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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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이슈
2.1. 공안정국, 1989년
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배우6.2. 가수6.3. 예능인6.4. 만화계6.5. 스포츠
6.5.1. 야구6.5.2. 축구6.5.3. 미식축구6.5.4. 농구6.5.5. 씨름
7. 은퇴
7.1. 스포츠
8.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MBC 선정 1989년 10대 뉴스

이 해에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며,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있던 모든 공산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로 꿈과 희망에 가득찼던 당시 중국 대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문익환임수경의 무단 방북으로 인해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역사를 거꾸로 걷게 된다.

대전충청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이 때 충청남도 대덕군을 편입하였으며, 이후 1995년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강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국가 공휴일로 부활하였고 북한에서도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그 동안 양력 설날(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음력 설날로 옮겨졌다. 1999년부터 신정 휴일이 단 하루로 축소됨에 따라, 이 때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신정의 고향길 행렬이 완전히 사라졌다.[1] 그리고 이해를 기점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롯데월드가 어드벤처를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에 개장하였다. 이후 석촌호수의 매직 아일랜드까지 확장하였다. 또한 87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열풍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일이 벌어져서 노태우 정부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계획이 발표되어, 1996년까지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히로히토 덴노의 사망으로 60여 년에 걸친 쇼와 시대가 끝나고 아들 아키히토가 왕위에 오르면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 특성상 쇼와 64년인 1989년 1월 1일~7일에 태어난 학생들은 마지막 쇼와 시대 출생자들이 된다. 또한 만화계와 가요계에서 데즈카 오사무, 미소라 히바리라는 두 거물을 잃은 해였다. 그리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절정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버블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 주요 이슈[편집]

2.1. 공안정국, 1989년[편집]

1988년 여소야대 정국으로 유화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절인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고, 같은 달 27일에 열릴려던 '남북작가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30일에 당시 108일째 계속되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에 정부가 공권력을 전격 투입하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4월 3일에는 안기부와 검찰, 경찰, 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조성되면서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들어갔다. 또 전민련과 전대협의 지도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했으며 이로 인해 시인 고은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재오가 구속되었다.

공안정국이나 색깔논쟁이 벌어진다면 김대중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김영삼에게도 시련이 닥쳐오는데, 4월 14일에 강원 동해시 보궐선거 후보자 매수와 관련하여 서석재 의원이 구속되면서 야3당 공조체제가 와해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6월 27일에 서경원 평민당 의원의 밀입북 사건이 밝혀지면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더 큰 피해자가 되었다. 7월 27일에 안기부에서 구인장을 발부하자 김대중은 전 평민당 부총재 문동환 목사와 함께 검찰에 출도해 조사받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들이 속속 터지자 민정당은 모처럼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안 약빨도 떨어지고 5공 청산 요구가 되살아나자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3당 합당으로 공안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3. 사건[편집]

3.1. 실제[편집]

3.1.1. 1월[편집]

    • 관광 목적의 출국 허용 연령 기준이 철폐되면서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전면 시행되었다.
    • 세계적으로 프레온가스 규제를 위해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함과 동시에 남한의 김수환, 문익환, 백기완 등의 재야 저명인사들을 지명하여 평양으로 초청하고자 한다는 식으로 남북간의 민간교류를 제안했다.
  • 1월 2일 - 노태우 정부는 파업 중이던 풍산금속 안강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 제30사단 공병대대 소속 위관 장교인 이동규 대위와 김종규 중위가 "군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지 말라"는 내용의 '명예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윤석양 이병보다 1년 앞선 군 최초의 양심선언으로 평가된다.
    • 문교부는 3월부터 고졸 이상의 젊은이들에게도 '해외유학 자유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 1월 6일 - 문교부는 고졸 젊은이들의 해외유학을 허용하도록 시달했다.
  • 1월 7일 - 히로히토 덴노가 사망하여 아들 아키히토가 황위를 승계하였다.[2]
    • 현대중전기 노조원 및 현해협 사무실 피습 사건이 일어났다.
    • 아키히토의 즉위로 헤이세이 원년이 시작되었다.
  • 1월 9일 -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소속 정웅 의원 등은 5.18 당시 공수부대 주둔지였던 주남마을 현장 발굴 과정에서 변사체 1구를 발견했다.
  • 1월 10일 - 아시아나항공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정기 항공사로서 취항하였다.
    • '남북한교류특례법'이 제정되었다.
    • 1980년 당시 해직된 언론인 770명의 숙정사유가 보안사 자료를 통해 공개되었다.
  • 1월 13일 - 소련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소 민간경협위원회' 발족을 제의하였다.
  • 1월 16일 - 미국 정부는 그해 9월부터 한국-일본-필리핀 등이 참가할 '육해공 통합 대규모 태평양군사훈련(PACEX)'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 1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간평가 여야 의견으로 결정, 연내 지자체 실시, 남북정상회담 실현 등을 발표하였다.
  • 1월 19일 - 민청련의 후신으로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이하 전청대협)'이 출범하였다.
  • 1월 20일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로널드 레이건의 후임으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민통련의 후신으로 전국민주민족운동연합(이하 전민련)이 새로 출범되었다.
    • 전민련 산하 조국통일위원회는 북한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3월 1일 정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 블라디미르 골라노프 소련 연방상공회의소 부의장이 방한 중에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찾아왔다.
  • 1월 26일 - 북한 외교부는 핵무기 및 화학무기 철폐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27일 -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5공 비리와 관련되어 구속되었다.
  • 1월 28일 -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월 30일 -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용의가 있음을 발표하였다.

