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 박정희 대통령이 제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조치 3호'를 선포하였다.
1월 15일 -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장준하와 백기완을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1월 17일 - 김진홍 전도사 등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실무자들은 유신헌법 철폐와 긴급조치 1호·2호 반대를 내용으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월 18일 -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무력 불침, 내정 불간섭, 휴전협정 유지를 골자로 한 남북 불가침 협정을 제의하였다.
1월 21일 -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김진홍 전도사, 김경락 목사 등 11명을 구속하였다.
1월 29일 - 대구에서 고교 입시 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학부모, 교사, 인쇄소 직원이 결탁하여 객관식 문제의 정답 보기 번호를 다른 보기의 번호보다 비스듬히 인쇄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도 이를 쉽게 눈치채 만점자가 속출. 이후 재시험이 치러짐은 물론이고, 죄책감에 시달린 당시 경북 교육감은 2월 7일 음독 자살한다.
2월 6일 - 검찰은 박영복을 신탁은행 부정대출 혐의로 구속하였다. 이 사건은 유신 시기 대형 스캔들 사건으로 꼽혔다.
3월 28일 - 루마니아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이 루마니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다.이로서 루마니아는 15년 동안의 암흑과 폭압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4월 3일 -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금지했다. 민청학련의 '구성원의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방송·보도·출판 기타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위'를 하기만 해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었다(민청학련 사건).
4월 5일 -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열린 '해양법에 관한 77개국 그룹 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최대 2백 마일의 영해권을 주장하도록 천명한 '나이로비 선언'을 선포하였다.
4월 15일 - 반도상사 여공인 한순임을 주축으로 한 '전국섬유노동조합 반도상사 지부(이하 반도상사 노조)'가 결성되었다.
9월 19일 - 울산 현대조선 기능공 2천 5백 명이 정규직의 위임관리제(일종의 도급제도)로의 전환과 열악한 대우 등에 항의하며 13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회사 측이 노동자들의 요구 수용을 거부하자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기물 파괴와 방화 등을 벌였다.
9월 26일 - 국회 보사위원회는 고재필 보사부장관과 최두열 노동청장을 출석시켜 현대조선 파업 사태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국회의원들도 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위법 행위에 대해 예방하고 책임질 것을 밝혔으나, 현대조선 측은 분규는 일부 견습공들의 몰이해로부터 발생한 산발적 소요라는 요지의 해명서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반박했다.
10월 24일 -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 기자 180여 명이 신문, 방송, 잡지의 외부 간섭 배제·기관원 출입 거부·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 3개 조항을 골자로 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전국의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에 파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