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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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당 선생님(訓長)
1.1. 훈장직에 속하는 가상인물
2. 상훈 제도의 한 가지
2.1. 대한민국 훈장2.2. 훈장의 혜택2.3. 훈장의 패용2.4. 외국의 훈장
3. 이외수의 소설4. 파이널 판타지 6의 아이템5. 포트리스2의 계급장6. 메이플스토리장비 아이템

1. 서당 선생님(訓長)[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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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 가운데에 앉아 계신 어르신이 훈장이다.

과거 초등 교육기관인 서당의 선생님 겸 교장.

주로 그 동네에서 글 좀 꽤나 배운 사람들[1]이거나 유랑중인 선비들이 생계를 위해 훈장이 되는 경우가 빈번했고 그 이외에도 마을사람들이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서 서당을 운영하였을때 그 마을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을 훈장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싸움에 휘말려 지방으로 유배간 사람이 고관 출신이거나 명망높은 사람일 경우 유배간 마을의 훈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엔 콧대높은 양반집들도 돈을 싸들고 찾아갔는데, 요즘으로 치면 명문입시학원 스타강사들과 비슷했다. 일단 과거 합격자라는 거 하나만으로도 남 가르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때로는 교육에 뜻이 있는 이가 사재를 털어 서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서당은 기본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만 고등 교육을 가르칠 능력은 되지 않았다. 고전에서 훈장이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에게 다른 스승을 찾아보라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당대에 훈장이 되는데 별다른 자격시험 제도가 없어서 훈장의 학문수준이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 될수밖에 없던데다가[2], 서당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서민계층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고등의 학문보다는 그냥 편지나 읽을 수 있고 벽보나 볼 수 있을 정도의 글을 가르치는게 주된 목적이라 전체적인 교육의 질 자체가 낮았다.

때로는 조정에서 관리로 종사하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낙향 또는 귀양온 선비들이 훈장이 되었는데 이 경우엔 정치적인 문제와는 상관없이 학문이 높은 검증된 인물라는 인식 덕에 인근에서 양반 자제들이 꾸역꾸역 몰려와서 전체적인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이로 인해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곤 했다. 그 예로 조광조의 스승 김굉필도 귀양와서 조광조를 가르쳤고 정약용다산초당에서 제자를 길렀다. 강진군의 제자들과 그 후손들은 20세기까지 계를 열어 정약용의 집안을 돕고 지냈다는 훈훈한 기록도 있다. 그의 형 정약전흑산도에서 서당을 운영했다.

일반 매체에서는 항상 정자관(程子冠)이라는 관을 쓰고 입에는 곰방대를 피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로 천자문 같은 기본적인 글과 역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최강 스킬은 바로 회초리. 실제로 서당의 교육은 꽤나 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가끔씩은 제자들을 불러 냇가나 주변 산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시짓기 대회도 해 상을 주는 등 다정한 모습도 보인 기록도 있다. 또한 훈장은 그 마을, 또는 고을의 지식인으로 학부모나 수령들에게 존경과 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문맹이 많았던 시대인지라 편지가 오면 받아읽고 보낼 편지를 대신 적어서 보내주거나 제사때 쓰는 지방이나 축문 등 을 대신 적어주는 일을 겸하기도 했다. 다만 한양같은 도심지역의 경우에는 양반의 수가 많아서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훈장의 학문수준이 떨어질때에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보통 서당 교육만으로 과거 합격을 노리기는 어렵고, 서당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천자문이나 사서삼경 완독 등)을 끝내면 지방 향교에 가거나 독학, 개인교습 등의 단계로 넘어갔다.

훈장도 사람인지라 수강료를 받고 살았는데, 강미(講米)라고 한다. 주로 쌀이나 땔감, 옷감 등을 받았는데 이것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지 지금처럼 교사노릇해서 돈벌 정도의 액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서당에 처음 입학하는 날에는 훈장에게 술, 닭, 옷감 등의 예물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예의였고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동의 부모들이 부담하며 춘추로 곡식을 내는 것이 관례였고 독신인 훈장에게는 의복, 식사, 세탁도 주선해 주었다.

조선시대 서당의 수업료는 강미(講米), 공량(貢糧), 학세(學稅), 학채(學債)등으로 불렀고 보통 서당의 강미는 대개 초학자(신입생)에게는 1년에 벼 반 섬, 그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한 섬(10말)을 받았다고 한다.

