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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소위 왕자의 난 때까지 옛 현대그룹의 본사였던 계동 사옥.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이 분리되고 2004년까지는 이 사옥을 썼다.[1][2]

파일:현대그룹사옥.jpg
위는 현재의 현대그룹이 사들여서 리모델링하고 2010년부터 본사로 쓰고 있는 연지동 사옥.[3]

긍정[4]
파일:hyundailogo.png
정식명칭
현대
영문 / 한자
HYUNDAI[5] / 現代
설립일
1947년[6]
설립자
아산 정주영(1915 ~ 2001)
회장
현정은(현대엘리베이터 회장)
기업규모
중견기업[7]
지주사
웹사이트

1. 개요2. 역사
2.1. 자수성가형 재벌2.2. 20세기 대한민국 최강 재벌2.3. 왕자의 난, 공중분해
3. 역대 슬로건4. 기업 문화5. 대북 사업6. 기타7. 범 현대그룹
7.1.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과 그들이 승계한 직계 기업집단
7.1.1. 현대자동차그룹7.1.2. 현대백화점그룹7.1.3. 현대그룹7.1.4. 현대중공업그룹7.1.5.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7.1.6. 현대미래로그룹
7.2. 정주영 회장의 동생/조카들이 분가한 방계 기업집단
7.2.1. 한라그룹7.2.2. 서한그룹7.2.3. HDC그룹7.2.4. 현대코퍼레이션그룹7.2.5. KCC그룹
7.3. 현재 매각된 기업7.4. 관련단체
8. 이름이 비슷하지만 관련없는 것들

1. 개요[편집]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집단. 창업주는 故 정주영 회장. 삼성그룹이 21세기 한국 최대 재벌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명실상부 20세기 한국 재벌의 원탑이었다.[8] 물론 21세기에도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재벌 중 하나이다.

계열분리가 이루어진 이후 "현대그룹"이라고 하면 분리된 기업집단 가운데 5남 故 정몽헌 회장이 물려받아 현재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집단만을 이르는 말이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직접 지목한 후계자.

그 외 과거 현대그룹에 속했던 기업집단들을 통칭 범(汎)현대그룹, 혹은 범현대가(家)로 부르며, 여기에는 정주영 회장 생전에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한 기업집단도 포함된다. 2010년 이후로도 자산기준 10대 기업집단에 현대자동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이 올라 있는 점에서 과거 현대그룹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2.1. 자수성가형 재벌[편집]

어깨를 나란히 하였던 경쟁 기업인 삼성그룹이 선조 때부터 지역에서 나름대로 재력을 축적하고 있던 가문[9]에서 출발한 데 반해, 현대그룹은 정주영 회장의 가문이 지지리도 못 살던 빈농이었고 정 회장 스스로도 소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가 부모님 몰래 소 판 돈 들고 가출하여 세운[10] 자수성가형 기업으로 유명하다.대한민국 가출 청소년의 롤모델???

해방전쟁을 겪으며 수없는 기업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현대는 건설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꾸준히 키워나갔고,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자동차조선업에 진입, 중화학 드라이브를 선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에 자리매김하였다. 현대가 없었으면 지금의 울산광역시도 없었다.

2.2. 20세기 대한민국 최강 재벌[편집]


▲ 리즈시절이었던 1995년에 제작된 그룹 PR

21세기 이후로는 삼성그룹이 규모에서나 영향력에서나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만, 중동 건설붐 이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최대의 기업집단은 현대그룹이었다. 현대가 재계 서열 1위였을 당시 삼성과의 격차는 21세기의 삼성과 현대의 격차보다 훨씬 컸다.[11]

