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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
የኢትዮጵያ ፌዴ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1]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파일:에티오피아 국장.sv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국화
칼라디움
국수
역사
지리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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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129,719,719명(2024년) | 세계 10위
인구밀도
92.7명/km²(2020년) / 세계 123위
민족 구성
출산율
4.15명(2019년)
HDI
0.485(2019년) / 세계 173위
지역 언어
아파르어, 하라리어, 오로모어
공용 문자
종교
기독교 (62.1%)
-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43.5%)
- 개신교 (18.6%)
이슬람교 (33.9%)
토착 신앙 (2.6%)
군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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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특별시
2개[4]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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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민주주의 지수
3.37점, 권위주의 (2023년)
(167개국 중 116위)
대통령
살러워르크 저우데
(ሳህለወርቅ ዘውዴ)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
(አብይ አህመድ አሊ)
상원의장
아단 파라
(አዳድ ፋራድ)
하원의장
타게세 차포
(ታኬሲስ ቼፖ)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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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GDP
명목 GDP
$1,560억(2023년) / 세계 59위
GDP(PPP)
$3,940억(2023년) / 세계 55위
1인당 GDP
명목 GDP
$1,475(2023년) / 세계 159위
GDP(PPP)
$3,724(2023년) / 세계 159위
$2,020억 / 세계 70위(2020년)
신용 등급
피치 : CCC 무디스 : Caa2 S&P : B
통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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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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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 1963년 12월 23일[5]
북한 : 1975년 6월 5일
무비자 입국
90일간 도착비자 (USD 20)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44길 20
.et
국가 코드
231, ETH, ET
국제전화 코드
+251
여행경보[6]
여행자제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7]
출국권고
티그라이 주, 소말리 주, 베니샹굴-구무즈 주, 감벨라 주, 오로미아 주 일부(East Welega, West Welega, Kelam Welega, Guji, Borena 지역), 암하라 주에서 티그라이주 30km 접경지역, 수단 및 에리트리아 국경 10km 접경지역, 아파르주에서 티그라이주 10km 접경지역, 케냐 및 남수단 국경 10km 접경 지역

1. 개요2. 상징3. 역사4. 자연5. 행정 구역6. 군사7. 정치8. 경제9. 사회
9.1. 민족9.2. 교통
10. 문화
10.1. 종교10.2. 언어10.3. 음식
10.3.1. 커피
10.3.1.1. 아라비카 커피의 탄생지
10.3.2. 까트
10.4. 스포츠10.5. 교육
11. 외교12. 관광13. 출신 인물14. 창작물에서
14.1. 에티오피아 출신 캐릭터
15. 기타

1. 개요[편집]

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북쪽에 에리트레아, 동북쪽에 지부티, 동쪽에 소말리아, 남쪽에 케냐, 서남쪽에 남수단, 서북쪽에 수단과 국경을 접한다. 수도아디스아바바(አዲስ አበባ, Addis Ababa)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내륙국이자 128,902,483명으로 일본과 비슷한 세계 11위 인구 대국이다. 국가별 인구 순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227,784,042명)에 이은 아프리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암하라어 국호는 '이티오피아(ኢትዮጵያ / Ityop̣p̣ya, [i.tjo.p’ja])'이며 영어 국호는 Ethiopia(/iːθiˈoʊpiə/)이다. 해당 국호의 유래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고전 그리스어 '아이티오피아(Αἰθιοπία / Aithiopíā)'이다.[8]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파에톤이 태양 마차를 너무 낮게 몰아 피부가 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안드로메다가 이 나라의 공주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일강 상류 지역에서 흑인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곳이 세상의 최남단이라고 생각해서 사하라 이남을 전부 에티오피아라고 불렀다.

중세 이래로 1974년 군부 쿠데타 이전까지는 '에티오피아 제국(የኢትዮጵያ ንጉሠ ነገሥት መንግሥተ)'이었다.[9] 마지막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가 폐위된 이후 '더르그(ደርግ / Därg)'라는 군부 정권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የኢትዮጵያ ሕዝባ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으로 국호를 바꾸었다.[10] 1992년 사회주의 정권이 타도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가 1995년 연방헌법 발표 이후로 현재의 정식 국호는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የኢትዮጵያ ፌዴ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이다.[11]

한국어권에서는 이디오피아, 에디오피아 등 다양한 표기가 혼용되었으나 1986년부터 에티오피아가 확실한 표준이 되었다(기사). 그러나 1986년 이전에는 이디오피아라는 발음 및 표기가 일반적이었는데, 특히 6.25, 그리고 1984년 대기근이 일어난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한 'We Are the World'가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할 때도 주로 '이디오피아'라고 불렀기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한국인들에게는 이디오피아가 훨씬 익숙한 감이 있다. 비록 1986년 에티오피아가 표준어로 정해졌지만,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다른 표기가 계속 혼용되었으며, 한국에 오는 에티오피아인들은 "이디오피아가 가장 정확한 발음"이라며 한국어 표기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고 한다.[12]

전통적으로 아랍어권에서는 '알하바샤(الْحَبَشَة‎ / al-Ḥabaša)'로 지칭하기도 했다. 해당 표현에서 에티오피아 제국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던 '아비시니아(Abyssinia)'가 유래하기도 했다.

2.2.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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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국가[편집]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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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악숨 왕국은 한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216년 ~ 274년, 3세기 살았던 인물)가 로마 제국·페르시아·중국[13]과 함께 4대 강국이라 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실제 국력은 영토·인구·군사력·기술 등을 따졌을 때 저들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도 받았으며, 당시 페르시아에서 인도·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14]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인도·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던 페르시아에 사는 마니가 악숨 왕국을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마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인물이기에 그가 내린 평가가 무작정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악숨 왕국은 당대 홍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로마와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을 형성하면서 국력이 신장되었다.

근현대사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유명하다.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군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유럽 열강 주제에 오히려 배상금과 땅까지 뜯기는 등 이탈리아의 체면을 잔뜩 구겨줬던 사실은 에티오피아 내에서 유명하다. 다만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여 5년 정도 강점된 적이 있고, 영국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1941년 해방된 일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식민지배라고 보지 않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도 에티오피아가 1차 에-이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문명국으로 대접받아서 그런 것이 크다. [15] 2차 대전기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었다고해서 식민지배 당했다고 하지 않고 점령 당한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 또한 점령기 동안에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근황파 정치세력이 유의미한 군사력을 가지고 활동한 점도 있다. 그래서 식민지배가 아니라 점령기라는 표현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

실제로 강점 기간 내내 이탈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시달렸으며, 일부 지역은 1941년 영국군 주도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로 진격할 때까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47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연합국 진영 간의 '평화 협정(Treaty of Peace)'에서 이탈리아의 강점은 법률적으로 그 합법성이 부정되었고, 오히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전쟁 배상금 성격의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아프리카에선 나름 독보적인 이런 위치 때문인지, 한때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아프로 내셔널리즘의 구심점이 되어 종교적 숭배 대상(자메이카라스타파리 운동)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각국에서 새 국기를 제정할 때도 에티오피아의 국기 색(빨강, 노랑, 녹색)을 참고로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4. 자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6px-Ethiopia_sat.png

국토의 거의 전체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온대기후에 속한다. 당장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도 해발고도가 2,300m 이상이라서 여름, 겨울 없고 1년 내내 봄, 가을 같은 기후에 속하며,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은 적이 없다. 한마디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와는 다르다. 온대기후 문서와 여기, 여기 참고. 적도 인근에 붙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겨울 혹은 밤에는 적게나마 눈이 내린다. 게다가 건기에는 날씨도 건조한 편이기 때문에[16] 이 나라 사람들은 사시사철 긴팔옷을 입는다.

