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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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헌정국과 한파정국, 1986년3. 신라면 탄생, 매운맛 라면의 시대4. 사건
4.1. 실제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
4.2. 가상
5. 탄생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사망
6.1. 실존인물
6.1.1. 1월6.1.2. 2 ~ 3월6.1.3. 4월6.1.4. 5월6.1.5. 6월6.1.6. 7월6.1.7. 8월6.1.8. 9월6.1.9. 10월6.1.10. 11월6.1.11. 12월
6.2. 가상인물
7. 데뷔
7.1. 가수7.2. 예능인7.3. 만화계7.4. 스포츠
7.4.1. 야구7.4.2. 축구7.4.3. 농구7.4.4. 배구7.4.5. 씨름
8. 은퇴
8.1. 스포츠

1. 개요[편집]

경향신문 선정 1986년 국내 10대 뉴스

이 해에는 비극적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해 3~12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각각 3년씩 다녔으며[1] 동시에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이자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첫 수능인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세대이기도 하다. 또 대학시절에는 한대련 1세대 새내기이기도 하다.

또한 아케이드 게임 잡지인 게메스트(現 아르카디아지가 게메스트의 후신이다)가 창간된 해이며, 아케이드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하이스코어 집계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에 방영된 슈퍼전대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인 초신성 플래시맨은 3년 후, 대한민국에서 1차 전대물 열풍을 불러오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 해에 서울에서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2] 특히 2년 후인 1988년 같은 도시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에 그 당시 세간에서는 198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성공에 향방을 가릴 시험대의 대회라는 일설도 있다. 그 당시 참가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2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3] 다른 한편으로는 전두환 정권의 초강경 민주세력 탄압이 벌어진 해이며 한 해동안 무려 2,500여명이나 되는 학생, 재야인사, 농민, 노동자가 구속되었다.

농심그룹신라면이 처음으로 시판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광주(光州)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독립하여 직할시로 승격하였고, 후에 1995년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다. 호남 지역에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 또 2년 후인 1988년 광산군, 송정시가 광주직할시로 편입되어 광산구가 되었다.

또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된 해이기도 하며, 그래서 이 해 공익광고협의회에서는 '한강 시리즈'를 제작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평화의 해'로 지정했다.

2. 개헌정국과 한파정국, 1986년[편집]

1985년 2.12 총선으로 돌풍을 일으킨 선명 야당 신한민주당은 직선개헌을 위해 1천만 개헌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정당은 현행 헌법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최선의 것이라 주장하여 아예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민당 측은 국회 밖으로 뛰쳐나와서라도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겠노라고 밝혔다.

신민당은 3월 11일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주요 대도시의 개헌 현판식을 추진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모처럼의 합법적 공간이 마련되자 그 동안 억눌려 온 국민들의 정치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대회를 시작으로 3월 23일 부산, 4월 5일 대구, 4월 19일 대전, 5월 3일 인천, 5월 10일 마산, 5월 31일 전주 등의 순서로 계획이 진행되어 갔다.

이후 3월 17일에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김대중 양김, 문익환 민통련 의장, 박형규 목사, 이돈명 등이 회동해 신민당과 재야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을 만들어 개헌 투쟁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개헌 현판식의 대성황과 야당과 재야의 보조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그 열기를 더해가자 전두환 대통령은 4월 30알 여-야 영수회담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건의하면 임기 중에 개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 발언으로서 야당을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 국민과의 연대를 차단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게다가 그 개헌안도 내각제 개헌이었다!

그러나 5월 3일 인천대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날 인천시민회관 일대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의 운동권 인사들이 모여들어 경찰과 투석전을 다섯 시간이나 벌여 인천에서의 개헌대회는 무산되었다(인천 5.3 운동).

이 사건 이후 야당은 제도권 안에서 집권세력과 타협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운동권 세력에겐 혹독한 탄압이 가해졌다. 대표적으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10.28 건대항쟁, 서노련 사건, ML당 사건, 반제동맹당 사건, 민통련 사무실 폐쇄, 서울개헌대회 봉쇄 등이 있었으며 금강산댐 수공설,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등의 대중조작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정국이 얼어붙는 와중에 신민당은 7개의 민주화조치를 선행하면 내각제를 받아들이자는 식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이 나오면서 정국이 더 꼬일 대로 꼬여갔다.

