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mbc에서 보도된 국내 연도별 10대 뉴스이다.이 해는
대한민국에게 매우 다사다난했던 해로 기억한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고,
지방 선거투표율은 월드컵 때문에 역대 최저와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노무현 열풍과,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로 2002년 내내 화젯거리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월드컵 열기로 인해 젊은 남녀들이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잦아, 10대
성폭행 비율도 가장 높았던 해이며, 월드컵 기간으로부터 약 10개월 뒤인 2003년 3~4월에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기도 했다...
[1]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등 최고의 업적을 쌓는데 성공한다. 대표팀 감독이던
히딩크 신드롬이
한국 전체에 퍼졌으며,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홍명보,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안정환 등등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붉은 악마로부터 시작된 응원은 가히 전 국민적이어서,
한국 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 앞 사거리와, 서울 시청 앞을 가득 메웠다. <오 필승 코리아>, <
대~한.민.국> 응원은 전국민이 알고있던 응원가. 당시
대학교들은 월드컵 기간에 수업이 있으면 월드컵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종강을 예년에 비해 일찍 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01, 02학번의 상당수는 여름방학을 빨리 했다고 한다.
반면
프로야구는 사상 최저 관중을 기록하여
[2] 엄청난 불황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가 준PO를 시작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켰고, 21시즌 간
KBO 한국시리즈 한정
콩라인(...)에 묶여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9회말
이승엽,
마해영의 드라마틱한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극적으로
콩라인에 탈출함과 동시에 염원이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하여 화제가 됐다.
LG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덤 그 전에
대구 오리온스가
서울 SK 나이츠를 꺾고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2년은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스포츠 팀 2개가 우승한 해이기도 하다.그리고 월드컵이 끝나가나 싶더니
제2연평해전으로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경직되었으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오노와
김동성 선수 간 논란과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 반미 정서는 2003년 봄까지 계속된다.
국제적으로는 일단
작년의
그 사건으로 인하여 전세계가 계속
테러의 위협에 떨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부시가 이 해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 그리고
여기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무자비한 테러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전세계에 표명하였다. 그리고
북핵 위협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기도 한 해였다.
북한이
IAEA 사찰단 전원 추방을 결정하고
핵 시설 재가동화를 공식화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늘 언제나 그래왔잖아?대 테러 위협과 북핵 등으로 인하여 증시, 유가, 달러에 금값까지 떨어지는 그 경제 불황 속에서도 전세계 주택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은 구가했다. 증시 침체 여파로 주식을 버린 투자자들이 주택 시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주택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로
대치동 등을 위시한
강남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역들의 아파트 가치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 해 부터 '디지털 TV'로 불리는
HD 본방송이 공중파 방송국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HD로 제작된다.
[3] 특히
SBS의 경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주요 경기를
HD 방송으로 생중계해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였고, 화면 품질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도가 매우 좋아서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의 HD 방송 중계영상을 DVD판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HD 방송은 시작됐어도 정작 HD 방송을 볼 수 있는 HDTV 보급율은 단
2%에 불과해 HD 방송의 의미가 많이 없었다.
[4] 홍보하려는 노력이 적었고 이 당시까지만 해도 디지털 TV의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다가
[5][6] 1980년대 초반처럼 아예 흑백에서 컬러로 볼 수 있는 식이 아니고 채널도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닐 뿐더러 화질이 좋다는 점 정도라서 메리트가 적었기 때문(...).
[7]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투명드래곤이 연재되고
긴급조치 19호,
아유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충무로의 재앙급 영화가 나타나는 등 문화계에 있어서 아주 풍성한(…) 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가요계 역시 이 해에 있어서 거의 흑역사를 남겨놓았는데
밀크,
신비,
블랙비트,
SWI-T,
LUV,
QOQ 등 혜성(?) 같이 데뷔했던 댄스그룹들이 하나 같이 딱 이 해에 앨범만 내고 소리소문없이 해체 내지는 개인활동을 하는 수순을 밟았다.
