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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텔슨전자
TELSON ELECTRONICS
파일:텔슨전자 로고(품질 개선).jpg
2002년부터 사용된 로고[1]
파일:텔슨전자 초기 로고.jpg
1992년~2002년 로고
기업명
정식: 텔슨전자 주식회사
영문: Telson Electronics Co., Ltd.
국가
대표
김동연[2]
설립일
1985년 3월 18일 (텔슨정보통신)
1992년 3월 11일 (텔슨전자)
해산일
2005년 3월 17일[3]
업종명
유선 통신기기 제조업 (등기상)
기타 무선 통신장비 제조업[4]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262 (도곡동, 텔슨양재빌딩)[5]
직원 수
224명[6]
규모
대기업[7]
주식 수
66,964,705 주
상장여부
상장기업[8]
상장시장
코스닥시장
후신
텔슨 (재설립)
홈페이지
파일:텔슨 빌딩.jpg
구 텔슨전자 본사 (현 캠코양재타워)

1. 개요
1.1. CI
1.1.1. 해석
1.2. 관련 요소
2. 역사
2.1. 초창기~전성기2.2. 휴대폰 시장에서의 행보2.3. 결국 무너진 텔슨전자2.4. 재설립과 부활: 텔슨2.5. 우회상장과 재차 몰락
3. 주요 협력사4. 제조 기종5. 여담

1. 개요[편집]

새로운 것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텔슨전자 사훈

대한민국의 과거 무선호출기 및 휴대전화 제조사였다.

무선호출기(삐삐) 시기엔 국내에서 텔슨을 따라올 업체가 없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으며, 전성기 시절엔 대기업인 텔슨전자를 중심으로 텔슨정보통신을 비롯한 계열사가 뭉쳐 텔슨그룹을 형성하는 기업집단이었다.

2005년 휴대전화 사업에서의 고전으로 인한 경영난으로 최종 부도가 났고, 50여명의 임직원들을 중심으로 재설립되어 기존 생산공장과 텔슨의 상표권을 되찾아 2008년에는 중견기업으로 다시 일어섰지만 디지털큐브를 통한 우회상장 이후 합병법인인 아이스테이션이 출범하면서 사실상 휴대폰보다 PMP가 주류가 되며 텔슨의 정체성이 옅어졌다.

이후 2012년까지는 '텔슨' 브랜드로 해외 시장에 휴대폰을 수출하였으나 통합 법인인 아이스테이션마저 여러 실책과 자금난으로 2013년을 끝으로 파산하여 결국 2005년 재설립된 지 8년 만에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1. CI[편집]

파일:텔슨전자 초기 로고.jpg
초창기 로고 (1992~2002)
파일:텔슨전자 로고(품질 개선).jpg
파일:텔슨전자 국문 로고.jpg
후기 영문/국문 로고 (2002~2005)

파일:텔슨 레터링.jpg
사내 레터링

1.1.1. 해석[편집]

파일:텔슨 CI 심볼.jpg
  • 삼선의 심볼마크는 텔슨 CIP(Corporate Identification Program)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텔슨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표현한다.
    • 첫 번째 줄: 도전 - 꿈, 열정, 실천
    • 두 번째 줄: 창조 - 지식, 경험, 기술
    • 세 번째 줄: 신뢰 - 리더십, 팀원, 고객만족
파일:텔슨 CI 레터링.jpg
  • 레터링 로고타입은 텔슨의 공식적인 명칭을 표시하기 위해 디자인된 문자이다. 이는 심볼마크와 조형적 통일성, 조합성 등을 고려하여 균형과 비례를 시각적으로 조정한 것으로 임의로 변형하여 사용할 수 없다.

1.2. 관련 요소[편집]

파일:텔슨명함1.jpg
파일:텔슨명함2.jpg
사내에서 사용하던 명함 디자인
(좌: 국문 / 우: 영문)
파일:텔슨봉투1.jpg
파일:텔슨봉투2.jpg
사내 봉투 형식 (단위: mm)
(규격: 좌 22 X 10.4 / 우 330 X 240)

2. 역사[편집]

2.1. 초창기~전성기[편집]

파일:텔슨전자 김동연 대표.jpg
텔슨전자 김동연 창업주의 모습
파일:텔슨경영철학.jpg
세상에는 불가능한 게 없어요. 시간 문제일 뿐.