3. 신라면 탄생, 매운맛 라면의 시대[편집]

이 해는 그 유명한 농심 신라면이 탄생하여 출시하였던 해였다. 그 동안 라면은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라면시장이 번성했지만 신라면 이전에 매운맛을 내는 라면은 딱히 없었던 편이었는데 이 해 신라면이 출시되면서 라면시장에 변혁을 일으켰다.

초창기에서부터 매운맛을 상징하는 빨간색 바탕과 매울 신(辛)의 서체는 30년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포장 디자인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빨강색 바탕과 매울 신자 서체는 유지되고 있다. 이후 신라면과 유사한 매운라면들이 잇따라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신라면의 명맥은 30년이 지나도 이어지는 중이다.

4. 사건[편집]

4.1. 실제[편집]

4.1.1. 1월[편집]

  • 1월 1일: 스페인포르투갈이 공동으로 EC에 가입했다.
  • 1월 5일: 가수 김완선이 <오늘밤>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훗날 전설의 디바가 되었다.
  • 1월 7일: 정부는 1985년 말 외채 총액을 465억 달러로 잠정 집계했다.
  • 1월 8일: 한만년 일조각 대표 등 출판사주 50여 명은 <미국이 저작권보호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1월 12일: 삼육재활원 소속 지체장애인 5명이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라산을 정복하였다.
  • 1월 13일: 재야 지도자 22명이 <조국의 위기 타개를 위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15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2000년까지 완전 폐기토록 하자는 전면 군축안을 제의했다.
  • 1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개헌논의는 올림픽 뒤인 1989년에 하는 게 순리라며 이른바 '큰 정치'를 천명했다.
    • 서울형사지법은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주도자인 양동화 등 2명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현대자동차포니엑셀 및 프레스토 1천대를 미국에 처음 수출했다.
    • 영국프랑스 사이를 육로로 연결하는 채널 해저터널이 개통되었다.
  • 1월 21일: '박종만 추모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4일: 보이저 2호가 최초로 천왕성의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다.
  • 1월 25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여당의 개헌논의 유보제를 거부했다.
  • 1월 27일: 경제기획원은 사회지표 조사 결과 1984년 중 제조업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4.3시간으로 가장 길다고 발표했다.
    • 노동부는 1988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NASA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STS-51-L 미션을 시작했으나... 발사 수십 초만에 고체 로켓 부스터의 이상으로 폭발, 탑승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 1월 31일: 레바논 주재 도재승 서기관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당했다. 다행히 그는 1987년 10월 26일에 풀려나 11월 3일에 서울로 돌아왔다.

4.1.2. 2월[편집]

  • 2월 4일: 서울대학교에서 경인지역 15개 대학 소속 1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86 전학련 신년투쟁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였다.
    •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이하 인노련)이 결성되었다.
    • 아이티의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망명하면서 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29년간의 독재정권이 종식되었다.
  • 2월 8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개헌 서명운동자는 무조건 연행해 의법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2월 9일: 핼리 혜성태양 근일점을 통과했다. 핼리 혜성의 다음 근일점 통과 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상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등 기독교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KBS 시청료 거부 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필립 하비브를 특사로 필리핀에 파견해 여야 대표 및 종교지도자를 만나 화합 방안을 모색토록 지시했다.
  • 2월 12일: 김영삼이 이끄는 신한민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는 '1천만 개헌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 2월 16일: 포르투갈의 사회당 당수 마리오 소아레스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60년만에 첫 민선대통령이 배출되었다.
  • 2월 18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중 민주화 일정을 밝히면 개헌 서명운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경찰은 신민당 중앙당사를 봉쇄해 당직자들을 가택 연금했다.
    • 원화의 대 엔화 환율이 100엔에 502원이 되면서 처음으로 5백원대를 돌파했다.
    • 소련이 우주정거장 미르 코어 모듈을 발사, 15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 2월 20일: 국제 원유가 하락으로 국내 석유값이 11.2%로 내렸다.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조종사 진보충(陳寶忠)이 MiG-19기를 타고 서해 영공으로 넘어와 제3국으로 망명을 요청했다.
    • 역사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첫 작품이 나왔다 .
  • 2월 24일: 전두환 대통령은 3당회담을 열어 "1989년에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개헌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 2월 25일: 필리핀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아내 이멜다가 민중 봉기로 권좌에서 축출되어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 2월 27일: 이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제35차 총회에서 <기독교방송의 보도/광고기능의 정상화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4.1.3. 3월[편집]

