서는 보통 '검색대' 라고 통칭된다.

청해부대 검문검색대의 잘 알려진 작전으로는 아덴만 여명 작전, 한진텐진호 구출작전, 제미니호 작전 등이 있다.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촬영 영상[76]

6.4.2. 호르무즈 해역 파병[편집]

청해부대 31진부터 작전구역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했다.

6.5. UAE 파병[편집]

2020년 2월 공개자료, 헬기침투 훈련 중인 아크부대 해상작전대(UDT/SEAL) 대원들
2012년 4월 22일, 헬기침투 훈련 중인 아크부대 소속의 UDT/SEAL 대원들
UAE 군사훈련협력단의 일원으로 UAE 특수부대를 교육시키기 위해 파견되었다. 아크부대 해상작전대 소속으로 육군특수전사령부 대원들과 함께 UAE에 파견되어 현지의 수많은 해외 특수부대와 교류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VIP 경호, 중동 교민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UAE가 침략을 받으면 전투 및 각종 군사활동에 개입하는 협정을 맺은것으로 밝혀졌다. UAE와 비밀군사협정.

자세한 것은 UAE 군사훈련협력단 문서 참조

6.6. 그 외[편집]


1983년 부산 다대포 해안에 침투하는 간첩선 탐색, 1993년 서해페리호 여객선 구조, 2002년 한일 월드컵때 발생한 제2연평해전참수리 357호정 인양시 폭발물 탐색, 1996년과 1998년 강릉 및 속초 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잠수함 내부 수색작전 등을 처리했다.
소말리아에 파병된 청해부대 소속 UDT 대원들은 이번까지 15차례에 걸쳐 선원을 구조하며 해적퇴치 임무를 완수했다. 2001~2003년에는 동티모르에 파병되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도 파병되었다. 이밖에 미국의 항구적 자유작전에서 해군 대테러 임무와 2004년 한국군 이라크 파병시 해군수송지원단, 2005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발생당시 해군 물자수송부대 호송임무도 수행했다.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에 참여하여 인질 전원을 사망없이 구출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실전의 대성공은 대외적으로 인지도를 대폭 상승시키는 전환점을 맞았다.

6.6.1. 연합 훈련[편집]

UDT/SEAL은 국군 내에서 독보적인 수준으로 우방국 선진 특수부대와의 교류 및 연합훈련을 하며, 이를 통한 최신 전술 및 장비, 노하우를 업데이트하여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UDT/SEAL 대원들은 아래에 서술된 림팩 이외에도 잡힌 수많은 연합 및 교류 훈련 일정을 매년 소화해내고 있으며, 대원 개개인의 최정예화와 부대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림팩 훈련의 2014년도 훈련 영상. 7월 10일 하와이 벨로우즈 미 공군기지에서 공중 강습 시나리오에 맞춰 미 해병대 특수작전팀과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이 연합작전 수행했다.


2016년 림팩에서 미국의 그린베레, SEAL과 연합훈련 중인 UDT/SEAL
707특수임무단과 러시아 특수부대와 연합 훈련 후 촬영한 기념사진
UDT/SEAL이 참가한 Clear Horizon 2016 훈련 (진해에서 실시한 기뢰제거 연합훈련)
참가국

한국 해군 UDT/SEAL, 캐나다 해군 Fleet Diving Unit (Pacific),영국 해군 Mine Clearance Diver

미국 해군 USS Warrior (MCM 14)
Helicopter Mine Countermeasures Squadron 14
Mine Countermeasures Squadron 7
그리고
Navy EOD 그룹 1 소속
Navy Explosive Ordnance Disposal Unit 5

이외에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해군 기뢰제거부대도 참여.
경호작전 지원을 나가다 보면 이런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77]
2009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특수전여단(UDT) 대원을 파견한 이후 해마다 고무보트 운용과 잠수 능력을 갖춘 UDT나 SSU 대원을 세종과학기지 월동대원으로 파견하고 있다. 참고

7. 장비[편집]

해군 특수전전단은 특수작전 장비 분야에 있어서 국내의 어느 부대, 기관보다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일례로 CIRAS를 도입하여 방탄복 타입을 플레이트 캐리어로 가장 먼저 전환하였으며 9mm화기에서 5.56mm화기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대테러화기 추세에 따라 5.56mm화기인 HK-416을 도입하고 멀티캠을 도입하는 등 국내 어느 부대, 기관보다 최소 몇년은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몇년전에는 4안 야시경인 GPNVG-18[78] 을 도입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 일선 특수부대에서 무게에 따른 작전요원 피로도와 잔고장 등으로 GPNVG-18을 도태시키기 시작하자 즉각 반응하여 도입하려던 계획을 보류해 버린 일화가 전해지는데 결국 2020년에 도입하기는 했다. 장비 선택의 자유 또한 넓게 주어진 부대이다. 청해부대 소속 대원들에게는 개인 병기로 K1A이나 K2 소총같은 국군 제식 화기가 아닌 독일제 돌격소총인 H&K HK416이 지급되기도 했고, [79] 언론 보도에도 심심치 않게 멀티캠 위장 패턴으로 장비를 맞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SEAL과 정기적으로 교류가 잦은 편인 데다 데브그루와도 교류하고 [80] 청해부대 파병 이후에는 타국 특수부대와 [81]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런지 신형장비나 전술의 피드백이 빠른 축에 속한다. 1990년대 중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군 BDU 전투복에 ITLBV 베스트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였을 정도다. 요 몇 년 들어서는 소말리아 청해부대 파견 이후로 UDT/SEAL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고, 특히 청해부대는 서방 특수부대 느낌이 날 정도로 럭셔리한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UDT출신의 한 예비역에 따르면 2011년 여름, 전지훈련을 가기위해 중간기착지인 평택 2함대에 머무르며 재정비 하고 있을 때인데 모 특수부대 관계자가 찾아와서 장비사진을 찍어가도 되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UDT관계자가 이유를 묻자, UDT나 707처럼 장비보급이 잘 이뤄지지 않아 사진을 찍어 상부에 소요제기를 하려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farm8.staticflickr.com/7368110994_346967f4ec_z.jpg
청해부대 파견 기간 중 프랑스
해군 코만도와 연합훈련 중인 사진. [82]
UAE에 파견된 아크부대 3진 해상작전대로 파견된 UDT/SEAL 대원들.[83]
파일:external/www.koreadefence.net/1295677920-56.jpg
파일:HK416.png
아덴만 여명 작전중 모습. 탄창의 크기를 보면 대부분 H&K MP5를 사용하는 듯 하지만, HK416처럼 보이는 총기를 사용하는 대원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후 2015년 공개된 당시 작전 영상에서 HK416 임이 확인되었다.
파일:xw5eq02.jpg
최신 장비로 무장한 UDT/SEAL 대원들
장비를 살펴보면 멀티캠 전투복과 옵스코어 사의 FAST 헬멧, LBT-6094 RS으로 무장하고 H&K HK416 소총에 도트사이트 등 각종 악세사리를 부착해 사용 중이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5040814264516915.jpg
사격 훈련 중인 아크부대 UDT/SEAL 대원들. 멀티캠 패턴을 입힌 옵스코어 FAST 헬멧에 멀티캠 컴뱃셔츠와 LBT-6094B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K1A 기관단총에 각종 장비를 부착했다.

7.1. 복제[편집]

해군 특수전전단의 다양한 작전복들
멀티캠 패턴 전투복, 수중침투복, 길리슈트, 대테러복 등 임무와 작전환경에 따라 다양한 복장을 운용한다.
파일:external/www.vietnamgear.com/Imagevwr.aspx?img=JungJktP2Front.jpg
올리브 드랩 단색 전투복
레오파드 패턴 전투복
해마복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0040206790001300_P2.jpg
얼룩 베레모와 구형 국군 통합 우드랜드 전투복
회색 베레모와 신형 국군통합 디지털 픽셀 전투복
해마복과 우드랜드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50226035542_1.jpg
UDT/SEAL 전용 디지털 픽셀 전투복
전투복의 위장무늬는 올리브 드랩 단색→레오파드 패턴→리프패턴 유사 패턴(해마복)→국군 통합 우드랜드 패턴→국군 통합 화강암 디지털 픽셀 패턴→UDT/SEAL 전용 디지털 픽셀 패턴으로 변화를 거쳤다. 디자인은 위장무늬 도입시부터 상의 4포켓 방식이다.
파일:attachment/해군 특수전전단/기수단.jpg
파일:external/728c4d1cd61e81ccd0eb9eb661c8b61b1738c23a1e1a0dee7397d518c5c0f267.jpg
2013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UDT/SEAL 기수단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때 신형 전투복과 팔각모를 착용한 UDT/SEAL 전단장
2013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 UDT/SEAL 기수단이 미 해군에게 지급되는 NWU 3형[84] 위장복과 유사한 패턴의 신형 위장복을 입고 나타나서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특전사의 신형 특전복처럼 UDT/SEAL 전용 전투복으로 새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착용 중인 국군 통합 도트무늬 전투복과 멀티캠 전투복을 이것으로 통일하여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단, 특수전전단 대원 전원이 입지는 않고 일부는 그대로 통합 전투복을 입는다. 차이점으로는 왼팔 상박에 부대마크가 부착되어있다. 2015년 기준으로는 정식 지급이 완료된 듯하다.

