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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 Roarin' 20s
파일:HD-wallpaper-new-york-city-colorised-usa-nyc-america-rare-1930s-1920s-vintage.jpg
1920년대 뉴욕 거리
1. 개요2. 배경3. 사회상4. 종말

1. 개요[편집]

미국의 1920년대 시기를 말한다. 광란이란 말에서 짐작이 가듯 이게 유지되지 못하고 대공황을 맞으면서 호황기 직후 몰락을 자초한 시대이기도 했다. 즉, 어떻게 보면 거품의 시대 인것이다.

2. 배경[편집]

미국은 여러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로 시작했다. 미국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하기는 했지만 이를 위해 프랑스의 막대한 군사지원과 차관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초창기 미국은 현대 강대국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루이지애나 매입, 미국-멕시코 전쟁, 알래스카 매입 등으로 얻은 광대한 영토와 그곳에서 나온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미국은 유럽 국가들을 추격한다. 하지만 여전히 벨 에포크로 대표되는 전성기를 누리던 유럽은 미국에 앞선 상황이었는데, 이런 미국과 유럽의 국력이 역전되는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1차대전에 휩쓸린 유럽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는데, 독일, 오스트리아 같은 패전국 제국들은 제국이 공중분해되고 불황에 시달렸으며, 비록 승전국이었어도 전쟁에 직접적으로 휩쓸린 영국, 프랑스에도 천문학적인 재건비용 때문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미국은 본토가 전쟁 피해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특수를 누리면서[1] 유럽이 전후 복구 때문에 정체된 동안 약진하기 시작하여 1920년대부터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3. 사회상[편집]

미국은 연 평균 경제성장률을 9% 이상 유지하며 호황을 누렸다.

이 당시 제조업을 위시로 한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혁신으로 인해 공산품의 생산량과 생산효율이 크게 증대되었고 비약적으로 성장한 산업은 대규모의 고용을 창출하여 중산층을 크게 확대시켰다. 또한 경제호황으로 인한 전반적인 소득 증대와 금융의 발전으로 할부 구매 등 현대적인 소비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쳐서 1920년대의 인류는 상당수가 구경도 못해본 라디오를 비롯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비롯한 신문물들이 당시의 미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중화,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 대중화는 컨베이어 벨트에 의한 조립 라인을 최초로 실용화하여 대량생산 체제를 구현해낸 포드 자동차 등 제조업의 혁신과 발전에 힘입은 바가 컸다. 특히 포드 모델 T는 광란의 20년대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차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포드 모델 T의 전성기에는 24초당 1대가 제조되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생산량을 자랑했으며, 1927년까지 무려 15,007,033대가 판매되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1920년대 미국의 도로는 포드 모델 T로 채워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중산층에 자동차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미국에서는 자가용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이런 자동차 산업의 급진적 성장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자동차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철강, 유리, 고무 등 수많은 다양한 소재를 만들어내야 하는 다양한 제조업들은 물론이고 만들어진 자동차를 움직일 석유를 가공하고 정유할 석유, 화학 공업, 그리고 자동차가 달려야 하는 도로와 다리 등을 지어내야 할 건설 산업까지 말그대로 근현대의 주요 핵심 산업들이 모두 자동차 산업에 얽혀있다. 자동차 산업이 괜히 근현대 산업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이 당시 자동차 생산량의 폭발적인 증대는 단순히 자동차 산업 하나의 성장만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을 뒷받침하는 여러 기반산업들 또한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급격한 생산 증가를 감당할 역량이 있다는 증거였다.

라디오 등 가전제품의 대대적인 상용화 역시 미국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최초로 등장한 방송매체인 라디오가 1920년대 1가구당 1대 수준에 가깝게 널리 보급되면서 미국인들은 대중음악, 연속극, 토크쇼 등 다양한 컨텐츠를 집에서 간편하게 매일 저녁마다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대중문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왔다. 라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광고 단가가 높아지자 수많은 상업 라디오 방송국이 생겨나 경쟁하면서 청취자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다양한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한 투자가 이어졌다. 바야흐로 현대적인 상업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 라디오가 얼마나 많이 생산되었는지 알려주는 일화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자신의 저택이던 허스트 캐슬 지하에 각 방송국 주파수별로 튜닝된 라디오를 몇 대씩 늘어놓고선 오디오 마니아들마냥 방송을 돌려가며 즐겼다고 한다. 당시 라디오는 주파수 튜닝하기가 까다로웠기 때문.

2차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며 각종 공학 기술도 크게 약진하였다. 공장 자체적으로 석탄, 석유 등을 태워 증기기관을 작동시키는 기존 방식 대신 대규모 화력발전소, 전력망 등의 기반시설을 건설해 전력을 공급받아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전환이 시작되었으며, 1920년대 동안 미국의 전력 생산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항공 분야의 경우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최초로 단독비행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데 성공하면서 장거리 항공 운송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찰스 린드버그는 이후에도 미국의 민간 상업 항공 산업과 항공 운송 산업의 기초를 닦는데 크게 공헌한다.

건축 분야에선 마천루 등 고층건물 건축의 노하우가 축적되기 시작하는데, 뉴욕에 세계 최초로 300m 높이를 돌파한 318m의 크라이슬러 빌딩(1928년 9월 착공, 1930년 5월 완공) 건설이 이루어진 것도 1920년대였다. 그리고 이 시기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300m는 고사하고 고층빌딩이라는 것 자체도 없는 나라가 부지기수였다.

4. 종말[편집]

그러나 이런 화려한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당대부터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생산의 자동화로 인한 실업 문제, 유효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과잉생산 등 문제점이 쌓여가고 있었고 이를 정부가 방치하면서 결국 20년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산시장이 붕괴, 결국 1929년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쉽게 말해 거품경제였다는 것이다. 대공황이 터지자 몇년 안가 (자료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미국 GDP는 약 3~40%, 시가총액은 약 90%가 증발하고 만다. 이렇게 휘청이던 미국 경제는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야 겨우 회복된다.
[1] 다만 미국 역시 전쟁에 참전하면서 많은 피해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