    • 북한의 강성산 총리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면담했다.
    • 메탈리카가 세 번째 정규 앨범 Master of Puppets를 발매했다.
    • 이날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잠정 집계에서 1985년 11월 1일 기준 대한민국 인구가 40,466,577명이라고 기록되었다.
    •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이경숙 씨에게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55세'라는 판결을 내렸다.
  • 3월 7일: 이민우, 김영삼, 김대중 3자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1986년 가을에 직선제 개헌, 1987년에 대통령 선거를 하도록 제의했다.
    • 서울 인의동 신민당사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의 현판식이 열렸다.
    • 여성생존권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북한을 방문했다.
  • 3월 9일: 김수환 추기경은 9일간의 시국기도회를 끝내며 "민주화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이며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 제주~중문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 동숭동 흥사당 강당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13일: 북한에 피랍된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가 납북 8년만에 탈북에 성공했다.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 항목 참조.
  • 3월 14일: 레이건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성명에서 어떤 형태의 독재정권도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이 임금인상 및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 도중 경찰과 대치한 끝에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다음날 사망했다.
    • 신민당과 민통련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를 구성하였다.
  • 3월 18일: '서울대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19일: 서노련은 구로공단 가리봉 5거리 모세미용실을 점거해 생활임금 쟁취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21일: '반제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원회(이하 민민투)'가 결성되었다.
    • 납북 영화인인 최은희-신상옥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미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서방 세계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 부산 대한극장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부산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24일: 서울시내 4개 대학생 1,400여 명이 호헌철폐와 전방입소 거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3월 28일: 고려대 교수 28명이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3월 29일: '구국학생연맹(이하 구학련)'이 결성되었다.
    • 국내 석유값이 2차로 인하되었다(10% 인하).
    • 광주 YMCA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전남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4.1.4. 4월[편집]

  • 4월 2일: 한신대학교 교수 42명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4월 3일: '민주헌법 쟁취운동 범여성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4월 4일: 성공회 정의실천사제단 신부 24명은 국민의 개헌 요구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은 영국, 서독, 벨기에, 프랑스 등 서유럽 4개 국가를 순방하며 21일까지 회담을 열었다.
  • 4월 7일: 대한변협은 헌법개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하며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KBS 시청료 거부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고무된 신민당은 국회에 'KBS 시청료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였던 오카다 유키코가 소속사 빌딩에서 투신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 4월 10일: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투쟁위원회(이하 자민투)'가 결성되었다.
    • 성균관대 교수 35명과 서울대 교수 48명은 개헌과 관련한 내용의 시국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가협 회원 등 100여 명은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속 학생에 대한 가혹행위 중단과 폭력교도관 처벌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4월 13일: 명동성당이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 감신대 교수 1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리비아 공습 사태가 발발했다.
  • 4월 16일: 전남대 교수 43명이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조국의 현실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한국외대 교수 27명과 계명대 교수 49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희대의 병맛 전쟁인 335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 연세대 교수 32명과 이화여대 교수 1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2개 대학 1만 1천여 명이 4.19 기념식 개최 후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성균관대 학생들은 전방입소 훈련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다.
    • 경기대 교수 14명과 전북대 교수 47명, 경남대 교수 3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3일: 인하대 교수 2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4일: 서강대 교수 2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출판계 인사 80여 명이 <출판인의 자유와 권리 쟁취를 위한 선언>을 채택하였다.
    • 'KBS-TV 시청료 폐지운동 여성단체연합'이 'KBS-TV 시청료 폐지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숭전대 교수 14명과 장신대 교수 26명, 충북대 교수 32명, 덕성여대 교수 12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6일: 소련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실험 중 사고로 폭발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될 줄 알았으나 25년 후 불행하게도 어쩌면 이 사고를 능가할지도 모르는 사고가 일어났다.
  •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가 신림동 4거리에서 전방입소 거부투쟁 중에 분신했다. 이후 김세진은 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에 각각 짧은 생을 마쳤다.
    • '전국 반파쇼 민중민주투쟁학생연합(이하 민민학련)'이 결성되었다.
    • 경희대 교수 19명과 충남대 교수 21명, 원광대 교수 24명, 경상대 교수 24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30일: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3당 대표 회담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임기 내에 개헌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1.5. 5월[편집]