3.1.2. 2월[편집]

  • 2월 중 - '서울노동자문화예술활동위원회(이하 서노문위)'가 결성되었다.
    • 통일교 계열 일간지인 세계일보가 창간되었다.
    • 일본 사회당이 한국을 공식 인정하였다.
    • 대한민국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이 최초로 공산권 국가와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순간이었다.
    • 문교부는 대학생의 과외 교습을 첫 발표하여 과외 규제가 처음으로 완화되었다.
    • 전교협은 교원노조 결성 계획을 발표하였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측과 합의한 금강산 공동개발, 시베리아 개발 공동참가, 합자투자회사 설립 추진 등 3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
  • 2월 3일 - 국내 최초로 5.18 민주화운동을 명확히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가 MBC에서 방송되었다.
  • 2월 6일 -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해부터 다시 국가공휴일 및 연휴로 지정되어 부활하였다. 그 동안 양력설(신정)에 주로 귀성 및 귀경길 행렬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는 고향길 행렬이 한산하였다.
    • 남북총리회담 예비회담이 건국 최초로 열렸다.
    •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
  • 2월 9일 - 국무회의가 '화염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하자 야권이 일제히 반발하였다.
  • 2월 11일 - 서울지검은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이하 인부노회) 사건’을 발표하여 6일 뒤에 관련자 5명을 구속하였다.
  • 2월 13일 - '수세 폐지 및 고추 전량수매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90개군 2만여 명의 농민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2월 14일 - 토지공개념위원회는 '고소득자 5%가 임야 84.1% 소유' 등지의 각종 토지소유 실태를 발표하였다.
  • 2월 15일 - 소련군의 마지막 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한후 9년동안 지속되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패배로 끝이 났다.
    • 전민련이 주최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다.
    •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소련 사할린에서 타향살이하던 우리 동포 9가족 17명이 40여년 만에 일시 귀국했다.
  • 2월 19일 - 프로권투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이 일본의 고바야시 치아키를 KO로 꺾어 2차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 2월 20일 - '범민족평화문화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 민중교육운동 탄압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사건이 발생하였다.
  • 2월 23일 - 이날 발간된 주간조선에서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 - 김대중 총재 유럽 순방 뒷 얘기'라는 제목으로 김대중을 모함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조평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 전민련과 농민단체들은 이날 전국 32개 시/군에서 노태우 취임 1주년을 맞이해 노태우 정권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104명이 연행되었다.
    • 일본에서 고속전대 터보렌쟈가 첫 전파를 탔다.
    • 한국에 온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을 열어 노태우 대통령과 안보협력, 통상마찰, 북방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전민련 회원 등 30여 명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를 외치며 미 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가두 시위를 벌였다.

