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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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세계
2.1. 아시아
2.1.1. 한국2.1.2. 동아시아2.1.3. 중동
2.2. 유럽2.3. 아메리카
3. 문화4. 사건5. 1910년대생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7. 191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편집]

2. 세계[편집]

세계적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전 세계가 전쟁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던 격랑의 시기였다. 벨 에포크 안녕 또한 이 시기부터 기존 유럽 열강들의 위상이 줄어들고 새로운 체제가 시작된다.

2.1. 아시아[편집]

2.1.1. 한국[편집]

1910년 8월 일본 제국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하는 경술국치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대한제국은 다시 식민지 조선으로 격하되었으며, 초대 총독(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강압적인 헌병 경찰통치가 이뤄졌던 시대였다. 나라는 비록 망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항일 의병 및 민병 궐기가 이어졌고 특히 1919년에는 3.1 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나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2.1.2. 동아시아[편집]

일본 제국1912년 메이지 시대를 마감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다이쇼 시대의 대 호황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갈등과 민권주의가 빗발친 시대였다.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다음해인 1912년 왕조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었고, 5.4 운동으로 일제의 침략(21개조 요구베르사유 조약)에 맞서려고 하였다.

2.1.3. 중동[편집]

오스만 제국의 패전으로 중동에 있는 오스만 영토들이 영국과 프랑스에게 넘어가게 되고 오스만 영토는 오늘날의 터키 일대만 남게 된다.

인도에서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2.2. 유럽[편집]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유럽의 체제가 완전히 뒤바뀐다. 우선 독일 제국러시아 제국 등 여러 거대 제국들이 붕괴되었다. 러시아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러시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10월 또는 11월 혁명으로 적백내전이 발발하여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독일 제국은 패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거듭났으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오스만 제국(터키가 후신)은 패전 후 갈갈이 찢겨지게 되었다. 이로서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폴란드 제2공화국 등 여러 독립국이 유럽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크게 팽창했다. 동유럽 국가들의 독립 과정에서 러시아의 적백내전과 얽혀 폴란드와 루마니아, 발트 3국 등이 볼셰비키(적군)과 백군 양측 모두에게 침략을 받았으나 막아냈다.

2.3. 아메리카[편집]

미국미국 민주당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8년(1913~1921)간 재임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신장시켰고,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문제에 적극 나서며 여러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후 세계에 영향력을 투사했다. 대표적인 예가 민족자결주의.[1]

3. 문화[편집]

3.1. 영화[편집]

파라마운트 픽처스 등의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흑백 무성영화가 대세였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나온지 얼마 안된 터라 여러가지 영상 편집을 기술적으로 시도하며 발전해가던 과도기라 볼 수 있다.[2]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같은 전설적인 희극 배우들이 목소리가 없이 몸짓만으로 연기를 해야 했던 무성영화의 특성을 살려 슬랩스틱 영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3.2. 음악[편집]

클래식과 유럽 전통 민요의 영향을 받아 사상 처음으로 대중음악이 미국에서 등장한 시기이다.

서양 전통의 음율을 흑인풍으로 연주한 춤곡 래그타임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장르이며 1910년대 후반경에 들어서 미국 흑인들의 전통적인 민요였던 블루스 음계를 기반으로 래그타임에 영향을 받은 초창기 재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백인들의 고전 민요라 할 수 있는 컨트리 장르도 대중음악 시장이 열리면서 수요가 된 시기이다.

4. 사건[편집]

5. 1910년대생[편집]

1910년대생[3]들은 지금까지 살아있으면 100세를 넘었다.[4] 현재는 고인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살아계신 노인분들도 정말 희박한 확률로 볼 수 있는데 현재 기준으로 모두 100세가 넘은 초고령의 연대생들이다. 아무래도 생존중인 1910년대생들이 100세가 넘은 초고령이다 보니 자녀 세대인 1930년대~1940년대생들도 70~80대가 넘은 고령의 나이고,[5] 손주 세대인 195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생들도 벌써 40대~60대 중반의 중장년의 나이다.

일제강점기에 나고 자라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1970년대 까지의 현대적인 한국 정치, 경제계를 당시 기성세대로서 청년기의 산업화 세대(1930~1950년대생)들을 진두지휘하며 기반을 닦은 원로세대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김일성, 한국의 박정희가 1910년대생이며 해방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거대 재벌로 성장한 대기업들의 초대 회장들인 정주영, 이병철 역시 1910년대생이다.