  • 5월 중: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 대학생 2백여 명이 독산동에서 가두시위를 하며 <5·1절 노동자해방투쟁의 날부터 광주민중항쟁까지>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전국 천주교 수녀대표모임 한국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9일 기도'에 돌입하였다.
    • 광명 철산동에서 서노련 주도로 '노동자해방투쟁의 날'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 고문공대위는 ‘최근 고문 및 인권탄압 사례 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 민통련은 민국련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3일: 이날 열리려던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 결성대회'가 학생 및 노동자-경찰의 충돌로 무산되었다(인천 5.3 운동). 이 사건은 대통령 직선제를 환기시키는 제5공화국에서의 최초의 대규모 집회였다.
  • 5월 5일: 경찰은 자민투와 민민투를 용공 좌익조직으로 규정해 주동자 27명을 전국에 수배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김문수 등 서노련 중심인물 6명이 보안사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서노련 사건).
  • 5월 7일: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민통련은 5.3 항쟁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전국 목회자의 민주쟁취선언>을 발표하였다.
    • 전국 20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전방입소 반대",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152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정의실현 법조인회(이하 정법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546명의 교사들이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 흥사단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2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미국 우주전략방위구상(SDI)에 참여 중이던 미국 내 101개 대학교 소속 과학자 6천여 명이 해당 계획의 연구를 거부키로 했다.
    • 일본 엔화 강세로 인해 국내 엔화 환율이 1백엔당 505원을 돌파했다.
  • 5월 14일: '반제반파쇼투쟁 호남지역 대학연합'이 결성되었다.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문교부는 <교육민주화선언> 관련자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하달하였다.
    • 신일고 학생들이 <교육민주화선언> 관련 교사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 조치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CBS 라디오 <오늘을 생각하며>에서 언론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 검찰은 서노련을 용공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 소요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비상 학생총회를 열어 전방입소 거부를 결의하였다.
    •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방송대 교수 16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측은 이날 개최되려던 ‘광주학살 원흉처단과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를 위한 민중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기습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국 주요 대학생들은 광주항쟁 6주년을 맞아 교내외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 5.18 희생자 유족과 대학생 6천여 명이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항쟁 6주기 추모식을 벌인 뒤 시위를 벌였다.
    • 명동성당 청년신도 1천여 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대회와 추모미사 뒤 가두시위를 벌였다.
  • 5월 20일: 서울대생 이동수가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및 “미제국주의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 일어났다.
  • 5월 23일: 민통련 의장인 문익환 목사가 서울대 강연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 5월 26일: KBS-TV 시청료거부운동본부는 서울 시내에서 기습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 5월 27일: 한신대는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 5월 29일: 주한미군노조는 미군 측의 한국인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며 전국적 파업에 돌입했다.
    • 서노련 및 인노련 소속 해고 노동자 16명이 한미은행 영등포지점을 점거해 성조기를 불태우며 "독재타도", "미제축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을 외쳤다.
    • 노태우-이민우 여야 대표가 회담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에 합의했다.
    • 전국 25개 출판사 대표 및 출판 관계자 70여 명이 외국인 저작권보호법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서울 YMCA 중등교육자회 등 4개 교육단체 소속 교사 350명이 명동성당에서 교육자율화를 결의하였다.
    • 정부가 컬러TV 등 301개 품목에 대해 수입자유화 조치를 내리면서 자유화율이 91%로 올랐다.
    • 멕시코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이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하여 비록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본선 첫 득점 및 첫 승점 획득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4.1.6. 6월[편집]

