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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 F. 후지오
藤子・F・不二雄 |Fujiko F. Fujio
필명
후지코 F. 후지오 ((ふじ)()F(エフ)()()())
본명
후지모토 히로시 ((ふじ)(もと) (ひろし))
국적
출생
사망
1996년 9월 23일 (향년 62세)
직업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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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도야마현립 타카오카공예고등학교 (전기과 / 졸업)
배우자
후지모토 마사코
자녀
슬하 3녀
데뷔
천사의 타마짱 (1951년)
주요 장르
활동 기간
링크
1. 개요2. 생애3. 특징4. 작품 목록5. 기념 박물관6. 출연
6.1. 영화6.2. 텔레비전
7. 수상 경력8. 여담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국민 만화가 중 한 사람. 1951년 후지코 후지오 A(이하 A)와 같이 마이니치 소학 신문에 투고한 천사의 타마짱이 채용되어 연재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생전 그가 발표한 만화들은 일본 만화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생애[편집]

생애 다큐멘터리

어린 시절 병치레를 자주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2]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생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 A를 만났으며, A와 매일같이 서점을 찾아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던 데즈카 오사무 만화들의 초판을 모두 사서 모으기도 했다.[3] 극초기 그림체는 데즈카 오사무의 판박이었으며, 데뷔 초기 필명도 데즈카 오사무에서 따온 "아시즈카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었을 정도. 데즈카의 작품에 특별한 생각을 가지며 언젠가 그와 같은 멋진 작풍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즈카를 무척 신봉했던 나머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의 초대 편집장이 테즈카에 대해 비판을 토로하자 무척 분노하여 1주일 가까이 사무소에 출입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우선 취직하기로 마음먹어 제과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로 만화를 그릴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해 며칠 뒤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봄방학 시기에 A와 같이 테즈카 오사무를 만난 적도 있었다. 이 무렵 자신이 과연 만화가로서 잘 해나갈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데즈카한테 너희라면 해나갈 것이란 말을 듣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론 집에서 만화를 집필하는데 전념하며 휴일엔 신문사에서 일하던 A와 함께 만화를 그렸고, A를 꾸준히 권유한 끝에 1954년 도쿄로 도착해 후지코 후지오로 필명을 바꾸고 토키와 장에 입주해 다른 동료 만화가들의 작업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한 후론 잡지 연재도 시작하였으며, A와 공동으로 그린 요괴 Q타로, 자신의 단독 만화인 퍼맨은 상당한 히트를 쳤으나 21에몬, 우메보시 덴카, 우주에서 온 모자코는 오래가지 않아 연재가 종료되는데 그치면서 몇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다. 당시 후지코 스튜디오에선 에비하라 타케시 등의 일부 지원들을 제외하곤 괴물군, 웃는 세일즈맨, 마타로가 온다! 등을 연재하던 A를 중심적으로 지원했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에게 자신을 선데이 작가진에서 분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빅 코믹에서 집필 요청 의뢰를 받았고, 후지코 F. 후지오는 자신의 만화가 청년만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엔 이를 거절했으나 편집장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승낙했다. 이때 그린 단편은 '미노타우르스의 접시'로, 빅 코믹 편집부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자신도 이런 것이냐라는 새로운 장난감에 넣은 듯한 기쁨이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1969년 쇼가쿠칸 유아잡지 <요이코>에 바로 그 도라에몽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4년 뒤인 1973년에 애니메이션이 종영하면서 편집부에서도 연재를 종료시키려 했다. 후지코 F. 후지오는 이에 반발하며 도라에몽의 연재를 속행했고 그 결과 도라에몽은 6년이 지난 1979년 TV 아사히에서 재애니메이션화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들 또한 애니메이션화되어 보다 많은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콤비를 해체한 뒤론 후지코 후지오 Ⓕ로 필명을 변경해 활동했지만 1년 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권유로 F를 이름 가운데에 넣는 지금의 필명으로 바꾸었다. 친구인 A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9년 뒤 1996년 9월 20일, 가족이 저녁 준비를 이야기하면 평소 작업실에서 대답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록 식탁에 오지 않아서 딸이 이상하게 생각해 부르러 갔다가 책상에 앉아 의식을 잃은 상태인 부친을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 62페이지를 그리다가 연필을 잡은 채로 쓰러졌으며,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3일 후인 9월 23일 새벽 2시 10분에 도쿄도 신주쿠구에 있는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서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이전부터 운명을 예감했는지,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의 ​​줄거리를 쓰기 전 시바야마 츠토무한테 미리 알려주거나 사후 자기 작품들의 행방과 후지코 프로덕션의 활동 등에 대해 걱정을 보인 내용을 쓴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4] 또한 1992년 간암으로 투병할 당시 코로코로 코믹에서의 대장편 도라에몽 작품 노비타와 구름의 왕국 연재를 일시적으로 중단해 후지코 프로덕션에서 비주얼 스토리를 게재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
사망 당시 뉴스