모자는 경우에 따라 팔각모, 베레모, 체육모, 부니햇 등을 혼용한다. 베레모의 경우 육군 기갑부대의 얼룩 베레와 유사한 스타일의 얼룩 베레모를 착용했었으나, 해군 특수전 전단으로 개편 이후 현재의 회색 베레모로 바뀌었다. 준사관부터 모장 위에 철제 계급장을 부착하는데, 육군 및 해병대와 달리 개리슨 모에 부착하는 작은 크기의 철제 모장을 부착한다. 또한 병들이 사용하는 포제 약장의 크기가 일반적인 것보다 크기가 작다.

매체에 등장한 사진을 보면 복장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은데 대원 취향에 따라 미군 BDU, 구형 사제 위장복, 멀티캠 전투복 등을 구매하여 활동복으로 착용한다. 저 남쪽 진해에 있는 워낙 소수 인원의 부대라서 고루한 군 수뇌부들의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군 수뇌부 대부분이 UDT/SEAL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굳이 관심도 안 가지기 때문에 태클 걸 높은 꼰대가 딱히 없는 게 그런 자유로움이 가능한 이유다. 해군 내부에서도, UDT/SEAL을 제외한 일반 해군은 모두 배에서만 근무하는 수병이자 기술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전투보병부대적인 성격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론 육상 전투부대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UDT/SEAL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이어서,[85] 해군 수뇌부에서 UDT/SEAL 복무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장성들은 UDT/SEAL 너희들은 우리와는 사실상 별개니까 그냥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며 터치를 안 한다. 뭘 알아야지 터치를 하든가 말든가 할 텐데, 자기들의 일반 해군과는 분야 자체가 전혀 달라서 육지에서 소총 쏘는 전투부대 방면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 간섭하거나 왈가왈부할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86] 이렇게 관여와 단속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심지어 UDT/SEAL 내부에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입어야 맞는지 그런 규정도 잘 모를 정도로 규정이란 것 자체에 무신경해진 분위기다.
2020.08.19. 해군 1함대 3특전대대와 동해해경청 특공대간의 합동 대테러훈련 사진이다. 과감하게 소매가 컷팅된 UDT/SEAL대원이 눈에 띈다. UDT/SEAL 대원들이 보급 받는 CRYE PRECISION 社의 멀티캠 패턴 군복 상의의 경우 공식사이트 기준 240~286$ 선이다.

이 때문에 해군 특수전전단 내부에서는 남북 통일보다 UDT 군복 통일이 더 어렵다는 유머가 존재한다고 한다.

즉, 저 남쪽 끝에 있는 소수 인원의 부대라서 눈에 잘 안 띄는 데다가, 형식상 해군 소속이면서도 다른 해군과는 전혀 이질적인 소총 전투부대 성격의 부대라서, 군 수뇌부의 누구도 굳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며 관여하려 하지 않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 탓에 한국군의 경직된 규율 감시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게 가능한 자유방임형 부대라고 할 수 있다.

부대원들 또한 '자유로움'에 대해 강박스러울 정도이다. 행사 시가 아닌 평상시 오와 열을 맞추고 발을 맞춰 간다는 것을 수치로 받아들일 정도다. 단적인 예로 수료하고 올라온 후배들이 밥 먹으러 갈 때 '자유스럽지 않은 형태'로 이동을 하면 일부러 흩트려 놓을 정도다. 그런 부대의 분위기는 작전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임무수행 간 발생하는 돌발상황을 타개하는 대처능력은 규정으로 가득 찬 경직된 사고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87] 하지만 부대를 관리해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는 영관급 이상의 장교들에게서는 이러한 특성이 부대 밖, 군 수뇌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부정적으로 비칠 우려 때문에 부담으로 느끼기에 (물론 안 그런 지휘관도 있고)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부대원들에겐 이를 대응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실전 많은 미국 Navy SEAL은 안 그러는데 우리는 이런 거 가지고 트집이냐?'라는 파훼법이다. 그리고 부대 내 미국 Navy SEAL 대원들이 자주 돌아다니고 있고 미국으로 유학 다녀온 인원들이 강하게 주장하면 잘 먹힌다. UDT/SEAL이라고 한국군의 경직된 군 문화 굴레에서 모두 다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대원들의 이러한 노력과 설득 그리고 그것들이 합당하다면 최대한 존중하고 허용하려는 지휘관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부대문화로 인하여 새로운 전술, 장비, 복제 도입시 다른 군, 기관들보다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속이 해군이므로 모두가 동, 하정복근무복, 해군용 화강암 무늬 전투복, UDT/SEAL 픽셀 전투복 등을 사물함에 갖추고는 있지만 입을 일이 많지 않다. 특전병의 경우 해상병 전투복이 미지급되고 해군용 화강암 무늬 전투복, UDT/SEAL 픽셀 전투복중 하나가 대체 지급된다.
파일:external/www.milidom.net/defef15e5d9b0ff22c582f649cb889cc.jpg
멀티캠 컴뱃셔츠를 착용한 아크부대원
외국 특수부대처럼 멀티캠을 착용해 밀리터리 매니아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7.2. 병기[88][편집]

파일:external/www.funasia.co/3530211967_pLubylcG_udt_seal_12.jpg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9066150248_d2b8b02620_b.jpg
아덴만 여명 작전 1주기 기념행사의 UDT/SEAL 대원.
이스라엘제 MARS 레이저 통합형 도트사이트를 결합해 운용중이다.
청해부대 13진 대원의 모습.
이스라엘제 야간투시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옵스코어 FAST 헬멧에 달린 야간투시경 마운트가 흔히들 아는 방식이 아닌 이스라엘제로 바뀐 모습과, 장비중인 H&K HK416의 도트사이트로 MARS에 추가로 AN/PEQ-15A 표적지시기를 장착하고 있는 모습에 주의. 일루미네이터 기능을 위해 따로 장착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옵스코어 FAST 방탄 헬멧을 착용하고 HK416 소총을 사격중인 청해부대원의 모습.
여기서도 MARS 도트사이트가 결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external/b1fb55545cf878b4c5748531a4627e49c0d0a773448991c2498d9f96e9ab293a.jpg
2018년 2월경 3특전대대에서 HK416을 운용중인 모습이 확인되었다.
2015년 11월경 도입이 확인된 SCAR-L 소총

자동화기로는 국군제식인 K1A, K2, K3 등 K계열 총기류들을 주로 사용하고 MP5 기관단총이나 HK416, SCAR-L 돌격소총 같은 외국산 총기들도 부대에 따라 운용중에 있다.
청해부대 파병 초기에는 K1A에 M4 카빈 스타일의 개머리판과 RAS를 조합하고 각종 광학장비를 장착해서 운용했으나, 설계상의 한계로 SS109 계열 5.56mm 탄약[89]의 운용이 제한되는 점 때문인지 현재는 H&K HK416을 운용하고 있으며, 해당 소병기의 도입은 1회성에 끝나지 않고 2013년 6월 국군 플리커를 통해 공개된 사진을 보면 최신형인 HK416A5가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기존 HK416에 A5용 개머리판을 끼운 것으로 HK416A5는 도입하지 않았다. KBS의 UDT/SEAL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한 점을 미루어 볼때 청해부대에서만 운용되는 병기는 아닌 것이 확인됐고 실제로도 특정부대만이 아닌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다.[90] 2015년에는 707 특임대에 이어 FN SCAR를 도입한 것이 공개되었다. 대테러 특수임무대나 청해부대의 경우 MP5 계열 기관단총을 주로 운용하나 MP5 계열의 9mm탄 사용에서 탈피하는 전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는듯 하다. 냉전 종식 이후 구 소련제 방탄복들이 헐값에 대거 민간시장에 풀리면서 테러리스트들의 방탄복 착용사례 또한 늘어남에 따라 과거처럼 인질구출작전 부분에서 MP5를 위시한 기관단총들이 독보적인 입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시못할 위력을 가진데다가, 소음 기관단총 등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소음기를 장착한 소총들보다는 소음효과가 한수 위인 점 등으로 인해 기관단총도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야간투시경 같은경우에도 타 특수부대에 비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파일:external/www.funasia.co/3530211967_pLubylcG_udt_seal_12.jpg
2010년대 초에는 PVS-04K를 사용해왔으나
파일:UDTMINI N SEAS.jpg
2010년대 중후반에는 유튜브 영상으로 통해 MINI/N SEAS 야간투시경을 사용하는게 확인이 되었고
파일:UDT GPNVG-18.jpg
2020년 10월 12일~15일 해양경찰특공대와 합동으로 실시한 대테러훈련
UDT에서 4안식 야시경인 GPNVG-18도 운용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2016년 4월 이순진 합참의장의 UDT/SEAL 방문 당시 장비점검 사진. LRT-3 및 TRG M10 저격소총이 확인된다.


