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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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통일운동의 부활, 1988년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3.1.13. 일자 불명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배우6.2. 가수6.3. 예능인6.4. 만화계6.5. 스포츠
7. 은퇴
7.1. 스포츠
8.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MBC 선정 1988년 10대 뉴스

우리나라가 정부수립 40년 이래 최대의 이벤트였던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이룩한 눈부신 경제 발전의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림픽 당시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올림픽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유치원의 수업도 오전 수업만 했다고 한다.

제6공화국 헌법이 효력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정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시기이다. 88년생은 6공과 동갑내기 4월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0월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의 실체와 제5공화국 비리를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관련 정계, 재계, 언론계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훗날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께서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백담사유배(?)를 가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이른바 '북방정책(중국, 소련 등 북방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를 맺는 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학생회담 투쟁과 '7.7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1996년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로 바뀌면서, 1995년에 입학한 1988년생들은 '마지막 국민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처음으로 졸업한 1984년생부터 1988년생까지를 일명 "국초딩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88 올림픽 때문에 "쌍용 세대", "올림픽 세대", "호돌이 세대". "쌍팔년도 세대."라고도 불리며,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면 땡칠 07학번이 되었다.

1988년 출생자들은 중학교 등록금과 수업료를 내고 다닌 것으로 유명한데 1988년 3월~1989년 2월 출생자[1](현재의 07학번에 해당되는 세대이다.)까지는 수업료와 운영지원비를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다. 게다가 올컬러판으로 나왔던 7차 교육과정 교과서의 첫 세대였기 때문에 앞의 선배들보다도 교과서값이 장난아니게 비쌌다. 그걸 다 내고 다녔다. 2008학번부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남의 일이니까 관심도 없을 듯 [2] 중학교 3년동안 운영지원비와 수업료를 모두 본인 부담으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3] 또한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매긴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한편 이 세대는 중학교를 제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 최초의 세대이다. 그리고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처음으로 교과목으로서 배웠다. 또, 이 해를 기점으로 교육, 학사 혹은 경제면에서 2002년생까지 하나씩은 고통받는 세대가 된다.(...)

이 해 이후에 태어난 한국 남자들은 나라사랑카드를 신검 때 발급받게 된다.

88년생의 인생사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COEX에 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가 완공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기도 하다.[4]

대학교나 군대, 회사에서 뭔 일만 있으면 거론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작 88년도에 머리 굵은 적이나 태어난 적도 없을지라도 선배가 마음에 안드는 후배에게 "88년도 식으로 해볼까?" 라고 꺼내는 게 주된 방식. 88년도를 거론하려면 40대는 되야되지 않을까?[5]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군기원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70년대 신문기사

이해에는 별다른 태풍, 가뭄도 없이 유난히 농작물이 풍작을 맞이한 해 이기도 하였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해외여행을 맘대로 갈 수 없던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2. 통일운동의 부활, 1988년[편집]

1987년에 터진 6월 항쟁6.29 선언은 1960년 4월 혁명 이후와 같이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 해방 이후 그 동안 국민들은 통일에 대해 오랫동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왔다. 통일문제는 곧 북한과 직결되는 문제인 데다 그 역시 이념문제로 취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정부의 통일정책의 범위 내에서만 발언이 가능했다. 이승만의 제1공화국 이래 정부의 통일정책은 오로지 반공과 동일한 의미로만 써왔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 시절 짧은 기간 동안 민간 위주의 통일운동이 활성화될 뿐이었다. 그러던 게 1988년에 민선으로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에 들어서 학생과 재야세력 등 다양한 계층과 세력에 의해 통일에 대한 여러 의견이 표출되었고, 통일운동이 다시 활발히 전개되었다.

통일운동의 첫 물꼬를 튼 건 학생들이었다. 1988년을 전후해서는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함께 전개되었으며 그해 3월 29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의 '남북한 대학생 공동체육대회'와 '국토순례대행진' 제안은 통일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제안에 대해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어 학생들은 6월 10일 판문점에서 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국토순례대행진에 들어갔다. 야당은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민통련 등 재야단체들도 환영을 뜻을 표했다. 그러나 학생회담과 6.10 대회는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어 개최하려던 8.15 남북학생회담 역시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통일의 필요성을 가슴에 와닫게 한 사건은 바로 '조성만 투신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대 화학과 3학년이었던 조성만은 5월 15일에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할복 후 투신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막연히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었던 것을 우리가 노력해서 많은 학생들에게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6.10 남북학생회담이 무산된 뒤 7월 20일에 민통련 등 11개의 재야 단체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8월 28일에는 문익환, 계훈제, 박형규 등의 재야인사들을 주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휘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결성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앞서 개최되려던 8.15 남북학생회담과 1989년 3월에 개최 예정인 범민족대회 예비회담까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지만, 학생과 재야 세력은 더욱 활발히 통일운동을 폈다.

