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를 맞이할 당시 세계는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지만,
서력기원으로만 새천년이지 사실은 의미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Y2K 문제로 인해 전세계가 공포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애초에 치명적인 오류를 야기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90년,
대한민국에서는
1998년 가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IT버블이 꺼지면서 엄청난 양의
파산자가 속출한 해이기도 하다. 실제로
1997년 외환 위기 때 파산한 사람보다 IT버블 붕괴로 인한 주가폭락 때문에 파산한 사람이 더 많았다. 특히 한국경제 성장의 새 원동력으로 기대되었던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기존
재벌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에 기대는 등 도덕적 문제점마저 노출해 많은 실망을 샀다.
2001년에 터진 정현준 게이트라든가 골드뱅크 김진호 사건이라든가 기타 등등.
# 2000년 한국 증시 10대 사건 기사그러나 정작
2010년대의 미국인들에게는
9.11 테러가 나기 직전의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해가 2000년이 되어버렸다! 이는 정당을 가리지 않는데, 이 설문의 결과는 정확히 2000년이 살기 좋았다기보다는 9.11 이전이란 상징성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여기는 90년대 호황기의 정점에 달했던 해이기도 하고.
# 관련 기사대한민국에
인터넷 시대가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첫 해이기도 하다.
1999년에 시작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이해에 점차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기존의
PC통신 동호회를 대체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2]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HTML 태그를 비롯한
Java를 배운 고급 사용자나 관련 사업자들의 영역이었던
홈페이지 개설 및 운영이, 인터넷 서비스 업체 및 각종 포털 사이트들에서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사용자들도 손쉽게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게 되어 당시에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 열풍이 불며 급속도로 대중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3] 휴대폰으로 직접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가 시작되기도 했다.
[4]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보통신의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통칭 통신질서확립법)' 파동으로 공권력 차원에서의 인터넷 검열이 본격적으로 시도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통신질서확립법 반대 사이트 2000년 통신질서확립법 반대운동 백서인터넷 문화의 발달에 따라
소리바다 등을 통한
MP3 불법다운로드가 막 활성화되던 시점이었기에 국내 음반시장의 마지막
황금기로 기록되는 해이다.
# 조성모,
서태지,
god는 이 해에 발매한 정규앨범에서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특히
조성모는 3집 정규앨범 외에도 2.5집 리메이크 앨범까지도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2000년 발매 앨범의 판매고 순위 1위와 2위를 석권하는 등 그야말로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의
리즈시절을 보낸다. 특히 2000년에는
조성모,
서태지,
SES,
핑클,
god,
H.O.T.,
신화,
베이비복스,
스티브 유,
임창정,
홍경민,
엄정화,
박지윤,
이현도,
쿨,
코요태,
샾,
컨츄리꼬꼬,
DJ DOC,
1TYM 등의 당시 가요계의 톱스타나 중박 이상의 스타들이 한꺼번에 컴백하여 활동하면서 당시 데뷔했던 신인인
BoA,
샤크라,
UN,
J.ae,
문차일드 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흑역사로 사라졌던 시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데뷔하여 훗날에 가장 성공한 스타는
BoA가 유일하지만 거대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전략적으로 밀어준 효과가 컸다고 볼 수 있으며, 데뷔 초반에는 문희준에 버금가는 엄청난 악플에 시달리며 무척 고전했다가 일본에서 대박을 치고 2002년 발표한 No.1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급상승한 케이스다.
한편 이해의 초등학교 1학년(2000년 초등 신입생
[5]), 2학년(1999년 초등 신입생
[6])부터 그 유명한
제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1945년 남북분단 이래 사상 최초로 대통령
김대중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만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고 같은 해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호주에서 열렸던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동시입장을 하는 등 남북관계가 급변을 하였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평화 통일에 대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나이 계산이 필요없다.
[7] 오직
만나이(연나이)만 년도 뒷자리가 같다.
가톨릭에서는 2000년을 대
희년으로 선포해 두 번째 밀레니엄을 기념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평화 문화의 해'와 '세계 감사의 해'로 지정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0년
올해의 한자는 '金(쇠 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