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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개요
정식명칭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영문명칭
HYUNDAI MOTOR COMPANY
설립일
대표이사
정몽구, 윤갑한, 이원희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기업규모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편입지수
주식코드
모기업


2015년 A Message to Space(우주로 보낸 메시지) 광고. 이노션이 제작한 이 광고로 2015 칸 국제광고제(Cannes Lions 2015)에서 동상 3개를 수상했다.[1][2] 광고는 정말 기가차게 잘만든다.


2015년 그랜저 광고.

1. 개요2. 역사3. 역대 슬로건4. 상세5. 신차 수송6. 사업장7. 외국 시장
7.1. 외국진출 실패 사례7.2. 해외 시장 성공 사례
8. 언론에서 보는 품질9. 디자인10. 비판11. 생산차종
11.1. 승용차, SUV, RV, 승합차11.2. 버스, 트럭11.3. 기타 특정지역 전용모델11.4. 콘셉트 카
12. 직장생활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자동차 제조업계의 심장
대한민국 최대의 자동차 생산/판매 대기업이자 , 현대자동차그룹으로서는 2017년 현재 무려 세계생산량 2위, 현대자동차 단일로서 역시 세계 6위의 거대기업이자, 세계 대중차 생산의 중심이 되는 회사이다.

2. 역사[편집]

현대그룹을 창업한 故 정주영 회장이 일제강점기1940년 3월에 인수하여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운영했던 아도서비스[3]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그 근원으로 볼 수 있다.[4] 정주영 회장은 빨리, 완벽하게 고치고 수리비는 많이 받는 방침으로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1940~1942년 당시에는 자동차 보급률이 매우 낮았다. 그 때문에 자동차를 빨리 수리해야 고객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수리공장에서는 수리비를 더 받으려고 자주 늑장을 부렸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가 고장나면, 차주인이 발이 묶여 힘들어 한다. 그러므로, 빨리 차를 고치는 게 고객을 위한 길이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통 밤 12시까지 작업소에 머물면서, 고객들 차를 빨리 빨리 수리했다. 이처럼 "빨리 빨리"와 "빠르고, 정확하고, 납기 준수"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경영은 순조로워 수익을 많이 냈다.[5][6] 그러나 이후 공장이 불타 없어지고 전쟁까지 일어나자, 사업이 어려웠다. 결국 일제는 기업 통제정책인 ‘기업정비령’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 종로 5가에 있는 '일진공작회'로 정 회장이 소유하던 아도서비스가 강제 흡수·합병 되었다. 정 회장은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수리업을 그만두었다. 이후 아도서비스를 정리한 자금으로 트럭을 구입하여 석탄운반업[7]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 아도서비스를 반환받아 1946년현대자동차공업사[8]를 설립한다. 설립 직후에는 미군 병기창에서 하청을 주로 받았으나 점점 수요가 늘었고, 이 회사를 현대토건사가 흡수해서 현대건설로 변모한다.[9]

현대자동차의 공식적인 역사는 1967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시작한다. 1967년 12월 정주영 동생 정세영이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당시 자동차 최강국인 미국포드와 기술제휴을 체결했다. 또한 1970년대 중후반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도 기술제휴를 맺었다.

1973년에는 포드와 갈라섰고, 1980년대 중반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갈라섰다. 이후 독자적인 모델을 생산하려고 자체개발을 시작했으며, 일본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새로 잠시동안 체결했다. 그리고 한때 세계에서 자동차 산업이 가장 컸지만, 영국병과 잦은 노사 불화로 몰락한 당시 영국 최대 자동차 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 부사장이었던 '조지 턴불'을 영입하여[10][11] 엔진, 엑셀러레이터, 트랜스미션 같은 주요 부품 제작 기술제휴을 체결하였다.

1976년 대한민국 자동차공업의 자립화를 선언한 고유 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독자모델 생산을 시작하여 쏘나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떠올랐고, 아시아에서 2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이 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1977년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가 정주영 전명예회장을 만나 “현대가 포니의 독자 개발을 포기하면 모든 힘을 다해 현대를 지원하겠다. 중동 건설에서도 현대자동차를 도와주겠다”고도 하였으나 정 회장은 이를 거절했다. 관련기사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한국이 독자적인 엔진 기술을 개발해낸다면 자신들이 챙길 매출은 낮아지고, 한국이 독자적인 차량, 상품 등을 만들 수 있기 때문. 정주영은 결국 모든 압력을 무시하고 독자개발을 밀어붙였다.