1988년에 터졌던 통일 열기는 학생들이나 재야 단체들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종교계와 문화예술인, 노동자와 농민, 해외 동포들까지 통일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자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민간 차원의 자율적인 교류/협력이었다. 이렇게 분단된 지 반세기가 가까워지는 동안 남과 북은 너무 오랫동안 자기 체제의 틀 안에 갇혀 서로를 적대시해왔다. 그렇듯 오랜 세월 동안에 높이 쌓인 장벽을 허무는 일 역시 하루아침에 가능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서로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 걸친 민간교류가 당시 통일운동의 좋은 대안으로 통했다.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 노태우 대통령은 7월 7일에 남북간의 교류를 제안하고 북이 미-일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하 7.7 선언)'을 발표해 종래의 교차승인과 유엔 동시 가입에 따른 두 개의 정책을 재확인했다. 이 선언은 표면적으로는 북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웠지만, 북을 고립시키려는 북방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이후 1989년 9월 11일에는 국회 연설에서 기존의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보완코자 자주, 평화, 민주를 3대 원칙으로 제시하고 남북간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연합'을 통일의 중간 단계로 주장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했다.

3. 사건[편집]

3.1. 실제[편집]

3.1.1. 1월[편집]

    •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북한이 개입할지라도 서울올림픽의 참가는 환영한다고 천명했다.
    • 국민연금제가 시행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의 연내 개최를 제의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와의 대화 용의가 있다고 천명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이 개혁,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다.
  • 1월 5일 - 한미 통상회담에서 미국측은 한국의 담배, 보험, 농산물 시장을 개방키로 했다.
  • 1월 7일 - 전국엽연초생산조합연합회 산하 43개 연합장 및 임직원 1백여 명이 수입개방 반대와 양담배 불매운동을 결의하였다.
  • 1월 8일 - 경찰은 이사진 개편과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넉달간 점거농성 중이던 조선대에 진입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 1월 9일 - 미국과 EC 무역 대표는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무역회의에서 한국 등 아시아 NICS에 통화평가 절상 및 무역흑자 감소를 촉구했다.
  • 1월 10일 - 신촌블루스가 1집 앨범 <그대 없는 거리>로 데뷔했다.
  • 1월 11일 - 계훈제는 민통련 해체를 요구하며 민통련 부의장직을 사퇴하였다.
    • 다케시타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1988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한 협조를 다짐했다.
    • 동아일보는 황적준 박사의 일기를 입수해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실을 특종 보도하였다.
  • 1월 13일 - 대만의 부총통 리덩후이가 총통직을 승계했다.
    • 문교부는 새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확정/발표했다.
    • 현대중공업은 1987년 7~8월 파업과 관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19명을 해고 조치했다.
  • 1월 16일 - 대검 수사부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수사를 종결하였다.
  • 1월 19일 - '민주출판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민출노협)'가 결성되었다.
  • 1월 20일 - 미국 국무성은 KAL기 공중폭발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적 테러 국가로 규정하는 등 3개항의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1월 22일 - 부산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기독교방송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추위와 신지협의 다수파를 주축으로 한 '신당결성 전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대협은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시국 대토론 및 경제침탈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양순직 등 평민당 의원 8명은 야권 통합을 요구하며 탈당했다.
    • 경기 의왕에 철도박물관이 세워졌다.
    • 경찰대학 총동창회와 재학생들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에 대한 성명을 채택하였다.
    • '민중의당 창당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반미청년회가 결성되었다.
  • 1월 31일 - 서울 사당 2동 공터에서 '재개발 반대 및 임대주택 쟁취를 위한 도시빈민대회'가 개최되었다.

