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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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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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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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캅카스 산맥 이북의 일부 지역만이 동유럽에 속해있다.
2우랄 강 이서의 일부 지역만이 동유럽에 속해있다.
APEC 가입국/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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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국(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압력으로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함.

러시아 연방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Russian Federation
파일:러시아 국기.sv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국화
역사
지리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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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145,912,022명(2021년) | 세계 9위
민족 구성
러시아인 81%, 타타르족 3.7%, 우크라이나인 1.4%, 바시키르인 1.1%, 추바시인 1%, 체첸인 0.8%, 기타 및 미집계 11%
인구밀도
8.37명/㎢
출산율
1.61명(2018년)
공용 언어
공용 문자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기독교 73%[9],무종교 15%, 이슬람 10% 등
군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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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관구
8개
일반
22공화국, 46, 9지방, 3연방시, 4자치구, 1자치주[10]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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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167개국 중 124위 (2020년)[권위주의체제]
국가 요인
연방평의회의장
(상원)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국가두마의장
(하원)
뱌체슬라프 볼로딘
연방대법원장
뱌체슬라프 레베데프
헌법재판소장
발레리 조리킨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옐라 팜필로바
여당
없음(법적) / 통합 러시아(실질적)[13]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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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경제, 토지 사유제[14], 상대적 소유권, 제한적 사적 자치
전체 GDP
$1조 4,640억(2020년 10월) / 세계 11위
1인당 GDP
$9,972(2020년 10월) / 세계 61위
전체 GDP
$4조 217억(2020년 10월) / 세계 6위
1인당 GDP
$27,394(2020년 10월) / 세계 50위
$3조 380억 / 세계 20위(2020년)
수출입액
수출
$3,378억(2015년) / 세계 15위
수입
$3,239억(2014년) / 세계 17위
$5,944억(2020년 8월)
신용 등급
무디스 Ba1
S&P BBB
Fitch BBB
화폐
공식 화폐
RUB
국가 예산
1년 세입
$1,865억(2016년)
1년 세출
$2,366억(2017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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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시간대
UTC+2 ~ +12[15]
도량형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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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국제연합 가입
1945년(소련 승계[19])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60일
주한대사관 / 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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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러시아대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43
주부산러시아
총영사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94
주인천러시아
명예총영사관
인천광역시 연수구 갯벌로 12
.ru, .su,[20] .рф[21]
국가 코드
643, RU, RUS[22]
국제 전화 코드
여행경보
철수권고
특별여행주의보
적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SARS-CoV-2]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역사4. 자연환경
4.1. 영토4.2. 기후
5. 인문환경
5.1. 인구5.2. 민족5.3. 언어5.4. 종교
5.4.1. 정교회5.4.2. 이슬람교5.4.3. 유대교5.4.4. 불교5.4.5. 기타 종교
5.5. 기행
6. 행정구역7. 정치
7.1. 외교7.2. 국력
8. 경제
8.1. 항공산업8.2. 우주산업
9. 사회
9.1. 치안
9.1.1. 과거의 치안
9.2. 사회 문제
10. 문화
10.1. 유럽과 아시아 사이10.2. 관광10.3. 음악10.4. 영화10.5. 음식
10.5.1. 차(茶) 문화10.5.2. 음주
10.6. 전통공예10.7. 학문
10.7.1. 과학10.7.2. 인문학
10.8. 교육10.9. 스포츠
10.9.1. 웨이트 트레이닝10.9.2. 격투기10.9.3. 국제대회
10.10. 비디오 게임
11. 군사12.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러시아 또는 러시아 연방은 동유럽에서 북아시아까지 걸쳐 있는 유라시아 국가수도모스크바(Москва, Moscow)이다.

1945년 UN 창설 당시 원년 회원국이며,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을 승계한 이후 현재 UN 상임이사국으로 있다.[26] G20의 참가국이다. 기존 G8의 라스트 멤버이기도 했다. 또한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독립국가연합의 창설국 중 하나이며, 2012년 1월에는 유라시아 연합을 창설했다. 브릭스(BRICs)에서 R가 러시아에 해당한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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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러시아 연방, 러시아(표준어)
로씨야련방, 로씨야(문화어)
ロシア連邦, ロシア
俄罗斯联邦, 俄罗斯
Russian Federation, Russia
Russische Föderation, Russland
Federazione Russa, Russia
Federación Rusa, Rusia
Federação Russa, Rússia
Ρωσική Ομοσπονδία, Ρωσία
الاتحاد الروسي, روسيا
Русия Федерациясе, Русия
Rusiye Federatsiyası, Rusiye
Раççей Патшалăхĕ, Раççей
Рәсәй Федерацияһы, Рәсәй
Росси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Россия Феделасияз, Россия
Росси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Рочму Федерация, Рочму
Росси́н Федера́ци, Росси
Россе Федераци, Эрсече
Урысые Федерацие, Урысые
Урысей Федерациэ, Урысей
Уæрæсейы Федераци, Уæрæсе
Әрәсән Федерац, Әрәсә
Оросой холбоото улас, Росси
Росі́йська Федера́ція, Росі́я
Расі́йская Федэра́цыя, Расія
რუსეთის ფედერაცია, რუსეთი
Ռուսաստանի Դաշնություն, Ռուսաստան
Rusiya Federasiyası, Rusiya
Оросын Холбооны Улс, Орос
Rusya Federasyonu, Rusya
Rusia Federacio, Rusio
국호의 유래는 러시아인의 근간인 동슬라브인, 혹은 그들이 사는 땅을 가리키는 단어인 '루스(Русь / Rusʹ)'이다. 자국어 국호인 '로시야(Росси́я / Rossíja)'는 중세 그리스어로 '루스'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던 '로시아(Ῥωσσία / Rhōssía)'에서 유래한다. 현대 러시아어에서는 강세와 모음약화로 인해 'Росси́я'를 '[rɐˈsʲiɪ̯ə](라시여)'에 가깝게 발음한다. 현대 러시아어에서는 전치사 в-가 결합된 вв [vː], мм [mː], нн [nː], 어두 cc [sː]를 비롯해 새로운 음이 만들어지거나 병합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표기상의 이중자음은 자음 겹침이 일어나지 않는 단자음과 같이 발음한다. 따라서 Росси́я의 경우도 Роси́я로 쓰는 것과 발음이 같은 셈인데 이를 굳이 Росси́я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스어 어원을 중시한 것이다.

한국 표준어에서 차용한 영어식 표현인 러시아는 16세기 무렵에 사용된 현대 라틴어식 표현인 '루시아(Russia)'가 어원이며 전통적인 중세 라틴어식 표현은 '루테니아(Ruthenia)'이다. 2005년 제정된 러시아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러시아어 국호를 따라 '로시야'로 쓰는 것이 맞겠지만 이미 굳게 정착한 표기를 뒤집기 힘들어서인지 지금도 표준 표기는 '러시아'이다. 북한 문화어로는 러시아어에서 직접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로씨야'를 쓴다.

원래 러시아라는 명칭은 전통적으로 국명이라기보다는 지역명이었으며 루스와 구별되는 이름은 아니었다. 이는 벨라루스를 일컫는 다른 이름인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남부를 일컫는 소러시아, 벨라루스 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흑러시아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슬라브족 국가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이 15세기 이후 동슬라브족이 중심이 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역을 거의 통일해 '루스' 혹은 '러시아' 지역의 대표 국가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국호를 루스 차르국(Ру́сское ца́рство)으로 바꿨고, 이후 표트르 대제가 그리스어 어원의 '로시아'를 채용해 러시아 제국(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을 선포했다. 이후 '러시아'가 지금까지 국명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를 한자로 옮긴 이름으로는 '노서아(露西亞)'와 '아라사(俄羅斯)'를 예로 들 수 있다. 전자는 일본어 한자 음차,[27] 후자는 중국어 한자 음차에서 비롯한 것이다. 노서아란 음차는 러시아어 '로시야(Росси́я / Rossíja)'를 옮긴 것이고 아라사란 음차는 고전 몽골어 '오루스(ᠣᠷᠤᠰ / Оrus)'를 차용한 만주어 '오로스(ᠣᡵᠣᠰ / Oros)'에서 유래한다.

한국어에서 한 글자로 줄여쓸 땐 '러'라고 한다. 아주 가끔 노서아에서 따온 '노(露)'를 쓰기도 한다.[28] 1990년대 후반까지 신문에서 한자를 자주 병용했을 때만 해도 신문기사 표제에서는 이 나라의 약칭을 '露'라고 적었다. 2021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露'로 약칭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거의 '러'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먼 과거엔 아라사에서 따온 '아(俄)'도 있었지만 아관파천 한 단어를 제외하고는 사장된 표현이다.

이렇게 대다수 언어에서는 '루스'에서 따온 말을 쓰지만 일부 언어에서는 다른 데서 유래한 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핀란드어에서는 러시아를 '베내얘(Venäjä)'라고 하는데 이는 게르만인들이 슬라브인을 부르던 말인 '위니다즈(*winidaz)'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작 루스에서 따온 말인 '루오치(Ruotsi)'는 스웨덴을 가리킨다.[29]

공식 국호는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이다. 러시아에서는 소련 이래로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독립 국가의 한 형태로 사용하기보다 정치적 연합체(주로 연방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사용하였다. 소련부터가 소비에트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수용한 공화국들의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련은 15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필요에 따라 다시 내부에 공화국을 설치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구소련이 해체되고 그것을 구성하던 공화국이었던 러시아가 독립국이 되자, 독립국이면서 스스로를 공화국으로 부르는 건 기존의 관행과 충돌하기에 '러시아 연방'이 공식 국호로 채택되었다. 어차피 지금 러시아 연방 내에도 공화국들이 연방을 구성하는 단위의 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어서 국호에서 뭔가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30]

2.2.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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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국기(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флаг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는 삼색기(Триколор)이다. 위에서부터 하얀색, 파란색, 빨간색 등의 가로형 3색순이다. 하얀색은 고귀함, 순결함, 진실, 자유, 독립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정직함, 충성심, 헌신, 순수함을 상징하며 빨간색은 용기, 지혜, 슬기로움, 사랑, 국가와 자신에 대한 희생정신을 나타낸다. 전통적으로는 천상세계, 푸른 하늘, 속세를 가리키는 해석도 있다.

원래는 국기가 아닌 상선(商船)에서만 사용하였던 상선기였다. 그러다 1883년 알렉산드르 3세가 해상 뿐만 아니라 육상에서도 사용할 것을 공표하면서 공식 국기로 승격되었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깃발로 대체되었고, 러시아 제국 시절의 국기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1991년 8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기를 삼색기로 재지정했으며, 그 후에 러시아 연방도 1993년까지 이 국기를 썼다. 이때의 국기는 지금 국기와는 다르게 중간 부분이 파란색이 더 옅었다. 소련 시절의 국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계엄령까지 선포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던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러시아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지금도 소련 시절의 상징물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국기를 썼던 러시아 제국슬라브 민족의 가장 영향력있는 국가였던 만큼, 러시아 국기에서 착안한 청(靑)-백(白)-적(赤) 조합이 범슬라브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슬로바키아, 체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의 국기가 러시아와 유사한 것은 이러한 이유. 이런 나라들은 국기에 자국의 국장을 반영해 러시아 국기와 구분한다.

2.3. 국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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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Our Homeland Ghana
La Concorde
Himno Nacional de Guatemala
파일:그리스 국기.svg
Ύμνος εις την Ελευθερίαν
Esta É a Nossa Pátria Bem Amada
Arise Oh Compatriots, Nigeria’s Call Obey
National Anthem of South Africa
Nasionale lied van Suid-Afrika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Het Wilhelmus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Ja, vi elsker dette landet
God Defend New Zealand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애국가
파일:덴마크 국기.svg
Der er et yndigt land
파일:독일 국기.svg
Deutschlandlied
Pátria
ເພງຊາດລາວ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Dievs, svētī Latviju!
파일:러시아 국기.svg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имн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لبناني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Deşteaptă-te române!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Ons Heemecht
Rwanda nziza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Tautiška giesmė
Oben am jungen Rhein
Forever Marshall Islands
Negaraku
Himno Nacional Mexicano
Hymne Monégasque
النشيد الشريف
نشيد وطني موريتاني
Oj, Svijetla Majska Zoro
Ој, свијетла мајска зоро
Limba noastră
L-Innu Malti
Монгол улсын төрийн дуулал
파일:미국 국기.svg
The Star Spangled Banner
ကမ္ဘာမကြေ
파일:바티칸 국기.svg
Hymnus Pontificius
“আমার সোনার বাংলা
Gloria al bravo pueblo
Tiến quân ca
La Brabançonne
De Brabançonne
Дзяржаўны гімн Рэспублікі Беларусь
Државна химна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
Državna himna Bosne i Hercegovine
འབྲུག་ཙན་དན་
Денес Над Македонија
애국가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Мила Родино
Hino Nacional Brasileiro
الله فليهاراكن سلطن
Allah Peliharakan Sultan
O le Fu’a o le Sa’olotoga o Samoa
عاش المليك
Боже правде
God Save Our Solomon Islands
ශ්‍රී ලංකා මාතා
ஸ்ரீ லங்கா தாயே
파일:스웨덴 국기.svg
Du Gamla, Du Fria
파일:스위스 국기.svg
Rufst du, mein Vaterland
파일:스페인 국기.svg
Himno Nacional Español
Nad Tatrou sa blýska
Zdravljica
حُمَاةَ الدِّيَارِ
Majulah Singapura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اماراتي
Մեր Հայրենիք
Himno Nacional Argentino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Lofsöngur
Hymne national d'Haïti
Amhrán na bhFiann
Azərbaycan Marşı
ملی سرود
El Gran Carlemany
Hymni i Flamurit
قسما
Angola Avante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Mu isamaa, mu õnn ja rõõm
파일:영국 국기.svg
God Save the Queen
الجمهورية المتحدة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Bundeshymn
Himno Nacional de Uruguay
Oʻzbekiston Respublikasining Davlat Madhiyasi
Ще не вмерла України
سرود ملی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موطني
הַתִּקְוָה
بلادي بلادي بلادي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Il Canto degli Italiani
जन गण मन
Indonesia Raya
파일:일본 국기.svg
君が代
Lumbanyeni Zambia
თავისუფლება
파일:대만 국기.svg
中華民國國歌
中華民國國旗歌
파일:중국 국기.svg
义勇军进行曲
Kalibusiswe Ilizwe leZimbabwe
Kde domov můj?
Himno Nacional de Chile
Менің Қазақстаным
នគររាជ
파일:캐나다 국기.svg
O Canada
Ô Canada
Европа
Debout Congolais
La Bayamesa
Lijepa naša domovino
Ύμνος εις την Ελευθερίαν
Суруди Миллӣ
Mungu ibariki Afrika
İstiklâl Marşı
เพลงชาติไทย
Garaşsyz, Bitarap Türkmenistanyň döwlet gimni
حماة الحمى
Himno Istemño
O Arise, All You Sons
قومی ترانہ
Belau rekid
فدائي
Himno Nacional del Perú
A Portuguesa
Mazurek Dąbrowskiego
파일:프랑스 국기.svg
La Marseillaise
Meda Dau Doka
파일:핀란드 국기.svg
Maamme
Lupang Hinirang
Himnusz
Advance Australia Fair
İstiklâl Marşı
Samo ku waar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Славься Республика, Наша Народная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имн Луганская Народная Республика
Слэвитэ сэ фий, Нистрене Slăvită să fii, Nistrene
자치지역의 국가
Nunarput utoqqarsuanngoravit
Песня о родной земле
Londonderry Air
Моја Република
Flower of Scotland
Hen Wlad Fy Nhadau
Els Segadors
Татар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Дәүләт гимны
파일:페로 제도 기.svg
Tú alfagra land mítt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노래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Horst-Wessel-Lied
Die Stem van Suid-Afrika
大韓帝國愛國歌
Heil dir im Siegerkranz
Auferstanden aus Ruinen
Патриотическая Песня
Гром победы, раздавайся!
Молитва русского народа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Rhodesia.svg.png
Rise O Voices of Rhodesia
الله اكبر
滿洲國建國歌
파일:미국 국기.svg
Hail, Columbia
ដប់ប្រាំពីរមេសាមហាជោគជ័យ
Tiếng Gọi Công Dân
Maréchal, nous voilà !
Интернациона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имн СССР
Himno de Riego
Naprej, zastava slave
문서 참조
Kaiserhymne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Хеј Словени
سرود شاهنشاهی ایران
Marcia Reale
Giovinezza
卿雲歌
鞏金甌
국가 외 단체의 상징가
La Espero
Ολυμπιακός Ύμνος
Anthem of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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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편집]

4. 자연환경[편집]


러시아의 그룹 리틀 빅(Little Big)이 편곡한 폴류시카 폴레, 드론으로 찍은 러시아의 다양한 지역들의 풍경을 담았다.

4.1. 영토[편집]

러시아의 아주 중요한 지리적 특징은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영토이다. 17,125,407㎢[31][32][33]로 세계 최대이다. 한반도 면적(약 22만 3천㎢)의 76.8배, 남한 면적(약 10만㎢) 170배에 달하며, 2위인 캐나다(약 998만㎢)와도 700만㎢ 이상 차이나는데 인도의 국토면적이 330만㎢도 안 된다. 무지막지한 영토 덕분에 러시아 본토 내의 두 지점 간에 가장 먼 거리가 7,900km가 넘는다. 우크라이나와 영유권 분쟁 중인[34] 크림반도까지 포함한다면 8,000km를 넘는다. 반면 해안선의 길이는 필리핀과 비슷하다고 한다.

때문에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에서도 부동의 1위를 자랑한다. 러시아의 면적은 유럽, 오세아니아, 남극 대륙 전체보다 넓으며 남아메리카 대륙보다는 조금 작다. 남한의 170배, 한반도 전체의 77배 정도이다. 국토 최서단인 칼리닌그라드에서부터 최동단인 추코트카다이오메드 제도까지 총 11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며, 국토가 넓은 관계로 도로 수송보다 항공, 철도 수송에 의존한다. 국토가 춥고 황량한 땅도 많지만 비옥한 땅도 많아서 국토 면적 중 경작지가 1,237,294km²로 전 세계 4위이다.[35][36] 그리고 러시아는 중동에 많은 식량을 수출한다. 천연자원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국, 석유 매장량 8위, 석탄 매장량 2위를 자랑하는 등 경제의 많은 부분을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면적에 비하면 적어서 그런지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못 느끼는 경우가 좀 있는데, 인구 순위도 세계 9위, 유럽 1위다.

