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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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벨기에 국장.svg 벨기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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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Flag_of_Europe.svg.png
유럽연합의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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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벨기에 왕국
Koninkrijk België
Royaume de Belgique
Königreich Belgien
파일:벨기에 국기.svg
국기
민간기
국장
상징
국가
국화
아잘레아
1831년 7월 21일 벨기에 왕국 성립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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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면적
30,528㎢
접경국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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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
11,507,163명[1](2021년 1월 1일)
인구 밀도
373명/㎢(2018년 1월 1일)
출생 인구
117,800명(2018년)
기대 수명
81세(2015년)
출산율
1.63명(2020년)
공용 언어
종교
기독교 60.7%(가톨릭 52.9%, 개신교 2.1%, 정교회 1.6%, 기타 4.1%), 무종교 32.0%, 이슬람 5.2%, 기타 2.1%
군대
하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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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3개
10개
기초 자치 단체
581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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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36위(2020년)[결함있는민주주의]
필리프(Filip)
총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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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GDP
5,622억 2,9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
49,272 달러(2018년)
GDP(PPP)
5,506억 6,4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PPP)
48,258 달러(2018년)
$2조 1,940억 / 세계 20위(2019년)
4,300억 8,400만 달러(2017년)
4,063억 6,200만 달러(2017년)
GDP 대비 공공 부채 비율
86.95%(2018년)
신용 등급
공식 화폐
유로(€)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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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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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수교 현황
국제 연합(UN) 가입
1945년
주한 대사관
총영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45길 23
.be[4]
국가 코드
056, BEL, BE
국제 전화 코드
+32
홈페이지
여행 경보
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코로나19]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장2.4. 국가
3. 언어4. 역사5. 인구6. 행정 구역7. 사회
7.1. 지역갈등
7.1.1. 언어차별7.1.2. 왈롱 운동7.1.3. 플람스 운동의 급진화7.1.4. 언어사용 인구와 정치성향7.1.5. 두 지역의 경제상황 역전
7.2. 이민7.3. 인종차별
7.3.1. 유럽 내 각종 차별에 대한 통계7.3.2. 제국주의와 과거사 문제
7.4. 범죄
7.4.1.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7.4.2. 안드라스 팬디 사건7.4.3. 마르크 뒤트루 사건7.4.4. 2016년 브뤼셀 테러7.4.5. 2018 리에주 테러7.4.6. 2018년 샤를루아 공항 경찰 과잉 대응 사건
8. 정치9. 경제10. 교육11. 군사12. 문화13. 외교14. 인물
14.1. 유명인14.2. 벨기에 캐릭터
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 또는 벨기에(Belgium)서유럽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로 불린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남쪽,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브뤼셀(Bruxelles, Brussel)이다. 네덜란드어로는 브뤼설(Brussel)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bruoc(늪)와 Sella(집)의 합성어인 Bruocsella다.

국토 면적은 30,528㎢로, 32,289㎢인 경상도보다 약간 작다.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 왕국을 구성하였으나(1815–1839), 얼마 못 가 갈라졌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연합 왕국을 구성한 1815년에 벨기에의 인구는 3,400,000명으로 당시 유럽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인구 성장에 편승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인구는 2,400,000명으로 정체 상태에 가까웠다. 인구는 더 적은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지배하려고 하니까 갈등이 더 커지게 되었다. 네덜란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청소를 게을리하자 나라 전체가 홍합 불매 운동을 벌인 일도 있다(...). 더군다나 두 나라 모두 홍합을 자주 먹는다.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중에 바를러라는 곳이 있는데, 국경이 심히 복잡해서 월경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다가 강력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격전지가 되었다. 현재는 유럽연합 본부와 의회, 북대서양 조약기구 본부가 있는 유럽의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이 나라의 총리를 지낸 샤를 미셸유럽 연합 정상 회의('유럽 이사회') 의장 (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으로 활동하고 있다. UN 사무 총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EU 대통령'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시각이다. 또한 'European Council'은 'EU 정상 회의'로 번역해야 하고, 'The Council'은 'EU 각료 회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부분은 유럽 연합 관련 용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논의 필요.

2. 상징[편집]

벨기에 헌법 제193조
De Belgische Natie kiest als kleuren rood, geel en zwart, en als rijkswapen de Belgische Leeuw met de kenspreuk EENDRACHT MAAKT MACHT.(네덜란드어)
La Nation belge adopte les couleurs rouge, jaune et noire, et pour armes du Royaume le Lion Belgique avec la légende : L'UNION FAIT LA FORCE.(프랑스어)
Die Belgische Nation wählt die Farben Rot, Gelb und Schwarz und als Wappen des Königreichs den Belgischen Löwen mit dem Spruch: EINIGKEIT MACHT STARK.(독일어)

벨기에의 상징으로 "통합이 힘을 만든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벨기에 사자 문장에 붉은색, 노란색, 검정색을 사용한다.

2.1. 국호[편집]

벨기에는 로마 제국갈리아 점령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갈리아-게르만 민족의 일파인 벨가이(Belgae) 족, 혹은 라틴어로 벨기에 지역(저지대)을 가리키는 벨기카(Belgic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8] 벨기에라는 한글 표기는 네덜란드어 België[9]를 옮겨적은 것에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프랑스어 Belgique를 옮겨적어 '벨지끄'라고 한다. 또한 영어로는 Belgium이라고 하는데 '벨지엄' 혹은 '벨점'으로 들릴 수 있다.

원래 이 지역은 네덜란드와 통틀어서 '저지대', 즉 '네덜란드'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네덜란드 지역 중 벨기에가 있던 지역을 부르던 명칭은 남네덜란드(프랑스어: Pays-Bas méridionaux, Pays-Bas du Sud, 네덜란드어: Zuidelijke Nederlanden), 가톨릭 네덜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등이었다. 네덜란드라는 단어 자체가 네덜란드어, 저지 독일어 등에서 '낮은(neder) 땅(land)'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벨기에가 있는 지역도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라고 불렸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벨기에는 네덜란드 남부를,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북부를 의미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었지만 벨기에 혁명 이전에는 동의어 비슷하게 섞어서 썼다. 18세기의 네덜란드에 대해 쓴 책에 의하면 당시에 네덜란드(국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Pays-Bas가 있었지만, 형용사는 "belgique"를 썼다고 한다.