3.1.2. 2월[편집]

  • 2월
    • 월간중앙이 복간되었다.
    • '인천지역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다.
    •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이하 민자통)'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전국대학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일 - 평민당의 유제연, 김성수, 김성식 의원이통일민주당으로 옮겨갔다.
    • 문동환 교수 등 97명이 평민당에 입당하였다.
    • 전택노련 중앙위원 60여 명이 설립신고서 반려에 항의하며 노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2월 5일 - '5.18 광주민중혁명 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는 합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 2월 8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야권 단일화를 위해 총재직을 사퇴하고 당원으로써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 2월 9일 - 대법원은 권인숙의 변호인단이 낸 재정신청을 인정하였다.,
  • 2월 10일 - 민주당과 평민당은 '야권 단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2월 11일 - 전교협은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교사와 학부모 4.245명의 연명청원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평민당은 보수가 아닌 정책정당으로, 분당 전 상태로 못 돌아간다"고 하여 야권 통합을 거부하였다.
    • 캐나다에서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 2월 16일 - 정부는 대통령과 재직 1년 미만 장관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전 각료에의 훈장수여 계획을 수정하였다.
    • 서울 종로구 청진동 삼송빌딩 9층 강당에서 '한겨레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렸다.
    • 아시아나항공의 전신인 (주)서울항공이 세워졌다.
  • 2월 18일 - 씨름선수 이만기가 통일장사씨름대회 결승에서 이봉걸을 꺾어 천하장사 타이틀을 되찾았다.
  • 2월 21일 - 현대엔진 노조 간부들은 사측의 노조에 대한 고발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2월 22일 - '충남민주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UPI-CIC 영화 비디오 배급 유한회사가 세워졌다.
    •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김성훈 선수가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 2월 24일 - 한기원 등 청년학생구국결사대 소속 대학생 5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경찰에 의해 1시간만에 연행되었다. 이날 밤에 당시 연세대 신학대 학생인 안내상도 추가 검거되자 안내상은 광주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사실을 진술했다.
  • 2월 25일 - 노태우가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6]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시행일이기도 하다.
    • 한미 재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은 자본 및 금융시장 조속 개방과 원화 평가절상 가속화를 강력히 요청했다.
    • 논산훈련소는 훈련병 면회제도를 29년만에 부활시켰다.
    • 광주 미국문화원 1층 도서관 진열장에서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 정부는 시국사범 1,731명을 포함한 7,234명을 복권했다.
    • 원로 체육인 33명은 체육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라고 성명을 냈다.
    • 현대엔진은 노동자들의 농성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다.
    • 현대사회연구소는 연구소 운영 민주화를 요구한 노조위원장 이희덕 등 연구원 26명을 집단 해고하였다.
    • 맥스테크 파업이 사측과의 협상으로 55일 만에 종식되었다.
    • 일본에서 초수전대 라이브맨의 방영이 개시되었다.
  • 2월 28일 - 헝가리 라이코무용단이 미수교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했다.

3.1.3. 3월[편집]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비 수교국인 동구권 국가와의 적극 외교 추진을 천명했다.
  • 3월 2일 - 이란 공군은 이라크의 도시들을 3일째 무차별 폭격했다.
  • 3월 6일 - '민중의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3월 15일 - 연합통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16일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지중해의 양국 함대의 동결을 제의했다.
    • 경향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일본 최초의 돔경기장도쿄돔이 개장하였다.
    • 국가안전기획부는 '반미청년회 사건'을 발표하여 장원섭, 윤은주 등 관련자 7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시경은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 우상호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동구권 국가 중 처음으로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 한국노총 화학노련의 '고무/타이어' 부문이 독립하여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고무노련)이 출범되었다.
  • 3월 25일 -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비산종합상가 3층에 소재한 봉제공장 '그린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 내 기숙사에서 잠자던 여성 노동자 20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7]. 사건의 원인은 사측이 재료 도난을 염려해서 사원 관리 차원에서 셔터를 내리고 문을 잠근 게 참사의 화근이 되었고, 더구나 당시 쌓아두었던 캐시미어 원단 더미가 더 큰 화재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1980년대 최대의 산업재해 참사로 손꼽힌다.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김중기 후보는 <김일성종합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남북한 국토종단 순례 대행진'과 '민족 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공동 체육대회'를 제안하였다.
    • 한겨레민주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서울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한국 1호점이 개점되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구속되었다.
    • 문공부는 월북작가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들을 공식 해금하였다.

