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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後漢(23~220)
1.1. 개요1.2. 황실의 붕괴1.3. 촉한의 멸망1.4. 역대 황제1.5. 계보1.6. 추존 황제
2. 後漢(947~951)

1. 後漢(23~220)[1][편집]

1.1. 개요[편집]

신나라의 멸망 이후로 혼란기를 거쳐서 세워진 국가. 건국자는 광무제 유수(劉秀). 수도 낙양의 위치가 전한의 수도 장안보다 동쪽에 있기에 동한이라고도 불린다. 현대에 나온 중국 서적에는 아랫 항목에 있는 오대십국시대 후한과의 구별을 위해 동한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이 나오기 전에 현한이 있지만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지 잘 언급이 되지 않고 있으나 사실상 신나라가 23년에 멸망한 다음에 한나라가 다시 재건이 되었기 때문에 개국이 25년이 아닌 23년이라 봐도 상관는 없다.

현한의 황제 유현의 밑에 있었던 유수는 유현의 밑을 지나 하북 지방에 정착하며 세력을 넓혀 25년 6월에는 국가를 건국해 도읍을 낙양으로 하고 연호는 건무(建武)라 하였다. 그 뒤 유현을 죽인 적미군을 격파하고 36년에는 중국을 통일한다. 통일 후 유수는 백성들을 위해 노비를 해방하고, 죄인들을 석방시키고, 수리사업을 일으키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비록 유수는 한경제의 6대손이었지만 세력이 약해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남양 인근의 호족들과 연합 정권을 세웠다. 이는 전한 건국할 때와 달리 숙청이 없었고 외척의 힘이 강화되는 원인이 된다.

후한 시대에서는 채륜세계 최초종이인 채후지를 만들고, 장형이 혼천의와 지동의를 만드는 등 문화가 매우 번창했다. 그리고 반초가 서역 여러 나라와의 교역길을 열어서 실크로드를 다시금 개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 4대 황제인 화제부터는 외척과 환관의 세력 다툼이 심해지면서 정치는 점점 타락해 갔으며 사회 전반의 침체가 뒤따랐다. 화제 이후로는 어린 황제가 즉위했다가 일찍 붕어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치적 권위가 불안정해진다. 이 같은 어린 황제 현상의 시작은 상제 유융이었는데, 그는 태어난지 몇 달 만에 황제가 되었다가 즉위한지 몇달만에 감기로 죽고 말았다(…).

이처럼 황제가 자주 바뀌는 와중으로 환관과 외척이 권력을 잡다가, 결국 환관이 위세를 얻으면서 정치는 더욱 타락하고, 당고의 금등으로 유학자들에게 까지 신망을 잃으며, 게다가 암군인 영제가 국고를 채우기 위해 군주가 스스로 매관매직을 하는 등 망조가 보이니까 민심이 피폐해지고, 마침내 장각황건적의 난을 일으킨다.

이러한 상황과 동시에 후한은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등을 거치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황건적을 난을 시작으로 민란이 자주 일어났는데, 후한 조정이 직접 진압할 능력이 없다보니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방관들의 자율성을 크게 인정해 줄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은 각지에서 독자적인 권력을 쌓으면서 사실상 군벌화가 이루어졌다. 황건적의 난이 겨우 진압될 무렵에는 거의 중앙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아직도 각지가 혼란스러웠으므로 그나마 조정에 우호적인 반군벌 지방관들에 대해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십상시의 난으로 중앙정치가 혼란스러워지자, 조정의 분란을 명분으로 하여 거의 모든 지방관들의 이반으로 국가가 공중분해되는 대참사가 터지고 만다. 신나는 삼국지 아하!

이 같은 후한 말기의 막장 상황이 삼국지연의의 초반부 배경이기도 하다.

1.2. 황실의 붕괴[편집]

을 얻은 군벌 중 하나동탁이 정권을 잡다가, 동탁이 살해되자 그 졸개였던 이각곽사가 잠깐 정권을 잡다가, 마침내 조조가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동탁이 전권을 휘두를 때 후한 황실은 그저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하였다.

조조는 천자를 명분으로 삼아 각지의 군벌들을 차례차례 토벌하였지만, 각지의 군벌들은 오히려 조조가 천자를 위협하는 역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항하였다. 결국 조조가 지배한 북중국, 유비가 지배한 사천성 일대, 손권이 지배한 강남 일대 등 지배 영역이 셋으로 나뉜 상태로 고착되었다.

조조 지배 지역에서 식물인간 상태에서 유지되는 후한 조정은 이 상황에서 전혀 영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결국 220년, 헌제가 조조의 아들조비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붕괴되었다.

