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분류

파일:alpha1.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조여정 주역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후궁: 제왕의 첩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후궁 제도의 특징3. 한국사의 후궁 제도4. 중국사의 후궁 제도5. 일본사의 후궁 제도6. 베트남의 후궁 제도7. 오스만 제국의 후궁 제도8.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9. 알파위키문서가 개설된 후궁들
9.1. 한국의 후궁9.2. 중국의 후궁9.3. 일본의 측실9.4. 유럽의 정부9.5. 오스만 제국의 후궁
10. 가상 인물
10.1. 정부 캐릭터
1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후궁()은 동아시아에서 군주 이외의 여자들 중 내명부의 작위를 받은 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사실상 제왕의 . 비빈(妃嬪)[1], 빈어(嬪御), 잉첩(媵妾), 빈잉(嬪媵), 궁빈(宮嬪), 궁인(宮人)[2], 내관(內官)[3], 육궁(六宮)[4] 등으로도 불린다.

후궁의 본래 의미는 궁궐의 뒤꼍, 안쪽을 뜻하며, 후정(後庭)·내정(內庭)·내전(內殿)·내궁(內宮)·내조(內朝) 등을 쓰기도 한다. 제왕이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돌보고 의식을 행하는 영역의 다른 호칭인 외조(外朝)·외정(外庭) 등의 반대격으로, 제왕의 사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제왕의 여인(妻妾)이 거처했기에 제왕의 처와 및 시녀(侍女)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쓰이게 됐다.

이후 같은 의미인 내전과 후궁을 분리하여 내전(中殿·中宮·中宮殿)을 제왕의 처(皇后·王妃)로, 후궁을 제왕의 첩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사례가 빈번해 현재 한국의 사전에선 내전(中殿·中宮·中宮殿)을 제왕의 정궁으로, 후궁을 제왕의 측실로 정의하고 있다.

2. 후궁 제도의 특징[편집]

일부다처제관습이 존재했던 고대부터 있었던 제도였고, 더욱이 한 나라의 주인인 군주가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는 것은 왕실이 가지는 위엄의 상징임과 동시에 군주의 유력 가문들과 동맹을 맺어 손쉽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면 어떨까[5] 얘기를 꺼냈다가는 미친 놈 취급당할 정도로[6]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던 고려에서도 "에이 그래도 왕은 예외죠"라며 후궁을 잔뜩 들였다.

또한 위엄과 동맹 외에 계승의 안정성을 위한 요소도 있었는데, 남과 여가 1대 1의 상황에서 자식 그중에서도 남자아들만을 얻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보장되는 일이 아닌데다가[7], 전근대의 높은 영아 사망률까지 결합되면, 일부일처제와 적장자 상속제의 결합은 굉장히 불안정한 면이 있었기 때문. 실제로 일부일처제를 엄격하게 지키고 사생아의 계승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은 유럽에서, 왕실귀족 가문들은 급작스러운 사고나 전쟁 같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후계자를 낳지 못했다는 맥빠지는 이유로 대가 끊겨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흔히 서양 역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독일 왕이 스페인의 왕을 겸한다는 식으로 어느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 자리를 겸해서 전쟁이나 합병 같은 것도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그 왕의 시대에만 특정 나라의 영토가 엄청 커졌다든가 하는 일이 발생한 것도 이런 데에 원인이 있었다. 특히 서양 군주는 그 자신의 옥체 보존이 무엇보다 최우선인 동양 군주와 다르게 스스로가 지배하는만큼 전쟁 같은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싸워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직계 대가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후궁과 황후(왕비)를 아우르는 궁중 여관 제도를 통틀어서 내명부라 하는데, 이는 단지 황후와 후궁만이 속하는 것이 아니라 궁중업무를 보는 궁녀들을 포괄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념적으로는 모든 궁녀들은 군주의 여자들이므로 다 후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궁중업무가 아닌 군주의 첩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여인들만 후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8] 보통 후궁제도라고 하면, 내명부 제도 중에서도 왕의 아내/에 관한 것만을 가리킨다(황후나 왕비도 포함).