3.1.3. 3월[편집]

    • 이날 열린 '남북총리 회담을 위한 제2차 예비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 전민련 주최 하에 판문점에서 개최하려던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미군의 제지로 자유의 다리에서 길이 막혀 무산되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신인 '전국농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3일 - 평화민주당은 주간조선의 김대중 왜곡 기사에 대해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주간조선 기사가 '허위/왜곡'이라고 주장하며 공개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또 이상수 대변인을 통해 "그동안 우리 당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온 조선일보를 끝까지 규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12.12 사태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병주가 송추유원지 뒷산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야당 3당이 총재회담을 열어 중간평가 조기실시 강행 시 불신임 연계투쟁을 할 것을 합의하였다.
    • 재야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에 '남북작가예비회담'을 제의했다.
    • 프로권투 선수 김용강이 일본의 레오파드 타마쿠마를 상대로 WBC 플라이급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했다.
    •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광노협)'가 결성되었다.
    • 국회 법률 개폐특별위원회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한과 벌칙의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안을 의결시켰다.
    •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의 8개 마을 주민 7백여 명은 매향리 공군 사격장에서 사격장 이전 등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범도 장군의 초상화가 당시 소련령인 카자흐 공화국(현 카자흐스탄)에서 발굴되었다.
    • 국회는 국민투표법 개정안 및 사회안전법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 전대협은 '노태우 퇴진투쟁 기간'을 선포하였다.
    • 경찰은 현대그룹 사옥 앞 노동자들의 텐트 농성을 강제 해산하여 노동자 262명을 연행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가 KBS1에서 방송되었다.
    • 갑을그룹이 영남일보를 인수하였다.
    • 이날 열린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 대표팀 단가로 아리랑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 국회 본회의는 사회보호법, 집시법, 지자체법, 노동조합법 등 4개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돌연 폐회하였다.
  • 3월 10일 -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신임 불연계 중간평가 국민투표안'을 시사하였다.
  • 3월 11일 - 평민당과 신민주공화당은 총재 회담을 열어 '단순 정책평가' 양해에 동의했으나 통민당은 반대하였다.
    • 남북대학생 교류추진위원회는 대학생들의 평축 참가 문제로 '남북 대학생 교류회담'을 제의하였다.
    • 평화민주당은 김대중을 모함하는 기사를 쓴 조선일보에 87억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팀 스피릿 '89 훈련이 개시되었다.
    • 전민련 등 8개 단체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 3월 15일 - 김용갑 총무처 장관은 좌경세력과의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돌연 사퇴했다.
  • 3월 16일 - 이날 서울지하철노조가 전면 파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기지에서 3천여 명의 노조원이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1,344명이 연행되었다.
  • 3월 19일 - 민가협 양심수후원회가 발족되었다.
    •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사실상 취소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 소설가 황석영이 북한을 밀입북했다.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공안장관회의에서 공공시설을 습격할 시 총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 방침은 야권의 비난을 샀다.
    • 직경 1Km 소행성이 지구가 6시간전에 통과한 곳을 지나갔다. 이 소행성이 날아올때 어떠한 방법이 없어서 NASA는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고.
  • 3월 24일 - 노태우 대통령은 지자체법, 의보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 3월 25일 - 문익환 목사가 북한을 밀입북하여 "통일을 논의하러 왔다"는 도착성명을 발표하였다.
    • 문익환 목사가 정경모, 황석영, 유원호와 함께 김일성과 회담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공안정국이 도래하였다.
    • 남북한 작가들이 판문점에서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을 개최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 및 문인 연행으로 무산되었다.
    • 이날 열린 제2차 남북체육회담에선 단일팀 선수단 선발과 선수단기 제작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 108일째 진행되었던 현대중공업 파업이 경찰병력 8천여 명의 투입으로 인해 강제 해산되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회견에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비판하였다.
  • 3월 31일 - 노동문학 비평지 <월간 노동해방문학>이 창간되었다.