삼성과 현대의 관계는 1970년대까지는 우호적이었다. 유통(백화점), 식품, 전자, 무역, 화학 등 경공업이 주력 업종이었던 삼성과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이 주력 업종이었던 현대가 경쟁하는 분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9년 현대-중앙일보 매스컴 전쟁부터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980년대 이후 현대가 전자, 백화점, 석유화학에 진출하고 삼성이 중공업, 건설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진다. 두 그룹의 사업분야가 사실상 똑같아진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중앙일보를 견제한다고 문화일보를 만들기도 했다. 딱 하나, 자동차만 빼고...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매출액, 자산 등에서 밀리던 삼성이 그 차이를 뒤집기 위해서 반도체에서 거둔 수익으로 삼성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떠돌았다. '삼성이 하는건 현대도 다 하는데, 현대가 하는 것중에 삼성이 안하는 유일한 품목이 바로 자동차!'.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이미 삼성은 1960년대부터 계열사 총 자산에서 현대를 앞서고 있었고 오히려 1990년대에 현대가 이를 추월하였다가 정주영 사후 다시 탈환한 바 있다.[12] 더군다나 삼성은 사카린 파동 이후 정치권 및 법조계 등 이른바 '삼성장학생'의 육성에 성공하였기 때문에[13], 기업 자체의 이미지와는 달리 삼성의 파워는 현대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 본인의 창당 및 정치권 입문을 본인의 성향뿐 아니라 이런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2.3. 왕자의 난, 공중분해[편집]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정치참여 실패, 그 뒤를 이은 IMF 사태를 전후하여 상당수 계열사가 재무위기에 처했다.[14] 2세 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소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타계를 계기로 완전히 분해되는 운명을 겪었다.[15]

사실 한국 재벌의 역사에서 이런 식으로 자식 세대에서 기업을 나눠가지는 '분봉' 관행은 딱히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삼성 역시 따지고보면 상속에 따라서 여러 그룹으로 분리된 것이나 다름 없다. 다만 현대그룹의 경우 분열과정이 워낙 극적이고 다툼이 많았으며, 한꺼번에 서너개의 그룹으로 분열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 서로를 인수하여 '현대그룹'을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 특이한 데가 있다.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은 2001년 현대전자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재계순위 10위권 밖으로 규모가 확 축소되었다. 그 후로도 해운 업황이 악화되면서 2016년 현대증권을 포함한 현대저축은행·현대자산운용 등 금융 3사를 KB금융지주에 매각하고, 현대상선은 채권 출자전환으로 소유 및 경영이 채권단에 넘어갔다. 이제 한때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의 기준인 자산가치 5조원에도 들지 못하는 ‘중견기업’으로 전락하였다.

3. 역대 슬로건[편집]

  • 우리의 현대, 세계의 현대 (1986~1993)
  • 기술의 현대, 세계의 현대 (1993~1996)
  • 삶의 질 향상을 지향하는 - 기술의 현대, 세계의 현대 (1995~1996)
  • 사람, 사회, 미래를 위한 가치경영 (1996~1999)

4. 기업 문화[편집]

똥군기 갑

창업자가 맨손으로 일으킨 자수성가형 기업인데다가 주력산업이 건설, 자동차, 조선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진취적, 모험적이면서도 거칠고 남성적인 기업문화로 이름이 높았다. 한국 경제의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을 상징하는 기업이라고 보면 맞다. 물론 부작용도 고스란히 안고 가긴 했으며, 그 일부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데... 일부 범현대가 경우 군대식 "다나까"체 사용을 권장하며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똥군기 문화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16]

또한 이런 특징 덕에 198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이 끓어오르던 시기 현대그룹 계열사는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정공 등 당시 울산에 자리잡고 있는 현대그룹 노동조합들은 말 그대로 노동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게차, 굴삭기를 앞세워 경찰과 구사대를 밀어내고 울산시내로 진출한 일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며, '골리앗 투쟁'으로 알려진 갠트리 크레인 위 고공 농성도 유명. 사실상 현대그룹 노동조합들이 지금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복지 수준이 말할 수 없이 향상된 지금의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손꼽히는 대형 노동조합이다. 비정규직이나 사내 하청 노동자같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훨씬 열악한 처우를 받는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협력은 아오안.[17] 특히 어용 노조였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어찌나 그 정도가 심했던지 민주노총으로부터 제명당하기까지 했다는데 애초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대표적인 무파업 노조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8]

이런 역사 덕에 범현대가 기업들은 노조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노조 관련 문제에 대한 노하우만은 삼성을 압도한다. 물론 그만큼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끝에 얻은 노하우다.[* 때문에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에 향후 정식 노조가 설립될 경우, 노조와 협상해 본 경험이 없는 삼성 경영진들이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규모가 큰 탓에 늘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5. 대북 사업[편집]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고향이 휴전선 이북의 강원도 통천인 관계로, 정주영 회장 생전부터 대북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관련 기사 "소떼 방북"으로 유명한 1998년의 소떼 지원은 남북 모두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금강산/개성 관광 사업 등 남북간의 정치,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현대그룹이 기여한 바는 항목 하나로 정리하기 어려울만큼 지대하다. 정주영 회장이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故 정몽헌 前 현대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정몽구 회장이 대북사업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 사후 현대그룹이 산산조각나고,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 중단,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 중단이 이루어지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현대아산이 주도하던 대북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6. 기타[편집]