후궁은 원칙적으로 남편인 군주가 죽은 다음에는 궁내에서 거주할 자격을 잃는다. 소생이 없을 경우 비구니가 되고, 소생이 있을 경우는 그 집으로 나가 사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후궁 자신의 아들이 군주로 즉위한 경우엔 예외다.[9] 사실 애초에 궁궐에 남아 있어도 모시던 왕이 죽으면 역할이 소멸된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궁궐에 있어도 할 일이 없다. 재정 압박의 문제도 있고, 후궁 개인으로서도 자기 자식의 집에서 부양을 받는 것이 훨씬 편한 인생이다.

3. 한국사의 후궁 제도[편집]

문서 참조.

4. 중국사의 후궁 제도[편집]

문서 참조.

5. 일본사의 후궁 제도[편집]

문서 참조.

6. 베트남의 후궁 제도[편집]

가장 최근의 왕조인 응우옌(阮)조에서는 황제의 정처가 살아 있을 때는 단순히 귀비에 봉하였다가, 사망한 뒤에 황후로 추봉하였다.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아내인 남프엉 황후는 제외)
  • 황귀비(皇貴妃, Hoàng Quý Phi)
  • 1계 비(一階妃, Nhất giai Phi)
  • 2계 비(二階妃, Nhị giai Phi)
  • 3계 빈(三階嬪, Tam giai Tân)
  • 4계 빈(四階嬪, Tứ giai Tân)
  • 5계 첩여(五階婕妤, Ngũ giai Tiếp Dư)
  • 6계 첩여(六階婕妤, Lục giai Tiếp Dư)
  • 7계 귀인(七階貴人, Thất giai Quý Nhân)
  • 8계 미인(八階美人, Bát giai Mỹ Nhân)
  • 9계 재인(九階才人, Cửu giai Tài Nhân)

7. 오스만 제국의 후궁 제도[편집]

하렘 참조

8.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편집]

유럽에서는 크리스트교의 영향으로 일부일처제가 오래 전부터 자리잡아 후궁 제도가 없었지만 대신 공식적으로 정부(情婦, Mistress)를 두었다. 의 정부를 영어로얄 미스트리스(Royal mistress)라고 부르며, 프랑스에서는 메트레상티트르(maîtresse-en-titre), 일본에서는 공첩(公妾) 또는 총희(寵姫)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영어권도 후궁과 정부를 확실하게 분간하고 있어서 후궁은 Royal Concubine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정부는 아내로 인정받는 후궁과 달리 내연녀에 불과했기에 아내로서 의무에 자유로웠지만 권리도 없었다. 예를 들어 후궁은 바람을 피우면 간통으로 처벌받았으나 자식서자, 서녀로서 왕족으로 인정받았고 적자보다 우선순위에 밀렸을지언정 계승권이 있었다. 이어서 후궁은 총애를 받지 못해도 왕족으로 인정받았기에 에 남아있었으며 왕이 사망해야 출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바람을 피워도 간통으로 처벌받지 않았으나 낳은 자식은 무조건 사생아로 처리되어 최소한 주어질 수 있는 작위조차 귀족이 한계였고, 당연히 정부 소생의 사생아는 왕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만큼 왕위계승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왕의 사망뿐만이 아니라 왕의 총애를 잃으면 바로 출궁해서 원래의 으로 돌아갔다.

왕의 정부들은 동양 후궁과 달리 유부녀들이 많았는데 이는 정부가 왕의 사생아를 낳으면 정부의 원래 기둥서방남편아이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이나 뒤바리 부인 같은 사람들이 '부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 때문. 왕이 처음부터 귀부인에게 손을 대는 경우도 있었지만[10], 미혼이거나 신분이 낮은 여성을 귀족과 결혼시켜 신분세탁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단 매우 드물게 끝까지 미혼으로 남는 경우도 있었는데 찰스 2세의 정부였던 넬 그윈배우 출신의 천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세탁용 결혼을 하지 않아 끝까지 천민 신분으로 남아서 찰스 2세의 사망 이후 재정적으로 고생을 했었다.