저격총의 경우에는 M700 AICS[91], AW 계열, KAC SR-25 등을 운용중이며, LRT-3[92] 같은 대물저격총도 운용중에 있다. 2016년경에는 신형 저격소총으로 TRG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 SAKO 사의 최신 개량형인 TRG M10 저격소총이 도입된 것이 확인되었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40106085709.jpg
M1897 산탄총을 사용중인 예전 UDT/SEAL 대원들의 모습
윈체스터 M-12 산탄총을 들고, 해마복을 입고 있다
산탄총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2차대전의 유물인 M-12 산탄총도 목격되는 등 안습 그 자체였으나 최근 공개된 사진을 보면 레밍턴 M-870 MCS같은 괜찮은 산탄총들도 운용중임이 확인되었다.
파일:external/c7.staticflickr.com/8404330990_15a1020bb1_z.jpg
2013년 1월 공개된 훈련 사진. 글록을 장비하고 있다.

권총의 경우 글록을 운용중에 있으며 청해부대 다큐멘터리에서 SIG P226도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밀코 M32 6연장 유탄발사기 등을 운용중이다.

대물 저격총인 바렛 M107A1을 소음기와 함께 운용한것이 확인됐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60518195421_1.jpg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60518195421_2.jpg
2016년 5월에 브루나이싱가포르 일대에서 실시된 14개 국가 참여 해양 대테러 국제연합훈련에서 한국의 육군 특전사 707특임대와 해군특수전전단의 대테러특임대원들이 합동팀을 이루어 참가했다. 그런데 그 훈련 사진들에서 특전사와 UDT 대원들이 FN P90을 쓰는 모습이 공개되어 군사무기 매니아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잠시 있었지만, 싱가포르군이 빌려준 것으로 드러나 잠잠해졌다.


다산기공이 UAE(아랍에미리트) 카라칼 사로부터 CAR816의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에서 수리가 가능한 점과 총기의 부품수급이 쉽다는 점, 또 HK416과 SIG516의 버그를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며 해군 특수전전단 쪽에 홍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7년 2월 밀리돔의 한 유저가 다산기공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해군 특수전전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채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파일:33336018_2010561575652252_4305626343971749888_n.jpg
2018년 5월 국방홍보원 페이스북에 공개된 UDT 특임대 모습으로, 양 끝의 2명은 H&K HK416으로 무장했지만 가운데의 5명은 SIG사의 SIG516으로 무장한 것이 보인다.

2018년 말 다산기공과 CAR-816 60여정을 계약했다고 한다.

한편 국산 K1A도 개량을 거쳐 K100탄의 효과적 운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활용폭이 커질것으로 보인다.


[청해부대 UDT/SEAL 요원의 무사트 나이프 방어술]

8. 해군 특전부사관(UDT) 준비[편집]

8.1. 해군 특전부사관(UDT) 필기와 실기[편집]

필기의 경우 과목별 과락만 넘기면 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단 영어는 실시하지 않는다.[93][94]

피지컬갤러리 등 유튜브 매체로 인하여, 이번 해군 271기 특전계열의 경쟁률이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2020년 11월 7일 치른 필기시험에서, 특전 지원자들이 엄청나게 몰렸다는 후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기 일정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테크1의 경우 실기가 1월 초에 실시된다.[95]

테크2의 경우 실기가 4월 초에 실시된다.[96]

테크3의 경우 실기가 7월 초에 실시된다.[97]

단, 테크3 교육일정의 경우 64차(2018년 해군 특수전 차수)를 기점으로 이후에는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98]

실기 진행순서는 요일별로 다르다.[99]

1. 지상종목 측정 후 수영종목 측정
2. 수영종목 측정 후 지상종목 측정
1, 2 방식 정해진 게 없으므로 둘 다 준비하는 걸 권장한다.
  • 지상종목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100][101] 3km 달리기.[102]
지상종목 측정 참고영상
  • 수영종목
1. 자유형 200m 시간제한 없음, 평영 200m 시간제한 없음, 입영 5분.
2. 자유형 200m 제한시간 5분, 평영 200m 제한시간 5분, 입영 3분.
2의 경우, 263기(65-1차) 후보생 대상자 실기검정시 새롭게 실시되었다.[103] 차후(66차부터)에 2로 될 지, 1로 될 지는 알 수 없으니 둘 다 준비하는 걸 권장한다.

수영종목 측정의 경우, 자유형→평영→입영 순으로 실시된다.
대개 5명이 1조를 이루고 측정을 받는다. 해당일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개조~4개조[104]로 이루어진다.

측정순서의 경우,

1. 자유형 측정 후 휴식 없이 평영 측정
2. 조별 자유형 측정 후, 다시 조별 평영 측정.
1, 2 방식 정해진 게 없다. 차수마다 다르므로 둘 다 준비하는 걸 권장한다.

입영의 경우 평영킥과 로터리킥을 사용할 수 있다. 양손 스컬링을 쓸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입영시 목 부근이 잠기면 퇴수당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한다.

실기에서 유의할 점은 22:00 이후로 공복이란 점이다.
지원자의 경우, 대개 실기 전날 방을 잡고 저녁을 먹은 후 공복인 상태가 된다. 다음날을 위해 소화가 빠른 간식류를 소량 챙기기를 매우 강력히 추천한다.

다음 날, 특수신검을 마치게 되면 보통 12시 쯤이 된다. 일정에 따라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 날도 있다.

따라서 실기검정이 진행될 때는 대개 14시간에서 16시간까지 굶은 상태가 된다.

본인의 기존 기록에 비해 저조한 점수대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8.2. 해군 특전부사관(UDT) 후보생 합격점수대[편집]

차수별 진행방향과 기수별 지원자 점수대에 따라 다르지만,
2018년(해군 특수전 초급반 64차) 지원자의 경우, 60점대 초반도 합격해 입영했다.
2019년(해군 특수전 초급반 65차) 지원자의 경우, 70점대 초반이 예비 1번을 받기도 했다.[105]

8.3. 해군 특전부사관(UDT) 체력 권장사항[편집]

최소기준은 평균 70점대이겠으나 권장기준은 3km 뜀걸음 11분~12분(평균 시속 16.4~15km), 5km 뜀걸음 20분, 윗몸일으키기 2분에 100+개, 푸시업 2분에 100+개, 데드행 턱걸이 20+개, 자유형 1km, 평영 1km, 입영 15분(로터리킥만 사용), 잠영 50m, 스킨다이빙 5m이다.

단, 이 기준은 어디까지나 최소요구조건 같은 느낌이다. 근력도 중요하지만 코어의 힘과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고.
아래 기준은 미 SEAL 자원의 체력심사에서 이상적인 기준으로 꼽는다.[106]
  • 미 SEAL 지원자의 SCREENING TEST 권장기준

평영/전투 횡영 450M 9:00 이하(대부분 전투횡영을 위주로 한다), 2.4km 9:30초 이하(평균 시속 15.2Km) 팔굽혀펴기 2분 90회 이상 (맨땅), 군 측정용 윗몸 일으키기(컬 업) 2분 90회 이상, 데드행 턱걸이 18회 이상[107]

UDT 교육은 보통 군대처럼 모두 어떻게든 끌고가는 양성교육이 아닌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기 위해 떨어트리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혹독하게 몰아가며 또한 의지로도 버틸 수 없는 체온과 배고픔 문제까지 겪기 때문에 때문에 몸으로는 절대 퇴교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조차도 퇴교하기 부지기수라고 한다. 거기에 더해 훈련 기간 내내 교관과 팀원간 상호 평가가 계속 진행되어 원치 않더라도 퇴교 당할 수 있다. 평가는 육체적인 부분에 국한하지 않고 정신적인 부분도 고려한다고 하는데 극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인원도 가급적 걸러내고자 한다는 듯.[108] 즉 처음부터 평균보다 뛰어난 인재를 찾는다는 말이다.

금전, 시간이 빠듯하다면 1.평영/입영 2.턱걸이 3.구보 4.잠영 5.스킨다이빙에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하는게 좋다.[109]

9. 특전병[편집]

부대의 행정 및 작업을 맡는 육군 특전병[110]과는 달리, 해군 특전병은 훈련을 받고 실제 작전팀에 편제된다. 원칙적으로 본진인 진해 부대의 경우 작전팀에 배속되지 않는다.[111] 전방 파견부대에 올라와야 팀에 배속이 될 수 있는데 파견부대이지만 운이 좋으면 실전 경험과 해양경찰특공대와 같이 하는 합동훈련 및 유관기관, 함대 주관 대테러 훈련이나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 훈련에도 참가할 수도 있다. 특전병이라 할지라도 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수료 직후 특전사 또는 해병대의 기본공수과정에 위탁 보내지며 실무 생활 시 기본적인 헬기 패스트로프,[112] VBSS 정도의 훈련은 받는다. 복무기간은 다른 현역 수병들과 동일하게 20개월이며, 월급은 일반 병의 월급과 특전 수당이 합쳐져서 지급된다.[113] 복무 만료자는 '경찰특공대해양경찰특공대(전술요원, 잠수분야)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복무기간 때문에 부사관으로 임관해서 18개월을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육군 쪽 병들과는 달리 해군 특전병은 복무기간이 20개월이라 병으로 전역해도 응시자격이 된다.