후지코 후지오 A는 당시 인터뷰에서 "마음은 혼란스럽고, 솔직히 오늘 아침부터 계속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어요. 몹시 유감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는 대단한 천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의 남자였어요."라고 말했다.[5] 9월 29일 장례식이 진행됐을 때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였고, 현장에서 도라에몽의 성우 오오야마 노부요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6] 이후 2000년에 소학관은 한정판 후지코 F. 후지오 복제 원화집을 발매하였으며, 2006년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의 설립이 공식 발표되었고, 2008년 12월 건설예정지가 확정지어져 2011년 9월 3일 개관하였다. 소학관은 2009년에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의 발매를 발표하였고, 2014년까지 총 115권으로 출간하였다.

3. 특징[편집]

내가 만화를 그리는 자세는 "양질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 이것으로 끝난다.#

도라에몽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그림체가 유명하다. 5에서 6등신의 신체비율에 동글동글하게 데포르메된 표정과 자유로운 만화적 감정표현 기법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신이슬과 같은 사백안의 눈에 큰 비율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곡선이 매우 자연스럽고 관절 묘사에 공을 들인다. 관절을 실제 사람처럼 그려서 진짜 사람이 움직이는 듯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그래서 얼핏 따라 그리기 굉장히 쉬워 보이는데 직접 그려보면 쉽게 따라 그릴 수가 없다. 그림 좀 잘 그린다는 사람들이 그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고 나서 한동안 선 치는 것부터 다시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천재인지 느낄 수 있다.

트레이드 마크는 오너캐에 그려진 베레모파이프 담배. 하지만 빵모자를 쓰게 한 사람은 같은 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인 데즈카 오사무가 아니라 친구인 A였다고 한다. 어느 날 A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베레모를 받았지만 그다지 쓰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대로 F에게 양보했고, 이것이 후지코 F. 후지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주로 소학관의 학습잡지나 코로코로 코믹에서 아동 만화를 연재했으나, 빅 코믹 같은 청년만화 잡지에서 성인향 단편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접했던 무기, 군사, 쿠데타, 혁명 등등을 모티브로 하여 훗날 이와 관련되거나 묘사시킨 만화들을 다수 발표하였다.[7] 본인은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해 어릴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이 작용해 대체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혹사시키는 행위로 묘사하며, 초창기의 도라에몽 연재분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개 존재해 군국주의로 미쳐가던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상황을 표현해낸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8] 환경에 대한 깊은 관심도 가져서 도라에몽 대장편에선 환경 보호를 주창하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생전 좋아하는 취미가 다양한 덕후 기질의 만화가이기도 했다. 야구,[9] 철도 모형은 생전에 즐기던 취미 중 하나였으며, SL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다수 그려내기도 했다.[10] 스스로 직접 카메라를 촬영해보거나 디오라마를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도라에몽의 비밀 도구 중에서는 수많은 카메라가 등장하는 것 외에 디오라마 제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게 그 증거. 후지코 F. 후지오는 비밀 도구의 아이디어를 짜낸 팁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으며, 특수 촬영, 프라모델, 무선 조종 등에서도 많은 탐구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공룡에 대한 관심도 깊어 책상에는 시조새의 복제 화석티라노사우루스의 프라모델과 진짜 디플로도쿠스꼬리뼈까지 장식되었었다고 한다. 어시스턴트였던 무기와라 신타로가 그린 익룡 일러스트를 보고 팔관절이 이상하다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11] 서부극이나 카우보이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이 그려낸 것과[12] 더불어, 생전 A, 스즈키 신이치, 츠노다 지로랑 8mm 카메라로 서부극을 촬영한 경험도 있었다. 골프도 취미 중의 하나였지만, 자타가 공인한 상당히 서투르는 성격이었다고 한다.[13]

후지코 F. 후지오는 대표작이 도라에몽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SF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14] 그가 제창한 SF는 본래의 의미가 아닌 S - 스코시(少し, 약간), F - 후시기(不思議, 신기한)란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비일상적으로 들어온 내용의 만화들이 많다. SF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의 흐름을 이어받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또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횬효로 같은 코즈믹 호러에 가까운 단편집을 많이 만들었다.