에티오피아 고원의 기후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단 하루에 사시사철이 들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은 봄, 점심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에 가까운 날씨로, 에티오피아 갈 때 아프리카에 간다고 얇은 옷만 잔뜩 가져갔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자신이 추위에 강한 편이 아니고, 장기간 체류할 일이 있다면 취침 시에 사용할 전기장판 정도를 챙겨 가거나, 밤에 입고 다닐 입고 벗기 쉬운 니트 한 벌 정도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저지대로 가면 환경이 고지대와 다르며, 동부와 북부의 저지대는 덥고 건조하다. 특히 북부엔 아파르 족이 거주하는 다나킬 사막이 있는데 이 사막 지대의 달롤(Dallol)은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이 지역의 해발 고도는 아주 낮아 -130m 정도이고, 극도로 건조하며 화산성의 형형색색의 기이한 호수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소금 암석이 많아 소금을 채취한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34.4℃로 대구의 8월 평균 기온 26.4℃와 비교해 보면 압도적으로 높다.

에티오피아에는 특이하게 호주 재래종으로 유명한 유칼립투스 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행한 벌목으로 숲이 크게 줄어들어 황무지가 늘어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수입해서 심었는데, 예상보다 나무들이 잘 자라서 큰 숲을 이루었다. 정작 고향인 호주에서는 기후 변화와 자연 파괴로 유칼립투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호주 정부가 이 에티오피아산 유칼립투스를 역수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가는데 내륙에서는 덩치가 큰 아프리카코끼리코뿔소하마기린얼룩말타조아프리카물소사자표범점박이하이에나, 나일악어가 서식하며 반대로 작은 종에 해당되는 코끼리땃쥐, 쇠똥구리, 찌르레기, 육지거북, 개미귀신도 서식한다. 그 밖에도 영양, 아프리카들개, 혹멧돼지, 큰귀여우, 땅돼지, 호저, 올리브개코원숭이, 망토개코원숭이 등 중소 포유류도 다양하며 대머리수리나 대머리황새등도 서식한다. 에티오피아고원에서는 에티오피아늑대도 서식하며 야생쥐나 아이벡스염소, 겔라다개코원숭이도 서식한다.

5. 행정 구역[편집]


파일:에티오피아 행정구역.png

원래 에티오피아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과 관계 없이 여러 개의 주로 나눠져 있었다. 현재는 독립한 에리트레아 역시, 에티오피아의 한 주였다.

1992년 6월 21일, 지금과 같이 민족 개념의 대단위 주로 편성되었으며, 이듬해 5월 에리트레아가 독립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다.

2020년 6월 시다마(Sidama) 민족주가 주민투표를 통해 남부국민민족인민주(SNNPR)로부터 독립했으며, 2021년 11월에는 남서에티오피아인민주가 SNNPR로부터 분리되었다.
2023년 8월 19일 주민투표를 통해 중앙에티오피아지역주(CERS)가 남부국민민족인민주(SNNPR)로부터 독립했으며, 그 나머지 지역은 남부에티오피아지역주(SERS)로 개편되었다.

그리하여 에티오피아는 12개 주(region)와 2개 특별시(chartered city)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을 뜻하는 Region이 주의 역할을 하며, 그 밑에 Zone (시, 군의 개념) 그리고 그 밑에 Woreda와 Kebele(특별구역 동, 리 개념)를 두고 있다.
특별시
면적(km²)
አዲስ አበባ
Addis Ababa
527
3,859,999
디레다와
ድሬዳዋ
Dire Dawa
1,559
535,000
주도
면적(km²)
ጋምቤላ ክልል
Gambela Region
감벨라
(Gambela)
29,783
508,004
남부에티오피아지역주
ደቡብ ኢትዮጵያ ክልላዊ መንግስት
South Ethiopia Regional State
월레이타 소도
(Woleita Sodo)
베니샹굴구무즈주
ቤንሻንጉል ጉሙዝ ክልል
Benishangul-Gumuz Region
아소사
(Asosa)
50,699
1,218,000
남서에티오피아인민주
የደቡብ ምዕራብ ኢትዮጵያ ህዝቦች ክልል
South West Ethiopia Peoples' Region
봉가
(Bonga)
39,884
3,302,952
Deegaanka Soomaalida
Somali Region
지지가
(Jijiga)
310,000
6,506,002
Sidaamu Qoqqowo
Sidama Region
아와사
(Hawassa)
6,695
4,623,162
Qafar Rakaakayak
Afar Region
세메라
(Semera)
95,000
2,090,910
አማራ ክልል
Amhara Region
바히르다르[17]
(Bahir Dar)
154,709
22,876,991
Naannoo Oromiyaa
Oromia Region
320,000
40,061,083
ማዕከላዊ ኢትዮጵያ ክልላዊ መንግስት
Central Ethiopia Regional State
티그라이주
ክልል ትግራይ
Tigray Region
메켈레
(Mekele)
50,079
5,738,996
하라리주
ሀረሪ ሁስኒ
Harari Region
하라르
(Harar)
334
276,000

6.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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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편집]

에티오피아의 정치 정보
37점
2023년, 세계 98위
47.70점
2023년, 세계 130위
3.37점
2023년, 세계 116위

명목상으로는 다당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019년까지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 EPRDF)의 일당 체제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멩기스투를 몰아낸 멜레스 제나위가 2012년까지 21년간 장기집권했지만, 그 후임으로 권좌에 앉은 하일레마리암 데살렌도 민주화 세력들을 탄압하면서 민주화의 길이 험난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후술되어 있듯 2018년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가 취임한 이후부턴 개혁이 추진되는 모양새다.

이런 자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는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정치적 행위를 해 논란이 된 게 바로 페이사 릴레사였다. 남자 마라톤에서 2위로 은메달을 받은 그는 리우 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또 리우 올림픽 폐회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두팔로 머리 위에 X자를 그렸다. 이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선 자신의 친척을 포함한 주민 1천 명 이상이 경찰의 강경 진압에 죽거나 투옥된 데 대한 저항이라고 릴레사는 밝혔다. 또 릴레사는 "나는 이제 에티오피아로 가면 죽거나 감옥에 갇힐 것이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논란이 커지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릴레사를 영웅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릴레사의 에이전트는 AFP에 "릴레사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에서의 정치적 언급은 메달 박탈 등의 징계 대상이지만, 민주화 시위와 관련된 이번 논란에 대해선 IOC도 난감한 모양새다. 징계 때렸다가는 IOC가 엄청난 비난을 받을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는 이후 미국에서 몇년간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2018년,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정부가 퇴진하고 오로미아 출신 신임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가 취임한 이후 계엄령 해제와 정치범 석방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과 점진적 민주화가 일어나고 있다. 에리트레아와의 해묵은 영토 분쟁도 종결짓는 등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이 공로로 아비 아머드 총리는 2019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10월 25일, 물라투 터쇼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사임함에 따라 살러워르크 저우데 전 아프리카연합 유엔 대표가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저우데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