벨기에가 국호로 처음 쓰인 것은 1790년 벨기에 합중국이 세워진 때로, 벨기에 합중국은 오래 가지 못했지만 벨기에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국가였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갈라질 때 네덜란드가 지역명을 국명으로 써버리면서 벨기에는 네덜란드 대신 다른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써야 했던 것. 1830년에 네덜란드에서 분리될 때 다시 벨기에 왕국이라는 명칭을 채택했다.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국가 이름은 언어만 현대 네덜란드어가 된 서게르만어, 라틴어 단어란 차이가 있을 뿐이지 뜻은 둘 다 똑같이 '(독일계) 저지대'란 의미이다. 어원과 관계없이 Belgica라는 단어가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네덜란드의 경우 영어의 Dutch란 단어가 증빙하듯이 원래 현지인들도 자신들을 '저지대 독일인'이란 뜻인 Nederduits라고 부르던게 중세말과 근세 스페인의 통치와 독립 전쟁을 겪고, 독자적인 정치세력이자 열강으로 번영하며 아예 민족 문화적 정체성도 원래의 그냥 '낮은 땅 사는 독일인'에서 뭔가 더 차별화된 독자적 민족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반면 벨기에의 경우도 똑같이 '저지대 독일'이란 라틴어인 'Germania Belgica'의 뒷부분이 그대로 나라 이름이 된 경우로, 네덜란드와는 달리 독립 국가 형성 과정에서 남들 주기엔 너무도 아깝고 중요한데 우리가 먹는 것도 너무 힘든 이웃 열강들의 짬처리(...)의 결과물이었다. 이는 오늘날 벨기에가 지역적 정체성을 뛰어넘는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난항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다.

2.2. 국기[편집]


벨기에 국기의 역사
검정(#2d2926)
PMS Black
노랑(#ffcd00)
PMS 116
빨강(#c8102e)
PMS 186
런던 올림픽 국기와 국가 안내에 나온 PMS 카탈로그에 있는 코드와 그것으로 구현한 웹색상
네덜란드어: Vlag van België, 프랑스어: Drapeau de la Belgique, 독일어: Flagge Belgiens

공식적인 비율은 13:15며, 세 색깔들은 가로를 3등분하는 수직의 선으로 나누어진다. 이 비율은 자신들이 정해 놓았지만 어떤 경위로 지정되었는지 불확실하다. 통상적으로는 2:3인 국기를 쓰고 간혹 정부 기관에서도 세로:가로 비율이 2:3인 국기를 쓰기도 한다.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의 삼색기다. 13:15비율의 국기는 왕실에서 주로 사용한다.

삼색기의 색상은 브라반트 공국방패에서 유래했다.

벨기에 혁명이 시작된 다음날인 1830년 8월 26일, 브뤼셀 시청에서 네덜란드의 국기가 끌어내려졌고, 그 자리는 검정, 노랑, 빨강의 삼색기로 급히 대체되었다. 이 삼색기는 벨기에 합중국이 세워지도록 했던 브라반트 혁명 당시 사용된 기에서 본따온 것이다. 이 때는 세로가 아닌 가로 줄무늬의 국기였으나, 1831년 1월 23일, 세로 줄무늬로 공식적으로 바뀌게 되어 현재의 국기가 제정되었다.

독일의 국기와 배색이 비슷한데 독일의 국기는 형태가 가로형인데다 색도 검정, 빨강, 황금으로 조금 다르다. 순서도 벨기에는 빨강이 끝에 오나, 독일은 빨강이 가운데다. 좌로 90도 돌린 형태의 벨기에 혁명기와 비교해보면 두 국기의 색순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2.3. 국장[편집]

실제로 많이 쓰이는 간소화된 벨기에 국장
검은 배경에 혀가 붉은 노란 사자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이는 브라반트의 상징과 동일하다. 벨기에의 각 주의 상징은 종류가 다르지만 모두 사자다.[10]
공동체의 상징도 프랑스어 공동체를 제외하면 모두 사자다.

2.4. 국가[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La Brabançonne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언어[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언어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벨기에의 공동체 지도.svg
두 개의 벨기에와 언어전쟁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노랑), 프랑스어(빨강), 독일어(파랑)가 공용어이며, 네덜란드어권인 플란데런 지역과 프랑스어권인 왈롱 지역간의 갈등이 심하다. 제1언어 사용인구는 네덜란드어 55%, 프랑스어 36%, 독일어 1% 미만이다. 나머지 8%는 플란데런 지방과 왈롱 지방 사이에 위치한 수도 브뤼셀에 해당한다.

독일어 사용지역은 인구의 0.7%를 차지하여 존재감은 미미하다. 원래 이 지역은 독일 제국의 영토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벨기에가 전리품으로 획득한 지역이다.

4. 역사[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역사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인구[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인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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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행정 구역[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행정 구역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사회[편집]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은 지역마다 다르다. 네덜란드어권은 교복을 잘 입고 다닌다.

16세가 되면 을 마실 수 있다. 흡연도 16세면 할 수 있어서 고등학교 1학년부터 흡연을 시작한다. 술의 경우 맥주와 같이 도수가 낮은 경우만 16세, 도수가 높은 경우 18세부터 가능하다. 고로 라들러(맥주에 과즙을 첨가한 알콜음료)를 학생들이 들고다니면서 먹을수 있다.

8월 15일이 가톨릭성모승천대축일로 공휴일이다. 2월, 9월, 10월에 공휴일이 없다. 3월, 4월, 6월은 공휴일인 예수부활대축일, 예수승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이 월요일의 날짜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벨기에에서 항상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7월, 8월, 11월, 12월이다. 대체 휴일 제도도 없어서 항상 공휴일이 있는 달에도 쉬지 못할 수 있다.

7.1. 지역갈등[편집]

Laissez-moi Vous dire la vérité, la grande et horrifiante vérité : il n’y a pas de Belges.
J’entends par là que la Belgique est un État politique, assez artificiellement composé, mais qu’elle n’est pas une nationalité.
(…) Vous régnez sur deux peuples. Il y a, en Belgique, des Wallons et des Flamands ; il n’y a pas de Belges.

폐하께 중대하며 공포감을 주는 진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벨기에인은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벨기에는 정치적으로 충분히 인위적으로 구성된 국가이지만 민족이 하나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중략) 폐하께서는 두 민중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벨기에에는 왈롱인과 플란데런인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벨기에인은 없습니다.[11]

벨기에 이야기: 두 지역의 뒤바뀐 운명 그리고 벌어지는 격차
벨기에는 왜 EU 체제 성공의 시금석일까?
두 개의 벨기에와 언어 전쟁

언어가 다르기도 하고 지역 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쇠락된 왈롱 지방과 현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데런 지방의 갈등은 정부(정확히는 내각)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왈롱에 지원 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던 플란데런과 왈롱이 별도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면서, 이미 연방 국가긴 하지만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심각하게 커져서 스위스같은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연방(federation)을 넘어서 국가 연합(confederation)같은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나가서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13]

거의 매년 여러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최후 수단인 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무효가 되었고, 거의 반 년 간 정부 수반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왕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벨기에 국왕은 국가 원수지 정부 수반이 아니다. 물론 벨기에가 아예 쪼개지지 않은 자체가 왕가의 존재 때문인 점도 어느정도 있다.

