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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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제2차 세계대전 당시2.2.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60년대
3. 대테러 전술의 선구자4.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5. 개판인 군기6.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7. SAS 출신 주요 인물 열람(가나다 순)
7.1. 실존 인물7.2. 가공 인물
7.2.1. 게임7.2.2. 영화7.2.3. 코믹스 & 애니메이션
8.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8.1. 게임8.2. 영화

1. 개요[편집]

현대 특수부대의 아버지
Who Dares Wins
-SAS의 구호, "용감한 자가 승리한다"라는 대원들의 사기를 격려하는 의미다.

Special Air Service, SAS는 영국 육군 소속의 특수부대이다.[1] 오랜 역사 및 무수한 실전 경험, 전 세계를 무대로 작전을 벌이며 쌓은 노하우를 통해 다른 나라 특수부대들의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쌓아올린 전설적인 전과들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SAS를 본따 만든 특수부대들이 많다.

2. 역사[편집]

2.1. 제2차 세계대전 당시[편집]

그 시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아프리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에게 매번 박살나며 막대한 전사자와 노획물자만 넘겨주던 영국군이 어떻게든 반격방법을 찾던 중, 육군 대위 데이비드 스털링이 '요즘 독일군의 공군력이 강력하니, 적 비행장에 직접 낙하산으로 병력을 투입해 항공기들을 직접 공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털링은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낙하산을 갖고 놀다가, 실제로 비행기에서 낙하하다 허리를 다친 뒤 병원에서 요양 중에 그 생각을 떠올렸다.

원래 좀 무모한 기질을 가진 스털링은 영국군 사령관 어친렉 대장에게 직접 찾아가 그 계획을 말하려 했고, 사전 연락도 없이 사령부로 무작정 밀고들어간 덕택에 헌병들에게 쫒기며 여기저기 도망치다 운좋게 중동 파견군 참모장인 리치 소장의 집무실로 들어가게 된다. 스털링은 리치 소장에게 자신의 구상을 열렬히 설명했고, 리치 소장 역시 헌병들의 삼엄한 경비를 뿌리치고 돌파하며 자신의 집무실까지 뚫고들어와 특수부대의 실효성을 즉석에서 검증한 스털링의 방법을 경청하며 결국 협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첫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한번도 이런 식의 작전경험이 없었기에 수송기는 엉뚱한 곳에 부대원들을 강하시켰고, 장비와 병력 대부분은 흩어져서 다시는 집결하지 못했다. 예정대로 실제로 진행된 것은 복귀를 위해 대기하던 장거리 정찰대(L.R.D.G)의 트럭 뿐이었는데, 이 트럭을 타고 복귀하던 중 스털링은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관총을 여러 정 장착하고 냉각장치를 개조한 미국산 윌리스 지프와 시보레 트럭에 연료, 식량, 무기를 가득 싣고 항해를 하듯 사막을 가로질러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하고 다시 차를 타고 복귀하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적의 항공 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뜨거운 낮에는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작전은 성공해 독일군은 그 이후로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 숫자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SAS에게 털려 새로 받았는데 그 날 SAS가 와서 박살내버리는 자비심 없는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에게 시달린(?) 쪽으로 영국 공군 본대도 있었다. SAS는 평소 영국 공군 기지를 이용해서 침투 훈련을 빈번하게 했다. 이 때문에 공군 장병들은 SAS의 침투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비행기나 탄약고 등에 'SAS가 여기 다녀감'을 뜻하는 딱지가 붙어 있는게 흔했다고 한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SAS가 부대에 와서 지휘부 문만 두드리고 간 경우도 있다 카더라(...). 이렇게 SAS가 '방문'에 가까운 벨튀에 성공한 뒤엔 공군 장병들은 당연히 상관에게 신나는 갈굼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맛들인 영국군 사령부가 특수작전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정규군의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규모 반격 작전의 일부로 집어넣었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보강된 독일군 진지들을 뚫지 못하고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후, 결정적으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정규군을 통한 지상전의 대승리가 영국군 수뇌부에서 비정규전에 집중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게 해서 도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이 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사막전에만 특화된 한계가 있던 LRDG는 토브룩에서 입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국이 주도권을 쥔 북아프리카 전장과는 달리 서유럽은 여전히 독일이 차지하고 있었고, SAS는 유럽으로 넘어가서 계속 비정규전을 펼치며 꾸준히 성과를 거두었다. 얼마나 혁혁한 성과를 세웠는지 히틀러는 SAS대원을 사로잡지 말고 무조건 사살하라고 명령했을 정도.