이때쯤 상기된 페이사 릴레사도 망명 생활을 마치고 조국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는 총리, 대통령과 함께 이젠 두 팔이 자유로워졌다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 다만 2019년 6월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걸 보면 아직은 완벽히 정국이 안정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 게다가 아비 총리의 정적인 자와르 모하메드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이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에 의해 2019년 12월 1일부로 31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번영당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2020년 11월에 6개월 비상상태 선포와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서 간밤에 군 캠프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면서 군 병력을 투입했다. # 티그라이 분쟁에서 에티오피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이뤄지고 있다고 엠네스티가 발표했다. # 티그라이 분쟁이 에리트레아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 그로 인해 악숨 공항이 파괴되는 등 타격을 입었다. #

8. 경제[편집]


파일:에티경제.jpg

아디스아바바 도심부의 셰게르 공원

파일:아디스 5.png

빈곤과 부유함이 교차하는 아디스아바바 교외의 풍경

에티오피아는 아직은 농업 기반의 개발도상국으로, 과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혔지만, 21세기 들어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해 2024년 기준 1인당 GDP가 1910달러로 세네갈보다 높아져 조만간 최빈국에서 벗어날 희망이 보이는 나라다.

하일레 셀라시에 제정 시절에도 가난한 나라였던 에티오피아는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공산정권의 학정을 겪다가 멩기스투 정권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리트레아의 분리 독립과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전쟁이라는 악재가 연이어 겹치며 2차 대전 후 사상 최악의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지만[19], 21세기 들어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했으며, 8년 평균 11.4%에 달하였다. 올해 성장률 역시나 7.7%로 전망되는데, 이는 전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물론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못 사는 축에 들지만, 한때 아프가니스탄보다 밑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을 생각해보면 많이 성장하긴 했다. 2017년 예측치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72달러인데 반해,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846달러로 아프가니스탄은 추월한 상태이며, PPP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1,888달러인데 에티오피아는 2,104달러로 추월한 상태다. 마침내 2022년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대로 상승하였다. 마이크로 크레딧(소규모 대출)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국토 전반에 건설 붐이 확산되고 있다. 오가덴 등 소말리아 인접 지역과 티크라이 등 에리트레아 인접 지역 일부는 예외이지만, 도로 공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 내 높은 실업률과 높은 출산률로 인한 급격한 인구 증가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금 보면 놀랍지만 1980년대 초반까진 한국이 에티오피아보다 인구가 많았다. 더 나아가 1990년대까진 이집트보다 인구가 적었지만 2001년을 기점으로 이집트의 인구를 추월했다. 2000년대 들면서 출산율이 6명대에서 4명대로 떨어지고 이를 기점으로 출생아수 증가세는 꺾였지만 그럼에도 사망률이 그만큼 하락하면서 인구 증가율은 여전히 2%대에 달하는지라 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2020 ~ 2030년대에는 일본의 인구수를 추월할 게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 인구 증가로 인하여 정부는 매년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영세 빈농 위주의 농업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데,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에티오피아의 빈민층을 위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까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에티오피아에 널려 있는 이 마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이것만 씹고 잉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국가 발전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다. 자세한 효과 등등은 해당 문서 참고.

식재료는 매우 값싼 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산품해외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가격이 무척 비싸다. 에티오피아 내 공업 설비도 없을 뿐더러, 해안을 접하지 않은 내륙국으로서 해운에 대한 수혜를 입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 그래서 한화 2,000 ~ 3,000원이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값싼 식자재와는 달리, 공산품의 가격은 사실상 한국에서 구매하는 금액과 준한다. 가령 보급형 프라이팬이 한화 15,000 ~ 20,000원 정도인데, 이는 에티오피아 일용 노동자의 3일치 봉급 전체에 육박한다. 내륙국인 에티오피아 특성상 수입품을 받아오는 지부티와는 사이를 좋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허나 이런 상황에 갑갑함을 느끼는 일부 호전적인 사람들은 "본래 우리의 속국이었던 에리트레아[20]를 침공해서 에티오피아를 다시금 바다와 접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라는 자극적인 주장을 하다가 역사 인식 문제로 주변국 국민들의 어그로를 한껏 끌어모으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에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와 더불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했던 국가였다. 이름은 홀란드 카(Holland Car PLC, ኔዘርላንድ መኪና - 네절란드 메키나). 즉, 네덜란드 차(메키나)다. 네덜란드와 에티오피아 자본이 합작으로 세운 회사였으며 2014년 파산했다. 그러나 차는 중국산을 배지 엔지니어링한 차다. 사실 에티오피아 도로 위의 차는 다수가 토요타, 혼다와 같은 일제 자동차들이다.

의외로 한국산 차들의 인기도 상당한 편인데, 도로 위의 차의 75%가 일제라면, 나머지 20% 이상 정도는 한국차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차들 역시 일본 차와 비슷한 장점으로 호평을 받는데, 싸고 튼튼하고 부품 수급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부잣집 규수 생일 선물로 다마스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고 하니 그 위상을 가늠할 만하다. 사실 한국 차들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제품들도 꽤 있고, 한류 등의 영향인지 한국에 대한 인상도 좋은 편이다. 덤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된 항공사이자 에티오피아의 플래그 캐리어인 에티오피아 항공[21] 시도때도 없이 보잉에어버스에 신 기체 발주를 넣는다. 그것도 최신 기종으로만. 2010년대 들어선 보잉보잉 787 5기를 추가 주문했고, 에어쇼에서는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에어버스 A350 12기를 주문했다.[22] 인천국제공항에도 보잉 787이 들어온다. 코로나19으로 인한 물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에티오피아가 국영 항공사를 이용해 수출을 늘렸다.#

2020년대 들어 에티오피아는 르네상스 댐을 통한 수자원 확보 및 전력 생산, 그리고 브릭스 가입을 통한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2024년 IMF 통계 기준 에티오피아의 1인당 GDP는 1,787달러네팔, 파키스탄은 물론 나이지리아까지 앞섰다. 라오스, 캄보디아, 케냐보다는 낮긴 하나 이 정도 성장 추세면 조만간 2,000달러를 넘기며 최빈국을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9. 사회[편집]

사회적으로는 치안 등 여러 부분이 아직 후진국스러운 건 사실이라, 한 기자는 2004년 들짐승이 사람을 해친다는 보도를 했다가 치안 문제를 어지럽힌다는 죄로 2년이나 수감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기자가 한국 관련 우호적인 기사도 쓰던 기자라서 현지 거주 한국인들은 안타까워했다고.