다만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은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다. 이 난리 끝에 겨우 새로 정부를 만들었더니,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당 중 하나가 탈퇴해버렸다.[14] 나머지 네 정당만으로도 과반수는 유지할 수 있으나, 새 총리가 네덜란드어 기독당 소속인데 네덜란드어 정당 하나가 프랑스어 정당 셋과 연정하면 네덜란드어권에서 배신자라고 비난받을 것이 자명했다.

결국 여당들은 또다시 의회와 내각을 다 해산해버렸다.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Vlaams Belang('플람스의 이익')을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PS(사회주의당)가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보면 꼭 그렇게 온건하게 하지만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언제 분리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 브뤼셀에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턱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말까지 남겼다.

2011년 3월 30일에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무정부 상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화가 난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 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15] 선거구 분할의 합의를 이뤘고, 그 뒤에도 지체하다가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루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끝났다.

2011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 시 39%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반대로 플란데런 역시 분리되면 바로 네덜란드와 합치자는 여론이 있다. 이쪽을 강하게 내세우는 쪽이 극우파들이라 일단 호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극우파에 대한 지지와는 별도로 네덜란드와 통합하려는 생각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대체로 플란데런은 우파 성향, 왈롱은 좌파 성향이 강한 편이다. 다만 왕실 지지도는 프랑스어권이 네덜란드어권보다 2배 이상 높다.

국가 수장인 왕은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영향력은 없다. 덕분에 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일 정도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 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새로운 플란데런 연합)와 왈롱 다수당인 PS(왈롱 사회당)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고 해낸 것은 없었다.

벨기에의 국가 표어인 '통합이 힘을 만든다'도 저러한 분리 시도를 극복하고 단결된 국가를 만들자는 뜻에 가깝다.[16] 그럼에도 현실이 표어와 동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반어법적으로 잘 만든 표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벨기에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GeoTLD로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까우니 도메인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왈롱의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브뤼셀 수도권은 언어 공동체 2개가 중첩되는 곳으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이 분리되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 애매하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거나,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이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브뤼셀은 별개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브뤼셀을 유럽연합수도 내지는 유럽의 특수 지역으로 만들어 플란데런과 왈롱 모두와 합쳐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 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말도 있다. N-VA는 어떻게든 브뤼셀을 플란데런 안에 두고 싶어한다. 2019년 선거 결과를 보면 브뤼셀에서 N-VA가 순위권에 오른 지역은 한 지역도 없기 때문에 개헌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고 그 다음 과정인 독립국이 될 가능성 역시 낮다.

독일어 공동체는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냥 왈롱인들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 주변 국가에 합병되거나 브뤼셀 수도권의 월경지로 편입되는 방안도 추진되기 어렵다. 독일어 공동체 입장에서는 벨기에가 쪼개질 경우 고르기가 곤란한 선택지들만 놓이게 된다.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을 마지막 벨기에인들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 통합되었고, 마지막까지 통합된 벨기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독일어권 벨기에인들의 '마지막 벨기에인'이란 별명은 역사적 명칭 농담이기도 하다. 벨기에란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Germania Belgica, 즉 '저지대령 독일'의 '저지대'란 단어가 나라 이름으로 굳은거고[17], 원래는 베네룩스 삼국 저지대 일대의 주민들이 스스로는 그냥 ('독일인'이 아니라) '프랑스와 붙어있는 저지대의 독일어권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던 중세의 유산이 국명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별개 국가, 국민 공동체로서 '네덜란드'와 다른 저지대권이 독일권에서 떨어져나온게 된 계기가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잇다른 옛 저지대 17개주의 재편성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들이 터진 16세기, 17세기보다 훨씬 일찍 가장 가까운 유럽 대륙의 이웃으로 깊게 교류했던 잉글랜드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을 도이치, 즉 더치로 인식했고, 따라서 영어권에서 아직도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단어가 'Hollander', 'Netherlander'가 아니라 'Dutch'인 것이다.

2006년 12월 13일, 왈롱 지역의 공영 방송인 RTBF에서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자적인 국가로 분리되기로 선언했다는 뉴스 속보를 방송한다. 평소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 프랑수아 드브리고드(François de Brigode)[18]가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되었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당시 해외에 있던 왕자 필리프(현 국왕)는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사실 페이크 다큐였고,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나서, 방송 위원회의 경고를 받고서야 자막으로 표시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RTBF 문서를 참고.

이러한 벨기에의 갈등이 과장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극단적인 대립이 왈롱 주민과 플란데런 주민간의 대립이 극단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RTBF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왈롱인은 취업문제를, 플란데런인은 이민자 문제를 걱정한다는 차이점을 제외하고 정치성향의 차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벌어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사에 있는 그래프와 같이 프랑스어권 정당과 네덜란드어권 정당들이 각자가 속한 두 지역의 이익을 위해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정치성향보다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벨기에 지역갈등의 시작은 프랑스어 단일 언어정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성향, 사회문화, 경제 갈등 등의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때문에 지역갈등의 원인도 다양하다.

7.1.1. 언어차별[편집]

Art. 23
L'emploi des langues usitées en Belgique est facultatif ; il ne peut être réglé que par la loi, et seulement pour les actes de l'autorité publique et pour les affaires judiciaires.

제23조(현재 제30조), 벨기에의 언어 사용은 선택적이다. 이것은 관할 기관의 행위와 법무를 위한 법으로만 정할 수 있다. - 벨기에 헌법(1831) 중에서.[19]
당시 벨기에 표준 네덜란드어가 없었기 때문에 북부지방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언을 썼고, 건국 초기 헌법에 플란데런 방언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 벨기에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한 상류층들은 프랑스어 화자였고, 이로 인해 공용어는 사실상 프랑스어 하나 뿐이었다.

헌법에 따라 법정에서 플란데런 방언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법조인들은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무시되는게 일상이었다. 이러한 언어차별 문제는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상류층들에게 무시되었고 1840년부터 플람스 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에 1845~1848년 경기불황이 벨기에를 덮쳤는데 그 중 북부지방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플란데런 방언 구사자들은 박탈감에 빠졌고 플람스 운동은 탄력을 받는다.

