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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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 27년~선통 4년(1912 종료)
(1912 시작)1년~89년

1. 개요
1.1. 주요 사건
2. 한국에서의 20세기3. 경제사4. 맺음말5. 연대6. 참고 자료7. 관련 문서8. 20세기에 들어가는 해

1. 개요[편집]

조용히 살고 싶었던 사람은 20세기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현재 21세기의 바로 전 세기. 1901년 1월 1일 ~ 2000년 12월 31일.[4]

제국주의의 절정과 몰락,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으로 나뉘는 공전의 전쟁인 세계 대전의 발발[5], 파시즘을 비롯한 군국주의의 등장, UN의 등장,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극한의 대립인 냉전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등장, 냉전 갈등의 해소기인 데탕트와 그러면서도 끊이질 않는 크고 작은 분쟁들, 비약적인 기술 진보로 최초의 인터넷이 발명되기도 하며 세계화가 급격한 가속도를 붙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구도는 지금 21세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장기 20세기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6]

급변하는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20세기의 초입은 많은 국가들이 농경사회의 끝무렵을 지나고 있었으나, 급격한 사회 변동 끝에 20세기 말에는 정보화 시대를 겪은 나라들이 매우 많다.

보통 크게 나누면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두고 현대(정확히는 오늘날, Contemporary history)와 그 이전의 근대(Modern Times)로 나누는 편이고, 좀 더 자세히 나누면 제국주의 시대(~1914년), 양차대전기(+전간기, 1914~1945년), 냉전기(1945~1991년), 냉전 이후 시대(1992년~2000년)로 나눈다. 냉전 이후 시대를 역사의 종말[7]이니 포스트 모던이니 했지만, 21세기 이후 9.11 테러,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인해 2차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과거 전간기와 비슷한 일종의 과도기로 보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소빙하기가 끝나서 지구와 한반도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비해서는 한파가 잦고 강력했다.

현재 20세기 때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성인(成人)이다. 또한 공식적으로 확인된 세계 최고령자들 모두 20세기에 태어났다.[8]

1994년 2월[9]까지는 이 시대에 학창시절를 보냈다.
이전 세대부터 1970년대생[10]까지는 성인때 20세기를 겪어 20세기 사회를 제대로 경험한 세대이다. 1980년대생1990년대 초반생은 20세기 당시 아동, 청소년기까지만 겪었기 때문에 20세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많겠지만 20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제대로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생은 20세기 당시 미취학 아동(유아기)이었기만 해서 20세기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하거나 조금 나는 정도이고, 90년대 후반생은 20세기 당시에 기억이 아예 없고, 2000년생은 20세기 당시 영아기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20세기 기억 자체가 없다. 또한 20세기와 관련이 있는 마지막 세대인 2001년생은 20세기에 태아기였기 때문에 20세기를 모른다.

1.1. 주요 사건[편집]

2. 한국에서의 20세기[편집]

※ 밑의 사진 모음 부분에서는 혼란과 반달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식 명칭을 사용합니다.
한국의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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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쿠데타 직후 촬영
5.16 군사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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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의 인트로 영상. 제5공화국 이후의 20세기 정치상황을 잘 표현했다.
EBS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 1부 - 의병

20세기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일제강점기6.25 전쟁 두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건 모두 한국의 역사 흐름을 포함해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고, 개개인의 인식과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일으켜 오늘날 21세기까지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세기는 한국에게는 쓰디쓴 굴욕과 아픔의 세기였지만 6월 항쟁6.29 선언 이후에 이르러서야 격동이 멈추고 안정을 찾았다. 대한제국은 8년 동안 근대화 추진으로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1904년 한일의정서부터 1905년에 을사조약부터 시작해서 1907년 대한제국군 해산, 남대문 전투, 서울 진공 작전, 남한대토벌 등의 전투가 벌어지고,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합병되는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격하와 무력통치를 겪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고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단체는 고종순종의 죽음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해방 이후까지 많은 독립군이 독립운동을 하였고, 3.1운동이 벌여졌다. 1920년대 문화통치, 1930년대 민족말살정책을 겪었으나,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내 3년간 미소군정기를 겪었다.

사상의 대립으로 1950년대 남북분단의 시발점인 6.25 전쟁이승만~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13]까지 이어지는 긴 독재, 1997년 IMF 외환위기 등, 그야말로 끔찍한 사건들을 겪었다. 대한민국한강의 기적을 시작으로 산업화와 경제 성장, 민주화 쟁취, 외환위기 극복처럼 최악의 세기라기보다는 격변의 세기[14]로 끝났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세기의 굴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15]

3. 경제사[편집]

경제사적으로는 1900년대에는 식민지 경영을 하고, 1910년대 1차대전의 종전 이후에 생긴 미국의 거품경제는 1920년대1929년 세계 대공황이라는 대사건을 낳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방임주의에서 (사회주의를 결합한 자본주의인) 수정자본주의로 전향하기도 했다(1930년대). 하지만 가장 큰 부를 창출한 건 수요가 폭발한 1940년대의 2차대전과 1950년대냉전이었다. 1960년대 정점을 이룩한 케인즈주의는 그러다 1970년대에 두 차례 오일쇼크를 맞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대두되기도 하였지만, 미국에겐 쌍둥이 적자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는 사상 최대의 거품경제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발생했다가 1990년에 총량규제 크리를 맞고 꺼지기도 했다. 그 이후 미국대한민국, 유럽 등지에서는 1990년대닷컴버블(=IT버블)이 발생하기도 했다. 닷컴버블은 정확히 2001년에 꺼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태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등에서는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다.

