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마이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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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에미르2.2. 코르도바 칼리프2.3. 멸망
3. 우마이야 왕조와 후우마이야 왕조의 계보도4.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목록
4.1. 아미르 시대4.2. 칼리파 시대4.3. 함무드의 찬탈기4.4. 우마이야의 복귀

1. 개요[편집]

아랍어: الدولة الأموية في الأندلس (al-dawlah al-ʾumawiyyah fī al-ʾAndalus), خلافة قرطبة (Khilāfat Qurṭuba)
에스파냐어: Califato de Córdoba
영어: Caliphate of Córd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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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파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왕조 중 하나.
이슬람 제국촉나라

756~1031

후옴미아드 왕조라는 말도 간혹 통용된다. 후우마이야 왕조는 압드 아르-라흐만 1세부터 아미르를 자칭했던 시기(756~929)와 압드 아르-라흐만 3세부터 칼리프를 자칭했던 시기(929~1031)로 나뉜다.

2. 역사[편집]

2.1. 에미르[편집]

750년 아바스 왕조의 시조 아부 아바스가 우마이야 가문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킨 사건 이후 간신히 살아 남은 왕자 압드 아르-라흐만[1][2]이 아직 아바스의 세력이 뻗지 않은 이베리아 반도로 도주, 756년에 이베리아 반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코르도바를 수도로 한 왕조를 개창했다. 이것이 후(後)우마이야 왕조(코르도바 칼리프조)이다.

기독교 세력과 국경을 맞닿아 있어 상시 전쟁중이었지만 중앙군의 세력이 미약해 지방 영주들의 힘이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과 북아프리카 일부를 장악했지만 실제로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는 건 코르도바 주변뿐이었다.

이 지역은 압바스 왕조의 통제권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었지만, 압바스 왕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에미르'라는 칭호를 쓰고 있었다.

2.2. 코르도바 칼리프[편집]

중앙정부의 힘이 강력해지고 국력이 강해진건 압드 아르-라흐만 3세(제위기간 912-961)때였는데 중앙집권의 과정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아바스 왕조가 약해진 틈을 타 칼리프를 선언하였다. 이 때 북아프리카에서는 튀니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파티마 왕조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는데, 파티마 왕조가 칼리프를 자칭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의미도 있었다. 압바스 칼리프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파티마 칼리프에 가로막혀 버렸으므로, 파티마 칼리프의 권위에 대항할 서부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구심점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후우마이야 왕조는 파티마 왕조의 진격을 막아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코르도바의 후 우마이야 왕조, 카이로의 파티마 왕조,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에 각각 칼리프가 들어서면서, 얼마동안 이슬람 세계에는 무려 3명의 칼리프가 존재하게 된다.삼국시대

이때 인구가 700만이었고[3] 수십만의 인구에 이르던 거대도시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으며,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후우마이야 왕조 통치 동안 스페인은 농업, 상업, 수공업이 발전하고 학문과 과학이 융성하며 '암흑의 땅' 서유럽에서 가장 빛나고 있던 곳이었다.[4]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메스키타나, 40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했었던 가장 거대했던 도서관도 이 때 완공되었다.

압드 아르-라흐만 3세가 죽고, 그의 아들인 알-하캄 2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훌륭한 통치를 펼쳤다. 그러나 알-하캄 2세가 제위 후 15년만에 급사하자, 당시 최고 실권자였던 알-하지브 알-만수르가 알 하캄 2세의 12살 된 아들인 히샴 2세를 허수아비로 세우고 권력을 좌지우지했다. 관용적인 통치를 펼쳤던 선대 왕들과는 달리 알-만수르는 피지배층에 가혹한 수취를 요구하고 기독교도들을 탄압하였다.

가혹했지만 알-만수르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중앙집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만수르마저 죽게 되자 칼리프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허수아비가 되고 각지에서 반란과 독립요구가 들끓게 된다.

2.3. 멸망[편집]

1016년에는 7년 동안 함무드 가문에게 칼리파 자리를 찬탈당하기도 했다. 1023년 아브드 알 라흐만 5세가 다시 칼리파 지위를 찾지만 1031년 히샴 3세를 마지막으로 후우마이야 왕조는 해체되고 이베리아 반도는 수많은 타이파(طائفة, 이슬람 공국)국으로 쪼개지게 된다. 그리고 이 타이파들은 무라비트 왕조에 의해 통일된다.

3. 우마이야 왕조와 후우마이야 왕조의 계보도[편집]

4.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목록[편집]

4.1. 아미르 시대[편집]

이 때는 칼리파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우마이야 왕조의 후신이었으니 사실상 칼리파였다.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756–788
  • 히샴 1세 788–796
  • 알 하캄 1세 796–822
  • 아브드 알 라흐만 2세 822–852
  • 무함마드 1세 852–886
  • 알 문드히르 886–888
  • 압달라 이븐 무함마드 888–912
  •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912–929

4.2. 칼리파 시대[편집]

이 때부터 정식으로 칼리파를 칭했다.
  •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929–961
  • 알 하캄 2세 961–976
  • 히샴 2세 976–1008
  • 무함마드 2세 1008–1009
  • 슐레이만 2세 1009–1010
  • 히샴 2세(복위) 1010–1012
  • 슐레이만 2세(복위) 1012–1016
  • 아브드 알 라흐만 4세 1017

4.3. 함무드의 찬탈기[편집]

  • 알리 이븐 함무드 알 나시르 1016–1018
  • 알 카심 이븐 함무드 알 마무 1018–1021
  • 야햐 이븐 알리 이븐 함무드 알 무타리 1021–1023
  • 알 카심 이븐 함무드 알 마무(복위) 1023

4.4. 우마이야의 복귀[편집]

  • 아브드 알 라흐만 5세 1023–1024
  • 무함마드 3세 1024–1025
  • 칼리프 공위(야햐 이븐 알리 이븐 함무드 알 무타리) 1025–1026
  • 히샴 3세 1026–1031
[1] 우마미야 왕조의 10대 칼리파 히삼의 손자였다.[2] 알 라흐만이 알 안달루스에 도착해 에미르국을 세웠을 때는 우마이야 가문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몇 사람 더 살아있었다. 같이 다마스쿠스를 탈출했으나 도중에 헤어져버린 누이들과 그의 아들 술레이만 등으로, 이들이 알 안달루스에 도착하자 감격한 알 라흐만은 죽을때까지 애지중지했다고 한다.[3] 물론 그 대부분은 기독교인이었다.[4] 근데 안달루스를 침공한 이슬람교도들이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깡그리 박살내버린 서고트 왕국의 문명이 결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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