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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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孝道
1.1. 여러 문화권에서의 양상1.2. 논의1.3. 비판1.4. 여담1.5. 관련 문서
2. 일본의 성씨
2.1. 실존 인물2.2. 가상 인물
3. 관련 문서

위인자자 갈불위효 욕보심은 호천망극
(爲人子者 曷不爲孝 欲報深恩 昊天罔極)
원시효자 백행지본 사친지효 양친지성
(元是孝者 百行之本 事親至孝 養親至誠)
사친여차 가위인자 불능여차 금수무이
(事親如此 可謂人子 不能如此 禽獸無異)

"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여도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
본래 효도는 모든 행함의 근본일진대, 부모님을 섬기는 데에는 지극한 효로써 하고, 봉양하는 데에는 정성을 다할 것이니라.
부모님 섬기기를 이같이 한다면 가히 사람의 자식 된 자라 할 것이나, 이같이 하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사자소학 효행편
수욕정이 풍부지 자욕양이 친부대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

나무는 멈춰있고 싶으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은 편하게 모시고자 하는데 부모기다려 주지 않네.

한시외전 제9권
네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라. 너를 낳아 주신 분을 기쁘게 해 드려라.
잠언 23:25

1. 孝道[편집]

. Filial Piety.[1]

효도란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 또는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을 뜻한다. 효도 ''라는 한자는 아들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의 글자다.

효라는 개념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행동양식 중 대표적인 것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 중에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동물은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민간전승에 따르면 까마귀가 대표적인 효도의 아이콘이라고 하며, 유교 전승에 따르면 부모가 늙으면 자식 새가 대신 벌레를 물어다가 부모에게 먹인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과학적 관점에 따르면 먹이를 물어다 주는 건 오히려 부모 새라고 한다. 까마귀는 자식이 부모보다 덩치가 커져도 부모가 계속 자식에게 먹이를 잡아서 먹여 준다. 즉, 과학이 없었던 시절에 덩치가 작은 개체가 덩치가 큰 개체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걸 보고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효도가 인간이 지금과 같은 사회를 구성하면서 생긴 관습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동식물과 달리, 인간 사회에서 고령자가[2] 주위의 어떠한 보살핌도 없이 죽으면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에는 현대와 같은 고도의 복지 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는 자신이 봉양하는 윤리를 만드는 것이 현명한 것으로 대접받았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그러나 효도를 절대적 가치니 성스러운 것이니 운운하며 성역화해버리면 문제[3]가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의 부모에게 스스로 해야 할 효도를 배우자에게 떠넘기는 문제로 부부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보니, '효도는 셀프다.'라는 말이 나왔다.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자녀가 부모 등(친족에 해당하는 존속)을 성실하게 부양하고 이에 수반되는 봉사를 하는 것을 "효"로(제2조 제1호, 제3호), 효를 실천하는 것을 "효행"으로(같은 조 제2호), 각각 정의하고 있다.

1.1. 여러 문화권에서의 양상[편집]

효는 거의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도덕이다. 특히 동양의 경우 유교의 여러 개념들 중에서도 효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공자는 효(孝)를 통하여 예(禮)를 설명하였는데, 누구나 공감하고 쉽게 이해하며 지키려고 하는 '효'를 이용하여, '예'라는 다소 어려운 가치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흔히 유교(유학)는 충효의 사상이라고 불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가치가 바로 '효'였다.

서양에서도 효가 중요시되는 것은 비슷해서, 유대교그리스도교는 아예 십계명 차원에서 효가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십계명은 앞부분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율법이고 뒷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율법인데, 뒷부분의 율법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4]이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공경의 구절은 추가로 다른 부분에서 더 발견되는데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하는 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고 잘 될 것이다.(신명기 5장 16절)' 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축복을 받는다고 서술하고 있고 다른 구절 '네 안에서 사람들은 아버지어머니를 업신여기고, 이방인을 억압하며 고아와 과부를 학대한다.((에스겔) 에제키엘 22장 7절)' 에서 예루살렘을 책망할 때 부모를 업신여겼다는 부분을 책망할 정도였다. 게다가 철학자들 역시 효도는 정언적 명령이고 미덕이라고 했다.