3.1.4. 4월[편집]

  • 4월 중 - 헝가리 측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조망을 철거했다.
    •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1,000 포인트를 돌파했다.
    •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인두세의 도입을 시사하여 주민들의 반발을 받기 시작했다.
  • 4월 2일 - 문익환 목사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과 함께 '자주적 평화통일' 9개항에 공동 서명하였다.
  • 4월 3일 - 문 목사의 방북사건을 계기로 검찰/경찰/안기부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결성되었다.
    • 허형구 법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보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대신, 현행 법률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 경찰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농성 중이던 오좌불 숙소에 경찰 2천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 4월 8일 - 정부는 1989~1991년까지 농축산물 수입자유화 예시계획 및 보완대책을 발표하였다.
  • 4월 11일 - 금성사 창원 1, 2공장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 4월 12일 - 북한은 이날로 예정된 제3차 남북총리회담 예비회담의 연기를 통보하였다.
  • 4월 13일 - 문익환 목사가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우익단체인 호국청년연합회 소속 자유민주수호결사대가 전민련 사무실에 난입해 30여분간 무단 점거했다.
    • 한겨레 논설고문 리영희 교수와 임재경 부사장이 방북 취재를 계획하다 공안합수부에 의해 '잠입 탈출죄'로 연행되었다. 이후 리 교수는 구속되었다.
    • 북한 평양 릉라도에 '릉라도5월1일경기장'이 완공되었다.
  • 4월 20일 - 서노협 소속 49개 노조는 단병호 의장의 석방을 외치며 시한부 동맹파업을 벌였다.
  • 4월 21일 -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가 출시, 2000년도 중까지 세계적으로 약 1억 1,800만대가 팔렸다.
  • 4월 22일 - 1달러 당 665.90원의 원화 시세를 기록했다. 이 달에만 6원이 하락하였다.
  • 4월 23일 -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하 전일노련)이 결성되었다.
    • 주일미군사령부는 일본에 있던 미 공군 일부 병력과 정찰기를 대구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였다.
    • 자오쯔양 중국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4월 26일 - TV 애니메이션드래곤볼 Z》가 전파를 처음으로 탔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96년 1월까지 계속 방송되었다.
  • 4월 28일 - 마산 및 창원지역 노동자 1만여 명이 5일째 구속자 석방과 고문 경찰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었다.
  • 4월 30일 - 다음날 개최 예정인 여의도 국제노동절 대회가 무산되자 노동자들은 전국 12개 지역 8백여 개 사업장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3.1.5. 5월[편집]

  • 5월 1일 - 대럴 윈필드가 말보로 맨에서 은퇴했다.
  • 5월 2일 - 국방부는 용산의 주한 미8군 골프장을 다음해까지 서울 교외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부산에서 5.3 동의대 사태가 일어났다.
    • 전국대학원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원협)가 결성되었다.
  • 5월 10일 - 광주 청옥동 수원지에서 이철규 의문사 사건이 일어났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발기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 경동산업 임금인상대책위원 출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 '디딤돌'이 결성되었다.
    • 중국과 소련이 정상회담을 열었다. 양국은 이틀 뒤에 군사, 경제, 사회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18개항에 서명하였다.
    • 전국기관차협의회의 전신인 '전국기관차분회장협의회(이하 전기협)'이 세워졌다.
    • 여야 중진회의가 처음으로 가동되었다.
    • '서울지역민주주의학생연맹(이하 서민학련)'이 결성되었다.
  • 5월 17일 - 이날 열린 제3차 한미 통상실무회담에서 양국은 외국인 투자제한 철폐 및 서비스시장 개방에 합의하였다.
  • 5월 18일 - 5.18 18주기를 맞이하여 15만 명의 광주 시민들은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및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집회/시위를 벌였다.
  • 5월 19일 - 북한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급히 귀국한 자오쯔양 총서기가 단식농성 중이던 학생들에게 단식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자오쯔양이 사실상 이들을 지지하자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 5월 20일 - 중국 정부가 베이징계엄령을 선포했다.
  • 5월 24일 - 일본 정부는 대북한 학술 교류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6일 - 전대협 소속 학생대표 470명이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8일 - 전교협의 후신격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새로 출범했다. 이는 1961년 교원노조 운동 이후 28년만의 교원노조 부활이었으나, 문교부가 전교조를 불법으로 규정하자 소속 교사들은 10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 5월 30일 - 경제기획원과 한국은행은 5월 중 물가동향에서 물가가 전년도에 비해 6%나 올라갔다고 발표하였다.