3.1.4. 4월[편집]

    • 노태우 정부는 5.18 광주항쟁의 성격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규정하며 유감을 표했다.
    • 동양고압고무, 빙그레, 두산유리 노동자들이 노동쟁의를 벌였다.
    •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노동자 1만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4월 4일 - 검찰은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 수사에 착수했다.
  • 4월 6일 - '전국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언노협)'가 결성되었다.
    • 서대협은 해소를 결의하고 '학간 연대조직 재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조직건설 과정에서 학생회 간에 이견이 생겨 서건추론과 서대협강화론, 서총협론 등으로 분리되었다.
    • '서울지역총학생연합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성남지역제화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선언의 논란에 대하여>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산호세에서 게임 개발자 회의(GDC)가 처음 열렸다.
  • 4월 12일 - '서울지역대학생연합 건설 추진위원회(이하 서건추)'가 결성되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동생인 전경환의 비리 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 및 민정당 명예총재직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는 의사를 보였다.
    • 서울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반민정당총선투쟁연합(이하 총투련)'이 결성되었다.
    • 미국, 소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4국 외무장관들은 '아프가니스탄 국제평화협정'에 조인하였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민주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 '진주지역민주노동조합연합회(이하 진민노련)'가 결성되었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세워졌다.
  • 4월 18일 - 한국방송인단체총연맹은 총선에 즈음하여 공정방송, 외부간섭 배제, 자율저해 제도 혁파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19일 - 한국중공업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였다.
  • 4월 20일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 7백여 명이 노조 신고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거제군청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4월 22일 - 이날 건국대에서 전국 농민/학생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농축산물 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 4월 24일 - '성남민주노조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6일 -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은 제1당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해 1950년 총선 이후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 4월 27일 - 대우중공업 노동조합은 임금교섭 결렬을 이유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였다.
    • 서총련준비위는 '조국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연합(이하 조통특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서울인쇄노동조합이 신고필증을 쟁취하였다.
  • 4월 29일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30일 - 서울 구로공단 4개 업체 노조가 쟁의발생을 신고함에 따라 각 사업장에까지 파업이 확산되었다.

3.1.5. 5월[편집]

  • 5월 2일 - 서울 종로구청은 청피노조에 신고필증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청피노조는 투쟁 4년만에 합법성을 쟁취하였다.
    • 안기부는 '반제반파쇼한국민중전선(KPF) 사건'을 발표하며 관련자인 송운학 등 3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지역제화공노동조합이 신고필증을 쟁취하였다.
  • 5월 6일 - 현대건설 노조 추진위원장 서정의가 사측에 의해 목포로 청부납치당했다(서정의 납치 사건).
  • 5월 8일 - 폴란드 레닌조선소 노조가 자유노조를 인정하라고 촉구하며 파업 및 시위를 벌였다.
    •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권역 내에 서울랜드가 개장하였다.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4세 미국 국방부 차관은 오자복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측의 방위비 분담 증액, 동북아 지역 미군 항공기의 정비용역 제공을 요구했다.
  • 5월 12일 - 매일경제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대협의 후신 단체인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이하 서총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사회운동가 고정희가 정신병원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사건 13년 뒤인 2001년에 사건 진정을 기각하였다.
  • 5월 17일 - '광주학살·부정비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울지역 민주투쟁연합(이하 서민투련)'가 결성되었다.
  • 5월 18일 - 야 3당 총재들은 정국운영 5개항에 합의하며 5공 비리 및 5.18 진상규명, 반민주 악법 개폐, 양대 선거부정 조사, 지역감정 해소, 국회법 개정 등 6개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 서울 경희궁공원에서 조성만 열사의 민주통일장이 거행되었다.
    • 현대건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KBS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총련 산하 애국청년결사대는 미국문화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5월 21일 - '현대그룹노동조합연합회(이하 현노련)'가 결성되었다.
  • 5월 25일 - 노동부는 전택노련에 신고필증을 부여해 합법 노동조합으로 격상시켰다.
  • 5월 26일 - 가톨릭농민회 등 8개 농민단체 회원 3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농축산물 수입반대 농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 서울시내 85개 노조가 모여 '서울지역노조협의회(이하 서노협)'을 결성했다.
    • 전국의 각계각층 67개 운동단체가 남북 공동 올림픽과 6·10 남북학생회담의 성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현대정공 노조원들이 정몽구 회장 등 간부들을 감금한 채 4백일 째 농성을 벌였다.
    • 한국과학기술원 노조가 인사제도 개선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 5월 31일 - 서총련 산하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조통특위)'가 결성되었다.

