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분류

연도구분
1987년
연대구분
세기구분
밀레니엄구분
세계 각 지역의 표기
1987년
69년
4320년
2531년
2547년
1408년 ~ 1409년
병인년 ~ 정묘
76년
76년
쇼와 62년
5748년 ~ 5749년
1979년 ~ 1980년
가상의 표기
GD 357년
AL 596년
1. 개요2. 전대협 결성, 전국적 학생운동 연대의 첫 걸음3. 고등학생들도 민주화 투쟁에 나서다4. 사건
4.1. 실제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
4.2. 가상
5. 탄생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사망
6.1. 실존인물
6.1.1. 1월6.1.2. 2월6.1.3. 3월6.1.4. 4월6.1.5. 5월6.1.6. 6월6.1.7. 7월6.1.8. 8월6.1.9. 9월6.1.10. 10월6.1.11. 11월6.1.12. 12월
6.2. 가상인물
7. 데뷔
7.1. 배우7.2. 가수7.3. 예능인7.4. 만화계7.5. 스포츠

1. 개요[편집]

많은 일들이 일어난 20세기 대격변의 해

MBC 선정 1987년 10대 뉴스

우리나라에선 6월 항쟁이 일어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져 독재 군사정권이 종식되...는 것 같았으나, 민주화의 주역들인 양김(김영삼, 김대중)의 분열로 군부 출신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군사정권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나마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해 태어난 사람은 1994년 3월부터 1996년 2월까지 국민학교를, 1996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초등학교를 다녔다. 또한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이 극에 달한 시기로 이 해의 출생아 수는 IMF 한가운데 태어난 1998년생보다도 적다! 그리고 이들은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능 샤프를 최초로 사용하고, OMR 카드에 필적확인 문구를 써넣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교육 및 학사면에서는 선배들(고등)과 후배들(중등)이 교육과정 변혁을 겪었고 별다른 스포츠 행사도 없어서 교육 및 학사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고통받은 세대다.사실 6차 교육과정과 7차 교육과정의 딱 중간에 껴서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은 세대인데 수능직전 황우석 사태2005년 당시 국내 최대의 불꽃축제가 있어서 관심이 분산된거라 카더라. 물론 경제적으로는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해는 1992년과 더불어 현재 유럽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리오넬 메시를 선두로 헤라르드 피케, 세스크 파브레가스, 루이스 수아레스, 카림 벤제마, 이외에도 이과인, 나스리, 투란 등등등.... 어째 나스리빼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많아 보이지만 넘어가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해인데 TV를 통해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처음 선보인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원홍이진희, 문화공보부를 까자

여담이지만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의 주연급 남자배우들이 이 해에 출생한 사람들이 많다. 주원, 장근석, 서인국, 지창욱, 이민호, 정일우, 이승기, 윤박, 류덕환, T.O.P, 윤균상, 김영광, 안재현 87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6월항쟁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무주택자의 해'로 지정했다.

2. 전대협 결성, 전국적 학생운동 연대의 첫 걸음[편집]

1986년 10.28 건대항쟁으로 1300여 명이 구속된 뒤 비합법 지하서클 중심의 학생운동세력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선도투쟁에서 대중노선으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하여 전국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4.13 호헌조치로 불붙기 시작한 민중 투쟁은 전국적인 학생운동 진영인 '전대협' 결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해 6월 항쟁 중에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의 장례 절차를 위해 7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전국의 학생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전국적 학생 대중조직 건설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8월 1일에 서울지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서대협) 의장 이인영의 주도로 고려대에서 '제1회 전국 대학생 지역대표자 연석회의'를 시작으로 총 세 번의 회의를 거쳐 전대협은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전국 95개 대학에서 모인 3,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전대협 발대식을 열었다. 전대협은 발족선언문에서 ●외세배격과 독재 종식을 통한 자주적 민간 정부의 수립,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한 연대, ●학문•사상의 자유 쟁취, ●전국학생총연합(전총련) 건설의 토대 마련 등 다섯 가지를 활동목표로 내걸었다.

3. 고등학생들도 민주화 투쟁에 나서다[편집]

1987년은 중/고등학생 사회에 큰 변혁을 일으킨 상징적인 해이다. 그 해 12월 19일에 어른들이 명동성당에서 노태우 당선에 항의하는 농성을 할 때 동 성당 문화관 앞에 모인 3백여 명의 고등학생들은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 명동성당 농성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를 세운 것을 계기로 1990년대 초반까지 불타오를 '고등학생운동(이하 고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활동에 참여한 1969년생부터 1978년생까지를 '고운 세대'라고 부른다. 한총련 5기 위원장이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강위원, 정의당 공동대표 나경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안진걸 등이 '고운 세대' 출신이다.
선언문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를 추구할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은 독재의 교육탄압과 왜곡된 역사의식 속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역사를 역행하지 않으려는 젊은이의 혈기와 용기와 다짐은 오천년 유구한 역사가 군화발 아래 짓밟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의지의 실현을 이루고자, 이에 우리 고교생들은 민주, 민족, 평화, 자유를 열망하는 대다수의 불이익을 감당해온 국민과 애국민주 학우 앞에 군정에 대항하여 투쟁할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에게 실천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개선이 아닌 근본적 개혁과 혁명이 필요합니다.

집권층의 도구로 휘둘러진 반공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진정한 교육의 민주화를 이룰 것을 또한 선언합니다. 이것은 보다 창조적, 개척적인 정신과 행동으로 조국의 앞날을 밝혀갈 우리에게 꼭 필요하며 그렇기에 필히 쟁취해야 함 또한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분단 43년의 조국을 영원한 분단으로 고착시켜 부당한 이익을 얻고자 획책하는 집권층과 그들과 동조해온 미제와 그 아래 모든 동조세력들을 그들의 죄과(罪過)대로 응징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단조국 43년 12월 19일 오늘을 기점으로 자발적이고도 지극히 민주적인 애국 고교생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3.1 운동광주학생운동4.19 혁명의 주체가 또한 불꽃이 우리 고등학생이었음을 극명하며 민족의 염원인 민주화의 횃불이 또다시 꺼지려는 이때 우리는 다시 한번 굽히지 않는 투쟁의 맥을 이어나갈 것을 군부와 그의 하수인들에게 고하며 온 국민과 민주학우 앞에 알리는 바입니다.

학우여!
비민주적 교육제도 속에서 상실된 우리의 시간과 의지와 소망을 회복하고 진정한 주체로서의 입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필코 승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정코 죽으면 살리니 학우여. 끓는 가슴으로 일어나 이땅에 한줌 민주의 씨앗을 뿌리고 갑시다. 쓰러지지 않을 민주의 횃불을 환히 밝히고 갑시다.