플란데런 방언의 허용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다가 1898년 4월 18일 언어평등법[20]에 의해 프랑스어와 대등한 지위를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왈롱 운동 진영에서 이 법을 반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방언에 불과한 플람스어가 프랑스어와 대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방 하원 의회에서는 플란데런 정당 의원이 프랑스어권 정당 의원보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들어 프랑스어권 정당에서도 연방 하원 의회에서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섞어쓰는 시도를 하고 있다.

7.1.2. 왈롱 운동[편집]

플람스 운동으로 인해 북부지방이 권리를 회복해가자 북부 지방의 가톨릭 세력의 성장과 남부지방의 플람스화를 두려워한 프랑스어권 세력들이 1870년부터 왈롱 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북부지방을 이중언어 지역으로 두는 것을 반대하진 않았지만 남부지방을 이중언어지역으로 삼는 것을 반대했는데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자 플람스 운동의 노선도 북부지방의 네덜란드어 단일 언어를 밀어붙이는 쪽으로 선회했다. 대립이 극심해가는 1912년에는 쥘 데스트레라는 사회주의 정치인이 국왕에게 플란데런과 왈롱의 행정적 분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1870년 이전에는 벨기에 정부와 북부지방 간의 싸움에 가까웠다면 1870년 이후에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벨기에의 지역갈등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현재 왈롱은 독기가 많이 빠진 상태라는 것과 플란데런 민족주의 세력이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7.1.3. 플람스 운동의 급진화[편집]

플란데런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깃발
1840년부터 시작한 플람스 운동은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 부역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플란데런 민족주의 세력도 이 성향을 유지하고 있으며, 네오나치, 성차별, 인종차별, 반이민 성향의 단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플람스의 이익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7.1.4. 언어사용 인구와 정치성향[편집]

역사적으로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인구와 프랑스어 사용인구 중 한 쪽이 압도한 적이 없었다. 또한 지역별 정치성향도 달랐는데 북부지역은 가톨릭 정당이 강세였으며 남부지역은 사회주의 정당 혹은 자유주의 정당이 강세인 경우가 많았다. 가톨릭 정당은 플람스 운동의 주요 지지 세력이었고 사회주의 정당은 왈롱 운동의 주요 지지 세력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평행선을 달리기 좋았다. 현재의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의 인구 비율은 약 6:4 정도 된다.

7.1.5. 두 지역의 경제상황 역전[편집]

안트베르펜 버프레이딩스도크(좌), 리에주의 블레니 탄광(우)
블레니 탄광은 현재 영업을 중단하고 관광지가 되었고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벨기에의 탄전과 철광산 대부분이 왈롱 지방에 집중되어서 벨기에의 성장을 이끈 중공업 또한 왈롱에서 발달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막대한 부가 왈롱인들에게 쏠리게 된다.

반면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번영하던 플란데런 지방[21]은 전통 산업이 축소되고 왈롱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을 겪었다. 본래 플란데런인들의 도시였던 브뤼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빠져나가는 플란데런인들과 수도로 진출하려는 왈롱인들의 이주로 인해 인구비가 역전되어 왈롱인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이런 취급이 150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중공업이 축소되고, 관광과 금융으로 플란데런의 산업이 살아나면서 주도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다만 브뤼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어를 상용하였고, 현재는 네덜란드어권인 헨트도 과거에는 카를 5세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상용하던 곳이다. 이전에 플란데런인들이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어가 다소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상황 역전은 그동안 지역차별을 당해왔던 플란데런이 경제상황이 좋지 못한 왈롱을 지원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왈롱에서는 조금이라도 지원을 더 받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는 형태의 대립을 하게 되었다.

7.2. 이민[편집]

벨기에는 공식적으로는 이민에 대한 제도 자체가 없는 국가다. 예외적으로 외국인 신분의 경우 크게 단기 거주자, 장기 거주자, 벨기에인 가족이 있는 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영주권자의 세 분류로 나뉘어진다. 단,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존 보유 국적을 포기하는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투자 이민의 경우 불가능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비공식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이민국과 경제부에 접촉을 해야만 허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소 금액은 50만 유로지만 벨기에 국부 펀드에 3년간 투자할 최소 금액일 뿐이다. 골든 비자를 원하면, 비공식적으로는 150만-200만 유로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든 비자 신청을 하면 벨기에 경제부에서 보증을 서므로, E나 F카드에 준하는 투자 카드가 나온다.

해당 카드 소지자는 벨기에 영주권자와 동일한 신분이다. 해당 비자 소지자는 이후 3년 후에 시민권 신청을 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 여권을 발급받는다. 단, 시민권을 받을때까지 투자 금액은 벨기에 안에 있어야 한다. 두 개 이상의 국적을 가졌으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난다. 여기에 벨기에는 두 개 이상의 시민권을 보유한 귀화자에 한해서는 언제든 시민권 박탈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의 국적만을 가지는 것이 좋다.

벨기에는 혈통 중심의 국가다. 예외적으로 벨기에에서 출생한 사람은 18세까지 벨기에 거주자에 한해서는 국적을 부여한다. 단,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존 보유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벨기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거나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벨기에에서 출생하면 벨기에 국적을 받는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모 중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해외 출생자라면 벨기에 대학을 졸업하거나 벨기에 의무교육을 받거나 혹은 벨기에에서 18세부터 28세까지 경제적 기여(세금 납부) 를 하지 않았다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심지어 국적 보유자가 벨기에 국적만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체류하고 있더라도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홍콩 시민 BN(O)[22]와 벨기에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한 일이 있었다. 대법원 까지 갔으나 결국 원고 패소했다. 해당 원고는 22세까지 벨기에 시민권+홍콩 영주자로 살았다. 그래서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일 경우 벨기에 대사관에서는 강력하게 벨기에 출생을 권한다.

만약 국적을 박탈당했다면, 벨기에 법무부를 통해서 벨기에로 와서 28세까지 거주를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인은 벨기에 준시민이기에 유럽시민권자로 인정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F카드 영주자 신분이기는 하나 국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매번 벨기에를 나갈때 Bijlage (정부 발행 임시 서류) 를 받아야만 다시 벨기에 입국이 가능하다. (일종의 출입국 허가서류다.) 그러나 부모를 만나러 갈때는 해당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괜찮다. 위의 사례에서 홍콩 영주권자의 경우 홍콩을 방문할 때는 따로 서류가 필요 없다. 그러나 입국할 때 될 수 있으면 환승 없이 벨기에로 들어오는 것을 벨기에 정부는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경우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영국이나 스페인 등 벨기에와 국경을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는 국가의 경우 유럽으로 상륙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nel-Belgwet이라고 하는 국적법이 있는데 조부모와 부모 두세대 모두 벨기에에 거주하나, 벨기에 거주권이 없거나 영주권 신분인데 3세대 이상 벨기에에 살아왔고, 벨기에 태생이면 즉각적으로(물론 신청을 해야하지만) 벨기에 국적을 부여받는 법이 존재한다.