파일:palindrome.png

파일:fLhUegxsNJQH5LMvR42aR-N_oRbVVVOJ4xcTbEWV2Rc.png
노르웨이: 안녕, 북한! 잘 지내?
북한: 일없다우. 여긴 무슨 일이네?
노르웨이: 그냥 안녕 인사 하고 싶었어.
북한: 겨우 그것 때문에 왔다기에는 너무 멀리 온 거 아니네?
노르웨이: 나라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뭘. 별로 그렇게 안 멀어!

세계의 국가들 중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답게 접경 국가도 매우 많다. 서쪽으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있다. 월경지칼리닌그라드까지 포함하면 폴란드, 리투아니아와도 접경하고 있으니 국토 서부의 접경국만 8개국이다. 그뿐 아니라 남쪽으로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북한,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노보로시야[37])까지 6개국과 접경하니 총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남쪽으로 사할린 섬에서 오호츠크 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보며[38] 동쪽으로 베링 해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마주보고 있다.[39]

사실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19세기 말에 알래스카미국에 팔기 전까지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걸친 영토를 자랑하기도 했다. 즉, 1867년 이전만 해도 2,393만 ㎢가 넘었다는 거다.[40] 이러한 러시아는 인류 역사상 4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이보다 넓었던 국가는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 칭기즈칸 시절의 몽골 제국, 과거의 러시아(러시아 제국, 소련) 정도가 있다. 그 외에도 거대한 나라들이 있었지만 영토를 모두 합쳐도 현 러시아보다 작다.

문제는 그 넓은 영토가 다 쓸만한 영토는 아니라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들이 사실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과 기후 때문에 그 넓은 영토들 중 유의미한 인간 거주구역들은 대부분 동유럽 부근에 밀집해 있고 드문드문 소수민족 마을이나 자치구가 여기저기 퍼져있는 정도이다. 만약 사람이 살만한 영토였다면 진즉에 여러 거대 세력들이 난립하여 러시아와는 상관 없는 별개의 국가들로 살아갔을 것이다. 오히려 해당 구역들을 동유럽의 러시아가 먹여살리고 있다고 봐야 할 정도. 이런 특징은 사회간접자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인 도로를 상당히 열악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기후적 특성도 더해졌는데, 러시아의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하계망이 겨울에 죄다 얼었다가 봄에 녹으면서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길을 다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대 루시인들은 겨울에는 언 강을 썰매로 다니는 등 도로의 필요성 자체도 느끼지 못했다.

하여간 이런 도로 정비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도로 대부분이 엉망이며 나아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제조사가 러시아에 수출하는 차들은 방청[41]과 극악의 도로 상황, 혹한에 대비한 처리를 하여 만든다. 다른 국가의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이건 변두리의 어느 시골길이 아니라 한국 기준으로 일반국도 급인 도로다. 한참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Rasputitsa) 중에 찍은 모습. 오죽하면 농담으로 러시아의 3대 불량품은 도로, 날씨, 루스키(러시아 남자)라는 말도 있다. 다만 혹독한 국난의 시기에는 이 3대 불량품이 3대 수호신으로 돌변한다! 중세 이래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42]도, 스웨덴 카를 12세의 군대[43]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그랑 다르메[44]도, 아돌프 히틀러GOH[45]도 처음에는 위풍당당하게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곧 거지 같은 도로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 하며 혹한에 시달리다 끝내는 죽음도 각오하고 묵묵히 전진하는 러시아 사나이들과의 격전 끝에 도륙당했다. 반대쪽의 더 거지 같은 환경에서 진격해온 몽골인들에겐 안 먹혔다[46]는 게 함정이긴 한데…사실 저 3대 요소를 전략적 결정 병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유럽 특유의 전쟁 방식은, 킵차크 한국의 지배 아래에서 중세 내내 깨지고 박살나면서 뼈로 배운 타타르 인들로부터의 교훈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도 지상군을 동원한 전쟁으로는 이 3대 수호신을 꺾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 그들의 존재 의의다.[47]

지역적으로 크게 보면 우랄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의 동유럽에 포함되는 유럽 러시아(Европейская часть России, European russia)와 동쪽의 북아시아로 나뉘어진다. 우랄 산맥 동쪽을 전부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베리아의 범위는 북아시아 중부 지역에 해당하고 북아시아 서부는 우랄지역, 북아시아 동부는 러시아 극동에 해당된다. 유럽 러시아 지역은 러시아 전체 면적의 25%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러시아의 발원지이자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제1의 도시이자 현 수도인 모스크바와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옛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러시아 대도시 대부분이 위치해 있으며 러시아 전체 인구의 77%가 거주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 국토의 75%에 해당하는 북아시아지역에는 러시아 전체 인구의 불과 23%만이 거주하고 있다.

큰 규모의 운석이 잘 떨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확률적으로 운석이 잘 떨어질만하다.[48] 가장 유명한 건 퉁구스카 대폭발과 2013년에 일어난 첼랴빈스크 운석우 사건[49].

전체적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평탄한 지형이 대부분이나 캅카스 산맥, 알타이 산맥, 캄차카 반도 등 일부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유럽 대륙 최고봉이자 러시아 최고봉인 옐브루스 산이 러시아 서남부에 있다.

2011년에는 동서로 펼쳐진 거대한 영토 덕분에 설정된 여러 시간대에 부분적인 변경을 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동쪽 끝에 위치한 추코트-캄차카 지역의 독자 시간대를 폐지하고, 서머타임을 없앤 것이다.#

2014년 10월 26일 대대적인 시간대 조정을 단행했는데,
  • 대부분 지역에서 시계를 2011년 이전같이 1시간 전으로 돌려서 모스크바와 한국의 시차가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었으며, 한국보다 2시간 빨랐던 블라디보스토크는 1시간 빠르게 되어 시차가 줄었다.[50]
  • 이외에 자바이칼 지방은 한국보다 1시간이 빨랐던 것이 한국보다 1시간이 느리게 조정되었으며, 마가단은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에서 한국보다 2시간 빠른 시간대로 조정되었다.
  • 사마라 주,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캄차카 반도, 추코트카는 종전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사마라 주는 결과적으로 모스크바보다 1시간 빨라지게 되어 '사마라 시간'이 부활했고,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인 '마가단 시간'은 '캄차카 시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4.2. 기후[편집]

한국에서 러시아 이미지는 시베리아로 대표되는 추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동장군이란 말이 원래 러시아의 겨울을 이르던 말이니까. 다만 대부분 지역이 겨울에 추운 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답게 남부 쪽은 생각만큼 춥지 않은 지역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흑해 연안 소치2월 평균기온은 6℃아열대기후에 속하며 제주시의 6.4℃와 비슷하다.[51] 게다가 여긴 일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고 연간 강수량도 1,700mm를 넘어 한국 기준으로도 다우지에 속하는 곳이다.

내륙의 모스크바 역시 서울보다는 춥지만 강원도 대관령, 북한 신의주, 라선특별시와 비슷한 정도(1~2월 평균기온 -7.5℃)의 기온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까지는 아니다. 북아시아(시베리아) 지역도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 지역은 러시아 기준으로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다. 모허 국경지역은 -30℃ 내외로 엄청나게 춥다.[52]

반대로 한반도에 한파가 닥칠 때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일시적으로 낮은 기온을 보일 때가 있어서 러시아 겨울 별 거 아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 진짜 호되게 혼난다(...)

러시아가 전체적으로 겨울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1년 내내 추운 것도 아니고[53] 여름에는 충분히 덥다. 한여름 대낮에 30℃를 넘는 지역도 많고, 2010년 7월 칼미키아의 우타에서는 45.4℃라는 러시아 역사상 최고기온이 기록되었다. 오이먀콘에서 기록된 최저기온이 -71.2℃이니 무려 116.6℃의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소련[54] 이전 러시아 제국 시절[55], 그리고 현재 러시아는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이다. 즉, 못 쓰는 얼음땅만 있는 게 아니라 농사 짓기 좋은 땅도 엄청나게 넓다는 것이다.

물론 북극권에 가까운 시베리아 북쪽으로 올라가거나 동쪽으로 갈수록 극단적으로 추운 기후를 자랑한다. 야쿠츠크의 1월 평균 기온은 -40℃, 베르호얀스크는 -45.9℃, 오이먀콘은 -51.3℃다. 각 도시의 위엄에 대해서는 문서를 참조. 한국의 추운 겨울의 원인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시베리아 기단 때문이다.

러시아는 9월 중하순부터 5월까지 겨울일 정도로 추운 나라인데도 워터파크가 있다. 물론 100% 실내이다. 물론 러시아가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소치처럼 한국보다 따뜻한 지역도 있긴 하다.

지구 온난화의 수혜를 보는 나라 중 하나. 일단 시베리아 남쪽부터 농사 가능한 온대지역이 조금씩 올라올 추세인데 캐나다나 알래스카보다 그런 영역이 훨씬 넓으므로 가장 이득을 보게 된다. 게다가 점점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의 통행세를 기대하는 눈치. 동아시아의 한중일이 싱가포르 찍고 가는 남쪽 항로보다 훨씬 가까운 지름길이 될 북극항로의 주 수혜자가 될 예정이다.

5. 인문환경[편집]

5.1. 인구[편집]

인구는 2021년 기준 약 1억 4,624만 명(크림반도 제외시 1억 4382만)으로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하지만 그 넓은 국토에 비하면 적은 인구다. 미국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며,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적다. 국가별 인구 순위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를 참조하자.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에서 러시아와 인구가 비슷한 국가는 멕시코가 있을 텐데 약 1600만 명 정도 차이가 난다.

면적과 인구를 대비해 보면 인구 밀도는 km²당 8.36명으로 한국의 1/60 정도로 굉장히 낮은 편이다. 물론 국가 전체로 일반화하면 곤란하다. 사하 공화국은 인구밀도가 km²당 0.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보다 4,300배나 큰 땅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싱가포르의 1/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데 반해 유럽 부분의 평균 인구밀도는 km²당 27명으로 비교적 높다. 다만 한국 같은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인구밀도가 낮긴 낮아서 서울, 델리마닐라의 km²당 인구밀도가 각각 17,000명, 25,500명, 42,000명인 것과는 달리 모스크바 시의 인구밀도도 km²당 4,000명에 불과하며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바 주 (오블라스트)의 인구밀도도 km²당 150명 정도다. 참고로 충청북도의 인구밀도가 km²당 210명이다.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국토가 미국, 유럽에 비하면 무척이나 척박한 데다[56]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된 인구감소도 한몫하고 있는데 1987년 2.2명선이었던 출생률이 1988년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991년 소련 붕괴 후 의료보건체계와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고물가에 따른 예금가치의 추락이 겹치면서 출생률 감소가 가속화되고 평균수명도 같이 줄어들어 1993년엔 출산율 1.5명선이 붕괴되고 사망자수도 연 200만 명선을 넘음에 따라, 매년 -0.4%~-0.6% 정도의 인구감소 추세[57]가 2008년까지 이어졌다. 어찌나 정도가 심했는지, 한때 2050년이 되면 러시아의 총 인구가 8,000만 명대로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2009년부턴 출산율의 증가와 평균 수명의 증가, 구 소련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자 유입으로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부터 이민을 제외하고도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2016년부터 다시 감소 추세이다.#[58]

부연 설명하자면 1999년 1.17명으로 저점을 찍은 출산율은 2000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때마침 고유가로 재정이 풍족해지면서 적극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침에 따라 출산율 상승에 가속도가 붙었다. 위 문단에서 2008년까지 인구 감소 추세였다고 하는데 사망률 때문이었고 2000년부터는 사망률은 감소하고 출산율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에 다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출산율도 2014년 기준으로 1.75명대까지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율이 막장을 찍은 나라와 비교해보면[59] 석유빨이 크게 작용했어도 해도 출산율이 밑바닥에서 이 정도까지 올라온 건 분명히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출산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수치가 낮아서 대체출산율(2.1명)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거기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이 되어서 은퇴하고 있고, 수가 적은 1990년대-200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 노동인구로 편입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출산율의 추가적인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출생아수가 다시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어서 인구가 일정 기간동안 감소될 수도 있는데다가 앞으로 2020년대까지는 적은 노동 인구로 늘어나는 아동층과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며, 그래서 러시아의 인구학적 위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16년부터 다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16년에 2천명, 2017년에 13만, 2018년에 22만, 2019년에 32만, 2020년에 52만 명 등등 감소 폭도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기에 크림 사태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급속도로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해 2019년 기준 1.504명까지 떨어져 버렸다. 2019년 기준 러시아의 출생아수는 1,481,074명으로 2015년에 비해 24.7% 가량 출생아수가 감소했다.[60] 출생률로 보자면, 2015년 러시아의 1,000명당 출생율은 13.3명에서 2019년엔 10.1명까지 줄어들었고, 이것은 한국(8.6명)보다야 높지만 중국(12.1명), 미국(12.4명)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아무튼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출산율이 브레이크 없이 감소했던 만큼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확실하다.

2015년 UN의 예측에서는 2050년 인구가 2015년 대비 18% 감소해 14% 감소하는 일본을 인구감소에서 앞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정부는 저출산에 대한 대책에 나섰고, 푸틴 대통령은 젊은층 가구에게 64억 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액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1천만 외국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러시아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이 심각하게 낮아서 고령화 문제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심하지 않았으나 2010년대 이후로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평균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2019년 기준 고령 인구가 15.6%로 이미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중위 연령 역시 2019년 기준 40.3세로 40대에 진입했다.

5.1.1. 평균 수명[편집]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2015년 WHO 통계에 따르면 69.83세로 이는 북한(69.91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면 이해가 가기 힘든데, 이는 러시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터무니없이 짧아 평균값이 확 내려가서 그렇다.[61]

러시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77.1세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상 범위인데 반해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62.5세[62]에 불과해 남녀 평균 수명이 15년이나 차이 난다. 즉, 평균적으로 러시아 여성들은 사별 후 무려 15년 동안 혼자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4~5년보다 훨씬 높다. 러시아에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로는 보드카를 비롯한 과음 문화가 많이 꼽힌다. 도수 높은 보드카를 늘 달고 사니.[63] 유튜브나 영상에서 자주 보이는 러시아인의 기행 때문에 러시아 남자들이 빨리 죽는다는 해외의 인식이 있다

그래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70대 후반 정도는 되기에 노인 인구는 꾸준히 늘어 어느새 전체 인구의 14.3%나 되어 벌써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0~14세 유년층 인구는 전체의 17.1%로 아직은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추월하지는 않았지만 그 격차가 불과 3% 이내로 많이 좁혀진 상황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노년층 인구가 유년층 인구를 추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합계 출산율은 1,000명 당 12명 정도의 수준이고, 합계 출산율은 1.7명 대 정도이지만 결혼을 빨리 하는 편이라 그런지 여성들의 초산 연령은 2009년 기준 24.6세라고 한다. 즉, 러시아 여성들은 결혼을 빨리 하지만 애는 잘 안 낳는 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영아의 장애 발병률이 낮다. 영아 사망률은 1,000명 당 6.8명이다.

5.1.2. 성비[편집]

러시아는 대표적인 성비 불균형 국가 중 하나로 성비가 겨우 86 : 100밖에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여초 국가다. 러시아 전체 인구가 2017년 기준 1억 4,225만 7,519명인데 이 중 남자가 6,581만 4,697명이고 여자는 7,644만 2,882명이나 되어 여자가 남자보다 무려 1,062만 8,125명이나 더 많다.

이런 비정상적인 수치가 가능한 이유는 장년층과 노년층 성비 때문. 실제로 러시아의 신생아와 0~14세 유년층 성비와 15~24세 청년층 성비는 106:100, 105 : 100으로 정상에 가깝다.[64] 그런데 25~54세 장년층의 성비는 96 : 100, 55~64세 중년층 성비는 75 : 100이며 65세 이상 노년층 성비는 45 : 100까지 벌어진다. 남성의 수명이 여성의 수명보다 압도적으로 짧은데다 노년층은 독소전쟁으로 90대 이상의 남성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5.2. 민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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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다민족 국가라 하면 미국, 캐나다를 떠올리는데 러시아도 대략 20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65] 유럽아시아를 아우르는 것 같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러시아인들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아시아계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66] 이것도 스탈린의 강력한 러시아 동화 정책, 강제 이주와 굴라그로 대표되는 억압으로 조금 줄어든 수준이다.

2010년 인구 조사 결과 러시아인[67]이 인구의 81%, 약 1억 1,500만 명 정도를 차지하며, 볼가 타타르인, 우크라이나인, 바시키르인, 추바시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벨라루스인, 불가리아인, 폴란드인, 카자흐인,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키르기스인, 아제르바이잔인, 핀인, 카렐인, 독일인, 시베리아 타타르, 사미인, 카라차이인, 발카르인, 조지아인, 쿠미크인, 쿠르드족, 몽골족, 루마니아인, 부랴트인, 체르케스인, 조지아인, 아바르인, 다르기인, 칼미크인, 코미인, 마리인, 사모예드족, 나나이족, 에벤키족, 축치인, 야쿠트인,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 크림 타타르족, 하카스인, 니브흐족, 아이누족 등 엄청나게 많다. 고려인도 50만 명 정도 거주해 인구의 약 0.3% 정도를 차지한다. 러시아 내에는 그 넓은 영토에 걸맞게 모두 160개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550만 명에 달하는 타타르인과 2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부터 98명이 거주하는 콜라 노르웨이인[68]까지 그 수도 다양하다.