3.1.6. 6월[편집]

  • 6월 1일 - 내외경제가 복간되었다.
  • 6월 2일 - 김영삼 통민당 총재가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 6월 3일 -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6월 5일 - 문규현 신부가 다음날 평양 장충성당에서 열릴 '남북 공동 통일염원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방북했다.
  • 6월 8일 -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일보 창간 기념 특별 회견에서 임기 중 중간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6월 9일 - 서울대 등 서울시내 25개 대학 학생들은 '청년학생 6.10 1주년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연세대학교에서 전대협 주최로 '명동성당 구국단식투쟁 계승 및 6.10 회담 성사 결의대회 및 평양축전 참가 대표단 1차 발족식 및 북한 대표단 방문 환영대회'를 열었다.
  • 6월 12일 - 소련 고르바초프 총서기가 서독을 방문하였다.
  • 6월 14일 - 전교조 서울지부가 결성되면서 전국 14개 지부 결성을 완수하였다.
    • 종전의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면서 보안감호제도가 폐지되었다.
    •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개혁파 지도자 너지 임레의 정식 장례식이 31년만에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다. 그동안 공산 정권 하에서 반동 폭동으로만 치부되던 헝가리 혁명이 민주화 운동으로 사실상 공식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 6월 19일 - 경제기획원 등 7개 경제부처 장관들이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하반기 경제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 6월 24일 - 중국 새 총서기에 장쩌민 정치국원이 선임되었다.
  • 6월 27일 - EC는 대륙 내 금융 통합에 합의하였다.
  • 6월 28일 - 국가안전기획부는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방북 사실을 그가 방북한 지 1년 만에 '간첩활동'으로 발표했다.
    • 토지공개념을 명시한 '주택소유 상한제 및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법률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이 법안은 7일 뒤에 공시되었다.
    • 대전 한국가톨릭농민회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한국외대 학생 임수경이 평양축전을 앞두고 밀입북했다. 이후의 내용은 임수경 방북 사건 참조.
    • 이날 한양대학교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열린 평양축전 출정식에 7천 5백여명의 전투경찰이 투입되어 2천여명을 연행했다. 이날 홍성담 등 민미련 소속 화가들이 제작한 총 7폭짜리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백골단에 의해 찢기고 불태워지기도 했다.

3.1.7. 7월[편집]

    • 북한이 1년 전에 열린 서울올림픽에 대항하기 위해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막했다. 그러나 개최 과정에서 생긴 지나친 비용 증대로 인해 80년대 북한 3대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힌다.
    • 평양축전 출정식에 참가했다가 전의경에 밀려 한양대 인문관에서 하룻동안 농성을 하던 전대협 소속 학생 600여명 중 200여명이 연행되었다.
    • 문교부는 전교조에 단순 가담한 교사도 일괄 해임시키도록 전국 시/도 교육위원회에 지시하였다.
  • 7월 4일 -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참패하였다.
  • 7월 7일 - 북한 평양에서 임수경은 북측 학생대표 김창룡과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윌리엄 베이커 미국 국무부 장관은 환태평양 경제협력을 위한 새 기구를 제안하였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결성되었다.
    • 전교조 합법성 쟁취대회가 열렸다.
    • 부시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하였다.
    • 검찰은 서경원 방북 사건을 보도하고도 이를 정부에 알리지 않은 한겨레 기자 윤재걸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적용해 안기부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한겨레 측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다.
    • 부시 대통령이 헝가리를 방문하였다.
    • 서울 잠실에 국내 최초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하였다.
    • 안기부는 수사요원 및 경찰 8백여명을 동원해 한겨레 편집국을 압수수색했다.
  • 7월 13일 - 전교조는 소속 교사들의 단식수업이 194개 학교로 확산되었다고 발표했다.
    • 정부는 국가보안법 및 안기부법의 개정 방침을 철회하였다.
    • 제21차 한미 연례협의회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증액 등에 동의하였다.
  • 7월 20일 - 전국노점상연합회는 동국대에서 '1백만 노점상 생존권 완전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전국투본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탄압 규탄 및 구속자 석방 촉구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 7월 23일 - 종전의 서노문위가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이하 서노문협)'로 새로 창설되었다.
    • 경북 영덕군울릉도를 오가는 울릉도 관광 헬리콥터가 추락해 탑승인원 20명 중 14명이 사망했다.
    • 국내 최초의 고등학생 운동권 단체인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광고협)'가 결성되었다. 광고협은 결성 즉시 전교조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낸 홍성담 화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국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다.

