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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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5.2. 만화계5.3. 스포츠

1. 개요[편집]

이 해 태어난 사람들은 약 102만명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출생아 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명 단군 이래 최다 출생이라 불리고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 수를 차지하고 있다.[1] 성덕선이 999등 찍고도 뒤에 400여명이나 있을수 있던 이유 386세대의 막차라고 볼 수도 X세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제연합은 이 해를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해'로 지정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 1월 중 -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가 세워졌다.
  • 1월 5일 - 윤보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이 창당되었다.
  • 1월 13일 - 대구고법 판사들을 중심으로 한 자체 정화운동이 벌어졌다.
  • 1월 16일 - 일본 정부측의 재일교포 영주권 신청이 이날부로 마감되었다.
  • 1월 25일 - 우간다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이디 아민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폭압/도살통치의 서막이 올랐다.
  • 1월 26일 - 북한 조선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대표가 재일교포 북송 재개에 합의하였다.
  • 2월 2일 - 서울 북창동 한국회관 종업원 김차호가 “전태일 선배의 뜻을 따라 전국 요식업체 종업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죽음으로 호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프로판 가스통을 열고 분신자살을 기도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 2월 6일 -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과 국군 현대화 계획에 합의하였다.
  • 2월 8일 - 정부는 155마일 휴전선을 국군이 전담한다고 발표했다.
  • 2월 9일 -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 2월 12일 - <다리> 지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 2월 13일 - 이날 경기중학교가 마지막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 2월 15일 - 아이맥전자 노동자들은 저임금 및 임금 체불에 맞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아이맥전자 분회(이하 아이맥전자 노조)'를 결성하였다. 이에 사측은 해고, 직장폐쇄 등으로 노조 파괴를 기도하였다.
  • 2월 17일 - 한필성 씨가 일본 아사히 신문의 주선으로 6.25때 헤어진 여동생 한필화(당시 북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와 국제 전화통화로 상봉하였다.
  • 2월 23일 -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학 교련교육 필수를 골자로 한 교육법 시행령을 의결하였다.
  • 2월 25일 - 연세대 학생회 간부들이 '대학자유 수호 투쟁위원회'를 결성해 교련반대 투쟁을 결의하면서 교련반대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 2월 28일 - 한국노총은 노조의 정치참여를 선언하며 '노총 정치교육위원회'를 신설키로 하였다.
  • 3월 2일 - 고려대 총학생회 및 서클 대표 40여 명은 교련 수강신청을 거부하고 교련반대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 3월 3일 - 서울대 총학생회는 학생 기본권 탈환/신장, 교권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주장하며 ‘학원 대 민주화운동 지침'을 발표하였다.
  • 3월 4일 - 한-미 합동 프리덤볼트 작전이 개시되었다.
  • 3월 5일 - 파키스탄군이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일대를 장악하고 분리독립운동을 탄압했다.
  • 3월 9일 - 서울대 총학생회가 '교련철폐 투쟁선언'을 발표하였다.
  • 3월 15일 - 서울대 법대 학생회는 학생총회를 열고 교련문제에 대해 토론한 결과 교련 수강 여부에 대한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95%가 반대했다고 발표하였다. 같은 날 동 대학 문리대 학생회는 <다시 맞는 3월 15일>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3월 17일 - 고려대 총학생회가 <우리는 거부한다>는 제목의 교련반대 투쟁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3월 18일 - 한영섬유공업 노조원인 김진수가 사측의 사주를 받은 노동자 정진헌에게 드라이버로 머리를 찔려 중상을 입었다. 이후 김진수는 2개월간 사경을 헤메다 5월 16일에 숨을 거두었다.
    • 경남 동래에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 기공식이 열렸다.
    • '재일교포 강석만 간첩 사건'이 발생하였다.
    • 서울대 상대 학생회는 학생총회를 열어 교련 강화에 대한 토론과 찬반 투표를 실시하였다. 학생회 측은 투표 결과 97.3%가 교련 강화에 반대했다고 밝히고 교련 수업을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 3월 26일 -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항쟁에 나섰다. 이것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 3월 27일 -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였다. 이는 해방 이래 첫 주한미군 철수로 기록되었다.