1976년남미 에콰도르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국산차를 해외 시장에 내놓았다. 1980년대엑셀을 북미 지역으로 수출해서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전 세계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실 이 기간동안은 현대자동차의 사활이 걸린 기간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하자면, 故정주영 회장은 1960년대에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자동차 엔진을 자체 계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들의 전문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정부에서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중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 압박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여기서 중공업은 나중에 투자하여 키워도 된다고 판단했기에 현대자동차를 택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체 엔진 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에서 GM에 근무중이던 이현순 박사(前 현대자동차 부회장, 現 두산 부회장) 를 불러 엔진 자체 개발 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이때 정회장은 이현순 박사에게 자체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지원을 하겠다면서 설득했고 결국 이 박사가 이 제안을 수락하자 정회장은 연구소를 건설해주기 시작했는데, 이 연구소가 바로 현대자동차 마북리 연구소이다. 이현순 박사는 자체 엔진을 개발할 계획에서 멈추지 않고 선진국의 자동차회사의 뒤지지 않는 엔진을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성공확률은 낮았고, 주변에서의 실패할거라는 무시, 그리고 당시 미쓰비시에서 엔진 설계도를 사와서 제조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미쓰비시에서의 압박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현순 박사의 끈기있는 노력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로 자체 엔진을 개발해냈다. 프로젝트 내 이 엔진의 이름은 알파엔진 이였으며, 후에 베타엔진, 감마엔진을 설계, 개발했다. 하지만 감마엔진은 당시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이 미쓰비시의 시리우스2엔진과 관련하여 계약을 맺는 바람에 설계만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이후 이현순 박사는 감마엔진에서 성능을 더욱 향상시킨 세타엔진을 개발해냈고, 이 세타엔진은 바로 NF소나타에 장착되게 된다. 이후 2008년까지 타우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북미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 인근의 브로몽에다가 현지공장을 1986년에 착공하여 1989년에 가동을 시작했으며, "현대모터캐나다"라는 캐나다 현지 법인을 세웠다. 브로몽 현지공장에서는 쏘나타를 생산하여 미국 등지에 공급했다. 하지만 당시 북미 승용차 시장에서 일본 메이커들이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하는 등 초과공급인 상태에서 현대자동차는 당시에 품질이 떨어진다는 나쁜 평가를 받아 실적이 부진했다. 연간 1만대~2만대 가량 생산하는 데 그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등 누적 적자가 가중되어 1993년 10월에 가동을 중단한 후, 1996년 2월 현대모터캐나다를 청산하기로 결정하면서 브로몽 현지공장은 매각되었다. 덧붙여서 브로몽 공장을 지었을 때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았던 보조금도 모두 상환했다. 브로몽 공장의 청산은 현대자동차에게 있어서 악몽이나 다름없는 흑역사였고, 정세영 前 사장도 북미 시장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브로몽에다가 공장을 지은 것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1999년 3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였고, 2000년 8월 현대그룹에 있는 다른 계열사 9개를 가지고, 현대그룹에서 독립해서, 지금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였다.

정몽구가 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현재 현대자동차그룹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전혀 다른 기업 집단이다. 연간 차량 총 생산량 기준으로 기아자동차를 합치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이며(2013년 기준 756만대) 현대차가 별도로 생산하는 차량도 세계 8위 수준이다. 2009년 정몽구의 아들인 정의선이 부회장에 임명되었다.

3. 역대 슬로건[편집]

  • 우리의 차, 세계의 차 (1987~1992)
  • 좋은 환경, 좋은 차 (1992~1998)
  • For You (1998)
  • 기술의 현대, 품질의 현대 (2001)
  • Drive your way (2005~2010)
  •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 (2011~2015)

4. 상세[편집]

내수시장에서는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상품성과 동력성능을 자랑하며 넓은 실내공간이 특징이다. LPI엔진, 1.6~3.0리터 디젤엔진등 다양한 연료사용가능성과 염가패키지로 택시,렌터카,관공서등 플릿시장에서 또한 높은 시장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보쉬와 합자하여 케피코를 설립 했고(현재는 분리), 합자를 통한 기술 이전을 시도했으나 막상 보쉬의 보수적인 운영으로 큰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는게 중론. 독자기술개발에 꾸준히 투자하여 현재는 유럽일본의 자동차 기업과 비교하여 짧은 시간안에 상당한 수준까지 기술격차를 좁힌 상태이다. 그 뒤에는 보쉬가 있다 기술은 사오면 된다며 R&D와 엔지니어들을 천시하던 대우자동차의 행보 및 그 결말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알파엔진의 개발성공과 엑센트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협력관계를 통해 기술제공(엔진, 파워트레인 등)을 받아가는 기술종속적인 관계였으나[12] 현재는 자체기술을 바탕으로 한 설계능력을 갖추고 일부기술은 외국경쟁업체에 팔기도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13] 현재 에쿠스는 자체개발 모델로 탈바꿈하고, 프라우디아는 닛산 후륜구동 세단 OEM으로 나오는 2013년 현재를 보면 참 묘하다. 과거 80년대 미쯔비시는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엔진을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열티를 깎아줄테니 엔진 개발 연구소를 폐쇄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당시 엔진 개발을 하던 연구원의 책상이 출장 다녀온 후 없어지는 등 그 고초는 엄청났다.

그러나 결국엔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해 내고, 생산하고 자회사인 현대파워텍현대모비스를 통해 부품 및 소재까지도 서서히 자체적으로 생산, 소화해내면서 최근 10년간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내놓는 자동차 관련 기술이나 시스템이 늘어나는 추세.

독자적으로 개발한 주행 시스템 중 대표적인 것이 AGCS(Active Geomatric Control Suspension, 능동제어 서스펜션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AGCS는 YF에서는 제외되었는데[14], 다른 4WS와 비슷하게 잊혀져 갈 듯 하다. 개발자 후문으로는 초기 적용차들에서 좌우 액튜에이터가 반대로 장착된 채 판매되었다고 하니(1년 정도?) 초기 베타테스터들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GDI는 에쿠스를 도입하면서 미쯔비시에서 같이 넘어왔지만, 당시에는 단점이 부각되어 GDI엔진을 MPI분사로 바꾸는 등 엔진을 거의 새로만들어 시스템을 삭제했다.

2017년 3월 현재는 GDI 엔진을 4기통 1.6리터 엔진부터 8기통 5.0리터 엔진까지 폭넓게 적용 중.

타우엔진H엔진, G엔진을 발표하면서 휘발유와 디젤엔진 모두 자체기술력으로 일반승용차량과 상용차량 범위에서 사용되는 모든 배기량의 엔진을 설계/생산하게 되었다. 엔진을 직접 개발한지는 20년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엔진 성능은 상당히 뛰어나며 고연비를 내고 있어[15] 대체적으로 평가가 좋은 듯. 참고로 에쿠스와 제네시스[16]에 탑재된 타우 V8 엔진은 미국 Ward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내리 선정 되기도 했다.Ward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the Tau continues to dazzle with its combination of silky, smooth power delivery, aggressive tip-in, satisfying exhaust note and admirable fuel economy." V8 타우엔진 말고도 아반떼에 들어가는 M16 GDI엔진도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된적이 있다.