벤처 1세대 김 대표가 인터뷰에서 한 말. #

텔슨전자는 1992년 3월 11일 창업주 김동연에 의해 설립되었다. 김동연 창업주는 본래 맥슨전자의 마케팅 담당부장직을 맡았던 주요 임원이었으나, 맥슨전자를 퇴사하게 되면서 자신의 회사인 텔슨전자를 창업하였다.[10]

잘 다니던 맥슨전자를 퇴사하고 텔슨전자를 창업한 이유는 실로 우연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입사한 지 10년을 넘긴 1991년 8월경 김 대표의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병원 진단에서 "남은 생명이 한 달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 4대째 외동인 그가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휴직을 신청했으나 거부됐다고 한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는데, 병원 진단과 달리 아버지는 6개월만에 상태가 호전되었고 맥슨전자에 재취업 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본인을 포함해 맥슨전자 출신 개발진 8명이 모여 텔레커뮤니케이션의 계승자(son)이라는 뜻으로 텔슨전자를 창업한 것이다.

처음엔 무선호출기(삐삐) 생산업부터 시작했다. 뛰어난 디자인과 좋은 품질의 호출기를 괜찮은 가격에 선보이며 사용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세계 최초로 '광역삐삐'를 선보이는 등 여러 혁신기술을 통해 주목받으며 텔슨전자는 급속도로 규모를 키워 금세 대기업 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파일:텔슨 무선호출기.jpg
텔슨전자의 전성기 시절 삐삐 TTP-1300A

텔슨전자가 만드는 무선호출기 제품들은 어마어마한 흥행세로 국내 시장을 그야말로 싹쓸이했다. 무려 삐삐로만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김동연 대표는 국내 주식부자 TOP 20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21세기 주역 30대 사장으로 선정되는 등 # 성공신화를 이뤄 일명 삐삐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이로인해 "제 2의 팬택"이라는 말을 들으며 팬택 창업주 박병엽과 함께 대한민국 벤처 신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 당시 텔슨전자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경쟁사였던 삼성전자LG정보통신도 텔슨의 삐삐 점유율은 따라오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이 이상으론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2.2. 휴대폰 시장에서의 행보[편집]

대기업으로 성장하며 벤처를 졸업한 텔슨전자는 무선호출기보다 휴대폰의 주류로 시장이 전환될 것을 예견하며 일찍이 휴대전화 사업을 주력으로 선회한다. 1985년 설립된 국내 중견 통신기기 제조업체였던 텔슨정보통신을 인수, 계열사로 편입하여 통합 이전까지 무선호출기는 텔슨전자, 휴대폰은 텔슨정보통신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2법인 체제로 역할을 분담하여 운영하였다. 물론 로고는 양쪽 모두 동일한 로고를 사용해 사실상 한 기업처럼 운영되었다.

IMF 시기인지라 휴대폰의 경우 내수시장보다는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여 CDMA, PCS 휴대폰 단말기 등 4,000만불의 수출 목표를 잡고 수출에 전념했다. 당시 "라스베가스 CES에서 소개한 CDMA 휴대폰 단말기가 각국 바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아 구체적인 상담이 진행되는 중이므로 수출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존재한다. #
파일:TPC-5004W.jpg
텔슨정보통신 플립형 휴대폰 TPC-5004W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가 안정되자 내수 시장에서 2001년 출시한 플립형 휴대전화인 TPC-5004W는 한국통신엠닷컴(구 한솔엠닷컴)을 통해 선보였는데, 시장의 흐름은 이미 폴더형으로 전환되는 추세였고 딱히 이렇다 할 특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대만큼의 성과에 미치진 못하였다. 게다가 이미 휴대폰 시장은 삼성전자, LG전자 뿐만 아니라 현대전자, 한화정보통신까지 수많은 업체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지라, 남들이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나란히 챙길 때 해외 시장에만 주력했던 텔슨이 뒤늦게 국내 시장을 챙기려는것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내수 시장에서는 이미 긴 여백기간으로 인해 텔슨의 브랜드 파워가 약해진 영향도 컸다.