[8] 그러나 현재 힙합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리쌍,
MC스나이퍼, R&B가수로 손꼽히는
휘성, 현재 아시아스타라 불리는
비가 데뷔한 해라는 것을 곱씹으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 이 해 지상파 방송 3사 가요대상은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이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한
보아와 전국적으로 '장나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국민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장나라의 여인천하 대결이었고, 결국
장나라는 KBS와 MBC의 대상을 차지하고,
보아는 SBS 한 곳만 가져가게 되면서 최종적으로는
장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9]영화 부문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호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파이더맨,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속편 등이 이 해에 몰아서 나왔다.(...) 덕분에 전세계 영화 관련 매출은
2001년 643억 달러에서 11.8% 증가한 719억 달러로 당시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10]드라마 부문에서는
김두한 의 일대기를 그린
야인시대 가 7월29일 부터 SBS에서 방영이 시작 되었다. 2002년 상반기가
월드컵 열풍이라면 하반기는
야인시대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2년도
야인시대 드라마의 주 배경이 바로 청년
김두한 일제시대시절 모습 이다. 당시 2002년도는 월드컵 여파로 인해 국민들이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는데,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가 이러한 애국심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야인시대 에서 유행하는 패션또한 화재였다. 중절모와 트랜치코트 등등 모든 백화점이나 매장에 가면 손쉽게 볼수가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되어 많은 우려도 남기기도 하였고, "긴또깡" "오야붕" 등등 많은 유행어 또한 화재였다. 또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청년 김두한 역을 맡아 열연을 하였던
안재모는 2002년 하반기에 최고의 스타로 떠올라 2002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는 쾌거를 누리기도 하였다. 또한
장서희도 2002년
인어 아가씨를 통해서 엄청난 연기력으로 복수극에 몰입도를 높이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그 해에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수상하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그녀는 복수극의 달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유동근도
이미연에서
최명길로 극 도중에 배우가 교체되면서 큰 좌초를 겪고 있었던
명성황후에서 정말 열연을 보여주면서 그 해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한다.
한펀 이 해에 대학교에 입학한 02학번 새내기들을
산소(O
2) 학번이라 부르기도 했다.
2020년에도 재현할 수 있을 듯 아카링~이 해의 고등학교 신입생부터
[11]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과정이 적용되었다.
이 해에 태어나게 된 이들은
월드컵둥이로 불린다.
아폴로눈병이 초중고교생들 사이에 대유행한 해이기도 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2년
올해의 한자는 '帰 (돌아갈 귀)'였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S.E.S와
핑클이 해체하면서
[12][13] 2007년
원더걸스가 데뷔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걸그룹 시장은 침체를 맞는다. 하지만 두 그룹이 해체한 사이 베이비복스는 '우연' 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핑클, S.E.S.의 해체로 1세대 아이돌 시대는 2002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 해에 태어난 학생들이 2000년대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마지막 세대가 된다.
[14] 또한 학교에서 좌측보행을 배운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15]음반시장이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시기였다. 비록 밀리언셀러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1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미연 베스트셀러와 god 4집, 김건모 7집의 판매량을 제외하며 2001년과 비슷했다. 이 후 음반시장은 그 다음해인 2003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게임은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다. 2월에
플레이스테이션 2가 국내에 정식 발매됐으며 12월에는
게임큐브,
엑스박스가 정식 발매되었다. 특히 PS2 타이틀들은 액션, RPG, 레이싱 등 다양한 타이틀들이 선보였으며
철권 4 같은 인기 타이틀의 한글화도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졌다. 온라인 게임은 여러 타이틀들이 오픈에 들어갔거나 정식서비스에 들어갔다. 그중에
라그나로크 온라인,
임진록 온라인 거상,
아스가르드 등이 정식서비스에 돌입했으며
테일즈위버 등의 오픈베타도 실시했다. 그 해 연말에는
마비노기의 제작 발표가 공개되어 많은 사용자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PC 게임은 여름에 출시한
워크래프트 3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 해를 기점으로 국내 PC 게임 타이틀 시장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그 해
도쿄 게임쇼에서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를 3대 콘솔 타이틀로 만들 것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지만 정작 개발은 중단된 상태(...).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생태관광의 해'와 '세계 산의 해',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