자료와 고증에 철저히 공을 들인 작가로, 매번 신작을 낼 때마다 엄청난 양의 서적을 뒤지고 다니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도라에몽에서 "우주에선 소리가 안 나"라고 하거나, 일본엔 공룡이 없다면서 수장룡을 공룡 대신 내보낸 것이 그 예. 물론 작가가 완전한 전문가가 아니니 틀리는 경우도 꽤 되지만 작품에 대한 자세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접 외국에 나가고 경험하지 않아도 공부와 취재를 통해 상상력을 보완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제자들에게도 이를 강조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서 설정된 세계관들이 연결되는 일도 많아서 한 작품의 캐릭터가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고, 심지어 후일담이나 전의 내용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콤비를 해체하기 전에는 A의 작품인 닌자 핫토리군과 퍼맨의 크로스오버도 존재했었다. 그의 만화들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동물 캐릭터가 평범한 소년 주인공과 함께 살고, 여자아이 캐릭터 1명, 골목대장 1명, 앞잡이 1명의 구도 설정이 많다. (도라에몽식 구성 참조.)

그의 작품들에는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판치라, 목욕씬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작인 도라에몽만 하더라도 주인공인 신이슬(미나모토 시즈카)라는 초등학생 여성 캐릭터의 치마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가 왜 판치라를 자신의 작품에 자주 넣었는지 정확한 사유는 불명. 팬과의 좌담회에서 한 팬이 "왜 이슬이의 목욕 장면이 자주 나오나요? 선생님은 변태인가요?"라는 돌직구 질문에 "저 또한 여러분들과 같답니다"라고 대답한 일화는 존재하나 이 대답에 담긴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별개로 소아성애, 즉 작가 자신이 어른의 시각에서 여자아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표현한 게 아니라 주인공 남자아이의 시각으로 또래 여자아이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오줌싸개 속성을 가진 남자 캐릭터도 자주 활용한다. 도라에몽의 비실이는 잘때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는 설정이 있으며 주인공 노진구 역시 자주 바지에 오줌을 싼다. 키테레츠 대백과삐죽이[15]도 비슷한 설정을 지니고 있으며 코로스케도 극 초반부에는 야뇨증 속성을 보였다.

작품의 단행본화에선 수정 작업을 거쳐 보다 완성도를 높여갔는데, 도라에몽 개정판에서 캐릭터의 대사나 장면이 변경된 사례가 있던 만큼 작품을 그리면서 열정적으로 임하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고 대표작인 도라에몽 극장판은 직접 단행본을 그리고 제작에 관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사후 도라에몽의 결말을 다룬 동인지가 나와서 널리 퍼져가자 소학관이 회수 조치를 내리기도 했으며, 작품들에 대한 모에파치 얘기가 돌았을 때도 그의 유족들이 맹렬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허락되지 않았다.

4. 작품 목록[편집]

  • 유혈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1954)를 후지코 F. 후지오식으로 바꾼 단편 만화.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이다.
  • 천사의 타마짱
  • 요괴 Q타로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으로 집필했던 작품으로, 또다른 대표작이다.
    • 신 요괴 Q타로
  • 퍼맨
    작가 본인이 제일 아꼈던 작품이며, 역시 대표작들 중 하나이다.
  • 21에몬
  • 우메보시 덴카
  • 도라에몽
    그의 작품들 중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표작.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으로 매년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다. 또한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많은 후배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키테레츠 대백과
    후지TV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한 이래 인지도가 상승한 또다른 대표작.
  • 침푸이
    도라에몽식 구성을 사용한,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
  •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
  • 모자코(우주에서 온 모자코)
    원작은 종종 그로테스크 씬들이 나오고[16] 블랙 코미디한 스토리지만,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삭제되었다.
  • T·P본 (타임패트롤 본)
  • 대장편 도라에몽 시리즈 등 다수

1968년부터 1995년까지 112개의 SF 단편들을 발표했다. 자세한 작품들은 일본 위키피디아의 후지코 F. 후지오 작품 목록을 참고. #

5. 기념 박물관[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출연[편집]

6.1. 영화[편집]

6.2. 텔레비전[편집]

7. 수상 경력[편집]

8. 여담[편집]