한때 텔슨전자와 같은 선상에 있었던 팬택 또한 일찍이 삐삐 시대가 저물고 휴대폰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하고 1990년대부터 휴대폰에 진입해 있었기에 더욱이 텔슨전자가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텔슨전자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바로 이동통신사와 손잡고 자체 브랜드 없이 이동통신사의 기획안에 따라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이다.
파일:텔슨 휴대폰들.png
텔슨전자 PS-5000(좌), PS-4100(우)
파일:텔슨전자 EX8000 렌더링 - 비율 수정.jpg
텔슨전자 EX-8000[11]

텔슨전자는 자회사인 텔슨정보통신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텔슨전자로 이관[12]함과 동시에, 이동통신사와 손잡고 이통사측의 자체 기획에 맞추어 통신사 상표로만 휴대전화를 생산 및 납품하였다. 물론 배터리 라벨이나 부팅 시 텔슨전자의 로고나 상호명이 표시되기는 하나, 제품 외부나 마케팅 등에서는 텔슨의 로고를 거의 내세우지 않았다.

이 전략은 생각보다 빠르게 먹혔다. 텔슨전자 자체 브랜드가 아닌 이동통신사 자체기획 라인업 형태로 보급형 휴대폰을 납품할 경우, 이동통신사측이 해당 전략형 단말기들을 주력으로 밀어 주거니와 소비자들에게 지원금 또한 더 제공하므로 비슷한 가격대의 타사 기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의 제조사 선호도에 대한 문제에 간섭받지 않을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휴대폰에서의 브랜드 파워가 약한 텔슨전자의 입장에서는 일석 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LG텔레콤을 통해 보급형으로 출시된 PS-4100, PS-5000, EX-8000 모두 기기의 외부에는 텔슨 로고 없이 카이 등 LG텔레콤의 브랜드 로고만 존재하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EX-8000의 경우 부팅 시 텔슨 로고가 나온다.
파일:텔슨와치(2).jpg
텔슨전자 와치폰 TWC-1030

손목시계형 휴대폰인 '와치폰(TWC-1030)'도 SK텔레콤을 통해 선보였다. 이 역시 켤 때를 제외하면 기기의 외부에는 스피드 011의 로고만 있다. 이 휴대폰은 약간의 변경을 거쳐 북미와 중국에도 수출되었으며 인도 시장에도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텔슨전자는 국내에서 3~4위, 전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CDMA 휴대폰 제조사였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큐리텔과 함께 잘 팔리는 메이저 휴대전화 제조사로 거듭났고, 정보통신 분야 100대 벤처 출신 기업 중 매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승산이 있었다. "텔슨전자는 한국의 노키아를 꿈꾸는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서 말이다.
파일:워치폰 경쟁.jpg
텔슨 와치폰의 경쟁작들

KTF에는 KTF의 자체 브랜드인 '네온'이라는 명칭으로 휴대전화를 납품하였다. 텔슨전자가 제작한 네온 시리즈 제품군은 KTF-2016, KTF-3016, KTF-4016으로 총 세 가지가 있다. 다만 SKT나 LGT에서는 기기 외부나 마케팅에서만 텔슨 이름이 없었을 뿐 그래도 부팅 화면 정도에는 텔슨 로고가 있었는데, KTF에 납품한 기기들에서는 첫 모델인 KTF-2016의 홈에 있는 '텔슨전자주식회사' 문구를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텔슨의 이름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모델명마저 KTF-로 시작하다 보니 최근에 들어서는 네온 제품군을 KTFT(KT테크)의 휴대폰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파일:텔슨 네온 KTF-2016.jpg
텔슨전자 네온의 첫 번째 모델인 KTF-2016
파일:텔슨 네온 KTF-3016.jpg
텔슨전자 네온의 두 번째 모델인 KTF-3016
파일:텔슨 네온 KTF-4016.jpg
텔슨전자 네온의 세 번째 모델인 KTF-4016

자체 브랜드가 없이 납품하는 것에 대해 한 기자가 텔슨전자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한 결과, "자체 브랜드에 대해서는 아직 역량을 키워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저희 텔슨전자는 자체 브랜드 없이 이동통신사 라인업으로 제품을 납품하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라며 과거처럼 대중적인 인지도를 챙기지 못하더라도 현 실적이 이미 만족스러우므로 현행 방향성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 결국 무너진 텔슨전자[편집]