3.1.8. 8월[편집]

  • 8월 3일 - MBC는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6월에 두 차례 방북했다고 보도하였다.
  • 8월 4일 - '부산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부고협)'가 결성되었다.
  • 8월 5일 - 검찰은 전교조에 공안 차원의 수사방침을 천명하며 국가보안법 적용도 고려했다.
    •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왔으나 안기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 전남 여천군 거문도 바닷가에서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이내창 의문사 사건).
    • 월간 <다리> 지가 복간되었다.
  • 8월 17일 - 특허청은 당해 첨단기술 공업 소유권 등록에서 외국인이 78%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 8월 21일 -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소련침공 20주년 기념식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8월 23일 - 소련 산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민주화와 독립을 요구하며 각 국의 수도인 탈린(에스토니아)-리가(라트비아)-빌뉴스(리투아니아)를 잇는 600km의 인간사슬, 즉 '발트의 길'을 형성했다.
  • 8월 24일 - 폴란드 친소련 공산정부가 42년만에 무너지고 자유노조 정부가 수립되어 수백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의 사슬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쟁취했다.
  • 8월 25일 - 보이저 2호가 해왕성과 그 위성 타이탄을 통과했다.
  • 8월 27일 - 일본 자위대가 태평양 군사훈련에 참가하였다.
    • 정부와 민정당은 토지공개념 법안에 대해 재검토했다.
    • '참교육 전국 학부모회'가 결성되었다.
  • 8월 29일 - 전대협은 각 대학별로 '임수경 사법처리 반대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열었다.

3.1.9. 9월[편집]

    • 서울 뚝섬 경마장과천으로 이전했다.
    • 상공부는 8월 중 무역수지에서 4억 3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잠정 집계하였다.
    • 가이후 토시키 일본 총리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 전교조 울산/울주지부 피습 및 장인권 교사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 9월 2일 - 마창노련 사무실 피습 사건이 일어났다.
    • 파업 중인 경동산업 노동자들이 노조 탄압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 분신 및 할복을 벌였다. 이로 인해 노동자 강현중과 강이신 이사가 9일에, 노동자 김종하가 15일에 숨을 거두었다.
    •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에리히 호네커와 동독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의 단초를 마련한 소위 월요시위(Montagsdemonstrationen)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9월 8일 - MBC 노조는 전날 보도 및 편집국장 선거제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9월 10일 - 소련의 외교거물 미하일 카피차와 게오르기 아르바토프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서부 국경을 전면 개방하여, 동독 주민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 9월 16일 - 도널드 그레그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였다.
  • 9월 18일 - 헝가리에 유학했던 북한 대학생들이 모두 철수하였다.
    • 이상훈 국방부 장관은 수도권 북방에 2개의 동원 사단을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 댄 퀘일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21일 - 정부는 1990년 예산안을 발표하였다(전년도 대비 19.7% 증가).
  • 9월 23일 -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환율안정에 대한 주요국의 협조의지를 과시하였다.
  • 9월 24일 - '전교조 사수 및 합법성 쟁취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가 전국 21개 지역에서 동시 개최되었다.
  • 9월 25일 -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한강 유등제에 북한 불교도도 참석시키도록 의결하였다.
  • 9월 27일 - 이날 한국자동차협회가 낸 <89년 자동차생산분석>에서 당해 자동차 수출이 전년도 대비 39%로 줄었으나, 내수는 유례 없는 호조로 50% 이상 신장했다고 밝혔다.
  • 9월 29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15명이 방북을 신청하였다.
  • 9월 30일 - '마산/창원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마창고련)'이 결성되었다.

3.1.10. 10월[편집]