러시아 흑인[69], 5만 명의 인도인, 일부 파키스탄인,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에 러시아에 피난 온 일부 아프가니스탄 피난민[70]도 살고 있다. 러시아 흑인들의 역사는 의외로 길어서 18세기에 이미 장군을 배출했을 정도이다. 유명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바로 흑인의 후손이다. 곱슬머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상이 에티오피아의 귀족이었는데 푸시킨도 자기 집안의 이러한 내력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는 흑인의 규모는 약 4만에서 7만 정도 수준. 그 외 러시아에도 구소련출신의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상당한 편이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3D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러시아 내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러시아 내 스킨헤드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러시아 내 중국인이 증가하면서, 2050년까지 러시아 인구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링크

5.3. 언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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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이자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러시아어다. 하지만 전부가 러시아어를 모어로 하는 것은 아니라서, 러시아 인구의 약 92%인 1억 3천만명만이 러시아어를 모어로 삼는다. 이는 러시아가 다민족 국가인 특성상 러시아인을 제외하고도 소수민족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 소수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어족도 인도유럽어족, 북서캅카스어족, 우랄어족, 고아시아어족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또한 러시아가 연방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체(공화국, 민족 자치구 등)는 러시아어 이외에도 따로 공용어를 지정하여 사용한다. 타타르 공화국의 타타르어, 사하 공화국야쿠트어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러시아어의 세가 워낙 강력하다보니 지금은 소수민족 상당수가 자신의 민족어를 점차 잊어버려서 언어학자들은 발등에 불이 붙은 심정이라고 한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죽으면 그 언어는 그대로 사멸하니까. 2009년 유네스코는 러시아 내 언어 136개(!)가 사멸 위기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러시아내 소수민족들의 언어들은 러시아 정부의 특별 기금으로 보호를 하는 것을 마련하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관련 자격증으로는 러시아 교육부가 주관하는 공인 시험인 토르플(ТРКИ, Тестирование по русскому языку как иностранному)이 있다. 토르플은 한국슬라브문화원 산하 토르플센터, 계명대학교 등에서 응시가 가능하다. 그외 기타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으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외국어능력시험인 FLEX,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주관 언어능력시험 SNULT, OPIc 러시아어가 있다.

5.4. 종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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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4대 대표 종교 : 유대교, 정교회, 이슬람, 불교)

소련이 1991년 붕괴되고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세워진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종교 활동이 보장된다. 다만, 1,000여 년의 세월 동안 러시아 민족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신자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를 표방하지만,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가 매우 사이가 가까우며, 사실상 정교회가 러시아 제1종교이자 국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종교를 믿는 러시아인은 급증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느 정도 혹은 매우 종교적이라고 응답한 러시아 성인들은 1991년 11%에서 2018년에 70%로 증가했다.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응답한 러시아인들은 같은 기간 동안 38%에서 75%로 상승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종교는 정교회 71%, 무종교 15%, 이슬람 10%, 응답거부 5.5%로 집계되었다. 정교회 신자들은 주로 슬라브계 러시아인(русские)들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무슬림들은 북캅카스, 타타르스탄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소련 시절 국가 무신론 정책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일단 소련이 붕괴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간 이후로는 러시아 정교회가 강세지만 21세기 사람들이 그러듯이 정교회를 북유럽처럼 문화의 일종이라고 여기며 그다지 독실하게 믿지는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종교는 구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반종교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현대 러시아 문화는 호모포비아 성향이 강한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세속적인 분위기이다. 그냥 한국의 유교사상이나 일본이나 베트남에서의 불교사상이 생활에 영향을 끼친 정도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소련 시절에 비하면 줄어들긴 했지만 무종교인 인구가 2천2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적은 편은 아니며 전세계에서 6번째로 무종교인이 많은 국가이다.

5.4.1. 정교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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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교회동로마 제국선교사들이 전교해,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통치하는 키예프 루스[71]의 국교가 되었으며 1037부터 1448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임명한 그리스인 대주교가 통치했다.

키예프 루스가 정교회를 국교로 선택한 데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블라디미르는 형제들과 싸워 권력을 얻은 탓에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그래서 권력을 키우고 키예프 러시아를 강력하게 통치할 수 있는 사상이 필요했는데 그 사상이 바로 종교였다. 국교를 정할 당시 블라디미르는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유대교 4개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슬람교는 술과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니 아웃, 유대교는 블라디미르가 "왜 유대인이 선택받았다는데 당신네는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닙니까?"라는 질문에 랍비가 아무 말 못해서 아웃. 그래서 두 그리스도교가 남아서 두 쪽 다 사절을 보냈는데, 가톨릭 측 사절이 갔던 독일은 거의 암흑시대로서 야만족과 다름없는 안습이었기 때문에 아웃되었다. 반면 정교회 측에서는 휘황찬란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로 데려가서 그 화려함에 당장 정교회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다 실질적인 이유로는 접근성과 당시 권력의 차이 문제가 있었다. 유대교로 개종했던(!) 하자르 칸국은 이 시절이면 쇠퇴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로마보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훨씬 가까우며 당장 직접적인 무역 루트나 영향력 면에서 여러 모로 정교회를 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당대 러시아의 중심지였던 키예프에서 드네프르 강을 타고 내려와 흑해에 이르면 동로마 제국의 크림 반도 거점이던 케르손에 도착할 수 있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 흑해를 건너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르게 된다. 반면 당시 가톨릭의 중심지인 독일 지방이나 이탈리아 및 이슬람 중동권은 거리도 멀고 육상 교통로에 의존해야 했다. 수상 운송이 육상 운송보다 훨씬 효율적임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교역 파트너인지는 뻔하다. 게다가 러시아의 개종 당시 지지리도 가난하고 분열되어 있던 서유럽에 비해 동로마 제국은 강력한 통일 국가로서 사절들이 와서 구경한 뒤 "그리스 애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곳에 가 봤는데요, 엄청 멋있어서 이 세상 같지 않았어요! 그렇게 대단한 데니까 분명히 하느님이 사실 거예요!!"라고 보고할 정도로 엄청난 성당을 지을 정도로 부유하기까지 했다. 당시의 종교는 정치와 사회 전 영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고, 특정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종교를 믿는 국가와 우호적 교류 관계를 맺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시 러시아에게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었을지는 뻔하다.

이후 1589년 이오프 모스크바 대주교(Патриарх московский Иов)가 모스크바와 모든 러시아인의 총대주교가 되면서 자치 교회가 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에 이어 제5위의 정교회가 되었다. 현재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키릴이다.

수세기 동안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의 지배적인 종교였다. 특히 1055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완전히 분리되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에 이어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동방 정교회 세계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마저 무슬림들에게 점령당한 뒤에 동방 정교회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추정되는 지도력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 뿐이었다. 이 말은 결국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정교회 지역들이 모두 이슬람의 손에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이 즈음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마저도 당시의 신흥 강자였던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했다. 이들 정교회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이 패망한 1922년까지 과거 누렸던 종교의 자유를 제한받았다. 반면 이 시기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와 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러시아 문화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 말기, 황실과 결탁한 정교회의 부패는 끝을 달리고 있었고, 이러한 모습은 1917년 10월 혁명과 적백내전으로 집권한 소비에트 연방에게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써 간주되었다. 공산주의는 사상적으로도 무신론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고. 특히 레닌은 교회가 소유한 재산을 국유화할 것을 지시하며, 이를 거부하는 많은 수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투옥시키거나 처형했다. 이후 소련 전역에 위치해 있던 성당수도원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거나 파손되었다.

또한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명망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공산당은 정교회의 권위를 깨부수기 위해서 정교회 성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했다. 정교회와 가톨릭 등 기독교 보편교회에선 훌륭한 삶을 살다 죽은 일부 성인들의 유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썩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데, 썩은 성인들의 시체를 보여 주어 대중의 신앙심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근데 수백년 전에 죽은 시신들을 파냈는데도 전혀 썩지 않아 공산당원들이 하얗게 질리고 흥분한 군중들이 공산당원들을 비난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한다.[72]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스탈린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는 데에 종교적 열의를 이용하기 위해[73] 다시 정교회 신앙을 부활시켰다. 스탈린은 남몰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경호원들과 손녀가 증언한 적이 있기는 하나퍽이나 정교회 신앙 부활은 인간의 감정을 이용한다는 현실주의적인 목적도 있었다.

진짜 독실한 신자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탈린 본인이 신학생 출신이었던데다가 정치적인 면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정교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 역시 사실이다. 스탈린은 자유 진영 사람들이 원칙과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인간 행동의 기저를 의심한 치밀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74]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스탈린 치하에서 어느 정도 정교회가 복원되기는 하지만, 다음에 집권하는 흐루쇼프의 탄압을 받았다. 그래도 소련 붕괴 시까지 민중들은 물론 공산당원조차도 정교회 신앙을 비밀리에 이어 갔다. 대표적인 예가 소련 붕괴 후 정교인임을 드러낸 블라디미르 푸틴. 이 사람은 소련 비밀경찰기관인 KGB의 간부 출신이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거의 국교가 되어, 보리스 옐친이나 푸틴은 소련 시절에 명목상 공산당원이었음에도 정교회 신자라고 커밍아웃했고, 이후 성찬예배에도 자주 참례했다. 심지어 소련 공산당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쥬가노프도 교회에 다니며 정교회 성직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공산당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홀리는 예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으로서, 그리고 러시아의 국가 정체성 강조를 통한 통합강조 차원에서 정교회를 대폭 밀어주는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제로 악명높은 일본의 옴진리교가 한때 러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러시아인 신자들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체포되자 무력으로 아사하라 교주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 몰락 이후 각 나라별 교회 문제 때문에 대판 다투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영토 내의 교회는 각 국가의 교회이나 그 교회 건물의 소유권을 러시아 정교회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각 국가들의 독립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바탕으로 교도권을 주장하면서 독립 교회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다. 2018년 10월에는 크림 반도 분쟁 등의 이유로 러시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단절을 선포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정교회 세계에서 제일 현지화가 많이 진행된 교회이기에 다른 교회 지체와의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애초에 초대 교회가 동서로 찢어진 사건 때문에 정교회 성직자들은 러시아 지역에 선교할 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일치!'를 외쳤으나, 이번엔 이 동네가 당시 서유럽보다 더한 깡촌이라서.... 결국 원조(?)와 좀 많이 달라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17세기 중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재위 기간에 모스크바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슬라브 토속 신앙과의 융합을 피하려고 전례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맞춰 바꾸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니콘의 전례 개혁에 반발한 구전례파와 니콘을 지지한 신전례파가 나뉘어 내분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75] 게다가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가 서유럽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정교회에 가톨릭적 색채가 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딱히 큰 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고,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신앙이 깊기도 한 데다가 딱히 핵심 교리에서 변질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러시아 정교회가 정교회 그 자체로부터 분열해 버리는 사태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가 즉위할 무렵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공석이 되자 차르는 신성종무원을 만들어 정교회를 관리했고, 신성종무원은 러시아 혁명으로 해체될 때까지 이어졌다.

혁명 직후 러시아 정교회는 새 총대주교로 티혼을 뽑았지만 곧바로 볼셰비키가 집권하며 박해받았다. 공산당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 티혼 러시아 총대주교가 해외 러시아 정교회의 설립을 명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국내파와 해외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후임 총대주교인 세르게이는 교회의 존속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소련 정부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지지를 표명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조치'를 이어가지만 실질적인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련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실제로 살아있는 교회란 별칭이 붙었다)'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갔고, 이러한 모습에 비판적이었던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나라의 남북한 이상으로 갈등과 대립을 겪어 왔다. 러시아에서 정교회가 자유를 얻은 것은 1990년 고르바초프의 주도로 소련 최고회의가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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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러시아 정교회와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100년간의 갈등을 끝내고 2007년 5월 17일 일치를 선언한다. 무려 100년간의 갈등 끝에 이뤄진 일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푸틴이 정교회 신자다 보니 직접 나서서 챙기고 다독거려서 상호 양보를 받아내고 일치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한편 한국 정교회 역시 본래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었으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서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 정교회는 한국 정교회를 미국의 미트로폴리아 관구의 일본 정교회에 맡기려 했으나, 일본 정교회 역시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아 갈등하던 중 1955년 12월 25일에 서울 성 니콜라스 성당 신도회의 결의에 따라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된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아니고 1월 7일인 이유도 정교회의 세가 워낙에 강한 영향이다. 자세한 건 크리스마스 문서 참고.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아예 양력설과 크리스마스를 연계시켜 신년 연휴를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러시아는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인 유일한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76]

5.4.2. 이슬람교[편집]

이슬람은 러시아에서 2번째로 세력이 강한 종교로, 현 러시아 인구의 13~20% 정도가 무슬림이며 현재도 계속해서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 주류 민족인 슬라브계 러시아인보다는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인 타타르족(3.9%)이 대표적으로 이슬람을 믿으며, 그 외에 바시키르인과 북캅카스에 거주하는 민족 대다수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비무슬림 러시아인들은 이슬람에 반감을 가질 때도 많지만, 종종 우호적인 감정을 보여줄 때도 있다.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내용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슬람 정명론과 관련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으며,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 같은 소설에도 체르케스인들과 아바르인 무슬림들이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구소련의 유명한 여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같은 경우는 자신의 타타르인 할머니의 이슬람식 성에서 자신의 필명 아흐마토바[77]를 따왔다.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7세기 가량으로, 당시 다게스탄에 처음 선교사를 파견, 이후 주변 민족을 중심으로 전파했다. 10세기 경 볼가 강 유역에 거주하던 불가르 칸국에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으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멸망한 불가르 칸국을 계승한 카잔 칸국의 볼가 타타르인들도 무슬림이었다. 유대교를 믿었던 하자르 칸국의 수도 아틸 근처에는 튀르크인의 (이슬람) 성지라는 뜻의 하지 타르한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인 아스트라한 칸국이 건설되었다. 16세기 중엽 이반 4세 제위 시기의 루스 차르국이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지배층의 내분을 이용해 병합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타타르인들이 러시아 제국 내로 흡수되었다.

러시아 제국 시절 중앙정부 차원에서 농노제와 러시아 정교를 동시에 강요하면서 무슬림들은 종종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카잔과 아스트라한의 볼가 타타르인들의 경우는 비교적 덜했으나, 캅카스 지역과 크림 반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탄압이 심해, 억압적인 소수민족 정책과 더불어 1817년부터 1864년까지 지속된 캅카스 전쟁같은 무력저항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오스만 제국과 연계된 경우가 많았는데, 체르케스인들의 경우 러시아인들과 전쟁에서 인구 상당수가 사망하고 대부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갔으며,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던 크림 칸국의 경우 수백년 동안 기독교인 노예 인신매매[78] 행각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다른 타타르인들에 비해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카자크를 포함한 러시아 군인들이 이들에게 제대로 복수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크림 타타르인들이 이미 어른의 사정으로 사실상 종교만 이슬람인 우크라이나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이후 집권한 소련 정부는 러시아 제국 내에서 탄압받던 무슬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특히 1920년대 중앙아시아에서 실시한 현지화(Коренизация) 정책으로 이들 이슬람 교리가 보장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 스탈린 시기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 함께 다시 위축되었고, 이후 소련 말기까지 정교회와 같이 국가 관리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 종교의 자유가 부활하면서 캅카스를 중심으로 무슬림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일단 중동과 거리가 있는 지역에다가 비이슬람 국가 시절의 지배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 내의 무슬림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오늘날 러시아가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극우 민족주의화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존재하나, 위구르인을 공공연하게 탄압하는 중국 정부처럼 무슬림 소수민족들을 수용소에 감금하고 성고문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다만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을 제외한 현대사에서도 체첸 전쟁 때는 캅카스 자치공화국의 모스크를 소수만 남기고 폐쇄하고 체첸인을 탄압한 전적도 있다.

5.4.3. 유대교[편집]

러시아 제국유대인들이 밀집해 살던 지역인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일대를 병합한 역사 때문에,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아슈케나짐 계열 유대인이 많기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지역이었다. 유대인 자치주는 그 흔적이고, 러시아를 떠난 유대인들 중에서 아직 러시아어가 편한 이스라엘인이 많아서 지금도 이스라엘 정부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이스라엘 관련 사이트에서 러시아어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많을 정도.

그러나 독소전쟁홀로코스트로 큰 피해를 입고 소련 정부도 나치만큼은 아니지만 유대인에 호의적이진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빠져나갔다. 러시아계 유대인들 중에는 거의 다 아슈케나짐 유대인이지만 페르시아계 유대인의 일파인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 및 현재 극소수가 남아있는 카라임 유대인들도 있다.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은 혹여나 세파르딤, 미즈라힘 유대인으로 인식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적잖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묻혀 가는 편을 선호한다. 여전히 유대교는 명목상 러시아 4대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나 대부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상태이다. 무신론을 강요한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코셔 율법을 별로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이스라엘에 이민와서도 돼지고기를 별 거부감 없이 먹는 편이다. 그 때문에 보수적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특히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서구권으로 망명한 러시아계 유대인의 후손들은 서구권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 유대교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가 아닌 이상 러시아 본토 유대인들의 돼지고기 섭취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5.4.4. 불교[편집]

대부분은 티베트 불교로, 시베리아 등 러시아 동부에 사는 몽골이나 튀르크 계열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다. 불자는 대부분 투바 공화국과 자바이칼 변강주, 부랴티야 공화국, 이르쿠츠크 주 등 시베리아에 거주한다. 불교 공동체와 사원들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있지만,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불교의 전통과 역사, 정신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시베리아에 가봐야만 한다.

이 곳 역시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시대에 상당한 탄압을 받았고,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의 사원[79]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러시아 서부, 즉 유럽 지역에서도 칼미키야 공화국티베트 불교가 대세이다.[80] 애초에 여긴 유럽의 유일한 불교 국가다.

5.4.5. 기타 종교[편집]

가톨릭, 개신교[81], 힌두교[82], 도교를 믿는 경우도 있는데 힌두교를 믿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 러시아 소수 민족들을 중심으로 원시 신앙을 믿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신이교주의자들이 슬라브 신화나 기타 다른 토속신앙을 복원하려고 하지만 규모도 작고 기성종교 집단에게 탄압을 받거나, 이러한 민족 신앙이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네오나치 사상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5.5. 기행[편집]

2분만에 보는 세계: 러시아편

대륙의 기상을 위시한 중국에 밀려 그 동안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의 기이하고도 대단한 장면들이 인터넷 상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러시아에서는 가 사람을 산책시킨다는 식의 러시아식 유머 같은 내용은 기본이다.[83] '한편 러시아에서는(Meanwhile in Russia)'으로 구글링 해보면 그야말로 온갖 기행들을 구경할 수 있다.

주로 폭설 및 추위, 총기를 위시한 각종 무기류, 난폭운전, 싸움, 위험한 장난, , , 미녀아줌마, 경찰군대, 국가원수특정 인물들이 주 희생양이 된다.