7.3. 인종차별[편집]

  • 2017년 박준형이 벨기에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던 중 현지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는듯한 장면이 방송에 고스란히 방영되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박준형의 사례는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다시피 인종차별 목적이라기보다는 유럽의 흔한 관광객 절도단이다. 그리고 촬영비화를 보면 당시 늦은 밤(12시 30분)이라는 점과 숙소예약이 안돼있는 등 출연자들이 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스탭들이 근처에 있으니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걸 모르고 덤벼든 절도단도 당황했는지 황급히 사라진다. 박준형 근육을 보고도 절도할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다
  • 2015년 tvN에서 방영된, 예능인이 가이드를 하는 여행프로그램인 <가이드>라는 방송에 배경으로 등장한 벨기에 소녀들이 카메라맨을 향해 동양인을 차별하는 동작, 즉 '째진 눈' 묘사를 참으로 당당하게하는 장면이 찍혔다. 그것도 심야시간도 아닌 백주대낮의 사람도 많은 강변에서 말이다.
  • 관광객들의 경험담도 많이 올라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차이나 타운이라고 외친다든가 하는 경험담은 꽤 흔하게 보이는 편이고 시비를 걸어오는 벨기에인을 중국인들이 몰려와 쫓아내주었다는 이야기마저 돌아다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방송 카메라 등의 실질적인 증거물이 될만한 매체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당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 행위로 인해 얻는 사회적인 페널티가 적거나 없는 수준, 혹은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이더라도 유색인종인 학생들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상, 절대 다수의 선생들이 아이들을 직업 교육 학교로만 보내려 한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 VUB(네덜란드어권 브뤼셀 자유대학)[23] 공식 보고서에서도 심각성이 드러나는데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흑인들조차 보통 취업에 걸리는 시간이 1년으로 나왔다. 백인계 벨기에인(Autochtonen)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흑인들은 대부분이 면접과 이메일에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특히나 교육 수준이 낮은 직종일수록 대놓고 백인을 고용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 인종차별 협약을 맺고 있고, 차별 금지법도 존재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그다지 엄하지 않은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일조한다. 일례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만화 '땡땡의 모험' 역시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지만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본인이 모든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인종차별 신고를 받지 않으며, 증거 채택에 있어서 녹취와 비디오의 경우 반드시 해당 인종 차별을 보이는 자의 녹화 동의가 있어야만 채택이 된다. 벌금도 일반적으로 높아야 200 유로 정도고 최대가 2,000 유로다. 그냥 운이 없어서 벌금을 낸다는 인식이 많고, 인종차별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없다. 심지어 동양인이 차별당한다는 신고는 아예 접수도 거의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접수를 받는 경우는 해당 신고자가 입양인 출신인 경우, 부모가 벨기에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민자 출신들 중에 동양계는 성장하면 벨기에를 나가서 다른 국가에서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주전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직접 겪었던 인종차별 경험담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 벨기에와 역사적으로 연관있는 나라인 네덜란드 혹은 룩셈부르크와 비교해본다면, 네덜란드는 나름 인종의 도가니 소리 듣는 나라이고[24] 룩셈부르크 또한 백인국가 치고는 타인종에 대해 꽤나 관대한 나라다. 벨기에와의 차이를 찾아보자면 네덜란드는 과거 식민지 출신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 것이 크고, 룩셈부르크는 워낙 적은 인구 때문에 노동력 관리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 큰데, 벨기에는 작은 영토 사이즈 치고는 인구도 나름 많은 편이고 과거 식민지라 할 수 있는 콩고에서는 해놓은 패악질이 여느 식민제국들을 아득히 넘어가는 수준이라 네덜란드처럼 받아주는 건 불가능하다.(애초에 네덜란드처럼 식민지 출신들이 벨기에로 넘어갈 생각도 없다) 물론 이러한 과거는 벨기에 왕가가 주도했지, 벨기에 일반국민들이 관여한 바는 거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약한 편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브뤼셀같은 도시에는 타인종 게토가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 사실 벨기에는 지금보다는 과거에 더 잘 나갔던 나라다.[25] 애초에 왈롱 지방은 산업혁명시절에 영국도 부럽지않을 산업혁명 붐을 경험한 곳이고 플란데런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유럽의 상업중심지였던 곳이다. 심지어 20세기 초에는 총 GDP만 밀리지, 벨기에의 산업력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청나라와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인종차별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단 해외에서 벨기에인들을 상대해보면 기본적으로 옛날 사람 느낌이 꽤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사회에 대한 의식이 약간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편이고 그것이 인종차별적인 제스쳐로 이어지는 것이다.
  • 벨기에가 언어권별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보니 같은 인종차별을 두고도 네덜란드어권 진영과 프랑스어권 진영의 태도가 서로 다르다.
    플란데런의 경우 타지역과 달리 민족주의 정당(N-VA)이나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VB)이 지방의회에서 원내 1당, 2당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지방정부 혹은 많은 주민들이 이민자 혹은 타인종에 대한 차별에 무감각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면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N-VA소속 플란데런 정부 총리인 얀 얌본이 "이민자 가정이 보조금으로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는데, 해당 발언은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였다.
  • 플람스 공동체의 교육정책 또한 인종차별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VRT의 어린이 채널인 Ketnet[26]에서 중국의 유행성 감기에 걸린 늑대가 칭챙총 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에피소드가 있었고, 현재도 Ketnet 유튜브 채널에 영상이 그대로 있다. 이후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인해 이 영상이 재발굴되어 동양인을 조롱할 목적으로 각종 SNS를 통해 퍼뜨리고 있으며, 당시 이러한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어 중국풍의 의상을 입고 chinky eyes를 하며 Corona Time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며 웃는 등 동양인 인종차별 자체에 대한 자각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사진은 플란데런의 모 고등학교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가 삭제됐지만, 그 사진은 박제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링크된 인스타그램의 글에 의하면 교사들도 인종차별 논란이 있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 대학교 내 커뮤니티에도 인종차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해당 학생들은 지역학/지역 언어는 배우는 학생들이 저지른 행위로 호모포비아 및 기타 혐오 발언들로 논란이 된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뢰번 문서 참조.
  • 2020년 2월, 오스트플란데런의 알스트에서 열린 축제에 나치군복과 유대인을 조롱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 2018년 2월 슬로바키아인 남성 요제프 호바네츠를 체포한 벨기에 경찰들은 그가 벽에 머리를 부딛히며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담요로 몸을 감싼뒤 6명이서 16분간이나 짓눌러 숨지게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내내 경찰관들과 응급처치사들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나치 경례로 보이는 행동까지 하는 등 대수롭지않은듯 행동했고 이 사건은 무려 2년 6개월간 관련자 체포한번없이 지지부진하게 수사가 이어져 더이상 벨기에 사법부를 신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가족이 2020년 8월 19일 해당 사건이 담긴 cctv영상을 공개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벨기에 경찰청 1, 2인자가 모두 사퇴했지만 가해 경찰관들이 방어권을 들먹이고 있어 여전히 수사는 제자리 걸음이다. #
  • 왈롱이나 브뤼셀 같은 타지역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데, 브뤼셀에서는 레 누아로라고 하는 얼굴을 검게 칠하고 여기저기를 돌며 돈을 모으는 행사가 있다. 당연히 얼굴을 검게 칠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이라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절충안으로 검게 칠하는 대신 벨기에 국기로 칠하는 것이 어떻겠나라는 얘기가 나오기는 하나, 논란이 식은 것은 아니다. 2015년에는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개혁운동(MR) 소속 디디에 레인더스가 이 행사에 참가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당시 벨기에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 모두 프랑스 2가 이를 비판하였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사례는 국내 유튜브에서도 벨기에의 인종차별사례의 예시들 중 하나로 인용되기도 한다. 보통 인용되는 사진은 프랑스 2에서 보도한 내용을 많이 쓴다. 기사에 따르면 국왕인 필리프도 이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산하 방송사인 RTBF의 흑인 기상 캐스터인 세실 중가가 시청자들로부터 인종차별 메시지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엘리오 디루포 당시 사회당 대표는 "세실 중가를 지지하며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트윗을 올렸다.
    요약하자면 인종차별에 무감각하긴 하지만 주류세력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세력이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이는 프랑스어권 지역과, 주류세력이 민족주의 계열이라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갈등을 정부 차원에서 방조하고 있는 네덜란드어권 지역으로 나눠져 있는 것이 현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 디자이너 황재근의 경우 벨기에에서 유학을 했는데 수줍고 내성적인 나라라 '인종차별도 내성적으로 한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예를 들어 샌드위치에 햄 2장을 넣어줄 걸 자신에게는 1장만 주고, 감자튀김은 버려야 하는 걸 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7.3.1. 유럽 내 각종 차별에 대한 통계[편집]

