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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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총련 출범, 학생운동의 새 역사를 쓰다3. 복고 열풍이 유행했던 해4. 사건
4.1. 실제4.2. 가상
5. 탄생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사망
6.1. 실존인물
6.1.1. 1월6.1.2. 2월6.1.3. 3월6.1.4. 4월6.1.5. 5월6.1.6. 6월6.1.7. 7월6.1.8. 8월6.1.9. 9월6.1.10. 10월6.1.11. 11월6.1.12. 12월
6.2. 가상인물
7. 데뷔
7.1. 가수7.2. 배우7.3. 예능인7.4. 만화계7.5. 스포츠
8. 은퇴
8.1. 스포츠
9.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MBC 홈페이지에 나온 1993년 10대 뉴스
동아일보 선정 1993년 10대 뉴스

이 해는 이전까지 시행되던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기 시작한 첫 해이다. 한편 학생 운동권에서는 그동안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전대협이 해체되고 한총련이 출범하여 학생운동의 새 역사를 연 해이다.

나름대로 흥했던 대전 엑스포가 개최된 해다. 그리고 이해 출생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교 처음 들어간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즐기게(?) 되었다.

또한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 군인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진 32년 군사정권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1]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표방했고,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국군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는 등 개혁에 착수하였다. 한편 김영삼의 라이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가게 되면서, 사실상 김영삼 대통령의 일극 체제가 시작된 해.

특히 이 해에 육(열차), 해(여객선), 공(비행기) 분야를 통틀어 교통수단 대형 참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70년대~80년대 압축 경제성장의 부작용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2]

그리고, 세계 경제통합의 상징인 유럽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해도 이 해이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발효되면서 완전경제통합의 단계의 단일경제블록이 출범한 것.

체코슬로바키아가 1993년 1월 1일자로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한국에서 사실상 쌀 시장 개방이 확장되면서 외국산 쌀의 국내 수입이 허용되었던 해였다. 국내 농가와 농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굴욕으로 남았던 편.

이 해 3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2000년초등학교 입학을 하였으며,[3] 학교에서 처음부터 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 최초의 세대가 된다. 다만 장학퀴즈에서는 안습한 세대다. 3년 내내 7연승제 방식으로만 참가했다. 한편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원주민의 해'로,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의 해로 각각 지정하였다.

이 해 여름은 전국적으로 저온현상이 지속되어 22도까지 내려가 가을에 가까운 날씨였다. 하지만 다음 해 여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편, 이 해 11월에는 신세계그룹이마트가 서울 창동에 개점하면서 대형 할인점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이후 다른 기업이나 외국 회사들에 의해 우후죽순으로 SSM(대형할인마트)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1기 신도시 입주가 가장 활발하던 때이기도 하다.[4]

이들 또한 1994년 문서에도 있듯이 1993년 7월 2일생부터 1993년 12월 31일생은 2013년 7월 1일 일제히 성년이 되었다.

컴퓨터그래픽스 계열 종사자들에겐 일종의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 버추어 파이터, 쥬라기 공원, 영구와 공룡 쭈쭈[5]가 각각 출시 및 개봉하면서 각 분야에서 비주얼 쇼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많이 출연했었는데 루나로이킴은 가왕까지 등극했었다.

2. 한총련 출범, 학생운동의 새 역사를 쓰다[편집]

1987년부터 5년간 학생운동을 선도하던 전대협의 후신으로 1993년 4월 27일, 전국 187개 대학생 6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한총련 출범식을 열어 한총련은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한총련은 이날 출범선언문에서 “외세와 독재에 맞선 전대협의 투쟁 정신을 계승해 자주․민주․통일을 향한 백만학도의 조직으로 역사와 민족 앞에 출범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한총련은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로 학원의 자주화 및 조국과 민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2일 '조국의 평화실현과 자매결연을 위한 예비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 도서관에서 판문점으로 향하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해 일부 학생들은 연신내 등지에서 과격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기 불광동에 있었던 학생시위를 진압하러 간 김춘도 순경이 학생 시위대에게 몽둥이 등을 맞아 순직하면서 한총련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선은 이때부터 적용되었다.