훈장과 서당은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차차 없어지게 되었다. 트인 훈장들은 신교육과 애국심을 가르쳤으나 일제가 1918년 서당규칙을 공표하면서 야학으로 변모되었다. "'훈장 0은 개도 못 먹는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고된 직업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 상에서 훈장질한다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사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단어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었으나 인터넷 상에서 쓰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 참견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표현으로 쓰인다. 선비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표현. 다만 그냥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훈장질한다고 비꼬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현대에는 공식 교육체계에서 훈장이나 서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학이나 한문을 공부한 지식인들이 공부방을 만들고 이를 '~~서당'으로 이름 붙여서 일반인들에게 전통 예절과 한문 등을 가르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

1.1. 훈장직에 속하는 가상인물[편집]

  • 맹꽁이 서당 맹훈장, 청석골서당 훈장
  • 그 외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한국만화 중에서 훈장직으로 나오는 인물들

2. 상훈 제도의 한 가지[편집]


勳章 / the Order, m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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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거라 짬찌야

국가나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주어지는 상패. 넓은 의미에서는 표창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보통은 표창을 받는 것보다 높은 공적을 세웠을 때 수여하는 상훈으로 본다. 명예의 상징.

근대 국민개병제와 만민평등사상이 전파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과거와 달리 전공에 대해 봉토를 주는 식의 포상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전공을 세운 이에게 아무런 포상제도도 없어선 사기진작이 힘들기 때문에 생겨난 대체물. 나폴레옹이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기존의 이런 기능에 더불어 시민들에게도 수여됨으로서 현대 서훈제도의 기초를 닦았다.

관련 명언으론 나폴레옹"남자는 가슴에 달 조그마한 천쪼가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가 있다.

전쟁 중 얻는 훈장들은 당사자에겐 보물로 보이겠지만, 타인에게는 세월이 흘러 팔면 큰돈이 될 수도 있는 상품일 뿐이다. 물론 훈장을 받는 당사자도 인정할 만큼 경제적 문제가 심각해서 팔아버릴 때도 있는데 전쟁 중에 전리품으로 챙겨온 경우나, 유족이나 후손들 손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거래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나치 독일철십자 훈장이나 소련의 훈장 등은 비싼 값에 경매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훈장들은 헐값으로 팔리는데, 북한에선 받기만 해도 가문의 영광급인 김일성훈장이나 공화국영웅 메달이 이베이에서 25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심지어 국기훈장 3급 정도 되면 20달러에도 구할 수 있다. 탈북기자인 주성하는 이베이에서 발견한 이후 5백만원에 둘다 사서 고향에 갔다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저런걸 둘다 달고 있는 사람은 보위부원도 절대 단속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나.

에티오피아에선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한국전 참전 훈장을 헐값에 판다고 한다. 한국전 이후에 에티오피아가 쿠데타로 무너지고 나서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몰락했기 때문.

한마디로 훈장을 묵혀둔다고 다 돈이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훈장을 수여한 국가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수여자가 훈장을 제멋대로 판매하면 처벌하는 규정을 가진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해당 훈장을 어떤 전공을 세워서 받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데, 전사자에게 지급된 훈장을 유족들이 유품으로 챙겨두었다가, 이걸 팔려고 내놓았더니, 그 훈장의 가치를 본 국민들에게 이걸 왜 판매하냐고 까인 경우도 있다. 반대로, 훈장을 수여한 국가와 적대관계인 국가에 해당 훈장을 착용하거나 휴대하고 들어가면 끔찍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에 고종이 칙령 제13호로 훈장조례를 공포하면서 처음으로 제도화하였다. 당시 최고 훈장은 금척대훈장이었으며 이외에도 서성대훈장, 이화대훈장, 태극장(1~8등), 팔괘장(1~8등), 자응장(무공훈장), 서봉장(여성 전용: 1~6등) 등이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 나온 것처럼 소련군 등 구 공산권 국가의 경우 한사람에게 여러개의 훈장을 수여해서 옷을 뒤덮다시피할 정도로 많은 경우도 있다. 밀덕계에서는 '방탄 훈장', '두석린갑'이라고 속칭하기도 하는데, 훈장의 재질이 금속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덕지덕지 붙은 훈장이 일종의 방탄판처럼 기능해서 총알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논지의 우스갯소리이다. 다만 완전히 우스갯소리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요르단 국왕 후세인 1세는 할아버지 압둘라 1세가 암살될때 함께 총격을 당했지만 훈장이 총탄을 막아주어서 생존할수 있었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당시 합동참모의장이던 이기백 대장은 실제로 훈장이 파편을 막아주어서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2.1. 대한민국 훈장[편집]