물론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고 순순히 믿으면 곤란하다. 가령 러시아 시리즈의 단골소재인 난폭운전의 경우 인터넷상에 러시아 난폭운전 모음집 같은 게 하도 많이 퍼져있어서 진짜로 러시아 도로가 헬게이트인 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한국인들 중에서도 실제로 러시아 전국을 장시간 운전해본 사람들이 늘어가면서[84] 실제 러시아 도로를 경험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보면 러시아의 운전 매너는 유럽과 별다를 바 없고, 보행자 중심에 양보도 한국보다 더 잘 해주고 과속도 힘들다고 한다. 일단 길가에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멈춰선다. 이런 문화가 습관화 되어있어 도심 외곽의 자잘한 도로에는 오히려 횡단보도가 없는 경우도 많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정서가 굉장히 거칠고, 또 문화적으로도 법을 잘 지키지 않아 난폭하고 무법적인 면이 있는건 사실이다. 실제로 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더 부패할수록 그 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율이 유의미 하게 비례적으로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나라가 부패했다고 느낄수록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정치 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봐도 러시아의 교통사고 사망율은 엄청나다. 한국에 없는 보행자 우선 교통문화 등 장점도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많이 위험한 편이다. 또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이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으며, 현지 경찰들도 저임금과 부패로 사건해결에 큰 의지가 없고 대충대충 넘어가려 한다. 결국 말 통하는 자국민에게 유리해질 때가 많다.


아무튼 이들의 기행은 온라인 게임, 특히 1인칭 슈팅 게임 쪽에서 빛을 발하는데, 단순한 트롤링부터 시스템을 교묘히 이용한 고도의 플레이로 전세계 온라인 게이머들에게 악명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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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이건 의자건 일단 쭈그리고 앉는 걸로도 유명하다. 고프닉 콘셉트을 잡고 있는 러시아인 유튜버 보리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쭈그려 앉는 이유는 일행/패거리들과 모여서 수다 겸 맥주나 보드카 흡입. 아파트가 좁고, 나가도 앉을 곳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보니 그냥 아무데나 앉아버리는데 엉덩이도 얼어붙고 옷도 더러워지니 쭈그리고 앉는다고.[85] 사실 이는 고프닉 청년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항목 참조.

여담으로 이렇게 길거리에서 쭈그려앉는 문화는 다른 동부 유럽국가에서도 일상적이다. 터키처럼 좌식생활이 발달한 국가를 제외하더라도 서유럽보다 낙후된 환경에 편의시설도 부족해서 서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쭈그려 앉는 경우가 많았다.

6. 행정구역[편집]

7. 정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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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폐기하고 1993년에 제정된 러시아 연방 헌법에 의거해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이원집정부제, 연방제 국가이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2011년 12월부터 2013년까지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2017년에도 잠깐 반정부 시위가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2020년 7월에 하바롭스크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다시 나타났다.

7.1.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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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국력[편집]

병력수는 징병제로 90만 명의 상비군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5위) 액티브 국방비 지출은 2020년 기준 8위다.

핵무기 보유량 1위 국가고 # ICBM SLBM 기술 모두 가지고 있으며 #, #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인우주선, 우주도킹#, #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나라다[86].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상호확증파괴를 유지할 수 있는 대규모 핵무기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러시아가 미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핵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의 유일한 존재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말했다.#

군사무기 수출은 2위이다.[87] 특히 AK-47는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모잠비크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반서방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GDP는 11위 정도인데 출처, 다음 GDP IMF 순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로 인한 서방경제제재셰일가스사우디의 증산에 따른 유가 파동 여파가 크다. PPP는 6위다. IMF 투표권 9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보유고 5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AIIB에서 중국인도 다음으로 발언권이 높다. 외환보유고 4위 #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데,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미국 다음이다. 전체적인 국력 자체는 중국이 우위에 있지만 중국은 자국 이익을 제외하면 러시아보단 대외 개입을 자제하는 편이다. 뭣보다 중국은 아직 군사력 측면에서 러시아를 넘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8. 경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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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자원 부국이자 세계 최대의 산유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이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세계 최대이다. 군사무기 수출과 더불어 오일머니가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이웃국가에 뭔가 심사가 꼬일 때마다 천연가스 동결을 했다.

8.1. 항공산업[편집]


러시아는 소련 때부터 군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항공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고[88] , 소련 자체가 위낙에 넓었던데다가 비행기값도 왕창 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수용으로도 수요가 많았다.[89] 비록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많이 밀렸지만, 과거 소련 시절에는 공산권 및 제3세계에 투폴레프, 안토노프, 일류신을 비롯한 여객기 및 수송기를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미그, 수호이, 야코블레프 등 고등전투기를 설계할 만큼 뛰어난 항공산업을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유럽계 항공회사들이 민항기 시장을 완전히 독점하면서 민항기로는 시장성을 많이 잃은 상황이고, 옛 공산권뿐 아니라 러시아 본국조차도 서방 비행기를 점차 많이 사고 있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엔진이나 항공전자 부문의 기술 투자가 전무했기 때문으로, 그 뒤에 나온 러시아의 항공기는 핵심 부품을 서방에 의존하고도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안전성마저 문제시되고 있다. 현재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것은 서방 경쟁기종이 아예 없는 초대형 화물기이고 그나마도 우크라이나 국적의 안토노프 제품이다 보니[90]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는 생산과 판매가 막힌 상태이다. 그나마 항공무기 쪽에서는 Su-47같은 전진익 실험기나 Su-57같은 스텔스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세계 각국에 수출할 만큼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시장 규모가 큰 민수 분야에서는 캐나다나 브라질에도 밀리는 상황이다.[91]

대부분 국가가 국가원수 전용기로 서방제 비행기를 쓰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산 비행기인 Il-96을 사용한다.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다는 제스처긴 하지만 못 믿을 정도로 부실한 기술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여객기와 수많은 전폭기를 생산해낸 품질로 시장성만 되면 얼마든지 베스트셀러를 뽑아낼 기반은 된다는 뜻.[92]

헬리콥터의 경우 군사헬기는 안정성과 유틸성 등 소프트 스팩과 유지비가[93] 서방제에 비해 떨어지지만, 싼 도입가격과 무식할 정도로 강한 내구도와 내구연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우수한 적응성으로 인해 현재에도 많은 국가에서 산불 진압 등 민간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산림청 소방헬기만 봐도 불곰사업때 들어온 기종으로 도배가 될 정도. 또한 냉전 당시에는 헬리콥터를 통한 대규모 전술도 구사했을 만큼 여러 기종을 체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 3세계나 민간헬기 분야에선 인기가 높다.

8.2. 우주산업[편집]


소련 시기 미국과 함께 선도적인 우주기술을 보유한 국가였다. 구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우주유영, 우주정거장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우주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었다. 특히 소련 시절 핵전력 보강을 위한 ICBM과 체제 우월 경쟁을 위해 국가적으로 우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구 소련 해체 이후에는 NASA도 부러워하는 소유즈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우주여행 산업을 통해 동서양의 갑부들에게 우주 경험을 시켜주면서 새로운 우주산업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또한 받았다.[94] 갑부들만 터는게 아니라 셔틀 퇴역한 후에는 자기 힘으로 우주인 못 보내는 NASA한테도 소유즈 한 좌석당 수천만불씩 삥뜯고 있다.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은 NASA 우주선보다 소유즈가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인정했을 정도.

참고로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이라 함은 우주비행사를 제일 많이 뽑는 NASA에서 선발된 미국인들을 말한다. 7인승 셔틀을 굴렸던 NASA의 역사적 특징 때문에 NASA는 셔틀 시대에 우주비행사 한번씩 모집할 때마다 적게는 십수명에서 스무명대, 많게는 서른명 넘게도 뽑아댔는데 그들이 러시아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셔틀보다 소유즈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과거지사로 지금은 우주항공에 있어서도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소련은 미국에게 밀리지 않았다. 우주왕복선 같은 비싼 우주발사체를 운용하고 SDI 같은 미친 짓거리를 하다가 STS-51-L 챌린저 참사 같은 희대의 쇼크를 맛보면서도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소련에 비하면 화수분이었지만 소련도 우주정거장 미르와 우주왕복선 부란을 개발하며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주요 설계국들이 떨어져나가고[95] 경제난으로 재정수입이 크게 줄었으며 따라서 지원도 크게 줄어 월급이 푼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주요 인재들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러시아의 우주산업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즉 80년대에는 밀리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위기가 치명타가 되어 우주 개발이 정체되어 버린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 경제를 회복하면서 우주개발 예산을 급격히 늘렸지만, 그동안 투자한 돈의 단위 자체가 이미 너무 벌어졌다. 2008년 미국이 439억 달러를 우주에 퍼부을 때 러시아는 고작 35억 달러를 투자했을 뿐이다. 2011년에는 65억 달러로 늘어났고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420억 달러선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건 마찬가지. 그리고 이런 예산 차이가 구 소련 붕괴 이후 20년이나 계속되었다.

현재 러시아가 우주개발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로켓우주선을 비롯한 발사체 분야고, 인공위성이나 위성 응용 서비스, 이를 보조하는 지상 시설 면에서는 미국에게 상대가 안 된다. 당장 위성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게 미국이다. 예산 규모로 따지자면 사실 러시아의 경쟁상대는 미국보다는 유럽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나마도 로스코스모스는 발사체 분야에서는 ESA보다 우월하지만 위성 분야에서는 밀리는 판이고.[96]

사실 10년 가까이 경제상황이 막장으로 치닫았던 나라에서 소련시절의 항공우주 기술 경쟁력을 바라는것 자체가 무리다. 게다가 비교상대는 미국. 기초과학 강국이란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10년은 실력있는 학자들이 다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97] 게다가 연착륙한 것도 아니고 단숨에 바닥으로 쳐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NASA 우주인들이 소유즈를 타고 ISS에 가는 것도 러시아의 기술이 미국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소유즈가 값싸고 신뢰성 높으며 안전한 우주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반은 1950-60년대 기술이며, 첨단 기술의 우주선은 아니다. 소유즈가 지금까지 쓰이고, 우주왕복선이 결국 퇴역크리를 맞은 것은 까놓고 말해 소련이 망했기 때문이다. 즉 소련 이후 불황을 맞은 러시아는 대규모로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검증된 소유즈를 계속 사용하면서 원가절감을 한 반면, 미국은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98]을 마구 사용하다가, 냉전이 종식되자 러시아와의 경쟁이라는 예산 확보 명분이 사라지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 경제도 어려워지자 줄줄이 프로젝트가 취소당하고, 결과적으로 소유즈식의 1회용 캡슐 우주선인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으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덧붙여 기술 혁신의 가능성 면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뒤쳐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마저도 불안한 게 러시아의 고급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데 항공 우주 분야가 그 중에서도 특히 타격이 크다고 한다.###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인력이 태부족한 실정이니, 침체는 불가피한듯. 러시아의 우주산업 전문가이자 스타트업의 CEO인 파벨 루진은 개혁이 없다면 러시아의 우주 능력 상실은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주항공 산업을 상업화하는데 명백히 실패했다. 현재 러시아의 상업 위성 시스템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다. 또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상업 발사체 시장에서 러시아의 점유율은 절반을 넘었으나 2018년 기준 미국의 민간 기업들에 밀려 점유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지구 저궤도 운송 사업을 국가 기관이 주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누가 하냐면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ULA 같은 민영 기업들이다! 보잉록히드 마틴이라는 고인물들이 모여서 만든 ULA는 사실상 기존 NASA의 발사체 기술력 그 자체이고 스페이스X는 특기인 로켓 재활용 기술을 이용해 발사 비용 절감과 위성 발사 수주 물량으로 러시아를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블루 오리진 역시 엔진 기술력에 몰빵하는 개발 방식으로 인해 자사 로켓은 아직 개발되기도 전에 엔진 공급 계약부터 체결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래서 NASA의 주력 분야는 SLS 같은 외우주 탐사 로켓과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이다. 그리고 이제 상기의 스페이스X팰컨 헤비스타십을 통해 외우주 미션까지 NASA의 밥줄을 끊겠다고 나서는 판이라 로스코스모스라는 공공기관이 타국의 민간기업과 모든 영역에서 경쟁해야 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상업화 실패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주산업을 민간에 이양하는데에도 실패했다. 또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메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위치도 아니며 혁신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지도 않다. 소련 이후 러시아의 우주항공 기술의 절대다수는 군사적 응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직까지도 최고급 굴절망원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광학계(렌즈)는 주로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로고진 러시아 연방 우주청장은 2018년 11월 6일에 달표면에 장기 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로보트 아바타의 도움을 받아 달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심각한 정체상황과 더불어 러시아 연방 우주국의 심각한 비리, 횡령도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아가 달이나 화성 탐사용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초대형 로켓발사체 개발을 2028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9. 사회[편집]

러시아 문화 자체는 불청객들에게 그렇게 차가운 문화는 아니다. 물론 전쟁 시기에는 서로 모두를 경계하거나 불청객으로부터 집 지키는 게 일이었지만, 1861년까지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내 재산, 내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1861년, 농노해방령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까지 수백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은 인구의 약 91% 정도가 농노 혹은 소작농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개인 재산도 일부 허용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땅이 아닌 주인의 땅에서 농사를 짓기에, 정말 순수한 자신만을 위한 개인 공간은 없었다. 근대에 농노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근대화가 조금씩 진행되어 이러한 경향이 약해져 갔으며 중산층에서도 내 것, 내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후 여러 전쟁과 소련 붕괴 같은 사회가 혼란해지는 사태를 여러번 겪어서 러시아인들이 호전적이고 자신의 안전 침해에 민감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대부분의 타 유럽 지역에서는 이러한 봉건적인 문화가 빠르면 16세기, 늦게는 18세기에 정리되어 상당수의 농민들이 도시로 가 일을 하며 자신들의 공간과 삶을 만들거나, 미지의 타지(他地)로 가서 모험,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가 퍼지기도 했다. 이렇듯 19세기 중반~말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러시아와는 다르게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거쳤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9.1. 치안[편집]

러시아 국가경찰과 러시아 국가근위대(구 내무군)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부패가 만연한 러시아의 특성상 국민의 신뢰는 낮다. 다만 이런 부패는 대부분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거주지 불명 같은 경범죄 처리에 해당하며, 강력한 집권자가 존재하는 국가답게 중범죄 처리는 엄격하다.

러시아 레드 마피아는 그 세력이 강하기로 유명한데, 택시를 타도 마피아 계열의 택시를 타면 강도로부터 안전하고, 의뢰받은 일은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완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만 정부의 단속으로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그래도 여전히 마피아의 암약은 상당한 수준이다.

살인발생 수 통계를 보면 러시아의 살인범죄 발생 수는 1987년에는 소련 10만명당 6명, 러시아 SFSR은 6.4명으로 1987년 10만명당 8.3명이었던 미국보다 낮았다. 소련 붕괴 이후로 3배 이상 급증하여 2001년 33,600건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고 살인건수도 10만명당 20명 이상을 찍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2000년대 이후 치안이 크게 개선되어 2018년에는 7,067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약 4분의 1로 줄어든 수치이나 여전히 대한민국의 6배 정도 되는 높은 살인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에는 소련 시절보다 살인률이 낮아졌고 2018년에는 10만명당 5.2명으로 살인율이 급감해서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감소했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는 뉴욕 살인율의 절반 수준이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치안 지수는 85.69로 세계 1위이다. 반면에 같은 조사에서 러시아의 치안 지수는 52.69로 세계 68위다. 이 정도면 인도네시아(67위), 요르단(66위) 보다 낮은 순위이며 동유럽권 국가 중에서도 세르비아(58위), 불가리아(48위) 등 보다 낮은 순위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러시아가 110개 국가 중 뒤에서 46위의 치안지수로 미국과 비슷한 치안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개도국 수준의 치안상태가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문제는 앞에 있는 나라에 이라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와있는 crime index 가지고 러시아가 그만큼 안전하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관광객들이 접할 수 있는 범죄로는 관광지, 지하철역, 열차 등에서 소매치기가 있으며, 특히 4월 20일 히틀러 생일부터 5월 9일 승전기념일 사이에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

러시아 스킨헤드는 피부가 보일 정도로 머리를 짧게 밀고 검은색 옷을 입거나 아니면 웃통을 아예 벗고 다닌다는 인식과 다르게 요새는 평범한 옷차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7년에는 가정 폭력에 대해 처벌을 대폭 낮추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서부 러시아에 비하여 이르쿠츠크나 블라디보스토크 등의 동부 러시아는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어두컴컴해지기 전에는 뒷골목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반 여행객 처지에서는 나름 치안이 괜찮은데, 여름에 가면 백야 현상 때문에 하루종일 어두컴컴해지지 않는다.

9.1.1. 과거의 치안[편집]

소련에서는 암시장이 전국적으로 크게 성행했다. 그냥 조직 한 두개가 여는 그런 소규모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도시의 주민들이나 선박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닐 일이 많던 러시아 선원들이 부업으로 콜라, 플레이보이 잡지, 말보로 담배, 재즈 음반 등등 적성국가들의 것이니 당연히 금수(禁輸) 품목이던 미국, 서유럽, 일본제 물품들을 들여와 몰래 비싸게 팔아서 재미본 것이었지만 연방의 붕괴가 진행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단순히 소박한 수준의 서방 물품 유통용 암시장은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전직 소련군의 제대 군인들, 순식간에 러시아 내에서 불법체류자가 된 많은 타 공화국들의 노동자들, 한 순간의 충동으로 아파트고 차고 다 잃어버려 새로 생긴 극빈층들,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전직 KGB의 첩보 요원들 등등으로 구성된 수 없이 많은 마피아들에 의해 시장이 잠식되었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약해질 대로 약해진 중앙정부는 제대로 통제 시도도 못했기에 결국 각 도시들은 여러 범죄 그룹에 의해 나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들 간의 세력갈등이 너무 심해서 공사장이나 상점 한 번 잘못 들어갔다가 총알세례로 벌집이 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곤 했다. 사유지가 아니라 공사장이나 상점 등의 '개인' 명의로 된 공공장소에서 실제 일어나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경찰들은 당시 이런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못본 척 했는데, 경찰 몇 명이 가서 통제를 해보려고 해도 상대는 재량에 따라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 타 공화국들에서나 자국에서 밀수입한 '군사용' 돌격소총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영화 로드 오브 워에 나오는 것처럼 소련 붕괴 이후 대량의 무기가 주인을 잃거나 애매해져서 무기상들에게 넘어갔고, 실제로 엄청난 양의 무기들이 팔려나갔다. 반면에 경찰들의 무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정부 치안 유지 기구들은 급격한 민주화로 인해 권한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경찰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이 마피아들에게 매수되어 있었다. 당시는 블랙박스CCTV 등의 기록장치들이 선진국들에서도 흔하지 않던 시대였는데 러시아 같이 한순간에 헬게이트가 열린 나라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포상이나 사후 보상은 커녕 월급이나 제대로 챙겨줄지도 의문인데 시민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느니 그냥 안전하게 갈길 가거나 위험하긴 해도 자기들의 밥줄생존을 보장해 주기는 하는 마피아들과 붙는 게 그들의 마인드였던 셈. 이렇게도 중앙정부가 무능한 상황에서 통제를 하려고 해도 통제가 안 되니 사유지, 사유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상 그냥 신경을 껐다는 것이 온당한 표현일 것이다.