이처럼 효는 그야말로 인류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세상의 많은 율법들은 효도하라고는 강조해도, 자식을 사랑하라고는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고 보았던 반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2. 논의[편집]

비록 인류 전체에 효도와 관련된 윤리 풍습이 존재하나 그것이 동양만큼 체계적인 도덕의 모습으로 갖춰진 경우는 희박하다. 또한 현대 문명에서 모든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현대 윤리학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의무와 권리만을 말해왔기 때문에 효도에 대한 문제는 최근까지 뒷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효도는 아무 이유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 정당한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덕 윤리학이 출현하고 현대 윤리학이 발전하면서 효도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고, 지금은 효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증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윤리에 기초한 미덕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위의 중요성 단락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 문명이 발생한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이 나이가 찬 뒤 늙은 부모를 정성껏 부양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미덕이자 권장할만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예로부터 인류 사회 곳곳에서는 효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상당한 비난과 도덕적 책임 추궁이 가할 뿐만 아니라, 문명이나 종교에 따라서는 엄격한 사법 처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불효를 '강상죄'라 하여 엄하게 처벌하였다. 이는 현대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상단의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 법률은 효도를 하나의 법률 조문으로 박아놓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효행은 도덕적 근거에 더해 성문법으로 표시된 법적 근거까지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이는 효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도덕적 관습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대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효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된 논증은 호혜성 원리이다.[5] 도덕적으로 특정인이 상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았다면 그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도덕적 요구이다.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상당한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주었으므로 자식에게는 그것을 부모에게 보답할 도덕적 요구가 부여될 것이다.

이러한 논증을 비판적인 시점으로 바라보자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설명하지 못하고,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받은 혜택은 비자발적으로 받은 혜택인데 그것에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냐는 것이다.[6]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로 설명해보면, 맨 위의 경우 나나 상대나 모두 자발적인 선택이 가능한 사람들이고 실제로 나는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상대에게 혜택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혜택(=채무)을 상대에게 갚을 의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자식의 경우 자식의 입장에서 혜택은 자발적인 의사와 관계없이 갑자기 주어졌고 거절할 수도 없으므로 자신이 받은 이익을 다시 보답하여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황경식은[7] 감사에 의거한 논증으로 효도를 정당화했다. 효도는 기본적으로 감사나 보은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행해야 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감사나 보은이라는 개념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이익에 대한 심신양면의 반응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보은과 감사는 도덕적 요구의 중대한 원천이긴 하나 그 결과가 신체적 행위만이 아니라 정신적 감정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다만 이 같은 보은과 감사의 감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 감사나 보은지정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베푸는 자가 자발적이고, 의도적이며, 이타적으로 베풀어야 한다.
  • 그러한 혜택을 베푸는 과정에서는 베푸는 이의 순수한 희생이나 신의성실한 노력이 동반된다.
  • 끝으로, 혜택을 받은 자의 의지에 반하는 간섭적 혜택일 경우 그 혜택은 어떤 도덕 원칙에도 위배함이 없이 주어져야 한다.

이상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 혜택을 받은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보은지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감사나 보은에 의거한 효도는 다른 상호성과 같은 등가교환의 관계를 넘어 우정의 계기를 내포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우의를 설명할 수 있다. 간혹 부모와 자녀는 의무관계로서 서로 잘 할 의무가 있는데 왜 이러한 당연한 의무에 효도해야 하냐는 반론이 있지만 부모들이 자녀를 보살피는 행위는 단지 일반적인 유형의 의무가 아니라 특수한 역할과 관련된 의무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는 부모의 동기나 태도에 있어 그들은 단순히 의무의 요구를 능가하는 까닭에 자녀 편에 있어서 감사하고 보은하고자 하는 특수한 의무가 생겨나는 것은 합당하다는 것이다.