3.1.6. 6월[편집]

    • 서울지하철 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이틀 뒤 노조는 파업을 전개했다.
    • 광주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검찰은 <중간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라는 논문을 쓴 서관모 교수를 소환하였다.
    • 서노협·마창노련·사무금융노련 등이 중심이 되어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 6월 4일 -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6월 6일 - 필리핀 상원은 핵무기 반입 및 핵 적재 함정의 기항 금지를 골자로 한 반핵 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8일 - 야 3당 총재들은 '6.10 회담 투쟁'과 관련하여 정부는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은 회담 연기를 촉구하도록 하는 공동 발표문에 합의하였다.
  • 6월 9일 - 이날 오후 10시에 연세대학교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6·10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백만학도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이날 연세대학교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전국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판문점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150여명이 부상당하고 1천여명이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학생회담은 무산되었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연합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대회 및 불가침 협정 후 구체적 군축협상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였다.
    • 전국 2백여 명의 법관들이 대법원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서울민사지법 소장법관 102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통련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준비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사월혁명연구소가 발족되었다.
    • 청문회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 6월 16일 - 10개 학술단체는 검찰의 서관모 교수 소환에 대해 학문, 사상, 비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인노협)'가 결성되었다.
    • 일본에서 대규모 정치비리 사건인 '리크루트 사건'이 터졌다.
  • 6월 24일 - 서울대생 1백여 명이 농촌활동 보조금을 요구하며 총장실에 난입하였다.
  • 6월 25일 - '성남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성남노협)'가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여야가 합의해서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6월 30일 - 이라크 공군기들이 이란 칸간의 가스 플랜드 건설 현장을 공습, 현지에서 작업 중인 대림산업 소속 한국인 근로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3.1.7. 7월[편집]

  • 7월 1일 - 사법연수원생 181명과 민변은 정기승 대법원장 지명 반대성명을 발표하였다.
    • 국회는 노태우 대통령의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다.
    • 소련 공산당은 특별 당 대회에서 모든 간부의 10년 임기제를 채택하였다.
  • 7월 3일 - 페르시아 만에서 USS 빈센스 함 사건이 일어났다.
    • 50개 재야 및 종교단체, 시민, 학생 등이 경찰의 보호/허용 하에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 대행진'을 2시간 동안 개최했다.
    • 작가회의는 7.4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맞이해 남북작가회담을 제안하였다.
  • 7월 7일 -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교류 제안과 미북관계 개선 협조를 담은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하 7.7선언)'을 발표했다.
  • 7월 9일 -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을 '중공' 대신 '중국'으로 공식 호칭키로 결정하였다.
    • 부산일보 노조 조합원들은 편집국장 추천제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재래식 무기 감축의 장벽 제거를 위한 전 유럽 정상회담을 제의했으나 미국은 12일에 이를 거부했다.
    • 한국과학기술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자율성과 운영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구전문기술직노동조합협의회(이하 연전노협)'를 결성하였다.
    •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7월 18일 - 대구매일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문화공보부는 홍명희 등 북한 정권에 협력한 일부 문인을 뺀 월북 작가 1백여 명의 해방 전 작품들을 해금했다.
    • 전국 축협 조합원 3천여 명은 여의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를 벌였다.
  • 7월 20일 -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이하 조통협)'가 결성되었다.
  • 7월 23일 - 일본 교도통신은 박철언 보좌관이 6월에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 소련과 중국을 방문했음을 보도했다.
  • 7월 25일 - 버마(현 미얀마)의 집권당이자 유일 정당인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의 우 네 윈 의장이 집권 26년만에 사퇴하고 군부 강경파인 세인 르 윈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 7월 26일 - 철도 기관사 1,400여 명이 파업 투쟁을 벌였다.