인터넷에서의 악명은 차치하고 2015년 유럽의 여론조사기관 equineteurope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통계상 벨기에인의 87%는 '아시아인과의 직장생활이 괜찮으며', 74%가 '아시아인과 연애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똘레랑스가 국가 정체성 수준으로 자리잡은 프랑스보다는 나쁜 수치이지만, 흔히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보다 좋은 수치이다.

2019년에 나온 통계에서도 지난 통계와 비슷한 수치가 나왔고, 다른 피부색의 친구나 지인이 있냐는 물음에서도 역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보다 좋은 수치로 나왔다.

파일: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리더를 하면 불편한가 2019.png
▲질문: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리더를 하면 불편한가?
▲질문: 다른 피부색의 친구나 지인이 있는가?
▲질문: 자녀가 흑인과 사귀는 것이 불편한가?
▲질문: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만연해있는가?

물론 통계가 사회현상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는 '얼마나 정직하게 대답하냐'와 '문제를 인식하고 있냐'의 문제가 얽혀 있으며, 질문지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지의 문항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 현상을 얼마나 잘 대표하는가로, '다른 피부색의 친구나 지인이 있는가?' 등에 대한 답변이 곧 '인종차별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27] 그러나 벨기에가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할때 어떠한가를 말하려면 결국 수치화된 데이터를 말하는 것 밖에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28]

7.3.2. 제국주의와 과거사 문제[편집]

학교, 조직, 교사마다 다르고 오늘날 여러가지 상황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젊은 벨기에인들이 식민지배 역사나 벨기에-콩고간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콩고에서 대학살을 한 전 국왕 레오폴드 2세에 대한 미화와 과오에 대한 은폐 행위가 종종 보고된다. 왕국으로서 스스로를 변론하는 정부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자신들의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이른바 '위대한 잊기(!)'라는 이름으로 은폐・왜곡하는 문화가 엄존한다. 이를 옹호하는 고위 인사의 망언은 덤이다. 그로 인해 많은 벨기에인들은 자국의 만행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확산으로 반성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레오폴드 2세 문서의 역사 왜곡 문단 참고.

7.4. 범죄[편집]

7.4.1.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편집]

2011년 12월 13일 벨기에의 도시 리에주에서 5명이 죽고 125명[30]이 다친 사건.

33세의 노르딘 암라니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 랑베르 광장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FN FAL을 난사한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암라니는 로켓 런쳐와 소총, 저격소총을 포함한 수십 정의 무기와 수천 개의 무기 부품, 2800여 포기의 대마초를 범죄를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2008년에 5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장물 거래와 성추행 혐의는 덤. 2010년 10월에 가석방(...)되었다 사회에 별 위협이 안 될 것 같으면 특별한 조건 없이 가석방하는 벨기에 법. 법의 온정을 베풀었더니...

사건 당일 성적 학대와 관련하여 경찰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던 암라니는 이웃집을 청소해주던 여성을 자신의 집도 청소해달라며 유인, 살해했다. 그리고는 달려나와 학살극을 벌인 것.

7.4.2. 안드라스 팬디 사건[편집]

헝가리의 성직자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안드라스 팬디라는 살인마가 자신의 친딸과 의붓딸을 성폭행하고 두 명의 전처와 자신의 자식, 의붓자식 도합 최소 6명을 연쇄 살해하고 시신을 아주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에 같이 범행에 가담했던 딸 아그네스가 자수함으로써 그 진상이 드러났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잠정 종결되었다. 실제로는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해 벨기에 사법당국의 안이한 대응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마르크 뒤트루 재판이 여론에 알려져 벨기에 내에서 아동 성범죄, 살인죄에 대한 엄벌 여론이 일고 미제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적극 촉구하는 여론의 요구로 검찰이 사건 파일을 다시 열고 안드라스 팬디와 그 딸을 구속, 조사하면서 진상이 드러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안드라스 팬디는 겉으로는 훌륭한 성직자였으며 루마니아 독재자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단체의 설립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안에서는 폭군이었고 자기 눈밖에 났거나 도망친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인물이었던 것.

