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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추존 황제
悼皇考 | 도황고
없음
도황고(悼皇考)
유(劉)
진(進)
부황
여황조고(戾皇祖考)
모후
여후(戾后)
황후
도후(悼后)
생몰
기원전 113년 ~ 기원전 91년

1. 개요2. 추존3. 가족4. 참고 항목

1. 개요[편집]

전한황족으로 한무제태자유거사양제(史良娣)의 아들이다. 는 사황손(史皇孫). 사후 아들이 선제로 즉위하자 시호를 "도(悼)"로 하였으며, 황제의 친부라는 황고(皇考)를 붙여 도황고(悼皇考)로 칭해진다.

아버지 유거가 무고의 화로 인해 박해를 받고 거병했으나 패하고 도주 후 자결하면서 유진도 살해당했다. 유진에겐 아들 유문이 있었는데 그가 선제이다. 유진의 처첩으로는 선제의 생모인 왕옹수가 있었으며, 사서에는 왕부인(王夫人)으로 칭해졌고 무고의 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이후 선제가 즉위하자 도후(悼后)로 추존되었다.

2. 추존[편집]

案義奏親諡曰『悼』,裁置奉邑,皆應經義。相奏悼園稱『皇考』,立廟,益民為縣,違離祖統,乖繆本義。父為士,子為天子,祭以天子者,乃謂若虞舜、夏禹、殷湯、周文、漢之高祖受命而王者也,非謂繼祖統為後者也。臣請皇高祖考廟奉明園毀勿修,罷南陵、雲陵為縣。」奏可。

채의(蔡義)가 부친의 시호를 "도(悼)"라 하고, 생모(사양제)를 "도후(悼后)"라고 해야 하며, 무덤은 제후왕의 원(園)과 대등하게 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렇게 결정하고 8년이 지나) 승상 위상(魏相)이 "예법에 부친이 선비이고, 아들이 천자(天子)이면 부친의 제사를 천자의 예로 지낸다"라고 건의하니 "도왕(悼王)"에게 존호를 올려 황고(皇考)라 칭하고, 황고묘(皇考廟)를 건립했다. - 한서/권73

본래 유진의 시호는 "도(悼)"의 한 자만 내려지고, 제후왕의 예로 원(園)에 안장되었으나, 8년이 지나 승상 위상(魏相)이 "아들이 천자이면 제사를 천자의 예로 지낸다."는 건의에 따라 도왕(悼王)에게 "황고(皇考)"의 존호를 올린 후, 황고묘(皇考廟)를 건립하여 천자로 모셨다. 그렇기에 도황고는 추존 황제로 분류된다.

3. 가족[편집]

4. 참고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