  • 2014년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랭킹에서 4718표를 얻으며 2위를 기록했다.[19] 출처
  • 생전 애용하던 연필미쓰비시 유니의 B 사이즈로, 펜촉은 지브라의 카브라 펜을 주로 활용하였다.
  • 지금의 도라에몽이 크게 히트를 치고 장수 애니메이션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되었던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도라에몽 탄생비화 단편만화에 실린 내용을 본다면 처음에는 아이디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그와중에 어린 딸들이 잠들어있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하면서 크게 고민을 하고 본인이 우연히 꾸던 꿈에서 나온 내용들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짜맞추고 노력한 끝에 도라에몽의 연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6권에서 끝내려고 하던 만화가 대장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3명의 이 존재하며, 그들에 의하면 평균 ​​수면 시간을 4시간으로 맞추었던 일상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 도라에몽의 도구 내용을 이것저것 뜯어본다면 작가의 노력과 재능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대 기준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의 미래과학의 모든 것들을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상상하면서 만화로 그려낸 셈이다.
  • 좋아했던 여배우시라카와 유미. 토키와 장에 머무르던 시절 A에게 담배가게 앞에 시라카와 유미가 있어!라고 전해듣고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담배 가게까지 달려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가게의 할머니에게 시라카와 유미 씨가 여기에 없었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는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 안에 시라카와 유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 초대 전속 비서는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그린 에비하라 타케시가 맡았으며, 무기와라 신타로(하기와라 신이치로)도 어시스턴트로 그를 지원해주면서 함께 연극을 보거나 소바(메밀국수)를 같이 먹는 등 무척 친밀한 관계로 지냈다. 더욱이 후지코 F. 후지오는 무기와라가 그린 만화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해주면서 도라에몽 단행본의 표지를 맡기는 등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 후진으로도 준비시키고 있었다.
  • 어린이가 말한 여러 질문들에 대해선 최대한 동심파괴스럽지 않게 말했다. 아래는 사례들.
    • 타케다 테츠야[20]가 어린 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딸이 도라에몽은 어디 있냐고 묻자 바로 도라에몽은 지금 방송국에 있는 거다고 말했다. 타케다 테츠야는 이때 매우 감동해서 후지코 F. 후지오를 평생 존경하기로 했다고.
    • 도라에몽의 인기가 높았던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4차원 주머니를 가지고 있지 않냐고 묻자 도라에몽이 착용하고 있지만 그 외에 예비 주머니가 있는데, 이 2개밖에 없기 때문에 나한테 없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 도쿄로 올라왔을 당시에 사망률 1위를 기록했던 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기력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 사실상 그의 첫번째 작인 노비타의 공룡이 개봉하기 전날에 관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영화관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로 숙소를 잡았으나 영화를 보러 많은 아이들이 달려와서 감상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인스턴트 컵라멘[21]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이케 씨의 모델이자 동료인 스즈키 신이치는 자신보다 매우 라멘을 좋아했다고 말했고, 후지코 F. 후지오는 생전 컵라멘을 을 뿌리는 것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술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스튜디오 제로의 사장을 지냈을 때는 당시 스튜디오의 전무가 혼자서 사장 전용 차량으로 중고 링컨 컨티넨탈을 구입했고 개인 운전사도 고용했었는데, 오다큐 선 열차를 타는 것에 익숙하던 그가 이를 꺼려 전용 차량은 일년에 몇번만 가동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 그의 작품 대부분이 한국에 방영이 되어서인지 국내에서도 익숙한 인물이자 유명하다. 그의 작품중에서 첫번째로 한국에 방영이 된 것이 도라에몽이며 그 후에도 애니 채널에서 퍼맨, 키테레츠 대백과, 만능 비리몽 등 여러 가지가 방영됐다. 만약 2010년대까지 살아있었다면 감사의 의미로 방한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매우 아쉽다.
  • 타케다 테츠야노래를 좋아하여 극장판의 엔딩 테마를 계속 담당하던 그를 강판하자고 제의가 들어왔을 때 완강히 거부한 것이 도라에몽 대전집에서의 증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타케다 테츠야가 작사한 노래 가사를 자신의 만화에 연출로 삽입하기도 했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점찍어 오랜 기간 도라에몽 극장판의 주제가를 작곡했던 타케다 테츠야는 1996년 개봉한 노비타와 은하초특급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이 작품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생전에 데즈카 오사무라는 일본 만화계의 대선배이자 거장을 존경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후지코 F. 후지오의 만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데즈카 오사무가 입주한 이래로 여러 만화가들이 거주하며 많은 만화가들을 양성한 토키와 장에 후지코 후지오 A와 함께 입주한 이래로 데즈카 오사무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제자 격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2016년 4월 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와 KIA 경기에 시구자로 등장했다. 영상 하지만 본인은 이미 1996년에 타계했고 사실은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 10주년을 맞은 몰래카메라. 도라에몽데이를 맞아 식전행사 사회를 본 조지훈 단장이 시구자로 도라에몽의 원작자 후지코 F. 후지오를 소개했지만 전광판에 나온 시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그의 숨겨진 명작인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그닥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화제가 잠깐 되기도 했다.