권상우는[8] 사회생물학을 접목시켜서 효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논증을 폈다.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면 생물은 친족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인간처럼 자식을 보살피는 동물도 많고 무리를 위해 희생하는 미어캣 같은 사례도 있다. 이러한 행동이 진화하는 것을 혈연선택이라고 하고 인간의 자식 사랑이나 효도도 혈연선택의 일부이다. 권상우는 여기서 혈연선택이 유학의 성선설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유학에서는 효도 정신이 근간이 되어 타인에 대한 선한 행동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상우는 사회생물학이 유학적 주장의 기본공리(성선설)를 증명하고,[9] 이를 통해 효를 정당화하는 유학적 주장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사실은 가치와 다르다는, 사회생물학자 본인들이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논리에 의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유학적 주장이 내적 정합성을 가지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이 외에 효도를 우정의 특별한 형태로 보고 정당화하려는 덕 윤리학적 입장도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효도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자신이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학창시절때 전교 10~20등(+반 1~2등) 이내를 유지하며 모범생으로 학교생활 열심히 잘 해서 대학교를 명문대에 갔다 온 뒤, 군대도 장교로 별 탈 없이 무사히 제대한 뒤, 취업 역시 공무원(최소 7급 이상) 시험 합격 혹은 공기업 내지 대기업(주로 사무직) 취업 성공 아니면 전문직 종사 등 완벽한 직업들을 갖춘 뒤 사내에서도 같은 직장인들과 즐겁고 재미있게 어울려댕기며 사내 연애가 됐든 아니면 타 직종 간 연애가 됐든 자신이 예쁜/멋진 여자친구/남자친구와 연애를 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대도시 소재 초호화 아파트 혹은 시골 소재 정원과 호수 등이 딸려 있는 엄청나게 넓은 집에서 살면서 최고급 외제차(주로 독일차, 일본차)를 끌고 댕기며 출퇴근 및 여행 등을 하면서 또 부모에게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할 거금의 용돈을 매달 갖다 드리는 등 여러모로 남들이 매우 부러워할만한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면서, 추후 부모에게 손주들을 보여주고 자기 자녀들도 자신과 똑같이 성공한 인생으로 키워 나가 자신과 자기 자녀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된 효도로 여긴다.

다만 모든 국민들이 학창시절때 전교/반에서 놀거나 명문대를 나오거나 장교로 제대하거나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 이 네 개의 신의 직장에 들어가 회사생활을 하거나 예쁜/멋진 이성들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효자가 되는 경우는 10%가 안 된다. 이것들을 모두 이루어내지 못한 나머지 90% 국민들을 마냥 불효자로 매도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태도다. 대게 이런 경우는 부모의 욕심히 엄청 강한 경우고 절대다수의 자녀들은 이런 최고급 스펙을 이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태어나자마자 자녀가 노력과 재능이 부족한 자신보다 명백한 함량미달인 상태인데 중간과정 그딴 거 없이 자신이 자녀에게 자신처럼 똑같이 무조건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자신에게 효도를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 학대이며 심하게는 부모-자식 사이가 불구대천이 될 수 있다![10] 일례로 자신은 예술(문학, 음악, 미술, 체육, 만화&영화, 게임 등)에 소질이 매우 뛰어나 예술가(작가, 음악가, 미술가, 운동선수, 만화가&영화가, 배우, 성우, 프로게이머 등)가 되고 싶은데 막상 부모는 누가 봐도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직업들인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만을 강요하며 이 4개 직업에 종사해야 힘도 많이 세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아이의 꿈을 마구 짓밟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그 아이가 공부와 운동을 매우 열심히 해서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에 종사를 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하게 돼도 과연 그 아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싶을까 의문이 들게 된다.

결론은 자기가 비록 학창시절때 공부와 운동을 엄청 못 했거나 병사로 제대했거나 중소기업, 노가다 등에 들어가 3D 환경에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게 근무하거나 부모에게 제대로된 용돈조차 드리지 못할 정도로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칠 정도로 엄청 못 벌거나[11] 결혼은커녕 연애 경험조차 할 역량이 안 돼 평생 모쏠아다를 벗어나지 못해 자살 충동이 일 정도로 막다른 길목에 내달린 상황이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항상 웃으며 최선을 다해 악착같이 살아가며 부모를 섬기는 것도 분명 효도이다.

1.3. 비판[편집]

아비가 자식에게 무슨 친함이 있겠는가? 근본된 뜻을 논하자면 사실 욕정이 결과로 나타났을 뿐 아닌가? 자식 또한 어미에게 또한 무슨 친함이 있겠는가? 비유컨대 병 속에 있던 물건을 꺼낸 것과 같을 뿐 아닌가?
- 《후한서》 <공융전>[12]
우리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낸 부모(또는 섭리)에 대해 일체의 원한도 감사도 지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연히 태어난 삶에 대한 원한을, 우리의 노력에 의해 필연적인 삶,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데 따른 즐거움으로 바꾸도록 애써야 한다. 그러면 출생 그 자체는 이미 고통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못내 억울하고,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세상에 내보내준 은혜를 고마와하라고 들입다 강조해대는 효사상이 얄밉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식은 그저 '애완용'으로 길러야 한다.