이렇게 왕의 정부가 된 귀부인들은 남편과 별거하고 사실상 이혼 상태에 들어갔다. 당연히 남편들은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는 것이니 불만을 품었지만, 왕이 그 대가로 막대한 선물을 하사하거나 지위를 주기도 해서 참고 넘어갔다고. 드물게 이 재산과 지위 때문에 아내가 왕의 정부가 되는 걸 환영하는 유부남 귀족들도 있었고, 애초에 왕이 정부를 신분세탁해줄 목적으로 찾아다가 결혼시킨 한미한 귀족 같은 경우엔 자기도 그 대가로 받은 게 있으니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왕이 정치를 못하면 대놓고 왕을 비난 못했으니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대신 비난받은 것처럼 정부도 왕실을 대신해서 비난받은 샌드백이였다. 상기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과 뒤바리 부인도 알고보면 성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악녀, 탕녀라고 비난받았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평생동안 프랑스의 백성과 귀족들에게 증오를 받은 것도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이였던 것도 있었으나, 남편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었기에 비난을 대신 받은 것도 있었다. 왕의 정부는 단순한 국민들의 욕받이(?) 역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교 행사들을 주관해야 했는데, 이를 본처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주관해야 하다보니 국민들에게 더더욱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

유럽 왕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한국산 창작물들 대다수는 황비, 귀비 같은 칭호를 붙이거나 후궁으로 동일시하는 등 로얄 미스트리스를 후궁으로 오해해 잘못된 고증으로 묘사하거나 복식과 배경만 중세 유럽이지 사실상 동양 왕실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공첩, 총희로 표기한 일본산 창작물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도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왕의 정부가 되는 엔딩들, 은하영웅전설의 정부 캐릭터인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주산나 폰 베네뮌데를 후궁으로 잘못 번역하는 사례가 많다.[11]

9. 알파위키문서가 개설된 후궁들[편집]

9.1. 한국의 후궁[편집]

9.2. 중국의 후궁[편집]

9.3. 일본의 측실[편집]

9.4. 유럽의 정부[편집]

9.5. 오스만 제국의 후궁[편집]

10. 가상 인물[편집]

※ 남자 후궁 캐릭터는 남총 문서에 기재한다.

10.1. 정부 캐릭터[편집]

해당 문단은 주로 유럽 왕실을 묘사했거나 유럽 왕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창작물의 정부들로 후궁이 아니다. 단 일부 동양 창작물(특히 한국산 판타지 소설)에서는 정부를 후궁으로 묘사하거나 동일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히 정부로 묘사되거나 일본어 창작물 한해 로얄 미스트리스의 일본어 번역어인 공첩, 총희로 표기된 경우에만 넣을 것.

참고로 소비자들의 배려를 위해서인지 실제 유럽 왕실의 로얄 미스트리스와 달리 창작물의 로얄 미스트리스들은 미혼녀들이 대다수이다. 일부 고증에 신경쓴 작품은 기혼녀도 있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11. 관련 문서[편집]