학우여, 죽으면 살리라!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군부독재 타도하여 민주교육 쟁취하자!!!
백만학도 단결했다 군부독재 각오하라!!!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

4. 사건[편집]

4.1. 실제[편집]

4.1.1. 1월[편집]

    • 개정 정부조직법 시행에 따라 산림청이 농수산부로 이관되었으며, 농수산부는 농림수산부로 개칭하였다.
    • 정부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를 해제하였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기아자동차가 다시 한 번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고 현대그룹대우그룹도 상용차 시장에 다시 뛰어든다.
  • 1월 2일 : 리비아차드토요타 전쟁 와중에 리비아 기갑여단이 차드군에게 완전히 괴멸당하여 전세가 완전히 차드에게 기울었다.
  • 1월 5일 : 정부는 공직자 자녀들의 시위 가담을 막도록 하는 지침을 시달하였다.
  • 1월 7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김대중, 김영삼 양김에 대한 반발로 충남 온양으로 잠적하였다.
  • 1월 11일 : 북한의 정무원 총리 리근모와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남북정치/군사회담'을 27일에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중대결단 없도록 합의 개헌을 촉구했다.
    •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한국 잡지 90년전'이 개최되었다.
  • 1월 13일 : 고려개발 파동이 터져 사채시장이 마비되었다.
  • 1월 14일 :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던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북한 청진에서 김만철 씨 일가 11명이 선박을 이용해 탈북, 대화퇴 해상에서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1월 20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구조되어 후쿠이현 쓰루가 항에 입항해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 대미환율이 860원 이하로 떨어져 수출업계 측이 비상이 걸렸다.
    •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정당 결성을 허용했다.
    • 중앙일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사회면에 처음 보도했다.
    •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기자회견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거짓 발표했다.
  • 1월 17일 : 검찰은 부산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등 5명을 특수감금과 강제노역 등의 혐의로 구속하였다(형제복지원 사건)
  • 1월 19일 : 경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조한경과 강진규를 구속했다.
  • 1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종호 내무부 장관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경질하였다.
    • 필리핀 농민 1만여 명이 마닐라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으나 보안군의 발포로 12명이 사망했다.
    •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버드 드와이어 펜실베이니아 주 재무장관이 기자회견장에서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 애학투 소속 9개 대학생 7백여 명이 고려대에서 '고 박종철 학우 추모제'를 열고 시위를 벌였다.
    • 대한예수교 장로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등 KNCC 6개 가맹 교단장 및 총무 연석회의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해 고문철폐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 검찰은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고문사건 종식을 위한 우리의 선언>을 발표하며 책임자 엄단, 고문수사 기구 해체 등 4개 항을 제시하였다.
  • 1월 25일 : 노복과 기노련 등 9개 노동운동 단체는 서울 영등포 성문밖교회에서 '고 박종철 동지 추모식 및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26일 : 이날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추모 및 인권회복을 위한 미사'가 개최되었다.
    • 서울지검은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등 보도지침 폭로 관련자 3인을 국가모독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각계 민주인사 9천여 명이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한국은행은 1986년 당시 경상수지 흑자가 46억 5천만 달러라고 잠정 발표했다.

4.1.2. 2월[편집]

  • 2월 3일 : 서울지검 공안1부는 '제헌의회그룹 사건'을 발표하며 최민, 김철수, 김성식 등 관련자 2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박종철 군 범국민 추도회'가 개최되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려 798명이 연행되었다.
    • 대전 성지원에서 시설측의 구타와 강제 노역을 견디다 못한 원생 20명이 탈출하였다(성지원 사태).
  • 2월 8일 :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 일가가 서울에 도착하였다.
    • 박종철 군 범국민 추도회 당시 연행된 798명 중 34명이 검찰에 구속되었다.
    •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는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정치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후 10일에는 김영삼 고문, 20일에는 이만섭 국민당 총재, 27일에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회담을 열었다.
  • 2월 10일 : 대전 성지원 사태를 계기로 성지원을 조사하러 온 신민당 의원들이 원생 20여 명에게 폭행당했다.
  • 2월 11일 : 대한변협은 <2.7 추도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2월 12일 : 검찰은 <한국민중사> 출판과 관련해 풀빛출판사 대표 나병식 등 관계자들을 연행했다.
    • 김대중-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은 여야 지도자 회담과 선택적 국민투표를 제의했다.
    • 한출협 등 6개 단체는 검찰의 나병식 풀빛출판사 대표 연행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2월 18일 :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20일 : 브라질 정부는 외채이자 지불을 90일 간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 2월 21일 : 대전 성지원 원생 221명이 집단 탈출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1시간 만에 220명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 서울지검 공안부는 '민족해방노동자단 사건'을 발표하며 김영환 등 13명을 구속하였다.
    • 요하네스 케플러 시절 이후 최초로 육안으로도 관측 가능한 마젤란 은하 초신성 SN 1987A이 발견되어 전세계 천문학계가 술렁였다.
  • 2월 26일 :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은 한국에 원화 절상을 요구했다.
    • 평화의 댐 1단계 공사가 시작되었다.
    • 일본에서 광전대 마스크맨이 방영을 시작했다.

4.1.3. 3월[편집]

  • 3월 3일 : 이날 개최되려던 박종철 열사 49재와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의 개최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 시위가 열렸다.
  • 3월 4일 : 서울 선린상고 학생 4백여 명이 민교협 소속 노웅희 교사의 전출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5일 : 윌리엄 클라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여야 인사와 개헌정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 3월 9일 : 김영삼과 이민우 총재가 다시 만났으나 노선대립 조정에는 실패하였다.
  • 3월 11일 : 서울 여의도 KOFEX에서 '한국 소프트웨어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훗날 '월드 IT쇼'의 전신 중 하나로 손꼽힌다.
  • 3월 14일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민주화 정책 추진을 다짐하였다.
  • 3월 15일 : 제15회 동아마라톤에서 이종희 선수가 2시간 12분 21초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3월 16일 : 정부는 농어촌 사채에 1조원을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 3월 17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 고문은 직선제 개헌 등 4개 항에 합의하고 개헌노선 내분을 전격 수습했다.
  • 3월 19일 : '경인지역 민족민주학생연맹(이하 민민학련)'이 재결성되었다.
  • 3월 21일 :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22일 :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원생 1명이 직원들의 구타로 숨지자 35명이 집단으로 탈주하였다.
  • 3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 정국 주도권을 부여하였다.
  • 3월 27일 :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가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민족정기 구현회장 권중희에게 몽둥이로 응징을 당하였다.
  • 3월 29일 : 한국사회경제학회(이하 한사경)가 발족되었다.
  • 3월 31일 : 소련에서 미르의 크반트-1 모듈이 발사되었다.