2.2. 훈장의 혜택[편집]

무공 훈장을 받으면 법에 따라 몇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명예에 가까운 그 외 훈장들은 혜택이 없다. 공무원 같은 경우 받으면 승진에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내부 규정 정도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헌법 11조 3항에 '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무공 훈장도 혜택은 물질적으로는 거의 없고 사후 국립묘지 안장 [3] 항공료 30% 할인, 보훈병원 사용시 60% 할인 등이 있다.
금전적 혜택과 나머지 기타 혜택은 무공 훈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무공 훈장 수여자가 국가유공자이기 때문에 보훈대상으로 지정되어 받는 것이다. 실제 금전 혜택은 무공 훈장의 등급에 따라 2016년 기준 월 28~26만원 내외만을 받는다.

수혜자가 그에 걸맞지 않은 범죄 행위 등을 했을 경우, 훈장 수여 명단에서 삭제하고, 각종 혜택을 취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전두환.[4] 훈장은 본인 스스로가 반납해야지 국가에서 강제로 몰수할 순 없다고 한다. 물론 훈장 수여 명부에서는 훈장 반납하라는 통지 나갈 때 이미 삭제되었으므로, 버틴다고 해도 훈장 수여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은 절대 받을 수 없다.

단, 대통령에 재임하면 주어지는 무궁화대훈장은 하야를 할 경우 중에 중대한 범죄사실 적국에 항복문서를 조인하는 수준이면 취소가 가능하다.이 발생했을 때에만 취소되는데 자기 임기 다 채우고 퇴임했기 때문에 취소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최상위훈장인 명예 훈장이 존재한다.

2.3. 훈장의 패용[편집]

훈장을 구성하는 요소 중 경식훈장은 목에 걸고, 대수(大綬)가 있는 정장(正章)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 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두르며, 부장(副章)은 대수와 겹치지 않게 반대쪽 가슴에 단다. 중수(中綏)가 있는 정장은 정장이 가슴 중앙에 오도록 목에 건다. 소수(小綬)가 있는 정장은 왼쪽 가슴 또는 오른쪽 가슴에 단다.

2.4. 외국의 훈장[편집]

3. 이외수의 소설[편집]

훈장(소설) 문서로.

4. 파이널 판타지 6의 아이템[편집]

액세사리. 장비품의 제한을 해제한다. 예를들어 검을 장비할 수 없는 캐릭터가 검을 장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무거운 갑옷을 입을 수 없는 캐릭터가 무거운 갑옷을 입을 수 있게 해주는 식.

보통 사용하기에는 액세서리칸이 아까워서 쓰지 않고, 무기를 장착할 수 없는 가우가 주로 사용하게 된다. 허나 이것도 GBA판에선 안먹히게 변경됐다.

5. 포트리스2의 계급장[편집]

초창기의 10개 계급 체계에서 20개 계급 체계로 확대한 후 새로 생긴 계급장으로, 왕관과 메달 사이에 새로이 추가되었다. 높은 순서로 금훈장-은훈장-동훈장 이렇게 3종류가 있다.

6. 메이플스토리장비 아이템[편집]

[1] 주로 중인계층[2] 도심지에서 훈장의 학문수준이 낮으면 장사가 잘 될리가 없기에 평균적인 학문수준이 높았지만 인구가 적은 산간오지같은 경우에는 교육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아 기초적인 수준의 글을 겨우 읽는 수준의 훈장도 드물지 않았다.[3]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민을 대우함에 있어서 순직이든 자연사이든 국가가 최후이자 최고의 예우가 국립묘지(우리나라의 경우 국립현충원, 호국원) 안장이다. 최고의 대우라는 말이 갸우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그를 영원히 나라가 기억하고 기린다는 의미가 있다. 당장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 등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4] 그런데 본인이 훈장 반납을 안 하다가 추징금 수사 직전에야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