    • 각 군의 미국 군사고문단이 통합해 '주한미국합동군사지원단'으로 발족되었다.
    • 육군보안사령부는 재일동포 서울대생인 서승-서준식 형제 등 4개 간첩단 5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
  • 4월 3일 - 일본 TV아사히를 통해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첫선을 보였다.
  • 4월 6일 - 성대생 5백여 명이 '교련반대 자유 성토대회'를 열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고려대에서도 '민주수호 투쟁위원회'를, 서울대 상대생도 '교련철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이에 동참했다.
  • 4월 7일 - 서울대 법대생들도 "깨져라 교련, 깨어라 언론"이란 플랜카드를 걸고 성토대회를 열며 교련복 화형식을 벌였다. 같은 날 고려대와 연세대도 교련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경북대 학생인 정만기도 <반독재 구국선언>을 각 대학 및 언론사에 배포하였다.
  • 4월 8일 - 각계 민주인사 25명은 <민주수호 선언>을 발표하며 '민주수호 국민협의회'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 4월 9일 - 연세대생 1천여 명은 성토대회를 열어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한편, 굴다리에서 교련복 화형식을 벌었다.
  • 4월 10일 - 이날 4.19 혁명 11주년을 맞이해 기독교 학생들은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려다 무장 경찰관들에 의해 십자가가 파손되었다.
  • 4월 11일 -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삼영화학 분회(이하 삼영화학 노조)'가 결성되었다.
  • 4월 12일 - 주한 미국대사관 경비원 90여 명이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최초의 학생운동 연합체인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이 결성되었다.
  • 4월 15일 -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에 대한 외부의 압력을 배격하고자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발표하였다.
  • 4월 16일 - 한국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발표하였다.
    • 김재준 등 재야인사들이 '민주수호 국민협의회'를 결성했다.
    • 경향신문, 신아일보, MBC 기자들은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발표하였다.
  • 4월 20일 - 합동/동양통신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발표하였다.
  • 4월 21일 - 4.19 및 6.3 항쟁 참가학생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수호청년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7일 -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져 박정희김대중을 이기고 3선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5월부터 대학생들이 부정선거에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 5월 6일 - 신민당 진산파동이 발생하였다.
  • 5월 10일 - 청평호에서 버스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80명의 익사자가 발생했다.
  • 5월 25일 - 제8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이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113석을, 신민당은 89석을, 나머지는 2석을 각각 차지하였다.
  • 6월 3일 - 박정희 정권은 일대 개각을 단행하여 새 국무총리에 김종필을 임명하였다.
  • 6월 10일 - 미국중국에 대한 무역금지령을 종료했다.
  • 6월 12일 - 종전의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이 연세대 민권쟁취 청년단과 통합하여 '전국학생연맹'이 새로 결성되었다.
  • 6월 16일 - 국립의료원 인턴 집단사표 파동이 발생하였다.
  • 6월 17일 - 미국일본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통치 중이던 오키나와의 관리를 일본에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 6월 18일 - 미국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설립되었다. 이후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성공한 저가 항공사로서의 룰모델이 된다.
  • 7월 8일 -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 7월 9일 - 영국군 약 11,000명이 북아일랜드에 진주한다.
  • 7월 16일 - 스페인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자신의 사후 왕정복귀를 선언하고 후안 카를로스를 차기 왕으로 지명한다.
  • 7월 20일 - 이날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새 당수에 김홍일을 선출시켰다.
  • 7월 26일 - 이날 국회의장에 백두진, 부의장에 장경순/정해영을 주축으로 한 제8대 국회가 개원되었다.