영문표기가 HYUNDAI인 이유는 과거에는 영문 표기법이 정립되기 전이라 '대'자의 영문 표기법이 'DAE'와 'DAI'가 혼용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DAE'로 결정된 뒤에는 이미 이름을 바꾸기엔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19]

여담으로 이 명칭에 대해서 일본 그룹[20]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다. 비슷하게 삼성[21]미쓰비시의 짝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현대라는 명칭은 1947년 처음 쓰였고, 현대자동차의 설립은 1967년이며 미국시장 진출은 1985년임을 고려하면 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에게 기술이전을 받은 것이 현대자동차의 시작이므로 마냥 억울한 논란이라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마케팅에서 어느정도 일본이라는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에 묻어가려는 광범위한 시도는 비단 현대 뿐만 아니라 한국 유수의 대한민국 전자제품 기업에서 다 나타났던 현상이다. 삼성전자가 광고 뒷배경에 후지산을[22] 떠올리게 하는 감성광고를 한다던가 하는 식.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 20대 부장, 30대 사장, 40대 회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친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한 바 있다.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격 인물. 그러나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대선에 출마할 당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둘 사이는 갈라졌다.

범현대가 중 현대중공업이 멕시코 만 석유 유출사태에서 시추선을 잘못 만든 책임을 받아, 천문학적인 금액의 소송에 걸려 위기에 몰릴지 모른다고 한다. 아니 많든 적든 책임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소송에 걸리긴 했으나 크게 두들겨맞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석유시추선 정도 되면(일정 수준 이상의 선박들은) 단순히 조선소가 알아서 만들어 납품하는 게 아니라 선주측에서 별도로 감리/감독 인원을 파견한다(전문가 집단이 있다.). 조선소 측에서는 작업 내내 작업 스케줄부터 작업 공정들의 적정성(용접은 규정에 맞게 제대로 했나, 볼트/너트는 규격에 맞는 걸 사용했는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항들을 점검받아야 한다. 각 단계별로 감독관이 Confirm하지 않으면 다음 일을 할 수가 없다! 선박을 인도받는다는 것은 선주 측에서도 '이 선박은 규정에 따라 요구사항에 맞게 건조되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각종 국제대회를 대한민국으로 끌어오게 하는 건 도가 텄다. 가까운 예시로 선대 정주영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일본은 80년대부터 준비한 것을 현대는 1990년에 "아 우리도 이제 월드컵 개최하자!!!" 이 말과 함께 한일 공동개최를 만들어 버렸다. 물론 일본은 이전에도 이것저것 한게 많아서 이번엔 한국에도 기회를 주자, 라는 식으로 해석했을 여지가 크기는 하므로 일본보다 이쪽 분야에서 우수한 실적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쪽 분야의 본좌급인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공동개최를 이끌어낸 실적은 높이 평가해야 하고, 실제로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발표할 때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본축구협회장이 넋이 나간 상태로 있었는데 정몽준이 억지로 손을 잡아서 같이 손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2012여수세계박람회까지 유치시켰다. 한국 축구 분야에 엄청난 기여를 했으며 다른 분야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성과를 올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또한 케이블방송 사업에도 진출했었다. 1990년대 중후반 당시 HBS(현대방송)와 음악채널(M21→KMTV)을 운영했고, 두 채널은 각각 따로따로 분리되었다.

사족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퇴직금을 지급한 곳이 현대그룹이다. 2000년 정주영 회장의 퇴직금이 그것인데, 현대그룹 24개 계열사에서 총 217억이 지급되었다. 그 이전의 기록은 1999년 당시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을 퇴임한 정세영이 지급받은 50억,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퇴임 시 LG화학에서 지급한 20억 등이다. 본래 재벌 총수들은 퇴직금의 지급을 사양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 사정에도 부담이 되고 부정적 여론도 들끓기 때문이다. 근데 심지어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여억 원을 지원받는 등 현대건설의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와중에 이만한 금액의 퇴직금을 받았으니 참... 그리고 이 퇴직금은 이후 현대그룹 계열분리 당시 현대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 있던 MH를 지원하기 위해 기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자금과 함께 현대자동차 주식의 매입에 사용되었으나,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모두 처분한 후 현대건설의 회사채 매입에 쓰였고, 회사채와 기타지분을 매각한 자금이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투입되어 현대건설 주식으로 바뀌었다. 이 주식은 정주영 회장의 별세 당시 현대건설에 증여되었고, 감자되었다.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