1990~2000년대 초반 상황을 다룬 러시아의 여러 매체들을 보면, 총기, 도검류 등의 살상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인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같이 범죄 조직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인구 밀도도 높은 도시들의 빈민가나, 러시아 마피아들이 세를 날리던 곳의 주민들 중의 상당수는 총기류를 보유하고 있었다. 보통은 가벼운 경무장이었지만, 소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RPG같은 대전차 화기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무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집안에 있을 때는 대담히 전시, 혹은 소지하고 있었다. '내 집엔 이런 게 있으니, 너 나 잘못 건들면 개발살난다' 라는 일종의 위력과시가 주목적이었겠지만 강도도둑들이 들어왔을 때 진짜 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당연히 경찰이 출동해서 조사하고 총기를 압수해 가고 법원에 회부한다. 사실 의외라고 한다면 러시아는 사냥용 이외의 총기 소지가 불법이며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보다 총기소지법이 빡빡한 편이다. 예를 들어 사냥용 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산탄총이나 공기총 등의 무기를 5년간 무사고로 소유해야만 겨우 허가가 나는 수준.

9.2. 사회 문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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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편집]

소련 붕괴 이전인 1980년대 말 소련 정부가 미국 문화에 대해 개방조치를 취한 이후 패스트푸드, 청바지, 팝 등의 미국 문화는 1년도 안 되어 소련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 전에 서방 문화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건 아니고, 펩시 콜라가 인기를 끌고[99] 일부 예술영화도 상영되는등 암암리에 들어올 건 다 들어왔다.

실제로 1960년대 소련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바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로큰롤이나 서구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존재했다. 많은 음반들이 밀수를 통해 소련 국내로 흘러들어왔고, 197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씬도 있었으며, 1980년에는 록 페스티벌도 열렸다! 당장 메드베데프 총리도 소련 시절부터 락 음악 덕질을 시작한 인물 중 하나. 게다가 많은 영화나 음반이 불법 복제품으로 유통되었다. 이는 유럽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동양의 공산국가들이나 알바니아 같은 일부 특이케이스들과 달리 정치나 사상면에서는 억압적이라도 개인들의 사생활에는 어느 정도 여유있는 태도(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시각)로 일관한 것에서 기인한다.

지금도 문화산업에서 동성애 등 일부 소재는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중국 같이 직접적으로 검열을 하는 나라보다는 훨씬 창작의 자유에 관대한 편이다. 포르노 산업도 합법은 아니지만 활성화되어서 여교사가 포르노 배우를 부업으로 삼았다가 해고되는 웃지못할 일까지 일어날 정도. 물론 사회적인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자료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ONI처럼 정치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인터넷 검열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덜한 나라로 평가하기도 한다. TV방송도 수위는 한국보다 높은 편인데 금요일과 토요일 심야시간대에 성인영화를 대놓고 틀어줄 정도였다.[100]

대표적인(범용적인) 인스턴트 메신저로는 브콘탁테가 있다.

전설로 전해내려오는 것 중에는 브로스노 호수의 용이 있다.

10.1. 유럽과 아시아 사이[편집]

러시아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슬라브 문화가 바탕에 있다. 그러나 동로마 문화와 몽골 지배로 흘러들어온 몽골 문화러시아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몽골의 지배(킵차크 칸국)는 서구화를 지향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했으나, 러시아 역사에서 전반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에 표트르 대제의 급격한 서구화에 맞물려 러시아는 여러 문화가 혼합된 매우 특수한 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러시아의 모습은 바로 이런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러시아를 가보면 서구적이라고 느끼지만, 서양인들은 러시아에 오면 아시아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 중에서는 러시아를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고려한 것일수도 있으나 러시아를 비하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서유럽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역사적 과정을 밟아 왔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아시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 때 러시아인을 타타르족이라고 불렀으며,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도 소련을 몽골이라고 불렀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 만들어진 중, 근세 러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에서는 러시아로 결혼해서 살러가는 유럽의 왕녀나 귀족 여성이 "동토의 아시아 국가로 가게 됐다."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이반 뇌제가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에게 청혼을 했는데, 시녀가 저런 말을 하며 뇌제의 청혼을 거절했다. 러시아인들도 서유럽인들의 이런 인식을 모르는 게 아닌지 러시아에서 제작한 사극에서도 러시아 제국 황태자에게 시집가는 독일인 여주인공이 아시아 국가 운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유럽'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지리적 요소보다는 문화적 요소에서 분류되는 측면이 강했다. 유럽 문화의 근원인 로마 제국의 후예 이탈리아와 프랑크 제국 해체 이후 가장 먼저 유럽사에 등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이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스위스와 베네룩스 3국[101], 십자군 이후 유럽 국가들의 패권 경쟁에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따로 놀긴 했지만 적어도 8세기경 바이킹 등장 이후엔 유럽에 합류한 노르만계 북유럽 4국[102]의 경우 시작부터 유럽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지만 이들 외 다른 민족들이나 국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령 유럽에서는 '유럽' 문화와 이질적이거나, 혹은 낙후된 국가들을 아시아라고 분류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인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황인종으로 분류되었으며 헝가리는 19세기까지 아시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브람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의 묘사 등의 사료를 보면 발칸 반도와 그 인근 국가들 역시 19세기까지 유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03] 터키카프카스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덤으로 스페인은 나폴레옹에게서 "유럽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에 더 가깝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104]

유럽 내 민족과 유럽 국가들이 유럽의 범위에 포함되기 시작한(?) 순서와 미국에 이민을 가서 미국 사회의 주류에 합류한 순서는 매우 비슷하다. 미국은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들이 발견하고 개척한[105] 아메리카 대륙인 만큼 미국에 가장 먼저 이민 온 민족은 유럽계이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사실이고 흥미로운 건 유럽계 이민자들도 미국에 정착하여 주류 민족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먼저 정착하고 미국을 건국한 건 누가 뭐래도 영국계이다. 여기까지도 당연하지만 중요한건 누가 영국계 다음인가? 라는 질문인데, 영국계 다음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주류가 된 건 독일계이고, 유럽의 범 게르만계인 네덜란드계와 스칸디나비아계가 그 뒤를 이었다. 영국계와 게르만계를 제외하고 미국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이민자는 북미 개척 당시 영국과 함께 북아메리카를 양분했던 프랑스계이고 이후 유럽계 중에선 비교적 미국 이민이 늦은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가 미국에 이민을 온다. 지금이야 미국 이민 시기도 늦고 중남미의 정치 경제 상황과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이민이 현재진행형인 히스패닉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갱 등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미국 이민이 늦은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마피아에 종사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유럽계 이민자가 아님에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왔으며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는 달리 일찍 주류 사회에 합류했다. 이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 흑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합류하고 러시아계와 동유럽계의 이민이 시작되면서 유럽계 이민자들의 미국 사회 합류 작업은 서서히 마무리된다. 유럽계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될 무렵 인도계와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이민을 선택하여 앞선 유럽계 이민자들의 노선을 밟고 현재는 히스패닉계와 아랍계가 이민 및 동화 노선을 밟고 있다.

물론 이건 세부적인 이야기이며 세계적 인식으로 따지자면 러시아의 수도나 중심지가 유럽 땅에 있으며 인종, 문화적으로도 러시아를 유럽으로 보는 편이 우세하다.

당연히 이 문제를 두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가령 러시아를 유럽의 일원으로 여기던 유럽주의자들과 "러시아는 러시아다."라며 러시아 자체적인 특수성을 신봉하던 러시아주의자로 나뉘어 논쟁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서유럽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여왔다. 나폴레옹 시대의 러시아는 왕족과 귀족들이 프랑스에 조그마한 땅이 있거나 잠시 활동하고 온 걸 자랑하기도 했으며 러시아어보다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일부러 하층민들이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게 하면서 무시하려고 사생활에서 자기들끼리 프랑스어를 쓰는 러시아 귀족들도 흔했다. 당시 러시아에서 프랑스어는 상류층의 상징이며 필수 교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5인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유럽권 국가에서 서유럽이 이끌던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음악을 시도하고 그것을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 같은 위상으로 올려놓은 국가이기도 하다.

소련 시절에도 이 논쟁은 지속되었는데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트로츠키스탈린의 권력투쟁을 유럽주의자와 러시아주의자의 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트로츠키는 신생 소련은 세계혁명, 우선적으로는 서유럽에서의 혁명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을 것(세계혁명론 또는 영구혁명론)이라고 봤고, 스탈린은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공산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일국사회주의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광범위한 러시아주의자의 지지를 업은 스탈린이 승리했으나, 소련 말 고르바초프, 옐친같이 서방에 유화적인 지도자가 나오는 한편, 푸틴같이 친서방을 취하다가 다시 독자노선을 걷는 등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2. 관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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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음악[편집]

클래식에서 독특한 특색으로 엄청난 인상을 남겼고 가장 크게 발달해 있는 분야이다. 미하일 글린카, 표트르 차이콥스키, 러시아 5인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등은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작곡가들. 클래식과 함께 발레도 발전했다.

러시아 민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검은 눈동자, 칼린카가 대표적인 러시아 민요이다. 워낙 많은 민족이 있는 나라이다보니 카자크 민요라든지 집시 민요가 러시아 민요에 흡수되었다. 이런 민요들 중에서도 유명한 게 꽤 있다.

또한 러시아의 대중 가요가 꽤나 더디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차이콥스키로 유명한 러시아인들의 음악적 재능이 달아나는 것은 아닌지라 좋은 곡들이 많이 만들어졌고,특히 예고르 레토프의 그로즈단스카야 오보로나(민방위), 레닌그라드 록의 전설 아크바리움, 레오니트 표도로프의 아우크치온, 빅토르 초이키노, 비체슬라프 부투소프의 나우틸루스 폼필리우스, 고르쇽-크냐지의 카롤 이 슈트, 유리 호이의 섹토르 가자, 유리 셰프추크의 ДДТ 등으로 대표되는 1980~90년대의 격동기에 여러 밴드들이 내놓은 수많은 곡들은 시같은 느낌의 환상적이고 수준높은 가사들과 폭발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러시아인들이 대중 가요는 못 만들고 군가와 민요만 발달했다는 묘한 선입견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광복 이후 약 40여 년간 러시아와의 그럴듯한 교류가 없어서 몰랐던 것이지 러시아 대중 가요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만송이 장미도 소련 시절 가요다.[106]

친정부적 가요 장르인 에스트라다 가요 중에서도 지금 들었을 때 꽤나 훌륭한 것들이 많고, 그 중 상당수는 서구로도 건너가 인기를 많이 끌었다. 물론 서정적인 가곡도 많이 발전했다. 소련 시절에 비정치적이라고 하여 많은 디스를 받았지만, 많은 가수들의 노력으로 러시아 로망스는 그 나름의 맛을 인정 받고 있다.

또한 체제의 폭압을 거부하며 러시아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만들어낸 바르드 가요라는 것이 있다. 기타 한 대를 들고 자신들이 쓴 시에 자신들의 곡을 붙여 부른 것들을 바르드 가요라고 한다. 음유시라고 번역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비정치성과 반항성으로 체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바르드 가요의 인기는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80년대 러시아 록의 발전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음악들은 주로 마그니티즈다트라는 카세트 테이프 녹음집에 담겨져 유통되었다.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불라트 오쿠자바를 바르드의 양대산맥이라고 일컬으며 율리 킴과 1세대 바르드 가수인 알렉산드르 갈리치를 더하여 4명을 주요 가수로 꼽으며, 이들 이후로는 알렉산드르 바실라초프[107]가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싱어송라이터 레지나 스펙터는 러시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9세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미국에서 주요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10.4. 영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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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음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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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차(茶) 문화[편집]

보드카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삼시세끼 보드카만 마시는 고주망태의 나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손 꼽히는 대표적인 차 소비국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의 98%가 차를 즐긴다고 하며, 초등학생들도 학교에 보온병을 가져와 쉬는시간마다 개인 컵에 자연스럽게 차를 우려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드카의 이미지가 더 크기 때문에 러시아와 같이 차를 즐겨마시기로 유명한 중국, 영국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는 않은편이다.

파일:사모바르.jpg

러시아 차문화는 사모바르(самова́р)라고 불리는 주전자로도 유명하다. 주전자 중심에 원통형으로 빈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는 개인 가열기구로, 사모바르라는 이름도 "스스로 끓이는 용기"라는 의미이다.

또한 홍차에 잼을 곁들여 먹기도 하며 아예 이런 방식을 '러시안 티'(Russian Te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러시아에선 차를 진하게 타거나 여러번 찻잎을 우려내서 홍차가 쓴맛이 강한 경우가 있는데, 주로 입에 잼을 머금거나 홍차에 잼을 타서 먹는다. 물론 무조건 잼만 쓰는건 아니고 각설탕을 쓰기도 하며, 영국처럼 달달한 과자나 케이크[108]등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10.5.2. 음주[편집]

보드카의 나라. 대표적인 보드카로 스톨리치나야가 있으며, 과거에는 스미노프[109]도 생산했다. 옛날부터 남자들이 에 쩔어서 사는 것이 거의 전통이다.[110] 일단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인 표트르 대제가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은데 술을 끊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셔서 죽었다는 것만 봐도 러시아인이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지 짐작 할 수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축축 늘어져 있을 정도.

근래에 들어서는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러시아 정부는 오래 전부터 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불법으로 밀조되는 술들이 늘어나고, 그 질도 조악한 화학합성물이 많아 잘못 먹으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 고르바초프가 일시적으로 금주령을 제정했을 때 특히 밀주가 심했다. 참고로 러시아인들에게 감히 금주령 따위를 선포한 고르바초프는 지지율을 모조리 날려먹고 차기 대선에서 보기 좋게 낙선하게 된다. 자세한 것은 금주령 문서 참조.

이렇게 술이 극도로 대중적이다 보니 음주운전도 예사에 교통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여기에 신년 때는 과음을 하고 길거리에서 자다가 동사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따라서 당국에서도 이 때만큼은 평소의 3배에 달하는 경찰력을 풀어 취객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얼마나 전 국가적으로 에 대한 개념이 관대했는가 하면, 금주 정책의 일환으로 주류를 구매할 때 전용매장에서 허가 하에 구입해야 하는 러시아에서 맥주는 2011년까지도 '음료수'로 분류되어 슈퍼에서 탄산음료 사는 듯한 개념으로 구입, 판매가 허용되었다.[111] 이 정도의 도수는 느껴지지도 않았다는 듯이. 하지만 금주정책을 더 강화하는 와중에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2009년 9월에 맥주를 술로 인정하는 '알코올 제품 생산과 유통에 관한 국가통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는 맥주도 밤 10시 이후에 구입할 수 없다.

"크바스"라는, 맥주와 유사한 전통적인 알코올성 음료가 있는데(알코올 도수는 맥주의 절반 정도), 이것의 경우 러시아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 마시며, 술로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예부터 러시아에선 온도가 -40도보다 높으면 추운 날씨가 아니고 알코올 도수 40% 이하는 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도수 40% 이상의 독한 술을 즐겨 마신다.

유달리 남성에게 음주가 더 권장되고 관대한 문화가 있는데, 여성에게는 이것이 훨씬 덜하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 여성들은 남자들의 무분별한 음주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남자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좋아한다고 하고, 여자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멀리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할 정도. 물론 러시아에도 술 좋아하는 여자, 술 싫어하는 남자는 있다. 전반적인 문화상 분위기가 그렇단 것이며, 통계로도 남녀 격차가 대놓고 드러날만큼 나름대로 뚜렷한 경향이다.

그래서 러시아 남성의 알코올 의존증은 러시아의 큰 고민거리이다. 인구 문단에서 상술했다시피 여성 평균 수명보다 남성 평균 수명이 15년 가량 적다.[112] 통계에 따르면 남성들 중 무려 25%가 55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원인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과 간암, 간경화 등 간 관련 질환.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이 64년[113]에 불과하여 자녀가 아직 20대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사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범죄와 가정폭력, 이혼이 심각해서 러시아 내에서도 큰 문제일 정도다. 비록 2010년대 들어서 맥주 주류 지정 등의 반 알코올 정책으로 알코올 소비가 줄고있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어가고 있다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운전자가 술을 마시면 자동차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는 특수 안전장치 개발을 추진 중이다.#

10.6. 전통공예[편집]


흔히 러시아 인형(Russian doll)이라고 부르는 마트료시카는 엄마라는 뜻의 ма́ма의 지소형이다. 러시아어에선 작은 것을 뜻하거나, 애정을 담거나, 조서의 의미로 원래의 단어에 지소형을 붙인다. 주로 슈카나 치카를 붙인다. 즉 작은 엄마라는 뜻이다.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통 방식은 전통복장을 입은 러시아 여성 모양이지만 요즘에 기념품으로 만드는 건 여러가지 인물이나 캐릭터를 자유롭게 넣기도 한다. 마트료시카는 관광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기념품이다.