특전병이 부사관으로써 계속 복무를 하고 싶다면 기존에는 병에서 하사로 신분전환을 해야 해서 사실상 재입대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당연히 지옥주가 포함된 기본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 임기제 부사관이 전 직별에 개방되어 운용되고, 몇 가지 개정을 거침에 따라, 특전병이 장기복무를 하고 싶다면 임기제 부사관을 3년 이상을 신청한 뒤 본인 의사로 초급반을 이수하거나, 임기제 부사관 6개월 이상 복무 중에 단기 전환을 통해 초급반을 이수하면 장기복무에 지원할 수 있다. 즉 기본과정(일반학)과 기본공수는 이미 수료했으므로 지옥주 이후의 초급반 과정(18주)만 밟으면 되는 셈이다.

1년에 1번 정도[114] 모집을 받아서 수십 명을 선발한다. 선발 취소나 귀가 등을 감안해서 선발 인원은 계획인원보다 약간 많은 편이다. 신체조건은 부사관과 동일한 것을 요구하고 특수 신체검사도 받아야 한다. 수영 실력은 필수다. 그리고, 거주지 인근 해군 부대나 병무청에서 면접을 보는 일반병·기술병들과 달리 심해잠수병과 함께 진해에서 면접과 체력 검정을 하기 때문에 타지 거주자들은 진해로 내려와야 한다.

일반 해군 신병들과 동일한 해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해군사관학교 옆에 위치한 특수전전단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교육 기간은 부사관의 절반으로, 교육 중 탈락 혹은 자의로 퇴교하면 병종이 재분류되어 가까운 후반기 교육 차수에 들어가게 된다. 병종 재분류 뒤엔 군사경찰 등으로 가지 않는 한 해상병 전투복 (샘브레이, 당가리) 등도 다시 지급된다. 과거에는 지옥주를 지나 탈락한 인원은 일단 훈련은 전부 열외 하는 대신 전단 교육대에서 각종 작업원으로 쓰다 특전병으로 수료시키고, 전단 및 예하부대에서 전투 업무 대신 행정이나 작업 등 지원 업무를 맡겼는데, 이를 행정 수료라고 불렀다. 결국 수료를 해야 해군 특전병으로서 복무를 하게 되는데, 평균적으로 선발된 수십 명 중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이 수료를 하게 되고 UDT병이 연 10명도 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병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해 병 자원들의 전투 보직을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될지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있어왔지만 정작 국방부 입장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해군 특전병의 존재 의의가 정예 전투병력인 부사관들의 업무 피로도를 낮춰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115]

병 복무기간 단축 확정 이후에도 해군과 국방부 측에서는 매년 10월 말 ~ 11월 초 UDT특전병을 선발한다고 공고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폐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병사들도 당장 의무복무만 해도 경찰특공대 특채가 일부 가능하고 임기제 부사관 제도 등을 통해 일정기간 이상 부사관으로 근무하면 소방 등의 특채 지원까지 가능해진다. 병사들 입장에서도 추후 취업 등에서 도움을 받고 간부들도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서로 윈윈인 셈이다.

인력부족 문제에 대해 UDT 부사관을 더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각 군의 부사관 TO는 단순히 해군이 늘리고 싶다고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높게는 국방부까지 올라가서 부사관 TO 늘리기를 허락 맡아야 하고, 국회에서 허가도 내주고 예산도 줘야 한다. 전 군이 부사관을 확충하고 싶어 할뿐더러 각 군의 특수전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별, 병과, 주특기에서도 부사관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과거에 비해 한번에 부사관을 모집하는 인원이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적절히 걸러내지 않고 자격미달자까지 다 임관시켜버리면, 나중에 전투력 하락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진다. 한 명의 관심간부는 열 명의 관심병사를 아득히 넘어서는 불안요소이기 때문.[116]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UDT가 가진 부대문화 특성이 실무 인원이 모자라도 대충 뽑지 않고, 최대한 빡세게 검증하여 확실한 자질을 가진 인물만 남기는 쪽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장교나 부사관 조차도 UDT에서 필요한 자질이 모자라면 가차 없이 탈락이기에, 부대 정원만 늘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한다. 즉, 장기 복무하는 간부여도 자격미달인 인원을 받아주는 것보다는 짧게 복무하는 수병이더라도 자질을 갖춘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

10. 사진 및 영상[편집]

아덴만 해역에서 조난당한 선박을 구조한 청해부대
잠수에 투입되기 위해 잠수복만 입고 있는 한주호 준위와 그의 뒤편으로 같이 대기중인 잠수복만 입은 그의 후배들이 보인다.
해군특수전전단 특임대와 육군특전사 707특임대원들의 합동훈련 후 망중한













11. 출신 인물[편집]

성명
비고
조광현
UDT 특차.[117] 해사 16기. 대령 예편. 1967년 美 해군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L)과정을 수료하고, 이듬해 제9대 UDT 대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UDT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해군첩보부대 지휘관, 함장 등을 역임하고, 1989년에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안 그래도 빡센 미 네이비씰의 오리지널 BUD/S 과정에다가 동양 특유의 군대문화적인 독한 얼차려 기합들을 더 추가해서 한국적인 UDT교육 버전으로 로컬라이징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준 장본인이다. 그래서 6,70년대의 UDT 교관들 중에서도 빡세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존재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조악마. #
UDT 22기. 미 해병대 특수전 단기과정 수료. 육군 폭발물 처리과정 수료. 수중파괴대(UDT 전신) 소대장, 폭발물처리대 중대장, 특전대대 팀장, 교육훈련대 주임반장, 특수임무대대 지원반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특히, 35년의 군 생활 중 19년 6개월을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재직했다.[118] 청해부대 1진에 검문검색 작전팀 부팀장으로 파병을 다녀왔다.[119]
준위로 근무하던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구조작전에 참여, 작업 도중 잠수병으로 순직했다. 이후 충무무공훈장이 추서 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 제3장교 묘역에 안장되었다.
UDT 28기 출신 예비역 병장. 세계 최초 해발 8,000m 이상 산악 16좌를 완등한 산악인. 해군 수병으로 입대,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했다. 타던 경비정이 화재로 퇴역 처리된 뒤 퇴역함 관리병이 되었고, 이를 지루하게 느껴 UDT에 지원했다. 초급반 교육 수료 후 UDT 대원으로서 근무, 3년간의 의무 복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전역했다.
UDT 30기. 해사 37기. 前 해군참모차장(중장). 제56전대 시절 지역대장[120]을 역임했고 대령 계급으로 특수전여단장 재임 중 준장으로 진급했다. 초급장교시절부터 특수전과 잠수함분야에서 근무하여 제독까지 오른 케이스이며 특수전여단, 9전단(잠수함사령부 전신) 최고 수장자리를 모두 거쳤다. 2019년, 중장으로 예편.
남영우
UDT 42기. 해사 49기. 제1특전대대장과 제3특전대대장(제1함대)을 역임한 해군 중령. 미 네이비 씰 BUD/S[121] 수료. 제1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27호정 정장으로 참전(당시 대위). 2019년, 대령으로 예편.
최영순
학군 41기. 제5특전대대장(제2함대)을 역임한 해군 중령. 제2연평해전 당시 232편대 기함이었던 참수리 358호정 정장으로 참전(당시 대위).
김규환
현 해군 소령.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으로, 청해부대 6진 파병 당시 검문검색 작전팀장으로 참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경남 통영함에서 인계받아 문무대왕함에 탑승하여 진해군항까지 봉송했다.
UDT 50기. 2004년, 특수전여단에 입대했다. 강하훈련 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휠체어 육상선수로 전향하여 2013년 리옹 장애인 세계선수권에서 800m 금메달을 수상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육상 선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테니
UDT 51기 출신 예비역 중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테니 X-FIT’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와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 UDT 최우수 특수전 요원에 선발된 적이 있으며, 청해부대 파병 경험이 있다. 강철부대에 마스터로 출연했다.
UDT 51기 출신 예비역 병장. 아프리카TV BJ이자, 유튜브 채널 ‘유디티TV’를 운영하는 유튜버. 특전병 출신으로, 현역 시절 제5특전대대에서 복무했다. 아프리카TV 방송과 유튜브의 주요 컨텐츠는 먹방.
UDT 53-1기 출신 예비역 하사. 유튜브 채널 ‘야전삽짱재’를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해중작전대에서 근무. 가짜사나이에서 함께 교관으로 출연한 에이전트 H와 동기이자 매우 친한 사이.[122]
UDT 53-2기 출신 예비역 하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미션 파서블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저격수로 근무, 청해부대 2진 파병을 다녀왔다. 피지컬갤러리의 가짜사나이 1기2기에 교관으로 참여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UDT 54-1기 출신 예비역 대위.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ROKSEAL’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 해중작전대, 그리고 특수임무대대와 교육훈련대대에서 근무. 청해부대 1, 2진 작전팀장으로 파병. UDT 최초로 SOTAC과정 수료, 미국 네이비 씰 BUD/S,[123] 장교과정, SQT 수료. 다수의 방송 출연과 PMC, 군/경 전술 컨설팅, 보안 담당 직업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피지컬갤러리가짜사나이 1기에 교육대장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UDT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
서일영
UDT 54-1기 출신 예비역 하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폭발물처리대대에서 근무, 이근과 동기이다. 전역 후 PMC 해상보안요원 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124]
UDT 55-1기[125] 출신 예비역 중사. 유튜브 채널 ‘로건씨유튜브’를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에서 근무, 아크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UDT 수기를 작성하면서 UDT 준비생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었으며, 피지컬갤러리의 가짜사나이 1기2기 모두에 교관으로 참여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상근예비역 만기 전역 후 UDT로 재입대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를 운영하는 유튜버. 빡빡이 아저씨 전직 UDT 출신이란 것 외에는 본인의 자세한 신상을 밝힌 바 없다.[126]
UDT 60-1기 출신 예비역 병장. 현역 종합격투기 선수이다. 특전병 출신으로, 현역 시절 제5특전대대에서 복무. 강철부대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김동현의 체육관 팀스턴건 소속으로, 김동현과는 사제지간.
UDT 62-1기 출신 예비역 하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레드셀’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교육훈련대대에서 근무. 미국에서 성장하였으나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귀국. 중앙대에 입학하여 다니던 중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군생활 썰이 대부분이던 한국 유튜브 밀리터리 컨텐츠 분야에서 영화, 게임을 전술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실제 전술(CQC) · 사격술 소개, 미국 그린베레 출신과의 협업 등 한국 밀리터리 채널에서 그간 볼 수 없었던 컨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127]
UDT 62-1기 출신 예비역 하사. 화가이자, 유튜브 채널 ‘화가 육준서’를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폭발물처리대대에서 근무. 레드셀 대표 박종승과는 UDT 동기. 강철부대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방송 출연 전에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로 인지도가 있었으며, 강철부대 출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UDT 62-2기 출신 예비역 하사. 유튜브 채널 ‘덱스101’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 아크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피지컬갤러리가짜사나이 2기에 막내 교관으로 출연했다.