3. 복고 열풍이 유행했던 해[편집]

이 해는 사회문화적으로 복고 열풍과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높았던 때라 서편제와 같은 영화나 비락 식혜 같은 전통음료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시기였다. 구한말부터 유입되어진 미국과 유럽풍 서구 문화에 빠져든 당시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리타분하거나 캐캐묵은 구시대 유물이라며 업신여기고 경시하는 성향이 짙은 바람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옹호론이 득세하여 이에 맞춰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한 영화나 음료들이 등장하였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이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였는데 판소리와 진도 아리랑을 소재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업신여겨왔던 젊은이들에게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으며 판소리에 대한 인식도 이 영화를 통해서 점차 나아지기도 하였다.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구식이라고 경시해왔던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이 해에 나왔던 비락식혜와 수정과 캔음료는 캔음료 시장의 역사를 바꾸게 만들었다. 식혜나 수정과하면 보통 명절 때나 즐겨마시는 음료로 인식되었던지라 식혜와 수정과를 콜라나 사이다처럼 캔으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자 이변이었다. 지금은 식혜나 수정과 캔음료가 나온지도 오래되었고 이제는 흔해진 현상이라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당시까지만 했어도 식혜와 수정과 캔음료가 나왔다거나 그것을 캔으로 일상에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자 이변이면서 그 당시 세간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흔히 콜라, 사이다, 주스 위주로만 캔음료 시장이 장악을 했던 점도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도 가히 이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명절 때만 수제로 먹었던 식혜와 수정과를 캔이나 파우치 등으로 일상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됨으로서 음료시장에 변혁을 일으켰고 비락의 영향으로 롯데, 해태 등도 잇따라 유사 식혜 캔음료를 출시하였다.

4. 사건[편집]

4.1. 실제[편집]