또한 동로마 이후 정교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국가답게 이콘과 부활절 달걀 공예도 정교한 편이다. 기념품을 사려고 하나 돈이 없을 경우엔 허접한 기념품가게 마트료시카보다 이런 기독교 관련 민예품들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7. 학문[편집]

10.7.1. 과학[편집]

과거 러시아 제국에는 귀족과 개혁 이후 늘어난 중산층 지식인들 사이에서 과학 연구가 활발하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세계적인 과학 강국으로 손꼽혔으며, 기초과학이 탄탄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의 여파로 현재 러시아의 기초과학은 물론 특히 연구에 돈이 많이 드는 응용과학 분야는 매우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SCI 등재논문의 피인용율을 통한 과학기술분야의 연구성과 측정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이나 인도보다도 연구성과가 뒤떨어질 정도.# 해당 보고서를 확인해보면 단 한 번도 러시아가 거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분야에서도 7위 이내에 거론되지 못하고 있으며 SCI 논문 피인용 상위 1%에서는 20위권에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기초과학이 세계 최고수준과 거리가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SCI 논문수로 보면 러시아는 2006년(35813편, 14위)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9년 기준 111,820편의 논문을 냈고 이는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수치지만 논문 1편당 인용수가 0.38에 불과해 50위 내의 국가 중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낮아 실제 학문 분야에 끼치는 기여도는 논문 수에 비해 미미하다. 또다른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서 러시아는 2021년 기준으로 18위에 불과하여 싱가포르, 이스라엘, 스웨덴보다도 연구 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학으로 보면 네이처 인덱스 내의 500개 대학 중 러시아 대학은 모스크바국립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 단 2개만이 순위에 있을 뿐이며 이는 대만(500위 내에 5개)보다 적으며 대학 순위도 각각 299위, 397위에 불과한데 전자는 한양대학교(250위), 후자는 GIST(390위)보다 연구 성과가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2013년에는 푸틴이 직접 “현재 러시아 기초과학 수준은 소련 시절 구축한 성과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다음해인 2014년에도 푸틴은 인재유출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두뇌 말라가는’ 러시아, 푸틴의 또다른 고민

이렇게 러시아의 기초과학이 침체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소련 붕괴 후 경제난으로 인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감소한 데에서 비롯된 듯 하다. 2010년 기준으로 러시아 최고 연구 기관들의 예산은 유사한 미국 연구기관들의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또한 소련 붕괴 후 8만 명에 달하는 고급 연구인력들이 빠져나간데 이어 부족한 투자로 인해 두뇌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어떻게 도로 데려와보려고 똥줄이 타는 듯 하나, 관료들과 해외 러시아 과학자들 간 의견이 잘 안맞아서 해외 러시아 과학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과거에 책정했던 예산의 가치가 반토막 밑으로 떨어지면서 그저 묵념.

또 러시아 과학계의 폐쇄성도 지적을 받고 있다. 러시아 연구자의 다수는 논문을 국제 저널이 아닌 러시아 자국 내의 저널에만 게재하는 경향이 있는데 2005년~2017년 사이에 국제 저널에 논문이 게재된 정도로 분석한 세계화 지수에서 러시아는 0.38점으로 주요국 중 독보적으로 낮다.[114][115] 상위 1% 인용 과학자의 수는 고작 5명에 불과하다. 거기에 국제협력연구 비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낮아졌다. 특히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에 미국 과학계와의 연결 고리가 끊긴 점은 향후 러시아의 과학계가 세계화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여전히 러시아 과학계의 인력 자체는 많은 편이지만 고급 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러시아에 남은 인력은 상대적으로 저질이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 러시아 논문의 질적 수준은 단순히 상위권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도 최하위 수준인데, 2019년 SCI 논문 1편당 인용 수에서 러시아의 순위는 213위로 이라크나 쿠바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논문 수로는 10위 안에 들지만 상위 논문으로 보면 20위 안에 간신히 드는 수준이다. 표절 문제도 심각하다. 러시아가 논문을 게재한 저널 94개 중 37개에서 거짓 협력 사례가 발견되고 61개에서 표절 논문이 드러났으며 이러한 러시아 과학계의 비윤리적 관행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116]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는 약 2,528개의 논문을 철회할 것을 자국 과학자들에기 권고했는데 자국에서의 검사가 저 정도이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수학, 물리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유지하고 있다. 즉,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머리만 있으면 연구가 가능한 분야[117]는 그나마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도 고등학교(10-11학년) 교육과정중 물리와 화학은 한국의 고교 교과 과정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어렵다.[118]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을 고려하면 상당한 것,

2016 U.S. News & World Report의 대학평가에 따르면 모스크바 국립대학교가 종합 순위에서는 227위로 231위인 한국의 성균관대학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 세부 분야별로는
물리학 23위
물성물리학 180위
임상의학 집계안됨
생명공학 및 화학생명공학 196위
화학 103위
컴퓨터공학 집계안됨
미생물학 집계안됨
수학 51위 로 나타났다. 수학, 물리학에서는 강세를 보이나 나머지 분야에서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뒤쳐지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참고로 한국, 러시아 둘 다 집계가 안된 분야는 이 항목에서 명시하지 않았다. 또한 집계가 안된 것은 아예 순위 밖으로 나가떨어진 것이거나 평가기관 측에 제공된 자료가 없어서 집계가 불가한 경우 중 하나이니 섣불리 뭐가 높고 뭐가 낮다고 여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애초에 대학평가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상하이교통대학 세계대학평가에서 모스크바 대학교는 [119] 동 시기 서울대학교의 경우 [120] 물리학이 모스크바 대학교보다 앞서고 수학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종합 평가에서는 모스크바 대학교가 86위, 서울대학교가 101~150위 사이로 모스크바 대학교가 약간 더 우위라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물리학에 있어서도 다른 학문에 비해 상황이 나은거지 딱히 러시아가 해당 학문을 주도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SCI 논문 인용수로 러시아는 9위, 네이처 인덱스에선 15위에 불과하다. 수학으로 보면 러시아는 분명 세계적인 수학자를 많이 배출했으나 이들은 거의 외국 대학에서 연구하지 러시아에서 연구를 하지 않는데 예를 들어 러시아 내 필즈상 수상자 9명 중 7명이 외국 대학 소속이다.

즉 2020년대의 러시아 과학계는 고급 인력의 유출 + 급격히 낮아진 국제협력으로 인한 과학계의 갈라파고스화 + 표절을 비롯한 비윤리적 관행의 만연 + 과학 인력의 고령화 + 논문의 저질화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또한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기초 학문에 투자할 여력도 거의 없고, 소련 붕괴 후 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학 자체의 경쟁력도 유럽, 미국에 비해 심각하게 낮아졌다는 점, 무엇보다 크림 사태 후 미국, 유럽 등과의 학문 교류가 크게 줄어버린 점 탓에 반등할 여지도 없다.

10.7.2. 인문학[편집]

러시아 문학의 선구자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 1825년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한 이래 19세기를 황금 시대(Golden Age), 20세기를 은의 시대(Silver Age)로 칭한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미하일 레르몬토프, 이반 투르게네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레스코프,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 이반 부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미하일 불가코프, 미하일 조셴코,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21],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등은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작가들이다. 열거된 문인들은 대부분 소설가인데 사실 러시아 시도 상당히 유명하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오십 만델슈탐, 빅토르 흘레브니코프,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마리나 츠베타예바, 안나 아흐마토바, 조지프 브로드스키 등 현대 문학사에 발자취를 남긴 시인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미래주의 문학이 러시아에서 출발한 건 덤. 이처럼 러시아가 세계 문학사에서 남긴 자취는 정말 크다. 이마저도 수많은 작가들을 탄압하고 죽여버린 이오시프 스탈린때문에 정말 많이 꺾이고 남은 결과물이다.[122]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앞에서 열거된 작가들이 러시아 문단에 등단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전쟁, 농노해방령,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갈등, 산업혁명, 1차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독소전쟁 등 정말 다양하고 처절한 사회적 혼란과 격변을 겪었고, 이는 작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했다.

일찍부터 해외문학을 번역해온 일본에선 메이지 시대의 작가들이 러시아 문학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에 기가 죽어 공로병(恐露病)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작가들이 러시아 문학에 가지고 있던 공로병 증상을 비판한 적도 있다. 러시아 문학은 일본 근대문학은 물론이고 현대(19세기~20세기) 한국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소설들이 많이 알려졌다. 현대 한국 작가들 중엔 시인 겸 소설가 이장욱이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읽다 보면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꽤나 맞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인지 러시아 고전문학은 현대에도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이시절에 나온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들은 20세기 후반부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 도서전에서도 여러차례 지적된 상황.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스탈린 사후 해빙기에 활발히 활동한 아나톨리 리바코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두딘체프, 유리 트리포노프, 칭기스 아이트마토프, 발렌틴 라스푸틴, 아나톨리 김[123]을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 번역이 활발해지는 시기는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북방외교라는 표어 아래 공산권 유화정책을 취했던 노태우 정권 부터다. 1990년에 닥터 지바고의 최초 러시아어 완역본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는 등 과거 중역으로 접해온 대작들이 원어로 번역되고 중앙일보사에서 중국현대문학전집과 함께 기획한 소련동구현대문학 전집을 통해 은의 시대와 해빙기에 활동한 주옥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을 즐겁게 했다.[124] 노문학 번역붐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는데 이때 번역되었다가 절판되고 재간되지 못한 작가,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특히 솔제니친을 제외한 해빙기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2020년대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하면 보통 19~20세기 초반 태생 작가들의 근대 문학과 드미트리 글루홉스키메트로 시리즈,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위치 시리즈 같은 현대 SF/판타지 소설을 떠올린다. 소련 해체 이후에 등장한 빅토르 펠레빈,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타티야나 톨스타야, 보리스 아쿠닌, 이리나 제네쥐끼나 같은 작가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문학에서 다음 같은 사건도 있었다. 영국에선 식료품점에서 어제한 축구 얘기하다 주먹싸움이 벌어진다면, 러시아에선 식료품점에서 칸트 사상 논쟁 하다가 총을 쏜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철학에 대한 토론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10.8. 교육[편집]

소련 해체 이전의 러시아의 공교육 수준은 명색이 초강대국답게 대체로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정부에서 돈이 없어 교육예산을 제대로 내줄수 없게되었고, 교사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고 겨울철 난방도 제대로 안될 지경인데 이 상황에서 교육의 질이 높으면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서 교사월급이 어느정도 올라왔고 공교육의 수준도 이전보다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되며 시장화와 더불어 사립학교들이 난립함에 따라 교육격차도 커졌는데 이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소련 해체 후 교육 시스템은 전면적인 개정을 거쳐 9학년까지를 의무교육으로 책정하였고, 대학별로 입학시험이 있었을 뿐 한국의 수능에 대비되는 이렇다 할 대학 진학시험이 없었다. 사립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학생선발 시스템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자 2008년에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진학시험인 Unified State Exam(Еди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кзамен)이 도입된다.[125]

교육은 소련 시절에서 더 후퇴한 것 같다는 평가를 들으며, 교육부의 탁상행정, 아직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졸업시험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야말로 처참한 공교육의 질이다. 이유를 들어보자면,

1. 교사의 월급이 매우 낮아[126] 경쟁력 있는 교사의 수가 극도로 부족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 교사는 수업 후 과외 수입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구분 없이 반이 바뀌지도 않고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쭉 공부하는 특성상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는다. 사실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인데, 한국처럼 학교가 나뉘어져 있다면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 후 자신에게 맞는 학교로 갈 것인데 공부가 맞지 않는 아이들이 반에 계속 남아있게 되면 면학 분위기를 크게 해치게 된다. 실제로 최상위권이나 최하위권의 학교를 제외한 중위권 학교들의 졸업시험 성적을 보면 졸업 기수마다 평균 점수 차이가 매우 큰데(많게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30점 차이) 이것을 보면 반의 학습 분위기가 얼마나 반 구성원들의 실력에 영향이 큰지 알 수 있다.

3. 사실상 가장 근본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로, 교육부로부터의 재정 지원이 말 그대로 참담하다. 사립교는 재단이라도 있지만, 대다수의 국립학교들은? 다 낡아 떨어져가는 학교 시설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받는 것도 없으니 학생들의 애교심과 소속감은 바닥을 치고, 안 그래도 낮은 교육열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외국인의 러시아 유학을 지원하는 러시아 정부 장학금(Российские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е стипендии)이 시행되고 있다.

10.9. 스포츠[편집]

냉전시절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스포츠를 전폭 지원하였으며, 실제로도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에도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긴 하지만 소련 시절에 비하면 살짝 약체화됐고, 다른 국가들로 인재들이 퍼진 감이 있다.

소련에는 러시아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있었지만 소련 시절도 따지자면 1991년에 해체한 소련의 기록이 레슬링, 배구, 역도, 카누, 체조, 핸드볼에서 아직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 하계올림픽 우승국 정보에 따르면 프랑스, 영국, 독일, 중국이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1위를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하계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이 1위 자리를 소련이 6번이나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테니스에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인 마리아 샤라포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레프 야신, 피겨 스케이팅의 황제로 불리는 예브게니 플루셴코, 장대높이뛰기 역대 최고의 여자 선수로 불리는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있다.

체스로도 유명하다. 현재 국가랭킹 세계 1위를 하고있으며 그랜드 마스터를 무려 203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127] 그 외에도 인터내셔널 마스터 수, 평균 레이팅, 레이팅 등록자 수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다. 16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낸 가리 카스파로프가 이 나라 사람이다. 역대 최고의 레이팅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세계 최초로 슈퍼 컴퓨터와 체스 대결도 했던 전설적인 플레이어다.

축구유럽 축구 연맹에 속해 있다. 소련 시절에는 중상위권 정도 하는 강팀이었지만, 해체 이후에는 힘을 영 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UEFA 유로 2008에서 4강,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8강으로 체면 치레는 했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또 현재 유일한 골키퍼 발롱도르 수상자인 레프 야신도 러시아(정확히는 소련) 출신. 자국 리그에 대한 투자가 대단하지만 그만큼 쇄국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농구도 세계적인 강호이다. 유로컵 바스켓 대회에선 소련 시절 모두 14번 우승했으며 러시아 시절에서도 1번 우승했다. 1950~1970년대만 해도 유로컵 바스켓은 유럽 최강을 자랑했으며 그나마 유고슬라비아가 유일한 유럽 내 라이벌이었고 세계적으로도 미국이 유일한 상대 국가였을 정도로 농구에선 세계 최강을 자랑했다. 소련 시절에는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나라들이 독립해서 예전보다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유로컵 농구 대회에선 8강권에 드는 강호로 활약하고 있다.

배구 역시 세계적인 강호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월드리그,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수확하였다. 월드리그에서 개편된 네이션스리그도 2년 연속 우승했다. FIVB 랭킹 남자부 5위, 여자부 7위를 자랑하는 배구 강국이다.

아이스하키소련 시절부터 캐나다 다음으로 강호인데, 1956년을 시작으로 동계올림픽에서 총 8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다만 1992년 독립국가연합의 이름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로는 러시아의 이름으로는 금메달을 따내지는 못하고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당해 NHL MVP를 수상한 오베츠킨을 비롯, 말킨과 코발척의 공격진을 필두로 최강전력을 꾸리며 간만에 금메달 사냥에 나섰으나, 8강에서 홈버프를 받은 캐나다에게 7-3이라는 스코어로 무참하게 개박살나버리면서 금메달은 커녕 동메달도 못 건졌다. 냉전시대 해체 이후로는 NHL에 진출하는 선수가 굉장히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국에서 KHL이라는 리그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인이나 미국인들과의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는 NHL과는 달리 KHL은 헬게이트를 돌파할만한 수준은 아니고, 거기에 최근 러시아의 경제력 성장과 맞물려 이 KHL에도 상당한 자본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선수들이나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 선수들이 KHL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듯 KHL이 성장하는 와중에 당시 서부지구에서 정규시즌 1위를 했던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 팀 선수단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여 단 1명만이 생존하고 44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로코모티프 구단은 다음시즌인 2011-12 시즌을 아예 참가하지 못했으나 2012-13 시즌 다시 리그에 복귀하여 비극을 딛고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선전했다.

리듬체조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세계랭킹 1, 2, 3위는 모두 러시아 국내랭킹 1, 2, 3위이며 2000년부터 2016년까지 5번의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리스트는 모두 러시아 선수였다. 쿼터제에 의해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 2명 밖에 출전을 못하지만 그 결과가 금, 은메달이 모두 러시아가 가져가고 있다. 명실상부한 21세기 리듬체조 강국으로, 많은 타국 리듬체조 선수들이 러시아 전지훈련에 참가한다. 이런 실력의 뒷배경은 리듬체조라는 스포츠 자체가 발레에서 유래했는데[128] 알다시피 러시아는 고전 발레의 분수령이라고 할만큼 고전 발레가 민족예술이다. 그 예로, 러시아 혁명 당시 황가가 무너지는데도 황실발레단은 이름만 바꾼 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 중이다. 이 정도면 러시아인들의 발레와 무용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다른 예로는 당장 고전발레 최고의 명작인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이 모두 러시아 고전발레 작품이다. 세계랭킹을 매기는 포인트가 주어지는 월드컵 대회가 러시아에서 많이 열려 국민적 관심도 높다. 정부의 지원도 전폭적이어서, 러시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들의 후원사는 러시아 국영 기업인 가스프롬이다.

테니스도 상당히 잘하는 나라다. 앞서 언급한 여자 테니스의 전설 중 하나인 마리아 샤라포바를 비롯해 예브게니 카펠니코프, 마라트 사핀 등 다수의 슬램 위너와 세계 랭킹 1위를 배출한 국가다. 현재는 다닐 메드베데프, 카렌 하차노프,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주축으로 세대 교체를 진행 중이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영구 동토이고 사람이 사는데도 1년의 절반은 눈과 얼음에 덮여 있는 추운 나라다 보니 아이스하키 말고도 동계 스포츠는 전 종목 골고루 꽤 잘 한다. 피겨 스케이팅에는 유명한 선수들이 셀 수 없으며, 알파인 스키도 곧잘 한다. 대통령 푸틴과 총리 메드베데프가 직접 스키를 타기도 한다. 2007년 소치가 강원도 평창군을 꺾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낙점된 데에는 푸틴 정부의 적절한 사전 득표 운동도 있었지만, 동계 종목에 대해선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저변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러시아 연방 명의로는 올림픽을 한 번도 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2005년 2012 하계올림픽 개최지 후보에 모스크바를 선정하여 구소련 이후 32년 만에, 그리고 러시아연방으로서는 최초로 하계올림픽 유치를 하려고 했으나 영국 런던에 밀려서 탈락한 적이 있다. 2010년에는 2018년 FIFA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 이로서 4년 사이에 다시 러시아의 국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비슷한 예는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브라질과 1994년 월드컵, 1996년 올림픽 공동 개최지만 2026년 월드컵 2028년 올림픽의 미국이 있다.

2011년 안현수가 귀화하면서,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팀의 사실상 에이스로 활약하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종목에서 러시아 최초의 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안현수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내고, 다른 선수들까지 은메달까지 따내면서 쇼트트랙 종목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안현수는 러시아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소련 시절까지 합치자면 최다 동계올림픽 최다 우승국이다. 물론 그냥 러시아로만 따지자면 노르웨이독일보다 우승 횟수가 적은데 러시아로 나간 기간이 별로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국가 자격으로 참가도 못 했다.