또한 2.4 GDI 엔진의 YF 쏘나타는 미국 EPA 측정 기준으로 고속도로에서 35 MPG의 연료 효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하이브리드급에 육박하는 동급 최고의 연비이며, 출시 당시 중형세단 중에서는 혼다 어코드토요타 캠리등 이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 또한 미국인 드라이버 중에는 2.4엔진의 YF 쏘나타로 66 MPG 까지 달성했던 드라이버도 있었으니 #[17] 다만 위의 연비는 미국에서 뻥연비로 지적되어 소송걸렸었고, 깔끔히 털렸다...

또한 디젤엔진 기술에 있어 일본 업체 대비 경쟁력이 높지만[18], 디젤의 종주국 유럽 업체와 비교하면 연비를 비롯한 전체적인 성능면에서 다소 열세에 있으나 대중자동차 시장에선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년간 빠른 속도로 엔진개발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쪽도 외계인 고문설이 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기도 한데..[19][20]

Fast follower 측면에서 보면 2001년에 발매된 BMW의 밸브트로닉과 동일하게 스로틀 대신 흡기 밸브의 개방량을 통해 출력을 제어하는 CVVL 을 2012년에 판매하고, 벤츠나 포르쉐 카이엔과 동일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바로 다음해에 판매하고 있다. CVVL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지만, 하이브리드는 발매 바로 다음해에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나와 Follower 로 보긴 어렵다.[21]

파워트레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나 대중차시장 한정이고 6기통 8기통 가솔린엔진은 다운사이징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 최신 엔진 기구 cvvl, gdi등 다양한 기술들을 엔진에 적용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미 선진업체가 5~10년전에 적용한 한세대 이전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6기통이상 가솔린 엔진의 경우 10여년간 기존설계 엔진에서 보어업등 수정만 하다보니 독일업체의 엔진보다 연비가 많이 떨어지는 데서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사실 현대차가 대배기량 엔진을 개발한게 워낙 최근 일인 탓도 있다. 현대 에쿠스 2세대의 타우 4.6, 5.0 엔진이 나오기 이전엔 4L 이상 엔진은 버스, 트럭 엔진 뿐이었다. 1세대 에쿠스의 것은 미쓰비시 것에 가깝다.

변속기 대부분을 자체개발 하고 있다는 점은 선진 자동차 업계 후발주자로서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22] 전 세계적으로 자체변속기를 개발하는 자동차 회사는 VW, GM, 벤츠, 토요타, 닛산 등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드물며 대부분 ZF나 자트코,아이신등 선진 변속기 전문 제조업체로 부터 변속기를 사와서 장착한다. 그나마도 토요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는 일부차종에만 적용하고 생산규모가 떨어지는 후륜구동 변속기나 DCT는 서플라이어로부터 공급받는게 일반적이나 현대는 상용차 몇개 차종을 제외하면 소형 전륜, DCT, 대형 전륜,대형 후륜 등 전륜4속~후륜8속 모두 파워텍, 모비스, 다이모스, 위아 등 계열사로부터 자체공급받는다. 한편 한국GM은 미션을 국내에서 만들었다가 욕만 처먹고 망했다 크라이슬러에게 전륜 6속 변속기를 공급하는 등 경쟁사의 현대변속기 채용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무파일:FP7Ktue.jpg

2015년 9월에 고성능 브랜드인 "현대 N"을 발표했다.슬로건은 BMW M 엔게이지드(Ngaged). 남양연구소에서 개발/기획되어 모터스포츠에 참여하고 뉘르부르크링에서 자체 검증을 한 후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과 모델은 항목 참조.

차 네이밍에 를 많이 쓰는 편이다. 나타라든가, , 타페, 라티라든가... 사실 쏘나타는 슬픈 사연이 얽혀있다[23]

2015년 11월에는 차량의 이름으로 사용되던 제네시스를 현대자동차의 독자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시키면서 도요타-렉서스처럼 투-트랙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제네시스에 대한 PR이나 개선, 디자인 등이 에쿠스보다 가시적이었고 선호도가 높았던 점 등으로 인해 언젠가는 독자 브랜드로 출범하리라 예상했기에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라고.

여하튼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지대한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만일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한 자동차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기술과 부품은 외국에서 사와 조립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보자. 매년 적게는 수 천에서 많게는 10여 만대의 차량을 외국 회사와 외국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러한 국부 유출을 막은 것만으로도 현대자동차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말 후발 공업 국가들 중 자동차 산업의 기반이 약한 국가들은 경제 개발이 이루어질수록 차량 수요가 증가하는데, 동시에 차량에 대한 무역 적자가 심화되어, 일정 단계 이상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국가에선 차량 가격이 상당히 비싸므로, 차량이 사치품으로 여겨지며 소비에 다양한 규제가 발생하기도 한다[24].

5. 신차 수송[편집]

신차 탁송을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맡고 있다. 정씨일가가 최대주주인 비상장기업으로 자사내 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한 계열사이다.[25][26] 탁송에 드는 비용은 차량과 지역에 따라 다르며 보통 수십만원선.[27]

한국에서 유일하게 철도로 완성차를 수송할 수 있는 회사다. 자동차 전용 화차를 40량 보유하고 있으며[28], 이를 이용해 울산공장[29]에서 생산한 차를 태화강역에서 화물열차에 실어 광운대역(舊 성북역) 인근의 성북출고센터로 수송한다.

6. 사업장[편집]

국내엔 3개의 공장이 있다.
  • 울산공장 - 울산광역시 북구 양정동 700번지 소재, EQ900, G80, 투싼, 맥스크루즈, 아반떼 등 총 15종[30]의 차량 생산
  • 아산공장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 123 소재, 쏘나타, 그랜저, 아슬란 총 3종의 차량 생산
  • 전주공장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800번지 소재, 카운티, 에어로타운, 에어로시티, 메가트럭, 엑시언트 등 총 11종의 버스, 트럭, 특수차량을 생산

2개의 연구소가 있다.
  •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소재
  • 현대자동차 의왕연구소 - 경기도 의왕시 소재


또한 해외 7개국[31]에 공장이 있다.