4.1.4. 4월[편집]

  • 4월 1일 : 일본국유철도가 민영화되어 JR그룹으로 재탄생하고, 각 지역별로 분사되었다.
  • 4월 2일 : 서울대생 학부모 130여 명이 건대항쟁 등 시국사범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4일 : 정부는 해외 건설업을 산업합리화 대상으로 지정하고 부실기업 18개를 정리할 것을 발표했다.
  • 4월 6일 : 자동차노련 서울택시지부 조합장 200여 명이 노조연맹회관 강당에서 업적급제 폐지와 완전 월급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개시하였다.
  • 4월 7일 : 광복회 등 15개 단체가 안두희의 재수감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 충북 제천의 택시기사들이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 서울시내 택시기사 1천여 명이 강남 테헤란로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시내 택시기사 2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2년간 군비지출 동결을 제의했다.
    • 9일 전 발사된 미르 크반트-1 모듈이 도킹에 성공하였다.
    • 김대중 고문이 가택 연금을 당했다.
    •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유럽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 회담 및 35개국 외무장관 군축 회담을 제의했다.
    • KNCC와 김수환 추기경은 4.13 호헌조치를 비난하였다.
    • 서울 상계동 세입자 1백여 명이 강제철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 4월 16일 : 경기도 평택에 LNG 기지가 준공되었다.
  • 4월 17일 : 미국은 대일 보복무역을 발동하여 전자제품에 3억 달러의 관세를 추가시켰다.
  • 4월 18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1988 서울 올림픽과 정권교체 후 내각제 합의개헌에 노력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 당시 외화도피 혐의로 검찰 조사 중이던 박건석 범양상선그룹 회장이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이 사건은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 민통련 등 재야단체와 시민, 학생 등 3천여 명이 4.19 기념식 후 시위를 벌였다.
    • 광주의 천주교 신부 13명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유럽과 아시아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를 위한 동시 협상을 제의했다.
  • 4월 22일 : 고려대 교수 30명이 4.13 호헌조치를 반대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한국노총은 4.13 호헌조치를 지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달러화가 도쿄 외환시장 기준 137.25 엔으로 전후 최저 시세를 기록했다.
  • 4월 30일 : 나카소네 총리대신이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과 미일정상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미국은 대일 보복관세 해제를 거부했다.

4.1.5. 5월[편집]

  • 5월 1일 : 신한민주당을 탈당한 동교동계상도동계 의원들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 5월 4일 : 세관원과 공항 직원이 낀 33억대 금괴 사건이 터져 관련자 7명이 구속되었다.
  • 5월 5일 : 최초의 국산 TV 애니메이션인 떠돌이 까치, 달려라 호돌이가 각각 KBS 1TVMBC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 5월 6일: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서대협)'가 결성되었다.
  • 5월 7일 : 포항제철 광양제철소 제1기가 준공되었다.
    • 통일민주당은 국회에 4.13 호헌조치 철회 건의안 및 범양상선 사건 국정조사 결의안을 제출했다.
    • 금융노련 산하 13개 노조는 한국노총의 4.13 호헌조치 지지에 반박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9일 : LOT 폴란드 항공 5055편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추락해 탑승인원 183명 전원이 사망했다.
  • 5월 10일 : 대한민국에서 26년만에 서머타임 제도가 부활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도로 폐지되었다.
  • 5월 12일 :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한국의 4.13 호헌조치 재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5월 15일 :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KNCC 소속 6개 교단과 신도 1천 2백여 명은 4.13 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 광주항쟁 7주기 추모제가 망월동 묘역, 민통련, 전국 62개 대학 등지에서 각각 거행되었다.
  • 5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 5월 19일 :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이 한국-일본-필리핀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면 유럽과 아시아의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겠다고 결의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정토구현전국승가회와 민불련 등 승려 90여 명이 5.18 추모법회 중 경찰의 광주 원각사 난입에 항거하며 서울 개운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대한변협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진상은폐에 검찰 개입 의혹이 있다며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25일 : 통일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조작과 관련해 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였다.
    • 통일민주당, 재야 민주단체, 신구교 등 발기인 2,191명이 직선제 관철을 위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을 결성하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 진상규명과 4.13 담화 철회를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결의하였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6월 7일을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정하고 4.13 호헌조치 철회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 5월 28일 : 서독의 19세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가 "냉전을 중단시키는 평화의 가교가 되겠다"며 애인과 함께 단돈 1만6천달러 짜리 경비행기(4인승 세스나기)를 임대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 핀란드 헬싱키를 이륙해 소련 영공 750km 날아 모스크바에 착륙하기까지 소련군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1] 무사히 착륙한 청년은 싸인은 물론 삐라까지 뿌리다가 KGB에 붙잡혀 14개월간 수감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레이다 1만개, 요격전투기 4,000여대, 지대공 미사일 1만4,000여발을 자랑하던 소련의 방공망은 무용지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제적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 '호헌 철폐와 민주개헌 쟁취를 위한 서울지역학생협의회'가 구성되었다.
    • 제30회 전국역사학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 참석한 교수 등 350여 명이 <한국민중사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한국민중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7월부터 대형 승용차, 비디오 테이프, 왜건, 지프차, 면도기, 중소형 컴퓨터 등 미국이 요청한 품목 46개를 포함한 170개 품목의 수입을 개방하기로 하여 수입자유화율이 93.6%로 올랐다.
    •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사건 이틀 만에 소콜로프 국방장관과 콜두노프 방공군총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

4.1.6. 6월[편집]