다만 이러한 급한 불만 끄기식 운영은 결국 무너졌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동통신사 자체 라인업 형태의 판매는 한계가 있었고, 애니콜과 싸이언, 큐리텔 등 다양한 메이저 브랜드에서 쏟아지는 저가 보급형 휴대폰들에 밀려 텔슨전자 제품들의 입지가 낮아지자 이동통신사들은 더 이상 텔슨전자로부터 기기 납품을 받지 않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장에 급한 영업이익을 채우기 위해 노키아의 한국 시장용 단말을 OEM 제작하거나, SK텔레텍의 스카이 휴대폰들 중 일부를 외주 생산하기도 했으나[13] 오히려 이로 인해 기존 협력 파트너였던 모토로라의 OEM 제작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고, 모토로라 생산량이 줄어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결국 계속되는 적자로 각종 자산매각, 인력 구조조정, 자본확충 등의 불가피한 몸집 줄이기를 시도했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계획대로라면 2004년 상반기 중 영업실적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고 연간 휴대전화 생산량 400만대, 매출 6,800억원 달성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목표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속되는 경영난으로 인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화의신청을 했으나, 국민은행 스타타워기업금융지점 등에 만기도래한 약속어음 19억원 상당을 결제하지 못해 2004년 7월에 1차 부도처리, 2005년을 끝으로 최종 부도처리되어 약 224명의 임직원 중 상당수가 경쟁업체인 LG전자팬택&큐리텔로 이직하면서 그렇게 텔슨전자는 파산하였다.
파일:텔슨 연혁.jpg

2.4. 재설립과 부활: 텔슨[편집]

텔슨
TELSON
파일:텔슨전자 로고(품질 개선).jpg
기업명
정식: 텔슨 주식회사
영문: Telson Co., Ltd.
국가
대표
장병권[14]
설립일
2005년 4월 1일
해산일
2008년 9월 2일
기업규모
중견기업
전신
텔슨전자
후신
아이스테이션 (우회상장 및 경영통합)
파일:옛 텔슨전자 공장.jpg
당시 텔슨이 되찾은 옛 텔슨전자 공장
파일:텔슨직원.jpg
한자리에 모여 텔슨의 부활을 알리는 직원들
(중앙은 장병권 텔슨 대표이다.)
망한 회사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일어섭니다.

텔슨 장병권 대표의 한마디

그렇게 끝날 줄 알았으나, 3년만에 완전히 부활했다. 구 텔슨전자 청원 공장장이던 장병권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울분을 삼키며 경영 책임보다는 외부 환경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판단, "우리가 한번 살려보자"고 마음먹고 2005년 당시 자본금 5천만원으로 '텔슨티엔티'를 설립한 뒤 텔슨전자 파산 시기까지 남아있던 직원 50여명을 데리고 구 텔슨전자의 공장부지와 상표권까지 되찾아 사명을 텔슨티엔티에서 '텔슨'으로 변경하면서 텔슨전자의 부활을 알렸다. 기존 텔슨전자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하며 인력과 생산공장까지 동일하기에 텔슨전자의 후신으로 인정받았으며, 당시 언론 등지에서도 모두 텔슨을 '텔슨(옛 텔슨전자)' 로 표기하였다.

물론 망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병권 텔슨 대표(구 텔슨전자 청원공장장)가 법원을 찾아가 텔슨전자의 공장시설을 임차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채권단이 허락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채권단은 "총 부도액이 1,800억인데 뭘 믿고 임대를 허락해주냐" 라며 "차라리 빛잔치를 하겠다"를 시전했다. 이때 직원들이 4개월치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며 힘을 실어 주었고, 공장 간부들도 "문제가 생기면 사재를 털어 메우겠다"는 각서를 쓴 끝에 6개월간 한시적으로 시설을 월 1,000만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으므로 6개월 내에 회사를 살리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인 상황이었는데 사무직 직원이 생산시설을 돌렸고, 간부들은 포장은 물론 청소까지 담당하는 등 임직원들이 1인 4역을 맡으며 죽을 각오로 회사를 살려냈다. 끝내 2005년 7월부터 12월까지 34억원의 매출액에 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기적적으로 회생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완전히 정상화가 이루어졌고, 이때 텔슨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며 과거의 입지를 상당 부분 되찾았다.
파일:텔슨 휴대폰 진열대.jpg
당시 본사에 전시된 텔슨 휴대폰들