3.1.8. 8월[편집]

    • 문익환 등 각계 인사 1,014명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 취지문’을 발표했다.
    • 서울경제신문이 복간되었다.
  • 8월 2일 - 전대협은 국토순례대행진 및 8.15 남북학생회담을 강행키로 결정했다.
    •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전국대학강사협의회(이하 전강협)'가 결성되었다.
    • 버마의 르윈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여 날로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섰다.
  • 8월 4일 -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이 발생했다.
    • 오홍근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울산지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이하 부산노련)가 결성되었다.
  • 8월 6일 - 고려대학교에서 제1기 통일선봉대 발대식이 개최되었다.
  • 8월 11일 - 전국의 22개 대학가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이 열렸다. 이틀간의 시위 끝에 학생 1,780명이 경찰에 연행되였다.
    • 전대협 통일선봉대와 대전지역대표자협의회 소속 500여 명은 한남대에서 ‘국토순례대행진 저지 규탄대회 및 8·15 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통일학도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버마의 르 윈이 집권 17일만에 하야하면서 SLORC 위원장 소마웅 장군이 집권했다.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한 최고 책임자 회담'을 하루빨리 열자고 제의했으나, 북한은 3일 뒤 이를 반대했다.
    • 전대협은 연세대에서 '8.15 민족해방제 및 출정식'을 열어 1백여 명이 피로 쓴 ‘조국통일 만세’ 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몸을 서로 엮은 채 판문점을 향하고자 교문을 나섰으나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5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 8월 16일 - 전대협은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학생회담이 성사되지 못하자 연세대학교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원천봉쇄 규탄대회 및 통일염원제’를 개최하여 다섯 달간에 걸친 통일운동을 일단락했다.
  • 8월 17일 - 김기종이 이끄는 진보계열 문화모임 '우리마당'이 4명의 괴한에 의해 피습을 당했다. 이른바 '우리마당 피습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다.
  • 8월 20일 - 이란-이라크 양국이 휴전협정을 발효시킴에 따라 8년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 민가협은 1987년 6.29 선언 이후에도 양심수들이 전부 석방되지 못하자 대학로에서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시민가요제>를 열어 양심수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 '전북노동조합연합회(이하 전북노련)'가 결성되었다.

3.1.9. 9월[편집]

    • 북한은 1988 서울올림픽에 불참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나라사랑청년회(이하 나사청)'가 결성되었다.
  • 9월 8일 - 북한의 김일성은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미군 철수와 남북 상호불가침 체결이 들어 있었다.
  • 9월 11일 - 소련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30만 명이 모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9월 12일 - 대한항공 906편이 소련 영공을 처음 통과하였다.
  • 9월 13일 - 종전의 반공해운동협의회,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3개 단체가 통합하여 '공해추방시민운동연합(이하 공추연)'이 결성되었다.
    • 19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4위를 차지하였다.
    •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9월 26일 - 미국 NBC는 점증하는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우려해 올림픽 취재팀의 자사 제복을 입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3.1.10. 10월[편집]

  • 10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에 북한 측은 11일 뒤 국가보안법 폐지를 조건으로 방북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10월 5일 - 칠레의 대통령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국민투표에서 53% 반대표를 받아 패배, 1997년까지의 임기 연장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야당 측의 사임 요구를 거부하였다.
  • 10월 6일 - 노조특위가 전국노운협 노동법개정특위와 통합하여 '전국노동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전국투본)'를 결성하였다.
  • 10월 8일 - 지강헌 탈주사건이 발생했다.
  • 10월 11일 - 미국과 필리핀은 6개 미군 기지의 사용 대가로 1990~1991년에 5억 달러씩 지불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 10월 13일 - 대림그룹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정부는 1991년부터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키로 하고 연내에 금리자유화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생 150명이 광주 미국 문화원을 기습 점거하였다.
    • 1988 서울 장애인 올림픽이 개막했다.
    • 같은 날 21시 40분경.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 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 10월 16일 -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이 종료되었다.
  • 10월 18일 - 노태우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본회의에서 연설하였다.
  • 10월 20일 - 노태우와 레이건 대통령 사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 10월 29일 - 일본에서 세가의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가 발매되었다.

3.1.11. 11월[편집]