12. 등장 매체[편집]

  • 패션 70s - 천정명이 맡은 캐릭터 '중빈'이 이 부대를 전역했다는 설정.
  • 천군 - 영화에 등장하는 주역 국군 부대가 이들이다.
  • 굿바이 미스터 블랙 - 주인공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멀티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 레인보우 식스 시즈 - 707 특임대 대원 비질이 원래 이 부대 소속이었다가 707특임대로 차출되었다.[128]
  • 비밀의 숲 - 윤세원 과장이 UDT 출신임을 나타내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 보이스 2 - 방제수가 이곳 출신이며 해군에서 해경으로 특채된 듯 하다. UDT 출신답게 전투력에서 도강우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 아름다운 나의 신부 - 주인공인 김도형이 과거 UDT 암살조 요원이었음이 작중에서 나온다.
  • 극한직업 - 마약반 김영호가 UDT 대원 출신이며 반전 전투실력을 보여준다.
  • 열혈사제 - 유출된 김해일 신부의 신상기록을 보면 UDT에서 복무하다 국정원 대테러 요원으로 차출된 것으로 보인다.
  • 끝까지 간다 - 마약반 박창민. 본인 스스로 UDT 출신이라고 했으며 경찰서에서 처음 마주한 고건수와 화장실에서 격투를 벌일 때 순식간에 그를 제압해버렸다.[129] 뿐만 아니라 타고있던 차가 폭발하면서 저수지에 빠졌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서 그의 집까지 걸어올 정도면 UDT 출신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130]
  • - 시즌 2에서 'UDT는 시가행진 때 제주도 해녀 코스프레만 한다고 불쌍하다'고 평했다. 국군의 날 행진할 때 항상 입는 복장이 멀티캠 같은 전투복이 아닌 평범한 잠수복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견이 반영되어서인지 2013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는 잠수복 대원 외에도 청해부대 특임대가 입는 올리브 드랍색 전투복, 멀티캠 전투복, 국군 통합 도트무늬 위장복, 채용이 예정된 MARPAT 비슷한 신형 UDT복 등 현재 착용하는 모든 전투복이 총출동했다.
  • 반도(영화) - 주인공 한정석이 해군 특전 대위로 설정되어 있다.
  • 민간 참가자를 모집해 특수부대 훈련을 시키는 내용의 BBC 시리즈 "스페셜 포스: 지옥훈련"의 시즌 2 4화에 UDT 출신 이근 대위가 등장하여 참가자들에게 UDT 식의 특별 훈련을 시키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시작부터 참가자들에게 원산폭격을 시키거나 젓가락으로 쌀을 들어 통에 담도록 시키는 등 체력/정신력을 극한으로 내모는 강도높은 훈련으로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더 많은 탈락자가 발생했다.
  • 스페셜 포스 2 - 이전의 1에서는 육군특전사와 해병수색대가 대한민국의 캐릭터였다면 2에서는 UDT/SEAL 요원이 등장하였다. 유일한 대한민국 캐릭터. 대테러활동복 착용상태로 나온다.

13. 역대 지휘관[편집]

13.1. 여단장[편집]

  • 윤재갑 (해사 32기)
  • 한근섭 (해사 33기)
  • 방금철 (해사 35기)
  • 김판규 (해사 37기)
  • 강신도 (해2사 7기)

13.2. 전단장[편집]

  • 강신도 (해2사 7기)
  • 오고산 (해사 38기)
  • 이재은 (해사 42기)
  • 유선명 (해사 42기)
  • 권정섭 (해사 42기)

14. 기타[편집]

2010년대 이후로 열악한 급여로 인해 작전 가능한 6~20년차의 정예대원들이 대거 전역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UDT를 우당탕으로 읽거나, 과거 방위병이 있던 시절 Uri Dongne Teukgongdae의 줄임말이라는 농담의 소재로 쓰이곤 했다.

UDT라는 명칭이 익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영어권에서는 그낭 UDT를 생략하고 KOREAN NAVY SEAL로도 통하는 듯하다. 아이러니한 건 UDT라는 표현도 자주 쓰이는 용어라는 것. 그냥 네이비 씰이 더 인지도가 높아서 그런 듯하다.

데브그루와는 오래 전부터 교류했었다. 영상 6분 57초에 데브그루와의 연합훈련 기념패가 보인다.

2020년, 한국 유튜브 최대 흥행 컨텐츠인 가짜사나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물론 가짜 사나이에 참여한 교관들은 전역자인데다가 교육 내용도 UDT 교육이 아닌 무사트 교육이지만, 교관들이 모두 UDT 출신들이고 컨텐츠 자체도 UDT와 상당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덩달아 UDT의 인지도가 상승했다. 또한, 이로 인해 특수부대 출신 유튜버들이 늘었고, 특수부대 관련 컨텐츠들이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특히 가짜사나이 흥행의 일등공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근의 경우 인기가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크고 작은 과거의 행적들이 폭로되었고, 다른 교관들의 과거 행적까지 연이어 폭로되며 논란을 겪기도 했다. 가짜사나이 덕분에 UDT 지원율도 급격히 상승했다고.