  • 10월 4일 -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닷새간 개최되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동독이 건국 40주년을 맞이했다. 에리히 호네커는 건국 40주년 기념식장에서 의기양양하게 동구권 시위들 속에서도 동독의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 10월 9일 - 9월부터 동독라이프치히에서 벌어졌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이날을 기점으로 동독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 10월 11일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6인 핵심인사 처리 및 전두환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으로 5공 청산을 종결시킬 것을 표명하였다.
  • 10월 12일 - 드라마 수사반장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10월 13일 - 노태우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수 없고 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분담금 증액에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 10월 14일 -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이하 전문노련)이 결성되었다.
    • 국방부는 군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이틀 뒤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겠다고 확인했으며 방위비 분담 증액과 농산물 5년 내 85% 수입개방 계획도 언급하였다.
    • 치안본부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 사건'을 발표하였다.
    • 필리핀 하원은 1991년 이후의 미군기지 전속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의결하였다.
  • 10월 17일 - 경찰은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연세대생 6명을 구속하였다.
  • 10월 18일 - 당내 그룹과 소련의 부정적 의중 등에 의해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고 50대의 에곤 크랜츠가 서기장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집권은 오래가지 않았으니..
    • 야 3당은 총재회의를 열어 연내에 5공 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 헝가리 의회는 다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0월 21일 - 지역/업종별 노조 대표자 회의는 1990년 1월부터 전노협을 결성키로 선언하였다.
  • 10월 22일 - 소련 IMEMO 대표단이 통민당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 게스틴 시거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소련 외무장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나토와 바르샤바군 양대 협상과 2000년까지 소련의 외국기지를 철수할 것에 대한 용의를 밝히며 동유럽 국가에 내정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 헝가리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다. 이 날은 헝가리 혁명 33주년이기도 했다.
  • 10월 29일 - 1989년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승3패로 킨테츠 버팔로즈를 이겼다.[4]
  • 10월 30일 - 각계 인사 977명이 전두환 처벌 및 정호용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 폴란드의 얀 마예프스키 외무차관 등 정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대한민국 선적 화학제품 운반선 인천 파이오니어 호와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 가이드 호 충돌사고로 인천 파이오니어 호가 침몰하고 9명이 실종되었다.

3.1.11. 11월[편집]

  • 11월 2일 - 정부는 쌀 수매값을 11~13%로 인상하는 정부안을 확정하였다. 이에 야당 측은 20% 이상을 관철해낼 것을 다짐하였다.
    • 학생의 날 60주년을 맞이하여 1백여개 대학생 3만여 명이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우리나라 최대의 식품 유해물 첨가 사건 중 하나로 알려졌던 우지 파동이 발생하였다.
  • 11월 5일 -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11월 8일 - 동독 정부는 당 정치국을 전면 개편하여 한스 모드로프를 총리에 임명하였다.
    • 밤중에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 덩샤오핑이 장쩌민 총서기에게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주었다.
    •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독자적 민중후보 출마를 주장했던 재야 민주인사들에 의해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동독의 국경이 완전 개방되었다.
    • 불가리아 공산당의 서기장 토도르 지프코프가 퇴진하고 공산당이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 11월 11일 - 서철협과 전국노점상연합회의 주도 하에 전국빈민연합(이하 전빈련)이 결성되었다.
  • 11월 12일 -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는 서울대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대회 도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출범 선언문>이 공개적으로 유포되었다.
    • 정부는 대출금리를 1% 포인트로 내렸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냉전시대를 탈피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선언하였다.
    • 서울에서 올림픽대교가 개통되었다.
    • 1990년대를 풍미한 Tseng Labs ET4000 그래픽 칩셋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 11월 16일 -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였다.
  • 11월 20일 -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되었다.
  • 11월 22일 - 레바논의 대통령 르네 무아와드가 취임 17일만에 폭사당했다.
  • 11월 24일 - 기업공개 사전 예고제가 도입되었다.
  • 11월 25일 - 이날 강릉행 대한항공 KE175편 포커 F38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당시 외국인 승객 서너명이 창문을 깬 덕에 탑승객이 전부 탈출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 11월 26일 - 전민련은 ‘민운탄 분쇄 및 광주학살, 5공 비리주범 처벌을 위한 1989 민중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약식 개최되었다.
  • 11월 27일 - 제2차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연내 교환이 회담 결렬로 무산되었다.
    • 원로 한글학자 이희승 선생이 향년 93세로 별세하셨다.
    • 베를린 장벽 붕괴에도 요지부동이던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마침내 시위대에 굴복, 다당제 도입을 포함한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선언한다.
  • 11월 29일 - 한국과 소련 양국이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 민주일보사(현 학원사)에서 민주일보를 창간했다.
    • 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 간 국경이 개방되었다.