2.2.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60년대[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해진 "늙은 사자" 영국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정규군을 존속할 여력이 없었고, 해체된지 2년 만에 영국 본토의 국방의용군(Territorial Army)내에 SAS 21연대가 재창설되었다.

194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말라야 공산당에 의해 시작된 말라야 위기에는 식민지군에서 차출된 "말라야 정찰대(Malayan Scouts)"가 옛 SAS의 노하우를 살려 활약하는데 이들은 곧 SAS 22연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반영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2]

이후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되었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자동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을 도입했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3]

한편 영연방 국가의 일원 중 하나인 호주에는 SASR이, 뉴질랜드에는 NZSAS가 있다. 이들의 기량이나 활약상은 원조 못지 않으며, 자세한 내용은 각 해당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3. 대테러 전술의 선구자[편집]

한편, 이들은 60년대 이후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전에 관한 개념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인질구출이나 테러 진압작전의 개념을 만들었다.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IRA와의 시가전 경험을 쌓았다.[4][5]

북아일랜드에서의 실전경험 등을 통해 대테러전에서 최고급의 기량을 쌓았으며, 외국 대테러부대와의 잦은 교류를 통해 대테러전 노하우를 공유, 발전시켜 나갔다. 1977년에 있었던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 당시 SAS 고문관들이 섬광탄을 제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님로드 작전)당시, 과감한 진압 작전을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인질들을 1명 빼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민무늬 검은색 전투복과 방독면[6], MP5 같은 특징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영국 지배 하의 홍콩에서 창설된 경찰 특공대 비호대(Special Duties Unit)도 영국에서 초빙된 SAS 교관의 훈련을 통해 탄생했다.

4.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편집]

1980년도에 이란 대사관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고 인질들을 구출한 님로드 작전(Operation Nimrod)가 SAS의 대표적인 활약으로 뽑힌다.[7]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도 여러 작전에서 맹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군의 기관포 진지 앞으로 쭉 펼쳐진 평야지대를 거슬러 올라가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으로는 영하의 날씨에 고산지대를 행군하고 적의 배후를 습격하는 임무에서 단 한 명의 동사자나 비전투 손실도 입지 않아 이후 다른 나라 군대의 동계작전의 모범이 되었다. 당시 사상최초로 고어텍스 재질의 야외상의와 전투화가 지급되었다고 하며, 꾸준한 휴식과 따뜻한 역시 영국로 체력을 유지해 성공적으로 전투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걸프전에서도 역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추적이나 전략 목표 정찰, 연락선 차단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때, 브라보 투 제로라는 암호명을 띄고 스커드 미사일 감시를 하러 간 일단의 SAS 부대가 어린 목동 소년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위치가 발각되자 헬리콥터로 이탈하려했지만, 헬리콥터가 오지 않고 적의 추격이 계속되자 도보로 이라크를 횡단하여 거의 시리아 국경 앞에서 1명은 탈출에 성공하고 3명은 전사, 4명은 붙잡혀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포로가 되었던 한 대원이 그들의 희생과 작전 전체가 극비로 취급되는 것에 분개, 전역 후 브라보 투 제로라는 책을 써내며 이들의 활약상과 놀라운 희생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브라보 투 제로 작전팀의 경우 8명의 인원으로 장갑차를 가진 수백의 정규군과 민병대의 추격을 꾸준히 물리치면서, 너무 먼 사우디아라비아 쪽 국경보다는 가까운 시리아 쪽 국경을 택해, 실제로 시리아 국경에서 몇 km 남짓한 지점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다만 무사히 시리아로 도망친 사람은 1명뿐이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전투와 추위로 3명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이후에도 몇개월에 걸쳐 무수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겼다. 이라크군이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을 한 이후였다고 한다... 대원들의 기량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지만, 특수전 장비나 헬리콥터 같은 지원요소가 부족했던 한계 때문에 대원들이 불가피한 희생을 치루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시에라리온에서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다가 반정부군에 인질로 잡힌 영국군 장병들을 공수부대와 공군과의 협동작전으로 성공적으로 구출하기도 하였다. (바라스 작전)