마광수, <마광수의 뇌구조> 中

비판적인 입장에서 효도를 바라볼 때 가장 중심이 되는 주장은, 효도는 부모 세대나 타인에 의해 강요될 것이 아니라 자식 스스로 부모를 사랑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잘 돌보지 않고 학대, 방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라 강요하는 것은 도리어 뻔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같은 자식 세대라도 가정환경이 다르니 남에게 참견하는 것도 오지랖일 뿐이다.

자식은 노후 보험애완동물도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다. 창작물에서 피조물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조물주는 선역이 아닌 악역이며 현실에서도 신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피조물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강요하는 종교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부모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자식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충효사상도 얼마든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효는 부모에 대한 감사가 기본적이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효를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필요한데, 무조건적으로 효를 해야 한다는 발상은 상처받은 자식들을 무시한 채 자녀의 책임만 강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도리어 이 효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처받은 가정들이 사회 곳곳에 곪아있는 경우가 현대에 매우 많다. 전근대적 가치관을 가진 부모와 현대적 가치관을 가진 자식 간의 갈등을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효 사상 역시 표면적으로만 따르기만 하고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치는 독거 노인들이 증가하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이며, 효의 강조는 역설적으로 부모에게 받은 비정상적인 교육법을 대물림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동 학대범 태반이 피학 경험이 있다. 결국 효를 귀히 여기는 문화가 일종의 권리로 작용하여 부모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이들의 도주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慈) 마음이 있어야 효가 뒤따라오는 법이며, 효 만큼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도 무척 중요하다.

효도에 대한 강조가 물질적인 부양에 대한 강조를 낳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속물화와 보수화에 기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효를 강조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부모의 허영심을 충족해주고 용돈을 많이 줄 수 있어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하할 때 '너의 부모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같은 비난은 한국에서 굉장히 흔하다. 결국 자신이 돈이 필요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또 이는 단순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자의 논어에도 "효의 끝, 즉, 완성은 입신하여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빛내어 부모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입신양명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결국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비판 항목은 초기부터 반달을 자주 겪어왔지만, 최근에는 자식 세대(소위 2030) 사이에서 전후세대에 대한 적대감, 혐오와 함께 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는 건 물론 단순 취업조차 어려워지는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모 세대로부터 학업, 취업, 독립, 부모에 대한 경제적 부양 등으로 대표되는 효에 대한 압박감을 지속적으로 받다보니 효에 대해 점점 부정적으로 시각이 변화하고 있는 것. 이전과 달리 경제적 눈높이는 높아진 반면 핵가족화되면서 부양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더 커진 데다, N포 세대라 불릴 정도로 결혼, 번식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세대 입장에서 효도가 자신에게 무슨 의미냐는 타산적 생각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효도는 다른 호혜적 관습과 마찬가지로 연금처럼 그것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으로 기대되기에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고갈 위기와 함께 자식 세대가 번식 본능 자체를 포기하면서 미래를 어둡게 보는 풍조가 형성되었고, 효도 또한 투자 가치를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한 번 직장을 잡으면 평생 먹고 살거나, 경지만 있다면 평생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농경 사회였고, 자식이 경제력을 잃을 때쯤엔 부모가 사망하여 부양 의무를 덜 수 있던 때는 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직장 은퇴 후에도 20년 이상 생존하게 된 것이 현재 상황이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젊은 층의 인구 감소로 인한 부양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이런 효 사상에 기대는 국가 정책에 더욱 반감을 갖게 만든다.

그 외에도 교육열에 불타 최대한 부족함 없이 열성적으로 지원하려는 부모는 많지만, 그만큼 인격적·정서적으로는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자녀의 성적은 잘 알아도 정작 자녀의 반 번호는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과거에는 교육이랄 것도 없이 방목하듯 키웠지만, 대신 그만큼 요구하는 눈높이나 기대도 낮았고 자립심과 모험심도 형성되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큼 무능하지 않고서야 취업이나 창업이 쉬웠던 베이비 붐 세대의 호경기가 아닌, 계층간 이동이 매우 경색된('첫 직장이 인생을 좌우한다') 레드 오션의 불경기이며, 어린 시절부터 겪는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부모의 어설픈 통제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꿈 없이 좌절하는 젊은이가 많은 실정이다. 이런 이들에게 아무런 경제적 이득과 반대급부 없는 효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세대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서 존속살해[13] 등 존속 대상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는 중이다.