1.3. 촉한의 멸망[편집]

이후 황실의 일원인 유비가 익주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촉한을 건국. 43년을 더 이어갔지만 결국 위의 침략으로 멸망함으로써 완전히 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1.4. 역대 황제[편집]

  • 비록 전한의 황족이 특권을 상실하기는 하였지만 전한과 후한은 나라 이름도 같고 국성(國姓)도 같으나 왕망 때문에 잠시 끊어져서 전/후로 나누어 부르는 것 뿐이다. 그래서 광무제 또한 왕조를 새로 세운 게 아니라 다시 일으킨 황제로 여겨서 묘호가 세조이고 대수도 16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그 앞의 황제를 알고 싶으면 전한 열성을 참고.
  • 광무제를 제외하면 전한과 마찬가지로 시호에서 '효(孝)'를 빼면 된다. 예시) 효영황제 = 영제, 효헌황제 = 헌제
대수
묘호
시호
출생
사망
연호
재위기간
능호
16대
세조
(世祖)
유수
(劉秀)
기원전 5.1.15
57.3.29
건무(建武, 25~ 56)
건무중원(建武中元, 56~ 57)
25~57
원릉
(原陵)
17대
현종
(顯宗)
유장
(劉莊)
28.6.15
75.9.5
영평(永平, 58~ 75)
57 ~ 75
현절릉
(顯節陵)
18대
숙종
(肅宗)
유달
(劉炟)
57
88.4.9
건초(建初, 76~ 84.8)
원화(元和, 84.8 ~ 87.7
장화(章和, 87.7 ~ 88)
75~88
경릉
(敬陵)
19대
목종
(穆宗)
유조
(劉肇)
79
106.2.13
영원(永元, 89~ 105.3)
원흥(元興, 105.3~105.12)
88~105
순릉
(順陵)
20대
-
유융
(劉隆)
105
106.9.21
연평(延平, 106)
105~106
강릉
(康陵)
21대
공종
(恭宗)
유호
(劉祜)
94
125.4.30
영초(永初, 107~113)
원초(元初, 114~ 120.4)
영녕(永寧, 120.4 ~ 121.6)
건광(建光, 121.7 ~ 122.3)
연광(延光, 122.3 ~125)
106~125
공릉
(恭陵)
22대
-
소황제
(少皇帝)

북향후
(北鄕侯)[5]
유의
(劉懿)
?
125.12.10
-
125
-
23대
경종
(敬宗)
유보
(劉保)
115
144.9.20
영건(永建, 126~ 132.3)
양가(陽嘉, 132.3 ~135)
영화(永和, 136~141)
한안(漢安, 141~ 144.4)
건강(建康, 144.4~144.12)
125~144
헌릉
(憲陵)
24대
-
유병
(劉炳)
143.2.26
145.2.15
영희(永憙, 145)
144~145
회릉
(懷陵)
25대
-
유찬
(劉纘)
138
146.7.26
본초(本初, 146)
145~146
정릉
(靜陵)
26대
위종
(威宗)
유지
(劉志)
132
168.1.25
건화(建和, 147~ 149)
화평(和平, 150)
원가(元嘉, 151~ 152)
영흥(永興, 153~ 154)
영수(永壽, 155~ 158)
연희(延熹, 158~ 167)
영강(永康, 167)
146~ 167
선릉
(宣陵)
27대
-
유굉
(劉宏)
156
189.5.13
건녕(建寧, 168~ 172)
희평(熹平, 172~ 178)
광화(光和, 178~ 184)
중평(中平, 184~ 189)
167~189
문릉
(文陵)
28대
-
유변(劉辯)
176.9.27
190.3.6
광희(光熹, 189.4.13 ~ 189.8.27)
소녕(昭寧, 189.8.28 ~ 189.8.30)
189
-
29대
-
효헌황제
(孝獻皇帝)
[6]
산양공(山陽公)
유협
(劉協)
181
234.4.21
영한(永漢, 189.9.1 ~ 189.12)
중평(中平, 189.12)
초평(初平, 190~ 193)
흥평(興平, 194~ 195)
건안(建安, 196~ 220.2)
연강(延康, 220.3 ~ 220.10)
189~220
선릉
(禪陵)

1.5. 계보[편집]

한나라 문서의 계보를 참조.

1.6. 추존 황제[편집]

  • '황제(皇帝)'가 아니라 '황(皇)'으로 시호가 끝난다.
시호
이름
생몰기간
능호
비고
효덕황(孝德皇)
유경(劉慶)
78~107
감릉(甘陵)
안제 추숭. 안제의 부친
효목황(孝穆皇)
유개(劉開)
?~131
낙성릉(樂成陵)
환제 추숭, 환제의 조부
효숭황(孝崇皇)
유익(劉翼)
?~?
박릉(博陵)
환제 추숭, 환제의 부친
효원황(孝元皇)
유숙(劉淑)
?~?
돈릉(敦陵)
영제 추숭, 영제의 조부
효인황(孝仁皇)
유장(劉萇)
?~?
신릉(愼陵)
영제 추숭, 영제의 부친

2. 後漢(947~951)[편집]

[1] 중국에서는 전·후한보다는 서한·동한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같이 대개 전한·후한이라고 한다.[2] 지도는 89년경의 상황.[3] 한무제 때 세계 최초로 유교를 관학으로 지정했다.[4] 혹은 57,671,400명[5] 안제의 황후 염씨가 옹립시켰는데, 염씨 일족이 몰살당한 후 북향후로 격하되었다. 재위기간 200일.[6] 촉한에서는 민제(愍帝)라는 시호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