7. 외국 시장[편집]

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able And Inexpensive[32] 에콰도르와 캐나다에 포니를 수출한 이후로 후속인 엑셀을 통해 북미시장을 위주로 시장진출에 노력하였다,[33] 1986년 포니엑셀이 대미 수출 첫 해 16만 여대가 판매되어 그 해 최다 판매된 소형 수입차에 선정되었다. 싼가격과 괜찮은 상품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 그러나 1988~1989년에 이르러서 수출된 차들의 품질문제가 드러나고, 제대로 된 정비망을 갖추지 못하며 시장의 평가가 극도로 나빠졌다. 고장나도 부품을 구할 곳이나 수리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후 모델인 엑셀이나 엘란트라, 아반떼와 같은 차량들이 포니엑셀보다 품질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각인된 품질은 1990년대 말까지 TV쇼 조롱거리의 단골메뉴로 등장하였다. 2000년대 들어 미쓰비시플랫폼을 졸업하고 기술자립도가 늘어나 개발한 차종이후부터 좋은평가를 듣고있으며 앨라배마 주에다가 승용차 공장을 세운 2005년 이후부턴 본격적으로 판매하는 국가에서 제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해외공장 설립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는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전 지역에서의 고른 판매신장으로 수출전략을 조정하여, 러시아의 쏠라리스, 중국의 NFC, 위에둥 ,인도 i10, 남미의 HB20x등 대륙별 전용 공략차를 내놓기 시작하는 등 개발과 수출의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자적인 브랜드 체계로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i 시리즈'가 있다. 유럽사람들이 워낙에 실용적인 모델을 좋아하는지라 언론의 평가는 좋았으나, 실제 판매량은 그닥 좋지 않다. i30씨드의 경우 좋은 평에도 불구하고 해당 세그먼트에서 폭스바겐 그룹의 염가 브랜드이자, 체코 브랜드인 스코다보다도 판매량이 적다.

북미시장에서는 2000년대 후반 들어 YF쏘나타, 엘란트라 (아반떼의 북미시장 출시 명칭)를 앞세워 판매량을 대폭 늘려나가고 있다. 현재 엘란트라외 쏘나타 모두 동종 차급에서 5위 이내의 훌륭한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중동권에서도 현대자동차를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일부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흘러들어갔다. 포로수송용 차량으로 쓰이거나 테크니컬로 마개조되기도 한다고.아랍 에미리트 같은 기름나라 에선 이렇게 쓰인다

이젠 전세계 사람들이 HYUNDAI라는 이름을 접할수 있다보니 참으로 다양하게 사명이 발음된다고 한다. 현데이, 휸데이, 휸다이, 현다이(미주지역) 심지어는 하이언다이(영국을 위시한 유럽지역, WRC 중계 보면 이 발음이 줄창 들린다.) 등등. 안타까운것은 일본 회사인 혼다(HONDA)를 따라 만든 사명이라고 오해를 사는 것으로 이는 모기업인 현대가 세워진 배경을 알면 헛소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1. 외국진출 실패 사례[편집]

200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시장 진출을 전개했다. 클릭과 투싼, 쏘나타, 그랜저 네 모델을 투입[34]하였으나, 일본 제품과 성격이 겹치는 동시에 외산차 품질에 대한 신뢰가 극히 낮은 일본 소비자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고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차종이 아니어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35] 아줌마 부대를 타겟으로 배용준을 모델로 판촉에도 노력하였으나 결국 시장 철수를 하며 NF를 반값에 팔고 일본 시장을 떠났다. 승용부문 사업을 전부 철수한 후 현재는 대형버스인 유니버스 하나로만 일본에서 버티고 있다. 일본의 대형버스는 가격이 3억이 넘는 등 매우 고가이고 내구연한도 딱히 정해진 게 없어서(배기가스 규제에 걸릴 때 대개 대차) 대폐차 간격이 긴 편인데, 유니버스는 가격이 싸고 일본산 버스 대비 연비와 출력, 내구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유니버스일본 내 수입 대형버스 시장에서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적이 있다.

2011년 현재 일본에 2리터급 터보 후륜구동 차량이 멸종하여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후륜구동 스포츠 쿠페인 제네시스 쿠페일본에 일부 병행 수입되고 있는 상태. 토요타 8686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체적인 개발이 아닌 계열사로 편입한 스바루의 BRZ를 바탕으로 빠르게 내놓은 것도 2L급 후륜구동 터보 쿠페 모델의 부재 속에 불어닥친 제네시스 쿠페의 병행수입 모델의 인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도 있다.

2015년 헝가리노르웨이 법인을 철수하였다. 해당 국가 신차 시장규모가 작고 시장점유율사정이 좀처럼 나아 지지 않는 국가에 한해 현지국가 법인을 정리하고 근처유럽법인 소속으로 귀속시키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이다. 사무실 법인이 철수 하는 것이지 시장에서 철수 한 것은 아니며 판매 채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는 하나 동유럽 일부국가와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 장기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걸로 봐선 해당국가에서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 전에는 1989년 캐나다 퀘벡 주 브로몽에 현지공장을 세워 Y2를 만들었다가 부진으로 1993년에 가동을 중단하고 청산한 흑역사가 있다.

어중간한 사례로는 홍콩이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995년 이전에는 진출했던 곳으로 보이며, 1998년 외환위기 즈음 철수했다가 2003년 현지 판매대리점을 선정해 재진출.