현대라는 이름이 너무 단순하고 쉽게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국내 굴지 기업의 이름을 따라 쓰고 싶은 것인지, 전국 각지에 현대그룹의 이름을 사칭한 '현대슈퍼', '현대병원'[23] 등 여러 업종의 '현대OO'가 전국에 넘쳐난다. 특히나 이들은 영문표기마저 HYUNDAI라고 해놓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도호쿠, 홋카이도 지방에서도 '파칭코 현대(파칭코 겐다이)'가 1980년대 영업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명(社名)을 <VEGAS VEGAS>로 변경하였다.

7. 범 현대그룹[편집]

아래 범현대가 일람은 우선 정주영 회장의 동생 대("영"자 돌림)에 분가한 기업과 아들 대("몽"자 돌림)에 분가한 기업으로 분리하였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수정바람. 현재 크게 보면 10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2015년 기준 재계서열에 범현대그룹이 무려 7개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자산총액을 다 더해도 삼성그룹 하나에 못 미치는 함정이 있다만.

범현대그룹의 자산 및 매출 현황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참고하면 좋다.

7.1.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과 그들이 승계한 직계 기업집단[편집]

순서는 출생순서.

1남 정몽필은 주지하다시피 82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4남 정몽우는 음독자살, 그 자식들 몫으로 현대비엔지스틸이 있다지만 이 회사는 지금 현대자동차그룹 소속이다. 막내(8남) 정몽일은 바로 윗형인 정몽윤과 마찬가지로 금융 계열사를 받아 독립했으나 종합금융 사태 때 맛이 가면서 정몽준의 현대중공업그룹 우산 아래에 있으며 특별한 배려를 받았지만, 결국 경영에서 은퇴, 야인(野人)이 되었다.# 5남 정몽헌은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했으니[24] 8명의 아들에게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챙겨주려던 왕회장의 의도와는 별개로 정상적으로 기업을 승계한 아들은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7.1.1. 현대자동차그룹[편집]

차남 정몽구 / 그룹 부회장은 정몽구의 장남 정의선

7.1.2. 현대백화점그룹[편집]

삼남 정몽근. 이후 장남 정지선에게 회장 승계

7.1.3. 현대그룹[편집]

오남 故 정몽헌/현정은
  • 현대엘리베이터 : 현 현정은 현대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상선이 기타 제조업계열사와 현대증권을, 증권이 기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故정몽헌회장이 현대그룹 분리후 현대건설ㆍ전자의 부도로 담보로 제공했던 주식이 다 없어졌을때, 정몽헌회장의 자살 이후 現현정은회장이 처음 경영으로 나설때 모두 현회장의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주식(당시 약 18%정도)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현대그룹을 경영하였다. 이 지분은 당시 범현대가의 지분율과 맞먹었다. 김문희 이사장은 아직도 현대그룹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크며, 이것이 범현대가에서 현씨가 정씨의 회사를 접수하려한다는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킨 주요원인이 되었다. 이후 정몽헌회장 사후 초기에는 백기사를 자처했던 범현대가에서 현대그룹에 적대적M&A를 시도하게된다.
  • 현대상선 : 현대건설과 현대전자가 모두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사라지면서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2015년 현재 해운업 불황으로 수년간 누적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와중에 현정은 회장에게 거액의 보수를 지급해 온 것이 알려지면서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가 경쟁업체인 한진해운에 합병시키려 한다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부인하고 나섰지만, 상당한 수준의 검토가 이루어졌던 모양. # 오릭스로의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제3자 매각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택배를 이미 팔았고, KB금융에서 이전 매각가보다 비싸게 현대증권을 인수하였으며, 현정은회장의 사재를 출연하고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는 등 아버지의 유산[* 현정은 회장의 부친인 故현영원회장은 현대상선에 합병된 신한해운을 창업하였었고, 현대상선에 합병된 후 상선의 회장직을 역임하였으며, 이미 은퇴하였으나 故정몽헌회장의 사후에 경영에 복귀하여 범현대가의 적대적M&A를 방어하는 등 2006년 별세할때까지 딸 현정은 회장을 지원하였다. 회사를 직접경영은 안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는 어필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2016년 7월 현재 출자전환 유상증자로 인한 신주 발행으로 최대주주가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산업은행으로 변경되었다. #
  • 현대아산 : 故정주영회장의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 등 대북경협을 담당하는 회사.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 대북사업이 제대로될리가 없었고 2016년 현재는 완전자본잠식상태....