9. 관련 문서[편집]

10. 둘러보기[편집]

[1] 도라에몽 왼쪽에 있는 것이 서명이다.[2] 이 경험이 자라서 영향을 미쳤는지 데뷔 후에도 종종 TV 출연, 논술, 골프 등을 즐기던 후지코 후지오 A와는 다르게 만화들을 집필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이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캐릭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3] 후지코 F. 후지오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데즈카 오사무로, 생전 데즈카를 스승처럼 존경했었으며 그의 작품들에 매우 감격한 나머지 아무한테나 그 만화들을 보여주면서 상대가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었는데, 그다지 재미있어 하지 않으면 바로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4] 2006년 2월 19일 TV 아사히에서 방송된 '도라에몽 탄생 이야기 ~ 후지코 F. 후지오의 편지 ~ '에 따르면, 1986년 위암이 발견되어 이후 컨디션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가졌던 것이 밝혀졌다.[5] 이후 A는 만화의 길의 속편 만화에서 F를 추모하는 작품인 '안녕 친구여'를 집필했다.[6] 같은 날 그를 추모하는 특집 프로 노비타의 일본탄생이 TV 아사히에서 방송되었다.[7] 만화의 길에서는 전함의 삼면도와 비행기의 모형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8] 도라에몽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혹사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묘사한 흰 백합의 여자아이와 만나는 '아빠의 추억' 에피소드, 우에노동물원맹수 살처분을 언급한 '코끼리와 아저씨' 에피소드 등이 있다.[9] 소학 4학년 1971년 1월호에서 독자의 질문에 자신이 긴테츠 버팔로즈를 좋아했다고 답했다.[10] SF 단편 만화 다다미 4장 반 SL 여행, 도라에몽의 SL 굴뚝 편, 노비타의 모형철도 은하철도 승차권 편, 포코냥의 다이나믹도 경전철 편 등등.[11] 이런 흔적들은 노비타의 공룡, 노비타와 용의 기사나 T·P본 등에서 드러나온다.[12] 특히 노비타에게 사격의 재능이 존재한단 설정의 에피소드를 많이 그려냈었고, T·P본과 SF 단편집 휴일의 총잡이 등에서 카우보이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었다.[13] 말년에 그린 작품인 「미래의 추억」에서는 골프가 서투른 자신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후지키 F. 후지오 쪽이 서툴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자아비판적 장면이 있다.[14] 대표적으로 스타워즈가 일본에서 인기였을 때엔 도라에몽에 스타워즈에 관련된 패러디를 많이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예비 기계를 이용해 찍은 영화의 제목이 '스타 죠스'라는 것과, SF 단편인 "어느 날...", "뒷골목 뒷골목 명화관"에 패러디 극중극이 존재하며, 진구의 우주전쟁의 줄거리는 전체적으로 스타워즈에서 패러디했다.[15] 이 친구는 원래는 비실이의 포지션으로 시작하여 돼지고릴라와 함께 코로스케를 괴롭히곤 했으나, 갈수록 노진구가 되어버리더니 중반부터는 그냥 노진구 포지션이 되어 버렸다.[16] 원작 만화책을 읽으면 도라에몽을 그린 그 유명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17] 당시는 후지코 후지오 명의로 수상.[18] 애니메이션의 문화와 산업 진흥에 기여함에 대해서.[19] 1위는 데즈카 오사무(10751표), 3위는 토리야마 아키라(3704표), 4위는 오다 에이이치로(2212표), 5위는 파트너인 후지코 후지오 A.[20] 혐한 + 일본 내 지역 감정 조장 등으로 성격에 있어서 평판이 지독히 나쁜 사람이나 그런 타케다 테츠야가 후지코 F. 후지오를 평생 존경하기로 했다는 것은 작가가 정말 엄청난 인품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21] 특히 치킨라멘을 가장 좋아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