이를 종합하자면 효도는 금수저가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자기가 금수저 2세라고 해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잘 안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사실 금수저는 태어나서부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풍부하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사랑과 믿음과 희망과 소망 등 관심을 많이 받고 다른 가정집 자식들과 다르게 부족함 없이 제대로 잘 성장해서 이런 좋은 환경을 부여한 부모님께 반드시 효도해야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금수저들은 자신들이 직접 부모에게 엄청나게 감사함을 느껴 효도를 철저히 잘 하기로 유명하다. 그 반대로 흙수저는 자기 혼자 먹고 사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할 여유조차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도 원치 않게 태어났는데 괜히 억울하게 태어나게 만든 장본인인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며 서로 찢어져서 따로 살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14] 수저계급론 문서로.

또한 효도가 사회의 도덕률과 충돌할 때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도둑질을 하는 것을 목격한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것은 비도덕적인가? 효도를 중시하는 유교적 관점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설령 부모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자녀는 이를 숨겨줘야 마땅하다고 대답한다. 이를 이유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은 형사소송법 제224조, 235조를 통해 자녀가 부모를 고소, 고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4. 여담[편집]

1.5. 관련 문서[편집]

2. 일본의 성씨[편집]

ひょうどう
효도
통용 표기
효도, 효우도, 효우도우 등
최영애-김용옥 일본어 표기법
효오도오
로마자 표기
Hyōdō

일본의 성씨. 한자로는 兵藤, 兵頭 등으로 표기된다. 참고로 두 성씨 모두 실존하는 성씨.

2.1. 실존 인물[편집]

2.2. 가상 인물[편집]

3. 관련 문서[편집]

[1] 빅토리아 시기 영국에서는 filial respect라고 불렀다. 이영석,'영국제국의 초상',푸른역사.2009[2] 인간 사회의 특성상 고령자는 보통 황제, ,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사장 등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3] 막장 부모, 가정불화, 고독사, 아동학대, 저출산 기타 등등.[4] 영어 성경: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5] 최정묵. "논문: 인간다움에 대한 공자의 논변." 동서철학연구 39.단일호 (2006): 43-64.[6] 황경식. "충효사상의 현대적 의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12 (2001): 42-43[7] 황경식. "충효사상의 현대적 의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12 (2001): 35-62[8] 권상우. "유학과 사회생물학의 대화-도덕의 기원과 정당성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59.단일호 (2009): 485-518[9] 실제로 유학은 성선설에 기초한다[10] 실제 역사에서도 아버지인 영조대왕보다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인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도 넘은 꾸중을 듣다보니 결국 그 압박감에 사람이 미쳐 돌아가 폭압적으로 성격이 변해 나중에 노론들의 음모로 인해 뒤줏간에서 아사한 수모를 당하고, 만력제가 권신 장거정에 의해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간이 되길 강요받아 장거정의 지도 하에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공부와 운동 같은 자기계발에만 미치도록 매진하다가 장거정 사후 결국 사람이 미쳐 돌아가 폭군이 된 게 아니다.[11] 의외로 3D 직업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보다 많이 벌고(다만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의 경우 오래 근속할수록 더 많이 버는 호봉제라서 철저히 호봉 상승이 보장되기 때문에 몇 년 지나게 되면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보다 적게 벌게 된다.) 전문직과 동급 수준으로 많이 번다. 그러나 일이 매우 힘들고 매우 더럽고 매우 위험해서 퇴근 후 술값&담배값 등 각종 유흥으로 인해 월급을 탕진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라 모아둔 돈이 많이 없는 분들이 많다. 과거엔 비음주자&비흡연자였던 사람들도 3D 직장에 취업하고 나서부터 괜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다.[12] 아이러니하게도 공융은 공자의 후손이었으며 이름난 효자였다. 그리고 이 발언이 꼬투리 잡혀서 한테 불효죄로 죽는다[13] 존속살해는 용어로 쓰이며 가중처벌되는 반면 비속살해라는 말은 생소하며 법적으로 그냥 일반적인 살인으로 취급되는 것, 비속살해 후 자살을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은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14] 다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게 대체로 본인이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자수성가를 하게 되면 그래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못난 자신을 이렇게까지 키워주셨기 때문에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며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도 많다. 사회에서 객관적인 기준의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한) 부모와 헤어져 따로 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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