7.1.4. 현대중공업그룹[편집]

7.1.5.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편집]

칠남 정몽윤
  • 현대해상화재보험[37]
  • 현대하이카손해사정[38]
  • 현대하이라이프손해사정[39]
  • 현대C&R
  • 현대HDS
  •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 现代财产保险有限公司(현대재산보험유한공사) - 중국에서 자동차보험업 운영
  • 현대하이카다이렉트자동차보험[40]
  • 하이캐피탈대부 -> J트러스트에 매각되어 계열사 제외.

7.1.6. 현대미래로그룹[편집]

팔남 정몽일
  • 현대미래로
  • 현대기업금융
  • 현대기술투자

7.2. 정주영 회장의 동생/조카들이 분가한 방계 기업집단[편집]

7.2.1. 한라그룹[편집]

첫째 동생 정인영 회장 계열[41]. 현재 차남 정몽원이 회장으로 있다.
  • 한라홀딩스(구 만도)
  • (주)한라 - 사명과 달리 지주회사가 아니라 건설사이다.
  • 한라ENCOM
  • 한라스택폴
  •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7.2.2. 서한그룹[편집]

매제 김영주 계열. 현대 창업의 1등 공신이자 정주영 회장의 셋째동생 정희영의 남편이다. 김영주 회장 사후 현재 장남인 김윤수가 회장. '한국프랜지그룹'으로 되어 있었지만 홈페이지를 보면 서한그룹이다. 물론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부품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딸들한테는 아무 기업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여동생은 또 달랐던 모양.
  • 한국프랜지공업
  • 서한산업

7.2.3. HDC그룹[편집]

넷째동생 정세영 회장 계열[43]

7.2.4. 현대코퍼레이션그룹[편집]

다섯째 동생 故정신영 의 아들 前현대오일뱅크 정몽혁회장 계열. 현대종합상사는 왕자의 난을 거치며 은행관리로 넘어간것을 2009년에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인수하여, 정몽혁이 CEO로 임명되었다가 스스로 인수하여 2016년 계열분리하였다.

은행관리시절 사업다각화를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었는데, 특기할만한 것으로 '청도현대조선'이 있다. 2005년 조선경기가 활황일때 중국 칭다오의 '링산조선소'를 인수한 것으로, 이후 조선해운경기가 침체되자 한해 200억의 손실을 내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후 2015년 매각에 성공하였는데, 2500만달러를 추가투입하여 채무상환에 사용하고, 보유지분 66.25%를 단돈 '1$'에 매각하였다. 그렇게 해서야 이제 추가손실이 없을거라고 증권사에서 호재라 평가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위 현대오일뱅크항목에 기술된바 있는 정몽혁이 2010년 현대종합상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분은 2014년 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26세 아들을 법무팀 차장으로 입사시켰으며, 2015년 1월1일자로 현대씨엔에프 부장으로 발령내어 빈축을 샀다.

정몽혁氏가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할 자금이 부족하여 독립할 가능성이 낮다고 점쳐졌으나, 2015년 현대종합상사의 사업 중 브랜드관리사업과 육류유통사업만 현대씨엔에프로 분리시키고, 정몽혁이 현대씨엔에프를 인수 → 현대씨엔에프가 현대종합상사를 인수 하는 식으로 계열분리를 이루었다.
  •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 현대종합상사

7.2.5. KCC그룹[편집]

정주영 회장의 막내(여섯째)동생 정상영 회장 계열 [47]

7.3. 현재 매각된 기업[편집]