  • 1월 1일 : 이날을 기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독립 국가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 1월 3일 :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는 외국인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을 결정하였다.
  • 1월 7일 : 충북 청주시에서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해 사망자 27명, 부상자 48명을 남기고 말았다.
  • 1월 11일 : 미국 USA 네트워크에서 WWF 먼데이 나잇 로우가 첫 전파를 탔다.
  • 1월 15일 : 과천선 금정역 ~ 인덕원역구간 개통. 이 당시에는 안산선하고만 직결되었다.
  • 1월 19일 : 체코슬로바키아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다.
  • 1월 20일 :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에서 환타지 드림이 개장했다.
  • 1월 26일 :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영국으로 떠났다.
  • 1월 27일 :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부부가 예금 20만 달러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 1월 29일 : 서석재 국회의원(당시 4선의원)이 석방 4년 만에 동해시 후보매수 사건으로 형 선고를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얼마 후 집권할 김영삼 당선자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이 되었다.
  • 1월 31일 :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는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을 결정하였다.
  • 2월 2일 : 오! 나의 여신님 애니메이션판이 OVA로 발매되었다.
  • 2월 12일 :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 도입을 발표하였다.
  • 2월 16일 : 아이티 서부 해안에서 넵튠(Neptune)호가 침몰했다. 사망자 수는 최소 8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 2월 22일 :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핵사찰 문제를 논의하였다.
  • 2월 23일 : 대만에서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2월 25일 : 김영삼이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로 인해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군사정권이 32년 만에 종식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부의 시발점인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6]
  • 2월 26일 : 미국 뉴욕세계무역센터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7명(태아 포함)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8년 후...
  • 2월 27일 :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1993년 2월 27일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서 자신과 가족의 재산 17억 7,822만원을 공개함으로써 공직자 재산공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 3월 2일 : 인권운동사랑방이 발족되었다.
  • 3월 8일 :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서완수 기무사 사령관이 전격 해임되고 당일 후임자가 전격 취임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하나회 척결이 본격화되었다. 김영삼은 이를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비밀로 해서, 깜짝 놀란 측근들에게 "어때, 놀랐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
    •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 빈 유엔세계인권대회를 앞두고 민가협, 민변,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의 인권단체들이 모여 '유엔세계인권대회를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협의회(이하 KONUCH)'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유엔세계인권대회를 공동으로 준비하고 국가보안법 심포지엄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 3월 13일 : 가야대학교가 설립되었다.
  • 3월 19일 : 문민정부가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를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없이 북한으로 송환했다. 그리고 북한은 이를 체제 선전에 잘 이용해 먹었다.
    • 정부는 1986년부터 그해 2월 24일까지 제적된 시국사태/학내분규 관련 학생 전원을 복적하기로 결정했다.
    • 한국과학기술원은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고성능 병렬처리컴퓨터를 개발했다.
    • 정부는 각 부처 차관급의 재산을 공개했다.
    • 병무청은 시국관련 사건으로 병역을 기피한 학생들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 부산직할시 구포역에서 열차 전복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78명, 부상자 193명.
    • 과학기술처의 오명환 교수가 음성인식 컴퓨터를 개발해냈다.
    • 권투선수 변정일이 멕시코의 빅토르 라바나레스를 상대로 WBC 밴텀급 타이틀을 따냈다.
  • 3월 31일 : 대한민국 공직자 재산공개파동. 이로서 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김문기, 김재순(13대 국회의장(!)), 유학성 등 3공 5공 보수여당의 핵심인사들이 의원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정동호 의원은 제명) 또 정부쪽에서는 정성진 대검 중앙수사부장, 최진석 대검 강력부장, 조규일 농림수산부 차관, 강신태 철도청장, 강두현 경찰위원회 상임위원 등 차관급 5명이 해임되고 10명이 경고를 받았다. 김재순 전 의장은 토사구팽이라고 절규했다고 한다.(응?) 하지만 이런 읍참마속의 개혁운동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도는 초기의 60%에서 95%까지 치솟았다.
  • 4월 1일 : 동아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다.
    • 기존의 공해추방운동연합 등 전국의 8개 환경단체들이 통합하여 '환경운동연합'이 출범하였다.
    • 기동전사 V건담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4월 8일 : 마케도니아유엔에 가입했다.
  • 4월 9일 :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추대하였다. 이로써 김정일은 북한의 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 4월 10일 : 영화 서편제가 개봉하였다.
    • 무장 탈영병 임채성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충청남도 논산군의 한 정신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수용되어 있던 환자 3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 4월 22일 : 영구아트무비가 세워졌다.