    • 중앙기상대(현 기상청)는 서울, 부산, 광주, 강릉 등 전국 12개 도시에서 '강우확률예보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 서울 내 13개 대학 학생회장 등 간부 20여명은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이헌기 노동부장관 등 대표단 15명을 파견했다.
    •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이 제10회 이탈리아 오픈 유도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다.
    • 고건 내무부 장관은 지방 장관회의에서 인권 보호와 경찰의 신뢰회복 등을 강조했다.
    • 서울지방검찰청은 통일민주당의 정강정책과 관련하여 창당 발기인인 이현 등 4명을 구인했다.
    • 범민족올림픽추진위원회는 북한의 올림픽 방해 위협에 대해 숭고한 올림픽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 전두환 대통령은 제4차 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남북최고책임자회담을 다시 촉구했다.
    •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는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제청했다.
    • 김동영 부총재 등 통민당 의원 5명은 이한기 총리서리에 김대중의 연금 해제를 건의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86년 보도지침 폭로 사건의 주도자 김태홍, 김주언, 신홍범에게 각각 징역 10개월과 집유 2년, 징역 8개월 및 집유 2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 제134회 임시국회가 개최되었다.
    • 국민운동본부는 민정당에 6.10 전당대회를 즉각 중지하고 합의 개헌에 응하라고 성명서를 냈다.
    • 부산지방검찰청은 필로폰 밀매조직 3개파 30여 명을 구속했다.
    • 김재광 의원 등 5명은 신한민주당을 탈당했다.
    • 가수와 예술인 88명이 시국성명서를 냈다.
    •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 74명이 민주화와 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 국사교육심의회는 고조선의 최초국가 명기를 골자로 한 중/고교 국사 교과서 개편방향을 확정하였다.
    •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87 반공해선언>을 발표하여 핵발전소 건설 중단 등을 촉구했다.
    • 한국은행은 1988년 1월부터 모든 은행에서 현금인출이 가능한 'CD 공동카드이용망'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 6월 6일 : 서울 내 29개 대학교 학생 수천여 명은 고려대학교에서 연합 대동문화제를 열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7일 : 프로 권투선수 유명우가 WBA 주니어 플라이급 제5차 방어전에서 파나마의 베네딕토 무리요를 상대로 KO승을 선사했다.
    • 고건 내무부 장관과 정해창 법무부 장관은 합동으로 6.10 규탄대회를 강행하면 엄단하겠다고 담화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에 전당대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여/야 공동으로 민주화 선언을 제의했다.
    • 경찰은 민추협과 전국 110개 대학을 수색했다.
    • 우산유 버마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 제16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 치안본부는 6.10 규탄대회에 대비해 재야인사들의 연금 및 대회 원천봉쇄를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 이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교문 앞에서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 도중 동교 경영학과 2학년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직사로 쏜 최루탄에 맞아 실신했다.
    • 서울교대 1~3학년생은 구타를 이유로 정태수 학장의 퇴진을 요구한 동료 학생에 동조해 수업을 거부했다.
    • 서방 선진 7개국은 서울올림픽 공동 지원에 합의했다.
    • 북한은 '비동맹 각료 특별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했다. 이때 김일성은 외채상환 연기를 촉구했다.
    •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이때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내각제 개헌을 관철시키겠다고 천명했다.
    • 같은 날, 국민운동본부의 주최로 군부독재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를 목표로 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는 6월 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이날부터 학생과 시민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의 정치 일정 강행을 비난하고 구속자 석방 및 사면/복권을 촉구했다.
    • 창원공단 노동자들은 퇴근길에 “노동3권 보장하라”와 “쪽바리는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공단파출소를 부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시위 사태에 대해 논평하며 대화와 타협을 촉구했다.
    •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가 2집 <Down And Up>을 발표했다.
    • 농림수산부는 1986년도 농가부채 증가율이 농가 소득보다 2배 가량 올랐다고 발표했다.
    • 국제축구연맹은 지역예선에 불참한 북한의 올림픽 축구 출전권을 최종 박탈했다.
    •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의원 내각제로 합의 개헌되면 대통령 임기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 이웅희 문공부 장관은 일부 야당 세력이 계속 폭력시위에 참가할 시 대응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 6.10 시위대 중 4백여 명이 명동성당에서 3일째 철야농성을 벌였다.
    • 경찰은 6.10 집회와 관련하여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13명과 시위 현장에서 연행된 3,854명 중 123명을 구속했다.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3개 여성단체는 '최루탄 추방운동'을 전개했다.
    • 연대생 3천여 명은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 연세인 규탄대회'를 열어 교문 밖에서 시위를 했다.
    • MBC는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민정당은 정을 주는 당"이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코미디언 김병조에 대해 일시 출연정지 조치를 내렸다.
    • 경주에서 신라시대 토용 11점이 발굴되었다.
    • 여/야 정당은 공전 둥인 134회 임시국회를 정상화하고 6.10 사태 등 논의에 합의했다.
    • 대전고등학교 야구부가 42년만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서울지검은 6.10 규탄대회 주도혐의로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등 국민운동본부 간부 13명을 구속했다. 이에 통민당은 이들을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현 정권(전두환 정권)에 전면 투쟁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6월 14일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서울올림픽 방송중계 중남미 지역 방영권을 292만 달러에 팔았다.
    • 경찰은 전국 59개 대학에서 과격시위자 916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전국 사제단 미사에서 민주화를 위해 여야에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했다. 이날 신부와 신도 8천여 명이 명동에서 촛불 행진을 벌였다.
    •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과 시민들은 특별 미사와 촛불 가두행진을 연 뒤 자진 해산하였다.
    • 문교부는 서울교대에 휴교령을 내렸다.
    • 전국 8개 도시에서 17,4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 경남 거제군 해금강 해상에서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이 일어나 탑승자 29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되었다.
  • 6월 17일 : 민추협 소속 1백여 명은 김대중 공동의장 연금에 항의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 국민운동본부는 '최루탄추방대회'를 개최하여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150여만명이 참가했다.
    • 이날 부산에서 열린 시위 도중 회사원인 이태춘 씨가 최루탄을 맞아 좌천동 고가다리 밑으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이씨는 6일 뒤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미국 하원 외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는 여야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 이한기 국무총리서리는 시위사태가 계속되면 비상한 각오를 하겠다고 담화했다.
    • 전국 79개 대학교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 미국 국무부는 미국 국민들에게 시위 지역에 가지 말도록 '한국 여행 지침'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당월 30일에 해제되었다.
    • 대전에서 시위대가 탈취한 버스가 휴식중인 전경 대열을 덮쳐 박동진 일경이 숨지고 나머지 두 명이 중상을 당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담을 공식으로 제의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신민당과 한국국민당 총재와 연쇄 대표회담을 개최했다.
    • 국본은 26일에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이하 국민평화대행진)'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내 51개 중/고등학교 교사 105명은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민정당 의원총회는 개헌 논의를 다시 열어 9월까지 합의가 안 되면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에서 한국이 호주를 승부차기로 꺾어 우승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의 시위사태에 군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 소련의 지방 대의원/판사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복수후보 투표를 실시했다.
    • 종교인 1천 5백여 명이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구국 기도회를 열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두환 대통령은 윤보선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시국수습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전두환 대통령이 개헌논의 재개와 구속자 석방, 김대중 연금해제 등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 미국 국무부는 군의 개입이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여 시위진압에 계엄령 및 군부 개입을 반대함을 표했다.
    • 영광 원자력 발전소 7, 8기가 준공되었다.
    • 대한민국이 생물무기금지조약(BWC)에 가입했다.
    • 경찰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의 연금을 해제했다.
    • 전국 42개 대학에서 9천여 명의 학생들이 교내 집회와 가두 시위를 진행했다.
  • 6월 26일 : 전국 34개 도시에서 국본 주최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이 개최되었다.
  • 6월 28일 : 권투선수 장정구가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 방어 성공했다.
  • 6월 29일 : 노태우 민주정의당 소속 대통령 후보가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때 노 후보는 직선제 개헌안 및 김대중 사면 복권 등 8개항에 서명하면서 독재 군사정권이 민중에 굴복했다. 이날 증권거래소에서는 6.29 선언에 따라 종합 주가지수가 7.04%나 올라 394.46을 기록했다.
    •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민주화 공동 선언을 통한 '국민화해의 날' 제정을 정부와 여당에 제의했다.
    • 국어연구소는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안을 확정해 문교부에 제출했다.
    • 문교부는 시위관련 징계 학생들과 해직 교사들의 복학 및 구제 등 학원안정 회복을 위한 종합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4.1.7. 7월[편집]