  • 구 현대전자[48]
    • 하이닉스반도체(구 현대전자의 메모리반도체부문)[49] : SK그룹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명칭 변경됨
    • 매그나칩반도체(구 현대전자의 비메모리반도체부문) : 2009년에는 미국 애비뉴캐피탈에 매각되었다.
    • 하이디스(구 현대전자의 TFT LCD부문) : 현대 하이디스로 분리 → 중국 대표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에 인수. 모든 기술이 중국으로 누출되었고, 현재 BOE는 LCD부문의 세계적 강자이다. → 대만 영풍그룹으로 매각. 영풍그룹은 특허권 임대로 매년 수백억의 이익을 올리고있다. 10년간 외국자본으로 주인이 계속 바뀌는동안 하이디스에 대한 투자는 전혀 없었으며, 공장은 폐쇄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근로자들은 정리해고되었다.
    • 현대아이비티(구 현대전자의 모니터생산부문) → 현대이미지퀘스트로 분리, 현재는 바이오산업을 주력으로 성장중
    • 현대통신(구 현대전자의 홈오토메이션부문)
    • 현대멀티캡(구 현대전자의 완성PC생산업체)
    • 현대큐리텔(구 현대전자의 휴대폰생산부문) → 팬택으로 합병됨
    • 현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구 현대 세가 엔터테인먼트) 현재 시티레이서를 엠플래닛으로 매각후 도산.
  • 현대방송 -> 넥스트미디어에 인수된 후(99년 9월) 2000년 3월 NTV로 변경되었으며 2001년 4월 제일제당그룹(현재 CJ)으로 넘어갔고 2002년 7월 홈CGV로 바뀌었다가 2005년 12월 채널CGV로 채널명 변경
  • 구 현대정유그룹[51]
    • 인천정유 → SK에너지로 합병됨
  • 현대석유화학 (롯데대산유화, LG대산유화, 씨텍 3개사로 분할)
  • 현대투자신탁 → 한화투자증권 [52]
  • 고려산업개발 → 두산건설로 사명 변경됨
  • 현대증권 → KB증권으로 사명 변경됨

7.4. 관련단체[편집]

8. 이름이 비슷하지만 관련없는 것들[편집]