7.2. 해외 시장 성공 사례[편집]

현대자동차의 해외 시장 전략중 한가지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차량 모델을 해외에서는 비록 차량은 동일하더라도, 명칭을 해외의 현지 시장에 맞는 모델로 변경하여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즉 각각 국가별로 친숙하고 잘 먹힐 수 있는 명칭을 찾아서, 차량의 이름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서 한국시장의 기존 싼타페급 차량이 미국, 유럽 등에서 각각 다른 명칭으로 판매되었다. 아래의 표처럼 말이다.
코드네임
DM
NC
대한민국
싼타페
유럽
싼타페
그랜드 싼타페
북미
싼타페 스포츠
싼타페

현대자동차의 해외 진출 성공 사례로는 인도 시장이 있다. 인도 시장에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하여, 현지화 전략을 통해 2016년까지 25년 정도 성장하는 등 정착에 성공했다.

판매 1위를 한 것은, 인도 전체 SUV 중에서 현대 크레타(Creta) 모델이며, 이것은 혼다재즈 등 일본차들을 제치고 한 것이라서 의미가 크다. 또한 i20 차량의 경우 3년째 인도 올해의 차에 선정되어 현대자동차가 인도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데 기반을 잡도록 했다. 인도에서 히트를 친 차량 명칭인 크레타는 신뢰(confidence)를 의마하는데, 크레타라는 차량 이름은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만 사용하고, 그 외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며, 내수 시장 및 북미, 유럽 시장의 경우 크레타를 판매하는 대신 코나라는 이름의 SUV를 따로 개발해서 내놓았다.

인도 시장에서의 성공 비결은 인도의 현지 문화를 존중하여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서 소형차 시장에서 준중형 SUV까지 확대한 전략이 크며, 특히 일본 미쓰비시 등으로부터 기술 지원으로 처음 개발된 한국차량이 오히려 일본 제조사보다 앞선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기사

대한민국의 경제는 무역 의존도 90% 이상이며, 자동차 산업이 무역의 주축을 차지하므로, 현대자동차의 수출 증가는 대한민국 경제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

8. 언론에서 보는 품질[편집]

신차품질은 우수하나 내구성 품질은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36] 가격대비 품질은 이미 해외 유수 기업을 거의 따라잡았고, 최근 모델들은 과거에 비해 <올해의 차> 등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편. 또한 미국 컨슈머 리포트, JD Power, 영국의 Driver Power, 프랑스 L’Automobile Magazine, 호주, 뉴질랜드 등등 해외 각국의 미디어에서 품질과 소비자 만족도에서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BBC 탑기어는 제외한다...) 2010년 10월 토요타 사장은 「한국차는 일본차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라고도 하였다.[37]

미국 J.D. 파워가 2014년 내구품질조사(Vehicle Dependability Study, VDS)에서 31개 메이커 중 27위를 했다. 크라이슬러보다, 미쓰비시보다 낮은 순위다. 2016년의 동일 조사에서는 19위로 올라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를 제쳤다.[38]
오토모티브 뉴스가 데이브 사전트(Dave Sargent) J.D. 파워 자동차 담당 부사장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사전트 부사장은 ”엔진의 부정확한 반응과 거친 변속기, 출력 감소 등을 개선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연비를 높이는 것 만큼 품질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39]
그러나 급성장하며 치고 올라오는 현대의 품질력에 폭스바겐도요타는 미래의 라이벌 중 하나로 현대를 꼽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차기 폭스바겐AG의 수장이 될 확률이 높은 울리히 하켄베르그 폭스바겐 R&D 총괄은 2010년 파리모터쇼에서 직접 현대차 부스를 찾아 신제품을 살펴보는 한편, 임원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9. 디자인[편집]


YF 소나타의 충격적인 디자인 이후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통일된 디자인 테마를 강조하고 있다. 공기 역학적인 유선형의 디자인과 함께 벤츠 CLS에서 영향을 받은 4도어 쿠페 스타일을 전면에 내밀고 있다. 다른 차에서는 볼 수 없던 신선한 디자인이 매력이자 단점. 때문에 일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디자인 스튜디오가 세계 여러군데에 있는데, 그 중에 유럽의 러셀하임 디자인 스튜디오, 미국의 캘리포니아 디자인 스튜디오, 한국의 남양연구소에서 만든 디자인들이 서로 경합해서, 이 중에 하나로 결정되는 식이다. 즉, 각 디자인 스튜디오끼리 서로가 적인 셈. 그래서 그런지 디자인 취향이 서로 다르다. 유럽 디자인 스튜디오는 헥사곤 그릴이다. 같은 회사인데 그릴 모양조차 서로 통일되지 않았다. 전직 BMW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현대차 유럽 디자인 센터장 뷔르클레는, "BMW라는 브랜드는 디자인 언어가 고정돼 있어 디자이너들의 자유가 적은 반면 현대차는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테니스 코트에 디자이너들을 던져놓고는, 그 안에서 자유로운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해준다"고도 하였다. #

참고로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아반떼HD, 싼타페, 1세대 투싼이 미국에서 디자인됐고 신형 투싼, 쏠라리스(베르나의 러시아 모델), i시리즈는 독일 뤼셀스하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재밌는 것은 한국차이면서 디자이너가 거의 미국인과 유럽인들이다.

다만 이 디자인 흐름이 2013년 1월부터 기아자동차의 CDO인 피터 슈라이어가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를 총괄하는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변화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 듯.


독일 국제방송 Deutsche Welle에서 취재한 현대자동차 러쎌하임 디자인 스튜디오. 이 곳의 센터장이 전직 BMW 디자이너다.