텔슨은 텔슨전자의 인프라를 통해 승승장구, 텔슨티엔티 시절부터 대주주였던 KDC정보통신의 자회사로 운영되면서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5개국에 자가 브랜드로 휴대폰을 수출하였다. 텔슨이라는 브랜드명은 과거 텔슨전자 시절 일궈 둔 수출 인프라 덕에 국내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 잘 먹히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납품이 진행되었다.
파일:텔슨 유럽.png
텔슨이 유럽에 수출한 휴대폰 #

2.5. 우회상장과 재차 몰락[편집]

아이스테이션
i-STATION
파일:아이스테이션 CI.jpg
기업명
정식: 아이스테이션 주식회사
영문: i-Station Corporation
국가
대표
김태섭[15]
설립일
2000년 2월 23일 (디지털큐브, 존속법인)
2005년 4월 1일 (텔슨, 우회상장사)

2008년 9월 24일 (우회상장 및 경영통합)
2009년 9월 10일 (아이스테이션 출범)
해체일
2013년 4월 9일
업종명
컴퓨터 및 주변용품 제조업
상장여부
상장폐지 (2000~2012)
상장시장
관리종목 (2012년 3월 12일 폐지)
전신
텔슨 (50%)
디지털큐브 (50%)
홈페이지

기적적인 경영 정상화를 이룬 텔슨은 국내 1위 PMP 제조업체이자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디지털큐브를 자사의 우회상장 목적으로 인수했다. 디지털큐브가 텔슨에 인수된다는 소식은 꽤나 큰 화제거리였는데, 디지털큐브 대주주 측에서 'PMP 1등의 프리미엄'을 요구하여 약간의 차질이 있었으나 결론적으론 정상적으로 인수가 마무리되었다. #
파일:텔슨 우회상장.png
얼마 뒤 계획대로 디지털큐브를 역합병 및 우회상장하며 코스닥시장에 재진입했는데, 특이하게도 등기상 법인명은 '디지털큐브'를 유지하고 대외 사명만 '텔슨'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기존 디지털큐브를 단순 우회상장 목적의 법인 제공사로만 사용하지 않고 PMP 사업부문 또한 남겨 계속해서 활용할 계획을 밝혔다.
파일:텔슨 미출시 PMP.jpg
텔슨 브랜드로 출시 예정이었던 PMP
우회상장 이후, 합병법인인 디지털큐브 텔슨에서 '텔슨' 브랜드명으로 자체 개발한 PMP 단말기를 출시할 것#이라는 정보가 나왔다. 하지만 이 PMP는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모종의 이유로 끝내 출시되지 않았다.

얼마 뒤 사명을 구 디지털큐브가 PMP에서 사용하던 브랜드명인 '아이스테이션'으로 통일하고 '텔슨'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대외 브랜딩으로만 병행했다. 그러니까 우회상장 이후의 아이스테이션은 텔슨이 디지털큐브의 법인을 들어 써 우회상장한 것이고, 구 디지털큐브는 텔슨과 합병한 시점에서 PMP 부문만 남긴 채 명맥이 끊겼다고 봐야 한다.

다만 죽어라 회사를 살려낸 일이 무색하게도, 디지털큐브로부터 이어받은 PMP 부문이 A/S 문제, 댓글알바 논란, 배터리 폭발사고 등으로 갖가지 이슈를 일으키며 피해자 연대가 조성되고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인 MBC 실화탐사대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주가가 급락해 다시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3년자로 법원으로부터 최종 회생절차 폐지 통보를 받고 다시 파산했다. 한마디로 우회상장사를 잘못 골라 파산한 것.(...)