2021년, 최강의 특수부대를 가리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육준서김상욱을 비롯한 UDT 출신 전역자들이 출연하여, 프로그램에 참가한 부대 중 가장 큰 인기를 얻게되었다. 가짜사나이의 흥행 이후 이어진 특수부대 밀리터리 붐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1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UDT/SEAL 문서의 r146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UDT/SEAL 문서의 r14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 해군 특수전전단 문서의 r1722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해군 특수전전단 문서의 r172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예하 특전대 통칭[2] 1969년에 개봉된 남태권 감독의 영화 '사나이 UDT'의 주제곡이다. 그 이전에도 UDT부대가가 있었으나, 프로 음악가가 작사,작곡하여 완성도가 더 높은 이 곡으로 갈아탄 것으로 추정된다.[3] 봉봉 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이 원곡으로 UDT 교육 매 기수마다 만들어서 부르는 기수가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아서 UDT 교육에 위탁교육 들어온 타군 요원들에 의해 특전사와 해병 수색대 등의 타 부대들에까지 퍼지게 된 대표적인 히트 싸가이다. 특히 해병 수색대에서는 '수색대가'라는 제목으로 해병 수색대의 대표 군가로서의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 저 기수 당시는 교육기간이 4개월이었기 때문에 원래 가사는 "수중 훈련 4개월의~ " 였으나 그 후 교육기간이 6개월로 정착된 후에는 자연히 저 싸가 가사에서도 '6개월'이라고 바꿔서 부르게 되었다. 2011년 3월 4일 KBS 2TV 금요기획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 세계 최강 UDT/SEAL'에서 대원들이 직접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4] 13기가가 '봉봉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의 멜로디를 차용한데 반해서 28기가는 순수 창작곡이다. 각 기수의 기수가 작사, 작곡때문에 고민을 떠안는 것은 1번 선임 생도부터 윗 교번의 장교 생도들이다. 음악 전공자는 눈 씻고 찾아봐야 없을테고 흥얼거리다가 만든 곡 중에 더러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들이 있다. 대원들에게 가장 애창되는 군가 중 하나이다.[5] 나훈아홍시가 원곡이다.[6] 특수/전전단이 아니라 특수전/전단이다.[7] 해군 전단의 지휘관은 준장이 보임되는 것이 원칙이나, 실제론 준장(진) 또는 대령이 맡는 경우도 있다.[8] '특수전전단'을 읽을 때는 '특수전 전단'으로 읽으면 된다.[9] 1967년 미국 UDT 교육과정을 수료한 조광현 예비역 대령이 1970년 SBI(SEAL Basic Indoctrination)과정을 추가 이수 후 귀국하여 한국 UDT의 능력을 추가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 사례.[10] 공개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전술분야를 제외하고 사진으로도 바로 알 수 있는 장비, 복제 분야를 봐도 CIRAS를 도입하여 방탄복을 플레이트 캐리어로 가장 먼저 전환하였으며 9mm 화기에서 5.56mm 화기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대테러화기 추세에 따라 5.56mm 화기인 HK416을 도입하고 제식 군복 패턴으로 멀티캠을 도입하는 등 국내 어느 부대, 기관보다 최소 몇 년은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1] 미 해군 SEAL은 기존 UDT 대원들로 창설되었다. SEAL 창설 이후 UDT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SEAL과 UDT 별도로 존속하는 체제였으나 1983년에 UDT가 SEAL로 완전 흡수통합되었다.[12] 1, 3, 5특전대 모두 대테러 임무를 맡고 있으나 국가급 대테러 특공대 임무는 특임대에서 맡고 있다.[13] 다시 공중대·해상대·해중대로 세분화 되는데 이는 침투시 이용하는 침투자산에 의한 분류다. 침투자산은 고정익, 회전익 항공기에서 부터 특수선박, 민간위장선박, 반잠수정, 잠수함, 잠수정 등등 다양하다.[14] 1968.5.1.창설(국방명령 제16호) 2017년에 대대급 부대로 증편되었다.[15] 국방일보와 복수의 언론매체에 따르면, 해군/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 보강 계획'에 따라 특수전전단(UDT/SEAL) 예하의 '선견 작전대대'를 창설하기로 했다. #[16] 국방명령 제16호 1968.4.22.[17] 당시 UDU 대장이 조광현 대령이다. (당시 중령)[18] 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19] 해본기밀 제1762호, 단기 4287년, 서기 1954년 6월 19일[20] UDT/SEAL의 창설 당시 명칭이 수중파괴대였다는 근거로 UDT를 비하할 목적을 가진 이들은 UDT는 해군 공병이었다고 매도하지만 한국 UDT는 창설 기획부터 미국 UDT를 모델로 하였고 미국 UDT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원들로 창설되었으므로 창설 당시부터 해군 공병부대였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도 당시 한국 UDT는 부대차원에서는 북파공작을 위한 요원양성을 담당했고 UDT요원은 북파공작을 실행했던 만큼 이러한 주장들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즉 처음부터 해군 특수전을 위한 부대였다. 지금이야 스쿠버가 대중화 되었지만 당시엔 스쿠버는 군대가 아니면 어디서 배울 수도 없는 초고도의 기술 그 자체였다.[21] 해사 5기, 美 UDT 11기, 해군 대령 예편[22] SEAL임무는 미국의 UDT가 Navy SEAL로 바뀌어갔고 미군의 편제와 임무를 항상 모방하는 한국군도 자연스럽게 UDT에게 보다 넓은 작전반경의 작계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23] 처음부터 육군 특전사 707부대에게 해상대테러 임무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넌센스다. 부대원 개개인의 해상작전 숙련도 차이는 물론이고 707부대의 위치는 바다와 거리가 먼 내륙에 있어 해상훈련을 하기도 마땅치 않으며 해상대테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산 또한 해군에 다 있다.[24] 1,3,5특전대 모두 대테러 초동조치 임무를 맡고 있으나 국가급 대테러 임무는 특임대에서 맡고 있다.[25] 쉽게 설명하자면 2007년 UDT/SEAL + SSU + 기뢰전대 = 특수전전단 → 2009년 특수전여단(UDT/SEAL) → 2012년 특수전전단(UDT/SEAL)[26] 영화 태양의 눈물 참조[27] 네이비씰이라고 한없는 아량으로 한국 UDT/SEAL을 교육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네이비씰 특수교육과정에 부대원을 입교시켜달라고 단장이 직접 미국까지 건너가서 부탁하기도 했다.[28] Standard Operation Procedure. 어떤 임무에서는 어떤 장비를 착용하고 어떤 전술을 사용한다 등을 모아놓은 절차. 보통은 팀 단위로 SOP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자기 팀 안의 SOP와 자기 보직에 따라 행동양식과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29] 복장이나 장비 도입이 자유롭지 않은 타부대에 비하면, 미 해군 네이비씰이 새 장비를 들고나온게 눈에 띄었다 싶으면 바로 따라서 구매하는 정도로 빠르게 도입했다.[30] 일단 해군특수부대인 만큼 수상, 수중작전에서는 확실히 우위이고, 특전사쪽에서도 자기들은 못 경험해본 실전(아덴만의 여명 작전 및 기타 해적 진압 작전)을 해본 부대로서 인정해준다고 한다[31] 신분 불문 동일하게 교육 받은 뒤 각 신분에 따라 후반기 과정이 이루어짐. 해당 과정의 마지막 주가 바로 극기주(일명 지옥주)이다.[32] 1년에 한 기수씩만 선발하기 때문인지 일반적으로 그 해 첫 특수전 기본과정으로 수료하는 경우가 많다[33] 수병, 민간에서 특전부사관으로 지원한 인원들은 부교대로 입교 후 다른 부후생과 동일한 교육과정을 거치다 4주 후에 특교단으로 입교한다.[34] 수병, 민간지원자들은 부후생 신분으로 이 과정에 들어가게되고, 이미 임관하여 실무에 있던 부사관의 경우 곧바로 기본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35] 특전 직별의 전문하사가 단기전환 혹은 연장복무로 인하여 입교하게 될 경우 이 과정만 거친다. 이미 이수한 기본과정과 기본공수 교육은 받지 않음.[36] 장교의 경우 처음부터 특전직별로 지원하지 못하고, 함정근무를 하다가 차수에 맞추어 지원해야만 한다.[37] 현역 부사관의 특전부사관 지원과 마찬가지로 기초 군사교육을 생략하고 해당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38] 명칭만 장교 과정일뿐, 초급반 교육과 동일하다. 부사관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수료식도 같이 한다.[39] 한 해 2개기수, 240명. 사실 위탁교육생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적은 숫자가 나온다. 물론 계급별 경쟁률을 고려하지 않고 통합한 수치이기도 하다.[40] 육군, 해병대, 공군[41] 그 후로는 HID(정보사 육상)는 특전사의 해척조교육으로 위탁교육 들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정보사 육상측에서 단기 스쿠바 교육과정을 의뢰했으나 UDT측에서 새로운 교육과정 개설은 안되고 교육수요가 있으면 UDT초급반 위탁교육 T.O를 줄테니 초급반에 입교하라고하여 유야무야 없던 일이된 일화가 있다. [42] 언론에 공개된 사실로 한국의 방위산업체에서 한국형 호위함 FFK 3척을 방글라데시 해군에 수출하였는데, 그에 대한 리베이트의 성격을 띠고 있다.[43] 물론 군인 피교육생들과 같이 받은 게 아니라 교육체험 들어온 양궁 국가대표선수들만을 위해 별도로 교육과정을 마련했다.[44] 군사훈련과 운동선수들의 훈련은 목적도 다르고 종목 경기력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내부적인 기강문제가 있었다거나 동기부여 목적이었을 확률이 크다.[45] 참고로 미 해군 SEAL의 경우는 BUD/S 수료 후에도 SQT(SEAL Qualification Training: SEAL 자격훈련)라는 추가적인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46] 김00소령 본인이 블로그에 밝힌 군복무 약력에 따르면 수색교육과 해군 UDT18기 위탁교육을 수료하였으며 해병 수색대장 역임을 비롯하여 해병 북파부대였던 MIU에서 복무, MIU의 해체 이후엔 해군UDU에도 복무 했다고 밝히고 있다.