다만 치안의 경우 자신이 주의하면 수도 권역 내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최소한 경찰들이 강도짓하고 다니는 무법 지대는 아니며, 사람들의 인식 자체도 외국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에, 외국인 대상의 소매치기가 발생하면 주변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 소매치기범을 자체적으로 제압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케바케이고, 아디스아바바를 넘어서면 대도시 수준의 치안을 기대할 수 없으니 밤이거나 시 외곽, 혹은 아디스아바바 이외 지역은 무조건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시아인 중에서는 한국인일본인,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홍콩인이나 대만인에게만 호감을 가진다. 10만 명에 가까운 대륙 중국인들이 에티오피아에 있고, 중국인 범죄자들 때문에 치안 당국은 상당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시선 또한 비슷하다. 주변 사람들이 '칭챙총~ 칭챙총~'하면 그냥 무시하고 가거나 암하라어로 "더북 코리아위 넨(나는 한국인입니다.)"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갈 길을 가거나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9.1. 민족[편집]

파일:에티오피아 군중.jpg

환호하는 에티오피아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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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상을 입은 암하라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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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상을 입은 오로모 여인들

에티오피아는 다민족 국가이며, 에티오피아인이란 개념은 미국인, 터키인이란 개념과 같이 민족보다는 국가 중심의 개념이다. 에티오피아를 이루는 주요 민족은 암하라인, 오로모인, 소말리인, 티그라이인, 누에르족, 아파르족, 무르시족 등이며, 특히 인구 비율로는 암하라인과 오로모인을 양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에티오피아의 핵심 민족은 암하라인으로서, 에티오피아 제국 시절부터 국가의 중심 민족이었다. 현재 에티오피아 공용어암하라어도 암하라인의 언어이고, 문화적으로도 영향력이 크며, 지배 민족으로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민족별로 거주 지역이 비교적 잘 나뉘는 에티오피아 안에서도 암하라인은 구 소련의 러시아인처럼 일정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다.

제국 시절에는 14개 주[23]로 구성되어 있던 지방행정 구역을 초기 멩기스투 정권도 사실상 계수하였으나[24] 1987년 25개 지역, 5개 자치지역으로 개정하였다가, 공산 정부 붕괴와 함께 1995년 아예 1급 행정구역을 민족별 분포에 근거한 지역으로 분할하여(이 점에서는 소련의 각 SSR과 비슷하다)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단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디레다와[25]는 독립시로 존재하며, 이 과정에서 셰와 주는 폐지되었다.

오로모인은 인구수로 에티오피아 최다 민족이며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오로모인들이 사는 오로미아 주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크다.[26] 최다인구에도 불구하고 암하라인 중심의 에티오피아 체제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멩게스투 군사 정권 시절에는 오로모어 사용도 억압당하여 불만이 크며, 오로모 해방 전선이라는 분리 독립 단체도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 다른 언어들이 암하라어를 표기하는 그으즈 문자를 쓰는데 비하여 오로모어만은 로마자를 쓴다. 종교적으로도 암하라인들은 에티오피아 제국을 중심으로 보는 관점에선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고 역사적으로 에티오피아 제국의 중심 민족이었던 반면, 오로모인들은 16-17세기 아프리카 중부 내륙 지방에서 대거 이주해왔으며 종교도 이슬람교가 중심이다. 에티오피아 자체는 독자적인 기독교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오로모인들의 중심 도시인 하라르만 하더라도 동아프리카 일대 무슬림들에겐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로 취급받을 만큼 그 지역에선 나름 이슬람 문화의 역사와 깊이도 만만치 않다. 소말리인은 에티오피아 동부에 거주하며, 한때 이 소말리인들이 사는 오가덴 지역을 소말리아가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티그리냐인은 약 6%를 차지하는 종족으로, 비교적 소수이지만 이웃 에리트레아에서는 다수 민족이다. 에티오피아는 종래 쓰이던 행정 구역 대신, 특정 민족이 다수인 지역을 민족주라는 개념으로 묶는 행정 개편을 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인 시다마(Sidama)인은 1960년대까지는 대다수가 토속 신앙을 신봉하였으나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인구 대다수가 개신교를 믿고 있다.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소수의(1,400명) 이탈리아인이 에티오피아에 있다. 1939년 기준 이탈리아인의 수는 35,440명이었고 에티오피아가 해방된 후에 하일레 셀라시에가 에티오피아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쿠데타 이전까지 22,000명의 이탈리아인이 에티오피아에 남았지만 쿠데타 이후 대부분은 해외로 떠나고 극소수만 남게 되었다.

희한하게도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중 많은 숫자가 바로 이곳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이스라엘 중앙정부가 이스라엘 본토에서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의 배가를 겸해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의 귀순이민(알리야)을 조직적으로 실행하면서 본국으로 모셔왔다. 참고로 영국인 탐험가가 에티오피아를 탐험하던 중 한 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의 성소 위에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탐험가가 부족장에게 물으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들이 솔로몬 왕의 후손이며, 자신들 외에 다른 이들이 유대교를 믿는 줄도 몰랐다 한다. 여객기 단일 기종으로 최다 인원을 수송한 기록이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의 탈출이다. 기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귀순이민은 에티오피아 기득권층의 푸대접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한 탈출 작전의 형태로 이뤄졌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의 처지는 남한에 귀순한 탈북자 또는 서독에 귀순한 탈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이스라엘 본토에서 재정착한 그들의 의식주에 대하여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문서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에티오피아 남부 내륙 지역에는 오모(Omo river)라고 칭하는 이 흐르고 있는데 이 오모 강 유역에 사는 부족들이 1974년영국인류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르마족(Surma), 무르시족(Mursi)[27]여성들은 일정 이상의 나이를 먹으면 피부에 일부러 날카로운 칼 등으로 피부를 따서 흉터를 내며[28] 아랫 입술을 절개해 그 사이를 넓혀 원반 모양의 판을 끼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29] 얼굴 아래 쪽에 피어싱을 한 것이 마치 이 부족을 닮은 듯. 거의 원시 시대부족 생활 상태를 유지하며 아직까지도 생활하며, 매우 특이한 풍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이를 보려고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주로 사진 촬영 목적으로 방문하는데, 사진 촬영할 때마다 일인당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고 있다. 물론 에티오피아의 경제 사정이 워낙 열안한 상황이라 한국 원화 환율 가치로, 1인당[30] 이삼백 원 정도에 해당하는 현지 화폐를 주면 사진 촬영에 응한다고 한다. 보통 5~10 에티오피아 비르를 준다고 한다. 을 들고 나오며, 사진 촬영을 할 것을 요구하며, 돈을 요구하는 부족민들도 있는데, 총을 들고 나오는 행위는 관광객들에게 위압감을 줘서, 이 술술 나오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한다.
EBS 다큐, 인류 원형 탐험 - 접시 부족 에티오피아 무르시( Mursi )족

이 부족들은 여성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특이한데, 이 부족들의 남성들은 대부분이 실 한 올 걸치지 않고 나체로(!) 생활한다. 그나마 에티오피아를 찾는 관광객들이 돈이 되고,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가리는 남성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엔 아프리카 내에서 나체로 생활하는 부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이 부족들의 남성들은 '동가(Donga)'라는 긴 장대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서로 이 동가를 휘두르며 일종의 결투를 한다. 또한 남자 아이의 성인식을 할 때도 이 동가 결투를 이용하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가 부상을 당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것이, 이 부족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용맹한 전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 수르마족은 민족 연방 체제로 가기 위한 일환으로 주민 투표를 통해 수르마족 지역 창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

9.2. 교통[편집]

  • 항공
에티오피아 항공이라는 아프리카에서 꽤 큰 항공사가 위치한 곳이다. 아시아에는 베이징, 방콕, 서울, 도쿄[31], 홍콩 등에 취항 중이다. 그 외 유럽 방향으로는 터키이스탄불, 러시아모스크바,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마드리드 등으로 가고 영국 노선도 탑승률이 높으며 인도로 향하는 노선들의 탑승률도 높다. 인도인들 역시 에티오피아를 많이들 찾으며 최근 몰려오는 중국인들과 함께 인도인들의 진출이 활발한 편이며 이쪽이 더 오래되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을 거쳐오는 방법이나 캐세이퍼시픽 항공으로 홍콩 국제공항바레인 국제공항을 거쳐 오는 방법도 편하다. 에티하드 항공으로는 아부다비를 거쳐올 수 있다. UAE의 경우도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류가 활발하고, 아랍인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흔히 볼수 있다.