    • 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가 준공되었다.
    • 23개 대학교수 265명이 한신대 수유캠퍼스 회의실에서 '교수연합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한신대 평교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서울대 의류학과 출신 권인숙이 노동현장에서 학출활동 도중 경찰에 연행되었다.
  • 6월 8일: 고려대생 9명이 주한 미국대사관 점거를 시도하다 전원 검거되었다.
  • 6월 9일: 반공해운동협의회는 <한반도의 핵 볼모화 저지를 위한 반핵/반공해운동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6월 11일: IOC는 1988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제의했다.
  • 6월 12일: 사법연수원생이나 판검사로 가장해 여성 50여 명을 농락한 백종각이 구속되었다.
  • 6월 16일: 인천소년교도소에 송치된 권인숙은 수감자들과 함께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구속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일본 정부는 외국인등록의 지문채취를 거부한 한국 유학생 김명식 씨에 대해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영남대 민민투위원장 최우식 등 학생 5명이 한미은행 대구지점에서 반미 점거농성을 벌였다.
  • 6월 18일: 북한이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했다.
  • 6월 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신호수 노동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신호수 의문사 사건).
    • 여야 대표는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하였다.
    • 호남 YMCA 중등교사협의회 교사 229명은 가톨릭센터에서 '교육민주화 실천대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재야 사회과학출판사들의 연합체인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이하 한출협)'가 발족되었다.
    • 부산 송도 매립지 앞바다에서 서울대생 김성수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김성수 의문사 사건).
  • 6월 23일: 단국대생 2백여 명이 ‘전방입소 거부 및 군사교육 전면철폐 투쟁선언대회’를 개최하였다.
    •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의결했다.
    • 미국 하원은 출석 의원 413명 전원 찬성으로 한국의 민주화 결의안 및 북한의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연세대생 오연호 등 총학생회 집행부는 제도교육이 은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중고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로 <전국 애국 중/고 청년에게 보내는 글>이란 제하의 편지를 2천여 통이나 발송하였다. 이후 이들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미국 하원은 대 니카라과 반군 원조안을 승인했다.
  • 6월 30일: 경찰은 자민투/민민투 관련자 6명을 검거하고 39명에 긴급수배 조치를 내렸다.

4.1.7. 7월[편집]

  • 7월 2일: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 30여명이 문귀동 경장의 성고문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권인숙은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였다.
    • 민통련은 "변태적 성고문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칠레에서 민정 복귀를 촉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에 피노체트 독재정권은 군을 투입해 발포시킴으로써 7명이 사망했다.
    •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은 문귀동 경장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성고문 관련 경찰 6명을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로 고발하였다.
    • 영등포구치소 여성 재소자 12명이 재소자 인권탄압과 소내 폭력에 항의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벌였다.
  • 7월 8일: 일본 문부성은 1982년 역사왜곡 당시 핵심부분을 그대로 둔 채 지엽적으로 수정한 <고교 일본사> 교과서를 인가했다.
    • 신/구교단체 대표 10여 명이 '부천서 성고문 대책회의 및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양심수 강제징집 저지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0일: 민문협 및 '전국 인문과학 서적상연합회'는 민중가요 테이프 압수 조치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 'KBS-TV 시청료 거부 범국민투쟁본부' 임원단은 시내에서 시청료 거부 가두캠페인을 전개하였다.
    • 국내 여성단체 및 종교단체들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은 1997년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반정부 인사 3천여 명을 검거했다.
    • 검찰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 성적 모욕이 없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이와 관련해 부천경찰서는 문귀동 경장에게 파면, 옥봉환 서장에게는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 서울 상계동과 하왕십리 철거민 130여 명이 명동성당 입구에서 재개발 중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7월 18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의 변호인단은 기자 회견에서 "검찰이 진실을 찾아냈으나 발표 과정에서 왜곡/은폐했다"고 주장했다.
  • 7월 19일: 이날 명동성당에서 개최되려던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7월 21일: 한국과 미국은 통상협정을 일괄 타결하면서 그해 9월부터 양담배 판매를 공식 허용하고, 1987년 7월부터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로 했다.
  • 7월 25일: 경북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신라시대 토용이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 7월 26일: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이 발생하였다.
  • 7월 27일: 이날 개신교 측이 주최하려던 '성고문 규탄 기도회'가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결국 이들은 성공회 주변 및 새문안교회에서 산발적인 비상 기도회를 열었다.
    •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청소년대책전문위원인 김형배가 부천서 성고문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하며 당해 안에 아프간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태평양 국가와의 경제관계를 증진하기로 했다.
  • 7월 30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다.