[47] 한 해 2개기수, 240명. 사실 위탁교육생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적은 숫자가 나온다. 물론 계급별 경쟁률을 고려하지 않고 통합한 수치이기도 하니 지원자의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지 참고사항으로 삼으면 된다.[48] UDT 1기가 교육받던 1955년은 휴전 된지 얼마 안된 시점으로 북측의 해안경계가 정비 되지 못했기에 아직 완벽하지 못한 교육생들이 임무를 성공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차 북측의 경계가 정비되었고 나중엔 작전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68년 부O항 공작이다. 이 작전에서 UDT대원 6명이 전사했다.[49] 공식적으로 북파공작은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기점으로 중단되었다. 다만 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파를 실행한 정황이 있으나 정부에서는 부인하고 있다. 그만큼 남북공동성명 이후 실행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는 전군 통틀어 몇건 밖에 안될 정도로 극히 적으며 남북공동성명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회고록 참고[50] 이처럼 본래 UDU라는 명칭은 NIU 해상정찰대에 배속된 UDT요원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1971년, 해군 첩보부대의 개편과(1971.5.5. 국방부령 제216호) 자체적인 특수요원양성을 시작하게 됨에따라 이때부터 해군 첩보부대를 UDU라고 통칭하게 되었다.[51] 해상정찰대는 엄연히 대한민국 해군 소속의 군부대였으며 구성원 또한 현역 해군이었다. 해상정찰대는 다른 특수전부대와 마찬가지로 첩보부대 예하 비정규전수행 정규군부대이지 절대 민간조직, 민간인이 아니다. 당시 북파공작을 수행하던 부대들 중에는 분명 민간인으로 구성된 곳도 있었다. 그들은 각 지역 소규모 안전가옥에서 훈련을 받거나 임무를 수행했으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회로 다시 나왔는데 신분이 민간인이었기에 다시 정식으로 군입대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해상정찰대는 아니다. 누군가 UDU가 비정규군(민간인)이라 주장한다면 이는 잘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명백한 거짓이다.[52] 인사 930-713호(75.7.18), 감사 140-597호(75.9.16) 국방부 인사국 《해군 OOO 승조원 인사처리》(1975.10.20) 《해군예비군원령철》승조원들은 제네바협약에서 정의하는 포로의 개념에 해당되기에 포로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 전사처리 및 현충원 봉안에 대한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승조원 20명중 18명이 전사처리되었다.(반대 1, 무연고자1)[53] 해군 현역군인이 부대를 옮긴다고 민간인이 된다는 엉뚱한 주장을 누가 믿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상당히 많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UDT대원들이 NIU안에서 NIU대원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UDU라 자칭하며 해상정찰대에서 근무를 한 것이다. 해상정찰대의 구성원이 전원 또는 절대다수가 UDT(UDU)이기에 해상정찰대가 UDU라 통용되었던 것이다.[54] UDT복무중 1963년 해상정찰대로 전출을 가게되었는데 당시 해상정찰대는 12명의 UDT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UDT 8기 권OO 증언.[55] 부대 운영상 요원양성 및 인력풀은 UDT, 작전은 해상정찰대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56]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들은 북파공작이 이뤄지던 시기 해상정찰대의 특수요원이 12~20명 선이고 UDT 전체인원 332명중 해상정찰대 근무인원이 126명이라는 사실, 해군 특수요원 양성교육은 UDT의 B-6밖에 없었다는 사실들에 주목해야 한다.[57] 현용 UDU마크는 1975년에 UDT 12기 김OO이 만들었다.[58] 그때보다 인터넷 정보망이 훨씬 더 발달되어 숨기려해도 숨길 수도 없거니와 왜곡되어진 자신들의 부대역사에 대한 자성론도 일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59] 招搖過市 남의 이목(耳目)을 끌도록 요란스럽게 하며 저자거리를 지나간다는 뜻으로, 허풍(虛風)을 떨며 요란(搖亂)하게 사람의 이목(耳目)을 끄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60] 정전 후 북파공작이 실행되던 시기 해군측의 북파공작원은 UDT에서 교육을 이수한 인원들이 해상정찰대로 배속 되어 북파임무를 수행하는 형식이었고 이와 같은 경로의 인원들이 절대다수 였다. 이런 사실은 해군 첩보부대 부대장을 역임한 인물을 비롯하여 당시 근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해군 첩보부대에 자체적인 특수요원 양성교육이 생긴건 1971년이고 북파가 종료된 시점은 1972년이다. 청해부대 검문검색대에 UDT/SEAL이 인원을 보내고 있는데 나중에 청해부대에 자체적인 검색대 요원 양성교육이 생기고 그 이후부터 UDT/SEAL이 청해부대로 인원을 안보내게 됐다고 해서 아덴만 여명작전이 청해부대 자체 양성 검색대 요원들이 수행한게 되는건 아니다.[61] 비슷한 직무, 같은 직무를 수행한다거나 결과적으로 추후에 통폐합 흡수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타인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직무인 임진왜란 당시의 잠수 흑인용병이 UDT의 전신이 아닌 사실은 자명하며 UDT/SEAL이 해군 특전단이 되었고 SSU가 추후에 해군 특전단에 편입이 되었다고 해서 UDT/SEAL의 부대 창설년도가 SSU의 전신 해상공작대(일본에서 선체인양, 선박해체 등을 하던 인원들을 군무원으로 고용하여 창설되었다. 6.25 당시 선체인양 및 구조작전을 수행하였다. 해상공작대의 공작은 통상 대중들이 알고 있는 그 공작이 아니다.)의 창설 년도인 1950년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정신적 전통을 계승함을 목적으로 미국 해병대 특수작전연대(Marines Special Operations Regiment)가 2차대전 당시 활약하고 해체되었던 해병 레이더스(Marine raiders)와 똑같은 명칭인 해병 레이더 연대(Marine Raider Regiment)로 변경하였다고해서 지금의 레이더스가 2차대전 당시의 레이더스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식의 주장들을 한다면 그 주장들은 현재의 중국 영토안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와 인물은 중국의 역사이고 인물 또한 원래 중국인이었다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당시에 살던 사람들을 당시 그들이 살던 시절에는 존재 자체가 없던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62] 북파활동 인정의 기준을 정규군이냐 비정규군이냐의 차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한국전 당시의 영도유격대와 같이 미국 CIA가 민간인을 모집하여 구성원들이 민간인신분으로 운영되던 부대 정도가 비정규군이라 할 수 있지만 해상 북파공작을 수행한 대부분의 부대는 영도유격대 사례와 달리 해군 정규군이었으며 군인들이었다.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정규군은 비정규군이 아니다.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정규군일 뿐이다. 비정규군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비정규군 : 정규군, 경찰 또는 기타 국내 경계 부대에 속하지 않는 무장한 개인 또는 집단.》대표적인 비정규군의 예를 들자면 한국의 서북청년단, CIA의 SAC/SOG나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시아파민병대 등을 들 수가 있다.[63] 처음 모집을 UDT로 하였으나 수료 후 UDT 생활 없이 바로 UDU로 간 인원들도 있고 모집을 UDU로 되어 UDT 교육을 받고 UDU로 간 인원들도 있다.[64] 해상정찰대에서 전역, 부상, 전사, 자신의 원에 의하여 결원이 생기면 수중파괴대로 인원보충요청을하였고 수중파괴대에서는 장교나 선임하사관이 부대원중에 골라 보내거나 공개지원자를 보내기도 하였다. 해상정찰대의 지휘관 또한 수중파괴대 출신이 많았기에 직접 눈여겨보았던 UDT대원을 고르는 경우도 있었다.[65] 해군은 군 특성상 육군과 달리 첩보 및 파괴공작을 수행 할 병력이 UDT를 제외하고 딱히 없다.[66] 델타의 OTC나 데브그루의 그린팀과정 같은 선발과정[67] 모집이 UDT였으나 UDU로 가게 되었건, 처음부터 모집도 UDU였고 UDT 교육 후 UDU로 가게 되었건 모두 UDT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았다.[68] 물론 해상정찰대에 한 번 배속이 되었다고 해서 영영 해상정찰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UDT 근무 중 해상정찰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인원, 수료 후 바로 해상정찰대로 갔다가 다시 UDT로 돌아온 인원들이 존재한다.[69]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베트남전쟁과 한국군》[70] 그런 사실자체를 발표하지 않거나 사실을 발표 하더라도 UDT/SEAL을 언급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방의 각 함대 지통실, 전방 해군기지에 근무했거나 참수리에 승조했던 해군들은 누가 직접 나포하는지 알 수 밖에 없다.[71] NLL 월선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기사 뜬 사례만 해도 수두룩하다.[72] Visit, Board, Search, and Seizure[73] 전방 파견부대에 근무하다 보면 가끔 중국어선은 물론이고 적 선박 대상으로 실전 경험을 쌓기도 하며 북한 측에서는 어부라고 주장하지만 어부로 위장한 공작원이며 수시로 이런 식의 도발을 한다고 한다. 북한 측에서는 정찰위성이나 고고도 정찰기 같은 정찰감시 자산이 없기 때문에 도발도 할 겸 이런 식으로 공작원을 어부로 위장해 보내 남측에서 어떤 자산들과 인원들이 대응하는지 파악한다고... 그러다 UDT 떡대들에게 이종격투기로 참교육을 받는다고 한다.