그 외에는 이집트, 수단, 에리트레아, 케냐 등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간에는 항공 교통량이 많다.

현재 ET672, ET673편으로 운영 중이며, 672편은 아디스아바바>>>인천>>>도쿄 방면이고, 673편은 도쿄>>>인천>>아디스아바바 방면이다.
  • 철도
철도망은 빈약한 편으로, 1917년 개통된 미터 궤간의 아디스아바바~지부티 노선(759km)이 무려 1세기 넘게 이 나라의 유일한 철도 노선이다. 그나마 2010년대 들어 표준궤로 개궤했는데, 이 개량에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현재는 아디스아바바-지부티 철도에서 북쪽으로 분기해 북부 메켈레까지 이어지는 757km 길이의 노선이 공사중이나, 메켈레를 중심으로 한 티그라이 지방의 정세 불안으로 언제 완공될지는 미지수.

10. 문화[편집]

10.1. 종교[편집]

민족별로 믿는 종교가 다르다. 보통 고원 지대의 농민들은 기독교를 믿고 저지대의 반농반목 민족들은 이슬람을 믿는다.

에티오피아의 실세인 암하라인, 에리트레아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티그라이인들은 대부분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는다. 그 역사도 대단히 유서깊어 악숨왕국 시절부터 무려 15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반면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오로모인, 아파르족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경우가 많지만 토속 신앙이 혼재되어 있다. 오가덴 지방의 소말리인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있다. 시다모인의 경우 개신교 인구가 전체 민족 인구의 70% 이상에 달한다. 토착신앙도 있다.

10.2. 언어[편집]

공용어는 암하라어(Amharic language, 현지어로는 '아마른냐')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에 속한다. 아랍어히브리어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의 언어는 유구한 전통을 가져왔으며 '그으즈(Gə'əz)어'[32]라는 공통 조상을 갖는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자기들의 고유 문자를 가진 나라이다.[33]

티그리냐어(Tigrinya)는 에리트레아 국경 지대에서 쓰이며, 이들은 암하라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에 속한다. 오로모어(Oromo), 아파르어(Afar)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쿠시어파에 속하며, 소말리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티오피아 남부의 수르마족무르시족들이 쓰는 무르시어와 수르마어는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한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문자로 쓰인 신문

에티오피아 문자는 외양은 독특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알파벳과 조상이 같은 문자다. 셈족 계통인 에티오피아 지방의 언어들은 대체로 남부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이 남부 아라비아에서 쓰이던 문자가 에티오피아로 넘어와서 모음 부호를 붙이는 식으로 발전한 것. 이전에는 모음 부호를 표시하는 선 없이 아랍 문자처럼 자음만을 표기할 수 있었지만, 암하라어에는 모음이 7개(어, 우, 이, 아, 에, 으[34], 오)나 있기 때문에 모음 부호를 붙이게 된 것. 라틴 알파벳과 달리 각각의 자음 글자 위에 선을 긋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다르지만, 위 표에서 가로 방향 끝에서 두 번째 글자('으' 모음을 결합한)들을 보면 라틴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L 발음을 나타내는 문자는 그리스 문자람다(Λ,λ)와도 유사하다.

에티오피아 문자에는 고유 숫자도 존재하는데, 그리스 문자로 표기한다. 1은 α, 2는 β, 3은 γ라는 식이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그리스어를 들여왔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인 만큼 영어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영어는 초등학교 4학년 부터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아디스아바바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많은 관광지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의외로 에티오피아에선 히브리어의 위상이 높아서 공산정권의 붕괴이후, 유대인들의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나 에티오피아가 관광산업이 유명하지만 암하라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은 적다보니 외국인들과 소통하기위해 영어를 중요시하고 있다. 거기다 국경을 접하는 주변국가들도 소말리아와 지부티를 제외하면 전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케냐, 남수단, 수단, 에리트레아, 소말릴란드)하다보니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적이 있지만 워낙 지배기간이 짧아서 현재는 이탈리아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이기 때문에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스와힐리어 과정이 설치돼 있다.#

10.3. 음식[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에티오피아 · 에리트레아 요리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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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커피[편집]

커피의 원산지이자 본고장이다.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생산된 커피는 특유의 다양하고 감미로운 맛과 꽃향기가 나는 커피로서 미식가들에 의해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35] 또한, 전통적인 건식 처리를 거치며 품종 자체가 카페인이 다른 곳의 커피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지역은 수세식 가공도 하는데, 남부 지역의 시다모 구지 커피와 하라르 일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단순 수세 처리가 아닌 특유의 발효 공정을 거쳐 카페인을 떨어뜨리고 복잡한 향미를 구성한다. 또한 이르가처페[36] 지역의 선드라이드 커피[37]도 유명하다. 인접국인 탄자니아와 케냐, 예멘[38]도 커피로 유명하며, 이 나라들에 커피 종자를 퍼뜨린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커피의 땅이라 불리는 만큼 스페셜티(Specialty)라 불리는 커피들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로는 에티오피아 하치라, 에티오피아 네키세 등이 존재한다.

또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자국 내 커피 재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커피 품종에 상표권을 등록하였는데, 커피 주 수출업자인 스타벅스는 반발하였으며, 그들은 대신 정부에게 농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였으나 거부하였다. 이에 국제 공정무역 단체인 옥스팜은 스타벅스를 비난했으며, 제나위 대통령까지도 스타벅스에 대하여 에티오피아 커피 수출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았다. 결국 스타벅스도 물러서서 상표권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스타벅스는 그동안 에티오피아 커피 원두를 헐값에 사가는 등의 횡포를 저질러 왔다. 이런 비난 속에 스타벅스는 수매가를 10배 이상 올린다고 밝혔으나 에티오피아에서도 이젠 스타벅스에 파느니 공정 무역으로 파는 것이 그 몇 배를 더 벌 수 있다며 피하고 있을 지경이라고 한다.
10.3.1.1. 아라비카 커피의 탄생지[편집]
에티오피아는 세계적으로 아라비카 커피의 탄생지로로 알려진 곳이다. 아라비카 커피는 주로 고지대에서 재배하는 특성 때문에 농경적인 면에서는 까다롭고 신경이 쓰이고 손이 많이가지만 미각적으로는 플레이버(향미)가 풍부하고 밀도가 높고 또한 기근에도 잘 견디는 편으로 가뭄에도 강하지만 서리나 냉해, 병충해에는 약하며 자외선이나 강한 햇볕에도 약해서 고무나무 등을 함께 심어준다. 서기 1775년경에 에티오피아에서 처음으로 탄생되어져서 현재까지 커피 매니아들의 향미를 이끄는 커피로도 유명하며 유사한 편으로 콜롬비아가 대표적인 아라비카 커피 생산 국가이다. 다만 가공법에서는 건습식법을 모두 쓰는 에티오피아와는 달리 콜롬비아는 습식법만을 사용하여 핸드 피킹[39]도 고수한다.