경제사가 대강 봐도 미국사 같은데, 사실 이 시대의 역사는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의 역사인 냉전의 시대였고, 경제적으론 기축통화 달러를 통해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의 역사였다.

4. 맺음말[편집]

이 시기 동안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대공황, 냉전 등의 수많은 위기와 그에 대항하는 번영, 급진적인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20세기 초에 태어나 21세기까지 장수했던 사람들의 일생은 그야말로 역사다. 예를 들어 1912년생인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경우 비행기가 막 개발되던 시기에 중세적, 귀족적 봉건국가 체제가 남아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황태자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귀족 중심의 구체제가 멸망하는 것을 보았고, 국민주권 공화국이 아돌프 히틀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독재 체제 속에 시련을 겪는 모습도 보았다. 이후 냉전의 한복판에서 공화국의 시민이자 유럽의회 의원으로 살다가,인류가 하늘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 달에 착륙하는 것을 보았다. 말년에는 21세기의 자유주의적 사회 풍토 속에서 급격한 기술 혁신과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것까지 모두 보고 2011년 98살의 나이로 죽었다. 때문에 진보주의 계열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책을 저술했다.

하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게 여태까지 폭력이 제일 적은 시기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주장의 논거는 사회의 폭력성은 당한 수가 아니라 당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 그 폭력성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인구 대비로 볼 때 세계 대전의 사망자 수는 아주 적었고 오히려 십수세기 전의 당나라 때 안사의 난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의 인구 피해를 낳았다. 또 형벌의 가혹함, 일상생활에서의 폭력성 등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16]


5. 연대[편집]

6. 참고 자료[편집]

  • KBS 대하다큐멘터리 <20세기 한국사: 해방(총 10부작)> (1999.08.09 ~ 09.04. KBS1): 해당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내용은 2000년 청년정신에서 <테마로 읽는 20세기 한국사: 해방>이란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1999.02.26 ~ 10.14. MBC)

7. 관련 문서[편집]

8. 20세기에 들어가는 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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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속 장소는 뉴욕증권거래소이다.[2] 사진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콜로서스[3] 2000년20세기의 마지막 해이지 21세기의 첫 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자.[4] 2000년21세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에서는 0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동일한 이유로 1900년도 20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에 해당한다.[5] 이로부터 컴퓨터 과학항공우주공학의 기초가 만들어졌다.[6] 저 위에 나열된 것들 중 제국주의부터 냉전까지는 사실상 21세기에서는 사라졌지만, 미국의 초강대국화와 세계화 시대 및 UN은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7]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1989년 논문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기원한 표현. 냉전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것을 선언하고, 헤겔과 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역사관은 완전히 끝났고 앞으로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쿠야마는 딱 10년 만인 1999년 '붕괴와 신질서'에서 역사체제는 붕괴와 재건을 반복한다는 이전 주장을 180도 뒤집은 주장을 해서 여러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8] 2021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령자인 일본의 다나카 가네 할머니가 1903년생이다.[9] 단, 1994년 1~2월생 중 입학 유예자 제외.[10] 1981년생까지[11] 한국 스포츠계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기에 기재.[12]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영향과 파동이 컸기에 기재.[13] 1948년~1988년.[14] 이 시대를 살아가신 어르신들은 '농경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까지의 사회변화를 직접 겪은' 지구 역사를 통틀어보아도 손꼽히게 희귀한 경험을 한 분들이다.[15] 아일랜드, 체코슬로바키아, 중동, 동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등, 한국 말고도 열악했던 곳들은 많지만, 아일랜드체코슬로바키아, 노르웨이, 슬로베니아, 코스타리카, 싱가포르 같은 극히 일부의 나라들과 중동 부국들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아직도 도탄에 빠진 나라가 많은 상태다. 한국이 특이한 케이스에 속하는 거다.[16] 물론 절대적인 규모는 제1,2차 세계대전이 훨씬 크긴 하지만.일단 1차대전만 해도 수백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2차대전은 그 7배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이에는 대량 살상 무기 중 하나인 기관총의 역할이 특히 컸다.가장 극단적인 예시로는 단 하루만에 사상자가 58000명이나 나온 솜 전투가 있다.[17] 1900년은 제외.[18] 2000년만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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