  • 4월 23일 : 1차 보궐선거가 벌어졌고, 소말리아 파병부대인 '상록수부대'가 발대식을 가졌다.
    • 감사원은 율곡사업 전반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하였다.
    •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탄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인원 30명 전원이 사망했다.(선수 18명, 코칭 스태프 4명 포함)
    • 전대협의 후신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출범하였다.
    • 소설가 황석영이 4년 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안기부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 결국 그는 1998년 사면 때까지 문민정부 5년 내내 옥고를 치뤄야 했다.
  • 5월 17일: 교육부는 고등학교 군사훈련을 1994학년도부터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8일 : 모나코에리트레아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 6월 1일 :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4개 단체가 주축이 되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가 결성되었다.
  • 6월 2일 :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 뉴욕에서 1차로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였다.
  • 6월 11일 : 2차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 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라 직을 잃은 여당 세 의원의 선거구, 즉 김문기강원도 명주군(현 강릉시), 양양군, 김재순 전 의장의 강원 화천군, 철원군, 유학성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선거가 벌어졌다. 투표율은 4.23 재보선의 41.3%에 비해 평균 68.5%로 크게 뒤집어졌다.
    • 그러나 여당의 높아진 지지도로 다른 선거구에서 압승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주군/양양군 선거구에서 68.5%의 높은 투표율 속에 민주당의 최욱철 후보(48.9% 득표)가 명주 고향 주문진을 중심으로 민주계 원로인 김명윤 후보(41.3%)를 낙선시켰다.[7] 다음날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이 "김명윤 낙선"(…)이었을 정도.
    • 하지만 여전히 제3정당인 신정치개혁당의 득표도 높아서, 화천철원 선거에서 민주당(이정희, 18.3%)을 밀어내고 김철배 후보가 21.3%를 득표했다. 그러나 여당의 이용삼 후보의 더블 스코어(60.3%) 승리.
    • 예천은 여당의 반형식 후보가 45.1%로 민주당의 안희대 후보를 35.4%로 상당히 앞섰다. 통일국민당의 황병호 후보는 11.8%를 득표.
    • 이로서 김영삼 정권의 지지가 조금 삐걱거렸고, 황명수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의 입지가 약해졌다. # 황 사무총장은 "이나라 민주화를 위해 최루탄 가스를 그렇게 마셔가며 투쟁한 분을 그렇게 모르느냐"라고 한탄했다고(…) 어디서 국민 탓이야!
  • 6월 10일 : 경기도 연천군 다락대 사격장에서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가 일어나 훈련 중이던 예비군 16명과 현역병 3명 등 총 19명이 사망했다.
  • 6월 12일 : 이날 한총련은 '조국의 평화실현과 자매결연을 위한 예비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 도서관에서 판문점으로 향하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해 일부 학생들은 연신내 등지에서 과격 시위를 벌였다. 한편 불광동에 있었던 학생시위를 진압하러 간 김춘도 순경이 학생 시위대에게 몽둥이 등을 맞아 순직했다.
  • 6월 28일 : 전국철거민협의회(이하 전철협)이 결성되었다.
  • 6월 29일: 육군 상록수부대가 소말리아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었다.
  • 6월 30일 : 8선의 박준규(대구광역시 동구, 후에 15대 국회 국회의장) 의원이 공직자 재산파동으로 사퇴했다.
  • 7월 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새로운 경제계획인 '「新경제」[8]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7월 9일 : 대한민국CITES(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가간 교역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가입하였다.
  • 7월 14일 :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2차로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였다.
  • 7월 26일 : 목포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탑승객 106명중 66명 사망.
  • 7월 27일 : Microsoft Windows NT 3.1이 출시되었다.
  • 8월 5일 :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안태국 등 애국선열 5인 유해가 상하이에서 운구되어 돌아왔다.
  • 8월 7일 : 1993 대전 엑스포가 개막했다.
    • MBC에서 드라마 일지매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 이 날 태풍 로빈이 상륙하는 바람에 사망 실종 69명, 재산피해 2,596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
    •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명령'을 발동해서 드디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 3차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평균 59.3%의 투표율을 보였다.)
      • 박준규 의원(대구 동구)과 사망한 통일국민당의 손승덕(5월 22일 사망, 강원도 춘천시) 후보의 보궐 선거였다.
      • 경북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으로 6.3 항쟁에 앞장서며 상도동계의 젊은 세대였으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한 52세의 서훈 후보가 민자당 노동일 후보에게 45.4%대 27.4%로 압승을 거두었다.[9] 반면 민주당 후보는 홍사덕 선거대책위원장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안택수 후보가 무소속에도 밀려 4위(8.1%)로 그쳤다. 이로서 TK의 "반YS 정서"가 확인되었고, 결국 금융실명제 이후의 혼란과 더불어 김영삼 정권의 개혁조치를 막는 하나의 암초가 되었다.
      • 삼성중공업 상용차공장의 대구성서공단 내 유치결정이나 강원대총장 선심 발언, 금품살포 의혹 등 여당의 "깨끗한 선거" 주장이 무색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대여공세에 앞장서던 민주당도 승리의 열매를 얻지는 못했다. 특히 춘천에서는 민자당 류종수 후보가 개표 초중반 역전을 거두어 37.5%로 민주당의 유남선 후보 33.9%를 이겼다.
  • 8월 14일 : 한국마사회경마 경주마의 한국마사회 단일마주제를 폐지하고 개인마주제를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은 정말로 법인을 제외한 개인만이 마주가 되었다.
    •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차량 형식을 TGV로 선정하였다.