2013년 케냐 나이로비의 쇼핑몰에서 일어난 인질극에서 휴가 중이던 SAS 대원 1명이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인질 100여명을 구출했다고 한다. 그 대원은 12번이나 쇼핑몰을 왕복하며 인질들을 구출했다고 한다. 보안상 이름과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람은 SAS 대원이 아니라 전역한 영국 해병대 코만도 대원이었다고 정정 발표되었다. 특수부대원인 건 맞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량이 매우 높은 특수부대로 각 대원의 신원 자체가 비밀로 다뤄질 정도로, 이들은 영국의 전략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는 SAS에 대해서 "그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이므로 발견 즉시 사살해야 한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SAS는 적국인 독일 음악 릴리 마를렌을 상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진곡으로 채택하였는데, 그걸 21세기에 들어서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8]

나무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41124132801.jpg

2014년 영국군 SAS가 북서부 이라크에서 ISIS에 대한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9]# 미리 교신 감청과 무인기 운용을 병행해서 표적들을 확인한 뒤 치누크로 ATV 팀을 투입하고 AWM, 바렛 M82 저격총과 GPMG 등을 사용해 야간에 목표들을 습격한 뒤 고속으로 도망쳐서 빠져나오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쓰인 전통적인 방식의 개량판이다.[10]
"ISIS 테러리스트들이 하늘에서 전폭기를 보면 도주하거나 은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SAS는 그들이 보거나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다수의 저격수를 투입해서 공포감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옆의 동료들이 모래 위에 죽어 나자빠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전술의 목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게릴라식 공격으로 IS에게 공포감을 불어넣고 그들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작전이 시작된 지난 4주간의 효과는 꽤 뛰어나서 200여 명 이상의 타겟을 사살시킨 듯. 장교가 절반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100여 명의 장교가 죽었다는 건 일대 작전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가 있다. 부대를 통솔하기 위해 장교가 존재하는 건데 그 장교가 죽어버리면 아무리 고급 장비를 가지고 잘 훈련받았다고 해도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11]

2017년 5월에는 이라크 모술에서 SAS 스나이퍼가 SVD로 영국군을 저격하던 IS 저격수를 2400미터 밖에서 역저격해 사살했다고 한다. 저격에 사용한 총은 체이탁 M200 이라고.#.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당시에도 2차 테러를 막기 위해 SAS 작전팀이 경찰특공대와 함께 투입되었다.

#2017년 모술 인근에서 작전수행이후 귀환하던 대원들이 강어귀에서 50여명의 IS대원들로부터 기습을 당했는데, 실탄을 거의다 소모한 상황에서 죽기살기로 백병전을 감행, 35명을 황천길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한 대원은 짱돌로 한사람을 후두려패면서 다른 하나를 익사시켰다고. 대단하다

5. 개판인 군기[편집]

한편, 전시가 아닌 평상시의 훈련 강도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반대급부로 풀어줄 때는 군기가 거의 개판 5분전으로 흐트러진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이라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쉴 때는 확 쉬고 할 때는 확 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 레벨이 다른 군인들이 보기에는 거의 똘끼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예로, 1962년 그린베레 교환 장교로 SAS에서 1년간 훈련을 받았던 미군 장교 찰스 베크위드[12]는 난장판이 된 내무실 바닥에 앉아서 휴대용 가스난로로 차를 끓이던 한 SAS 대원에게 '정리정돈 좀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다가 SAS 대원의 "나보고 뭘 어쩌란건데!"라는 대답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과 독특한 훈련군기 등을 접하고는 훗날 1977년 델타포스가 창설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의 군기도 어느 정도는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실 베크위스의 사례도 당사자들에게는 별 일 아닐 수 있는 것이, SAS는 대원들간 계급이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SAS 대원이 되는 순간부터 계급을 반납하고 SAS 대원(Trooper)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무중 자신의 본래 계급은 그대로 적용되고 실제 진급도 가능하지만 이는 연대 내부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연대에서 전출된 다음에야 자신의 정상적인 계급장을 가져갈 수 있다. 단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는 부사관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장교들은 아예 차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계급 반납이 없다. 대원의 경우 의무적인 연대 내 복무 기한을 마치고 짤 없이 한번 방출된 이후로는 추후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SAS에 부사관으로 자원할 수도 있다.