    • 전두환 대통령은 6.29 선언 내용을 전부 수용한다는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 미국 하원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시국 수습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국의 전화를 완전 자동화시켰다.
    •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가 세워졌다.
    • 한국소비자원의 모태인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세워졌다.
    •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세워졌다.
    • 제주 서귀포 시립미술관이 세워졌다.
  • 7월 2일 :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설립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등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결정했다.
    • 이날 연세대에서 1만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토론회가 열렸다.
    • 인천 한국차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병상에 눕던 이한열이 결국 사망하다.
    • 현대그룹 계열인 현대엔진(주)[2] 노동자들이 민주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첫 신호였다.
    • '민주헌법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이하 민헌노위)'가 발족되었다.
    • 새마을호 DHC동차가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 7월 8일 : '민주쟁취국민운동 전국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광장에서 이한열의 장례식이 연세대 총학생회 주관 하에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이날 무려 100만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으나 이 와중에 전두환 퇴진을 주장하는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향하려다 경찰의 최루탄 난사로 흩어져 6월 항쟁은 막을 내렸다.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1988년 올림픽을 반드시 서울에서 열 것이라고 천명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직을 사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 6.29 선언에 따라 김대중 등 2,335명이 사면/복권되었고, 357명이 석방되었으며, 270명이 수배 해제되었다. 그러나 사면이 안 된 나머지 양심수들은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 7월 11일 : 세계 인구 5,000,000,000 돌파. 이후 매년 7월 11일을 세계 인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 한국노총 5개 산별연맹 산하 33개 단위노조 간부 112명이 '노동민주화실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광주 해고노동자 복직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3일 : 전두환 정부는 개각을 단행해 8개 부처의 장관들을 경질하고 김정렬을 새 국무총리에 임명하였다.
  • 7월 14일 : 문화공보부 장관 이웅희는 언론기본법의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 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대만에서 38년동안 내려진 계엄령이 해제되었다.(타이완 성 한정. 중국대륙과 가까운 푸젠 성의 섬 지역은은 이보다 몇년 늦게 해제)
    • 제5호 태풍 셀마가 남해안에 상륙했다.[3] 이 태풍으로 인해 사망자와 실종자 158명이 발생했다.
    • MBC 소속 기자와 프로듀서들은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지시성 프로그램 제작/송출 거부를 결의하였다.
    • 현대미포조선 노조원들이 울산시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류를 내려다 사측에 압수당하는 바람에 1,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전개했다.
    • KBS와 MBC 양대 방송사 소속 기자와 PD, 기술진들이 '방송민주화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김대중은 불출마 선언을 무효로 한 뒤 출마여부를 검토한다고 선언하였다.
    • 서울시철거민협의회(이하 서철협)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서해투)'가 결성되었다.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이하 인해협)'가 결성되었다.
  • 7월 20일 : 태백 한보탄광 노동자와 가족 6백여 명이 퇴직금 지급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권오성 등 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 50여명이 어용노조 기습신고를 냈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설립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인천 우아미가구 노동자 7백여 명이 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태광산업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해산과 보너스 누진제, 하기휴가 연장, 휴가비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북한은 남북한 및 미국,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참가하는 다국 군축협상을 제의했으나, 미국 국무부가 이를 거부했다.
    • 현대자동차에 어용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중공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자동차 소속 8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개시했다. 이날 자정에 사측은 어용노조 임원진 사퇴와 이상범 임시집행부 인정에 합의하며 민주노조로 탈바꿈하였다.
    • 김필수 등 현대중공업 노동자 11명이 모여 민주노조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 7월 26일 : 현대중전기(주)[4]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안양 한국제지 노동자 150여 명이 노조 결성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울산 태광산업, 동양나이론, 동양포리에스텔, 풍산금속 등지의 노동자 7천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국제상사 부산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중공업 노동자 1만 7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 노동자의 기본생활개선 등 17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총파업을 벌였다. 이에 따라 노조개편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대주상호신용금고 주주 김신일이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여파로 임철순 민정당 의원이 8월 8일에 사퇴하였다.
    • 풍산금속(주) 소속 700여 노동자들이 밤샘 파업농성투쟁을 벌여 다음날에 어용노조를 퇴진시켰다.
    •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종합목재(현 현대리바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이란 순례객들과 사우디 군경 사이에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부산 (주)화성 노동자 6백여 명이 농성을 벌여 근로조건 개선을 쟁취하였다.
    • 현대중공업 노조 개편 대책위원회와 사측은 연말상여금 차등제 철폐, 두발 자유화, 새 노조 집행부 구성 등에 합의했다.
    • 울산여객 등 6개 시내버스 운전사 400여명이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과 거리 시위를 벌였다.
    • 금호석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4.1.8. 8월[편집]

    • 현대정공 노동조합이 결성됨과 동시에 1, 2공장 노동자 2,000여명이 도로와 회사를 점거하는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종합목재 노동자 1,5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향토사학자 홍순일은 북제주군 애월리 배무숭이 바닷가에서 대단위 물소금 제조 흔적을 발굴했다.
    • 서독 국제 양궁대회에서 전인수와 박정아 선수가 남/녀 개인전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 한국은행원 일동은 한국은행의 헌법상 독립적 지위 보장 및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였다.
    • 현대자동차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울산 노조결성 보고대회' 뒤 파업농성을 벌였다.
    •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정공 노동자 6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8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성탄좌 장성광업소 노동자 350여 명이 상여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논노패션 노동자 30여 명이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민정당 남재희 의원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현대알루미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 권한대행이 새 총재로 취임했다.
    • 울산 고려화학, 현대강관, 현대자동차, 럭키 등지의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대한알루미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강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정선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노동자 6백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민통련은 <가자! 민족통일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지역순회강연을 열었다.
    • 대우중공업 인천공장 노동자 1천 6백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부산파이프 포항공장 노동자 3백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임금인상, 어용노조 퇴진, 보너스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창원 통일산업, 기아기공, 한일합섬 등지의 노동자 3천여 명이 파업을 벌였다.
    • 대우중공업 영등포공장과 군포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전주 원일기업 등 택시업체 기사들이 운행을 거부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 혜성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금강개발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주정의당은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부터 지정된 금지곡 대폭 해제 등의 조항을 담은 '문화예술 자율화 대책'을 확정했다.
    • 창원 삼미종합특수강, 삼미단조, 창원기화기 등의 노동자 7백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현대중전기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김대중이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으로 당적을 옮겼다.
    • 울산 현대그룹 12개사 노조 집행부는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였다.
  • 8월 9일 : 광주 54개 노선 시내버스 운전기사 7백여 명이 운행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본은 '양심수 전원석방 및 민주화 쟁취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서울 신촌운수 택시기사 40여 명이 연좌농성을 벌였다.
    • 이헌기 노동부장관은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김정렬 총리는 '노사관계부처장관 및 치안관계자 대책회의'를 열어 노사분규 중 시설파괴, 점거행위 등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하였다.
    • 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양심수 석방을 촉구했다.
    • 삼익악기 부평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임금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광주 CBS 소속 직원들은 뉴스와 광고방송 부활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노민위는 한국노총 어용간부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대우전자 광주공장 노동자 6백여 명이 기본급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구미공단 오리온전기 및 오리온전자 노동자 1천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철도노조 부산사업소 노동자 2백여 명이 임금인상과 휴가비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성사 평택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 전북 군산과 강원 춘천의 27개 택시업체 기사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전의 시내버스 기사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프랜지공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삼양교통 해고노동자인 정병두가 복직 및 살인적 배차제 폐지를 요구하며 분신하였다.
    • 충남 천원군에 독립기념관이 개관하였다.
    • <노동자신문>이 창간되었다.
    • 서울 국제초청 농구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우승했다.
    • 국본 산하 노동자공동위는 ‘민족해방을 위한 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범민주 과도정부 수립'을 노동자들의 당면 투쟁목표로 제시하였다.
    • 현대그룹 6개 노조 노동자 3만여 명이 사측의 휴업조치에 반발해 가두시위를 벌였다.
    • 고려화학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전두환 대통령은 '노사분규 관계장관 회의'에서 노사분규에 대한 불순세력 개입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 철도노조와 우편노조 등은 '공무원노조협의회'를 구성하여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과 단결권 등을 촉구하였다.
    • 울산 현대그룹 소속 노동자 15,000여 명이 지역 내 그룹 연합시위를 벌였다.
    • 공연윤리위원회는 유신정권 시절부터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동백 아가씨> 등 186곡을 해금했다.
    • 서울YWCA 어린이부가 '어린이 만화 모니터 모임'을 결성하였다.
  • 8월 19일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가 결성되었다.
  • 8월 20일 : 대검찰청은 노사분규에 대한 외부개입의 경우에 모두 구속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대검공안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노사분규중앙합동수사본부’와 차장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좌경문제의 실체와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확고한 입장을 가질 때”라는 입장을 밝혔다.
    • 충남과 전북 지역에서 집중호우로 17명이 사망하였다.
    • 한신대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2일 :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가 파업 도중 가슴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 8월 23일 : 이날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완전 복직 및 해고 반대를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24일 : 김대중 통민당 상임고문은 '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 민청련은 제9차 총회에서 소수 선진청년조직 중심에서 청년대중조직으로 근본적 방향전환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 이날을 기점으로 당년도 노사분규가 2천 건을 돌파했다.
  • 8월 26일 : 서울민사지법은 1심에서 망원동 수재 사건은 '인재'라고 하여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 김정렬 국무총리는 좌경세력 척결을 위한 특별담화를 했다.
    • 정관용 내무부 장관은 ‘좌경세력 활동사례’와 '좌경세력 척결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 대우조선 파업이 19일 만에 사측의 기본급을 5천원으로 올리는 임금협상 합의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사망한 이석규 노동자의 장지를 유족, 김우중 회장과의 3자 면담에서 전북 남원으로 결정했다.
    • 제일제당은 국내 최초로 만성 B형 간염 치료제를 개발했다.
    •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의 장례가 '민주국민장'으로 치뤄졌다. 그러나 장지인 광주 망월동으로 가던 도중 경찰의 진압으로 이석규의 시신이 탈취되어 남원 선산에 묻히고 말았다.
    • 전국 13개 도시에서 이석규 열사 추모대회 및 가두시위가 전개되었으나 경찰에 의해 933명이 연행되었다.
    • 빙그레 이글스의 선수 이강돈이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성공했다.
    • 북한 평양 보통강구역에 류경 호텔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폐건물
    • 현민 유진오 박사가 타계하였다. 고려대 측이 그의 빈소를 만들자 학생과 일부 교수들이 반발하였다.
    •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은 '8인 정치회담'을 열어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하고 부통령제는 신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 이날 12호 태풍 '다이너'가 상륙하여 71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 대한민국이 제4회 세계 남자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4.1.9. 9월[편집]