    • 1994학년도 제1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 8월 28일 : 헬기추락 이후 2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탤런트 변영훈이 세상을 떴다.
  • 9월 3일 : 약사의 한약 조제 제한 및 의약분업 실시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 시안이 공개되면서 한의사-약사 간에 분쟁이 일었다.
    • 정부가 대한민국 국회,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국영기업체 상근 임원 등 1,166명의 재산을 일괄 공개하는 2차 공직자 재산 공개를 단행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숨겨온 재산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은 제대로 열받았다. 이후로도 공직자 재산 공개는 계속되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과 함께 문민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로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 "윗물맑기운동"이라고 명명되며 '돈과 명예는 함께 갖지 말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 인권운동사랑방이 <인권하루소식> 1호를 발간하였다.
  • 9월 10일 : 김덕주 대법원장이 경기도 용인군 등지에 부동산 투기를 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대법원장직을 사퇴했다.
  • 9월 13일 : 안기부는 '남매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여 관련자인 김삼석과 김은주를 구속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문민정부 시기 첫 간첩조작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9월 14일 : 빌 클린턴 대통령이 NAFTA에 서명했다.
    • 김영삼 대통령은 윤관 선관위 위원장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 전교조는 전교조 탈퇴를 수용해서라도 10월 중순부터 일괄 복직하겠다고 확정했다.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도 양심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자 ‘양심수 전원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제1회 목요집회를 시작했다. 이 집회는 2014년 10월 16일에 1천회를 돌파하게 된다.
    • 소말리아에서 모가디슈 전투가 벌어졌다. 이 내용은 훗날 블랙 호크 다운으로 영화화된다.
    •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보수파들이 총궐기하면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한다. 이날 러시아 보수파들은 모스크바 시청 등 주요 기관을 점거하고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정부군과 대치하였으나, 다음날 정부군의 총공세로 보수파 시위대의 거점인 국가두마 의사당이 함락됨으로써 진압되었다.
  • 10월 9일 : 내일신문이 창간되었다.
  • 10월 10일 :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발생하였다.
  • 10월 14일 : 일본에서 《바우와우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서울대 조교였던 우모씨가 교수인 신씨에게 성폭행과 보복성 해직을 당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 KBS 2TV에서 퍼즐 특급열차가 첫 방영했다.
  • 10월 28일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극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획득했다.
    • 방위병제도 폐지 및 상근예비역 제도, 공익근무요원 소집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새 병역법이 제정되었다.
    • 세계 경제통합의 상징유럽연합완전경제통합의 형태로 출범했다. 단, 진짜 제대로 된 통합의 상징은 공동화폐인 유로6년 뒤에 나왔다.
    • 여행업체인 하나투어가 설립되었다.
  • 11월 4일: 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이 열반하셨다.
  • 11월 15일: 천리안 내의 진보계열 학술동호회 '현대철학동호회(이하 현철동)'가 '자본가 계급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노맹중앙재건위 등 사회주의 계열 단체들의 선언문들을 올리자 이에 천리안 측은 게시판을 이틀간 폐쇄시켰다.
  • 11월 16일 : 1994학년도 제2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첫 수능에 비해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바람에 피 많이 봤다.
  • 12월 2일 : 농림부장관 허신행이 쌀 시장 개방에 관련해 제네바로 출국하며 '쌀 개방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이틀 뒤 귀국하면서 '쌀 개방 허용'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 12월 7일 : 쌀 개방이 거의 확정되감에 따라 이에 반발한 농민 3만 명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은 김종필 민자당 총재, 황인성 국무총리, 이경식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허신행 농림부장관, 한승주 외무부장관 등 정/관계 인사 5인을 '계유 5적'으로 지목하였다.
    • 현대철학동호회 회장 김모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보안법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사이버공간의 언론 자유와 이에 대한 정부의 감시 감찰, PC통신사의 권한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 되었다.
    • 북한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제3차 7개년 계획이 실패했다고 인정한 뒤 1994년부터 3개년 간의 완충기를 설정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의 경제는 내리막에 접어들게 되었다.
  • 12월 9일 : 대선 때만 해도 쌀 개방을 반대해왔던 김영삼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해 불가피하게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요지의 공식 담화를 발표하였다.
  • 12월 10일 : FPS 게임의 전설이 된 《》 발매.
  • 12월 16일 : 쌀 시장 개방에 따른 국민의 분노에 직면한 김영삼 대통령은 황인성 국무총리를 경질하고 이회창 감사원장을 새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 12월 17일 : 게임록맨 X》가 발매되었다.
  • 12월 18일 : 영화투캅스》가 개봉하였다.
  • 12월 19일 : 먼 바다에서 온 COO 애니판이 영화의 형태로 개봉하였다.
  • 12월 23일 :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다. 2011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니 혹시 보고 싶은 위키니트들이 있다면 직접 가서 보도록 하자.[10]
  • 12월 27일 : 군사기밀의 범위를 축소하고 출판물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삭제한 군사기밀보호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4.2. 가상[편집]

