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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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날개없이 추락 중인 1995년 문민정부1.2.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노태우의 망언1.3.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시대의 개막1.4. 광복 50년과 분단 50년, 그리고 한일, 남북관계1.5. 케이블 다채널 시대 개막
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
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5.2. 배우5.3. 예능인5.4. 만화계5.5. 스포츠
6. 은퇴
6.1. 스포츠
7.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1995년 mbc에서 보도된 연도별 10대 뉴스이다.

외국인(당시 주한미군)이 찍은 1995년도의 서울[1]

냉전이 끝난 뒤에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게 된 WTO가 출범한 해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구급으로 여러가지 재난이 일어난 해다. 1차 체첸 전쟁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19년 뒤에도 이어지는데…

분리수거나 쓰레기 버릴 때 흔히 보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이 때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초로 대검찰청에 소환 출두되어서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사건을 참고하라.

이 때부터 케이블 채널 시대가 개막되어 3월 1일자로 동시 개국하였다. 이를 계기로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간의 공생과 경쟁이 시작되었으며 지상파에서 활동했던 배우 및 방송인들도 케이블 채널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케이블이건 다른 형태건 다(多)채널을 진작 좀 해주지. 노태우 집권 초기부터, 하다못해 김영삼 집권 직후부터.

이 해는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50년을 맞은 해로 70년만에 조선총독부 본청사 건물을 철거하였고 경복궁 복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프로야구가 20세기에서는 가장 인기있던 해이다.[2] 전년도 챔피언인 LG 트윈스야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 인기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전년도의 흑역사를 딛고 일어난 OB 베어스까지 성적이 잘 나왔다. 이 해의 OB와 LG의 경기는 거의 만원이었을 정도. 특히 OB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원년 이후 13년만에 우승했다.

또 우리나라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그 때인데, 유럽카툰작가협회 한국지부인 FECO KOREA가 세워지고,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가 처음 개최되고, 성인만화잡지 <미스터 블루(세주문화)>와 <투엔티 세븐(대원)>, <빅 점프(서울문화사)> 3개 잡지가 창간된 것도 이 때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 대부분[3]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에 2002 한일월드컵을 경험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때는 3년 내내 집중이수제를 한데다가 고3때는 시험 과목이 국어, 수학, 영어로 바뀌고 사상 첫 선택형 수능인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세대다. 여기에 영어 선택형은 1년만에 폐지하면서 실험용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재수했더니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역대급 물수능으로 뒷통수 맞았다… 이 때문에 95년생은 저주받았다는 소리가 돌기도… 96년생: 뭐요?

다이 하드 3아폴로 13호 등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희한하게도 죽을 쑨 해였다. 워낙 전해이듬해의 영화들이 무시무시한 대박을 친 이유도 있지만. 오죽하면 애니메이션토이스토리가 굉장히 성공했다고 했겠는가…[4] 저주받은 95년 영화

이 해에 Windows 95가 나왔다. 그야말로 IT계의 대혁명.[5]

한편 국제연합은 이 해를 '세계 관용의 해'로,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미술의 해로 각각 지정하였다.

이 해 방만한 경영을 일삼던 중견 건설사 두 곳이 부도났다. 이미 몇몇은 경제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2년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에서 선정한 1995년 올해의 한자는 '震(우레 진)'이다.[6]

1.1. 날개없이 추락 중인 1995년 문민정부[편집]

1995년에 들어서도 문민정부의 위기 상황은 나이지지 않았다. 육사 출신 현역 장교의 은행강도사건, 한진중공업 컨테이너선 화재사고, 집달관 비리 사건, 현대자동차 노동자 양봉수와 대우조선 노조원 박삼훈 씨 분신자살 사건, 김성복 교수의 부친 패륜살해사건,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대형사건이 줄줄이 이어졌고, 김숙희 교육부장관 사퇴파동과 이형구 노동부 장관 구속사건으로 정부의 공신력도 흔들렸다. 또 김종필 민자당 대표 축출과 자유민주연합 창당, 지방선거 공천 배제 파동으로 여야 관계도 더욱 악화되었고, 대북 쌀 지원 파동과 그에 따른 강경책 회귀로 남북관계 역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게다가 5월 한국통신 파업 사태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국가 전복기도' 운운하는 발언과 검찰의 5.18 '공소권 없음' 결정은 문민정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만들어 민주 개혁세력에게도 심각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때부터 문민정부의 개혁은 그 방향타를 상실했고, 개혁의 표류가 가시화되었다.

집권 초기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문민정부의 인기는 온갖 대형 사건과 국정의 난맥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1995년에 이르러선 지지도가 20~30%로 줄어들었다. 거기에 1994년부터 이미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거세져, 이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서서히 태생적 한계를 노출시켜 버렸다. 국민과 함께, 야당의 파트너로 삼아 개혁을 하기보다 보수세력과 손을 잡고자 했다. 이러한 성향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다.