  • 9월 중 : 역사비평이 무크지로 창간되었다.
    • 민주헌정연구회와 민주인권연구회가 '헌정연구회'로 통합했다.
    • 한국 국적 유조선인 아스트로 페가서스 호가 페르시아 만에서 이란 미사일에 피격되었다.
    • 부산 연합철강(훗날 유니온스틸)에서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열었다.
    • 문화공보부는 영화 시나리오 사전심의를 철폐했다.
    • 노태우와 김영삼은 회담을 열어 정치일정과 노사문제 자율원칙 등 5개항에 합의하였다.
    • 이날을 기점으로 당년도 노사 분규가 3천 건을 돌파했다.
    •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2만여 명이 임금협상 결렬을 이유로 파업을 벌여 울산시청에 난입해 사무실을 파괴하고 방화를 했다.
    • 조흥택시 노조위원장 이석구가 "노조탄압 중지하라"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이후 그는 1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 현대정공 울산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이 철야 농성을 벌였다.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도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였다.
    • 현대중공업 노동자인 채태창이 시위 중 차량을 통제하다 음주운전중인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 천하장사씨름대회가 일본 오사카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 서울의 택시기사 4천여 명은 파업 중에 운행중인 택시에 투석을 하는 등의 과격 가두시위를 벌였다.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파업에 경찰이 출동하여 135명의 노동자들이 전원 연행되었다. 이날 현대중공업에서도 경찰이 기습하여 노조 간부 1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 안기부와 보안사는 간첩 혐의자 장의균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1만여 명이 연좌 농성을 벌였다.
    • 방송심의위원회는 방송금지 가요 5백곡을 해제했다.
    • KBS와 MBC 양사 소속 프로듀서들이 총회를 열어 '한국프로듀서협회'를 세웠다.
    • 검찰과 경찰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자동차 시위에 관련된 노동자 123명을 구속했다.
    • 제13차 세계법률가협회가 개최되었다.
    • 민정당 중앙정책위원회는 '대통령 선거법', '국민투표법', '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 3개 법안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 전경련은 과격 노사분규 수습안을 위한 '노사정여야 수습회의' 개최를 정부에 건의했다.
    • 현대중공업이 파업 지속으로 인해 휴업했다.
    • 한국문인협회는 월북 작가 정지용김기림의 작품 해금을 문공부에 건의했다.
    •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서독을 방문했다.
    • 김대중 통민당 고문은 수십만 명의 환영인파 속에 광주를 방문했다.
    • 치안본부는 '남로당 재건기도 사건'을 발표하였다.
    • 내무부는 민방위 훈련 시간을 연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 조정했다.
    • NWA 노조는 위탁직원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요구는 10월 9일에 타결되었다.
    • 파업 회사들의 택시들이 대부분 운행을 재개했다.
    • 노스웨스턴 항공의 한국인 직원들이 파업을 했다.
    •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 출연한 영화배우 강수연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현대중공업은 울산시에 노조 해산을 명령할 것을 요청했다.
    • 고려대학교는 1983년 12월 2일에 출교 처분된 학생 9백여 명을 구제할 것을 결정했다.
    • 재일동포 사업가인 김희수 씨가 중앙대학교를 인수했다.
    •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3백여 명이 원고료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열었다.
    • 한국여성민우회가 세워졌다.
    •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첫번째 월드투어인 Bad World Tour를 시작함.
    •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미국을 방문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여 정부 및 야당 지도자와 정국을 논의했다.
    • 대한민국 청소년 여자배구 대표팀이 서울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여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 9월 14일 : 서울대학교 측은 1984년 부활 이후 인정하지 않던 총학생회를 공식 인정하였다.
    • 문화공보부는 10월부터 CBS에 광고방송과 뉴스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 정부는 해외여행 허가를 확대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 광양제철선 광양역 ~ 태금역구간이 개통되었다.
    • 외무부는 '대북한 외교관 접촉 완화지침'을 발표했다.
    • 종전의 자실이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로 개편되었다.
    • IOC는 서울올림픽 초청장을 167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국본 산하 '민주쟁취 청년학생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여야가 합의한 직선제 개헌안이 발의되어 3일 뒤 공고되었다.
    • 정부는 국산 전차 K-1 전차의 명칭을 '88전차'라고 이름짓는 명명식을 열었다.
    • 보건사회부는 렙토스피라증 경보를 발령했다.
    • 전경련은 노동자 쟁의 중 구속된 노동자에 대한 석방을 건의했다.
    • 치안본부는 반정부 유인물과 관련해 24개 재야단체를 상대로 일제 수사를 벌였다.
  • 9월 20일 : 제8차 세계언론인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 신동아월간조선 기자들은 신동아 10월호에 게재된 <이후락 증언>에 대한 안기부의 삭제 조치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신동아-월간조선 탄압 사태).
    • 전두환 대통령은 여야 의원 264명이 공동으로 국회에 낸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 제137회 정기국회가 열렸다.
    • 서울대는 시국관련 제적 학생 257명의 복학을 허가했다.
  • 9월 22일 :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가 해결되어 정상 조업에 들어갔다.
    • 문교부는 '대학자율화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재파업에 들어갔다.
    • 명신고 재학생 1,200여 명이 이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밤 10시까지 농성을 벌였다.
    • 제4회 월드컵 스카이다이빙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자 전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전국산업재해노동자연맹'이 결성되었다.
    • 민주산악회는 부산 금정산 대중집회에서 김영삼을 통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 것을 결의했다.
    •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이하 전교협)'가 결성되었다.
  • 9월 28일 : 김종필이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 9월 30일 : 한국국민당 당원 9명이 신당을 만들기 위해 당을 나갔다.