3.1.12. 12월[편집]

3.2. 가상[편집]

4. 탄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사망[편집]

5.1. 실존 인물[편집]

5.1.1. 1월[편집]

5.1.2. 2월[편집]

5.1.3. 3월[편집]

5.1.4. 4월[편집]

5.1.5. 5월[편집]

  • 5월 3일 - 5.3 동의대 사태 당시 순직한 경찰 6인
    • 최동문 경위(추서계급) : 당시 부산직할시 경찰국 형사기동대 소속.
    • 박명환 경사(추서계급) : 이하 동일.
    • 정영환 경사(추서계급) : 이하 동일.
    • 조덕래 경사(추서계급) : 이하 동일
    • 김명화 수경 : 당시 동 경찰국 기동대 소속.
    • 모성태 수경 : 이하 동일.
  • 5월 4일 - 김종수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6일 - 이철규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5월 11일 - 후루야 츠나마사 : 일본의 뉴스 앵커. TBS의 뉴스 프로그램 <JNN 뉴스스코프>를 1967년부터 1981년까지 진행했다.
  • 5월 16일 - 이상남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19일 - 존 무초 : 초대 주한 미국대사
  • 5월 21일 - 하라 이즈미 : 일본의 원로 여배우
  • 5월 24일 - 조정식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29일 - 이상모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5.1.6. 6월[편집]

5.1.7. 7월[편집]

5.1.8. 8월[편집]

5.1.9. 9월[편집]

5.1.10. 10월[편집]

5.1.11. 11월[편집]

5.1.12. 12월[편집]

5.2. 가상 인물[편집]

6. 데뷔[편집]

6.1. 배우[편집]

6.2. 가수[편집]

6.3. 예능인[편집]

  • 김종하
  • 서승만

6.4. 만화계[편집]

  • 강동헌 - <여자> 시리즈
  • 강일구 - <해> 시리즈
  • 권선이 - <내리사랑>
  • 길문섭 - <토박이>
  • 김기혜 - <열아홉의 가을>
  • 김종민 - <깨비왕>
  • 김준범 - <기계전사 109>
  • 문계주 - <겨울풍경>
  • 오바타 타케시 - <사이보그 짱 G>
  • 요시자키 미네 - <메론☆사가>
  • 우양숙 - <고교 장희빈>
  • 유시진 - <지난 봄 이야기>
  • 이강주 - <재수 없는 친구>
  • 이동규 - <뛰는 놈 나는 분>
  • 이해광 - <웃음별곡>
  • 정재훈 - <홍대만평>
  • 키리야마 코지 - <地球の上のいろんなあなた>
  • 허정인 - <시간의 바다>

6.5. 스포츠[편집]

6.5.1. 야구[편집]

6.5.2. 축구[편집]

6.5.3. 미식축구[편집]

6.5.4. 농구[편집]

6.5.5. 씨름[편집]

7. 은퇴[편집]

7.1. 스포츠[편집]

  • 강두태
  • 윤동균: 한국프로야구 1호 은퇴식 거행 선수.
  • 이운임

8. 베스트셀러[편집]

  • 고삐 - 윤정모 저.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 저.
  •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라 - 필립 체스터필드 저.
  • 백치애인 - 신달자 저.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저.
  • 시간의 모래밭 - 시드니 셀던 저.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임정진 저.
[1] 다만 이 날이 매년 새해 첫 날이기 때문에, 동해안 등으로 해맞이를 보러가는 행렬은 이어진다. 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되면 해맞이를 보러 가는 인파까지 섞였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때부터 해맞이 행렬과 고향길 행렬이 사실상 분리되었다.[2] 일본 TV방송에서는 다른 방송을 내보내지 않고 꼬박 이틀동안 덴노 사망관련 소식만 내내 전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3] 가장 유명한 예시로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4] 여담으로 10월 24일 벌어진 3차전은 도쿄돔에서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이 시구했다.[5] 절대 내야수프로 게이머가 아니다.[6] 또한 Zedd도 89년 9월생이다! 특이하게도 두명다 한곡으로 히트를 낸 점에서 공통점이있다. Avicii는 Levels Zedd는 Clarity가 있다. 심지어는 최근에 나온 앨범들도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7] 호적상 생일은 11월 1일이다. 뭐야 이거[8] 단, 이쪽은 애초 타키자와 아키라라는 사람의 정보 자체가 위조 여권을 통해 만든 정보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9] 원작에서는 1986년.[10] 단 애니메이션판 한정. 원작의 사쿠라는 1987년생이다.[11] 일단 3월 생일이라는 힌트 정도는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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