4.1.8. 8월[편집]

  • 8월 1일: 서울대 등 9개 대학생들은 고려대에서 '민중 기만하는 헌법특위 분쇄 및 미제의 경제침탈 저지를 위한 애국 청년학도 총궐기대회'를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신민당은 대통령 중심제 및 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지었다.
    • 당해 광복절에 개관할 예정이던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지붕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 화재 사고로 독립기념관 개관은 1년 후로 연기되었다.
    • 인문사회과학서적상협의회는 연행된 서점 주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제헌의회그룹(CA)이 결성되었다.
  • 8월 12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전신인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이하 유가협)'이 발족되었다.
    • 이날 신민당사에서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시민 폭로대회'가 개최되었다.
    • '8·15 민족해방절 기념식 및 기만적 헌법특위 분쇄와 망국 아주경기(아시안게임) 결사저지를 위한 백만학도 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 인천에서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 8월 16일: 신민당을 탈당한 유한열 등 신보수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민주당이 창당되었다.
  • 8월 22일: 전경환 새마을운동 중앙회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
  • 8월 23일: 민주정의당은 당직을 개편하며 사무총장에 이춘구, 원내총무에 이한동을 내정했다.
    •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개관했다.
    • 새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서의현 스님이 선출되었다.
  • 8월 29일: 민교협 소속 초/중등 교사 3백여 명이 민중교육 사건 1주년을 맞이해 '민주교육 실천대회'를 열었다.
  • 8월 30일: 검찰은 민민투-자민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련자 180명을 검거하고 16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4.1.9. 9월[편집]

    • 한미 통상협상 타결에 따라 수입 양담배 판매가 비로소 허용되었다.
    • 성고문 피해자인 권인숙과 변호인 166명이 문귀동 경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제출하였다.
  • 9월 3일: '총액출자 한도제'를 도입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 9월 4일: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병호 교수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 일본의 후지오 마사유키 문부상이 "한일합방은 양국이 합의한 것이며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망언을 했다.
    • 이날 나온 <>지 특집호 기사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을 통해 5공 정권에 의한 보도지침 사례가 폭로되었다(보도지침 폭로 사건)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2천여 명은 합천 해인사에서 '불교 관계법 철폐 및 전면 개정을 위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하였다.
    • 뉴송도호텔 습격사건의 주범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검거되었다.
  • 9월 8일: '고려대 애국학생회'가 발족되었다.
  • 9월 10일: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되었다. 이를 기념해(?) 공익광고협의회에서는 '한강 시리즈'를 총 9편이나 제작하였다.
    •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 서울대 등 전국 28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아시안게임 저지'와 '헌법특위 분쇄'를 요구하며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 연세대 등 5개 대학생 70여 명이 민정당의 윤길중, 이세기 의원 사무실에 돌과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9월 13일: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민협)'가 발족되었다.
  • 9월 14일: 이날 북한이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켜 사망자 5명, 부상자 33명이 발생했다.
    • 정부는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상임고문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학생들의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 9월 17일: 고려대생 이승규 등 5명이 나카소네 방한을 반대하며 주한 일본대사관을 점거 농성하였다.
    • 이날부터 제 10회 서울 아시안 게임이 개막하여 3주간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2위를 기록하였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개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가맹국 각료들이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른바 우루과이 라운드의 시작이었다.
  • 9월 21일: 이날 서울에서 한일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 9월 22일: 구 국제그룹 계열 7개사와 경남기업, 남광토건 등 28개의 부실기업이 정리되었다.
  • 9월 29일: 신민당은 직선제 재개 합의를 촉구하며 헌법특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9월 30일: 서울고검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기각하였다.