4.1.10. 10월[편집]

  • 10월 1일 :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프랭크 칼루치 미국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과 한반도 안보 및 한국의 정치발전 등에 대해 논의했다.
  • 10월 3일 : 전두환 대통령은 개천절 경축사에서 좌경 민중혁명 노동자들의 행동은 민족의 이상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 10월 8일 : 미국 국방부는 페르시아만에서 미군 헬기가 이란 함정 3척을 격침했다고 발표했다.
  • 10월 10일 : 김영삼 통민당 총재가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 10월 11일 : 전국대학서클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2일 : 제9차 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 10월 13일 : 민통련은 김대중 통일민주당 고문을 대통령으로 추천한다고 발표했다.
  • 10월 14일 : NWA 노조가 사측의 보복인사에 항의하며 재파업을 벌였다.
    • 국내 석유값이 평균 10.2%로 인하되었다.
    • 도시노점상복지회가 '도시노점상연합회'로 바뀌었다.
    • 남서울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발족되었다.
    • 법무부는 형사사건 피해자의 법정 진술권을 신설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 정부와 민주정의당은 '남녀고용평등법안'을 마련했다.
    • 현대엔진 노조위원장 권용목이 구속되었다.
    • 미국에서 블랙 먼데이 사건이 일어났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순식간에 508포인트, 22.6%나 폭락했다.
    • 문화공보부는 '10.19 출판활성화조치'를 발표하여 판매금지 종용제도를 폐지함에 따라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부터 금서가 된 <마르크스와 민족주의>,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 <오적(김지하 저.)>,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 <커뮤니케이션과 사회학> 등 재야/진보계열 서적 430종이 해금되었고, 아울러 '납본필증 즉시교부'와 출판사 등록을 완화시켜 출판의 자유가 더 확대되었다.
  • 10월 22일 :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또다시 회담을 열어 김영삼 총재 측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경선제를 제의하였으나, 김대중이 이를 거부하였다.
  • 10월 23일 : 서울, 부산, 창원, 안양 등 해고노동자 11명이 '노동운동 탄압분쇄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10월 25일 : 이날 고려대 운동장에서 '민주쟁취 청년학생 공동위원회 창립대회' 및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국민내각 쟁취 실천대회'가 열렸다.
    • 제9차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국 압도적 찬성 의견으로[5] 개헌안이 최종 확정돼 이틀 뒤인 10월 29일에 공포되었다.
    • 국본 산하 노동자공동위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노동운동 탄압분쇄 결의대회’를 개최되었다.
    • 민족통일애국운동청년단이 결성되었다.
    • 김대중 통민당 고문은 대통령 출마 및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였다.
    • 서울운수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서울노협)가 결성되었다.
    • 국본 산하 '민주쟁취 국민운동 천주교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한국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31일 : 송건호 민언협 의장 등 13명은 123명이 서명한 야당 대통령후보 단일화 촉구성명을 발표하였다.

4.1.11. 11월[편집]

    • 부산 유세를 마친 김대중 평민당 후보가 묵던 숙소 앞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 대한민국 해병대가 재창설되었다.
    • 서울대 등 서대협 소속 10여개 대학생들이 명동 일대에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 한겨레사회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종전의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로 개칭되었다.
    • 한출협은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비민주적 독소조항이 있다며 항의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정계 은퇴를 발표하였다.
    •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하여>란 대자보를 붙인 연세대생 이병광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배되었다.
    • 나카소네의 후임으로 타케시타 노보루가 일본의 새 총리가 되었다.
  • 11월 8일 : 전대협은 '군부독재 종식과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중립 내각 쟁취 범국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 11월 9일 : 이날 열린 통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이때 전 육군 참모총장인 정승화의 통민당 입당으로 12.12 사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 대한민국 섬유류 수출이 1백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단일 업종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백기완 선생 대통령후보 임시추대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12일 : 이날 열린 평화민주당 창당 대회에서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 11월 13일 : '군정 종식과 자주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14일 : 통민당 후보 김영삼의 광주 유세 도중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 11월 15일 : '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학살원흉 노태우 집권분쇄를 위한 학생투쟁연합'이 결성되었다.
    • 동아일보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19일 :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였다.
    • 민통련은 각계 인사 3천여 명과 함께 '김대중 선생 단일후보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국본은 '공정선거감시 전국본부'를 결성하였다.
  • 11월 21일 : 4.13 호헌조치에 반대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발족되었다.
    • '군정종식·단일화 쟁취 국민협의회(이하 국협)'가 결성되었다.
    • '수도권지역노동자선거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민중정당 결성 및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전국학생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24일 : 민통련 등 재야 7개 단체는 '광주학살 및 12·12 반란원흉 처단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민중대표 백기완 선생 선거운동 전국본부(이하 백본)'가 결성되었다.
    • 김영삼, 김대중, 문익환 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려대 운동장에서 '민주쟁취 학생 공동위원회 창립 및 거국내각 쟁취 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 서철협, 빈민활동가, 천도빈, 기빈협, 도노련 등은 3만여 인파가 모인 가운데 상계동에서 "노태우 철거 없이 빈민 생존보장 없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규모 도시빈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한국노총 자동차노련의 택시부문이 독립하여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의 전신인 '한국자유금융노동조합연합'이 결성되었다.
    • 인천지역선거투쟁연합이 발족되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시 임기 중 중국과 수교하고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서두르겠다고 공약했다.
    •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이 인도양 상공에 추락해 탑승인원 159명 전원이 사망했다.
    •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의 등록의 관한 법률'과 '방송법'으로 분리되었다. 아울러 '범죄 피해자 구조법'도 제정되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광주 유세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였다.
    •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하 전대기련)이 결성되었다.