10.3.2. 까트[편집]

에티오피아나 예멘이나 지부티 같은 일부나라에선 기호품...이라고 주장하지만 마약이나 다를 거 없는 까트가 문제시되고 있다. 까트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중독성이 있고 재배에 많은 물이 필요하여 여러 모로 땅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이 카트가 허용되고 있는 게 문제. 여러 나라에 수출도 하여 돈벌이도 좋았는데 커피 다음으로 에티오피아 수출 품목 2위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까트를 수입 금지하고 마약으로 규정지으면서 에티오피아는 수출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여러 나라에 수출금지를 해제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상태.

10.4. 스포츠[편집]

10.4.1. 육상[편집]

에티오피아는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이다. 국토가 '아비시니아 고원' 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폐활량 키우기에 유리해 뛰어난 마라토너가 자주 나온다.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올림픽을 제패한, 그리고 단 3명뿐인 2회 연속 마라톤 우승자 중 하나인[40] 아베베 비킬라라는 선수는 올림픽을 맨발로 완주했다. 마라톤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장거리 육상에서 상당한 강세를 보이는 국가이다.

그런데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아베베가 우승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41] 일본 측에서 당시 에티오피아 제국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행복해지기를" 을 아예 알지 못해서 우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제국 국가 대신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대충 정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베베는 훗날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이후에도 장애인 양궁 선수로 활동했으며 휠체어 탁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장애인 개썰매 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다.

2000년대 와서도 케냐와 더불어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2시간 3분 벽을 처음으로 깬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를 비롯한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마라톤을 잘하면 엄청난 출세를 하기에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게브르셀라시에만 해도 베를린 마라톤 우승 상금으로 받은 돈이 에티오피아 평균 직장인 연봉 40년어치였다. 지금은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그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6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마라톤 유망주가 유럽이나 아랍에 귀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런데 육상선수들이 도핑이 걸려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다른 육상 강국인 자메이카나 케냐처럼 육상 외의 다른 종목들은 철저한 변방의 위치에 있다. 복싱에서 몇 차례 메달을 따 본 케냐, 단 한 번이나마 사이클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본 적이 있는 자메이카와 달리 아예 육상 외의 종목에서 메달을 따 본 적 자체가 없다.

10.4.2. 사이클링[편집]

사이클링은 1930년대 이탈리아가 점령한 기간 동안에 이탈리아인에 의해 소개되었다.
사이클링은 에티오피아보다는 그 윗나라인 에리트레아에서 더 인기가 많으며, 에티오피아 국내에서도 티그라이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가 더 활발하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사이클링 대회는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는 도시인 메켈레에서 39km 거리에 걸쳐 개최되는 메켈레 사이클링 챔피언쉽이다.
에티오피아 사이클링 연맹은 현재 국제 사이클링 연맹의 일부로 조직되어 있다.
첫 번째 국제 참가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4명의 사이클리스트와 함께 2개의 다른 종목(개인 루트와 팀 루트, 둘 다 남자)에 출전했지만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1964년(자전거 4명과 함께)과 1972년(자전거 4명과 함께)에 개별 루트에 계속 참가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후자 중 단 한 명만이 1972년 올림픽 사이클링에 마지막으로 참가한 에티오피아에서 경주를 완주했다.
2015년 메켈레 출신의 스가부 그르마이(Tsgabu Grmay)라고 하는 사이클링 선수가 아프리칸 로드 챔피언쉽[42]에서 에티오피아의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그 영향에서인지 티그라이 외에 다른 에티오피아 지역들에서도 프로 사이클링팀이 창단되고 있으며, 자전거를 통한 투어와 국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하여 많은 노고를 기울이고 있다.

10.4.3. 축구[편집]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를 바 없이 축구 또한 인기 종목이다. 국내 리그인 에티오피아 프리미어 리그를 비롯한 유럽 주요 축구 리그 및 주변 아프리카 주요 축구 리그 경기도 많이 틀어준다고 한다. 다만 인기에 비해 현재 에티오피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준은 아프리카 내에서 에티오피아의 국력과 위상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없다. 과거엔 자국에서 열린 196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1차 예선에서 소말리아를 격파하고 2차 예선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을 이기며 엄청나게 선전하여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그러나 최종 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게 1-2, 0-2로 패하면서 결국 월드컵 사상 첫 진출은 좌절.

10.4.4. 농구[편집]

다른 아프리카 대륙 나라들과 같이 농구 또한 에티오피아의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이다. 에티오피아는 1949년에 국제농구연맹(FIBA) 가입하였고, 에티오피아 농구 국가대표팀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첫번째로 만들어진 농구 국가대표팀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잘 나갔었지만 현재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최약체이다.
다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팀을 재건중이다.

10.4.5. 기타 스포츠[편집]

10.5. 교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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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대학교 정문 전경

에티오피아는 80년대 후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90년대 중초반엔 교육 예산이 전체 예산의 30%이상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교육 예산은 전체 예산의 15%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으로 초등학교 취학률은 90%선에 달하며, 이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가장 높은 편이다. 초등 교육이 의무, 무상 교육은 아니지만 가정에서 의지만 있으면 학업을 하는 데 문제가 없을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률은 60%선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등 학교 취학률은 남녀 모두 40%선이나, 졸업률은 남성 28%, 여성 11%로 중등 학교에서 학업을 끝내는 학생의 성별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정부에서는 학교 시설 확보와 교원 확보, 기존 교원의 처우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없는 살림에도 시설 확보에는 돈을 퍼부어 기반 시설이 전무한 낙후 지역에도 학교는 들어서 있을 정도로, 시설 측면에선 진일보한 면이 크다. 하지만 교사를 할 정도로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적고, 교사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만성적인 교사 부족을 겪고 있다. 2000년대부턴 교원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사범대학을 전국에 설치했고,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사범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가정에 일정한 경제적 보조를 해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여전히 농촌을 중심으론 조혼 풍습과 여성의 교육 접근에 대한 부정적 문화가 널리 퍼져 있어, 실질적인 교육 확대의 속도가 더딘 것이 사실이나,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와는 달리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속하고 있어 이런 노력이 언젠간 빛을 볼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교육에 지속적인 투자를 했던 것은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출신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멩기스투의 경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그 후임인 제나위 역시 에티오피아 최고의 명문 대학 출신에 취미가 독서일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었다. 실제로 교육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도 멩기스투가 정체를 대통령제로 전환한 것의 일환이었다.

11.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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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광[편집]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볼레 국제공항 입국자에 한해 도착비자 혹은 전자비자를 발급받아 갈 수 있다. 육로 입국시엔 일반 비자가 필요하다.