1.2.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노태우의 망언[편집]

1995년 10월 11일, 경북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노태우는 이런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았다. 광주사태 별 것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 한겨레 신문 광주사태 별 것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 충격발언 요지, 한겨레 신문

노태우 대통령 발언 요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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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경북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노태우는 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우리 광주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발언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노태우씨, 광주사태는 중국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 망언 비판이 거세지자 처음에는 그런 얘기한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나중에 녹음 테이프를 들어보니 자신이 그런 얘기를 했었는가라며 어떻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고 변명했지만, 도리어 빈축만 샀을 뿐이었다. 광주 피해자들에게 참으로 미안

국민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동시에 구속되었다는 점에서 독재 정치의 최후라는 인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으나 김영삼 정권에서 4년가까이 질질 끌어오다가 김영삼정권이 마지못해 전두환 노태우를 잡아넣었던 것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 때 학살과 살육의 만행을 저질렀다는 전두환의 검찰소환 불응과 합천으로의 귀향에 대해서는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냈던 자가 어찌 저렇게도 뻔뻔할 수 있는가? 7년간 독재적으로 그 자리에서 썩도록 앉았더니 이제는 물러나서도 왕노릇한다. 독재로 대통령 오래해 먹더니 이제는 국민도 눈에 안 보인다!!"는 등 분노가 가득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7]

1.3.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시대의 개막[편집]

이 해는 정치사회적으로 그 동안 대통령이 임명하였던 광역자치단체장(서울시장, 광역시장, 도지사)을 비롯해 기초자치단체장(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민선을 통해서 각자 지역의 수장이 되었던 의미있는 해이기도 하였다. 그 동안 지역 단체장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경질하였지만 이 해부터 지방선거를 통해서 지역민들이 지역수장을 직접 뽑으며 만들어가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투표의사와 결과에 따라 선거출마를 통해서 지역을 이끌어가는 수장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선거가 시작된 첫 계기이기도 하다.

1.4. 광복 50년과 분단 50년, 그리고 한일, 남북관계[편집]

이 해는 역사적으로 광복 50년을 맞이하였던 해였다. 이에 맞춰 김영삼 정부는 일제의 청산책으로 조선총독부 본청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하기로 하였다.

또한 한일관계에서 있어서는 여전히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막장적인 태도와 위안부 문제 등이 남아있어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있었다. 이 같은 일본의 행태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분단 50년이라 남북관계도 50년이 되도록 긴장감과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이후에도 아들 김정일의 승계로 남북간에는 여전히 이질감과 분쟁이 있어보였다.

1.5. 케이블 다채널 시대 개막[편집]

이 해 3월 1일에는 역사적으로 케이블 다채널 방송들이 잇따라 개국하였던 첫 시기였다. 그 동안 지상파 방송사만이 영위를 누렸던 때와는 다르게 전문성 다채널들을 통해서 전문적인 내용과 분야를 만날 수 있었고 원하는 채널을 마음놓고 볼 수도 있어서 방송계에 역사적인 변혁을 일으켰다.

동시에 케이블 채널의 영향으로 비디오가 점차 위축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 동안 지상파 방송이 평일 중에는 정파상태여서 비디오로 대체해서 볼 수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케이블 채널은 평일 낮에도 방송을 한다는 점 때문에 그 동안 평일 낮에 TV를 볼 수 없었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때에 투니버스가 개국하면서 그 동안 지상파 채널에서 지정된 시간에만 볼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을 투니버스 채널에서 하루종일 볼 수 있는 변화가 생겨서 당대의 오덕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또 지상파에서 활동하였던 일부 배우와 가수들도 케이블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이 때부터 케이블 러시가 이어졌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인물[편집]

4.1.1. 1월[편집]

4.1.2. 2월[편집]

4.1.3. 3월[편집]

4.1.4. 4월[편집]

4.1.5. 5월[편집]

4.1.6. 6월[편집]

4.1.7. 7월[편집]

4.1.8. 8월[편집]

4.1.9. 9월[편집]

4.1.10. 10월[편집]

  • 10월 9일 - 알렉 더글라스흄: 영국의 제47대 총리
  • 10월 21일 - 맥신 앤젤린 앤드루스: 미국의 자매 재즈 트리오 '앤드루스 시스터스'의 멤버
  • 10월 24일 - 부여 간첩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관 2인
    • 나성주 경사(추서계급)
    • 장진희 경사(추서계급): 현재 경찰박물관에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4.1.11. 11월[편집]

4.1.12. 12월[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배우[편집]

5.3. 예능인[편집]

5.4. 만화계[편집]