7.4.3. 마르크 뒤트루 사건[편집]

1990년대 중반에 벌어진 아동 성폭행 연쇄살인 사건으로 벨기에의 소아성애자인 마르크 뒤트루가 다수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녀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감금했으며 그 중 두 소녀를 살해하고 또한 범행의 은폐를 목적으로 공범 베르나르 와인슈타인도 살해한 사건이다. 그가 다른 범죄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아내 미셸 마르탱이 또 다른 두 명의 어린 소녀를 굶겨 죽임으로써 도합 네 명의 소녀가 피살되었으며 희생자는 총 5명에 이르렀으며 벨기에 검찰은 마르크 뒤트루를 주범으로, 아내 미셸 마르탱과 미셸 르리브르, 미셸 니울을 공범으로 기소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조사 끝에 2004년부터 재판이 시작되었고 아동 4명 납치 살해. 2명 납치 및 성폭행. 공범 살해(뒤트루는 이 사건을 혼자서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등 모든 사건의 유죄가 인정되어 뒤트루는 무기징역 및 정부의 임의 처분 대상 지정.[31] 미셸 마르탱은 징역 30년. 미셸 르리브르는 징역 25년. 미셸 니울은 납치와 살인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마약 관련 행위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셸 니울은 2006년 5월에 만기 출소. 미셸 르리브르도 2005년 10월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살인 및 성폭행은 하지 않고 납치에만 가담한 점 등이 인정되어 가석방을 허용. 출소하였다. 미셸 마르탱은 30년 중 15년의 형량을 채운 뒤 2011년 가석방 신청을 하여 허가받고 수녀원에서 남은 수감 기간 동안 격리, 감시받는 형태로 출소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벨기에 법원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사회에 더 이상 위험이 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죄없는 아이들을 굶겨 죽인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

마르크 뒤트루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는데 뒤트루는 2013년 무기수의 기본 복역 형량을 채운 뒤 가석방 신청을 했다가 '죄질이 너무 나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유' 로 기각되었다. 소아성애자라 교화도 거의 불가능한 만큼 교도소에서 일생을 마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이 사건 직후 벨기에 내부에서는 사형 제도를 부활시켰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지만[32] 이는 벨기에 헌법상(제18조 연성헌법 국가라 굳이 수정 못 할 이유는 없다만)이나 유럽연합 헌법 규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7.4.4. 2016년 브뤼셀 테러[편집]

2016년 3월 22일 오전 8시 브뤼셀 자벤텀 공항과 마엘빅 (Maelbeek / Maalbeek) 지하철역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1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것은 2016년 브뤼셀 테러 사건 참조.

7.4.5. 2018 리에주 테러[편집]

2018년 5월 29일에 리에주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만난 것으로 확인된 용의자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경찰관 2명과 행인 3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그리고 다에시가 리에주에서 있었던 테러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다 벨기에 경찰은 용의자가 수감자까지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7.4.6. 2018년 샤를루아 공항 경찰 과잉 대응 사건[편집]


※주의
CCTV영상의 경찰관들은 현지언론 공개당시 모두 모자이크 처리가 돼있지만 이 동영상에는 모자이크가 없다. 동영상에 의하면 벨기에 경찰청의 1, 2인자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돼있는데 현지 언론에 의하면 벨기에 연방경찰의 2인자가 사임하고 공항경찰의 2인자가 경질된 것이라고 한다.

관련 페이지(RTBF, VRT)
2018년 2월, 슬로바키아 남성 요제프 호바네츠가 샤를루아 공항에서 항공권을 제시하지 않아 유치장에 구금됐다. CCTV 영상에 의하면 유치장에서 이 남성은 머리에 피가 나도록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고 이때 경찰이 이를 제압하면서 가슴 위에 16분간 앉아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경찰은 옆에서 나치 경례를 하기도 했다. 당국에 의하면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피해자의 부인은 2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수사를 신뢰할 수 없어 2020년 8월에 CCTV 영상을 공개했다.

2020년 8월 26일,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얀 얌본(N-VA)은 "사건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아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루이스 토바크(sp.a) 전 내무부 장관이 "내가 그때 내무부 장관이었다면 사퇴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0년 9월 2일, 슬로바키아 의회가 집행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집행위원회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9월 3일, 고등 법무 위원회가 이 사건의 법적 조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8. 정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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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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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육[편집]

벨기에의 교육제도는 불어권, 네덜란드어권, 독일어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언어권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초/중등 교육에서 낙제(유급) 제도를 가지고 있다. 불어권 지역에서 초등학교의 낙제율은 약 18%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중/고등학교 낙제율은 25~30%, 대학1학년은 약 60%의 낙제율을 보인다고 한다.

2번 연속 낙제하면 보통, 수준이 좀 더 낮은 학교로 전학을 간다고 한다.


11.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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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크기가 작고 군사력도 별볼일 없어 무시당하지만 서방의 기관총을 석권한 FN 미니미FN MAG를 개발한 FN 에르스탈 사라는 걸출한 총기 회사가 바로 벨기에에 있다. ???:와플뿐 아니라 총도 잘만들죠. 국제연합 평화 유지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르완다 내전 당시 10명의 병사들이 수상을 지키던 중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군수 기업으로는 장갑차의 포탑을 생산하는 CMI 그룹 산하의 코케릴이 유명하다. NATO 본부도 브뤼셀에 있다.