육상 계열 역시 강국이었지만 2015년 연말을 뒤흔든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 파문으로 인해 러시아 국적의 모든 육상 선수들은 국제경기 출장 금지를 당했으며 반도핑 기구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이 도핑 파문은 해가 지나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젠 수영과 빙상 계열까지 연루되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문이 커진 상태다. 국가 전체적으로 관여한 걸로 파악되어가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러시아 선수단 전체가 출전 금지될수도 있다고 IOC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후 태도를 바꾸어 각 종목 연맹이 출전금지 결정하기로 결단하였다. 한편,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는 러시아 선수단 전원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출전을 금지시켰다.

2019년 12월 9일 세계 반도핑기구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 4년 간 출전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도핑과 무관한 선수들은 중립국 신분으로 출전할 수 있으나 단체 종목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고 있는 러시아에겐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10.9.1. 웨이트 트레이닝[편집]

올림픽 역도 소련이 역대 1위, 현 러시아가 16위 #

운동기구 케틀벨의 종주국이다.

파워 리프팅에서 선전하고있다. IPF 대회 성적. #

10.9.2. 격투기[편집]

격투기를 상당히 잘 한다. 권투의 경우 올림픽 아마추어 권투 역대 6위다.위키백과 영어판 출처 해체 전 소련은 5위를 하고있다. 그러니까 소련은 이미 과거라서 기록 정지인데도 역대 5위 기록인거다.

같은 그래플링 계열인 삼보 종주국답게 레슬링도 강력한데 구 소련이 역대 1위고, 현 러시아가 역대 4위. 역대 최강의 격투가를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레슬러 알렉산더 카렐린이 특히 유명.

종합격투기에서 유명 러시아인들 많은데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도 러시아 다게스탄 출신이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도 러시아 출신이고 그 제자 바딤 넴코프가 벨라토르 라이트헤비급 챔프다. (그외 메이저단체 UFC One FC 등에서 키르기스스탄 챔피언도 있고 가까운 관계는 맞지만 지금이 쌍팔년도 시절도 아니고 엄연히 다른 국가 사이다)

올림픽 유도, 펜싱에서도 소련시절까지 따지자면 꽤 강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유도 유단자이자 유도 철학에 빠져있는 매니아인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언론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복싱 세계 챔피언인 게나디 골로프킨을 러시아인으로 불렀다가 호된 서리를 맞은 적이 있다.[129]

10.9.3. 국제대회[편집]

10.10. 비디오 게임[편집]

과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130]이자 가장 많은 기기에 이식된 범지구적인 명작 테트리스가 바로 러시아 게임이다. 유명한 일화로, 테트리스가 개발되었을 때는 구소련이라 미국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는데, 어떤 한 용자가 목숨을 걸고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따내며 닌텐도 게임보이에 이식했고, 이게 대박을 쳐서 게임보이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중적으로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강세이며, HOMM3은 아예 한국의 스타크래프트급 위상을 갖고 있다. 또한, 매니악한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잡은 명작게임이 많이 탄생했다. 당장에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로만 놓고 봤을때 IL-2 Sturmovik, 워 썬더, DCS World 등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작게임들이 줄비하고, 운전 시뮬레이션 장르로는 스핀타이어즈 , 스노우러너 , 시티 카 드라이빙 등등의 한번쯤은 유튜버들이 플레이 하는 동영상을 봤을법한 유명한 게임들이 즐비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유통시장은 소련 붕괴후 신생 러시아 시절에는 조악해서, 옛날 한국이나 중화권 국가, 동남아처럼 패미클론같은 블랙마켓 콘솔시장이 시대를 주름잡기도 하였다. 심지어 러시아 시장에서 패미클론 셰어를 확보한 Dendy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상세는 항목 참조.[131]

11. 군사[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군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거대한 동원력을 앞세운 군사대국이었고, 군사적 위세가 정점을 찍은 소련 시절에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한 군사대국이었다. 과거 군사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과 나치독일의 침공을 격퇴하면서 엄청난 위용을 뽐냈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현대의 러시아군은 소련 정규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체화되었다. 그러나 소련 시절부터 축적된 군사 기술력과 연방 붕괴 이후에도 유럽의 강대국들을 압도하는 국가 규모 덕분에 산적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러시아군 역시 세계적인 강군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132]

12. 창작물에서[편집]

냉전시대에 미국과 대등하게 아웅다웅한 군사강국이었던지라 게임에서 과거 소련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자주 써먹는다(모던 워페어 시리즈, 엔드워, 월드 인 컨플릭트, 레드얼럿, 에이스 컴뱃, 아바 온라인 등).

항상 초반에는 미국 본토까지 쳐들어가는 위엄을 보여주나 역전 당하는 식이다. 러시아도 자꾸 게임에서 안 좋은 소재로 이용당하면 심기가 좋을 리는 없는지라 모던 워페어 2 러시아판은 그 유명한 No Russian 미션이 삭제, 수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러시아의 문화시장이 90년대의 혼란기에서 벗어나 어느정도 커지게 되었고, 이 때문에 함부로 악의 축으로 묘사할 수 없다보니 밀리터리 작품 창작자들의 고뇌를 더 해주고 있다. 이는 중국사정도 마찬가지.

다만 자국이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되어도 중국처럼 발매금지 + 국가가 나서서 개발사 욕하기 등의 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다보니 아직까진 주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133] 많이도 우려먹는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이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람보 3편이 나올 당시 소련의 외무차관은 "공산주의자 살육하는 호전적인 영화"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모든 러시아인이 불쾌해하는 건 아니고 일부 러시아인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으로 일관하기도.[134]

그리고 이에 대해 재치있게(?) 대응하기도 한다. 소련이던 시절에 미국에서 아프간에 가서 소련군을 무찌르고 무자헤딘을 도와 무자헤딘에게 무기를 밀매하는 CIA 요원을 구출한다는 시나리오의 람보가 큰 인기를 얻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인들을 쓸어버리는 시나리오의 소련판 람보, 일명 람보스키를 제작한 일도 있었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 미국의 사악한 미사일 기지에 스페츠나츠가 들어와서 쑥대밭을 만든다는 간단한 내용.

스파이, 범죄 조직, 마피아 등의 뒷세계를 다룬 작품에선 러시아인들이 악당 내지는 성격 나쁜 놈 정도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냉전시대부터 각인된 러시아에 대한 폐쇄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와 러시아하면 마피아와 어둠의 조직들이 연상되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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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에서, 특히 군사물이나 어둠의 세계를 다룬 작품일 수록 '어머니 러시아(마더 로씨야!)'라는 단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래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머니 조국을 위해!"라는 진격 구호에서 나왔다는 설과 공산국, 혹은 러시아의 실질 지배를 받는 국가에서 본국을 호칭하는 의미로 불렀다는 설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러시아어로 '조국'을 뜻하는 단어 'Родина'[135]가 여성명사이기도 하고,[136] 그에 따라 프로파간다용으로 조국의 아들들을 독려하는 어머니 러시아의 이미지[137]는 밀덕이라면 영화나 게임 등을 통해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념한 어머니 조국상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문화 전반적으로도 나머지 서방 유럽의 제국들은 꼭 한 번씩 진통을 겪었던 여성 상속 문제로 골치를 앓은 적이 없고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위가 강조되는 등 게르만족으로 대표되는 서유럽보다 전통적으로 여권이 강한 편이다.[138]

특정 캐릭터로 나올 때 배틀물이면 덩치 큰 근육질 남자이거나 테크놀로지 계열인 경우가 많다. 박사로 나오기도 하고 KGB와 관련된 경우도 있다. 여캐의 경우엔 상당한 미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일본 애니나 게임 등에 등장하는 러시아인 속성의 여캐에는 아예 은발벽안 속성 클리셰까지 존재한다. 밀리터리물이면 스페츠나츠 출신같은 엘리트들이 많다. 초능력물일 경우 러시아 출신 캐릭터는 상당수가 냉기 계통 능력자로 나온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1편부터 계속해서 오리지널 문명으로 개근하고있는 문명 중 하나이다. 1, 2편에서는 소련 관련 인물이 지도자로 등장하는데, 1편에서는 스탈린이 지도자로 등장하고, 2편에서는 레닌이 지도자로 나온다.

폴란드볼에서는 보드카를 든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초창기 폴란드볼 밈을 유행시킨 사람들이 러시아 인터넷 유저들인 만큼 러시아가 주역으로 나오거나 다른 국가들과 평범하게 대화하는 모습들도 나오지만 주로 폴란드볼에서는 약소국을 괴롭히고 음모를 꾸미는 악역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러시아는 인권탄압이 심한 편인 독재국가에다 유럽지역에서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만큼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데이트 어 라이브에서 스토리의 시초인 30년전 중국과 몽골 국경 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공간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주변 국가로 나온다.[139]