  • 강은영 - <내겐 너무 예쁜 그대>
  • 권가야 - <해와 달>
  • 김지훈 - 천안시민신문 시사만화
  • 김현철 - <강원만평>
  • 무라타 유스케 - <파트너>
  • 박순찬 - 장도리
  • 박철호 - <53.89 파트너>
  • 방소영 - <하얀 나비의 꿈>
  • 배계규 - <시사세상>
  • 서은진 - <인어공주 이야기>
  • 양선모 - <건쉽>
  • 이경열 - <도사열전>
  • 이기훈 - <플러스>
  • 이시영 - <환상의 게임>
  • 이종관 - <백수전>
  • 이환주 - <건빵 한 봉지>
  • 임광묵 - <마치 영화처럼>
  • 전수현 - <난 행복해!>
  • 정명옥 - <메두사의 고백>
  • 정훈이 - <리모코니스트>
  • 조은실 - <포토포비아>
  • 최병열 - <X아웃사이더>
  • 최인선 - <뫼비우스의 띠>
  • 한승희 - <키키와 유쾌한 조>
  • 홍승우 - <에피소드>

5.5. 스포츠[편집]

6. 은퇴[편집]

6.1. 스포츠[편집]

이 해를 끝으로 1980년대 삼성전자 농구단의 핵심 3인방이 은퇴하였다.

7. 베스트셀러[편집]

[1] 일종의 독립영화이나,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퀄리티는 조악하다.(…) 그래도 옛 추억을 새기면서 보기에는 괜찮다.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BGM은 'Spin Doctors - Two Princes'. 참고로 앞 부분에서 동호대교를 건너면서 전년도에 있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인해 끊어져 방치되고 있던 성수대교를 클로즈업하면서 보여준다. 나라망신이다..[2] 이 해의 5,406,374명의 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09년(5,925,285명)이 되서야 깨졌다.[3] 95년 1~2월에 태어난 빠른 95년생들은 제외하되 96년 1~2월에 태어난 빠른 96년생들은 포함. 다만 95년 1~2월생이라도 입학 유예로 제 나이에 맞게 입학했으면 포함이다.[4] 게다가 토이스토리도 대부분의 수익이 1996년 초에 쏟아져 나왔다.(…) 연말에 나왔으니까 그럴만도 하지[5] 생각해 보자. Windows 95가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는 없었다. 빌 게이츠의 첫째 딸보다도 먼저 나왔다.[6] 올해의 한자 캠페인이 처음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7] 1998년 11월에는 5.18 단체 회원들에게 두 차례 계란세례를 받는 굴욕을 보였다.[8] https://en.wikipedia.org/wiki/Wiles'_proof_of_Fermat's_Last_Theorem[9] 이 때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임기가 4년이 아니라 3년이었다. 1998년에 제2회 지방선거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10] 당초 최씨는 해당 문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려 했지만 절차상의 문제로 민원을 제출한 것이다.[11]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군이 펼친 대규모 공세작전의 명칭이다. 이 작전으로 대부분의 유고연방군과 세르비아인이 크로아티아에서 축출되었다. 그러나 16년 뒤 이 작전을 주도한 장군은 유고 범죄재판소에 의해 25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12] 당시 용인은 시가 아니라 군이었다.[13] 경기도에서 운영하던 기관으로, 가출 혹은 성매매로 학업을 중도 포기한 10대 가출 여자청소년의 직업교육을 위해 만들었다. 이 사건 후에 여론의 뭇매로 폐원조치를 했으며 후에 참여대상을 넓혀 '경기여성능력개발센터'로 재설립했다.[14] 단 2년 후 브라운과 골드먼의 유족들이 제기한 민사 재판에서는 패소했다.[15] 속칭 골목선언[16] 주인공인 의 탄생 연도인 1964년을 기준으로 31세일 때 그 해다. 제작 연도인 2008년과는 별개로 스토리가 1탄스파 제로2탄4탄5탄3탄 순으로 전개된다.[17] 공교롭게도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 한국에서는 광복절 날 태어났고 동시에 한국 서울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는 날이었다.[18] 한국 성우 중 최연소 기록을 썼다.[19] 프로젝트 시작 년도가 2010년. 이하 동일.[20] OVA 기준. 생일은 원작 게임의 설정을 따랐다.[21] 홈라인 연도 기준. 출신 평행계인 유르스 기준으로는 1972년.[22] 그의 차원이동능력을 알고 있던 동료가 라이히-5SS 대원들에게 이 사실을 불면서 아르마넨 결사의 이세계 침략이 시작되었다.[23] 14학번 학생들 중 20살(만 19세)에 입학한 학생들 포함. 단, 최멸치(1988년생), 소심줄, 이폰팔 등 늦게 진학한 연장자는 제외[24] 최초 연재가 2013년.[25] 엄밀히 따지면 이들 중 몇명은 4월 28일이 지난 이후 중환자실 치료 중 숨진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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