  • 11월 1일 - 동력자원부는 2일 0시를 기해 석유값을 4.7%로 내리겠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2일 - 대한민국 국회에서 일해재단 관련 비리 조사를 위해 1차 청문회를 개최함으로써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5공화국 관련 청문회가 첫 발을 내딛었다.
  • 11월 8일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조지 부시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11월 4일 - 이날 열린 외국기업 노조 간담회에서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 결성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11월 10일 - 박세길이 쓴 한국 현대 민중사학계의 베스트셀러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권이 세상에 나왔다.
    •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형인 전기환, 사촌동생인 전우환, 동서 홍순두 등 세 명을 구속하였다.
    • 역사학연구소의 전신인 '구로역사연구소'가 세워졌다.
  • 11월 13일 - 전국투본은 노동자 5만여 명이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가운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폐막 뒤 여의도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 11월 15일 - 팔레스타인독립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 멸망 노선 대신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공존공생의 의지를 밝혔다.
  • 11월 18일 - 국회 광주특위는 김대중과 이희성 등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열었다. 이때 김대중 측은 광주학살 책임자는 전두환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하였다.
  • 11월 20일 - 국회 문공위는 1980년 당시 언론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언론사주 청문회를 열었다.
  • 11월 23일 -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중 온갖 비리에 대해 대국민 사과 및 재산 전액 국가헌납 발표 후 백담사로 낙향하였다.
  • 11월 24일 - 헝가리에서 네메트 미클로시가 첫 비공산주의계 총리로 취임하였으며, 이로서 헝가리의 민주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 11월 25일 - 일본에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날 오! 나의 여신님의 첫연재가 시작되었다
    • 서총련 소속 학생 42명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처벌을 요구하며 민정당 연수원에서 기습 농성을 벌였다.
    • 대한민국에서 원달러 환율이 1달러 : 600원 대에 진입했다. 3저호황의 정점이었다.
    • 종전의 언노협이 발전적 해체되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하 언노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3.1.12. 12월[편집]

    •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이하 극협)와 민족건축인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소련 최고회의는 고르바초프의 정치개혁안을 승인했다.
  • 12월 2일 - 여성신문이 창간되었다.
  • 12월 4일 -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이하 통불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7일 - 소련 산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그동안 사용금지된 에스토니아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전국건설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겨레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1일 -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이하 외노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14일 - 한국과학기술원 등 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연전노협의 주도 하에 처우 개선 및 연구 자율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연대파업을 벌였다.
  • 12월 17일 - 병원노협의 후신인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이 결성되었다.
  • 12월 23일 -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민예총)'이 결성되었다.
    • 노태우 대통령은 불법시위, 각종 치안사범, 노사분규 등에 대해 공권력을 엄중 행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는 다음해 공안정국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이하 경기노련)'이 결성되었다.
  • 12월 31일 - 상공부는 1989년 1월부로 농산물 등 14개 품목 등 22개 수입감시 품목들의 수입을 허용하면서 '수입 감시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3.1.13. 일자 불명[편집]

3.2. 가상[편집]

4. 탄생[편집]

호돌이 세대들
일본인의 경우, 1927년부터 금년도까지 62년간 출생한 사람들은 모두 쇼와 세대 취급을 받는다.[9]

4.1. 실존 인물 [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일자 불명

5. 사망[편집]

5.1. 실존 인물[편집]

5.1.1. 1월[편집]

5.1.2. 2월[편집]

5.1.3. 3월[편집]

  • 3월 9일 - 김장수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3월 10일 - 오범근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3월 18일 - 장기범 : 대한민국의 원로 아나운서
    • 김길호 : 대한민국의 농민운동가
    • 유병진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5.1.4. 4월[편집]

5.1.5. 5월[편집]

  • 5월 1일 - 태완선 : 대한중석(현 대구텍),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제 2, 5대 국회의원, 제11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지냄
  • 5월 5일 - 유진곤 :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8년간 복역.
  • 5월 9일 - 신영일 : 들불야학 창립 멤버
  • 5월 11일 - 김중업 : 대한민국의 건축가
  • 5월 13일 - 고정희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15일 - 조성만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18일 - 김인순 : <여고 졸업반>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가수
  • 5월 23일 - 키토 아야 : 일본의 학생. 1리터의 눈물의 주인공
  • 5월 26일 - 최덕수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30일 - 장용훈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31일 - 안치웅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5.1.6. 6월[편집]

  • 6월 6일 - 박래전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형.
  • 6월 9일 - 문용섭 : 대한민국의 택시기사이자 노동운동가
  • 6월 23일 - 박인순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24일 - 우인수 :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5.1.7. 7월[편집]

    • 문송면 : 대한민국의 산재피해 노동자. 수은중독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오기 마사히로 : 일본의 요리연구가, 영화평론가
  • 7월 6일 - 아즈마 하치로 : 일본의 코미디언
  • 7월 8일 - 성완희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10일 - 배용순 : 윤봉길 의사의 부인
  • 7월 17일 - 송철순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25일 - 주디스 바시 : 미국의 아역 배우

