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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1. 개요2. 배경

1. 개요[편집]

1929년 10월 말에 뉴욕 증권시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주가 대폭락 사건으로, 10월 24일 목요일(검은 목요일)에 시작하여 10월 29일(일명 "검은 화요일")까지 이어진 역사적 수준의 주가 대폭락을 가리킨다.

광란의 1920년대라고 불리는 경제 호황 기간동안 미국 증권시장의 주가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달렸고, 이로 인해 엄청난 투자 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식 시장에 상당한 버블이 형성되어 갔다. 결국 1929년 3월부터 연방준비은행과 시장의 전문가들로부터 거품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9월 20일에는 영국 증권시장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가 폭락의 공포가 미국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한달간 미국의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였으며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주식이 거래되었다. 이는 곧 일어날 대폭락의 전조 증상이었다.

1929년 9월 3일에 다우 존스 공업 평균 지수는 당시381.17의 신기록을 기록하였으나... 대망의 10월 24일 장이 마감될 시점에 이 지수는 299.47로, 20% 이상 하락하였다. 이 날 하루동안 1290만 주가 팔리면서 종전의 400만 주 매도 기록을 깨뜨렸고, 오후 12시 30분에 긴급하게 시카고와 버팔로의 거래소가 거래를 중지하고 문을 닫았지만 이미 11명의 투자자가 자살한 뒤였다.

오후 1시에 월 가의 중개인들이 유에스스틸을 비롯한 여러 상장사의 주식을 훨씬 높은 값에 매입하는 데 합의하면서 폭락은 잠시 진정되었지만, 이는 임시 방편에 불과했다. 그리고 "검은 화요일"에 다우 지수는 230.07을 기록했으며, 하루 동안 무려 1640만 주가 팔렸다. 참고로 이 1640만주 매도라는 기록은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주식 시장의 붕괴로 인해 시장에 돈줄이 말라버렸고, 도산 위기에 몰린 은행들이 무자비하게 대출을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뱅크런에 의해 많은 은행이 망해버리자 미국 경제는 심각한 경기 하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낙관론에 기대어 머뭇거리다가[1] 금융 시장에 개입할 골든아워를 놓쳐버렸고, 결국 193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 발생하게 된다.

참고로 대공황 중이었던 1932년 7월 8일의 다우 지수 41.22는 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1896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낮은 값이다. 한마디로 바닥 중의 바닥이다. 다우 지수가 대공황 직전의 수준까지 회복한 것은 20여년 후인 1954년이었다.

2. 배경[편집]

미국 증권 시장의 거품이 형성 된 이유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유럽이 쑥대밭이 되고 미국은 유럽에 군수 물자를 수출하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유럽이 전후 복구에 힘쓰는 동안 미국은 희대의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수십만명의 미국인들이 가진 돈을 털어넣어 주식 시장에 투자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기간동안 하딩쿨리지 정권에서 앤드루 맬런 당시 재무장관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감세 정책으로 유동자금이 크게 불어났고 돈이 남아도는 기업들이나 투자가들이 주식시장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주식 시장에 들어갈 투자 자금을 더욱 증가시켰다. 또한 유럽에서조차 재건 자금으로 쓰일 돈들까지 물건너 미국 주식 시장에 투기 목적으로 뿌려졌다. 이러한 호황으로 1920년대 미국은 중산층들이 자동차 1대와 라디오 1대 정도는 가질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2]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았던 1920년대 미국의 호황은 1929년에 들어서자 더 이상의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사실 빈부격차 문제는 매우 심했고 자동차 판매 지수나 강철의 생산량과 같은 실물 지표들은 1929년 중반부터 상승을 멈추거나 오히려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즉, 거품의 종점을 향해 다달았던것이었지만 주식투자가라고 해서 한부류만 있는것도 아니고 투자광풍의 여파는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긴가민가했는데 그것이 1929년 10월 24일에 터져버린것이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 주요 요인 중에 하나는 의외로 미국 농업의 과잉 생산이었다. 미국 농산물 시장은 이전 년도들로부터 넘어온 엄청난 재고를 떠안고 있었는데, 1929년 미국의 생산량은 역대급으로 좋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프랑스와 같은 다른 밀 수출국의 작황도 좋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로 인한 밀 가격의 폭락이 원자재 선물시장을 강타했는데, 엉망진창이 된 원자재 시장은 주식 시장에도 투기 자금과 함께 패닉을 전염시켰다.

[1] 이때 재무장관인 앤드루 맬런이 한말이 걸작이었는데 "노동을 청산하자, 주식을 청산하자, 농부를 청산하자, 부동산을 청산하자."였다." 경제위기는 단기적일뿐이고 경제의 거품을 없애고 다시 새출발해야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이 해결할것이라는 의견을 표한것이지만 이러한 의견이 반영된 결과는 실업률이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태를 초래할뿐이었다.[2] 참고로 한국에서 라디오가 대중화 된것은 1960년대, 자동차가 대중화 된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