2015년 11월에는 푸조, 아우디, 세아트, 스코다, 람보르기니, 벤틀리등 폭스바겐 그룹 출신 디자이너를 역임한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했다. 또한 2016년 5월에는 한국인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상엽씨가 현대디자인센터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영입된 바가 있다. 참고로 상엽씨는 세계 최고 자동차 디자인 대학인 미국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을 졸업하였고 미국GM에서 트랜스포머의 범블비 차량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있다. 영화 개봉 후 실제 범블비(카마로)가 큰 인기를 얻자, 이상엽씨는 아우디의 러브콜을 받고 폭스바겐 그룹에서 결국 벤틀리 선행 디자이너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현재 다시 고국인 한국에서 일하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향후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씨의 자리는 투탑으로 이어질 전망이며 현대, 기아, 제네시스 3브랜드를 총괄할 것으로 보고있다. 피터슈라이어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본사 사옥을 비롯한 시설에 대한 보안이 철저하다. 방문객이나 하청업체 직원, 알바생 등이 현대차 시설에 들어오는 경우에 내부 사진을 찍거나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위해 휴대폰 카메라 렌즈 부분에 특수스티커를[40] 붙이게 하거나 USB등 저장장치가 있는지 검사한다. 특히 남양연구소[41] 같은 중요 시설의 경우에는 출입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공항에서 사용 하는 X-레이 투시기까지 구비하고 있다.

10. 비판[편집]

현대자동차/비판 문서를 참조.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문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민을 호구로 봐서 까인다" 이다.
하지만 현재 개선중인 부분도 있다고 하니 일단 문서에서 확인해보자.

11. 생산차종[편집]

11.1. 승용차, SUV, RV, 승합차[편집]

11.2. 버스, 트럭[편집]

11.3. 기타 특정지역 전용모델[편집]

  • 중국
    • 위에둥/첼레스타(Celesta/悅動, HDC) - 아반떼(HD)의 중국 전용 모델.
    • 링샹(領翔, NFC) - 쏘나타(NF)의 중국 전용 모델.
    • 루이나(瑞納, RBC) - 엑센트(RB)의 중국 전용 모델.
    • 위에나(悅纳, YC) - 엑센트의 중국 전용 모델. 중국 제외 기타 국가는 프로젝트명이 HC로 중국형과 다르다.
    • 랑둥(朗動, MDC) - 아반떼(MD)의 중국 전용 모델.
    • 밍위(名驭, EFC)) - 쏘나타(EF)의 중국 전용 모델.
    • 이란터(伊兰特, XDC) - 아반떼(XD)의 중국 전용 모델.
    • 투성(途胜, JMC) - 투싼(JM)의 중국 전용 모델.
    • 미스트라/밍투(Mistra/名图, CF) - i40 살룬급 모델로 한때 쏘나타 후속으로 의심 받은 모델.
    • ix25(GC)
    • 레이나(Reina/추가바람) - 기아 페가스와 동급의 차량으로 루이나보다 한단계 아랫급 차량.
  • 미국
  • 인도/유럽
    • 상트로(MXi) - 아토스의 인도 전용 모델. 한국에서는 비스토로 판매되었다.
    • 이온(EON)(HA) - 인도 전용 모델. i10의 아랫급이다.
    • i10(PA→BA/IA) - 인도/유럽 전용 모델. 아토스의 후속모델이다.
    • Xcent - 인도 전용 모델. 그랜드 i10을 기반으로 한 세단형 모델이다.
    • i20(PB→GB/IB) - 인도/유럽 전용 모델. 클릭의 후속모델이다.
    • 매트릭스(FC) - 유럽 전용 모델. 라비타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이고 후속모델은 아래의 ix20이다.
    • ix20 - 유럽 전용 모델. 벤가의 현대차 버전.
    • i30(GD) 3도어, 왜건 - 유럽 전용 모델. 2세대 i30의 가지치기 모델이다.
    • 크레타(GS) - 소형 SUV. ix25의 인도 판매용 모델.
  • 러시아
    • 솔라리스(RBr) - 엑센트의 러시아 시장용 모델. 내수용과는 디자인 일부와 옵션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 브라질
    • HB20(HB) - i20 바로 아랫급으로, 남미 전략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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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콘셉트 카[편집]

12. 직장생활[편집]


취준생들이 꿈의 기업으로 손꼽는다.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도 기아자동차와 함께 완성차 분야 갑이기 때문에, 구직자들이 상당히 좋아한다. 연봉도 삼성그룹에 있는 어지간한 계열사들을 능가한다.[46] 다만 대기업 중에서 군대문화로 대표되는 후진적/남성적 기업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회사기 때문에 단순히 연봉만 보고 갔다가 성격과 맞지 않아 퇴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생산관리의 경우 생산공정 관리, 보전 등과 같이 플랜트를 담당하는 대졸 신입사원 또한 적은 인원을 채용하며 지역 출신을 좀 뽑는다.

기술직(前 생산직)으로도 꿈의 기업이나 뽑는 인원이 엄청나게 적어 고졸 및 초대졸[47] (現 전문대졸)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직 모집은 최근 약 8년여 만에 겨우 100여명 채용하였으며 [48] 공장 특성상 굉장히 시끄럽고 반복작업이며, 따라서 근속년수가 길어지면 근육통 / 요통 / 청력저하에 시달린다. 주간 연속 2교대 전에는 2조 2교대, 12시간 철야 근무를 하였으나 주간 연속 2교대 채택 이후로는 오전 06:45~오후 3:30인 1조(아침식사를 식당에서 판매한다) 와 오후 03:30 ~ 익일 새벽 00:30 (잔업포함)인 2조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이건 생산라인 기준이다 기술직은 근무시간이 다르긴 한데 공장이 12시 30분까지 계속 돌아가는 바람에 야근이 엄청나게 많다.) 각 조는 1시간 30분 근무, 10분 휴식의 반복 및 식사시간으로 구성되며 식사시간은 평일 40분 / 주말, 공휴일 특근의 경우 50분이었는데 주간연속 2교대가 되면서 40분으로 고정되었다. 주간연속 2교대의 도입으로 회식은 물건너가게 되었으며 1주일마다 주야근무가 바뀌는건 덤. 또한 공장 복불복(?)도 있어서 바쁜 부서에 배치되면 공휴일과 토요일은 사라지게 된다당분간은 신입으로 뽑을 예정이 없겠지만... 출결과 관련경력을 많이 보므로 고딩때 출결이 좋지 않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길 바란다. -> 채용관련 팩트는 18년도까지는 사내하청에서 정규직으로 신규채용을 하기에 일반인은 채용을 안할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16년기준 향후 10년간 정년퇴직자가 13000여명이다. 링크 / 18년이후로는 신규채용을 기대해볼만하다.)