러시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1] 소련의 붕괴는 다음날인 1991년 12월 26일 새벽 2시이다.[2] 소련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공화국들이 연합해 생긴 연방국가고, (애초에 이름이 소비에트 연방이다.)러시아는 그중 영향력이 가장 많았던 것 뿐이다. 즉 독립이 맞는 표현.[3] 크림 공화국, 세바스토폴 연방시[4]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5] 크림 공화국세바스토폴 연방시를 제외하면 17,098,242km²[A] 연해주를 통해 접경[B] 7.1 7.2 칼리닌그라드를 통해 접경[9] 위키 등에 등재된 공식 집계는 이 정도인데, 퓨 포럼 등지에서 한 설문통계에서는 러시아 성인의 70%가 정교회 신자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사회적 영향력이 국교에 준하는 수준으로 커지는 중이지만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10] 크림 공화국세바스토폴 연방시 포함.[11] 근데 민주주의가 시행된지 얼마 안돼서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푸틴 140%사건만 보더라도. 그리고 야당으로 버티고 있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 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선거에서 이 당이 당선된다면 러시아는 소련으로 컴백한다.[권위주의체제] 3.31점[13]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20년 현재 당적이 없는 무소속 상태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여당이 없는 셈. 대신 러시아에서는 무소속 상태더라도 당과 협력할 수 있다. 파벨 그루지닌은 무소속임에도 러시아 연방 공산당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되었다. 푸틴 또한 통합 러시아에 개인 자격으로 지원하고 있다.[14] 소련 해체 이전에는 토지 공유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나, 소련 해체 이후에는 급속도로 토지 사유제를 인정해나갔다.[15] 방송 등 공적인 경우나 시간대가 다른 지역 사람끼리 약속을 잡을 때에는 UTC+3의 모스크바 표준시(MSK)를 사용한다.[16] 단, SI 단위를 사용하더라도 표기는 키릴 문자로 한다. 예를 들어 mg은 мг, km/h는 км/ч, MHz는 МГц 등으로 표기한다.[17] 다른 서양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연도를 조-러 수교 연도가 아닌 한-소(소련) 수교 연도인 1990년으로 본다.[18] 남북 모두 소련과의 수교 기준. 러시아 연방은 소련 시절의 외교 관계를 계승한다고 합의했다. 러시아 연방만 따지면 남북한 둘 다 1991년이다.[19]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도 승계했다.[20] 본래 1990년 소련에게 할당된 것으로, 동구권 붕괴 이후 다른 도메인들(동독의 .dd 등)은 모두 폐기되었지만 얘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존을 요청해서 아직까지 살아있다. 사이트 수는 .ru의 약 3%로 11만 개 수준이라고 한다.[21]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러시아 연방)에서 비롯되었다. .ru를 그대로 키릴 문자로 바꾼 .ру와, Россия (러시아)의 앞 두 글자인 .ро는 로마자 .py, .po와 모양이 같아서 .рф를 쓰게 되었다.[22] ISO 3166에서 규정. alpha-2는 RU, alpha-3는 RUS이다. UN 통계를 비롯하여 국제 공통으로 사용한다. IOC 국가코드와 FIFA 국가코드도 RUS이다.[23] 소련 시절부터 쓰던 전화코드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사용하고 있다.[24] +8번도 일부 혼용중이다.[SARS-CoV-2] http://www.0404.go.kr/dev/country_view.mofa?idx=&hash=%23RUS&chkvalue=no2&stext=&group_idx=8&alert_level=0[26] 러시아가 기존에 있던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책임지고 계승하기로 했다.[27] 최근에는 가타카나 ロシア를 줄인 ロ를 쓰고 있고 露는 日露戰爭(일로전쟁), 征露丸(정로환, 현재는 正露丸이라고 쓴다) 같이 이미 정착된 표현에서나 주로 쓴다. 마이니치 신문은 여전히 露라고 쓴다. 역사적으로는 露西亞와 魯西亞를 병용해왔는데,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일본에 露西亞를 쓸 것을 요구하여 露西亞로 굳어졌다. 에 '미련하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28] 예를 들면 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노한사전 등.[29] '루스'라는 단어 자체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 쓰이던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루스'는 곧 '노젓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 공국이 바로 바이킹 류리크가 동슬라브족을 정복한 다음 그들을 규합하여 세운 나라이다.[30]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을 구성하던 공화국 산하에 설치된 자치 공화국들도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러시아로서는 여기에 빌미를 안 줄 필요도 있었다. 만약 러시아가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나 러시아 공화국 식의 국호를 채택했을 경우 러시아 산하의 자치 공화국의 주민들에게 "러시아나 우리나라(자치 공화국)나 똑같은 공화국인데 왜 우리가 러시아의 일부로 묶여 있는 거지? 그냥 독립하면 안 되나?" 식의 생각을 부추길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안 쓰고 '공화국'보다 상위인 정치적 연합체라고 강조하기 위해 러시아 연방을 국호로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31] 크림 반도 제외 시 17,098,242㎢.[32] 이는 명왕성의 표면적(17,790,000㎢)이나 남아메리카(17,840,000㎢)와 거의 비슷하고 남극(14,000,000㎢)과 유럽 전체(10,180,000 km²)보다 거대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바티칸 면적의 3892만 1380배이다.[33] 동아시아 면적(11,839,074㎢)보다도 크다.[34] 실제로는 러시아 정부가 통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 등이 인정치 않는 형태다.[35] 특히 남부 연방관구의 흑해 연안 지역이 날씨도 좋고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하다.[36]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춥고 황량한 기후가 아닌 국가에서도 라스푸티차로 인해 경작이 가능한 땅은 적다. 중국이나 미국의 여러 사막도 그렇고, 세계 각지의 정글도 덥고 비도 많이 오지만 경작하기 좋은 토질이 아니다.[37]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38] 1905년~1945년 일본이 러일전쟁 승전국으로서 러시아로부터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을 할양받아 러시아와 일본이 접경하고 있었다.[39]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기 전인 1867년까지는 대영제국도 접경국이었다. 지금은 알래스카가 캐나다와 접하고 있지만, 캐나다는 조약이 체결되기 불과 몇 달 전에 자치령이 되었고 그 전까지는 대영제국의 본토였다.[40] 알래스카 땅만 해도 153만 7,000㎢로 한반도 면적의 7배다![41] 주위의 습도, 온도의 변화로 인해 자동차 하부의 철판이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공하는 것[42] 폴란드-모스크바 전쟁(1605년-1618년).[43] 대북방전쟁(1700년-1722년).[44] 조국전쟁(1812년).[45] 독소전쟁(1941년-1945년).[46] 기병에 크게 의존하는 몽골 군은 봄이 되면 도로가 뻘밭으로 변하는 걸 보자 겨울에만 진격을 했다. 날씨는 몽골 인들에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도로 문제는 부분적으로나마 효과가 있었다는 뜻.[47] 현 러시아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나토와의 전쟁은 고전적인 육군 싸움보다는 핵전쟁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러시아의 국토는 여전히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한다. 전면 핵전쟁이란 것은 양 측이 전략 핵무기로 엘리전을 벌인 뒤 국민이 몇 명이 죽고 나라 꼴이 어떻게 되었는지 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추가적인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쪽이 이기는 전쟁인데 러시아의 우월한 국토 넓이는 핵무기로 파괴해야 할 국토 면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온 나라의 지표면을 석기시대로도 못 돌아갈 방사능 황무지로 만들어버리는데 필요한 핵무기의 양이 미국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48] 지구 육지 면적의 11%를 차지하고 있으니 육지에 운석이 떨어진다면 9개 중 하나는 러시아에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잘 생각하면 적도 부근의 운석은 달이 막을 수도 있는데 러시아급 고위도는 막아 줄 게 없다[49] 스베르들롭스크 주와 튜멘 주에도 일부 피해가 갔지만 첼랴빈스크 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50] 참고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는 이래도 표준시와 실제 태양시가 1시간 차이가 나는데, 왜냐하면 연해주는 UTC+10의 기준선인 150˚E선이 안 지나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일본의 표준시인 UTC+9의 기준선인 135˚E선이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150˚E선이 지나가는 지역이라면 쿠릴 열도마가단 일대에 해당하는데, 정작 마가단은 165˚E선 기준인 UTC+11을 쓴다.[51] 이렇게 따뜻한 지역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개최했던 캐나다 밴쿠버도 마찬가지.[52] 미국 접경지대에 몰려 있는 캐나다와 이래저래 비슷하다. 그래도 1월 평균기온 -15℃를 찍는 곳이어서 개마고원을 제외한 한반도의 어느 곳보다도 춥다.[53] 당장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연해주 남부는 온도만 약간 낮을 뿐 한반도의 기후특징들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점에서 러시아가 겨울만 있는 나라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54] 소련 시절에는 역으로 미국에서 식량을 어마무시하게 수입해왔다. 이 때문에 소련은 핵을 쥐고 있어도 미국한테 아킬레스건 하나를 내준 셈이 되었다. 핵은 둘다 죽을것 각오하고 싸울 지경이 되어야 날리는 물건인데 단순 식량 수출 제재는 그 정도 레벨이 아니지 않은가? 식량으로 위협당하는 것도 일종의 국가 안보 위협이지만 지들이 농업 제끼고 중공업에 몰빵해놓고는 미국탓할 수도 없고...[55] 다만 러시아 제국의 곡물 수출은 농노들을 쥐어짠 결과물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곡물이 절대적으로 남아돌아서 수출한 게 아니라, 서유럽에 내다 파는 것이 이익이 크니까 정작 국내에서 곡물이 부족해도 그냥 내다 판 것이다! 조선이 풍요로운 국가가 아니었는데도 개항기에 일본에 쌀을 수출한 것과 비슷하다.[56] 그러다보니 그나마 살만한 지역인 우랄 산맥 서부에 인구 대부분이 몰려 있다. 특히 척박한 기후의 시베리아로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에도 러시아인들이 기피하다보니 우랄 산맥 동부는 인구가 적어서 거의 비어있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57] 물론 당대에 이탈리아스페인처럼 출산율 1명대 초반선을 찍은 나라들이 있긴 했으나 사망률은 낮았다. 반면 당시 러시아의 사망률은 이들에 비해 굉장히 높았다.[58] 크림 반도를 통한 인구 증가는 제외한다.[59] 예를 들면 대한민국, 일본, 이탈리아, 불가리아, 스페인[60] 크림 반도 합병이 얼마나 실속 없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다. 서방측의 태도는 러시아가 자초한 것이다.[61] 사실 북한도 국가의 상태(...)를 생각하면 의외로 높은 축에 든다. 당장 전 세계 평균 수명이 66.5세다.[62] 남자의 평균 수명이 이거보다 더 짧은 나라는 막장국가들 말고는 없다.(...)[63] 오죽하면 스푸트니크 V 백신이 2개월 금주 권장때문에 러시아 내에서 접종률이 떨어진다고 할 정도. 개발진은 3일만 금주해도 된다고 해명까지 했고, 전문가들도 포도주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서 남는 물량을 해외에 처리하고 있는 상황.[64] 여러 나이대 별로 성비를 조사한 성비에서도 34세 이하의 나이대에는 남성 1000명당 여성이 960명이지만, 35~39세의 나이 대에서는 여성이 1027명인 것으로 나왔다.#[65] 러시아 연방 헌법 전문도 '우리 러시아 연방의 다민족 인민들은(Мы, многонациональный народ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으로 시작한다.[66] 예를 들면 푸틴이 새로 임명한 세르게이 쿠주게토비치 쇼이구(Сергей Кужугетович Шойгу) 현 러시아 국방부 장관도 몽골에 인접한 투바 공화국 출신이며 투바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67] 러시아 민족. 러시아어로는 Русский(민족)와 Россиянин(국적)으로 표현하여 구별한다. 러시아 국적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민족이든 Россиянин인 것이다.[68] 19세기에 노르웨이와의 국경 지역인 콜라 반도로 이주해온 노르웨이인들의 후손들. 노르웨이에서 어업 등의 목적으로 러시아로 이주해오는 수요가 있어서 국경 지역에는 노르웨이어와 러시아어가 섞인 혼합 언어가 만들어질 정도였으나 소련 건국과 2차 세계대전, 또 노르웨이가 석유 발견으로 부국이 됨으로 인해 러시아에 거주하던 노르웨이계 러시아인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소수만 잔존해있다.[69] 소련 시절 아프리카 공산권 국가에서 소련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과 러시아 연방 설립 이후에 러시아로 이민 온 아프리카계 이주민들.[70] 이들은 주로 카잔이나 북캅카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71] 최초의 동슬라브인의 국가는 이 나라이며,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이를 키예프 공국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훗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된다.[72] 관을 열었을 때 시신이 정말 거짓말처럼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엠버밍이 아주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매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인데, 엠버밍을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레닌처럼 지속적으로 화학처리를 해주거나 혹은 무균상태로 보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한다. 즉 성인들의 유해가 썩지 않았다는 것은 과학이나 합리주의로 설명이 되지 않는 기적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수백년(경우에 따라서는 천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어떤 엠버밍이나 무균상태 처리 없이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성인성녀들이 유해가 아주 많다. 심지어 몸의 다른 부분은 부패했는데도 그 성인의 거룩한 행적과 관련된 일부 유해(혀나 심장 등)만 온전히 남아있는 놀라운 일도 있다. 그러나 밑에서도 언급된 바처럼 비밀신자들이 많았으므로 관리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꿔치기 되어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중세에 ~의 뼈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다른 이의 것이었듯이 말이다.[73]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러시아에 가톨릭을 무력으로 전파하려던 튜튼기사단을 작살낸 공으로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는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다.[74] 스탈린의 현실주의적인 면모[75] 구전례파도 둘로 나뉘었는데 따로 성직자단을 꾸린 분파와 아예 성직을 인정하지 않는 분파로 갈렸다.[76] 다른 개최국은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거나 아예 평일로 지낸다.[77] Ahmad(أحمد) + 러시아어 여성 성 접미사 ova => Ahmatova[78] 러시아보다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를 주로 약탈했으며, 비옥한 우크라이나 일대를 한 때 거의 무인지대로 만들 정도로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악질적인 노예 상인들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기원한 카자크들의 역사적 숙적이다.[79]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иволгински дочан)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огинское дочан)[80] 이 곳의 수도인 옐리스타(Elista)에 가면 불교 사원과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서 러시아에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칼미크인도 몽골계이다.[81] 다만 개신교 선교사들의 포교는 제한하는 편이다.[82] 인도가 친러 국가인것 때문인지 러시아에서도 인도인 공동체가 존재한다.[83] 사실 러시아가 아니어도 애완견이 웬만한 중형견(특히 투견이나 경비견) 이상이면 이게 정말로 가능하다는 거다. 그 이유는 사람보다 힘이 세서...[84] 한국에서 카페리가 운행하며 다른 나라들과 도로가 계속 연결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둘뿐인데 둘 중 중국은 한국의 자기 차를 가지고 가서 운전하기가 중국 현지의 법적인 문제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차로 유럽이나 중동 같은 먼 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가장 쉬우면서 거의 유일한 방법이 강원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85] 보통은 아시안 스쿼트라고 불리지만, 러시안 스쿼트라는 표현도 그에 못지 않게 쓰이며 더 적은 빈도로 슬라브 스쿼트라고도 한다.[86] 세계 최초 우주 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을 배출한 국가다. [87] 1위는 미국. 미국이 주로 서방 선진국 동맹국에 파는 것과 달리 러시아제 무기 수출대상은 인도, 아랍, 아프리카 국가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어 질적으로는 열세다.[88] 특히나 독소 전쟁을 거치며 공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냉전시대에는 미국을 잡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양을 건너야 했기에(또는 대양에서 건너오는 미군을 대양에서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항공산업이 더더욱 발전하게 되었다.[89] 소련의 플래그 캐리어였던 아에로플로트는 1970년대에 연간 승객 1억 명을 돌파한 세계 최대 항공사였다.[90] An-124의 설계와 마케팅은 안토노프가, 제조는 러시아의 아비아스타르가 했다.[91] 군용 항공 기술이 발달한 것과 민수용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은 군용 중대형 수송기를 자체 개발하고도 미쓰비시 스페이스젯에서 한껏 헤매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그나마 러시아는 200석급 중형 여객기까지는 취역시킬 기종이 있지만.[92] 다만 Il-96의 후계기종이 없어 현재 중국 COMAC과의 합작개발을 추진중인 CR929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야말로 어디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93] 소련은 특유의 공산주의 경제시스템 때문에 실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공장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려면 절대로 튼튼한 부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공장을 계속 돌려 내구도가 떨어지는 대신 가격이 싼 부품을 대량 생산해서 부품이 고장나면 수리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그냥 교체하는 마인드였다. 이런 방식은 현재에도 유효해서 값싼 도입가격에 비해 유지비는 서방제에 비해 1.5배에서 정도 높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을 택해도 어차피 전체 비용은 서방제와 비슷하다. 싸게 구입해서 비싸게 굴리냐, 비싸게 구입해서 싸게 굴리냐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또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산유국이다 보니 마력 높은 엔진을 많이 사용하지만 반대로 기름도 많이 먹는 편.[94] 2001~2009년 동안 7명의 사람을 우주로 보냈으며 현재는 진행하지 않는다.[95] 예를 들어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에 소속된 하르트론 설계국 등.[96] 대신 발사체 부문에서 큰 재미를 못 보는 ESA와 짝짜꿍하여 합작 프로젝트를 자주 진행한다. 2016년 발사된 엑소마스 화성 탐사선이 대표적. 의외라면 의외겠지만 ESA는 21세기 들어서는 미국이 안보 핑계를 대며 ESA에게 츤츤거리기 때문에 자신들과의 협력에서 좀 더 절실하게 다가서는 로스코스모스와 더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일례로 ISS에서 쓰인 유럽 화물선 ATV는 미국도 아닌 러시아 모듈에 도킹했고 러시아도 자기네 보조할 새 로봇팔을 구한다고 ESA에게 손을 내밀었다![97] 골때리는 부분이, 학자 뿐만 아니라 회사도 빠져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러시아의 항공우주 기술을 키운 설계국 중 일부가 소련 해체와 함께 다른 나라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르를 만든 하르트론 설계국으로, 얘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하르코프에 위치한 회사다. 당연히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미르 운영에서 초비상이 걸렸고 그 때문에 미국 NASA에 손을 내밀었다.[98] 우주왕복선급의 수송능력을 가진 발사체는 NASA 한정으로 개발 중인 물건만도 2020년대 SLS 블록 II 뿐이다. 스페이스X까지 확대하면 BFR 같은 플랜까지 추가된다. 즉,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반세기에 달하는 시대를 앞서간 물건이었다. 그래서 소련도 부란을 개발한 것이다.[99] 소련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는 2차대전 당시 소련에 코카콜라가 제공되자 그 맛을 보고 아예 콜라에 빠져 살았다. 단, 숙청 좋아하는 그 분께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 탓에 대놓고 마시진 못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전쟁 이후 일찍부터 소련에 정식으로 도입된 펩시에 비해 코카콜라는 1990년대에야 정식 진출을 성공한다.[100] 처음부터 이랬던것은 아니었고 1980년대 중반까지는 사생활은 몰라도 국영TV에서 성문제를 다루는데 한계선이 있었는데 고르바초프 시절에 심의규제가 완화되었고, 1990년대 보리스 옐친대 들어서는 소련 중앙 텔레비전이 수여개의 방송사로 분리된 이후로는 아예 국영이든 민영이든 가릴거없이 TV방송사들이 선정성 경쟁에 나서면서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있는것에 가깝다.[101]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102]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103] 발칸 반도와 범 독일어권 동쪽 지역의 동유럽은 비록 폴란드처럼 자체적인 왕조를 세운 적도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19세기 전까지 프로이센이나 합스부르크 등 독일계, 러시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오스만 투르크를 아시아로 여긴 서유럽은 이들을 유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04] 정확히는 "피레네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다." 라고 했는데 이 당시 아프리카는 우리가 아는 사바나에 흑인이 사는 곳이 아니고 아랍북아프리카를 말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덥고 건조한 기후와 우마이야 왕조에 점령당해 이슬람 세력에 통치당했던 역사를 합쳐서 비꼬는 말이었다. 레콘키스타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기독교 세계로 되돌아 온 스페인의 건국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대놓고 스페인을 비하하는 말인 셈.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실제로 아랍 유적이 많다[105] 물론 유럽보다 먼저 발견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있었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도 9세기경 바이킹이 먼저긴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 아메리카를 알리고 개척한 건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들이다.[106] 다만 원래는 라트비아에서 작곡된 곡이다. 라트비아 자체가 소련의 일부였던만큼 그렇게 알려졌던 것이다.[107] 이 사람은 후일 러시아 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락 뮤지션 예고르 레토프는 러시아 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바실라초프를 꼽았다.[108] 러시아에서 초코파이가 주로 이런 식으로 소비된다.[109] 미국 자본에 팔려서 영국에 공장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110] 사실 보드카의 어원이 '물'이라는 뜻이다.그래서 허구한 날 물처럼 마셔댄다.(...) 참고로, 어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의 water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되었다.[111] 당연히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술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맥주 정도는 거짓말 안 하고 탄산 음료 사 마시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혔다.[112] 한국은 남성 평균 수명이 여성 평균 수명보다 7년가량 짧다.[113] 한국과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76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짧은 편. 북한(!)의 남성 평균 수명(67년)보다도 짧다.[114] 미국이나 EU는 0.7 이상이고, 일본은 0.66, 인도는 0.61점이다. 러시아와 점수가 비슷한 국가는 아제르바이잔 정도밖에 없는데 이 쪽도 0.4점 이상이다.[115] 출처: http://globalizationofscience.com/[116] https://www.natureindex.com/news-blog/top-officials-rectors-russian-universities-embroiled-plagiarism-scandal[117] 수학 같은 경우를 예로 들면, 구미권의 중년 이상 학자들과 교수들은 꽤 많은 이들이 러시아 수학자의 저서로 공부한 이들이고, 그들 중에는 아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에도 출판되는 전공서적 번역에 소개된 저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아예 러시아 수학 서적의 영역 작업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들이 꼭 학부, 대학원 수준 전공서적만 번역한 것도 아니라서 소련 올림피아드 기출문제 같은 책들은 꼬맹이 영재들 가르치는 영어권 올림피아드 교사들도 참고할 정도고,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타서 한국(!) 같은 경시대회 열기 알아주는 다른 나라로도 퍼진다. [118] 수학은 겹치지 않는 영역이 상당해서 비교가 조금 곤란하다. 한국과 달리 문제풀이보다는 이해와 증명을 더 요구하는 쪽. ЕГЭ(러시아식 수능)의 수학 과목에는 객관식이 아예 없고 주관식 12문제에 서술 or 증명 문제가 7개다.[119] http://www.shanghairanking.com/ko/World-University-Rankings/Moscow-State-University.html 수학이 물리학보다 더 좋게 평가되었다.[120] http://www.shanghairanking.com/ko/World-University-Rankings/Seoul-National-University.html[121] 자기 작품을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영어로만 작품을 썼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사용하던 환경에서 성장해서인지 문장 구사력이 굉장히 빼어났고, 20세기 최고의 영어 명문장가로 꼽혔다.[122] 총살당한 보리스 필냐크, 이삭 바벨. 강제 침묵당한 유리 올레샤, 안나 아흐마토바. 가족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두려움에 떨다 자살당한 마리나 츠베타예바. 수용소에서 쇠약사한 오십 만델스탐. 아사한 다닐 하름스. 망명지서 객사한 예브게니 자먀찐. 15살난 아들에게 국가전복혐의를 덮어 씌워 창작활동을 막아버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작가동맹 제명되어 생계곤란을 겪은 미하일 조셴코. 철저한 숙청으로 뿌리채 뽑혀나간 이디시어 문학과 끔찍한 상흔을 복구하는데 수십년이 걸린 조지아 문학까지. 한때 시인이기도 했던 스탈린이 소련 문학에 미친 악영향을 다 설명하면 책한권으론 모자라다.[123] 고려인 3세 소설가. 한국인 혈통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할때 강릉 김씨, 김시습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작풍으로 알려졌다. 소련문단에 등단해 러시아어로 작품활동을 했으나 소련이 해체되며 카자흐스탄 작가가 되었다. 한국에선 노태우 정권 시기 북방외교로 러시아 문학 번역이 한창 활발할때 대표작들이 여럿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번역이 끊겼다. 한국 노문학과에선 해빙기 작가들에 이어 소수민족 작가를 거론할때 언급된다.[124]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은 황토색 장정, 중국현대문학전집은 붉은색 장정으로 냈다. 참고로 중국의 현대문학은 1917~49년 사이의 문학사조를 말한다. 한국은 해방기점으로 근대와 현대문학으로 나누는게 일반적이지만 중문학은 1917년 5.4 운동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기준으로 5.4 운동 이전은 고전문학, 5.4운동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를 현대문학이라 칭하고 1949년 이후의 지금까지의 문학은 당대문학(當代文學)으로 부른다.[125] 전국 도입은 2008년이지만, 2000년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시범 시행을 하고 있었다.[126] 교사뿐만 아니라 원래 공무원 월급 자체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낮다.[127] 미국(89명), 독일(89명), 우크라이나(87명)등의 다른 체스 강국과도 비교 불가 수준이다.[128] 많은 선수들이 하는 포에테 피봇, 그리고 기본 동작인 턴아웃 등 기본기 동작이 발레에서 유래한 기술이다.[129] 그가 구소련시절 태생이고 아버지가 러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130] 현재는 마인크래프트[131] 단, Dendy의 패미클론 기계 라인업은 대만산 패미클론의 리브랜딩 제품이 주력이었다.[132] 현재 세계적으로 미국상호확증파괴로 대적 가능한 유일한 나라가 러시아이다. G2의 자리에 있는 중국도 미국 상대로 상호확증파괴를 유지하지 못한다.[133] 예외적으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판매금지되었으나 이건 소련을 나치 독일보다도 악의 축으로 묘사해서 렐릭 엔터테인먼트가 자초한거다.[134] 오히려 자국의 현실을 어느정도 아는 일부 러시아인들은 "크아~ 미국이 우리를 이렇게나 무서워하다니 ㅋㅋ"하면서 국뽕에 취하거나(...) 재밌다며 낄낄댄다.[135] '로지나' 라고 읽는다.[136] 근데 사실 유럽 언어에서 국가를 지칭할 때는 지리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는 중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사회문화적인 국가는 여성 명사로 지칭된다. 심지어 명사의 성 구분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영어에서조차 나라를 she 나 her이라는 대명사로 지칭하는 경우가 잦다. 러시아는 대놓고 어머니에 비유하는 경우가 워낙 창작물에서 흔하게 보여서 더 독특해보이는 것 뿐이다. 사실 나라를 어머니로 표현하는 것 자체는 전세계적으로 흔하다. 영단어 motherland, 모국어를 뜻하는 mother tongue,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어 '모국', '모국어'조차 어미 모(母)를 쓴다.[137] 일명 'Родина-мать'. "어머니 조국이 부른다!"(Родина-мать зовет!)로 시작되는 유명한 프로파간다에서도 등장한다.[138] 특히 소련에서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양성평등이 매우 강조되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반면 성범죄인신매매, 여성의 출산권 등 현대 복지 사회와 직결되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여권은 첨단 복지 사회의 인프라에 기반한 현대 유럽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 문제다.[139] 애니메이션 1기 1화 인트로에서 피해를 입는 장면에서 건물과 차량을 보면 러시아인것을 알수있다.[140] 정확히 동유럽 소제의 4A 게임즈가 만들었으나 원작인 메트로 유니버스가 러시아임으로 이에 포함.[141] 엄밀히 말하자면 스코틀랜드가 주 모델이지만 러시아의 요소도 약간 섞여있다.[142] 상트페테르부르크, 루가, 비보르크.[143] 프스코프, 오스로프.[144] 사람들이 입는 옷이나 대부분의 도시들을 보면 러시아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특히 메텔.[145] 작중에서는 현실의 러시아 연방에 속한 무르만스크, 더 정확히는 인근에 새로 건립한 무르만스크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신 무르만스크 인근의 숲에 주둔하고 있는 구조체로만 이루어진 자경단인 '숲을 지키는 자' 또한 북극항로연합 소속이지만, 어째서인지 주민들로부터 혹독한 차별을 받고 있다.[146] 주민들의 전체적인 복장이 러시아의 겨울용 복장과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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