5.1.8. 8월[편집]

5.1.9. 9월[편집]

5.1.10. 10월[편집]

    • 박정만 :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독재정권 하에 혹독한 고문을 당한 시인. 그의 일대기가 사후 1989년 3월 KBS1에서 <서러운 땅>이란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었다.
    • 이은택 : 전 조선호텔 사장
  • 10월 16일 - 지강헌 일당 3인
    • 안광술, 지강헌, 한의철
  • 10월 22일 - 헨리 암스트롱 : 미국의 원로 권투인
  • 10월 31일 - 황승선 : 전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

5.1.11. 11월[편집]

5.1.12. 12월[편집]

  • 12월 1일 - 고제경 : 대한민국의 원로 언론인
  • 12월 2일 - 현석호 : 대한민국의 제 9, 11, 23대 국방부 장관
    • 안준 : 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아내
    • 유홍 : 대한민국의 2, 4, 6대 국회의원
  • 12월 24일 - 안진생 :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
  • 12월 26일 - 조경규 : 광복단의 일원으로써 독립운동 자금 모금책으로 활동함

5.2. 가상 인물[편집]

6. 데뷔[편집]

6.1. 배우[편집]

6.2. 가수[편집]

6.3. 예능인[편집]

  • 김형진
  • 손병재
  • 이옥주
  • 이웅호
  • 정진수

6.4. 만화계[편집]

  • 강병호
  • 김광성 - <자갈치 아지매>
  • 김미상 - <오렌지샘의 겨울이야기>
  • 김상택 - <경향만평>
  • 김석천
  • 김정진 - 만화광장 정치만평
  • 박재동 - <한겨레그림판>
  • 백상아 - <나>
  • 서정희[20] - <베네치아의 연풍>
  • 서타영 - <저승에서 온 사나이>
  • 안수길 - <판소리 소녀경>
  • 장승태 - <무등만평>, <무돌이>
  • 주완수 - <보통고릴라>
  • 황재모 - <어느 개인 날 아침>

6.5. 스포츠[편집]

7. 은퇴[편집]

7.1. 스포츠[편집]

8. 베스트셀러[편집]

[1]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2001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세대[2] 고등학교 등록금 네이버 지식인[3] 이들의 경우 서울의 일반 공립 중학교는 3달에 한번씩 수업료 27만원정도+운영지원비 50000원 내외의 돈을 학교에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는데 이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는게 3달에 32만원X4=1년에 무려 130만원정도를 학교에 갖다바치고, 3년동안 무려 390만원, 400만원에 달하는 대학교 한학기~1년치 등록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중학교에 갖다바친 셈이다. 1988년생 07학번 출생자들이 중학생시절 이것만 생각하면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다. 1989년생 현재 2008학번 세대부터는 의무교육이 적용된 첫 세대이기 때문에 3달에 5만원(1년이면 20만원정도, 중학교 3년이면 60만원 정도)의 운영지원비만 지불하고, 막말로 학교에 돈 갖다바치고 중학교에 다닌 것이다.[4]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면서.[5] 1969년생이 한국 나이 20살이 된게 이 1988년이고, 1969년생들은 2017년 기준 49세이다. 그나마 기억이 날만한 당시 중학교 1학년은 1975년생. 43세이다.[6]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보통 김영삼의 문민 정부로 본다.[7] 사건 당일 사망자는 19명이었으나 이후 1명의 사망자가 추가됨.[8] 같은 해 진짜 대통령이었던 국가안전기획국 국장 로이 콘도 사망했다.[9] 정확히는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이다. 넘치는 기간이 앞뒤로 7일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1926년생은 다이쇼 세대, 1989년생은 헤이세이 세대이다.[10] 동일인물이다(...)[11] 애니판에서는 10월 23일생으로 되어있으나 여기서는 원작을 따른다.[12] 일란성 쌍둥이.[13] 철권4 이후 작중 시점 기준[14] 4월 생이란 건 원작에서 나왔지만 몇 일인지는 나오지 않았다.[15] 연재가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고 16세의 나이를 대입하면 된다.[16] 1997년에 동부건설로 합병[17] 라이히-5의 미국 국가안전기획국장이자 진짜 38대 미국 대통령.[18] 라이히-5의 허수아비 38대 미국 대통령.[19] 주인공 료의 아버지. 작중 기준으로 10년 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20] 서세원 전 부인하고는 동명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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