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청산했다는 이미지로 인해, 일본의 태도를 비판할 때 모범 답안으로 독일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독일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제국주의 문제는 일본보다 낫다고 볼 여지는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독일이 나치즘은 흑역사로 여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역시도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와
카미카제,
카이텐 등 인명 경시는 분명하게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난징 대학살이 존재하였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가 일본인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많았다는 점,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는 점, 군의 관여 하에서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줬다는 점,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다는 점,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하여 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는
[37] 인정하고 사과했다. 아시아 각국이 피해를 입은 전쟁 범죄들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즉
2차 대전 시기에 일어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독일 정부도 모두 공식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반면 한국인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제외하면) 2차대전 당시의 반인륜 범죄가 아니라, 20세기 초부터 일어난 식민통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것은 독일 역시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영국 프랑스조차 제국주의에 대해선 일절 사과 언급은 없었다.[38][39]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
일본인과
한국인의 관계'로 오해하여 벌어지는 것인데, 독일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합병한 적이 없었고, 유대인은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독일 땅에 살고 있었다. 즉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자국의(혹은 유럽 내의) 소수 민족에 대한 학살의 문제이며,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일본 제국은 엄밀히 말해서
나치 독일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며, 구
일본군은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같이 대응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 독일인들이 과거사를 대할 때 반성의 대상에서는
독일 제국과
독일 제국군과
제국주의는 보통 제외된다.
심지어
독일 국방군마저도 나쁜 것은 모조리
나치 친위대가 한 짓이라며 미화되는 경우가 많다. 민간 차원에서 볼 경우 옛
일본군에 대한 현 일본인들의 생각처럼, '나라를 위해 싸운 젊은이들'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체주의 등의 사상과는 선을 그으려 한다.
[40] 오늘날 일본인들이 2차 대전 당시의 각종 요소들, 이를테면
일본군의 군복이나 무기류 등을 대중 매체에서 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도 국방군의 티거 전차를 비롯한 무기류 등을 주구장창 잘만 미화했다. 그나마 국방군의 경우는 나치와 완전하게 선을 긋는 게 불가능해서 독일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제국군으로 시선을 돌리자면, 이들에 대한 독일인의 관점은 결코 모범답인이라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계속 강조되고 있지만, 일본군은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하므로, 당연히 독일 제국군에 대한 현 독일인들의 관점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에 대한 관점 차이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켄크로이츠는
나치즘의 상징이고 욱일기는
일본군의 상징이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군을
흑역사로 여기지 않으니, 당연히 욱일기를 금지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이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한 것은 나치즘의 청산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만약 하켄크로이츠가
나치즘의 상징이 아니라
독일 제국군과 국방군의 공통되는 상징이었다면 독일이 금지하였을까?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41]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하여 일본과는 비교된다'는 관점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쪽에서 독일을 조금 옹호하자면, 2차 대전 이후 추축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비판은
전체주의와 학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나오지 않는 점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이야기로 가자면,
영국이든
프랑스든 자기들도 했던 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추축국들의 과거사 반성에서는 제국주의는 '그때는 외국도 그랬음'이라는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가기 쉬웠다.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파고 들자면, 제국주의는 옛 추축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옛 열강 국가들이 모두 반성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으며, 당연히 독일과 일본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라
2차대전 쯤에 벌어진 반인륜 범죄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독일이 일본보다는 그나마 태도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나치독일때 벌어진 잔혹한 행위들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자세히 밝히며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교육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선 매우 성의없이 넘어가며
[42]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원폭 투하등 자국 피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가르침으로써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띄우는 등 독일에 비해서 이 문제로 잡음이 많다. 옛 군대에 대한 태도를 거론하자면 일본군이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되니까 독일이 잘 청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2차 대전 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은 일본보다는 반성적인 태도를 많이 보여왔다.
결국 이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비교하여 정리하자면 이렇게 결론이 날 것이다.
1.
전체주의 체제와
2차 대전에 대한 관점에서는, 독일이 여러 문제점은 남아있을지언정 그래도 일본보다는 확실히 잡음이 적다는 게 중론이다.
2. 대다수의 한국인이 문제삼고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위안부와 간토대학살등의 식민통치시기의 반인륜적 집단범죄들이지 식민통치 그 자체가 아니란 견해도 있지만, 애초 한일 강제병합 자체가 그러한 반인륜적 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 기본적 토양을 조성한 역사적 범죄행위였다는 점, 그리고 당시 일본을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행한 전세계적 단위의 침탈행위가 오늘날 명백히 역사적 과오로서 평가되고 있는 현황을 돌이켜 봄, 제국주의적 강점 행위와 강점 후 자행한 추가적 침탈범죄를 분리해서 따지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각계각층이 일본의 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 처럼, 독일이 제2제국 시절 자행한 대학살극의 피해자인 나미비아의 부족들 또한, 2017년 초 부족 차원에서 미국 법원에 독일 정부에 대한 피해 보상 소송을 청구하는 등
[43], 독일을 상대로 꾸준히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청산을 요구중에 있다. 아직 독일이 제2제국의 식민범죄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 일본의 모범이 될 수 없단걸 보여주는 명징한 일례랄 수 있겠다.
3. 근대 이래 제국주의적 차원에서 자행되어 온 역사적 범죄는, 비단 한국과 일본간에서의 관계 뿐이 아닌, 범세계적 차원에서 야기되었던게 사실이고, 그러므로 한국이 역사적으로 입은 제국주의적 피해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런 범세계적 차원의 보편사에 대한 이해가 동반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즉슨, 분명 구제국주의적 범죄에 대해 온전히 반성하고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독일을, 일본과 비견해 무슨 역사반성의 모범적 사례인양 추켜세우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 식 논리가, 한국사회 전반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경계되고 바로잡혀져야 할 현황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