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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 | 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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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남연 제2대 황제
後主 | 후주
없음
없음
태상(太上, 405년 ~ 409년)
모용(慕容)
초(超)
부모
부황 모용납, 모후 단태후(段太后)
생몰
385년 ~ 410년
재위
405년 ~ 410년
1. 개요2. 생애3. 참고 항목

1. 개요[편집]

오호십육국시대 남연의 제2대, 마지막 황제. 묘호시호는 없으며 후주(後主), 말주(末主)로 불린다. 모용황의 손자이며, 목제(穆帝)로 추존된 모용납의 아들이다.

2. 생애[편집]

385년, 모용납의 아들로 태어났다.

403년, 후량이 후진에게 멸망당하자 후진의 도읍인 장안으로 이주해 신분을 감추고 살았으며 거지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어머니를 도와준 호연평(呼延平)의 딸 호연황후(呼延皇后)와 결혼하였다. 이후 삼촌인 모용덕남연을 세우자 모용초는 북해왕(北海王)으로 봉해지고, 시중(侍中),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 되었다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405년, 모용덕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했으며 연호를 태상(太上)으로 바꾸었다. 이후 건국공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였고 여흥만을 즐기는 등 실정을 저질렀으며, 서모 단씨(段氏)가 모용종(慕容鐘)을 옹립하려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모용초는 단씨를 폐출시켰으며 사건과 연루된 대신들을 모두 죽였다.

407년, 모용초는 후진과 군신관계를 칭하는 것을 대가로 태후와 황후를 본국으로 송환시켰다. 이후 동진의 회북(淮北)을 공격했으나 409년 유유의 공격으로 도읍인 광고(廣固)가 함락당했다. 이후 포로로 붙잡힌 모용초는 동진의 도읍인 건강(建康)으로 압송되었다가 410년 참수되었다.

3. 참고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