울산에서는 유명한 아르바이트 장소이며 현대자동차 그룹의 위상이 올라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인맥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꿈의 아르바이트로 불린다. IMF때 직원의 1/3이 해고되는 경험을 한 후 노동자들이 평생직장의 개념을 잃고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안그래도 강성이였던 성향이 더욱 강해졌고 울산공장만 해도 직원이 3만명이 넘기 때문에 울산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거의 현대자동차 근로자이며 (혹은 현대중공업) 타 공장까지 포함하면 4만명이 넘는 이 근로자의 힘과 IMF의 교훈(?)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 노조는 국내 최대, 최강의 노조가 되었다.

현대문화 + 공돌이를 생각하면 연구직의 근무환경은 뻔할 것이다. 남양연구소에서 공밀레 소리가 들려온다 카더라 실제로 연구소의 근무환경은 무척 좋은편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현대차는 노사 갈등으로 인해 여름 시즌/겨울시즌 휴가를 회사에서 지정해준 일자 외에는 휴가를 보낼수 있는 기회가 그다지 없다.

1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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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SA의 협조는 당연히 이뤄졌지만 국가공무원이자 군인인 우주비행사를 상업 광고에 대놓고 써먹기는 곤란했는지 딸과 부인만 얼굴이 나온다. 실제 이 우주비행사는 ISS 엑스퍼디션 43 사령관 테리 버츠(Terry Virts) 미합중국 공군 대령이다. 2015년 6월 우주 체류를 마치고 귀환했다.[2] 나무파일:external/cdn.ruvr.ru/9RIAN_02531797.HR.ru.jpg 척 봐도 누구 딸이구나 알 정도(...)[3] Art Service[4]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현대자동차의 공식적인 회사연혁에 포함되지 않는다. 모터트렌드지의 정몽구 회장 기사에서 현대자동차의 시작을 정주영 회장 형제들이 운영하던 정비소라고 서술한 것을 보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내용으로 보인다.[5] 이때 고객의 운전수였으며 자동차정비에 유능했던 김영주를 영입하였는데, 정주영회장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훗날 현대그룹의 방계인 한국프랜지그룹을 분할받아 독립한다.[6] http://www.reportnet.co.kr/knowledge/pop_preview.html?dn=1136687[7] 아도서비스 직원도 징병되는 등 전쟁이 한창인 시절이었으나, 정회장은 나이가 많아 징병대상은 아니었고 징용대상이었으나, 석탄운반업을 하면서 군수산업종사자로 분류되어 징용이 면제되었다고 한다.[8] 현재의 현대자동차 원효로 사옥 및 서비스센터 공터다.[9] 흡수로 표기하고 있지만, 故 정주영 회장의 두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는 "전쟁통에 건설업자들이 미군 자금을 긁어가는 걸 보고, 우리 회사 역량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간판부터 우선 올리고 봤다." 라고 회고하고 있다. 아마도 서류상으로 법인을 현대토건으로 흡수시켰다는 이야기인 듯.[10] 이후 그를 현대차가 스카웃해서 훗날 현대자동차 부사장에 오르기도 하였다.[11] 그 무렵 때마침 영국 유수의 자동차 회사인 BLMC(British Leyland Motors Corporation) 부사장 조지 턴불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정주영은 설득의 천재였다. 그는 턴불과이어 1974년 7월부터 1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연산 5만6000대 규모의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포드사와 완전 결별한 후 3년이 지난 1976년 1월, 현대자동차는 최초의 국산차 ‘포니’를 탄생시켰다."(기사 발췌)[12] 실제로 이 관계는 상당히 최근까지도 유지되어서, 2008년 에쿠스(LZ)가 단종되어서야 현대-미쯔비시의 기술종속관계가 끝나고 되려 미쯔비시가 현대의 엔진을 가져다 쓰는 역 종속관계로 뒤바뀌게 되었다.에어로타운아직 있잖아(랜서/랜서 에볼루션 X의 엔진블럭은 모두 현대 세타엔진)[13] 현대 알파 엔진현대 세타 엔진 참조.[14] 다만 이것은 회사의 원가 절감 문제가 아니라 당시 선택률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당시 VDC가 40만원 AGCS가 80만원 이상이었으니...당시 VDC 선택률도 상당히 낮았다.[15] 공인연비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나, 2014년 미국에서 뻥연비라고 대판 까이고 소송에서 털렸다.[16] 북미 수출판 및 프라다 한정. 유럽 수출판은 아예 없으며, 북미 수출판은 3.3 람다는 없고 3.8람다와 4.6 타우 뿐이었다. 후일 5.0 타우로 교체. 한국에는 제네시스 프라다가 5.0 타우를 달았다가 안 팔리니 3.8 람다도 내놓았다.[17] 엔진이 받는 상은 Ward 선정 10대 엔진 말고도, 32개국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을 모아놓고 선정하는 ‘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 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현대차 엔진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8] 일본 업체는 일본특유의 디젤 혐오증으로 기술개발을 등한시해 닛산은 벤츠, 토요타는 BMW의 엔진을 빌려와 자사 차량에 적용 중이다. 사실 일본은 디젤값이 휘발유보다 비싸다.[19] 비교대상을 일본업체로 삼으면 안 된다. 사실 일본업체들은 미국업체 만큼이나 디젤엔진에 관심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고연비를 실현하기 위해 하이브리드엔진을 택한것.[20] 정작 디젤엔진에 관심이 많은 건 유럽업체들. 