이는 무작정 군기를 들여 쉬는 중에도 군인들에게 상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보다는 체계적인 훈련과 그에 비례한 정신적 보상이 군사의 숙련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들이 훈련시간 외에 군기를 집어던진 똘기 가득 찬 행동을 할지언정, 실전으로 변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간흉기로 탈바꿈한다. 궤도 강하 타격대? 당장 대한민국의 군대를 좀먹고 있는 똥군기와 비교해보자.

6.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SAS라 불렸으나 현재의 정식명칭은 그냥 '제22연대'이다. 21연대와 23연대도 있는데 이들은 전시에 예비군으로 구성될 부대이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22연대다. 때문에 자기네들은 그냥 'The Regiment'(연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진짜 SAS 출신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자기네 부대를 '싸스'라고 발음하면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이름 탓에 사람들이 공군 소속으로 착각하거나, '특수공군연대'라는 해괴한 번역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SAS는 어디까지나 고유명사이니만큼, 미군의 델타포스처럼 따로 옮기지 말고 그냥 SAS 그대로 쓰는 게 가장 무난하다. SAS가 뭔지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 굳이 번역을 해야 한다면 기원이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수특전단'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영국군 공수부대가 따로 있어 헷갈릴 위험도 약간 있지만, 공수특전단의 "특전단"이란 명칭이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임을 나타내므로 정규전 부대인 영국 육군의 공수연대와 헷갈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창설 당시에 추축군이 헛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명칭을 붙인 것이기도 하다.

7. SAS 출신 주요 인물 열람(가나다 순)[편집]

7.1. 실존 인물[편집]

7.2. 가공 인물[편집]

7.2.1. 게임[편집]

7.2.2. 영화[편집]


7.2.3. 코믹스 & 애니메이션[편집]

8.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대중매체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이란 대사관 인질 구출 사건의 영향으로 주로 방독면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8.1. 게임[편집]

8.2. 영화[편집]




[1] 약자에 'Air'가 들어가서 공군소속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엄연히 영국 육군 소속부대이다.[2] 22연대는 식민지군이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중대, 로디지아 중대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분리되어 베트남 전쟁과 로디지아 전쟁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본토의 21연대를 누르고 22연대가 정규군에 남게 된 것이다.[3] 다만 이 때의 M16은 대부분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노획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정식으로 들여오게 되었다.[4] 그러나 이 과정에서 IRA 간부를 제거한답시고 IRA 간부의 승용차에 폭탄을 설치해놓고서는 죄없는 간부 친척들까지 다 모였을때 "어 테러범 떼거지로 모였네" 하고 폭파시키는 등 여러가지 실수도 있었다고 한다.[5] 아일랜드인 학살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1972년 1월 30일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SAS가 아니라 1공수여단이 일으킨 사건이다.[6] 그냥 멋있어보이라고 착용한 것이 아니라, 검은색과 방독면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분위기로 위압감을 주기 위함이다.[7] 대중매체에서는 이 작전에 관련된 SAS대원중 한사람(John McAleese)을 모티브로 삼아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FPS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들어봤을 어느 대위가 바로 그 인물이다.[8] 애초에 대전 당시부터 연합군 내에서도 대 유행곡이었다[9]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대외적 으로는 국제적 지위 때문에 분쟁에 개입하는 미국과 달리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미국과 함께 개입하여 자기나라 군부대의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10] 이는 메달 오브 아너에서 먼저 선보인 전술로, 델타포스 대원들이 깜깜한 밤에 ATV로 이동하면서 장거리의 적을 열화상조준경이 달린 바렛 M82로 저격한 뒤 이탈하는 것으로 묘사된다.[11] 무엇보다 아무리 종교적 광신자라고 해도 사람인데 단순히 화장실 가거나 경계근무를 선다던가. 아니면 밥을 먹으러 가는데 갑자기 같이 지내온 동료들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비명을 지르는 걸 보고 제정신으로 있을 사람은 없다. (여담이지만 저격수가 머리를 노리고 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맞추기도 어렵고 일단 몸만 맞춰도 거의 사망이기 때문.)[12] 이후 언급될 델타포스를 창설한 베크위드 대령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