[1] 비(妃)를 왕의 처의 작위로 쓴 한국에선 비빈의 정의가 추가되어 의 정궁인 왕비와 빈 이하 모든 후궁을 아우르는 단어로 쓰이거나 왕의 정궁인 왕비와 세자의 정궁인 세자빈을 통합한 단어로도 쓰였다. 중국황실과 옛 국가, 고전의 내용을 인용할 때는 후궁의 의미를 띤다.[2] 조선에서 궁인은 후궁과 왕실 시녀를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궁중의 여인을 총칭하는 궁녀가 왕실 시녀의 호칭으로 정의되면서 궁녀의 같은 말인 궁인과 내인(內人: 나인)도 왕실 시녀의 호칭으로 이해되고 있다.[3] 후궁을 내관, 시녀를 궁관으로 구별해 부르기도 했다. 현대 국어 사전에는 내관은 내시를 지칭하는 단어로, 궁관은 궁내직 혹은 동궁 소속 관원으로 정의되고 있다.[4] 《예기(禮記)》에 “옛날 천자(天子)의 후(后)는 6궁(六宮)·3부인(三夫人)·9빈(九嬪)·27세부(二十七世婦)·81어처(八十一御妻)를 세웠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다. 육궁에 정궁이 포함되어 있어 내명부 후비(后妃: 정궁+후궁)의 다른 말로도 쓰인다.[5] 당시 고려몽골과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남성이 너무 부족해서 결혼을 못하는 여성이 많았다. 여자가 결혼을 못한다는 건 전근대 사회에선 생존의 위협이 된다.[6] 대신 박유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면 어떻겠냐"고 왕에게 건의했다가 저잣거리에서 부녀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사 공부를 할 때 고려는 여성권이 강했다는 사례의 단골로 나오는 일화.[7] 당장 현대에도 각종 고부갈등과 고민을 낳는 이유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8] 조선을 기준으로 후궁들도 궁에 살면서 맡은 임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군주 부부의 잠자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왕실 제사나 손님 접객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어서 엄연한 관료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9] 중국에선 이런 경우엔 황후에 준하는 지위를 받을 수 있었고 때로는 수렴청정도 할 수 있지만, 한국, 특히 적서에 엄격한 조선시대엔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무덤보다 한 단계 낮은 이 되고 사당으로 불렀다.[10] 이 경우는 대부분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귀부인을 탐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불륜'이었다. 어지간한 막장 왕이 아니고서야 왕족과 준왕족은 당연하고 서로 척지면 문제가 발생할 만한 세력있는 고위 귀족가의 귀부인을 먼저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현존하는 로얄 미스트리스 중 작위가 높은 자들은 낮은 작위부터 시작해 총애를 받아 작위가 상승한 것이다.[11] 다만 은하영웅전설 같은 경우에는 약간 애매한데 후궁으로서의 정식 품계가 아닌 오등작의 XX부인으로 불린다는 것과[12], 정식 입궁/출궁 절차가 없다는 점에서는 서양의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황제가 이런 정부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사생아가 아니라 서자로서 엄연한 왕위계승자로 인정받는다는 점,[13] 베네뮌데 후작부인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외간남자와의 불륜은 금지된다는 점에서는 동양식 후궁 제도와 같다. 때문에 후궁/정부로 딱 나누어 보기 어렵다.[12] 예시로 프리드리히 4세의 정부였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있다.[13] 은하제국의 선황제들인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만프레트 2세가 바로 서자 출신 황제들이다.[14] 이들 모두 형식상으로는 티글블무드 보른의 연인, 즉 후궁으로 분류한다. 정실은 레긴이다.[15] 등장 당시에는 성빈이었으며, 홍상학 부녀가 몰락한 후에 중전이 되었다.[16] 작품 마지막에는 그 동안의 죄가 전부 밝혀져 폐위되었다.[17] 처음에는 무수리였지만 어쩌다 승은을 입은 후에는 임신하지 않았는데도(나중에 사고로 유산하고 나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낙 초기라 복자 본인도 몰랐던 듯.) 숙원 첩지를 받았다. 삼간택이 다가오면서 소의로 봉해졌고, 인영이 중전이 된 후에는 유일한 후궁인 혜빈이 되었다.[18] 회귀 전에는 지은 아이린느 샤나 카스티나에게 밀려 황비가 되었지만 회귀 후에는 황후가 된다.[19] 왕자를 낳은 후 우이가 군후가 되면서 차비로 격하되었지만 나중에 우이가 사라지면서 다시 군후가 되었다.[20] 외전에서 그동안 저지른 간통이 밝혀져 내명부에서 제명당한다.[21] 외전에서 유진과 이혼해 내명부에서 제명된 후, 문관이 되어서 다른 남자와 혼인한다.