그중에서도 세계제일은 단연 독일. Diesel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봐라 디젤엔진으로 하이브리드급 연비를 뽑고 경주차도 만들고있다.하지만 디젤게이트가...[21] 프리우스가 나오면서부터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양산형이 나올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준수한 성능은 마련한 듯.[22] 대형트럭용 다단변속기를 제외한 모든 변속기를 자체 생산한다. 자동/수동 모두.[23] 1세대 나타는 현대 스텔라 고급판인데 당시는 저배기량의 약해빠진 엔진이라도 대형차를 원하던 시대였기에 망했다. 그리고 경쟁사 회장"소나 타는 차"라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현대 입장에선 진짜 흑역사였는지 한동안 소나타는 쏘나타 누적판매량으로 넣지도 않았다. 그런데 누적 판매량 1천만 대 채우기가 조금 부족해지자 소나타도 넣어서 1천만 대 팔았다고 홍보했다.(...)[24] 대한민국도 자동차 공업이 발전하여 차량의 대량 생산이 정착되기 전까진 차량이 사치품으로 여겨져 이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있었다.[25] 이와 같은 업체로 현대엔지니어링( 구 현대엠코), 이노션 등이 있다.[26] 현대엔지니어링(구 엠코건설)도 마찬가지의 경우로 계열사내 내부거래를 독점하여 회사 사주일가의 후대 세습을 위한 발판이 되어지고 있다. 내부거래 일감을 몰아주어 회사가치를 상승시킨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일순간에 부를 축적, 현대차 그룹 주식을 물려받을때 내야할 증여세를 내기 위한 발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27] 섬지역의 경우 탁송료가 높다.[28] 사실 이 화차 40량도 국내 유일이다. 코레일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지않다.[29] 아산이나 전주공장은 해당사항 없음. 아산공장은 역이 너무 멀고, 전주공장은 상용차 생산공장이라 아예 수송이 불가능하다. 특히 아산공장의 위치는 아산만이 가까운 아산시 인주면이다. 온양온천역이 위치한 온천동이나 신창역이 위치한 신창면에서 멀다! 사실상 아산 외곽에 있다고 봐도 무방.[30] 아반떼, i30, 아이오닉, 맥스크루즈, 포터2, 그랜드 스타렉스, 제네시스 EQ900, 제네시스 G80, 투싼, i40, 싼타페, 코나, 엑센트, 벨로스터[31] 미국, 브라질, 러시아, 체코, 터키, 인도, 중국[32] 현대를 조롱하는 대표적인 우스갯소리. 미국 시장 진출 초창기에 수출된 차량들의 형편없는 품질 문제로 생긴 말이지만 인식을 바꾸는게 영 쉽지 않은지라 지금도 자주 보인다.(...)[33] 미국식 중형세단인 쏘나타와 싼타페가 우리나라 국민차가 된 것도 내수시장이 작은탓에 수출시장 위주의 차종편향 때문이다.[34] 클릭-TB, 투싼-JM, 쏘나타, XG, 그랜저 등으로 판매. 일본은 상품명에 지역명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투싼이라는 상표를 사용하지 못했다.[35] 일본은 차폭을 기준으로 차종을 구분, 세금을 부과하는 유일한 나라다. 따라서 차종별 차폭이 제한되어 나오는데, NF의 경우 경쟁 모델인 닛산 티아나보다 차폭이 넓어 더 많은 세금을 부과받았다.[36] 여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신차는 우수한데 내구성이 별로다'라고 말 할 수는 없다. J.D. 파워에서 진행하는 차량 품질조사는 IQS(Initial Quality Study), VDS(Vehicle Dependability Study)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동일한 내용의 조사인데, IQS는 신차 출고 이후 90일 이내 사용자에게 설문을 하고, VDS는 3년 이후에 설문을 한다. 즉, 올해 나온 VDS 결과는 3년 전에 출고된 차량의 내구품질이라는 의미다. VDS는 IQS를 3년 뒤쳐져서 따라가는게 일반적이며, 현대자동차의 IQS는 2016년 기준 전체 3위,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2위이다. 따라서 VDS품질도 곧 IQS를 따라 올라 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2016년 기준으로 IQS는 평가가 좋은데 VDS는 평가가 좋지 않다고 '신차는 우수하고 내구성은 떨어진다'라고 보기 힘든 이유.[37] 물론 일본에서는 상기의 발언이 까이고 있지만...[38] #[39] J.D. 파워가 진행하는 내구품질조사는 3년 전 출시된 차량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조사 결과는 100대당 불만 건수로 나타낸다. 지수가 낮을수록 내구품질이 우수하고, 지수가 높을수록 내구품질이 낮음을 의미한다. #[40] 손톱정도의 크기로 헨드폰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용도이다. 만약 억지로 떼어내면 특수문자가 보이게 된다.잡았다 요놈[41] 화성시 남양읍에 있어서 남양연구소이다. 신차 디자인 및 엔진 및 각종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곳이다.[42] i10을 베이스로 한 전기차 시험모델.[43] 제네시스 G80으로 이름이 바뀌며 단종되었다.[44] 중국 현지 생산형인 ix25는 GC, 인도 포함 해외 수출용인 크레타는 GS로 각각 프로젝트명이 분리되었다.[45] 이름만 맥스크루즈일뿐 내수용 마케팅조차도 '싼타페 롱바디'로 홍보하고 있는 7인승 롱휠베이스 트림이다.[46] 2012년 봄 상반기 공채시즌에서는, 아예 입사설명회에서 스톡옵션을 포함한 연봉이 5900만원이라고 광고를 했다.[47] 초급대학 졸업의 줄임말로서 전문대학 설립 전 초급대학(2년제 또는 4년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생겨남[48] 정년연장과 더불어 내부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그마저도 더 줄어들 것이다.[49] 이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내보낸 광고에서 수박수박수박수박이라고 계속 반복되는 멘트가 있었다.[50] 등장하는 카봇들의 모델이 현대자동차의 자동차다.[51] 미네소타 바이킹스 홈 구장 공식 스폰서이며, 그라운드에서 가장 가까운 라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