5. 탄생[편집]

5.1. 실존인물[편집]

5.2. 가상인물[편집]


6. 사망[편집]

6.1. 실존인물[편집]

6.1.1. 1월[편집]

6.1.2. 2월[편집]

  • 2월 7일 - 이종근 : 종근당의 창업주
  • 2월 10일 - 세토 완야 : 시시 텐야와 콤비를 이뤄 1950~60년대에 인기를 누렸던 만담가
  • 2월 18일 - 케리 본 에릭 : 미국의 프로레슬러이자 본 에릭가의 4남. WWF 시절 '텍사스 토네이도'라는 링네임으로 알려져 있다.
  • 2월 19일 - 서재운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던 예식장 '노라노예식장'[15]의 창업주.
  • 2월 20일 - 채희돈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2월 24일 - 바비 무어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6.1.3. 3월[편집]

6.1.4. 4월[편집]

6.1.5. 5월[편집]

6.1.6. 6월[편집]

6.1.7. 7월[편집]

6.1.8. 8월[편집]

6.1.9. 9월[편집]

6.1.10. 10월[편집]

6.1.11. 11월[편집]

  • 11월 4일 - 성철 : 대한불교조계종 제 6~7대 종정
  • 11월 10일 - 한상용 :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1월 14일 - 김원룡 : 대한민국의 원로 고고학자

6.1.12. 12월[편집]

6.2. 가상인물[편집]

7. 데뷔[편집]

7.1. 가수[편집]

7.2. 배우[편집]

7.3. 예능인[편집]

7.4. 만화계[편집]

  • 강경효 - <군바리 첫사랑>
  • 김대원 - <수호자>
  • 김성모 - <약속>
  • 김소현 - <장마 로맨티시즘>
  • 김언정 -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 김언형 - <리믹스 신데렐라>
  • 김연서
  • 김정한 - <게임월드>
  • 김지은 - <촌놈>
  • 나예리 - <흐르지 않는 시간>
  • 박경진 - <내 죄목은 사랑, 사랑의 고통을 느껴야 할 때>
  • 박무직 - <안녕! 캡틴>
  • 박성훈 - <할루씨에이션>
  • 박용석 - <너를 위해서라면>
  • 박희정 - <Summer Time>
  • 서홍석 - <런 어웨이>
  • 신명환 - 주간홍성 시사만평
  • 신시하 - <아마도 그건>
  • 심갑진 - <녹슨 총>
  • 안장인 - <얼음소녀 설비>
  • 엄재경 - <마이 러브(스토리 담당)>
  • 유진하 - <카도니아>
  • 유현 - <제자리 찾아주기>
  • 윤태호 - <비상착륙>
  • 이길우
  • 이재웅 - <행복일기>
  • 이진영 - <백록화>
  • 조인하 - <미니 퍼즐>
  • 지혜안 - <환상유희>
  • 코노미 타케시 - <철인 ~세계 제일 단단한 남자~>
  • 한혜연 - <마네킹>
  • 홍유진 - <절후>
  • 황철주 - <옥의 슬픔>

