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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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 1899년까지의 연대시기이자 19세기의 마무리를 알리는 마지막 연대.

1. 개요2. 이 시기의 상징3.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것들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5. 1890년대생6. 189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편집]

조선에게는 격동과 수난 그리고 새 출발과 변화의 시기였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KOREA라는 국호로 참가를 하여 조선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게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농민들이 착취를 일삼던 부패한 관리와 외세에 맞서며 대항했고, 잇달아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조선과 청나라의 종주관계가 종언되었다. 승전국인 일본 제국이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났으나 고종인아거일 전략으로 이듬해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격랑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극대화 된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 1895년 단발령을미개혁 등을 통해서 조선 사회는 근대 개항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으며, 아관파천 다음 해인 1897년에는 자주독립국이자 근대 국가 대한제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은행인 조흥은행이 설립되면서 은행 거래가 시작되었다. 민권운동으로 독립협회만민공동회 운동도 일어났으나,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종 황제에 의해 좌절 되었다. 1899년 경부선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한반도에 최초의 근대적 교통망이 등장하였다.

일본 제국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청과 청일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대만 등을 할양 받았으나 요동의 점령은 삼국간섭으로 제제 받았다. 내적으로는 총리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청나라)은 양무운동으로 어느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청일전쟁 이후 청 왕조가 급격히 쇠퇴하게 되면서 망국의 위기에 다다르게 되었다. 광서제변법자강운동서태후위안스카이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 1899년의 의화단의 난은 청을 말 그대로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이 연대부터 근대 올림픽 대회가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1896년 그리스 왕국 아테네에서 1회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파쇼다 사건1898년 발생하는 등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팽창 정책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2. 이 시기의 상징[편집]

  • 전화 - 1898년 궁중에 최초로 가설. 전화말고도 덕률풍[1]이라고도 하였다. 민가에는 1902년에 개통되었다.
  • 전기 - 1898년 미국의 콜브란이 대한제국 황실의 지원으로 한성전기회사 설립 후 전기공급 개시.
  • 영화 - 1895년에 프랑스의 한 극장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다.

3.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것들[편집]

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편집]

5. 1890년대생[편집]

한국을 기준으로 가장 급격하게 세상이 바뀌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서 일생 전체에 걸쳐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을 고스란히 겪었고, 어떻게 보면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살아온 세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인생을 요약하면 마지막 조선 왕조 시대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 국권침탈을 겪었으며, 장성해서는 취업난과 식민수탈에 시달리다가 파시즘 및 공산주의/반공주의 등으로 인해 세상이 개판이 되어 전쟁에 또 휘말리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노인이 되어서는 다시 전쟁을 겪고 독재정권의 억압, 민주화운동 등이 결합되어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서구권의 기준에서도 왕정국가들이 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으로 변해가던 시대에 태어나 20대에 1차대전을 겪고, 장성해서는 국가재건에 힘쓰지만 잘 되지 않다가 또 2차대전을 겪고, 냉전의 공포와 68혁명 등으로 인한 급격한 사상의 전환기를 맞았던 세대이다.

최근까지 살아있던 몇몇 1890년대생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1890년대생을 포함한 19세기 출생자들은 공식적으로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2][3] 이들은 근.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갔던 세대로 이들은 조선왕조때에 태어나 유년시절에 대한제국으로 나라이름이 바뀌는걸 지켜보았으며 1890년대 후반출생자들은 대한제국시절에 태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인천의 1899년생인 이화례[4] 할머니가 계셨으나, 2020년 5월 17일 인하대병원에서 숙환으로 1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이분이 공식적으로 19세기 사람이 맞다고 무조건 볼 수는 없다.

이들이 성장하며 10대 초, 중반이던 1905년에 을사조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잃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사라졌을 때는 이들은 10대 중후반~ 막 성인이 된 20대 초반이었다. 젊은시절 일제의 무단통치를 직접 겪었으며 3.1운동 당시 이들 1890년대생들 대다수는 20대 청년세대로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세대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이 30대 젊은 시절을 보낸 1920~30년대 일제의 문화통치를 지켜보았으며 1930년대부터 해방직전까지 이들은 4~50대의 장년층으로 자녀세대인 1910년대 중후반세대 ~1920년대 출생한 세대들이 강제 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는걸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후 40대 중후반~50대 초에 해방을 맞이했으나 분단과 이념대립으로 고향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산가족 1세대이기도 했다. 이들이 60대가 되어가던 1950년에 6.25전쟁을 겪었으며 이후 이들은 60~70대 노년에 분단의 고착화와 이승만의 독재정권 그리고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바라보며 일생의 마지막을 보내다가 1950년대~1980년대 사이에 대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몇몇 장수한 세대는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와 1990년대를 살다가 가기도 했다. 이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은 2000년대~2010년대까지 살았다. 즉 이들 1890년대생들은 2020년대 기준으로 한국사의 격동과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지내온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 1897년 이전 생들에는 조선 →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 대한민국의 과정을 모두 겪었고 기억하는 유일한 세대들이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

또한 이들은 초창기 대한민국 정계의 제1세대 지도자 역할을 했던 세대이다. 대표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조병옥(1894년생) 제2공화국의 내각총리를 지냈던 장면(1899년생) 그리고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1897년생)이 대표적인 1890년대생 정치인들이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영향을 끼친 김성수(1891년생)와 수도경찰청장을 지내고 국무총리에 오른 장택상(1893년생), 진보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조봉암(1899년생) 1세대 여성정치인이었던 박순천(1898년생)도 1890년대생 주요인물들중 하나였다. 여담으로 6.25때 화려한 삽질을 한 전 국방장관 신성모(1891년생)와 3.15 부정선거4.19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이기붕(1897년생)도 1890년대 출생했다.

6. 189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1] 덕률풍은 전화를 뜻하는 telephone의 발음을 한자식으로 차용[2] 마지막 1890년대생 생존자였던 엠마 모라노 할머니는 2017년 4월에, 마지막 남성 1890년대생 생존자였던 기루아 지루에몬 할아버지는 2013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3] 물론 어디까지나 신분이 증명된 분들의 이야기로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살아있을 확률도 있다.[4] 1907년생이라는 설이 있다. 막내 딸이 1949년생인 것을 보면 이쪽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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