12.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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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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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물[편집]

14.1. 유명인[편집]

14.2. 벨기에 캐릭터[편집]

15. 관련 문서[편집]

[1] 지역별 인구 - 브뤼셀권: 1,214,550명, 플란데런(브뤼셀권 제외): 6,647,506명, 왈롱: 3,645,107명[결함있는민주주의] 7.51점[3] 대한민국과 벨기에는 수교 연도를 대한제국과 벨기에의 수교 연도인 1901년으로 간주한다.[4] 벨기에 전체의 ccTLD다. 유럽연합 회원국이어서 .eu도 쓴다. GeoTLD도 있어서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도 서비스에 들어갔다.[다국어] 독일어 및 영어 지원이 다소 부실하다.[6] 벨기에는 연방차원의 관광청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각지역의 관광청 사이트를 찾아가야 한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8] "All Gaul is divided into three parts, one of which the Belgae inhabit, the Aquitani another, those who in their own language are called Celts, in our Gauls, the third.", 갈리아 전기 1권 중에서[9] 네덜란드어 발음으로는 '벨히여'(/ˈbɛlɣijə/)[10] 리에주의 녹색 사자 세마리, 브라반트의 사자, 림뷔르흐와 뤽상부르의 붉은 사자, 에노, 플란데런, 나뮈르의 상징인 플란데런 사자. 안트베르펜은 역사적으로 브라반트에 속했다.[11] 109년이 지난 지금은 연방 국가로서의 벨기에로 유지 중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지역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인용문에 브뤼셀이 없는 이유는 지역으로서의 브뤼셀은 1989년이 돼서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왈롱과 플란데런도 행정구역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공동체 운동 진영 혹은 정체성에 가까웠고 브뤼셀 사람도 자신의 모국어에 따라 왈롱 혹은 플란데런에 속했다.[12] 이 편지는 벨기에 프랑스어권 정치인이었던 쥘 데스트레가 1912년에 알베르 1세에게 보낸 편지로 A4용지 16페이지 정도 된다. 내용이 엄청 길지만 중요한 부분을 추리면 인용문과 같다. 쥘 데스트레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왈롱과 플란데런의 행정적 분리를 주장했고 이 내용이 편지 끝부분에 쓰여져 있다. 편지는 전달되었지만 국왕이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행정적 분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3] 이는 N-VA에서 주장하는 개혁이다. 오래전부터 주장해오고 있으나, 이것이 국회에 통과되려면 개헌이 되어야하고 당연히 왈롱 측에서 반대를 외치고 있다. N-VA가 왈롱을 상대로 논란이 되는 언행을 많이 보여와서 정당 홈페이지의 자주 묻는 질문에 관련 내용이 전부 쓰여져 있다.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런지 표면적으로는 "N-VA는 급진적인 독립을 원하지 않으며 국가 연합으로의 전환은 정치 대립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최종목표는 EU 회원국에 플란데런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는 것이나 그 절차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서는 브뤼셀 주민의 표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쓰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된 영상을 올려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14] 네덜란드어 정당 둘(기독당, 자유당)에 프랑스어 정당 셋(기독당, 자유당, 사회당)이 참여했는데, 네덜란드어 자유당이 탈퇴했다.[15] 네덜란드어: Brussels-Halle-Vilvoorde, 프랑스어: Bruxelles-Hal-Vilvorde. 알레-빌보르데 지역과 브뤼셀 수도권 지역을 합친 지역. 알레-빌보르데는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서쪽 절반에 해당한다.[16] 원래 이 표어가 벨기에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혁명 이후인 1831년이므로 당시에는 지역정부나 공동체 혹은 언어경계 같은 개념이 없었다. 당시에는 좌파였던 자유주의 진영과 우파였던 가톨릭 진영이 있었는데 이 두 진영의 통합을 의미했다.[17]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즉, 원래 어원을 풀어 보면 벨기에는 라틴어고, 네덜란드는 현대 네덜란드어가 된 당시 중세 유럽의 서게르만어 저지대 방언이지만 의미는 '낮은 땅'이란 뜻으로 똑같다[18] 57세인 2019년까지도 RTBF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19] 이 조항은 현재 벨기에 헌법 제30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아래의 언어지역에 대한 부분과 공동체에 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벨기에 헌법 30조는 큰 의미가 없지만, 당시에는 언어에 대한 헌법 조항이 이것 뿐이라 문제가 많았다. 당시 벨기에 정치인들은 프랑스어만 써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어 단일언어 정책으로 굴러갔다.[20] 정식명칭은 "공공부문의 플람스어 사용에 관한 법률"이다. 여기서 플람스어는 벨기에 표준 네덜란드어가 아닌 벨기에 북부지역의 네덜란드어 방언을 의미한다.[21] 브뤼셀 근교의 브뤼헤 등의 도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브뤼헤는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서유럽의 베니스'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직물 공업이 쇠락하고 도시 주변의 수로가 막혀버렸다. 그래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22] 영국의 국적의 일종으로 홍콩이 영국령이었던 시절에 태어난 홍콩인들이 받을 수 있는 국적. 영국 국적으로 취급되지만 영국 거주권이나 투표권, EU 시민권같은 건 없다. 무비자 정책도 영국 시민권자와 다르다.[23] 프랑스어권 브뤼셀 자유대학(ULB)과는 별개의 대학.[24] 특히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많다. 네덜란드에 인도네시아의 식문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25] 스위스가 벨기에로부터 금융허브 역할을 빼앗아 오면서 현재 잘나간다는 얘기가 유럽에서 많이 들리는 편이다.[26] 네덜란드어권 지역에서 EBS의 역할을 하는 채널이다.[27] 2019년 통계에는 '피부의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기는 차별이 만연한가?' 라는 문항이 추가되었는데, 이 문항에서는 벨기에를 포함하여 영국, 프랑스 등 좋은 경향의 응답이 나왔던 국가에서 '자국에 인종 차별이 매우 만연(very spread)하다' 는 응답이 나왔다. 이 통계로 제도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음성적 차별(covert discrimination)이 엄존한다는 해석과 차별에 대한 감수성(sensitivity)이 높다는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28] 특히 한국의 경우 서양인 도덕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미국에 맞춰져 있기에 유럽의 인종 차별 문제가 더더욱 과장되어 보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문화에 무지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뭐 이런거까지' 싶을 정도로 최소한 도시권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종 차별을 막으려고 하지만, 유럽인은 동아시아인에 대한 다문화 경험이 미국보다 훨씬 부족하다.[29] 벨기에는 연방 차원의 교육부가 없다. 각 공동체 정부의 장관이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플란데런 정부의 장관,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정부의 장관,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의 장관 총 셋이다. 그러나 쥘리 모렐의 발언은 이러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의 과거사 교육 지침이 부실하여 교사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기사는 2018년도의 기사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30] 국내 뉴스에는 4명 사망, 122명 부상이라고 말하지만 영문판 위키백과를 따른다.[31] 벨기에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가석방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뒤트루가 가석방된 뒤에도 정부가 임의로 다시 재수감할 수 있게 한 제도. 실제 의도는 가석방을 하지 말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32] 사실 이건 어느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캐나다에서도 전직 공군 대령이자 성도착자인 러셀 윌리엄스가 여성 두 명을 연쇄 성폭행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 사람들은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3] 콩고 자유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시절의 벨기에를 모티브로 삼았다.[34] 디아볼로 천재 소녀.[35] 벌레의 신비를 쓴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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