[1] 이 사옥이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사옥 바로 옆에 대궐만하게 지어져서, 건축가들은 계동 사옥을 깐다고 한다. 참고로 계동 사옥이 지어지기 전에는 현대해상 사옥으로 불리는 광화문 사옥을 썼다. 현대건설이 이 사옥을 팔아서 현대해상이 매입하고 리모델링했는데, 리모델링 당시 상황이 명박산성 항목에 있다.(리모델링은 노무현 정부 때였던 2003년에 했다.)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참고로 이 사옥과 똑같이 생긴 호텔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 현대가 운영하는 호텔인데 현대에서 계동 사옥을 참조해 만든 호텔이다.[2] 2003년 8월 2일 이 건물 12층에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송금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도중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3] 1992년 준공. 그 전까지는 삼성카드에서 썼었다. 그러고보면 현대차그룹 사옥도 농협에서 사온 거긴 하다.[4] 현대그룹 광고를 보면 2000년대 후반부터 긍정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실 '긍정적인 사고'는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강조하던 덕목이기도 했다.[5] 외국 일부에서는 휸다이 또는 현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혼다랑 비슷하게 보이려고 저렇게 지었다'는 낭설이 돌기도 하는데 전혀 사실무근. 저 때는 ㅐ의 공식표기가 AI였다. 근대까지만 해도 'ㅐ'는 'ㅏㅣ'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예로 대한제국의 공식명도 DAI HAN이었다. 애초 현대라는 상호를 단 건 자동차 사업 훨씬 전이므로 시대고증상으로도 헛소리.[6]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가 됐지만 어쨌든 현대그룹의 기반이 된 현대건설의 창업시점을 설립일로 삼고 있다.[7] 2016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계열사 제외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자산총액 2조 5643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8] 그러나 2015년 재계서열을 보면 범현대그룹을 다 합쳐도 범삼성은 커녕 삼성그룹 하나에도 못 미친다(...)[9]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집안은 경남 의령군 내에서 대대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타고난 부자였던 셈.[10] 돈 벌겠다고 가출해서 대도시로 상경한게 총 4번이다. 처음 2번은 다시 돌아갔고, 3번째에 소판 돈 훔쳐서 서울 상경 후 학원에 다니다가 다시 돌아간 후에 4번째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간 다음 쌀집 배달꾼으로 취직한다.[11] 1997년 외환 위기부터 대우그룹 해체때까지는 오히려 삼성그룹대우그룹한테도 밀렸었던적도 있었다. 삼성그룹이 외환위기 당시에 돈이 안된다고 판단했던 사업체를 여러개 청산했고 대우그룹은 뭄집불리기을 시전했기 때문인데 대우의 몸집불리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대우그룹이 망해버렸고 반대로 삼성은 애니콜이 잭팟을 터트리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하게 되었기는 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현대그룹에게 압도적으로 뒤쳐진건 사실이었다. [12] 이렇게 된 데에는 삼성이 선대회장 사후 일찍부터 자녀들에게 계열분리를 한 것도 있다. 1991년 한솔그룹을 시작으로 새한, 보광, CJ, 신세계 등이 계열분리해 나갔다. 대우그룹한테도 밀린 이유 중 하나다.[13] 반도체공장 근로자 백혈병사망 산재불인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법조계는 방산비리범과 동급취급을 받는 중이다.[14] 당시 현대그룹은 주요계열사 중에 흑자를 내는 곳이 현대증권 뿐이었다. 반면 삼성은 캐쉬박스인 삼성전자의 수익과 삼성생명의 엄청난 자금력으로 자동차를 분리하는 선에서 그룹을 지켰다.[15] 반면 이 시기 삼성은 삼성전자라는 괴물 계열사의 눈부신 성장에 힘입어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원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16] 근데 육군은 장준규 육참 총장 취임 직후에 다나까체 사용이 폐지되었다고 한다.[17] 현대차의 경우 같은 작업 라인에서 일하는 데도 정규직과 사내 하청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가 두 배까지 벌어진다. 정규직에게만 주어지는 각종 복지 혜택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큰 차이. 그런데도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조와 아무런 협력도 없고 오히려 견제에 급급하다. 사실 같은 회사인데 노조가 여러개라는 것부터가 에러다.[18] 그러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한 점은 아이러니.[19] 이건 발음상의 문제이다. 지금은 'ㅐ' 발음이 단모음이지만 100여년전만 해도 이중모음('아''이'를 따로 빨리 발음하는 것과 비슷)이였기 때문에 그런 발음의 흔적이 남은 예전 사람들이 'ㅐ'를 AI로 표기한 것. 당장 아펜젤러도 '배재'의 영문표기를 PAICHAI로 한 것을 보면 그시절의 발음이 그랬다고 볼 수밖에. 참고로 해태의 영문명도 HAITAI이다. [20] 특히 혼다.[21] 三星, 일본어로 훈독하면 미쓰호시.[22] 실제로는 후지산이 아니었으나 딱 떠올리기 좋게 만들어놨다.[23] 참고로 진짜 현대그룹 계열의 병원 이름은 현대가 아니라 아산병원이다. 정주영의 호를 딴 것.[24] 그나마 며느리 현정은이 경영하게 된 좁은 의미의 현대그룹도 해운업 불황으로 인해 현대상선이 그룹에서 이탈, 사실상 해체되었다.[25] 1966.7. 삼양특수강 설립 → 1975.10.한국특수강 합병, 한국종합특수강 사명변경 → 1982.10. 삼미종합특수강 사명변경 → 1997.3. 부도 → 2000. 인천제철에서 인수 → 2002.3. 비앤지스틸 사명변경 → 2011.3. 현대비앤지스틸 사명변경[26] 1990년 정신질환에 대한 비관으로 음독자살[27] 1998년 고려산업개발에 흡수합병[28] 2002년 현대H&S에서 백화점사업부분을 가지고 분사한 회사이다.