4.1.10. 10월[편집]

  • 10월 2일: 서울 아시안게임 도중 이란 역도대표팀 선수 4명이 출국 직전에 이탈하여 주한 이라크 총영사관으로 도피하였다.
  • 10월 3일: 락 밴드 부활이 1집「Rock Will Never Die」를 발표하며 데뷔한다.
  • 10월 9일: 신민당은 전북 군산에서 개헌대회를 개최했다.
  • 10월 10일: 서울대 대자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구학련 측이 서울대 인문회관 벽에 북한의 <민주조선> 10월 5일자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긴 대자보가 부착됨으로써 일어난 국보법 위반 사건이었다.
  • 10월 15일: 도서출판 풀빛에서 <한국민중사> 1권(전근대편)이 나왔다. 근현대를 다룬 2권은 다음달 25일에 나왔다.
  • 10월 16일: 민주정의당이 신민당의 유성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해내 유 의원이 구속되자 신민당 측은 철야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유 의원은 다음날 새벽에 구속/수감되었다.
  • 10월 17일: 경찰은 구학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여 관련자 3명을 검거했다.
    • 유성환 사건 해결을 위해 신민당은 무조건 등원하기로 결정했다.
    • 민중 영화집단 연합체인 '서울영상집단'이 결성되었다.
    • 치안본부는 '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 사건'을 발표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이날 로마에서 전두환 대통령 측근과 김영삼-김대중 양김에게 정치야심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로마 기자회견 파문).
    • 경찰은 구학련의 상부조직인 '노동해방전선'을 적발해냈다.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 '미·일 경제침략 저지 국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2일: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24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당 결성기도 사건(이하 ML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노동자와 대학생 89명 등 101명을 검거했다고 했다.
  • 10월 26일: 한강 유람선이 첫 운항을 개시하였다.
    • 인천 5.3 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이부영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민불련 소속 승려 150여 명이 '10.27 법난 규탄 및 불교자유 쟁취대회'를 열어 시위에 돌입하였다.
  • 10월 28일: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애학투련)'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결성대회가 열린 건국대에 경찰력이 투입되어 1천여 명이 철야 농성을 개시하였다(10.28 건대항쟁).
    • 농성 3일째에 경찰은 건국대 교내에서 '황소 31'이라는 명칭의 입체작전으로 폭력적 진압을 감행해 농성중이던 학생 1,500여명을 연행되었다.
    • 연세대 의대 이원영 교수는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대한미생물학회 보고에서 에이즈 병원체가 내국인에게서 처음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였다.

4.1.11. 11월[편집]

  • 11월 1일: 전라남도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었다.
  • 11월 3일: 건대항쟁 당시 연행된 1,500여명 중 1,265명이 구속 수감되었다. 이는 근대적 사법체계 형성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구속된 단일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신민당 상임고문 김대중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전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부산산업대생 진성일이 건대항쟁 진압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 11월 7일: 노동부는 인노련과 서노련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 11월 8일: 이날 발표된 내무부 자료에 의하면, 당해 들어 9월 말까지 사용한 최루탄이 31만 발, 구입비가 59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9% 증가했다고 보고되었다.
  • 11월 9일: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치안본부는 '반제(구국노동자)동맹당 사건'을 발표하여 조정식 등 관련자 15명을 검거하고 20여 명을 수배했다.
    • 이날 민통련 사무실이 경찰에 의해 강제 폐쇄되면서 민추협도 시한부 농성에 돌입했다.
  • 11월 13일: 민민투 경인지역학생평의회 소속 대학생 및 노동자 5백여 명이 영등포에서 기습 시위를 벌여 경찰차 3대가 전소되었다.
  • 11월 16일: 조선일보가 김일성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특종을 대대적으로 터뜨렸다. 하지만 이 특종은 이틀 후에 김일성이 평양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희대의 오보로 판명되었다.
  • 11월 18일: KNCC 가맹 6개 교단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회'를 개최하고 민정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11월 20일: 국가안전기획부는 '제헌의회그룹 사건'을 발표하였다.
  • 11월 25일: 문교부는 1988년부터 대입제도를 논술고사로 바꾸고 졸업정원제를 폐지하도록 한 대입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 11월 26일: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 11월 29일: 신민당의 주도로 개최하려던 서울개헌대회가 경찰의 봉쇄로 무산되었다. 이에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 충돌이 일어나 시위 참가자 2,255명이 연행되었다.