2015년 기준 에티오피아 대부분의 지역은 여행 유의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2014년 들어 알샤바브 등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의 테러가 빈번해진 것도 원인일 듯. 다만 오가덴 주와 아파르 주, 국경 지역은 철수권고 지역인데, 오가덴 주는 다름아닌 소말리아와 인접한 곳인데다가[43] 과거 영토 문제로 오가덴 전쟁도 일어났던 지역이다. 아파르 주는 에리트레아와의 분쟁이 원인인 듯 하다. 그러나 2021년 11월 5일 티그라이전쟁으로 인해 전 지역을 출국권고로 상향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북부에 몰려있다.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중세 암굴 사원으로 유명한 랄리벨라, 수십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로 유명한 고대 도시 악숨, 그리고 17 ~ 19세기 수도였던 곤다르가 유명하다. 그 외에 바다보다 낮은 땅 (해발 - 100m)인 다나킬 사막의 소금 광산은 탐험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평균 기온 20도 대를 유지하여 아프리카 국가들 중 선선한 편인 에티오피아에서 유별나게도 한여름엔 68도까지 올라가는 극도의 더위를 느낄 수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는 이동 시에 경유지로서 주로 들리며, 이슬람 문화를 간직한 동부 지역의 하라르도 최근 관광객이 늘고 있다. 하라르 지방은 커피의 원산지로서 진짜 수제 커피를 찾는다면 가볼만 하다. 다만 남수단과 접한 서부, 케냐와 접한 남부, 그리고 소말리아와 분쟁이 있는 동남부 오가덴 지역은 치안이 불안정하고 볼거리도 많지 않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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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에 위치한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

에티오피아 동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신앙이 수 천년간 우세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관련 유적이 많다. 그래서 성지 순례 관광 수요도 조금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취항, 2018년 6월 2일부터 직항으로 운항하는 에티오피아 항공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아디스아바바를 포함한 국토의 전반적인 관광지들이 아직 개발, 개척이 미숙한 상태라 오로지 관광 목적으로 체류하기엔 그 매력요인이 적을 수도 있다. 대개는 수도 시내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의 루시를 보러 가거나, 바로 그 옆의 아디스아바바 대학, 그리고 몇몇 전통 시장이나 신생 쇼핑몰 정도만 들리는 편. 대중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차가 없다면 어디로 옮겨다니기가 쉽지 않다. 다만 2015년 여름에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경전철이 개통되어 대중교통이 조금이나마 편리해졌다.

과거와 다르게 혐중 감정이 점점 심해지면서 같은 동양인인 한국인 입장에서 여행하기 상당히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 한국인이 백인을 보면 일단 미국인을 떠올리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동양인 =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배낭 여행객들의 여행기가 종종 블로그에 올라오곤 했다만 지금은...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때문에 에티오피아를 친중 국가로 생각할 수 있는데, 빨대 꼽는 사람들은 친중, 빨대 꼽힌 사람들은 반중이라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아프리카 관계 문서 참조

13. 출신 인물[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프리카의 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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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창작물에서[편집]

퇴마록에서 '모세의 계약궤'가 숨겨진 장소로 이 나라가 등장한 적도 있었다.

1970년대, 마쓰가에 하리의 『에티오피아 그림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 궁정의 시녀들은 식탁에 식기를 평행이나 직각이 되게끔 배열하지 못한다.
  • 호적도 없고 결혼 선물도 없다. 그 때문에 살인도 현행범이 아니면 범인의 실재성이 문제가 될 정도다.
  • 이혼율이 높고 이혼을 둘러싼 분쟁도 없다.(큰 재산이 없기 때문) 덧붙여서 이혼의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남편의 술 중독이다.
  • 실업률은 약 90%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거지떼가 넘쳐난다. 그에 대한 대책이란 거지를 트럭에 싣고 숲에 가서 버리는 것.
  • 골프장은 있지만 떼가 왔다갔다하고 있다. 양이 골프장 잔디를 먹으면 잔디 길이가 꼭 알맞게 된다고 한다.
  • 명함에 어떤 칭호를 써 넣어도 상관없다.
  • 원숭이에게 물린 상처가 봉합만으로 완치된다. 이것은 에티오피아인에게 항체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이들에게서 스웨덴 사람들의 10배 내지 20배의 면역글로불린 수치가 나오는데, 맨발로 생활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발바닥으로부터 균이 비집고 들어와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역사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적당히 구워진(...) 에티오피아인 신화처럼 실제로 에티오피아인들과 이웃 에리트리아, 지부티, 소말리아인 등 동북아프리카 흑인들은 주변 남수단이나 케냐, 우간다의 흑인보다 피부색이 연하고 외모도 좀 다른 편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인종주의가 심하던 시절엔, 에티오피아인들은 원래 흑인이 아니었고 로마 제국의 군인들이 아프리카로 갔다가 정착했다며 띄워주는 허황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중동의 셈계 백인들이 지금의 에티오피아 땅으로 가서 흑인들과의 혼혈 결합을 통해 지금의 에티오피아인이 된 것이지만... 러시아의 대시인 푸쉬킨의 조상인 유명한 표트르 대제의 흑인 시종,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이 에티오피아인이라는 것도 사실 이런 19-20세기스런 유사역사학적 인종이론에 따라 서양 학자들이 '진짜 오리지널 사하라 이남 흑인이 유럽 사회에 적응하고 대문호를 후손으로 배출할만큼 지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깐 그나마 백인에 가까운 에티오피아인이 분명함!'이란 식으로 왜곡하여 발생한 가설이다. 관련 학자들의 자세한 연구에 따르면 가니발은 에티오피아하고는 눈곱만큼의 관련도 없는 아프리카 반대편에 있는 현대 카메룬 일대 출신이었다고 본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문명 4에서 처음 등장해 문명 5와 최신작 문명 6에 등장했다. 4편에서의 지도자는 기독교를 진흥시킨 군주 가운데 하나인 자라 야콥(Zara Yaqob)으로 창조적, 조직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유 유닛은 에티오피아인을 이루는 민족 가운데 하나인 오로모 족에서 따온 오로모 전사인데 선제 공격을 받지는 않으면서 이쪽에서는 가하여, 머스킷 총병을 대체하는 유닛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하다. 또한 악숨 왕국 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석판(스텔레)는 창조적 특성이 있는 바람에 빛이 바라는 감은 있지만 문화를 추가로 제공해주어 국경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준다. 한편 5편의 지도자는 하일레 셀라시에이며, 특성인 '아두아의 정신' 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침탈당하면서도 독립을 유지해온 근현대사가 반영되어 자신보다 더 많은 도시를 가진 문명들을 상대로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다. 또한 석판은 문화 대신 신앙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어 나왔는데 작중에서 순위권으로 꼽힐 정도로 강력하며, 6.25 전쟁에도 참전했던 황실 근위대 메할 세파리가 산업 시대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하여 튼튼한 방어벽을 세울 수 있게 돕는다. 6편에서는 메넬리크 2세를 지도자로 하여 나왔는데, 기독교 문화 유적인 암굴교회가 고유 시설로 나왔고 아두와 전투에서 활약한 오로모 기병대가 고유 유닛으로 등장했다. 많은 신앙을 확보할 수 있으며, 고원 지대에 있다는 부분을 구현해 언덕에 도시를 세우면 문화와 과학도 같이 딸려 나와 강력한 진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결성된 나일 강 주변 국가들의 연합체인 "나일 강 연합(Nile River Coalition)" 을 주도하는 국가로 묘사되는 데, 이 NRC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이집트 수도 카이로까지 함락시킨 세력으로 등장한다.