1910년대생들은 1917~1926년 사이에 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여자는 입학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입학한 경우도 10세가 넘어서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 1910년대 초중반생은 1920년대 중후반, 1910년대 후반생은 1930년대에 가서야 입학하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국민복이나 몸뻬도 입지 않았으며 한글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과 10대, 20대에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광복을 겪고 6.25 전쟁을 겪었으며 30대와 40대에 이승만 정부와 4.19 혁명을 겪었으며 40대와 50대에 5.16 군사정변박정희 정권 출범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50대60대에 유신정권을 겪고 60대에 10.26 사건, 60~70대에 전두환 정부를 겪었으며 70대와 80대에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문민정부를 겪었고 거의 80~90대 이상 돼서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겪는데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중 대학생은 경성제국대학이나 일본에 있는 대학을 다녔으며, 학번으로 치면 39학번이나 그 이전이다. 다만, 이들은 극소수인데, 당시에는 무학력자 비율이 70% 이상일 정도로 매우 높아서 소학교 졸업장만 있어도 지식인, 중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먹물’ 취급을 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장 일제시대엔 학력으론 중졸만 되도 경찰이 되는게 가능했으며,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될수 있었던 비결중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단 점도 한몫했다. 특히나 이승만이 졸업한 하버드대는 현재도 웬만한 대졸자들과 비교해봐도 고학력에 속하는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이들 중 한글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한글 자모가 25자라고 배워 아래아, ㅅ계 합용 병서 등 옛한글 자모를 아직 쓰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태어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부모인 1880, 1890년대생 인데 이들중 대다수의 아버지가 1차대전에 참전을 하셨다. 그래서 몇몇 1910년대생의 아버지가 전쟁으로 전사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못본 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1910년대생 대부분이 1920년대 초중반생과 함께 참전하였다.

이 시기에 태어난 인물로는, 5 ~ 9대 대통령 박정희(1917년 ~ 1979년)가 이 연대에 들어서 탄생하였다.[6] 대기업 창업주 1세대들도 상당수가 이 연대에 태어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경제계의 거물로 불리웠던 호암 이병철(1910년 ~ 1987년)과 아산 정주영(1915년 ~ 2001년)도 이 연대에 출생했다. 그리고 북한태조 수령이자 우리의 원수 김일성(1912년 ~1994년)도 이 연대에 출생했다.

위에서 언급한것과 같이 일제강점기에 청년기를 제대로 경험한 세대이기에 독립운동가친일반민족행위자 중에서는 가장 어린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 연대 출생자이기도 한다. 또한 1910년대 중후반생들 한정으로 일제 말기 국가 총동원법으로 인해 1920년대생들과 같이 크게 피해를 본 젊은 세대였다.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도 1912년생으로 1910년대생이며, 연예인들 중 배우 고설봉(1913년생)과 김동원(1916년생), 심영(1910년생), 이해랑(1916년생), 김승호(1917년생), 황철(1912년생), 강계식(1917년생), 이향(1914년생), 이예춘(1919년생), 최남현(1919년생), 신일선(1912년생), 문예봉(1917년생), 전옥(1911년생), 한은진(1918년생) 등이 있고, 가수들 중 김봉명(1917년생), 김정구(1916년생), 백년설(1914년생), 고복수(1911년생), 남인수(1918년생), 현인(1919년생), 한복남(1919년생), 이애리수(1910년생), 이난영(1916년생), 왕수복(1917년생)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생존 중인 1910년대 인물로는 김종호, 르니 드뇌브, 김병기, 박갑동 등이 있다.

2020년에도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인 커크 더글러스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도 생존자였으나 2020년에 둘 다 뒤늦게 자연사했다.

2020년에도 이해원이 10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2020년 5월 25일 현승종이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2021년 5월 11일 노먼 로이드가 106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편집]

7. 191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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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주의는 아시아의 식민지 문제에 있어 블라디미르 레닌의 영향력이 적진 않았지만, 윌슨이나 레닌이 최초로 제창한 것은 아니다.[2]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가 1895년, 즉 1910년대 기준으로 고작 15~20년 전이었다. 아직까진 영화계라 불릴 정도로 거대 문화 시장을 형성하기 이전이라 볼 수 있다.[3] 대한민국 기준으로 주로 남자는 197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여자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에 돌아가셨다.[4] 1910년생과 생일이 지난 1911년생은 110세도 넘었다.[5] 따라서 이들의 자녀가 자연사로 먼저 사망하기도 한다.[6] 현재 살아있으면 100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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