[29] 현대백화점을 분사시키기 전의 원래 현대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여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정수기(...)로 많이 알려졌다.[30]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개점시 한국무역협회와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그래서 사명도 한무쇼핑. 충청점 등 현대백화점의 일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31] 원래는 현대건설 계열사였다. 1999년에 계열 분리후 독립하였으나 경쟁 기업인 퍼니스측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 급히 현대백화점측에 SOS를 요청하여 2011년 11월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드림투어가 최대지분(23.07%)을 확보함으로써 현대백화점그룹에 편입되었다.[32] 정치인 정몽준 맞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중이다.[33] 본래 한라그룹소속의 한라중공업이었다. 한라그룹이 동반부도처리되어 자산을 가교회사인 RH중공업에 이관시킨후, 삼호중공업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위탁경영후 인수[34] 본래 현대백화점그룹소속이었으나 인수[35] 정주영 회장이 요절한 다섯째 동생 정신영의 유복자 정몽혁에게 맡겼으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IMF 크리로 해체후 아부다비국영투자회자(IPIC)에게 넘어갔으나 결국 2009년 11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로 현대중공업으로 인도되었다.[36] 울산 동구에 위치한 5개 학교(현대중학교, 현대고등학교, 현대청운중학교, 현대청운고등학교, 현대공업고등학교)를 보유한 재단. 울산의 5개 학교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 관리함. 서울의 현대고등학교는 별도법인으로,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관리함.[37] 1955.3. 동방해상보험 설립 → 1963.8. 동방해상화재보험 사명변경 → 1980.5. 동방화재해상보험 사명변경 → 1985.10. 현대해상화재보험 사명변경.[38] 1990.2. 한일자동차손해사정 설립 → 2000.2. 현대해상 자회사 편입 / 현대해상자동차손해사정 사명변경 → 2013.4.1. 현대하이카손해사정 사명 변경[39] 2002.6. 현대하이서비스 설립 → 2005.11. 현대하이카손해사정 사명변경 → 2013.4.하이카업무 이관 / 현대하이라이프손해사정 사명변경[40] 2005.12. 현대하이카다이렉트자동차보험 설립 → 2014.4. 현대하이카다이렉트손해보험(주) 사명변경 → 2015.5. 현대해상화재보험에 흡수합병[41] 신군부에게 현대양행의 중공업사업부(한국중공업 → 현 두산중공업)을 빼앗긴 것이 철천지한이되어 한국중공업 사옥이 보이는곳에 사무실을 마련하여 매일 내려다보았다고한다. IMF크리로 한라건설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정리되었다. 당시 재계순위 10위였으나 부채비율 1000%로 30대그룹 중에서도 최악이었다.한라중공업은 청산되었고, 김치냉장고인 딤채를 만들었던 만도기계(구 현대양행)의 공조사업부는 UBS컨소시엄에 매각되어 위니아만도가 되었으나 먹튀논란에 시달리고있으며 만도기계의 자동차부품부문은 만도가 되어 범현대가의 지원하에 한라그룹에서 되찾아왔다.[42] 김영주 前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의 차남 김근수가 회장.[43] 포니정 정세영 회장 계열. 별명처럼 평생을 현대자동차에 바쳤으나 정주영 회장이 빼앗아서 정몽구 회장의 현대산업개발과 맞바꿔주고 독립시켰다.[44] 오래된 현대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것.[45] 각하의 자서전을 보면 아파트 시장이 커질거 같아서 진출은 해야 하는데 당시 현대건설이 오일달러로 인해서 잘 나갈 시기라 '현대건설이 집 장사를 할 수는 없다!'란 내부 의견이 많아서 따로 회사를 만든것이라 함.[46] 원래 이 취소선 달린 대한축구협회는 정몽준 때문에 현대중공업 목록에 있었으나 협회장에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이 당선되면서 여기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룹 계열사라는 건 믿으면 바보겠지만 상당히 범현대가의 영향력이 강해왔던 건 사실이다.[47] 조카인 정몽구 회장보다 나이가 두살 많다!!(요절한 정몽구 회장의 형인 정몽필과 동갑이다...) 건축자재를 만드는 구 금강스레트공업과 도료를 만드는 고려화학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합병하여 KCC건설과 함께 KCC그룹을 이루고 있다. 범현대가의 주력인 건설, 자동차, 중공업 등에 사용되는 각종 건축자재와 도료납품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현기차 유리도 여기서 생산하고 있는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유일한 '영'자 항렬 어른이기때문에 집안관련문제에는 우선적으로 나서는 듯. 특히 조카며느리ㆍ형수 레이드는 이 양반이 주범[48] 2001년 회사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아래 명기된 회사 말고도 현대오토넷 등 매우 많다. 즉 회사내 사업부 하나하나가 다 별도의 회사로 분리되었다고 보면 된다. 상당수는 중소기업[49] IMF 당시 정부의 빅딜 방안에 따라 현대전자에서 LG그룹의 반도체부문을 강제로 합병, 그리고 이때 LG반도체가 넘어가는데 기여한 사람이 바로 이장석넥센LG관계를 생각하면...[50] 현대전자 산하였으나 분사 후 하이닉스 산하로 들어갔다. 모 기업인 하이닉스에 LG반도체를 합병시키는 데 기여한 이장석이 선수단을 인수하여 해체 후 우리 히어로즈로 재창단했다.[51] 다섯째 동생 정신영의 아들 정몽혁에게 맡겼으나 이후 그룹째 부도가 나게 된다. 이중 현대오일뱅크만이 우여곡절을 거쳐 현대가로 돌아왔다.[52] 미국 푸르덴셜그룹에 매각되어 푸르덴셜투자증권으로 변경, 이후 한화증권에 인수되어 한화투자증권으로 다시 변경[53] 실제로 현대그룹과는 털끝만큼도 상관 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에서 이 곳에 소송을 내기도 했다. SBI저축은행으로 사명이 바뀐 현재에는 옛말이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