4.1.12. 12월[편집]

    •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울대병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였다.
    • 재무부는 국내에 해외증권 투자펀드설치 등을 통해 자본시장의 국제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 서울지역제화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중부고속도로 145.3km 구간이 개통되었다.
    • 소련 아르메니아에서 규모 7.0의 아르메니아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소련정부는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 12월 4일 :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다.
  • 12월 5일 : 홍숙자 사회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했다.
    • 미국과 소련이 정상회담을 열어 중거리 핵 전략(INF) 폐기 협정에 조인했다.
    •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인 제1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 MBC 노동조합이 서울 본사에서 먼저 세워졌다. 이후 지방에서도 마산MBC를 필두로 노동조합이 속속 세워졌다.
    • 한국과학기술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0일 : 소련은 아시아-태평양 문제해결 방안의 공동 모색을 위한 전 아시아 국민회의를 제의했다.
    • 김영삼, 계훈제, 백기완 야권 3자가 서울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비상정치협상회의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나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 민통련 등 75개 재야/학생단체는 김대중 후보 지지를 결의하였다.
    • 전대협 소속 학생인 정화려 등이 대선에 대한 KBS의 왜곡/편파보도에 항의하며 KBS별관을 점거하였으나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KBS 별관 점거농성 사건).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집권 시 대사면을 단행하고 국민 재신임의 방법으로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약했다.
    •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이하 병원노협)'가 결성되었다.
    • 백기완은 대학로에서 개최된 '군정 종식과 민주연립정부 쟁취 국민총궐기대회'에서 민주대연립 시도 좌절을 밝히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 전국 55개 대학교수 355명이 김대중 후보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하 마창노련)'이 결성되었다.
    • 코리아헤럴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5일 : 국본 전북본부 등 21개 재야단체와 시민 1만 5천여 명은 전주코아백화점 앞에서 '이규효 망언 전북도민 규탄대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 17년만에 직선제로 전환된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이 선거에서 야당 후보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백기완을 위시한 야권 전체의 단일화 실패[6]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 이날 공정선거감시단 소속 대학생 1천여 명은 서울 구로구청 앞에서 부재자투표함을 실은 트럭을 적발해 내 '부정선거'라 항의하며 구로구청 청사를 봉쇄하고 농성에 돌입하였다.
    • 대한민국 남극과학기지 건설팀이 남극 킹조지 섬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민주화합추진본부'를 설치해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언급했다.
    • 허기수는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한 후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하였다.
    • 통민당과 평민당은 대통령 선거를 무효라고 주장하여 선거 무효화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치안본부는 갑호비상근무령을 무기한 연기하고 선거 불복 집회를 원천 봉쇄했다.
    • 일본에서 캡콤의 패미컴용 소프트이자,록맨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록맨 1이 발매되었다.
    • 전두환 대통령은 다수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담화했다.
    • 경찰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구로구청 농성에 대해 폭력진압을 감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915명의 연행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확정 공고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통민당과 평민당 등 야당에 대해 국민 화합과 정치 안정을 위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하 서고련)'이 결성되었다. 이는 1990년대 초반까지 불타올랐던 '고등학생운동(이하 고운)'의 시발점이었다.
  • 12월 20일 : 필리핀에서 여객선 도냐 파스호와 유조선 벡터호가 충돌하여 4,375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7]
  • 12월 23일 : 광주 충장로 등지에서 학생과 시민 1천여 명이 선거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 12월 24일 : 산악인 허영호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 12월 27일 : 서대협 주최 '부정선거 무효화 및 독재퇴진 결의대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 2천여 명이 명동성당까지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4.2. 가상[편집]

5. 탄생[편집]

5.1. 실존인물[편집]

5.2. 가상인물[편집]

6. 사망[편집]

6.1. 실존인물[편집]

6.1.1. 1월[편집]

6.1.2. 2월[편집]

6.1.3. 3월[편집]

6.1.4. 4월[편집]

    • 이기동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카스가 테루오 : 일본의 만담 콤비 '카스가 산큐-테루오'의 멤버
  • 4월 12일 - 마이크 본 에릭 : 미국의 프로레슬러이자 본 에릭가의 5남.
  • 4월 19일 - 박건석 : 범양상선, 귀뚜라미범양냉방, 범양식품의 창업주
  • 4월 29일 - 이문환 : 호남비료(현 KC) 및 아시아자동차의 창업주

6.1.5. 5월[편집]

6.1.6. 6월[편집]

6.1.7. 7월[편집]

6.1.8. 8월[편집]

6.1.9. 9월[편집]

6.1.10. 10월[편집]

6.1.11. 11월[편집]

6.1.12. 12월[편집]

6.2. 가상인물[편집]

7. 데뷔[편집]

7.1. 배우[편집]

7.2. 가수[편집]

7.3. 예능인[편집]

7.4. 만화계[편집]

  • 강도하 - <뛰어라 빠가사리>
  • 김미림 - <20C 천년공주>
  • 김현자 - <바람이 남긴 흔적>
  • 송현우 - <제대만평[15]>
  • 오복이 - <야인>
  • 와츠키 노부히로 - <티처 폰>
  • 원수연 - <그림자를 등진 오후>

7.5. 스포츠[편집]

[1] 교신장비를 끈 관계로 핀란드의 경비행기 담당자도 그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하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이해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문에 오히려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정신감정 결과 과대망상증이 있었다고 한다.(...) 1991년 간호실습생을 흉기로 찔러 다시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2] 1989년에 현대중공업으로 합병.[3] 이미 태풍이 한반도 남쪽에 접근한 상황에서 기상청"태풍이 지나갔다"고(...) 전설적인 오보를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오보 내용은 대한민국 기상청 항목 참조.[4] 1993년에 현대중공업으로 합병.[5] 투표율 78.2% / 찬성 94.5% vs 반대 5.5%[6] 다만 여기에는 부정선거 의혹 등도 있다.[7] 이 사고는 비 전시상황에서 발생한 전 부문의 해양사고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8] 부제가 <경성(京城), 쇼와 62년>(= 서기 1987년)이며, 작품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1987년 한 해 동안 전개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9] 다만 김옥빈의 프로필상의 생년월일인 1987년 1월 3일은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고 실제 생년월일은 1986년 12월 29일이다.[10] 실제 태어난 날은 9월 3일. 부모님께서 세라가 태어나기전 남자아기인줄 알고 남자이름을 지어놓았다가 여자아기인걸 알고나서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느라 한달간의 텀이 생겼다.[11] 오토보쿠의 배경연도는 2005년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고3들이다.[12] 복지카드에 적혀 있는 주민등록번호의 생년월일이 870506이다.[13] 와스프 수트의 조절기 폭주로 인해 소립자 이하의 레벨까지 신체가 축소되어 실종되었는데, 실종되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기에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14] 칼 존슨의 형제관계.[15] 이름 그대로 제주대 학보인 제대신문에 연재된 만평이다.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