[22] 우온이 아들을 낳은 뒤에 정식 군후가 됐지만, 2년이 되지 않아 사라진다.[23] 호겸(신대욱)과 신유영의 어머니.[24]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 노수눌의 양녀로 들어가 가례를 올렸다.[25] 원래는 윤임과 정혼했으나 그와 파혼하고 아버지에 의해 연산군의 후궁 숙원이 되었다.[26] 서리꽃에서 롱희를 측비라고 소개한 것, 불환곡에서는 1황자 운의 결혼기념으로 송하를 점령국에서 품과 동시에 롱희를 귀비로 책봉하였다.[27]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28] 회상에서 이름만 언급되었고 봉오제 사건 이후 황제의 후궁들 중 비와 빈 품계를 받은 이가 롱희 밖에 없어 새 비빈을 들였다는것을 보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29] 현 황제와 오륜공주의 모친으로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다.[30] 작품 최후반엔 황후로 즉위하고 작약만가 본편에선 태후가 된다.[31] 출신이 비천하여 성이 없고, 품계 또한 없다. 작중 황제의 후궁들 중 품계가 있는 이는 리빈 하나뿐인데 이 경우는 황제가 불순한 목적으로 품계를 준 것이다. 다른 후궁들은 황제가 관심을 두지 않아 품계가 없으며, 황제가 유일하게 총애하는 삼미랑은 출신이 천한데다 내명부를 관장하는 태후와 사이가 나빠 품계를 받지 못했다.[32] 선황제의 후궁 중 하나이자 틀라의 친모.[33] 당나라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나라가 배경인 원작 소설에서는 대략 60여명의 후궁이,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25명의 후궁이 등장한다.[34] 윤례의 생모.[35] 원작에서는 후궁 출신 황후로 나오지만, 가장 유명한 미디어믹스인 드라마에서는 후궁이였던 적이 없으며 작품 시작 시점 혹은 그 직전에 황후로 즉위한다.[36]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37] 현비 묘씨와 함께 총애를 독차지하는 순원황후를 질투했다.[38] 순원황후에게 2시진(4시간) 동안 꿇어앉는 벌을 받고 유산한 후궁.[39] 드라마에 나오는 흔상재의 원형 중 하나. 원작에서의 행보가 드라마 초반부의 흔상재의 행적과 유사하다. 원작 후반부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견환에 의해 벌을 받아 냉궁에 갇힌다.[40] 드라마에 나오는 단비 제월빈의 원형 중 하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후궁들 중 가장 선량한 인물이자 모든 미디어믹스를 통틀어서 4~6명 밖에 없는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 중 한명이다.[41]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황제에게 견환의 대역으로서 사랑받았던 후궁들 중 한명이다. 견환의 대역들 중에서는 가장 큰 총애를 받았다.[42]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모용 세란여동생.[43]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견환의 대역인 위균과 견환의 나이를 비교하면서 견환이 늙었다며 조롱했다.[44]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견환의 입궁 동기이자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45] 드라마에 나오는 흔상재의 원형 중 하나. 같은 궁을 쓰던 기귀인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청해서 견환의 편이 되어 도움을 주었다.[46] 드라마에 나오는 부찰 의흔의 원형 중 하나.[47] 중국 드라마 후궁견환전의 후속작.[48] 숭경황태후 뉴호록씨.[49] 길태빈.[50] 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의 정부. 나중에 이전 황후였던 나비에랑 이혼한 소비에슈와 정식으로 혼인하면서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그동안 저지른 악행과 도망 노예 출신이었다는게 들통나 황후 자리에서 폐위되었다.[51] 소비에슈의 아버지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52]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 그가 가장 총애한 정부였다고 언급된다.[53] 프린세스 메이커 2의 등장인물. 성을 방문할 때 예의범절이 85 이상이면 대화를 허가해주고 화술 수치당 인맥을 높여준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귀비(윈도우즈 판), 후궁(리파인 판)으로 오역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 후궁 문서의 r696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후궁 문서의 r69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