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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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역대 당대표
4대
홍세화
안효상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1. 개요[편집]

한국정치인, 언론인이다. 2017년 기준 노동당 소속. 1947년 12월 10일생. 진보신당이 망해서 그렇지 김규항, 박노자. 오세철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계열 지식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서슴없이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몇 안되는 인물.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때 지나치게 온건(?)하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다.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정당을 원한다고.

2. 생애[편집]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후 무역회사에 재직하던 중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파리출장 중 프랑스망명을 신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프랑스에서 20년간 망명생활을 하였다. 이때 프랑스 이민국의 망명 담당자가 한 말이 가관인데, "당신은 그저 당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 뿐인데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 여기에 홍세화의 대답은 "이 정도 정치적 의견 표현으로도 잡아가니까..." 이후 한동안 파리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 자유화도 막 되던 시기라 아직 해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프랑스와 유럽 상황을 신속히 전달하는 언론인 역할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택시기사 생활 경험과 프랑스 사회에 대한 소개, 본인의 성장기와 한국 사회의 과제를 담은 1995년작[1]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 후 1999년에 귀국하고 2002년 1월에는 영구귀국했다.[2] 그 후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2011년엔 진보신당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엔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다.

3. 트리비아[편집]

*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쓴 사람이다.

[1]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2] 단, 그의 두 딸과 아들은 여전히 프랑스에 남았고 아내는 한국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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