Hearts of Iron IV에서 플레이 가능 국가로 등장한다. 지도자는 하일레 셀라시에. 처음부터 이탈리아 왕국과 전쟁중이기에 난이도가 낮지 않다. 국가 형성 결정을 통해 동아프리카 연방, 악숨 제국 등을 만들 수 있다.

14.1. 에티오피아 출신 캐릭터[편집]

15. 기타[편집]


[1] yäʾItyop̣p̣ya Federalawi Dimokrasiyawi Ripäbilik[2] ወደፊት ገስግሺ፣ውድ እናት ኢትዮጵያ(wädäfit gäsgǝši wǝdd ǝnnat ityop̣p̣ya)[3] 이스라엘 민족과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유다의 사자이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아들인 유다에게 내린 축복이 기원이 된다.[4]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와 동부의 산업 중심지인 디레다와가 속해있다.[5] 1974년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교적으로 굉장히 험악해지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단교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후 1991년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6] 외교부 해외 안전여행.[7] 자세하게는 아디스아바바 시, 디레다와 시, 하라르 주, SNNPR 주, SWEPR 주, 시다마 주, 오로미아 주 일부(3단계 지역 제외), 암하라 주(3단계 지역 제외), 아파르 주(3단계 지역 제외) 지역이다.[8] αἴθω(aíthō, 검게 타다)와 ὤψ(ṓps, 얼굴)가 더해진 Αἰθίοψ(Aithíops)가 어원이다.[9] yäʾItyop̣p̣ya Nǝgusä Nägäśt Mängǝśtä[10] yäʾItyop̣p̣ya Ḥǝzbawi Dimokrasiyawi Ripäblik[11] yäʾItyop̣p̣ya Federalawi Dimokrasiyawi Ripäbilik[12] 관련기사. 다만 이런 야사는 나라마다 다 있으니 특별하다 할 건 없고, 명칭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경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정정을 요청하면 반영해준다. 실제로 조지아벨라루스, 튀르키예 등은 정부에서 요청을 하자 즉각적으로 정정되었다. 결국 에티오피아 정부가 명칭 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다.[13] 마니가 살던 시절 중국은 분열기였다.[14] 19세기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도 이 홍해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으며, 현대 미국도 홍해를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 역시 이 곳을 핵심 이권이 달린 지역으로 여겨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이 지역에 위치한 지부티에 건설하였다.[15] 남아프리카 공화국라이베리아도 '식민지화를 받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로 함께 거론된다. 다만 독립성의 경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사실상 독립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영제국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었으며 90년대 이전까지 소수의 백인 이주민들이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들을 누르고 통치하는 나라였으니 굳이 구분하자면 식민지라기보단 위성국에 가까웠다. 라이베리아의 경우, 미국의 해방 노예들이 건너와 원주민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만든 나라로 미국의 비호를 받았기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16] 그러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보면 연 평균 강수량이 그래도 1,000mm 이상 되며,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진다.[17] 주의 최대 도시는 곤다르.[18] 오로모 인들은 핀피네(Finfinne)라고 부른다. 한때 아다마(Adama)라고 하는 도시에 주도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도로 다시 주도를 옮겼다.[19] 실제로 에티오피아는 1993년부터 2006년까지 14년 동안 1인당 GDP가 100달러대였으며, 이는 2023년 환율로 환산해도 200 ~ 300달러대에 불과하고, 심지어 에티오피아의 1인당 GDP가 가장 낮았던 2002년에 에티오피아의 1인당 GDP는 정확히 110.46달러였는데, 이는 2023년 환율로 환산해도 고작 184.7달러(!!)다.[20] 그러나 티그리냐인이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에리트레아는 민족 구성이 판이하게 달라, 에티오피아 중앙 정부와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전쟁을 치르고 독립했다. 에리트레아가 떨어져나간 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티그리냐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은 전체의 6% 남짓에 불과하며 현재의 에티오피아 역시 암하라인과 티크리냐인, 오모로인, 소말리인 등 자국 내부의 민족 갈등을 제대로 해결,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21] 아프리카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국제선 노선도 가장 많다.[22] 현재는 보잉 787-8 19대, 787-9 9대로 총 28대를, A350은 현재 20대를 보유 중이다.[23] 에리트레아가 14번째 주로 편입되었다.[24] 1981년 경기도 격인 셰와(Shewa)에서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특별시로 분리, 에리트레아의 일부를 아셉(Aseb)주로 분리[25] 오로모인 46%, 소말리인 24%, 암하라인 20%인 다민족 도시[26] 수도 아디스아바바도 오로미아 주에 둘러싸여 있다.[27] 두 부족은 서로 가까운 친척뻘이라고 한다. 그래서 풍습이 거의 비슷하다.[28] 흉터가 아물면 피부가 울룩불룩 튀어나온다.[29] 이 부족에서는 여성이 흉터를 내고 더 큰 원반을 끼우는 것이 매력 있다고 평가받는다.[30] 성인뿐만 아니라 영유아, 아동 또한 별도로 1인당 지급.[31] 인천국제공항 경유[32] 실제 발음은 그으즈에 가깝다. 중간의 으 부분에 여린히읗을 넣어 발음하면 거의 똑같다.[33] 서아프리카에 응코 문자(N'ko)와 북아프리카에 베르베르어를 표기하는 티피나그 (Tifinagh) 문자가 있긴 하지만, 응코 문자는 194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인공어이고, 티피나그 문자는 로마 알파벳에 속해 있다.[34] 한국어의 ㅡ처럼 얘도 자음이 연속해서 붙는 걸 막기 위해 땜빵으로 들어가는 담당이다.[35] 특히나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라서 수입 비용도 비싸다.[36] 마이너한 언어가 으레 그렇듯 통용되는 표기가 여러 개인데, 영어로는 보통 Yirgacheffe가 가장 흔하다. 예가체프라는 명칭은 이걸 잘못 읽은 것. 현지 언어로는 첫 번째 e가 ㅓ, 두 번째 e가 ㅔ다. 그리고 사실 y 앞의 i는 ㅣ가 아니라 ㅡ.[37] 나무에 달린 상태로 마를 때까지 뒀다가 따는 커피.[38] 요즘은 내전으로 인하여 물량이 없어서 못 먹지만, 과거 예멘의 항구인 무카 항에서 수출된 커피는 최고급 커피로 유명했다. 거기서 탄생한 브랜드가 "모카 커피"[39] 잘 익은 체리를 골라서 채취하는 커피 열매 채취 작업. 품질이 균일하나 인건비가 많이들고 혼자서 하기는 어려운 작업이다.[40] 다른 2명은 구 동독의 발데마르 치에르핀스키 (1976, 1980)와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2016, 2020). 단 치에르핀스키의 기록은 아베베 비킬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과 자유진영 국가들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1] 대회가 있기 바로 전 달에 맹장수술을 받았다. 그 몸상태로 대회에 출전한 것 자체가 괴물인 것.[42] 아프리칸 콘티넨탈 사이클링 챔피언쉽(African Continental Cycling Championship)이라고도 한다.[43] 특히 알샤바브가 자리잡고 있는 남부 소말리아와 접하고 있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서 알샤바브가 에티오피아로 건너가 많은 테러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44] 다만 애석하게도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다른 국가에 비해 잘 잡힌 바람에 가을 들어서는 에티오피아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국을 4배 이상 한참 추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