[74] 조업한 흔적이 없는 민간선박은 의도가 뻔하고 어부도 아니다. UDT요원이 작전에 들어 갈 때는 당연히 상대는 어부로 위장한 공작원이며 총기와 같은 살상무기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라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고 작전에 임한다. 어촌에서 성장했거나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공작선이 아니더라도 어부들에게 칼은 필수이며 어선에는 기본적으로 식칼은 나온다. 물론 언제든지 무기가 될 수 있다.[75] 71년 이전의 NIU소속 해상정찰대와 같은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요원양성 및 인력풀은 UDT/SEAL, 작전은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검문검색대.[76] 참고로 공개가 된 영상은 해적과의 직접적인 교전장면이나 사살, 생포 등은 모두 편집된 영상이다. 댓글에 보이는 의심병 환자는 가볍게 무시하자.[77] 박정희 대통령과 UDT대원들이다. 정치적 관점의 호불호 없이 VIP와 군인들의 사진으로 보면 된다. 게다가 어쨌거나 사진을 보면 대통령(VIP) 또한 편한 복장으로 휴가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근접 경호 인력이 거기 드레스코드를 맞추는 건 흔한 일이다. 다른 대통령이라도 똑같이 할 것이다. 휴가 분위기에 양복 입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VIP가 야구장에 가면 야구장 관중이 되고 시장에 가면 장 보러 나온 부부가 되는 사람들이다.[78]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델타포스 출신의 John Mcphee는 GPNVG-18에 대해 Suck이라 표현한 바 있다.[79] 청해부대도 초기엔 K1A을 가지고 갔으나 나중 진들에선 점차 HK416로 대체되었다. 청해부대만이 아닌 해군 특수전전단 부대 내에서 hk416은 여기저기서 지급된다. 병기 부분에서 후술.[80] 기타에서 후술[81] 청해부대 파병을 통해 미군이 아닌 프랑스 해군 코만도를 비롯하여 노르웨이, 스페인과 같이 우리나라와 군사적 교류가 드문 국가의 해군 특수부대들과 연합훈련을 할 정도다[82] 청해부대 파견 초기라 현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장구류와 개인 병기들의 모습을 잘 보도록 하자.[83] 방탄모 뒤쪽과 오른쪽 어깨에 팀내 자신의 보직을 표기한 패치를 붙여둔 점이 인상적이다. AW(자동화기사수)가 K1A를 들고있는 이유는 실내전 훈련이기 때문이다.[84] AOR2라고도 불린다[85] 물론 UDT/SEAL은 '해군'특수부대라서 바다와 관련이 깊지만 물에서 뿐 아니라 오히려 대부분은 '육지'에서 뛰고 기고 소총 쏘면서 작전할 수밖에 없다.[86] 이와는 달리 육군은 기본적으로 모두 육상전투부대이므로, '일반 보병' - '수색대/특공대 같은 경보병 내지 준 특수부대' - '특수부대', 이렇게 모두 기본 소총 보병을 공통기반으로 하여 겹치고 연속성이 있는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해군처럼 '소총 전투부대(특수전전단)' // '선원(그 외 모든 해군)' 이런 식으로 전혀 다른 영역처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87] 보급 군화를 신지 않고 개개인이 편한 등산화나 기타 전술화를 신어서 전투력에 향상이 온다면 'OK' 부무장인 권총을 어디에 착용한다던지 기타 장비들을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장착할지는 대원 네가 편하고 경험 많은 선배들이 봤을 때도 합당하다면 'OK' 이런 식이다. 원래 특수부대라면 정말 당연한 것들이다. 다만 부무장 착용 위치 같은건 보통은 팀단위 SOP에 포함되어 있다.[88] 육군의 '화기'를 말한다. 해군의 특수부대인 관계로 해군 용어인 '병기'로 표기한다. 참고로 공군에서는 '총기'라 한다.[89] 국군의 K100 계열탄[90] 제 3 특전대대에서도 사용중인 걸로 확인됐다.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80209&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005[91] 'Accuracy International Chassis System'의 줄임말로 M700을 아틱 워페어 타입 총몸(그 중 L96 타입)으로 컨버전한 모델.[92] 캐나다제 50구경 저격총[93] 261기(64-3)부터[94] 영어를 제외한 점수에서 50점대~60점대 이상이면 합격이라는 카더라가 있다.[95] 1월 첫째주 목, 금부터 1월 중순까지[96] 진해 군항제기간과 딱 걸침[97] 7월 첫째주 목, 금부터 7월 중순까지[98] 교육의 진행에서의 교관, 교육생의 피로도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고, 해군모집 질의응답 게시판에 비슷한 답변이 게재되었다.[99] 수영장 이용가능시간, 해양의료원 이용시간 등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100] 턱걸이시 장갑 사용은 진행하는 감독관 재량이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101] 턱걸이의 경우 2010년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만점기준이 20개였는데 현재 2020년 기준으로 14개가 만점이다. 턱걸이 만점기준 하향의 이유를 전화로 문의한 결과, 육상 선출과 같이 달리기를 잘하는 인원을 뽑기 위해 턱걸이의 비중을 낮췄다고 한다.[102] 날씨에 따라 맞바람이 치기도 하며 바닷가라 기본적으로 바닷바람의 여향을 받는다.[103] 실기검정 당일 통보됐다고 한다.[104] 지원자 수에 따라 달라지나 대개 비슷하다.[105] 단, 실기점수 69점으로 최초합격한 후보생이 있다. (65-1차 합격생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106] UDT에서 대위로 전역한 이근은 미 SEAL 초급반 과정과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의 초급반 과정중에 미 SEAL의 초급반 과정이 정신적으로는 더 수월하지만 육체적으로 더 힘들다고 이야기 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정신적인 시험이냐 육체적인 시험이냐를 놓고 세부적인 부대문화에 따라 훈련 방향이 엇갈린 것이기 때문에 작은 차이가 있기는 하나 아래의 기준과 위의 기준을 비교해봐도 그렇고 미 씰 전역자들이 이야기하는 권장기준도 평가 실시 거리나 자세를 제외하고는 해군 특수전전단 전역자들이 이야기하는 권장기준과 대놓고 같다. 애초에 해군 특수전전단은 Navy SEAL의 상당부분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부대이기에... 참고하자면 Navy SEAL 지원자들의 평균적인 BMI 수치는 25라고 한다. 키 175cm 기준으로 77~79kg이니 참고해두면 좋을 것이다. 어차피 들어가고 나면 쫙쫙 빠져 멸치가 될테니 벌크업은 팀에 들어간 이후부터다 동양인 특성상 백인보다 추위를 덜 탄다고는 하지만 너무 마른몸은 추위를 견디기가 곤란한건 사실이다 [107] 출처 https://en.m.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Navy_SEAL_selection_and_training [108] 특정 기수 이후로 체력배양, 수영능력배양 기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갑자기 난이도가 높아진다.[109] 순위가 이렇지만 위의 구보기준은 짧은 시간 준비해서 충족시키기가 상당히 힘들다.[110] 2001년을 마지막으로 전투 보직이 없어져서 현재는 작전팀에 배속되지 않는다. 보직에 상관없이 기본 공수훈련은 받지만.[111] 부사관의 경우,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전방 파견부대로 가게 될 수도 있다.[112] 막타워가 아닌 진짜 헬기 패스트로프[113] 각종 수당을 합치면 국군 병사 월급 중 가장 높다.[114] 매년 10월 말 ~ 11월 초.[115] 의무복무만 끝내면 집에 가는 특전병들이 무조건 전방 함대로 배치받는 이유이다. 간부 대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후방으로 보내 새로운 훈련을 받게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복무를 할 수 있게 긴장도를 낮춰 피로도를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전방을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를 위해 특전병들이 전방 자리를 채워주고, 대신 간부들은 전-후방 순환 근무를 하며 개인 역량 강화에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것.[116]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 전 군에 필요한 것은 관리 감독하고 명령 하달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간부가 아니라 직접 총 들고, 장비 조작하고, 어느 정도 눈치 보며 착실히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숙련된 병이 필요한 것이다. 국군의 병 계급을 통째로 의무복무자로 채워버리는 그간의 징병시스템 때문에 이러한 사달이 난 것.[117] 미국 UDT B-6 교육 유학.[118] 생전 교육훈련대 재직 당시 모습. #[119] 당시 팀장은 이근.[120] 현재의 바뀐 명칭으로는 작전대장.[121] 239기.[122] 에이전트 H도 53-1기로 지원했지만, 교육 중 쇄골 골절로 인해 퇴교했으며 53-2기로 재입교, 수료했다.[123] 294기.[124] 인터뷰 1 인터뷰 2[125] 특히 수료율 7%(장교 포함 15명 수료라고 한다.)의 악명 높은 기수인 55-1기를 수석 수료해서 '강철의 로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126] 53-2차인 에이전트 H를 선배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 54차 이후 기수로 추정되며, 최근 이근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김계란이 자신의 교육생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참고로 이근의 교육 기수는 59~60.[127] 영상 전공자 답게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이며 해외 네티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어내어 외국인 구독자 비율도 높은 편이다.[128] 실제 국군에선 해군 전역 후 육군으로 재입대하지 않는한 이런 타군간 차출 이동이 불가하다.[129] 삭제 장면에서도 덩치 있는 깡패 한명이 박창민한테 도발 했다가 역으로 도발에 걸려 덤볐다가 바로 제압 당한뒤 "내 UDT잠수기록 최고 6분 35초인데 한번 버티면 살려줄게" 하는둥 뒤에 많은 말단조폭들이 있었지만 덤비질 못하고고건수집에 들어왔을때도 "너때문에 잠수기록 또깼다"고 말한다.[130] 종종 외국영화에서 전직 특수부대 NAVY/SEAL 출신이 악역으로 나오는걸 모티브를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