3. 주요 협력사[편집]

※ 홈페이지에 등재되었던 2004년 텔슨전자 기준.
  • 노키아
  • SK텔레콤
  • KTF
  • LG텔레콤 (현 LG U+)
  • 퀄컴
  • 인텔
  • 마쓰시타 (현 파나소닉)
  • 무라타
  • AGILENT
  • 모토로라
  • 산요
  • 세이코 엡손
  • 도시바
  • LG이노텍
  • KT컨설티움

4. 제조 기종[편집]

파일:하위 문서 아이콘.svg   하위 문서: 텔슨전자/제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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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편집]

  • 텔슨은 해외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에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브랜드였다.
  • 2003년 4월 22일 제 48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텔슨전자 김동연 대표와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이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훈장을 받았다. #
  • 전성기 시절 인터뷰에서 2013년까지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여 10가구 중 3가구는 텔슨전자의 무선전화기가 배치되어있을 것이라며 자신만만했으나, 2004년의 경영난을 예상하지 못해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 재설립된 텔슨이 되찾지 못한 구 텔슨전자 양재 본사건물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넘어가며 캠코양재타워가 되었다.
  • 이후 텔슨전자 창립자였던 김동연 대표는 피트니스 업체인 이바디웍스를 창립했으나, DNV피트니스로 편입되었다.

[1] 기업 통합 이후 2012년까지 텔슨 브랜드 수출용 휴대폰에 이 로고가 쓰였다.[2] 초기 등기정보에 김동으로 기재되어있었으나 이는 서류상의 오류이다. 실제 창립자명은 김동연이 맞다.[3] 기존 텔슨전자 법인의 폐업 날짜로, 첫 부도일은 2004년. 후술하겠지만 이후 후신인 텔슨(구 텔슨티엔티)으로 재설립되었고 우회상장 및 디지털큐브와의 경영통합으로 2008년까지 대외 법인명을 텔슨으로 존속했으며 차후 아이스테이션이 출범하면서 2012년까지 텔슨이라는 브랜드명으로 수출용 휴대폰을 제작하였다.[4] 무선호출기 및 휴대폰 사업.[5] 텔슨전자의 부도로 현재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양재타워 건물이 되었다.[6] 등기상, 구 텔슨전자 파산 직전 2004년 기준.[7] 나름 규모가 컸던 대기업이다. 팬택&큐리텔로 이직한 직원들의 2대 출신사이기도 했다. 링크[8] 텔슨전자 파산 직전 상장폐지되었다가, 텔슨 재설립 이후 디지털큐브를 통한 우회상장으로 다시 코스닥시장에 진입했다.[9] 현재 도메인이 폐쇄되어 접속이 불가능하다.[10] 여담으로 같은 시기 맥슨전자 본부장이던 박병엽 또한 맥슨전자를 나와 팬택을 창업하여 무선호출기와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와 동시에 텔슨전자의 경쟁사가 되었다. 맥슨전자 안에 있던 주요 인물 두 명이 각자의 길을 찿아 떠나고 경쟁상대로 만났던 것.[11] 마케팅은 EX-8000으로 했으나 기기에서는 하이픈(-) 없이 EX8000이라고만 되어 있다.[12] 이때 텔슨정보통신이 텔슨전자로 합병되었다는 기사들이 존재하는데, 실제 확인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합병 결의까지는 이루어졌으나 실제로 이때 합병이 되지는 않았으며, 합병 기사들이 뜬 2001년보다 한참 뒤인 2004년에 텔슨아이앤씨(텔슨정보통신(주))의 이름으로 생산된 이더넷 허브 등이 존재한다. 파일:텔슨 허브.jpg[13] 당시 SK는 디자인과 마케팅에 집중하던 터라 내부 기술력과 품질은 대중적인 이미지와 달리 턱없이 모자랐다. 팬택 매각 이전 스카이 휴대폰들의 지독한 품질 문제는 이미 스사모 등 팬층에서도 유명한 문제였다.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하기에 생산 물량들을 분담해 각각 교세라,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등에 외주 생산을 맡긴 것이다.[14] 구 텔슨전자 청원공장장[15] 최종 지주회사인 KDC정보통신 회장과 동일인이다.[16] 회사가 파산한 이후 네비로플러스에서 대리 운영하던 홈페이지다. 현재는 이마저도 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