4.1.12. 12월[편집]

    • 구속된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이돈명 변호사에 대한 변호인단에 사상 최대 규모인 283명이 등록되었다.
    • 민주정의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자 신민당 측은 의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 추풍령 휴게소 무장탈영 인질극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제707특수임무대대가 투입되어 인질범과 18시간의 대치 끝에 인질범을 사살하고 20명의 탑승객들을 구출했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 「주간소년점프」1987년 1/2 합병호에 처음 게재 되었다.
    •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였다.
    • 신민당 측은 민정당의 예산안 기습처리에 반발해 장외 투쟁을 선언하며 무산된 개헌대회를 다시 개최키로 선언하였다.
    • 신민당 홍사덕 대변인의 '12대 국회 해산 및 총선 제의' 발표에 양김이 제동을 걸어 홍 대변인이 사퇴했다.
    • 민언련 김태홍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이 <말>지 보도지침 폭로 기사와 관련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 12월 8일: 김수환 추기경은 이날 인권회복미사 강론에서 "민주화와 인권이 존중받는 참다운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12월 11일: 신민당은 민정당의 단독 상임위원회 강행에 항의하며 국회 불참을 결정했다.
  • 12월 12일: 특허법 및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했다.
    •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보도지침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가 3일간 개최되었다. 이 시기에 '도이모이 개방 정책'을 발표/승인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 12월 16일: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12~30만년 전 구석기 주먹도끼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 12월 19일: 북한은 제8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를 열었다. 이때 국가주석에 김일성, 총리에 리근모를 선출하였다.
  • 12월 24일: 이민우 구상이 발표되었다.
  • 12월 26일: 전국노점상총연합의 전신격인 '도시노점상복지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27일: 민정당, 신민당, 국민당 3당 대표가 회동을 열었다.
  • 12월 29일: 정우개발이 상업은행의 법정관리에 들어가 부채 2천억 원의 지급이 동결되었다.
  • 12월 30일: 북한의 김일성은 시정 연설에서 '남북 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했다.
  • 12월 31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4.2. 가상[편집]

5. 탄생[편집]

5.1. 실존인물[편집]

5.2. 가상인물[편집]

6. 사망[편집]

6.1. 실존인물[편집]

6.1.1. 1월[편집]

6.1.2. 2 ~ 3월[편집]

6.1.3. 4월[편집]

6.1.4. 5월[편집]

6.1.5. 6월[편집]

6.1.6. 7월[편집]

6.1.7. 8월[편집]

6.1.8. 9월[편집]

6.1.9. 10월[편집]

6.1.10. 11월[편집]

6.1.11. 12월[편집]

6.2. 가상인물[편집]

7. 데뷔[편집]

7.1. 가수[편집]

7.2. 예능인[편집]

  • 곽재문
  • 김영선
  • 김정빈
  • 김지은
  • 김혜란
  • 김호남
  • 김황우
  • 노유정
  • 박승대
  • 박현웅
  • 서원섭
  • 이숙녀
  • 이현순
  • 임인하
  • 전형진
  • 정우진
  • 조문식
  • 하상훈

7.3. 만화계[편집]

7.4. 스포츠[편집]

7.4.1. 야구[편집]

7.4.2. 축구[편집]

7.4.3. 농구[편집]

7.4.4. 배구[편집]

7.4.5. 씨름[편집]

  • 장지영

8. 은퇴[편집]

8.1. 스포츠[편집]

[1]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게 1996년 3월 1일부터인데, 1986년 3~12월생들은 1993년 3월 2일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996년 2월 29일까지 국민학교, 1996년 3월 2일부터 1999년 2월 졸업 때까지 초등학교를 다닌 것. 즉 빠른년생을 제외한 86년 3~12월생들은 1,2,3학년은 국민학교, 4,5,6학년은 초등학교를 다닌 셈.[2] 사실은 1970년에 처음 유치권을 획득하였지만 당시 북한의 위협 때문에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이 때 가서야 치뤄졌다.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는 태국 방콕에서 대신 개최.[3] 북한은 두 대회 모두 불참했으며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 라오스, 남예멘 등은 아시안경기대회에 불참했다. 캄보디아는 당시 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중국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차기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참가했으며 서울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4] 대표작으로 소년 점프에 연재된 니세코이가 있다.[5] 프로필상의 생일인 1987년 1월 3일은 호적상의 생일이고 이 쪽이 실제 출생일이다.[6] 애니메이션에서는 1989년.[7] 다카포의 배경은 2002년 봄. 그리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3이다. 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캐릭터들 대부분은 86년생이라 할수 있다.[8] DCSS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시아는 준이치의 반친구였다.[9] 이 날은 아들인 료의 18번째 생일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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