  • 7월 28일 - 서울지검은 이범열 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이에 다음날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사표를 집단 제출하여 사법파동으로 확대되었다.
  • 8월 6일 - 북한의 김일성은 이날 캄보디아 싸이아누 국왕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 연설에서 남한의 민주공화당 등 각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접촉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하였다.
  • 8월 10일 - 경기도 광주군에서 엉터리 주거대책에 격분한 주민들에 의해 광주대단지사건이 일어났다.
  • 8월 12일 - 대한적십자사는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을 제의하였다.
  • 8월 14일 - 바레인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8월 18일 - 서울대 문리대 교수들이 대학의 자율성과 처우개선, 도서/실험실습 시설 확충 등을 요구하며 자주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각 대학에 파급되었다.
  • 8월 20일 - 남북 양국 적십자사 연락관이 분단 26년만에 만나 연락장을 교환하였다.
  • 8월 23일 - 실미도 사건이 일어났다.
  • 8월 28일 -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사표를 철회하면서 사법파동이 마무리지어졌다.
  • 9월 3일 - 카타르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9월 13일 - 중국에서 린뱌오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 쿠데타 주모자들은 소련으로 망명하다 비행기 추락으로 전원 사망했다.
  • 9월 15일 -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들이 체납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대한항공 본사를 점거/방화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9월 19일 - MBC FM4U가 개국하다. 그때 이날 개국해서 그런지 주파수도 91.9MHz다(...)
  • 9월 20일 - 남한과 북한의 적십자사가 남북이산가족 찾기 예비회담을 개최하였다.
  • 10월 2일 - 국회는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3일 뒤 길재호와 김성곤 의원이 당을 나갔다.
  • 10월 5일 - 수경사 장병 22명이 고려대에 난입해 학생들을 무차별 폭행했다[2](고려대 무장군인 난입사건).
  • 10월 6일 - 이날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3차 예비회담에서 남북 양국은 본회의를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 것에 합의하였다.
  • 10월 15일 - 박정희 대통령은 학원질서 확립을 위해 서울 전역에 위수령을 선포하여 10개 대학 휴업, 서클 74개 해체, 7개 대학 학생회 기능 정지, 미등록 간행물 13종을 폐간시키고 1,889명을 강제 연행하였다.
  • 10월 27일 - 콩고민주공화국이 국명을 '자이르'로 바꾸었다.
  • 11월 11일 - 한국천주교주교단은 부정부패, 빈부격차, 도의타락 등의 시정요구를 담은 공동교서를 발표하였다.
  • 11월 23일 - UNSC에서 중국중화민국을 대신하여 모든 권리를 이어받았다. 중화민국은 이후 UN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 이날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11차 예비회담에서 남북 양국은 이산가족 찾기에 친척도 포함키로 하였다.
    • 파키스탄군의 선공으로 제3차 인도 공화국-파키스탄 전쟁(혹은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 12월 6일 -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 12월 8일 -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서태평양의 제7함대를 벵골만으로 급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12월 9일 - 파월 국군 병력이 6년만에 철수하였다.
  • 12월 10일 - 대한민국에 첫 민방공 훈련이 개시되었다.
  • 12월 14일 - 파키스탄군이 패배에 직면하자 동파키스탄에서 방글라데시 지식인 1,500여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12월 16일 - 파키스탄군인도군에 전면 항복함으로서 제3차 인도 공화국-파키스탄 전쟁이 끝나고 방글라데시가 독립했다.
  • 12월 17일 - 재일 북송교포 237명이 자비북송 형식으로 일본 니카타항을 출발하였다.
  • 12월 27일 -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국가보위법)'이 국회 변칙 통과 및 제정되어 유신체제로 가는 길이 형성되었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인물[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 바니걸스(토끼소녀)

5.2. 만화계[편집]

5.3. 스포츠[편집]

[1] 엄밀히 말하면 가장 출생아 수가 많은 해는 1960년이다. 하지만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아서 71년생보다 인구가 적으므로 가장 인구 수가 많은 세대인 건 맞다.[2] 이유는 고려대생이 작성한 부정축재자 명단에 윤필용, 이후락, 박종규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1970년 11월 17일생이라는 곳도 있는데, 확인바람.[4] KOF 시리즈에선 시공이 꼬여서 생일만 같을 뿐 연도는 다르다.[5] 일단 별자리가 물병자리라는 공식 설정이 있어서, 1월 21일 ~ 2월 18일 사이인 빠른 생일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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