7.5. 스포츠[편집]

8. 은퇴[편집]

8.1. 스포츠[편집]

9. 베스트셀러[편집]


[1] 물론,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까지 포함해서 45년 독재정권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4.19 혁명의 결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이 45년의 중간에 끼어 있고, 노태우부터는 그나마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기에 완전히 옳은 견해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곧, 견해 차이에 따라 32년으로 볼 수도 있고 45년으로 볼 수도 있다.[2] 이러한 부작용들은 이듬해인 1994년과 그 이듬해인 1995년까지 부실공사 참사 시리즈로 넘어가서, 한국 희대의 참사 피날레로 불리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이어진다. 1996년엔 대형 참사는 없었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던가 고성 산불과 같은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몇 개 터졌으며, 1997년 외환위기의 시작으로 수만명이 바닥에 주저앉고, 수백만명이 피눈물을 흘리게 함으로써 사고 공화국이라고 불리우는 문민정부는 끝을 맺었다.[3] 여담이지만 7차 교육과정만! 배웠고,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2012) 모든 토요일이 놀토가 되었다(...). 대신 방학기간은 길었잖아?[4] 1기 신도시는 1991년 10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 5월부터 1996년 10월까지 1기 신도시 사업이 종료되었다.[5] 영구와 공룡쭈쭈는 슈트액터가 공룡탈을 쓰고 연기한 구식 특촬물이다.[6] '실질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김영삼 정부 앞의 정부인 노태우 정부가 '형식상으로는' 민주적 절차로 만들어진 정부이기는 하나, 노태우 정부 역시도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시위를(대표적으로 1991년 연쇄 분신 파동) 유혈 진압 하는 등, 민주주의와 위배되는 행동들을 보인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식적인' 민주주의 정부의 시발점은 노태우 정부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부의 시발점은 문민정부(=김영삼 정부)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그러나 1997년까지 최후의 운동권과 연세대 사태때 무력진압을 했던 것 등을 포함해 국민의 정부 출범 때를 민주화의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판단은 읽는 자의 몫.[7] 최 당선자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최각길 후보에게까지 밀려 3위를 기록했던 후보였던지라, 박정희 정권 때 이 지역에서 3선을 기록한 김명윤 후보가 70세의 노령에 주민등록조차 하지 못하는 등 여당의 약세 조짐이 예상되긴 했지만 이정도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최욱철 후보가 자기 연고지가 아닌 양양군에서도 일부 승리, 선전했을 정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욱철 후보는 이후 재선고지에서 통합민주당을 거쳐 신한국당에 들어갔다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로 3선 복귀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로 의원직 상실, 2009년 재보궐선거가 벌어진다. 보궐로 흥한자 재보궐로 망하리니[8] 공식 문서상 이런 식으로 표기하였다.[9] 서훈 후보는 무소속 행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했으나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가 낙천 당한 후 민주국민당을 거쳐 낙선하며 정치적 야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10] 발굴은 10월부터 했었고 발표는 22일에 했는데 23일에 전국 일간지에 실렸다.[11]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2] 프로젝트 시작 년도가 2010년이므로 역산. 이하 동일.[13] 일란성 쌍둥이이다. 자세한 것은 각 캐릭터별 문서 참고.[14] 1992년생인 나루호도 류이치 & 미츠루기 레이지와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으므로, 최소한 빠른 생일에 해당한다는 사실만은 밝혀져 있다. 물론 일본식 빠른 생일 기준이므로 가능한 범위는 1월 1일부터 3월 31일 사이.[15] 1995년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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